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여자 남자몰라요”‘신앙지옥 불신천국’에서 종교인 성문제에 대하여

담마다사 이병욱 2011. 9. 3. 11:45

 

여자 남자몰라요”‘신앙지옥 불신천국에서 종교인 성문제에 대하여

 

 

 

불교관련 인터넷신문에도 야당지가 있을까. 금일 아침 인터넷신문사이트를 보니 혼인하고도 승적 유지 주장 파문출가 이후 결혼한 고위직 승려 있다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친여당적인 성격의 불교관련 인터넷사이트에서는 볼 수 없었다.

 

내용은 현재 종단의 고위직에 있는 승려가 승적을 유지한채 10여년전에 결혼하였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할 것이라고 선언한 스님은 직무비위등을 이유로 조계종 호법부로 부터 조사를 받아 왔고 곧 주지직에서 물러날 것이라 한다. 청정한 비구승단에서 왜 이런 일이 발생하였을까.

 

스님들의 허물에 대하여

 

알고 지내는 법우님은 스님들에 대하여 이러쿵 저로쿵 이야기하는 것은 삼가해야 되는 것이라 말한다. 스님들의 허물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국 삼보를 비방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커다란 구업을 짓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굳이 재가자가 나서지 않아도 잘못을 범한 스님은 스스로 참회하고 다시 본래의 구도의 길로 갈 것이기 때문에 스님의 행동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경솔한 처사라는 것이다.

 

출가한 스님들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하여 재가자들은 잘 모른다. 간간히 들려 오는 소문과 인터넷과 같은 언론 매체, 또는 스님들이 펴낸 책을 통하여 피상적으로 알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들의 사는 모습에 대하여 관심을 보내는 것은 재가자의 삶의 방식과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차이는 독신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 하는 사람도 있다.

 

김나미박사의 신앙지옥 불신천국

 

블로그 즐겨찾기로 등록해 놓고 종종 들여다 보는 사이트가 있다. 종교관련기사와 책을 내는 전문작가의 블로그이다. 블로그 이름은 종교와 신앙이야기이고 주인장은 김나미박사이다.

 

김박사는 여성작가로서 중앙일간지에 종교관련 컬럼을 연재하였고 종교관련책도 다수 저술하였다. 그녀는 현재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자신의 책에서 말하였다. 원래 천주교를 믿었으나 타종교에도 관심이 많아 불교에 입문하게 되었고, 더욱 더 배우기 위하여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동국대학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종교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종교인들의 행태에 실망을 느껴 이제 무종교인이 되었다고 말하다. 한마디로 알면 못 믿는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김박사는 최근 펴낸 책의 이름은 신앙지옥 불신천국이다.  신앙이 천국이 되어야 하고  불신이 지옥이 되어야 맞을것 같으나, 책의 제목을 거꾸로의 의미로 표현한 것은 기존 제도권 종교에 대한 극심한 불신때문일 것이다.

 

종교인의 ()문제

 

책에서 김박사는 기독교와 불교에 대하여 시종일관 양비론적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기독교를 비판하면 반드시 그와 관련된 주제와 함께 불교를 비판하는 식이다. 하지만 천주교에 대한 비판은 극히 드믈다. 천주교의 조직력때문인지 아직까지 신부나 수녀들의 비리나 문제점이 정말 문제가 없어서인지 알 수 없으나 비판은 개신교와 불교에 집중된다.

 

종교인들의 비리나 문제점등에 대하여 크게 종교계의 병세악화’ ‘돈과 권위’ ‘성문제이렇게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중 종교인의 성문제를 보면 주로 불교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어느 면으로 보면 일리있는 주장도 있으나 또 어느 면으로 보면 극히 개인적인 견해에 치우쳐 있음도 알 수 있다. 그런 표현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나 자신은 성직자도 금욕 수도자도 아니라 모르는 일이지만, 과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 가운데 하나인 성욕을 어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다. 세상에 대고 이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자 강한 욕망을 부정하는 것은 자칫 위선을 낫는 위험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금욕이 과연 수행이나 수도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김나미, ‘신앙지옥 불신천국에서)

 

 

김나미박사는 세상에 대하여 묻고 있다. 과연 승려들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인 성욕해결 없이 수행이 가능하겠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하면서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내용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내용도 소개 하고 있다. 스님들이 진짜 이성을 멀리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알아 보기 위하여 이름을 밝히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하여 대여섯명의 스님들에게 전화를 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책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의 기억으로 한 명은 돈 주고 하고, 두 명은 가끔 숨어서 만나는 여자 친구가 있고, 두 명은 혼자서 해결하고 나머지 한 명은 여자가 그리운 경지는 이미 지났다고 했다.

(김나미, ‘신앙지옥 불신천국에서)

 

 

김박사의 글내용대라면 우리나라 스님의 거의 대부분이 이성적인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중대한 오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일부 특수한 경우를 보고 일반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김박사의 말대로 성적인 문제는 정말 해결 될 수 없는 문제일까.

 

남자 여자몰라요, 여자 남자몰라요

 

요즘 TV프로에 롤러코스터라는 프로가 있다. 남자와 여자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남자와 여자만이 가지는 느낌과 감정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해당프로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멘트인남자 여자몰라요, 여자 남자몰라요와 같은 기계음비슷한 말이 유행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남자의 입장에서 본 여자를 이해하기 힘들고, 반대로 여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남자들의 행태를 도무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인 김나미 박사가 단지 추론으로 생각한 승려의 성문제는 남성인 비구에 관한 것이다.

 

위 글 내용은 비구에 관한 것인데 왜 비구니의 성이나 수녀의 성욕에 대하여 다루지 않은지 모르겠다. 또 신부들 역시 비구들과 똑 같이 금욕수도자인데 왜 신부들의 성문제는 다루지 않고 비구들의 금욕에만 관심을 가지고 일부현상을 일반화하려는지 알 수 없다.

 

같은 독신자라도 비구니와 수녀, 신부의 성적 본능은 제어 가능한 것이지만 비구들의 성적본능은 제어가 불가능한 것일까. 이는 한 면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TV프로에서 여자 남자몰라요와 같은 말이 있듯이 여성의 편견단견으로 남성의 세계를 추론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독신수행자들의 성이 왜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일까.

 

성욕은 제어가 가능

 

비구들은 출가수행자들이다. 승가에 속해 있지 않아 스님들의 생활을 잘 알 수 없지만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추론 한다면 성욕은 제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출가수행자들의 경우 더욱 더 가능할 것이다.

 

첫째 세상의 감각적 욕망으로 대표되는 오욕락을 버리고 출가하였다면 모든 것을 버린 것이나 다름 없다. 혹시 세상물정모르고 동진출가하였다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겠지만 세상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출가하였거나 산전수전 다 겪고 출가한 스님들은 더 이상 버릴 것도 없을 것이다.

 

스님들이 이성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 도 있지만 그런 현상은 일시적일 수 있다. 앞서 법우님이 스님의 허물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한 이유중의 하나가 스님들은 언제든지 참회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 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면 성적욕망정도는 극복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불교는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삼법인을 근본으로 한다. 따라서 형성된 모든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어 있다. 이는 우주가 성주괴공하고,  사람은 생노병사하고, 일어나는 생각은 생주이멸하는 이치와 같다.

 

마찬가지로 성욕 또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일 뿐이다. 성욕이 일어났다고 해서 오래유지 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생각이 일어나면 사라지게 되어 있다. 다만 성욕이 일어났을 때 여기에 끄달려 간다면 의업을 짓고 결국 신업을 짓게 되고 마는데 이는 고통으로 이어질 뿐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그에게는 반드시 둑카(괴로움)가 뒤따른다.”라고 법구경에서 말하였다. 설령 성욕으로 인한 신업이 즐겁고 행복한 것일지라도 결국 긴고통을 가져다 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멀리하는 것이다.

 

짧은 행복, 긴 고통

 

신업을 지음으로 인한 고통은 출가자 뿐만아니라 재가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부처님은 빠라바와경(Parabhava Sutta, 파멸경, Sn1.6)’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18.

[세존]

“여색에 미치고 술에 중독되고

도박에 빠져있어, 버는 것 마다 없애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파멸의 문입니다.

 

20.

[세존]

“자기 아내로 만족하지 않고,

매춘부와 놀아나고, 남의 아내와 어울린다면,

그것이야말로 파멸의 문입니다.

 

22.

[세존]

 “젊은 시절을 지난 남자가

띰바루 열매 같은 가슴의 젊은 여인을 유인하여

그녀를 질투하는 일로 잠 못 이룬다면, 그것이야말로 파멸의 문입니다.

(Parabhava Sutta, 파멸경, Sn1.6, 전재성님역)

 

 

  빠라바와경-Parabhava sutta-파멸경.docx  빠라바와경-Parabhava sutta-파멸경.pdf

 

 

 

부처님은 행복의 조건에 대해서도 설하였지만 인간이 파멸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설하였다. 빠라바와경(파멸경)에서 부처님은 자신의 아내 외에 매춘부와 놀아나거나 남의 아내와 불륜을 즐기는 것은 파멸로 이르는 길이라 하였다. 또 나이든 자가 젊은 여인의 띰바루 열매 같은 가슴을 가진 여인을 유혹하여 그녀가 또 다른 남자들과 놀아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며 잠못 이루는 것 역시 파멸의 길로 가는 것이라 하였다.

 

 

 

 

 

띰바루(timbaru)열매

학명은 Strychnos Nux-vomica이고,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Shudha kupilu, Vishamushti’ 이다.

영어로 ‘Snake Wood, Nux-vomica, Strychnous Tree.’로 불린다.

사진 ; http://www.ecotechindia.com/Herbsandplants/Strychnos%20Nux-vomica.htm

 

 

 

12가지 파멸에 이르는 길 중에 성적타락으로 인한 불륜에 관한 것이 세 개나 된다. 이런 성욕은 남자가  여자보다 몇 배 강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는 남성의 신체구조와 관련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듯이 성욕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성욕에 끄달려 신업을 짓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허무와 허전함이다. 순간적으로 행복했을지 모르지만 이어지는 긴 고통이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봄으로서 무상함을 알고, 좋은 느낌이 오래 지속되지 않아 괴로움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아 무아인 것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일어나고 사라짐 하나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무상, , 무아를 체득하는 계기가 된다.

 

마음은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일까

 

대승불교에서는 팔만대장경을 한 단어로 줄이면 마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는 일체유심조법문을 선사들이 많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은 정말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마음은 내가 만들어낸다고 볼 수 없다. 그냥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런 마음중에는 선한 마음도 있고, 불선한 마음도 있다. 이처럼 마음은 불쑥 불쑥 일어나서 종잡을 수 없다. 그리고 다음마음이 일어나면 앞의 마음은 반드시 사라진다. 그래서 금강경에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는 유명한 문구가 나왔을 것이다.

 

이 문구에 대하여 불자들은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생각을 내라라고 알고 있지만 그 뜻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들은 드믈다. 이 문구에 대하여 향봉스님은 한 생각이 일어났거든 그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로 바꿔보자라고 하였다. 이는 마음이라는 것이 저절로 일어났다가 사라질 뿐인데, 일어난 불선한 마음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는 이야기이다.

 

지나가는 여인을 보았을 때 성욕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그 마음에 집착하면 의업을 짓고 발전되면 신업까지 짓게 된다. 이때 단지 마음의 현상임을 알고 다음 생각이 일어나면 곧 사라질 것이라고 안다면 문제될 것 없다. 왜냐하면 모든 현상은 일어나고 사라지기 때문에 마음역시 다음마음이 일어나면 전에 일어났던 마음은 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알어차리는 훈련을 하는 것이 수행일 것이다.

 

이처럼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듯이 남자신체에 있어서 특정부위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숫놈들만 모아 놓은 병영에서

 

김나미박사는 여성작가이다. “여자 남자몰라요와 같은 말이 있듯이 여성이 남자의 신체구조와 신체적 특징으로 인한 현상에 대하여 잘 모를 것이다.마음이 저절로 일어났다 사라지듯이 남성의 신체의 특정 부위 역시 저절로 일어났다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는 것이다. 마음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듯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를 확대해석하여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자 강한 욕망을 부정하는 것은 자칫 위선을 낫는 위험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여자 남자몰라요의 전형일 것이다.

 

남성들의 세계는 금욕을 하여 수행에 전념하는 비구스님들만의 세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신체건강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병역의 의무를 마치는데, 병영생활의 특징은 공동체생활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잠도 내무반이라 불리우는 커다란 방에서 수십명이 한 꺼번에 같이 자고 생활한다.

 

숫놈들만 모아 놓은 병영에서 인간이 갖는 근본적인 본능때문에 고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군대에서도 하루 일과가 있어서 고된 훈련을 하거나  보초를 서는 것과 같은 근무등을 하고 나면 성적본능에 대하여 고민할 틈이 없다. 비구들이 사는 승가공동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님들이 여름과 겨울철의 안거에 들어가면 꽉 짜인 수행일정에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인 욕구에 그다지 끄달려 다니지 않을 것이다. 다만 홀로 사는 수행자의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아파트 토굴에서

 

사람이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졸리우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렇게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 막행막식의 승려라면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의 노예가 될 수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일부 승려들의 탈선행위는 이와 같이 개인적인 토굴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되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한국불교에서 토굴갖기가 유행이라고 한다. 법보신문에서 월암스님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너도 나도, 어른도 아이도 사설사암이요, 토굴이요, 아파트다. 개인주의가 팽배해 대중생활은 이뤄지지 않고 승가공동체의식은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법보신문, 승가 도덕적 해이 만연…파합승가·물신풍조 팽배, 2011-3-25)

 

 

스님들이 승가공동체에서 생활하지 않고 너도 나도 토굴생활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런 토굴은 현대화 되어 요즘은 아파트 토굴이 많다고 한다. 아파트토굴을 장만할 정도이면 개인적인 재산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돈은 다 어디서 나올까. 모두 신도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특히 나이든 노보살의 돈이다. 이에 대하여 어떤 이는 노보살의 쌈짓돈이 우리나라 불교를 지탱하는 힘이라 한다. 돈 많은 노보살이 가지고 있는 돈을 스님에게 보시 하였을 때 그 돈으로 아파트도 장만하고 개인사찰도  짓고 각종 불사도 한다고 한다.

 

수행의 즐거움

 

수행자에게 돈을 주는 순간 수행자는 타락하기 쉽다고 한다. 많은 재산을 소유한 승려들은 수행을 하기 보다 무위도식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외제차소유와 골프장출입 같은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부자승려불로소득으로 인하여 씀씀이가 헤퍼서 여가활동에 전념한든가 식도락가가 되기 쉽다고 한다. 무사안일과 무위도식으로 세월을 보내다보니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말인지 모른다. 또 아파트 토굴에서 무사안일하게 무위도식하며 사는 무식한 승려가 여자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 현재 공중파방송등에 보도되고 있는 문제승려의 여자관계은처문제는 이렇게 많이 소유하고 있는 것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한국불교에 있어서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승려는 이처럼 혼자 살며 무위도식하는 반승반속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김나미박사가 염려한대로 출가한 모든 스님들이 근본적인 욕망 때문에 고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불과 대여섯명을 인터뷰하고 한국불교의 출가수행자들을 성적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면, 이는 특수한 현상을 보고 일반화, 합리화, 정당화시키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수행을 함으로서 얻는 즐거움은 세속에서의 감각적쾌락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스님에게 절대로 돈 주지 마세요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은 부처님의 바른 담마를 따르지 않는 반승반승의 이름만 승려인 명자승(名字僧)’들이다. 명자승을 양산해 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불자들이 해야 할일은 염불선을 주창하였던 청화스님의 말씀을 되새겨 볼 일이다.

 

 

스님에게 절대로 돈 주지 마세요. 주머니에 돈 있으면 공부 안 합니다

(청화스님)

 

 

 

2011-09-03

진흙속의연꽃

빠라바와경-Parabhava sutta-파멸경.pdf
0.1MB
빠라바와경-Parabhava sutta-파멸경.docx
0.02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