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를 망하게 하는 문화재관람 입장료수입과 사유재산
“100살까지 살 겁니다”
어느 법우님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그 법우님은 정기적으로 다니는 병원이 있었다. 유명대학병원에서 정기적으로 ‘특진’을 받고 있는데 자신이 속한 시간대에 항상 보는 얼굴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 보다 앞서 진찰을 받는 사람은 몸이 불편한 80대의 노인이었는데, 그는 항상60대의 며느리가 모시고 오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노인이 진찰을 받고 있는 도중에 대기실에서 의사와 노인과의 대화를 들었다고 한다. 의사가 “건강관리를 잘 하셔서 오래 사시겠어요”라고 말하자, 그 노인이 하는 말은 “ 이레뵈도 100살까지 살 겁니다”라고 말을 했다는 것이다. 대기실까지 다 들리는 대화소리에 노인을 모시고 온 며느리가 실소를 하며 웃었는데 법우님도 따라 웃었다고 말을 하였다.
사람이 힘이 빠지고 늙어지면 무엇에 의지할까. 배우자에게 의지할 수도 있고, 자식에게 의지할 수 있고, 또는 가장 가까운 지인에게 의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어니 무어니 해도 ‘머니(money)’가 최고라고 ‘돈’만한 의지처가 따로 있을까. 앞서 80대의 노인이 의지하고 있는 것은 돈과 재산이다.
돈과 재산을 꽉 움켜 쥐고 있기 때문에 며느리에게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며느리 또한 잘 시봉하면 그 재산이 자신에게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극진히 보살펴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100살까지 살겠다고 말하니 이 무슨 황당한 이야기인가.
백만장자 정도는 되어야
사람이나 동물이나 생존본능이 있다. 생명기능을 유지하려면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남는 음식을 ‘축적’하는 것이다. 사자의 경우 양껏 먹고 난 다음에 먹이가 지나가도 공격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미래를 위하여 축적해 놓는다. 특히 힘이 빠지고 늙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백만장자 정도는 되어야 안심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재산을 축적하기 위하여 온갖 불법과 탈법, 투기, 불로소득도 마다 하지 않는다. 결국 움켜쥐고 있는 재산이 자신의 의지처이자 피난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출가한 스님들이라고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출자가들의 최대 고민은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모든 것을 버려 버리고, 버려야 겠다는 생각마저 버리고 출가한 스님들의 최대 고민은 무엇일까. 그 것은 다름 아닌 ‘노후불안’이라 한다. 불교미래사회연구소(소장 법안스님)에 따르면 560명의 스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이 중 65.4%가 노후불안에 시달리고 있고, 이 가운데 23.8%는 매우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하였다. 이런 결과로서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고 기사는 전한다.
한편 노후대책의 부재로 인한 문제점으로는 수행에 전념하기 어렵고(29.8%) 개인재산 축적(26.1%)과 사설사암 증가(14.1%) 등의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불교신문 2463호/ 2008년 10월1일자, 스님 10명 중 6명 “노후 불안”
http://www.ibulgyo.com/archive2007/200809/200809271222512841.asp)
노후불안 문제가 결국 ‘재산축적’과 ‘사설사암증가’ 현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재가자나 다름 없는 삶이라 보여 진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소유를 하고 재산축적을 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꺄의 아들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갖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며 금과 은을 받지 않습니다. 만일 금과 은이 허용된다면 그들에게 다섯가지 감각적 쾌락도 또한 허용될 것입니다.
(상윳따니까야:42 가마니 상윳따10)
금과 은이 허용된다는 것은 재산축적을 말한다. 재산축적을 허용 한다는 것은 결국 다섯가지 ‘감각적쾌락’을 허용하는 것과도 같다고 말한다. 그 다섯가지 감각적쾌락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오욕락’을 말한다. 즉, 식욕, 색욕, 재욕, 안락욕, 명예욕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오욕락을 추구한다는 것은 세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물며 모든 것을 버리고, 모두 인연을 끊어 버리고 깊은 산속으로 출가한 수행자 무엇이 아쉬어 오욕락을 추구할까. 그 것은 다름아닌 미래에 대한 불안, 노후에 대한 불안때문이라는 것이다.
법문을 듣다 보면
불교tv사이트에서 법문을 듣다 보면 종종 ‘재산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늙은 ‘노보살’이 재산문재 때문에 자식들간에 다툼이 일어나 고통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말 것을 당부 하는 법문도 볼 수 있다.
평생모은 재산을 다 써 보지도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을 때 단체에 쾌척하였다는 뉴스를 종종듣는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 마다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을 역으로 말해 주는 것 같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 주기 때문이다.
재산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자식들간에 분란이 일어났다면 차라리 물려 주지 않음만 못할 것이다. 그래서 스님들의 법문을 들어보면 자식들에게 물려 주지 말라고 이야기 하면서 은근히 절에 시주하라는 뉘앙스로 말한다. 왜 절에서 돈 많은 노보살이 대우받고 , 청소년 법회가 활성화 되지 않는지에 대한 이유중의 하나 일 것이다. 그런데 아예 노골적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
스님에게 기증하라고
법륜스님은 지난해 전국을 순회 하였다. ‘전국순회 행복강좌’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거점도시를 방문하여 법문하였는데, 스님이 강연하는 곳 마다 구름청중을 몰고 다녔다. 그런데 살고 있는 지역에도 방문하였다.
청소년수련관의 대강당이 꽉차고 복도까지 운집한 스님의 강의는 두시간 넘게 진행 되었다. 주로 일상에서 부딪치는 갈등에 관한 이야기이었다. 부부간, 고부간, 자식간의 갈등에 관한 것이다.
그런 스님의 전국순회강좌 법문을 불교tv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다. 이미 종영프로그램으로 넘어 갔지만 그 중에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내용이 있었다.
“유산을 남겨주면 자식을 불효로 만든다. 그러니까 딱 나누어 줄것은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끝까지 움켜쥐고 있다가 누구한테 준다. 스님한테 기증하기 바랍니다(웃음, 박수). 그러면 제가 그걸 갖고 49재도 지내주고, 인도의 불가촉천민도 돕고, 미얀마도 돕고, 방글라데시도 돕고, 북한에 굶어죽는 아이들도 돕고, 그렇게 해서 공덕을 많이 지어 주잖아요. 즉, 사회에 환원을 해라 하는 것 입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388회 보살의 중생구제, http://www.btn.co.kr/program/Program_datail_contents.asp?ls_StSbCode=CATPR_01&PID=P571&DPID=60518)
법륜스님의 행복강좌
전국의 주요되시에서 열렸다.
강당에 입장하지 못한 사람을 위하여 입구에 별도의 자리를 마련해 놓은 모습이다.
이렇게 법륜스님은 끝까지 움켜쥐고 있는 재산을 스님에게 기증하라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은근히 돌려가며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말하고 있다. 그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서 공덕을 짓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어느 댓글에서
그렇게 자신있게 말하는 것은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세계적인 NGO를 만들어 그 기금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믿을 수 있는 곳에 기증하면 보람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것 같지 않다. 재산을 기증할만한 믿을 곳이 드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댓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찰 운영이 대부분 신도 참여가 되지 않는 현실에서 신도들의 보시금은 대부분 출가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면 다시 돌아 나오기는 어렵지요.
차 마실 자리 하나 변변하게 없는 우리네 절에서 어떻게 세상을 위한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사찰내부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법우님이 남겨주신 글이다. 신도들이 보시를 스님에게 하지만 그 돈은 주머니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 어렵다는 말이다. 또 그 돈이 어떻게 쓰여지는 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신도들의 보시금만은 아닌 것 같다.
입장료수입과 한국불교가 망하는 길
땅끝 마을에 템플스테이로 유명한 절이 있다. 해남 미황사이다. 미황사의 주지인 금강스님은 ‘문화재관람료’에 대하여 불교tv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스님들은 일반인들과 멀어지고, 관람료수입에만 의존해가지고 그 수입가지고 생활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신도들하고 일반사람들과의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져 버려요. 그렇게 됨으로 인하여 이것은 오히려 관람료수입이라는 것은 불교를 망하게 하는 거다 그래 생각이 들었어요.
관람료를 받는다 함은 이것을 사회에 환원시키던가 해야 합니다. 왜냐 바로 포교당을 짓든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경전을 나누어주든지 아니면 입구에다 방문자센터라도 만들어서 뭘 제공해 주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이건 관람료 수입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요.”
(이하얀이 만난 스님, 제30회 금강스님(해남 미황사), http://www.btn.co.kr/program/Program_datail_contents.asp?ls_StSbCode=CATPR_01&PID=P613&DPID=61122)
문화재관람료 매표소
유명관광지나 기도처, 또는 불교문중의 산과 불교문화재가 있는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표소
금강스님은 지난해 21세기 불교유신론을 제창한 바 있다. 여러가지 파격적인 제안을 많이 하였는데 불교tv에서도 역시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신랄히 비판하였다. 그 중에 하나가 관람료문제이다.
관람료수입으로 인하여 한국불교가 망해 가고 있다고 스님은 말한다. 관람료수입에만 의존하다 보니 일반인들은 물론 불자들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단절되고 멀어져서 결국 한국불교가 망하는 길로 간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구나 그 관람료수입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람료수입은 절을 유지하거나 스님들이 생활하는데 쓰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옛날 조사스님들의 오랫동안 일구어온 절이기 때문에, 그 절을 통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고, 사람들에게 지혜롭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전달해야지 거기에 안주해서 안된다는 것이다.
승려 사유재산의 종단 출연에 관한 령
관람료수입이나 불자들의 시주금등을 축적하여 재산을 형성한 다음에 ‘입적’하면 어떻게 될까. 그 재산은 누가 가져 가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책으로서 지난해 조계종에서는 ‘승려 사유재산의 종단 출연에 관한 령’을 마련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였을 때 스님들이 입적하면 재산은 당연히 종단에 귀속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현행법체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속가의 친족이 상속권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속가의 친족에 불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종교신자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스님들에게 ‘사전유서’를 쓰게 하고 거의 반강제적으로 이 법을 시행하려 하였다. 그러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현재 유보상태에 있다고 한다.
스님들의 재산축적을 막으려면 기본적으로 스님들의 노후복지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개신교목사의 경우 사유재산 축적이 허용되고 천주교와 같은 성직자가 되는 순간 노후까지 보장받지만 불교의 경우 ‘스스로 알아서’ 노후를 챙겨야 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재산축적을 하지 않을 수없고 돈이 되는 각종 ‘재’와 같은 기복과 방편불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돈이 있는 나이든 불자가 우대를 받고, 반면 어린이나 청소년에 대한 관심도는 당연히 떨어지게 되어 있다. 또한 조상들이 일구어 놓은 터전을 단지 관람료 수입으로 유지하기 때문에 포교에 등한시 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스님들이 재산축적을 하면 할 수록 현실에 안주 하기 때문에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과 같이 오욕락을 추구하는 재가자의 삶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피 한방울의 법칙과 반승반속의 삶
신도들이 보시한 돈이 스님들의 주머니에 들어가면 나오지 않고, 관람료수입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면 이는 한국불교가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모든 인연을 다 끊고 출가한 수행자들이 미래를 걱정하고 노후를 위하여 재산축적을 하였을 때 이미 ‘반승반속’의 삶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반승반속의 삶은 승려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가자도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일까. 그 좋은 예가 ‘피 한방울의 법칙’이야기 일 것이다.
미국에서 흑인을 가르는 기준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피속에 흑인의 피가 단 한방울만 들어가 있어도 흑인으로 간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대통령이 흑인남자와 백인여자의 혼혈이지만 그를 중간으로 치지 않고 흑인으로 보는 이유와 같다. 그런 현상은 미국에서 흑인들이 인권을 위하여 데모를 할 때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데모하는 사람중에 겉모습은 영락없는 백인이지만 흑인데모 대열에 합류하는 것은 먼 조상중에 흑인의 피가 흘렀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흑인의 피가 단 한방울만 들어가 있어도 흑인으로 간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반승반속의 삶을 살아 가는 승려가 있다면 그는 승려라기 보다 재가불자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재산을 축적하고 있는 승려에게 보시한다면 이는 ‘재가불자가 재가불자에게 보시’하는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보시를 해야 할까.
누구에게 보시해야 하나
불자들은 우리나라가 다시 한번 불국토가 되기를 바란다. 삼천리 방방곡곡 부처님의 법이 널 퍼져서 모두다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바른 법 즉, 정법(正法)이 퍼져 나가야 한다. 따라서 정법을 펼치는 곳에 보시를 해야한다. 그 것도 청정한 수행자에게 보시해야 청정한 보시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최상의 보시는 보시하는 사람도 청정하고 보시 받는 사람도 청정한 경우이다. 이 경우 큰 과보를 가져온다고 부처님은 말씀 하셨다. 반면 청정하지 못한자에게 보시하는 것은 아무 공덕이 없다고 하셨다.
부처님 당시의 보시의 개념은 4가지 필수품에 관한 것이다. 즉, 먹을 것과 입을 것, 거처, 의약품과 같은 것이다. 그 어디에도 금과 은과 같은 돈을 보시하라는 내용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돈’으로 보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으로 보시를 한다면 투명하게 관리하는 곳이 좋을 듯하다. 보시를 하긴 하였는데 개인의 주머니에 들어가 나올 줄 모르고 또한 포교와 대중교화에 쓰이지 않는다면 ‘재가불자가 재가불자에게’ 보시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모든 것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공개하는 곳이라면 안심일 것이다. 그런 곳을 인터넷으로도 알 수 있다.
어느 카페에 들어가 보면 일년중 수입과 지출내역을 상세히 공개하는 곳을 보았다. 그 곳에 보시하는 액수를 보면 그다지 크지 않다. 불과 몇만원에서 부터 형편에 따라 내는 ‘자율보시’가 대부분이다. 나이든 보살이 죽음에 이르러 쾌척한 거금이 아니라 한사람 두사람의 소액으로 이루어진 보시금이다. 그 보시금으로 수련회를 개최하고 법회를 열고 심지어 남방불교국가에 유학도 보내는 것이다.
이처럼 수행과 법문위주의 수행처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율보시이고 그 내역 또한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점 입장료수입에만 의존하고 돈 많은 신도들에게만 관심을 가지며 재산이나 축적하려는 한국불교의 일부 승려들의 행태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2011-01-04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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