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번뇌와 108갈애
불교TV사이트에서 영화배우 ‘신성일’에 관한 이야기(이상벽의 이야기쇼 붓다야 붓다야, 제73회 신성일 편 1부, 제74회 신성일 편 2부)를 보았다.
로맨스가이로 잘 알려져 있는 신성일은 국회의원 시절 뇌물수수사건에 연루 되어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매일 108배를 하며 견디어 냈다고 한다. 108배를 한 계기는 뇌성마비에 걸린 어느 화가가 어린 시절 부터 매일 1000배를 하며 살아 온 것에 대한 책을 접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108번뇌
일반적으로 108배를 열심히 하면 108번뇌가 소멸된다고 한다. 그런 108번뇌는 어떤 것일까. 일타스님의 글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곧 6근과 6진의 하나 하나가 부딪칠 때 좋고[好], 나쁘고[惡] 평등하고[平等], 괴롭고[苦], 즐겁고[樂], 버리는[捨] 여섯 가지 감각이 나타나기 때문에, 6*6=36즉 서른여섯가지의 번뇌가 생겨나게 된다.
이 36번뇌를 중생은 과거에도 했었고 현재에도 하고 있고 미래에도 할 것이기 때문에 6*6=36에 과거, 현재, 미래의 3을 곱하여 108번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타스님, 108번뇌와 108배)
사진 http://elev8.com/spirit/scripture-of-the-day/sheeri-mitchell/has-god-lost-control/
안이비설신의와 같은 여섯가지 감각기관과 색성향미촉법과 같은 여섯가지 감각대상이 만났을 때 36가지 번뇌가 생겨나는데, 이런 번뇌는 과거, 현재, 미래에도 있기 때문에 36가지 번뇌에 3을 곱하여 108번뇌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초기불교에도 108번뇌와 비슷한 것이 있다.
108갈애
초기불교에서는 108번뇌라는 말 대신 ‘108갈애’라는 말을 사용한다. 왜 108갈애라 부를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108갈애는 12연기를 설명할 때 사용된다. 12연기에서 느낌(受)을 조건으로 갈애(愛)가 발생하는데, 그 때 갈애는 보통 세가지로 구분 된다.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이다. 이런 갈애의 특징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이 정의 내릴 수 있다.
“갈애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끝없는 갈증, 갈망, 근원적인 인간의 욕망을 말한다.”
예를 들어 눈의 시야에 어떤 형상이 들어 왔을 때, 이를 감각적 욕망으로 즐기면서 그 형상을 가지고 싶은 갈애가 일어나는데, 이를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慾愛, kāma-taṇhā)’라 한다.
그런데 시야에 들어온 형상은 항상 있는 것처럼 보이고 영원할 것처럼 보인다. 그런 견해를 상견(常見. sassata-diṭṭhi-사싸따딧띠)이라 한다. 따라서 상견과 함께 하는 갈애가 일어 날 때 이를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bhava-taṇhā)’라고 한다. 이런 갈애의 특징은 보이는 모든 것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탐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다음으로 시야에 들어 온 형상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끊어지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그런 견해를 단견(斷見, uccheda-diṭṭhi-우쩨따딧티)이라 한다. 그래서 단견과 함께하는 갈애가 일어나는데, 이를 ‘존재하지 않음(비존재)에 대한 갈애(無有愛, vibhava-taṇhā)’라 한다. 이 역시 마음바탕에 탐욕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갈애는 소리에 대한 갈애, 맛에 대한 갈애등에도 적용된다. 이런 갈애는 18가지가 있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는 108갈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것은 안의 형상등으로 18가지이고 밖의 형상등으로 18가지가 되어 모두 36가지가 있다. 이와 같이 과거의 갈애 36가지, 미래의 갈애 36가지, 현재의 갈애 36가지로 108가지의 갈애가 있다.
(청정도론, 제17장 통찰지의 토양)
일타스님의 108번뇌 계산법과 청정도론의 108갈애 계산법과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육근(안이비설신의)과 육경(색성향미촉법)이 등장하고 이에 삼세(과거, 현재, 미래)를 적용하는 것은 모두 공통적이나 결정적으로 세 가지 갈애에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08번뇌와 108갈애의 차이는
일타스님은 육근 곱하기 육경으로 하여 36가지 번뇌가 생긴다고 보았으나, 5세기 청정도론의 저자 붓다고사 비구는 육근이 육경에 부딪쳤을 때 여섯가지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여기에다 ‘존재의 갈애’와 ‘비존재의 갈애’를 추가하여 곱하면 6X3이 되어 모두 18가지 갈애가 발생하는것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갈애를 일으키는 형상, 소리등은 내안에서만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도 있기 때문에 ‘안’의 형상등으로 18가지, ‘밖’의 형상등으로 18가지가 된다. 그래서 36가지 갈애가 있게 된다.
이런 갈애는 현재 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삼세에 걸쳐 일어 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36곱하기 3이 되어 108갈애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108번뇌와 108갈애는 비슷한 것 같이 보이지만 그 구성요인을 보면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는 대승불교전통과 테라와다불교전통에서 번뇌와 갈애에 대한 이해의 차이로 보여진다.
108번뇌와 108갈애의 제거는
일타스님에 따르면 번뇌는 분별과 망상을 일으키는 요인이기 때문에 흩어진 마음으로 본다. 그래서 마음이 끊임 없이 흘러내리는(流轉, 유전)것으로 본다. 이런 흩어진 마음, 흘러내리는 마음을 ‘삼매’의 힘으로 번뇌 이전의 근원적인 마음인 ‘일심’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108배를 하면 지금 당장 번뇌가 끊어지지 않지만 매일 매일 삼매속에 몰입할 때 번뇌는 차츰 사라지게 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108번뇌가 완전히 소멸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테라와다전통에서는 108이라는 숫자에 대하여 번뇌 대신 ‘갈애’에 촛점을맞추었다. 갈애는 일반적으로 12연기와 사성제에서 사용되는 술어로서 모든 고통과 윤회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래서 사성제에서 고통의 소멸이 바로 갈애의 소멸을 뜻한다. 이는 곧 ‘열반’을 뜻한다. 이런 갈애는 어떻게 해야 제거 할 수 있을까.
초기경전이나 주석서에 따르면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기 전에 ‘알아차리면’ 된다고 말한다. 즉, 좋다, 싫다, 좋지도 싫지도 않다라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볼 것을 말한다. 이는 다른말로 표현하면 ‘현상에 대하여 무상, 고, 무아로 통찰하는 것’을 말하는데, 쉬운 말로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라는 것을 아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한 수행방법이 ‘사념처’이고, 또 다른 말로 ‘위빠사나’라 한다.
이처럼 108번뇌와 108갈애는 대승불교 전통과 테라와다 불교 전통에서 이해 하는 각도가 다르고, 그에 따라 결과 또한 다름을 알 수 있다.
2011-04-29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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