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선사들의 깨달음, 부처님제자들의 깨달음

담마다사 이병욱 2011. 3. 21. 15:26

 

 

 

선사들의 깨달음, 부처님제자들의 깨달음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불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상식적인 문제일 것 같지만 사람들마다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견해는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설명하는 스님이나 교수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다.

 

깨달음과 불교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불교 관련 매스컴에서는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불교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 끊이지 않는다. 이는 깨달음에 대한 개념정립이 되어 있지 않음을 말하고, 심지어 불교란 무엇인가라고 말하는 것은 불교에 대하여 아직도 불자들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해서 일 것이다. 더구나 초기불교의 교학과 테라와다 불교의 수행법의 도입에 따라 그 혼란은 더욱 더 가중되어 가는 듯한 양상이다.

 

역대선사들의 오도 나이

 

최근 교계인터넷 신문에서 깨달음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역대 선사들 평균 깨달음 나이는 32.4세라는 제목의 기사이다.

 

 

 

 

 

역대선사들의 오도 나이

출처 http://www.beopbo.com/news/view.html?section=1&category=83&no=65033

 

 

 

기사를 보면, 깨달은 나이와 관련하여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가 스승으로 부터 인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선종에서 자신이 스스로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인정을 해주지 않으면 깨달은 것으로 인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깨달은 선사들은 오도송을 남겼기 때문에 깨달은 사람인 줄 아는 것이다. 그런 선종의 깨달음은 어떤 것일까.

 

선종의 깨달음은

 

일반적으로 선종에서의 깨달음은 견성성불이라 볼 수 있다. 부처가 될 성품이 내 안에 있는 데, 그 성품을 보았을 때 성불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마치 거울을 닦듯이 마음을 깨끗이 닦다 보면 본마음, ‘참나가 드러나 보인다고 한다.

 

그런 상태를 소소영영(昭昭暎映)’하다고 하는데, 이는 또렷하고도 신령스런 마음바탕이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한 물건또는 동그라미이라고도 하는데, 본래 나지도 죽지도 않는 것이고, 그 경계를 접하면 언어가 끊기고 분별이 통하지 않는 세계라 한다. 그런 경계를 맛 본 것이 오도송일 것이다.

 

선사들의 오도송

 

선사들의 깨달음 중에 가장 일찍 깨달았다(17)는 해안선사(1901-1974)의 오도송을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보았다.

 

 

(탁명종낙우죽멱)
(봉비은산철벽외)
(약인문아희소식)
滿 (회승당리만발공)

 

목탁소리 종소리 또한 죽비소리에
봉황은 은살철벽을 넘어 널으네
내게 기쁜 소식을 누가 묻는가.
회승당안의 만발공양이라 하노라.

(해안선사 오도송)

 

 

해안선사는 17세 되던 해(1918) 7일간의 생사를 건 용맹정진으로 깨달아 스승으로 부터 인가를 받았다고 한다.

 

다음으로 56세라는 가장 늦은 나이에 깨달음을 인가 받은 월산스님(1912-1997)의 오도송은 어떤 것일까.

 

 

忽覺本來事(홀각본래사)
佛祖在何處
(불조재하처)
月土裏藏乾坤
(두리장건곤)
轉身獅子吼
(전신하자후)
不入
(불입)
不捨
(불사)
不休(불휴)


참모습 깨닫고 보니
부처와 조사 어디에 있는고
몸속에 하늘과 땅 본래 감추어 있으니
몸을 뒤쳐 사자후를 하노라
세우지 않고
버리지 않고
쉬지 않도다.

(월산스님 오도송)

 

 

우리나라 불자들에게 가장 유명한 선사로 잘 알려져 있는 성철스님(1912-1993)의 오도송은 어떤 것일까. 29세에 득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성철스님의 오도송은 다음과 같다.

 

 

黃河西流崑崙頂하니 (황하서류곤륜정하니)

日月無光大地沈이라 (일월무광대지침이라)

遽然一笑回首立하니 (거연일소회수립하니)

靑山依舊白雲中이로다. (청산의구백운중이로다)

 

 

황하수 곤륜산 정상으로 거꾸로 흐르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는도다

문득 한 번 웃고 머리를 돌려 서니

청산은 예대로 흰구름 속에 섰네.

(성철스님 오도송)

 

 

세 선사의 오도송을 범부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알듯 모를듯한 오도송과 그 깨달음의 경지는 그 경계를 맛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경계를 먼저 맛 본 스승이 인정을 해 주어야만 깨달았다고 인정해 준다고 한다. 그렇다면 초기불교에서 깨달음은 어떤 것일까.

 

 

 

 

 

사진http://www.layoutsparks.com/1/120198/enlightened-butterfly-goddess-bright.html

 

 

 

 

 

 

테라가타(장로게)와 테리가타(장로니게)

 

초기불교에서 해탈과 열반의 기쁨을 노래한 경전이 있다. 테라가타(장로게)와 테리가타(장로니게)가 그것이다. 마치 선사들의 오도송을 연상하게 하는 게송은 어떤 것일까.

 

 

1.

 

백가지 맛이 나는 훌륭한 음식도

오늘 내가 즐긴 것에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은 고따마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그의 통찰력은 무한을 꿰뚫어 본다.

(테라가타 91, 빠리뿐나까 비구)

 

 

2.

 

대단한 신심을 가지고 출가를 하였지만

나는 아직 칭찬을 바라는 마음과

소유욕에 대한 욕심으로 이리 저리 행각하였다.

 

나는 내가 가야할 길을 잃어 버렸다.

번뇌와 욕망에 사로잡혀

수행자 삶의 진정한 목표를 망각하였다.

 

그때 내 작은 방에 앉아 있을 때

고뇌가 엄습하였다.

나는 잘못된 길을 헤매고 있잖아!

갈애의 손아귀에 끌려 빗나갔구나!

 

남은 삶은 짧아! 늙음과 병마가 인생을 부수고 있구나.

이 몸이 부서지기 전에 게으름 떨 시간이 없지!”

 

나는 몸과 마음을 구성하는 다섯 무더기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온전히 해탈하여 우뚝 섰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마침내 성취되었다.

(테리가타 92-96, 밋따깔리비구니)

 

 

3.

 

깨달은 분, 영웅, 존재하는 모든 것 중 으뜸이시고

나와 많은 이들의 고통을 소멸해 주신

부처님께 경배합니다.

 

괴로움이 어떻게 오는지 알았고

그 원인인 갈애를 소멸하였네.

여덟가지 바른 길을 수행하여

모든 것이 소멸된 경지에 도달하였네.

(테리가타 157-158, 마하빠자빠띠 고따니비구니)

 

 

위 게송을 보면 누가 읽어도 이해 하기 쉬운 내용으로 되어 있다. 더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여 해탈과 열반에 이른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떤 것일까.

 

열반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선불교에서의 깨달음이 견성성불이라면, 초기불교에서의 깨달음은 열반이라 볼 수 있다. 열반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부처님은 8 4천 법문을 펼쳤는데, 이는 팔정도로 요약된다. 팔정도는 사성제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또한 사성제라 볼 수 있다.

 

테라가타와 테리가타에서 보는 것처럼 부처님의 제자들은 오온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깨달았고,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를 제거 함으로서 해탈과 열반을 실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철처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벗어나 다른 길로 가는 것은 길을 잃고 헤메는 것과 같다.

 

 

2011-03-2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