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후기

‘여황제 무측천’에 푹빠져, 일월능공 오프닝 테마곡

담마다사 이병욱 2011. 8. 20. 14:31

 

 

 

여황제 무측천에 푹빠져, 일월능공 오프닝 테마곡

 

 

 

요즘 사극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보고 있는 드라마는 고우, 공주들의 전국여황제 무측천이다. 모두 외국 시대드라마이다. 한국드라마는 이전에 많이 보았고 역사적 사실도 알고 있기 때문에 새로울 것이 없지만 인터넷시대를 맞이 하여 인터넷으로 보는 외국드라마는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세 히메들의 이야기

 

먼저 고우(), 공주들의 전국이라는 특이한 제목의 드라마는 일본것이다.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히메(공주)들의 이야기인데, 세 자매가 겪는 사랑과 운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중 첫째 히메가 원수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로 가게 되고, 셋째 히메인 고우()가 도쿠가와 가문의 적남에게 세 번째로 시집을 가게 되는데, 이는 전국시대 히메들이 겪는 정략결혼의 산물이다. 이처럼 엇갈린 운명은 나중에 히메들끼리 서로 전쟁하는 양상으로 바뀌게 되어 공주들의 전국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일본인들이 영웅으로 숭배하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렇게 소위 전국 3걸이 모두 등장한다. 이중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데, 그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렇다면 임진왜란은 왜 일어나게 되었을까.

 

임진왜란은 왜 일어나게 되었을까

 

임진왜란이 일어난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보는 전쟁의 요인은 어처구니 없게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변덕스런 마음때문이다. 나이 50에 어렵싸리 얻은 아들이 세 살이 채 못되어 갑자기 원인 모를 병으로 죽게 됨에 따라 패닉상태에 빠진 히데요시가 분위기 전환을 위하여 조선원정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전국의 다이묘들에게 전쟁동원령을 내렸는데 모두 30만명이 소집되었다고 한다.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전쟁을 밥 먹듯이 벌여온 군사들은 전쟁의 달인들이나 마찬가지이었다. 그 중 절반인 15만명이 1592(임진년, 선조25) 현해탄을 건넜다고 한다.

 

이들 전쟁의 달인들은 그때 당시 동양에서 최강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래서일까 조선땅에 도착하자 마자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조선을 초토화 시키면서 단 20일만에 한양을 점령한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조선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는데, 이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특히 드라마에서 조선수군의 활약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거북선에 관한 것이다.

 

 

 

 

 

 

일본드라마에 등장하는 거북선

HNK대하드라마 고우 공주들의 전국’ 26

 

 

 

 

원숭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단지 아들의 죽음을 잊어 버리기 위하여 전쟁을 벌인 결과 그 때 당시 우리민족은 커다란 아픔을 겪었다. 무려 7년간 지속된 전쟁에서 전국은 초토화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 하면 문화유산도 대부분 파괴되었다. 사찰 순례를 다니다 보면 깊은 산골에 있는 사찰들도 전쟁을 피해 갈 수 없었는지 임진왜란 당시에 소실되었다는 문구가 많이 보인다.

 

이런 무모한 전쟁에 대하여 드라마에서는 어리석은 전쟁심지어 더러운 전쟁이라고 다이묘들의 입을 통하여 말하고 있다. 아무런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는 전쟁이라는 뜻이다. 단지 원숭이로 묘사되고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개인사적인 사건과 신경질이고 괴퍅한 성격에 조선은 물론 일본 마저도 큰 피해를 입었다는 뜻으로 말한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다음으로 관심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가 측천무후에 대한 것이다. 중국 CCTV에서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투입하여 만들었다는 62부작 드라마의 중국제목은 일월능공(日月凌空)이다. 2006 CCTV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우리나라에서 여황제 무측천이라 하여 현재 케이블TV에서 방영되고 있다.

 

TV의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다가 우연히 멈춘 곳이 중국드라마만 전문으로 방영하는 케이블TV로 고정되었는데, 몇 번 보다 보니 이제 자주보는 프로가 되었다. 하지만 밤에 방영되는 프로이어서 놓치기 일쑤이었다. 그런 불편함으로 인하여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놓고 편리한 시간에 보고 있다.

 

무협지를 보는듯 비현실적인 장면도

 

외국드라마는 일본 NHK에서 제작한 시대 드라마를 인터넷을 통하여 수 년간 재미 있게 보아왔지만, 본격적으로 중국드라마를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중국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파란만장한 주인공과 장대한 스케일이 압권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인물들 간의 긴장과 갈등, 사랑과 증오, 우정과 배신이다. 여기에다 중국사극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장면이 마치 무협지를 보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서로 칼을 들고 다투는 장면에서 지붕위를 날아다닌다든가 마술을 부리는 듯한 묘기 같은 장면은 우리식으로 생각하면 비현실적인 장면임에 틀림없지만 중국영화에서 늘상 보는 것들이다. 바로 이런 점이 일본드라마와 한국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것으로서 중국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것이라 여겨진다.

 

만들다 만 불상과 측천무후

 

또 하나 측천무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5월 중국여행을 하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낙양과 서안일대를 둘러 보는 패키지 관광이었는데, 관광지마다 측천무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낙양부근에 있는 용문석굴이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용문석굴에 수 많은 불상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측천무후를 모델로 한 것이 있다고 한다. 용문 석굴 초입을 지나면 볼 수 있는 그 석불은 미륵보살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만들다 만 것처럼 되어 있다. 설명에 따르면 측천무후의 이미지를 본 떠 만들었다는 불상의 모습은 후덕한 여인의 이미지이다.

 

 

 

 

 

당대마애불감상

용문석굴에 있는 석불로서 미륵부처를 형상화 한 것이다.

측천무후를 모델로 하여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 불상은 조성하다 중단되었다고 한다. 측천무후가 실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측천무후는 어떤 인물일까.

 

중국최초의 여황제

 

측천무후(624~705)는 당나라 고종(628~683)의 황후이다. 고종은 당나라 3대 황제인데, ‘정관의 치로 유명한 당태종 이세민의 9남이라 한다. 그런 당고종은 우리나라와도 연관이 깊다. 그의 치세기간중에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였기 때문이다. 백제는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고구려 역시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668년 년 멸망하였다.

 

고종은 병약하고 무능한 황제이었다. 그래서 모든 정사를 황후인 무씨가 보았는데, 이는 그만한 그릇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에 따라 남성중심의 기존의 귀족권력과 마찰과 갈등이 심하였는데, 이는 여인이 정치에 관여한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여러 번 폐출위기도 겪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한 측천무후는 결국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마침내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여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재위기간은 불과 15(690~705)에 불과 하였다.

 

측천무후 전문배우, 류효경

 

드라마에서 보는 측천무후는 매우 미인이다. 실제로 측천무후가 그렇게 미인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드라마속의 측천무후는 중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여자배우인 류효경이다.

 

 

 

 

 

일월능공(여황제, 무측천)에서의 류효경

일월능공은 중국에서 2006 CCTV에서 방영되었다.

 

 

 

그런 그녀는 최근 또 한 번 측천무후 배역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연변에서 제공하는 사이트(류효경 세번째로 무측천 배역 맡아) 에 따르면 류효경은 중년의 무측천 역을 맡게 되었는데, 드라마이름은 무측천비밀력사(天秘史)’ 라 한다. 이렇게 되면 류효경은 자신의 일생에 있어서 모두 세 번에 걸쳐 무측천역을 맡게 된 것이라 한다. 한마디로 측천무후 전문배우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틱한 일생

 

측천무후의 일생은 드라마틱하다. 원래 당태종의 후궁으로 들어갔으나 당태종의 간택은 받지 못하였다. 당태종이 사망함에 따라 후궁들은 비구니가 되어야 한다는 제도에 따라 절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새로 황제가 된 고종과 인연이 되어 황후가 된 것이다.

 

측천무후는 병약하고 무능한 황제대신 정사를 도맡아 처리 하였는데, 그 기간동안 치세는 정관의 치에 버금가는 태평성대를 누린시기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종이 죽자 자신의 두 아들을 황위에 올렸다 내리는가 하면, 마침내 스스로 주나라를 세워 중국역사상 최초의 여자 황제가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들과 딸을 죽이는 비정한 정치인, 권력의 화신, 잔인한 폭군으로서 이미지가 각인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세기간중에 인재를 등용하고 정치는 안정되어 유례없는 태평성대를 구가하였다. 이는 다음 정권으로 이어지는 당 현종의 개원의 치에 대한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

 

측천무후와 불교와의 관계

 

이처럼 측천무후는 냉혹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와 달리 그녀는 항상 백성들의 편에 서서 누구든지 능력만 있으면 관직에 오를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는가 하면 정치비판과 직언을 격려 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와 불교는 어떤 관계에 있었을까.

 

불교평론에 실린 선종은 왜 민중불교를 지향하였는가라는 논문을 보면 측천무후와 불교와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논문에 따르면 그녀는 기존의 문벌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과거제도등을 통한 인재등용에 힘썻는데, 그러한 조치에 편승하여 그때 당시 불교계에서도 변혁을 가져 왔다고 한다.

 

불교계에서도 대부분의 고승들이 명문족벌 출신이었는데, 평민출신도 고승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한 것이다. 그래서 무측천의 집권당시 서민출신이나 나뭇군 출신도 예우를 받고 장안성에 들어가 국사가 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신수대사와 혜능대사를 들 수 있다.

 

실제로 측천무후는 신수대사를 궁궐로 모셔 법문을 듣고 제자의 예를 갖추어 국사로 받들었다고 한다. 또 혜능대사도 신수대사의 추천으로 부름을 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거절하자 금란가사를 하사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측천무후가 기존의 귀족불교대신 새로 일어난 선불교를 숭앙하자 선종의 지위가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이런이유로 해서 무측천은 민중들에게 있어서 인기가 높았고 보살의 이미지로 각인 되었는데, 이는 전란이 없는 것과 함께 태평성대가 계속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에서 보는 백마사의 유래

 

이처럼 측천무후는 불교와 매우 각별한 관계가 있었다. 드라마에서도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그 중의 하나가 백마사에 관한 것이디.

 

당시에 당나라의 수도는 장안이었는데, 낙양을 동도로 하였다. 낙양이 동쪽의 수도라는 뜻이다. 그래서 낙양에도 궁궐을 지어 놓고 정사를 보기도 하였는데, 드라마에서 고종의 측실에 해당하는 귀비가 백마사를 방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백마사는 지난 5월 중에 중국여행 갔었을 때 방문한 곳이다. 중국에서 세워진 최초의 절이다. 68년에 지어졌으므로 2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백마사

후한시대인 68년에 세워진 중국최초의 절이다.

 

 

 

 

백마사를 참배한 귀비는 절을 하고 주지스님으로 부터 백마사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다. 그에 해당되는 부분을 짧은 동영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드라마속의 백마사의 유래에 대한 설명

 

 

 

동영상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귀비의 절하는 모습이다. 우리의 오체투지와 다른 모습이다. 두 손을 합장한 상태에서 두 손을 안에서 바깥으로 벌린다음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방식이다. 또 하나의 장면은 백마사의 유래에 관한 장면이다.

 

 

드라마에서는 육백년 전에 최초로 세워졌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주지스님은 귀비에게 왜 모든에 절 사()자가 붙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외 드라마에서는 삼장법사 현장스님이 대안탑이 있는 자은사에서 입적한 것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하고 있는데, 불심이 깊었던 측천무후가 장례를 후하게 잘 치루게 하라고 명령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일월능공 오프닝 테마곡

 

측천무후는 여성의 몸으로서 최초로 황제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남존여비사상이 강하였던 시대에 명문귀족들의 견제를 받아가며 몇 차례 폐출될 뻔 하였으나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수 많은 사람들을 몰살하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친아들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자로 태어나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서 겪어야만 했던 수 많은 아픔이 있었는데, 이런 분위기는 드라마의 오프닝 테마곡에서 느낄 수 있다.

 

중국에서 인기 있는 가수 요패나()’가 부른 일월능공의 주제가는 다음과 같다.

 

 

 

 

 

 

 

요패나(姚贝娜)의 일월능공 오프닝 테마곡

측천무후는 66세에 황제에 올라 81세까지 즉위 하였다. 

 

 

 

일월능공(日月凌空)

 

 

日和月 天空上交

分得 宇宙

多少烟火早在月中凋

千年之后 情化作冰冷的

 

해와 달이 하늘에서 겹쳐질 때
누가 확실히 우주의 경계를 구분지을 수 있나요

얼마간의 따스함 조차 세월 중에 시들어
천년이 지나니 정열이 차갑게 굳어 버렸어요

 

 

 

屋子的悲 着荒野
的唇 不出离
多少埃心事浩茫的
千年之后 一切是否都被忘却  

 

안의 슬픔이 황야를 마주할 때

주홍색  입술은 이별을 말하지 못하고

얼마간의 속된 걱정으로 끝없이 긴 밤을 보내고

천년이 지나니 모든 것이 잊혀져 버린 건가요

 

 


千年之后 翻云覆雨的手
篇里能找到
千年之后 忧伤似海的愁
不是恨不是他全部的理由

천년이 지나니 그대 손이 변덕을 부려

어느 시 한 구절에서도 상냥함을 찾을 수 없고

천년이 지나니 그대 상심이 바다와 같아

사랑이 그대 전부의 이유가 되지 못하네요

 

 

 

还记得千年之前某
在春色满圆路的

就好象被吹拂的丝绸

滑落在灰的袖

 

천년 전 그 순간을 아직 기억하나요

꽃잎  활짝 핀 봄 풍경 가득했던 둥근 길의 막바지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비단 같던 날씨 아래

그대의 눈물이 흘러내려 사라지던 소매깃을

 

 

2011-08-2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