진흙속의연꽃

지키기 어려운 불음주(不飮酒)계, 비승비속인과 계향(戒香)

담마다사 이병욱 2010. 8. 26. 23:27

 

지키기 어려운 불음주(不飮酒), 비승비속인과 계향(戒香)

 

 

막장드라마가 있다. 막장드라마의 사전적인 의미는 복잡하게 꼬여 있는 인물관계와 현실적으로 말이 될 수 없는 상황설정, 매우 자극적인 장면을 이용하여 줄거리를 전개하는 드라마를 말한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 하면 갈데 까지 다 간 드라마를 말한다.

 

고된 하루의 일을 마치고

 

그런데 막장이라는 말을 광부들은 좋아 하지 않는다. ‘극한 직업이라는 TV프로에서 광부들은 제발 막장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실제로 막장에서 일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막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매우 불쾌하게 생각 하는 것이다.

 

광부들이 작업하는 막장은 갈데 까지 간 곳이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상황에서 생명과 같은 지주를 세워 가면서 앞으로 전진해 나간다. 이들이 고된 하루의 일을 마치고 탄가루가 묻힌 때를 씻어 낸후, 예외없이 그 날 하루를 결산하는 뒷풀이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주로 소주삼겹살안주를 먹으면서 그날 하루의 피로를 푸는 것이다.

 

보상심리의 발동

 

고된 육체적인 노동이나 격심한 정신적 노동이 끝나면 무언가 보상을 받고 싶어 한다. 의사들이 수술후에 피투성이가 된 손을 씻고 난후 술을 마신다든가, 드라마가 종료 된 후 주연배우가 뒷풀이에서 과음했다는 이야기 또한 보상심리의 발동이고, 격심한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학생도 예외가 아니다. 시험이 끝난후 나이트클럽같은 곳에서 미친듯이춤을 추는 행위도 무언가 보상을 받고 싶어 하는 행위이다. 회사에서 오랜 연구끝에 신제품 개발을 완료 하였을 때 팀원끼리 회식하는 것, 농촌에서 격심한 일을 한 후에 농주로 피로를 푸는 행위등은 모두 노동과 관련 되어 있다.

 

이처럼 격심한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한 후에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음주행위에 대하여 비난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하는 것 없이 음주를 한다면 단지 즐기는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키기 어려운 불음주계

 

불자들이 지켜야 할 오계는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계이다. 이들 계는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도덕적으로 지켜야 할 의무로 본다. 그런데 이런 법일수록 더 지키지 어렵다는 것이다. 또 너무 광의적으로 해석 하면 막연해 진다. 그래서 수계는 받았지만 제대로 지키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이다.

 

이 중에 특히 지키기 어려운 것이 불음주계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불음주계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 계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일단 계를 받아 놓고, 계를 어겼을 때 참회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계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이처럼 불자라면 계를 가급적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출가수행자들이 계를 어긴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술 마시는 스님

 

재가자들은 일을 해야 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삶을 살아 갈 수 없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계를 다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격심한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한 후에 음주를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수행에 전념해야 하는 스님이 술을 마시는 행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런 장면을 유원지의 식당에서 목격하였다.

 

한 눈에 보니 스님 같았다. 간편한 캐주얼 차림의 승복에 삭발한 머리를 모자로 감추고 있었지만 스님임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자주 와 본 듯이 일행들에게 맥주잔을 따라 주면서, 종업원에게 말하기를 옆에 앉은 사람이 자신의 마누라라고 소개 한다. 나중에 그 종업원에게 물어 보니 스님이 맞은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하안거 결제기간중이었는데 수행에 전념해야 될 스님이 왜 식당에서 여자들과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일까. 스님들이 화를 내는 것도 자비의 방편이라 하고, 천도재를 올리는 것도 중생의 제도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주장 하는 사람도 있는데, 신도처럼 보이는 이들과 술을 마시는 것도 하나의 방편일까.

 

화장터에서 가져온 나무처럼

 

스님들이 술을 마신다는 이야기는 종종 듣는다. 실제로 북한산의 어느 전통사찰의 공양간에서 술상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사찰은 조계종 소속은 아니었지만 노공양주 보살은 사람이 사는 곳이 다 그렇지 않느냐며 이야기를 한다. 스님들이 격심한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술을 마시는 것일까.

 

술을 마시는 스님들은 계를 파한 사이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뉘만 스님일 뿐이지 속인이나 다름 없다. 이런 비승비속의 사이비스님들 때문에 대부분의 청정범행을 닦는 스님들을 욕먹게 만든다. 한 사람의 파계승의 출현으로 인하여 악취가 나고 세상이 탁해지는 것이다.

 

청정도론에서는 계행이 나쁜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여러 해된 오물 구덩이처럼 청정해지기 어렵다. 화장터에서 가져온 나무처럼 승과 속의 둘 모두로 부터 제외된다. 비구라고 주장 하지만 비구가 아닌 것이 마치 소의 무리를 따르는 당나귀와 같다.

(청정도론 1, 208p)

 

 

계행이 나쁜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한다. 마치 화장터에서 타다 만 나무토막 같다는 것이다. 스님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가자도 아닌 것이 마치 소들 중에 있는 당나귀와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이런 이들이 스님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이들이게 공양해 보아야 아무 공덕도 짓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가장 수승한 향기는

 

이처럼 계행이 나쁜 자들은 악취가 나지만, 반면에 계행을 잘 지킨자들은 향내가 난다. 이를 계향이라 한다. 계의 향기는 모든 향기 가운데 가장 수승하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계의 향기는 모든 향기 가운데 가장 수승하나니

그것은 걸림없이 모든 방향에 퍼진다.

 

계를 지닌 자를 위해서 한 행위는

비록 적을지라도 큰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계를 지닌 자는 공양과 공경의 그릇이 된다.

(청정도론 1, 215p)

 

 

계를 지닌자에 대하여 공양하고 공경하는 행위는 비록 적을 지라도 큰 결과를 가져 올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2010-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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