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종교인인가 정치인인가, 내부지적에 문을 닫는 8.23선언세력

담마다사 이병욱 2011. 9. 20. 15:27

 

종교인인가 정치인인가, 내부지적에 문을 닫는 8.23선언세력

 

 

 

 

혹시나했는데 역시나이었다. 인터넷불교신문에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9 19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21세기 아쇼카 선언 초안이라는 긴 이름에 대한 대중공사가 열렸는데, 일부 반발이 있었지만 주최측의 의도대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불교판 사대강사업인가

 

초안이 이미 언론에 발표된 마당에 초안을 다른 선언문으로 대체한다거나 폐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일부 반발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안에서 약간의 수정을 거쳐 어떻게 해서든지 최종발표를 하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이명박정부에서 사대강 사업을 밀어 붙이는 논리와 매우 비슷하다. 날치기로 법을 통과시켜 놓고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여 공사를 밤낮으로 강행하여 어느 정도 진척되었을 때빼도 박도못하게 하려는 것과 같아 보인다.

 

그렇다면 불교판 사대강사업과도 같은 ‘21세기 아쇼카 선언 초안을 작성한 그룹은 어떤 이들일까. 언론에 발표된 면면은 다음과 같다.

 

 

승려 ; 명법, 지홍, 법안, 도법, 원택, 혜일

교수: 조성택, 성태용, 박경준

 

 

초안은 도법스님이 발표하였는데, 초안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한 사람은 조성택교수라 한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조성택교수의 주도로 초안이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단법인 우리는 선우멤버들

 

그런데 교수그룹에서 성태용 교수와 조성택교수는 같은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검색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두 사람이 사단법인 우리는 선우의 멤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우의 맴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청보리회 김재영 지도법사

참여불교재가연대 상임대표 서강대 박광서 교수

우리는 선우 대표 건국대 성태용 교수

길벗아카데미 윤세원 위원장

불교아카데미 이영철 사무처장

우리는 선우 이사장 고려대 조성택 교수

(출처: 우리는 선우, 길벗 아카데미 개원)

 

 

우리는 선우홈페이지에 따르면 재가불자 신행단체로 되어 있다. 특히 청년불자의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지도법사들의 면면을 보면 우리나라 재가불자단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들로 포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단법인 우리는 선우

 

 

 

 

우리는 선우의 대표는 건국대 성태용교수로 되어 있다. 그리고 조성택교수는 이 단체의 이사장으로 되어 있다. 불교NGO활동가로 잘 알려져 있는 서강대 박광서교수도 멤버이고, 종종 불교TV사이트의 토론회에서 볼 수 있는 청보리회 김재영법사도 이 단체의 멤버임을 알 수 있다.

 

성대표님과 조이사님 작품 같은데..”

 

이처럼 대한민국 재가단체 리더들이 망라되다시피한 우리는 선우에서 성태용교수와 조성택 교수 두 명이 이번 21세기 아쇼카선언문 초안에 참여 하게 되었는데, 그들의 역할에 대하여 어느 회원이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최근 조계종 자정과쇄신결사추진본부 화쟁위원회가 공개한 ‘종교평화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으로 위원장인 도법스님이 「불교닷컴」과 「미디어 붓다」에서 몰매(?)를 맞고 있다. 초안 작성에, 명법스님, 조성택 교수님, 성태용 교수님, 박경준 교수님 등이 참여했다고 기사에 밝혔는데도 유독 도법스님만 몰빵(?)당하고 있다. 땡중이라거나, 욕설, 멸빈, 심지어 공개처형하자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두려운 댓글들이 등장한다.
(
ㅎㅎ. 선언문 내용과 용어를 살펴보면 우리의 성대표님과 조이사님 작품 같은데, 아닌가???)

 

(출처:우리는 선우,  마른 막대기)

 

 

인터넷에 올린 글은 검색과정에서 노출된다. 심지어 블로그에 단 댓글도 구글 검색을 하면 그대로 노출이 되는데,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도 역시 검색이 가능하다.

 

위의 글은 우리는 선우자유게시판에서 가져온 글이다. 어느 회원이 작성한 글로서 이번에 발표한 선언문이 우리는 선우로 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 이유로서 평소 이 단체의 대표인 성태용교수와 이사장인 조성택교수의 문체와 어법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재가불자단체에서 주도하고 스님들이 거드는?

 

실제로 불교관련인터넷신문에서는 조성택교수가 최종적으로 초안을 다듬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이번 21세기 아쇼카선언문은 재가불자단체에서 주도하고 스님들이 거드는형식으로 보인다. 이런 형식은 마치 5.16당시 박정희와 장도영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5.16쿠데타가 일어났을때, 쿠데타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사람은 박정희소장이다. 박정희소장은 자신을 따르는 중령들과 함께 거사하였는데, 주요시설을 접수한 후에 선언문을 발표할 사람으로서 자신의 상관인 장도영육군참모총장을 내 세웠다. 성공한 쿠데타로 만들기 위해서는 얼굴마담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불교에서 최근 일어난 8.23선언문 역시 이와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조성택교수의 카리스마에

 

이번 8.23선언문은 마치 불교쿠데타를 보는 것 같다. 사전에 이를 막아보기 위하여 노력한 스님도 있었지만 무엇이 그리 급하였는지 전격적으로 선언해 버린 것이다. 충분한 논의 없이 발표된 선언문에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회를 못하는 이유는 이미 전 언론에 배포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본선언문을 발표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여러가지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

 

8.23선언문을 주도한 사람들은 마치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들처럼 자신들의 의도대로 끌고 가려 하고 있다. 그래서 반대논리를 제기하는 측에게 역시 반대논리를 개발하여 발표하고 있는데, 그런 것 중에 하나가 반대자에게 불교근본주의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다. 이번 선언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조성택교수는 인터넷신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싸우면서 닮는 것인가?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의 지적대로한물간 지 오래인 서구 그리스도교를 열성적으로 추구하는 한국 기독교의 단순한 맹목성을 지금 한국불교에서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이번 종교평화 선언은 한편으로는 종교근본주의자들의열린 태도각성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쩌면 더 중요한 것으로, 진보적이며 열려있는 종교인들 간의 대화를 열기 위한 것이다. 이웃에게 대화와 평화를 제안하면서 내 종교에만 진리가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조성택교수, 기독교 비판하면서 닮아가자는 건가, 법보신문 2011-9-15)

 

 

조성택교수와는 일면식도 없다. 단지 그가 쓴 글이나 사진을 통하여 알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사진을 보면 두 가지가 떠 오른다. 하나는 나쁜 이미지로서 매우 표독스럽게 보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좋은 이미지로서 카리스마가 넘쳐 흐른다. 이런점이 재가불자임에도 불구하고 스님들을 앞세워 이번 선언을 이끌어낸  원동력인지 모른다.

 

 

 

 

조성택 교수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석사:인도철학), 미국UC버클리대학원 졸업(박사:불교학), 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교수, 불교평론 편집주간, <현대불교학의 합리주의적 경향>, <무아 : 불교의 정의관을 향하여> 등 논문 다수

사진 ; 기독교 비판하면서 닮아가자는 건가

 

 

 

불교근본주의자라고?

 

그런데 자신이 작성한 초안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는 불자들에게 불교근본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여 주었다. 글에서 싸우면서 닮는 것인가?”라는 표현이 이를 말해 준다. 기독교근본주의자들을 예로 들면서 불교근본주의자들 역시 기독교근분주의자들과 같은 싸움닭정도로 간주하는 것이다. 대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산다는 것이 비난받을 정도로 혐오스러운 것일까. 그렇다면 근본주의란 무엇일까.

 

근본주의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떠 오르게 한다. 바이블에 있는 내용이 하나도 거짓없는 자신의 신의 계시라 여기며 바이블의 내용대로 신행생활을 하는 자들을 말한다. 이런 근본주의는 주로 유일신교에서 볼 수 있는데, 이슬람교 역시 같은 유일신을 신봉하다보니 근본주의자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슬람의 근본주의자를 지칭하여 이슬람원리주의자라고도 부른다.

 

초기불교를 겨냥하여

 

기독교근본주의이든 이슬람원리주의이든 모두 유일신과 바이블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유일신을 인정하지 않은 불교에서 어떻게 근본주의가 나올 수 있을까. 아마도 문자주의에 집착하는 것을 보고 기독교근본주의자와 같이 여겼을 것이다. 이는 오로지 경전을 근거로 하여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신행생활을 하는 불자들 즉, 초기불교신봉자들을 겨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예로서 그가 다음과 같은 글을 들 수 있다.

 

 

불교, 특히 대승불교의 근본 사상은 언어와 개념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언어· 개념의 차별과 대립적 구별을 벗어난 불이(不二)의 세계가 바로 불교가 추구하는 진리의 세계가 아닌가? ‘불변고정무상을 대립적으로 본다면’, ‘()’()’의 융섭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조론물불천론’(物不遷論)은 무상을 부정하는 것이던가? 불교가 인류에게 던져준 가장 큰 가르침은언어를 넘어선 진리의 세계이다.

(조성택교수, 기독교 비판하면서 닮아가자는 건가, 법보신문 2011-9-15)

 

 

이 글을 보면 대승불교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대승불교는 언어와 문자를 부정하는 것이라 한다. 이는 선불교에서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과도 같은 맥락이다.

 

흔히 선사들이 법문할 때 부처님의 진실한 뜻은 언어와 문자로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진리는 오직 뜻과 마음으로 전달되는 것으로서 체험해 보지 않으면 벙어리가 꿀 맛을 설명할 수 없듯이 알 수 없는 것이라 한다. 따라서 언어와 문자로 전승된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와 같은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아직 덜 완성된 가르침이라 하여 불요의경또는 소승경전이라 한다. 반면 부처님이 꽃을 들었을 때 가섭이 빙긋이 웃었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로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승되어 왔는데, 그것을 기록한 것이 대승경전이고 이를 다른 말로 요의경이라 한다.

 

인도에서 대승불교의 말로는

 

문자와 언어를 거부하고 뜻과 마음으로 전승된 불교가 진짜라고 말하는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비판하고 성립되었다. 문자로 표현된 부처님의 가르침은 부처님의 진실한 뜻이 아니기 때문에, 공사상과 유식사상등으로 발전하였다. 그런 인도불교는 이미 7세기 현장법사가 다녀가고 난 후 한 세대가 지난후에 거의 대부분 밀교화 되었는데, 이름만 불교일뿐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은 실종되어 불교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인도에서 밀교는 힌두교와 구분이 안될 정도가 되어 아무런 사회적 역할도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민중들로 부터 외면되었고 주로 학문적으로 유지되어 오다 최후의 거점인 비크라마시라사원이 이슬람에 의하여 파괴됨으로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이처럼 불교가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공사에 대한 기사를 보면

 

이번 첫 번째 대중공사에 대한 기사를 보면 8.23선언의 실질적 초안자인 조성택교수의 공격적인 카리스마가 돋보인다. 열린진리과 전법의 원칙에 대하여 단호하게 일축하였는데, 특히 전법의 원칙에 대하여 교인수를 늘리는 것이 전법의 목적이 아니고 중생의 안락과 행복에 있다. 종교는 상품을 파는 행위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매우 원론적인 이야기이다.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 그것은 이번 선언문의 명분때문이다.

 

종교평화라는 거창한 선언을 한마당에 교인수를 늘리는 공격적인 포교는 설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 대신 추상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중생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서 포교하는 것이라 하였다. 부처님의 전도선언문 중 일부만 적용한 것이다. 중생에 대한 자비심을 가졌다면 전도의 대상은 모두 다 될 수 임에도 불구하고 선언의 명분 때문에 전도의 대상이 비신자로 한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더구나 종교는 상품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런 원칙을 가지고 있다면 도시에서 죽기살기로포교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않아도 스님들이 산중에서만 살며 세상과 소통하려 않는 마당에 도시에서는 불교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기름에다 물 붓는 식으로 이와 같은 선언을 해버림으로서 불교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점차 자취를 감출 것임에 틀림없다.

 

반드시 댓가를 치룰것

 

열린진리관과 전법의 원칙의 명분은 훌륭하다. 이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을 정도로 대종교적 내지 대사회적 이슈를 선점하였다. 하지만 반면에 잃은 것도 많다.

 

열린진리관으로 인하여 불자들의 정체성을 가중시키고 있고, 죽기살기로 전법하고자 하는 의지를 꺽어 버린 것이다. 이슈선점으로 인한 정치적 효과를 달성하였을지 모르지만 그와 반비례하여 치루어야 할 댓가 또한 없을 수 없다.

 

만일 유일신교도들이 땅밝기사찰아 무너져라와 같은 사건이 또다시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에 대하여 도법스님은 상대가 무장하고 공격하면 우리는 목숨 걸고 무장을 해제한 채 비폭력으로 대해야 현실 속에 평화가 꽃핀다며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이렇게 되면 종교평화선언을 한 마당에 항의시위마저 제대로 못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2008년도 7.4시국법회나 8.27범불교도대회같은 것은 이제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그 대신 이교도들이 안마당을 가로질로 안방에 들어와 기도해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불의와 부당한 대우에 항거하여 시위하는 것은 헌법으로 보장 되어 있지만, 종교평화선언을 한 마당에 시위를 할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2008 7.4 시국법회

 

 

 

 

 

2008 8.27 범불교도대회

 

 

 

 

왜 내부지적에 문을 닫는가

 

종교는 정치와 다르다. 정치는 반드시 상대방이 있어서 대화와 타협으로 차선책을 이끌어내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는 항상 최선을 추구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이번 종교평화선언은 상대방종교에 대하여 이슈를 선점하였으므로 양보해야 할 것도 많고 타협해야 할 것도 많다. 그런 것중에 두 가지를 들라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열린진리관전법의 원칙이다.

 

종교평화라는 명분을 얻는 대신 진리관과 전법의 원칙에 대하여 양보하고 타협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 최선을 추구하는 종교인의 모습이 아니라, 차선을 추구하는 정치인의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이번 선언의 초안자들은 모두 종교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정치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이슈선점에 대한 정치적 명분을 얻기위하여 타종교에는 열린자세를 보이면서 내부지적에 문을 닫는 자세를 보이는 이중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이 또한 조성택교수를 중심으로한 8.23선언 세력이다.

 

 

 

2011-09-2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