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종교권력
우려했던 것이 현실로
우려했던 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일본 대지진과 관련하여 지진이 일어난지 3일 째(일요일)에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것은 “일본대지진에 대한 종교성 발언이 또 나올 것임에 틀림없다” 는 확정적인 내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치 글의 예언성을 증명해 주기라도 하듯이 곧바로 종교성발언이 터져 나왔다. 여의도 S교회의 J목사가 어느 기독교인터넷 뉴스에서 “일본대지진은 하나님을 멀리한 탓”이라고 말을 했다는 것이다.
설령 J목사가 아니어도 그런 발언은 나오게 되어 있다. 과거를 들여다 보면 미래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발언이 나오게 될 조건을 갖추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조건은 어떤 것일까.
불교국가에 쓰나미가 덮쳤을 때
2004년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에 쓰나미가 덥쳤을 때 희생된 국가는 태국, 스리랑카와 같은 ‘불교국가’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인도네시아이었다. 그 때 우리나라 대형교회 목사는 “쓰나미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하였다.
사진 http://millicentandcarlafran.wordpress.com/2010/01/10/tsunamis-and-the-survivors-tell/
2010년 아이티 대지진이 일어 났을 때는 미국의 ‘팻 로버트슨’이라는 개신교목사는 아이티인들이 ‘부두교’를 믿는 것을 염두에 두고 ‘악마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 말하였다.
이처럼 기독교국가가 아닌 나라에서 불행한 일이 일어날 때 마다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목사들은 반드시 한 마디씩 했었다는 것을 떠 올린다면, 이번 일본대지진과 쓰나미와 관련하여 반드시 말이 나오게 되 있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일본은 대다수가 자신들의 고유의 종교라고 볼 수 있는 ‘신도’와 ‘불교’를 신봉하고 있고, 그리스도교는 불과 2.3%로서 극소수이기 때문에 J목사의 “일본대지진은 하나님을 멀리한 탓”이라는 발언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단지 기독교를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선량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주장한다면 그런 신은 과연 어떤 신일까. 그런 신에 대하여 2006년 당시 쓰나미가 동남과 서남아시아에 덮쳤을 때 싱가포르타임즈에 ‘에드먼드 츄’라는 사람이 기고 하였는데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만약 악(惡)이 하나도 없다면, 하느님[神]도 없다. 왜냐하면 선(善)함[美德]의 질서가 사라진다면 악도 없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만약 하느님[神]이 세상에 악(惡)을 하나도 존재하지 않게 하셨다면, 수많은 선한 것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공기가 더럽혀지지 않았다면 불이 나지 않을 것이고, 당나귀가 죽임을 당하지 않는 한 사자의 생명을 보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악을 허용하는 이유에 대하여 쓴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악을 방조한 것은 선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런 말은 불교도 뿐만아니라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사람들이라면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말이다.
이런 논리라면 쓰나미로 비기독교국가를 쓸어 버리는 것 역시 선함을 보여 주기 위하여, 선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라고 보기 때문에 대형교회 목사의 입에서 “쓰나미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라는 말이 거침없이 나오게 된 배경이 될 것이다.
쓰촨성 지진에서
또 하나는 자연재해를 하나의 인과응보로 보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불교도들에게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08년 쓰촨성 대지진이 일어 났을 때이다. 그 때 당시 미국의 유명한 여배우 샤론 스톤이 쓰촨성에 지진이 난 것은 중국인들이 티벳인들에게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또 우리나라의 어느 유명한 선사 역시 ‘동타지옥’ 운운하며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하였다.
티벳불교 신봉자인 샤론 스톤이 불교지식이 짧아 자연재해를 인과응보로 이해하였다고 치더라도, 선사가 자연재해를 인과응보로 해석한 것에 대하여 어느 스님은 ‘한국불교의 수치’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곧 불교교리에 대하여 제대로 몰라서 하는 말이고, 한국불교가 처한 암담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고 개탄하였다.
지진과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는 신의 심판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또 인간이 저지른 죄업에 대한 과보의 결과도 아니다. 지진과 쓰나미는 하나의 자연현상일 뿐이다. 자연현상은 늘 변한다. 마찬가지로 지구 내부의 지각판 역시 매 순간 꿈틀 거리는 것이다.
내 뜻대로, 신의 뜻대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 바란다. 남편이나 자식도 내 뜻대로 해야 되고, 돈도 내 뜻대로 벌려야 한다. 심지어 대통령마저 내 뜻대로 해 주기 바란다. 그런 ‘내 뜻대로’의 요구사항은 자연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비도 적당히 와야 하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야 한다. 자연재해도 마찬가지이다. 가급적 지진이나 쓰나미와 같이 모든 것을 쓸어 가 버리는 것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신에게 기도하여 내 뜻대로 해 줄 것을 간청한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는 것은 많지 않다. 심지어 자신 조차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물며 자연현상이 내 뜻대로 될 리 만무하다.
자연은 인정사정 봐 주지 않고 들어 주지도 않는다. 태풍이 불어 모든 것을 날려 버릴 수 있고, 홍수로 모든 것을 떠 내려 가게 할 수 있다. 더구나 지진이나 그에 따른 쓰나미는 한 순간에 지역을 초토화 시켜 버리기도 한다. 이처럼 자연현상이나 자연재해는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인들은 이를 ‘신의 뜻’으로 돌리고 있다. 그리고 믿는 자는 봐주고, 믿지 않는 자는 쓸어 버린다고 말한다. 이는 자연재해를 인과응보로 해석하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은 발상이다. 한 마디로 종교가 처한 암담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지도자를 믿고 따르는 신도들 역시 동급일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존재하는 것은 변할 수 밖에 없다. 어느 것 하나 고정 되어 있지 않다. 지금 보이는 기둥이 영원할 것 같지만 언젠가 무너지고 만다. 저 높은 산이 천년만년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지만 세월이 흐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이 끊임 없이 변하듯이, 사람이 태어나서 병들고 죽듯이, 우주 또한 변한다.
마찬가지로 지구 내부에서 일어나는 지각판의 변동 또한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신을 개입하여 “쓰나미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라거나 “일본대지진은 하나님을 멀리한 탓”등으로 해석하고 있다면 종교인의 수치이자 한국 종교의 암담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2011-03-14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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