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화를 내면 왜 고통스러울까, 사띠빳따나숫따(satipattana sutta, 염처경)

담마다사 이병욱 2011. 1. 27. 17:52

 

 

화를 내면 왜 고통스러울까, 사띠빳따나숫따(satipattana sutta, 염처경)와 알아차림

 

 

 

당신 뜻대로 하소서!”

 

법회에 가면 듣는 말 중의 하나가 부처님은 반드시 계시다라는 말을 한다. 허공 속에 부처님이 계셔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지켜 보고 있다는 뜻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 부처님의 역할을 대신 하는 존재가 보살인데, 관세음보살을 비롯하여 각자의 역할이 있는 수 많은 대승보살을 말한다. 그래서 앉으나 서나 관세음보살하고, 자나 깨나 나무아무타불하라고 말한다.

 

기독교신자의 신행행태에 대한 영화가 있었다. 영화에서 어느 독실한 기독교 신자는 어느 여인이 유혹하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신 뜻대로 하소서!”

 

 

자신이 내려야 할 판단을 신에게 떠 넘기는 장면이다. 이런 류의 떠 넘기기는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살다 보면 갖가지 문제에 부딪치게 되어 있다. 그 중에 쉽게 해결되는 문제도 있지만, 자신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문제도 있다. 그럴 경우 쉽게 찾는 것이 이다. 그래서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신에게 떠 넘기는 것이다.

 

그런데 일상적인 문제까지 모두 떠 넘기는데 문제가 있다. 영화에서 당신 뜻대로 하소서하는 것도 자신의 책임을 신에게 떠 넘기려는 전형적인 수단이다. 이런 현상은 절대자나 초월적 존재에게 의존하는 모든 종교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앉으나 서나 관세음보살한다거나, 자나깨나 나무아미타불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삶의 과정에서 수 없이 부딪치는 문제들 중 풀기어려운 문제뿐만 아니라 쉬운 문제마저 모두 절대자나 초월적 존재에게 모두 떠 넘겨 버린다면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느낄 수 없다. 모든 것을 신의 뜻 내지 신의 탓으로 본다면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무책임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가 났을 경우 어떠할까. 또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 어떠할까. 이런 경우도 신에게 떠 넘겨 버릴까.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뚜껑이 열리려 할 때 이 것도 신의 뜻일까. 또 그 순간에 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을 염할 여유가 있을까.

 

이런 경우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화가 화를 불러 일으켜서 그 화를 일으킨 마음을 지배해 버리기 때문에 브레이크 없는 차 처럼 오로지 폭주할 뿐이다. 이 쯤되면 분노의 노예가 되어 끌려 다닐 뿐이다. 이럴 때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은 84천 법문 속에 다 들어 있다. 그런 84천법문을 줄여서 한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초기불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알아차림이다. 부처님의 수 많은 가르침이 알아차림, 또는 마음챙김, 마음집중으로 불리우는 사띠(sati)’에 귀결되는 것이다.

 

화가 나서 열받아 머리 뚜껑이 열리려 한다. 이럴 때 불자라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알아 차려야 한다. 잘 안될 때는 연습을 해야한다. 습관을 들이는 것이 바로 수행이라 한다. 불교에서 알아차림이야말로 불교를 가장 불교답게 만드는 가장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 나의 자존심을 상하여 화를 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 맞받아 치는 것이 보통이다. 그 과정에서 온 갖 불선법이 총동원된다. 흔히 52가지 마음의 작용이라 불리우는 구경법(paramatta dhamma)중에 불선법과 관련된 것은 14가지이다.

 

악한 마음을 총 망라하면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해로운 마음을 14가지로 정리 하였는데, 이들 해로운 마음들은 불선과보를 일으켜 결국 불행하고, 비참하고, 처참한 곳인 사악도에 떨어지게 하는 요인이라 하였다.

 

그런 불선한 마음들은 어떤 것일까. 구체적으로 나열한다면 다음과 같다.

 

 

1. 어리석음 = 모하(Moha)

2. 양심 없음 = 아히리까(Ahirika)

3. 수치심 없음 = 아놋따빠(Anottappa)

4. 들뜸 = 웃닷짜(uddhacca)

5. 탐욕 = 로바(Lobha)

6. 사견(邪見) = 딧티(diṭṭhi)

7. 자만 = 마나(māna)

8. 성냄 = 도사(Dosa)

9. 질투 = 잇사(issā)

10. 인색 = 맛차리야(macchariya)

11. 후회 = 꾹꿋짜(Kukkucca)

12. 게으름 = 티나(Thīna)

13. 혼침 = 밋다(middha)

14. 회의적 의심 = 위찌낏차(vicikichā)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한 마음들을 대표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들 마음들은 모두 고유한 성질(自相)’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모두 일어났다가 사라질 뿐이어서 어느 것 하나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라는 공통적인 특징(共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은 이들 해로운마음을 구경법이라 하였는데, 이는 82법에 속하며, 비록 이들이 해로운 마음일지라도 진리에 속한다. 진리라는 것이 반드시 선한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 마음도 진리라고 보는 것이다. 악한 마음을 알아야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불선법을 잘 관찰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선법과 불선법을 가려내는 능력을 초기불교에서 바른정진(正精進, sammā-vãyama)이라고 한다.

 

4아승지와 10만겁동안

 

화가 나면 대부분 말대꾸를 하면서 싸움이 크게 벌어진다. 감정싸움에서 시작하여 자존심싸움으로 발전하면 제어가 되지 않는다. 처음에 사람이 술을 마시다, 이윽고 술이 술을 마시게 되고, 마침내 술이 사람을 마셔 버리듯이 화는 우리를 집어 삼켜 버려서 그 끝은 항상 비참하게 끝나게 되어 있다.

 

모든 것이 끝난뒤 그 화는 간데가 없고, 오로지 행위만 남아 있다. 이때 후회가 일어난다. 화로 인하여 14가지 불선법이 돌아가면서 동시다발적으로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한번 성을 냄으로 인하여 그 동안 쌓였던 신뢰는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그렇다면 화가 났을 때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 또 부처님은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하셨을까.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 인욕할 것을 말한다.

 

부처님이 전생에 보살로 계셨을 때 4아승지와 10만겁동안 바라밀을 완성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적들이 죽이려 할 때 결코 화를 내지 않으셨다 한다. 그런 예를 몇가지 보면 다음과 같다.

 

 

목까지 묻혔을 때

 

실라와(silava)왕이 자신의 왕비에게 간통을 한 나쁜 대신이 적의 왕을 불러들여 3백유순이나 되는 왕국을 점령할 때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출동한 대신들에게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공동묘지에 땅을 파고 천명의 대신들과 함께 목까지 묻혔을 때 마음으로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다.

 

시체를 뜯어먹기 위해 재칼들이 와서 땅을 파헤쳐 주어서 영웅적인 힘을 발휘하여 목숨을 구하여 야차의 신통으로 자기의 궁전에 들어 갔을 때 자기의 침상에 적의 왕이 잠자고 있는 것을 보고도 화를 내지 않고 서로 맹세를 하여 친구로 여기면서 말하였다.

 

남자는 포부를 가져야 하고

현자는 싫증을 내지 않아야 한다.

나는 내가 원하던 대로 되었음을 보노라.”

(Ja.i.267, 자따까)

 

손발을 자를 때

 

우치한 까시(kasi)왕이 사문이여, 당신은 어떤 교리를 설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나는 인욕을 설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왕이 가시 박힌 매로 째찍질하게 하고 손발을 자를 때에도 그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다.

 

머리를 자를때

 

아직자리에 누워 움직이지도 못할 때에도 화를 내지 않았다.

 

 

전단향으로 목욕한

왕국의 계승자 담마빨라

그의 팔이 잘립니다.

왕이시여, 제숨이 넘어갑니다.”

(Ja.iii.181, 자따까)

 

 

라고 그의 어머니가 탄식하는 와중에도 왕이었던 그의 부친 마하빠따빠(maha-patapa,大怒)는 마치 죽순을 자르듯이 그의 손발을 자르게 했지만 그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그의 머리를 자르라고 명령하였을 때지금이 마음을 잘 제어 할 때다. 오 담마빨라여. 지금 그대의 머리를 자르라고 명령한 아버지, 머리를 자르는 사람, 탄식하는 어머니, 그대 자신, 이 네사람 모두에 대해서 평등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라고 굳게 결심한 뒤 조금도 화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청정도론, 9장 거룩한 마음가짐)

 

 

 

 

 

 

위대한 보살로서의 부처님

Great Bodhisattva, Ajanta

사진 http://fog.ccsf.cc.ca.us/~jcarpent/sl01core.htm

 

 

 

위의 세가지 예는 자따까에 실려 있는데, 붓다고사비구가 청정도론에 인용하여 설명하고 았다.

 

부처님이 보살로서 수행을 하였을 때 억울한 일을 당하여 손발이 잘리고, 목이 잘리는 잘리는 순간에도 결코 화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이를 알아차림의 기회로 활용하였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이와 같은 일을 하였는데, 축생으로 살았을 때는 어떠 하였을까.

 

 

코끼리이었을 때

 

찻단따(chaddanta)라고 이름하는 코끼리가 되어서 독이 묻은 화살이 배꼽을 찔렀을 때도 해로움을 가한 사냥꾼에 대해 마음에 화를 내지 않았다. 그래서 말씀 하셨다.

 

큰 화살에 찔렸을 때 코끼리는 마음속에 화내지 않고 사냥꾼에게 말했다.

 

 

친구여, 무슨 목적으로, 무슨 이유로

나를 죽이려는가. 이것은 누구를 위함인가.”

(Ja.v.51, 자따까)

 

 

이와 같이 말했을 때 존경하는 분이여, 까시 나라의 왕후가 당신의 상아를 목적으로 저를 보냈답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녀의 소원을 성취시켜 주려고 여섯 색깔의 광채가 찬란하게 반짝이는 아름다운 상아를 뽑아 주었다.

 

원숭이가 되었을 때

 

큰 원숭이가 되었을 때 바위의 절벽으로부터 사람을 구해 주었다. 그 사람이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서 돌을 들어 머리를 내리쳤다.

 

 

 

마치 숲 속의 다른 짐승들처럼

이것도 사람들의 먹거리로다.

배고픈 자가 이 원숭이르 잡아먹은 들 어떠리.

만족스럽게 먹고 남은 고기는

여행의 준비물로 가져가리라.

긴 여행을 마치도록 식량이 되겠구나.”

(Ja.v.71, 자따까)

 

 

원숭이는 두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그 사람을 쳐다 보았다.

 

 

존경하는 분이여, 당신은 나의 친구입니다.

당신이 이와 같이 해서는 안됩니다.

당신은 긴 수명을 가진 분이십니다.

다른 자를 막아주셔야 옳습니다.”

(Ja.v.71, 자따까)

 

 

라고 말한 뒤 그 사람에 대해 마음속으로 화내지도 않고 자기의 고통도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그 사람이 안전한 곳까지 이르도록 해 주었다.

(청정도론, 9장 거룩한 마음가짐)

 

 

부처님이 전생에 코끼리와 원숭이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상아가 필요한 사냥꾼에게 배를 찔렸을 때 조금도 화내거나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상아를 뽑아 주었다. 또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배은망덕하게도 자신을 먹이로 삼으려 하자 기꺼이 자신의 한 몸을 바쳐서 여행길의 식량이 되어 준다는 원숭이 이야기이다.

 

화를 내면 왜 고통스러울까

 

부처나 아라한은 화를 내지 않는다고 한다. 마음속에서 탐욕과 성냄을 어리석음을 소멸시켰기 때문에 결코 화를 내는 일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범부들은 화가 났을 때 즉각반응을 한다.

 

불자라면 화내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분노와 적개심을 억누르기 위한 각종수행을 한다. 108배라든가 염불, 사경수행 같은 것이다. 이런 수행을 하고 있을 동안 분노와 적개심은 가라 앉는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뿌리 뽑히는 것은 아니다.

 

조건이 되면 또 화가 나게 되어 있다. 그 때마다 법당에 달려가서 108배를 할 것인가. 그렇다면 화가 났을때, 분노와 적개심이 일어날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방법에 대하여 일러 주신 것이 초기경전에서 볼 수 있는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이다.

 

화를 내면 괴롭다. 화를 내면 화를 나게 한 대상을 화나게 할 뿐만아니라, 그를 미워하고 그를 파멸로 몰아 넣기 위한 14가지 해로운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스스로 고통스러워진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 성내는 마음자체가 고통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남을 죽도록 미워하면 상대방이 죽도록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죽도록 정신적 고통(domanasa, 도마나사)  받는다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 위하여 오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그것은 불자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네가지 거룩한 진리(사성제)이다. , 고통과 고통의 원인과 고통의 소멸,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사띠빳따나숫따(satipattana sutta, 염처경)

 

화가 치밀어 오를 때, 분노와 적개심이 일어날 때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그와 같은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럴 때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라고 한다. 마음은 한순간에 한가지 일 밖에 못하므로 화가 날 때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면 화는 사라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연습을 하는 것이 수행이라 볼 수 있다.

 

초기불교 경전에 84천개나 되는 수 많은 경들이 있지만 그 중에 수행에 관한 대표적 경이 사띠빳따나숫따(satipattana sutta)일 것이다. 이를 우리말로 마음챙김의 확립에 대한 경이라 해석할 수 있고, 한자어로 염처경이라 한다.

 

사띠빳따나숫따에서 부처님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면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다고 말씀 하셨다.

 

 

이것은 사람들의 마음의 정화를 위한 하나의 유일한 길이다.

이것은 슬픔과 한탄을 극복하게 하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완전히 부수어 버리며,

바른길(팔정도)을 성취하게 하며,

열반을 실현하게 한다.

이 유일한 길은 바로 네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

(맛지마니까야: 10 사띠빳따나 경, satipattana sutta)

 

 

  

염처경(satipattana sutta).doc

 

출처http://blog.naver.com/maya39/30101360368

 

 

 

부처님은 사띠빳따나숫따에 써 있는 내용대로 실천하면 고통, 슬픔, 한탄, 절망등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 하셨다. 그 방법에 네가지가 있는데 몸, 마음, 느낌, 담마를 관찰하면 된다고 하셨다.

 

오줌을 눌 때나 똥을 쌀 때도

 

몸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먹을 때에도, 마실 때에도,

음식을 씹을 때에도, 맛볼 때에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동한다.

대소변을 볼 때에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동한다.

(맛지마니까야: 10 사띠빳따나 경, satipattana sutta)

 

 

음식을 먹을 때 대부분 정신없이 탐욕스럽게 먹는다. 때로 성냄으로 먹기도 한다. 음식을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라 탐욕과 성냄으로 먹는 것이다. 그런데 음식을 먹을 때 알아차리면서 먹으라고 한다. 알아차릴 대상은 음식 뿐만 아니다. 오줌을 눌 때나 똥을 쌀 때도 알아차리라고 말한다.

 

이처럼 몸의 움직임을 낱낱이 관찰해야 하는데 심지어 잠을 잘 때도, 깨어날 때도, 말을 할 때에도, 더구나 침묵도 알아차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알아차릴 대상은 우리의 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도 알아차려야 하고, 느낌도 알아차려야 하고, 담마도 알아차려야 한다고 경에서 말한다. 그런 논리로 따진다면 성냄 역시 당연히 알아차려야 할 대상이다.  

 

화가 났을 때

 

화가 났을 때 어떻게 알아차려야 할까. 이에 대하여 사띠빳따나숫따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성냄이 있는 마음을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성냄이 없는 마음을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린다.

(맛지마니까야: 10 사띠빳따나 경, satipattana sutta)

 

 

매우 단순한 논리이다. 화가 일어 났을 때 화가 일어난 마음이라고 알아차리면 그 뿐이다. 이처럼 모든현상에 대하여 알아차릴 것을 요구하는 것이 사띠빳따나숫따인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일어나고 사라지는현상을 관찰하기 위해서이다.

 

화가 나는 것도 일시적 현상이다. 때가 지나면 사라지고 만다. 따라서 성냄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그릇된 견해를 벗어나자는 것이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관찰하자고 말하는데 이는 현상을 무상, , 무아로 보는 것을 말한다.

 

가슴의 콩닥거림을

 

상대방이 화를 돋구었을 때 불과 같이 분노와 적개심이 치밀어 오를 때 알아차려야 한다. 그러나 훈련되지 않은 범부들은 화를 멈추기가 쉽지 않다. 보살로서의 부처님은 손발이 잘려나갈 때에도 결코 화를 내는 일이 없었고, 오히려 알아차림의 좋은 기회로 삼았지만 범부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수행처에서 하나의 방법을 가르쳐 준다.

 

화가 났을 때 얼른 마음을 가슴으로 집중하라고 한다. 그리고 콩닥거리는가슴의 움직임을 살펴 보라고 한다. 이는 주의를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 한순간에 한가지 마음만 있기 때문에 화가 난 마음을 가슴의 콩닥거림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가슴의 콩닥거림을 느끼면 화는 사라질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수행이고, 정신적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아닐까.

 

 

2011-01-27

진흙속의연꽃

 

염처경(satipattana sutta).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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