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고따마붓다(Gotama Buddha)인가 사꺄무니붓다(Sakyamuni Buddha)인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1. 2. 5. 10:38

 

 

 

고따마붓다(Gotama Buddha)인가 사꺄무니붓다(Sakyamuni Buddha)인가

 

 

 

초기불교의 경전이 널리 알려지고 있는 요즘 혼란 스러운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부처님의 호칭에 관한 것이다. 어떤 이는 전통적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용어로서 부처님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전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일반명사로서 붓다라고 한다. 그런데 초기불교경전이 널리 보급되고 있는 요즘 신격화된 대승불교경전의 부처님과 구별하기 위하여 고따마붓다또는 고따마부처님으로 부르기도 한다. 과연 이 용어는 바람직한 용어일까.

 

법화경이나 화엄경과 같은 대승불교경전상의 부처님은 초월적이고 신격화된 부처님이다. 또한 불소행찬과 같은 불전문학에 등장하는 부처님 역시 신화적요소가 풍부하게 가미 되어 있어 인간적인 부처님의 면모를 보기 어렵다.

 

반면 초기경전에 등장하는 부처님은 초월적이거나 신비한 존재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실재하였던 부처님으로서 다양한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가르침을 펼치시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주시는 분이다. 그런 부처님은 우주적 스케일의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초월적이고 신격화되고 신화적인 부처님의 모습과 확연히 구별된다.

 

 

 

 

 

Fasting Siddhartha

(Sakyamuni Buddha), India, Sculpture of grey schist, 84 cm height,

c. mid-first to mid-third century CE, Lahore Museum, Pakistan,

Photo © 1970, John C. and Susan L. Huntington, Huntington Archive

http://www.stauros.org/notebooks/articledetail.php?id=302

 

 

 

 

 

외도들은 어떻게 불렀을까

 

초기불교신봉자들은 대승불교의 부처님과 초기불교의 부처님을 구분하기 위하여 고따마붓다또는 고따마부처님이라고 구분하여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초기불교경전을 보면 고따마라는 말이 주로 브라만이나 자이나교와 같은 외도들이 부처님을 낮추어부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예를 한권으로 읽은 빠알리경전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계셨다. 그때 아바야 왕자는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갔다. 니간타 나따뿟따는 왕자 아바야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왕자님, 수행자 고따마의 교리를 논박하십시요. 그러면 아바야 왕자가 그렇게 큰 영적인 힘이 있고 그렇게 막강한 사문 고따마를 논박하였다라는 좋은 평판이 퍼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존자여, 어떻게 내가 그렇게 큰 영적인 힘이 있고 그렇게 막강한 사문 고따마를 논박할 수 있습니까?”

 

(맛지마니까야: 58 아바야라자꾸마라 경)

 

 

니간타 나따뿟따(Nigantha Nataputta)는 뿌라나 까싸파(Purana Kassapa)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ala), 아지따 께사깜발린(Ajita Kesakambalin), 빠꾸다 깟짜야나(Pakudha Kaccayana), 산자야 벨랏띠뿟따(Sanjaya Belattiputta)와 함께 육사외도 중의 하나이며 자이나교의 창시자이다. 그런 그가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을 족성인 고따마로 부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불교에 귀의 하지 않은 왕자 역시 고따마라 부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처럼 외도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 하지 않은자들이 부처님을 호칭할 때 공통적으로 고따마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 예를 더 들면 다음과 같다.

 

 

사꿀루다인은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그의 무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떠들지 말고 조용히 하시오. 저기 사문 고따마가 옵니다. 그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맛지마 니까야 : 77 마하사꿀루다이 경)

 

 

사꿀루다인은 방랑수행자이다. 그런 그가 많은 방랑수행자들과 큰 소리로 떠 들고 있다가 부처님이 오시자 사문 고따마가 온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여기에서도 외도들은 부처님이라 하지 부르지 않고 족성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부처님이 브라흐민의 마을인 오빠사다에 도착하셨을 때 이다.

 

 

짱끼님, 사꺄족의 사문 고따마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오빠사다에 도착하여 데와숲에 머물고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온전히 깨달은 분이라는 명성이...”

 

(맛지마 니까야 : 95 짱끼 경)

 

 

브라만교도들 역시 부처님을 호칭할 때 고따마로 부르고 있다. 이처럼 외도들은 부처님을 호칭할 때 한결같이 고따마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경전의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서양에서는 어떻게 부를까.

 

서양인들이 부처님을 호칭할 때

 

어느 스님의 글에 따르면 불교에 귀의 하지 않고 단지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서양인들이 부처님을 호칭할 때 일반적으로고따마또는 고따마붓다라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이교도들이 부처님을 부처님이라 부르지 않고석가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부처님 또는 붓다라는 명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족성을 부르는 것은 부처님을 낮추어 부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이나 어렸을 적 이름을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대승불교의 부처님과 초기불교의 부처님은 다른 부처님이다. 대승불교의 부처님은 후대에 부처님의 위대함을 찬탄하기 위하여 창작과 가탁이 되어 신화적인 요소가 매우 많아 초월적이고 신격화된 부처님이다. 그런 부처님과 구별하기 위하여 초기불교경전에 보이는 인간적 면모의 부처님을 고따마붓다 또는 고따마부처님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엄밀히 따지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르는 것이 바람직할까.

 

고따마붓다 대신 사꺄무니붓다로

 

고따마(Gotama, Gautama)가장 좋은 소라는 의미의 족성이라 한다. 따라서 고따마라고 부르는 것은 해당종족의 성을 그대로 부르는 것과 같고, 이는 를 의미하는 것이다. 반면 사꺄무니(Sakyamuni)의 어원을 보면 사꺄란 고따마붓다가 탄생한 종족의 이름이고, ‘무니거룩한 분(성자)’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꺄무니는 사꺄족의 거룩한 성자로 해석된다.

 

대승불교와 초기불교의 부처님을 구분하기 위하여 부처님이라는 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따마붓다또는 고따마부처님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왕 구분하여 쓴다면 사꺄족의 성자라는 의미의 사꺄무니에다 붓다를 더하여 사꺄무니붓다라고 호칭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2011-02-0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