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21세기 아쇼카선언, 열린진리관의 거짓해명과 허구적 전법의 목적을 보며

담마다사 이병욱 2011. 10. 1. 12:29

 

 

21세기 아쇼카선언, 열린진리관의 거짓해명과  허구적 전법의 목적을 보며

 

 

 

 

매우 오래 전에

 

매우 오래 전의 일이다. 학교를 졸업할 무렵 신입사원면접을 준비하고 있었다. 면접에 앞서 어떤 질문이 쏟아질 지 몰라 걱정하고 있었더니 가까이 있던 선배님이 아는 분을 소개시켜 주었다. 소개받은 분은 실제로 기업에서 채용을 담당하고 있는 면접관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분을 찾아가 면접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그 분은 면접의 베테랑 답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자네 집안에 가훈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하여 멈칫하다가 라고 답변을 하였다. 사실 집안에 가훈이 없었다. 어른으로 부터 좋은 말은 많이 들었지만 딱 꼬집어 가훈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이 없었다. 비록 모의면접이었지만 면접에서 가훈이 없다고 말하면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 잠시 당황하다가 가훈이 있다라고 말해 버린 것이다.

 

모의 면접관은 연이어 질문하였다. “자네 집에 가훈이 있다면 가훈의 내용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더 이상 답변을 하지 못하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가문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가훈이 있다라고 거짓말을 하였으나 그 가훈의 내용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 짧은 시간에 또 다른 거짓말을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의면접관이 이와 같은 질문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솔직하게 답변을 하라는 것이었다. 가훈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가훈이 없으면 없다라고 답변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가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훈이 있다라고 하였을 때, 이어지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그 가훈의 내용이 무엇이냐부터 시작 하여 그 가훈을 누가 만들었느냐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준비 되지 않은 거짓말은 몇 차례 질문을 하면 금방 들통나게 되어 있다.그래서 예로 부터 한 가지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열가지 거짓말을 준비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거짓말을 하다 보면 자꾸 말을 꾸며 대는데, 그 때를 대비하여 열 가지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 번 거짓말을 시작하면 그 거짓말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또 다른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이 거짓말쟁이들의 특징이다.

 

8.23 아쇼카선언이 발표된지 한 달이 넘었지만

 

8.23 아쇼카선언이 발표된지 한 달이 넘었다. 열린진리관과 전법의 원칙을 특징으로 하는 이 선언문에 대하여 대다수 스님들과 불자들은 침묵하고 있다. 침묵하는 이유는 선언이 발표 되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선언이 발표된 것 까지 알고 있지만 선언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잘 몰라서 표현을 하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재가불자들은 생업에 바빠 그런 선언이 있는 줄 조차 모를 수 있고, 산중에 있는 스님들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고 있기 때문에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보통신과 인터넷시대에 선언의 내용은 공개되어 있으므로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현대인들은 현실과 가상공간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씩 넘나드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8.23선언이 발표된 것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스님들 역시 인지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요즘은 산간벽지라도 네트워크가 다 깔려 있기 때문이다.

 

또 불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불교관련 인터넷매체의 언론인들, 그리고 불자지식인들,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 그리고 불교와 인연있는 네티즌들 역시 8.23선언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의사를 표현 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 하다. 그렇다면 그 많은 스님들이나 불교관련 교수, 언론인등이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물나는 보신주의

 

이른바 불교엘리트들이라 불리우는 스님과 교수, 언론인들은 약 200여명 정도 된다고 한다. 실제로 불교tv사이트나 불교방송에 출연한 이들의 면면을 보면 매 번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것을 알 수있는데, 이들을 포함하여 불교계에 알려져 있는 유명인사의 수가 약 200여명 정도라 한다. 이들 200여명의 법문이나 기사, 말한디에 따라 불자들이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여명의 불교엘리트들 역시 8.23선언에 대하여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표시를 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는 8.23선언의 명분이 너무 좋아 대 놓고 반대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고, 또 하나는 보신주의때문일 것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에 대하여 어느 네티즌은 불교관련사이트에 실린 기사의 댓글에서 한국불교의 신물나는 보신주의를 보는 것 같다고 비판 하였다.

 

그런 좋은 예가 지난 9 22일 교구본사주지회의에서 어느 주지스님이 8.23선언에 대하여 불교계의 쾌거라고 일갈한데서 잘 나타난다. 그 주지스님은 사대강사업도 찬성하는등 항상 기득권층의 입장에서 양지만 찾아 다니는 케이스에 해당되는데,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절에서 주지직을 장기로 하고 있다.

 

불교포기선언, 전법포기선언

 

8.23선언이 겉으로 보기에 명분이 있고 당위성이 있어 보이지만 선언문의 내용을 불교는 이웃종교에도 진리가 있음을 인정한다등과 같은 열린진리관으로 인하여 불교이기를 포기하는 불교포기선언과 같고, “전법은 다른 종교인을 개종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등의 전법의 원칙으로 인하여 사실상 전법포기선언과도 같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선언문을 만드는데 있어서 불교학 교수들이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2011 1 27일에 결성된 조계종 화쟁위원회 내부의 기획위에 성태용교수, 박경준교수, 조성택교교수, 이찬수교수(목사)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8.23선언에 대한 최종 초안정리는 조성택교수가 하였다고 한다. 그는 선언이 발표되었을 때 초안에 대한 적극적인 설명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보수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조선일보에 선언의 당위성에 대하여 기고하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한 말 중에 몇 가지를 보면 마치 모의면접을 볼 때  가훈이야기처럼 선언문의 명분과 당위성을 위하여 말바꾸기와 사실왜곡,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예로서 두 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열린진리관에 대한 거짓해명

 

8.23선언문은 열린진리관과 전법의 원칙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열린전리관이 가장 논란이 뜨거운데, 이 열린진리관의 핵심사항은 이웃종교에 대하여 진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리관에 대하여 비판론자들은 불교와 이웃종교의 진리는 같은 것이라거나, 설령 완전히 같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서로 다르지 않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대하여 조성택 교수는 마성스님에 대한 반론글에서 펄쩍 뛰듯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타종교에도 진리가 있음을 인정한다는 것이 어떻게 불교와 타종교의 진리를 동일시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열린 진리관의 핵심내용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선언문 초안에서도다양성은 곧차이를 인정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불교와 타종교의 가르침을동일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조성택교수, 기독교 비판하면서 닮아가자는 건가, 법보신문 2011-09-15)

 

 

  기독교 비판하면서 닮아가자는 건가-조성택.docx  기독교 비판하면서 닮아가자는 건가-조성택.pdf

 

 

 

 

 

 

 

조성택 교수

고려대교수로서 이번 8.23 21세기 아쇼카선언문의 초안작성을 주도 하였다.

사진 ; 뉴스

 

 

 

조교수는 열린진리관의 내용 중에 타종교에도 진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불교와 타종교가 동일한 진리를 가지고 있다라는 주장에 대하여 강하게 부인하며 다양성의 차이임을 강조하고 있다. 과연그럴까. 열린진리관의 주장을 열거 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웃종교는 ‘이웃’에 있는 나 자신의 종교이며, 내 종교를 비추고 있는 거울.
-
나의 종교가 우주 전체를 담고 있듯이 상대의 종교 또한 우주 전체를 담고 있다.
-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 인연의 차이일 뿐.
-
불교는 ‘나만의 진리’를 고집하지 않으며 불교에만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
불교는 이웃종교에도 진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
진리에 대한 표현은 다양할 수 있다.
-
진리란 특정종교나 믿음의 전유물이 아니다.
-
종교가 다른 것은 서로의 진리가 달라서가 아니라 진리를 표현하는 언어와 문법이 다를 뿐이다.

 

 

이 것이 8.23선언에 실려 있는 열린진리관에 대한 핵심내용이다. 결국 같은 진리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불교와 타종교의 진리를 동일시 하는 것이며, 최소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교수는 펄쩍 뛰듯이 다양성 운운하며 부인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조성택 교수와 함께 대중공사 토론회에 참여 하였던 미디어 붓다의 이학종기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이 작성한 기사에서 말하였다.

 

 

이제 이에 대한 판단은 불자와 독자들의 몫이다. 기자가 오독을 한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파악을 한 것인지. 주장이 강하면 불교근본주의자가 되는 형편이니 더 강하게 주장하기가 꺼려진다. 이런 선언이 채택될 경우 포교일선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을 스님들이 놀랍게도 침묵하고 있는데 굳이 나댈 것도 없다는 생각도 솔직히 뇌리 한 켠에서 밀려온다.

 

(이학종기자, [이학종 칼럼] ‘아쇼카 선언 토론회참석했지만…, 미디어붓다 2011-09-21)

 

  이학종 칼럼- ‘아쇼카 선언 토론회’ 참석.docx  이학종 칼럼- ‘아쇼카 선언 토론회’ 참석.pdf

 

 

 

이학종 기자는 위의 열린진리관에 대한 조성택교수의 다양성운운하는 주장에 대하여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 두고 있다.

 

비판하면 불교근본주의자라니!

 

이학종기자는 열린진리관에 대한 의문제기를 하면 할 수록 불교근본주의자를 내 모는 현실에 대하여 통탄하고 있다. 실제로 조성택 교수는 다음과 같이 글을 썼다.

 

 

이러한 비판이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입에서 나온 비판이라면 그러려니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불교인의 입에서 나온 비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기독교의 교리를창조설하나로 수렴하는 해석도 문제이거니와창조설에 관한 신학적 해석에도 다양한 층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내 종교의 언어로 다른 종교를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은 극히 조심해야 할 일이다. 만약 다른 종교인이 불교를 윤회설 하나로 일관하여 판단한다면 이는 온당한 불교이해라고 할 수 없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편불변고정무상절대 융섭할 수 없는 괴리라고 하는 주장에는 아연해진다.

 

(조성택교수, 기독교 비판하면서 닮아가자는 건가, 법보신문 2011-09-15)

 

 

타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는 것을 비판하면 불교근본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마치 기독교근본주의자처럼 싸움이나 걸고 논쟁이나 일삼는 전투적 집단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내 종교의 언어로 다른 종교를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은 극히 조심해야 할 일이다.”라고 충고 하고 있다.

 

이런 논리에 따른다면 유일신교의 창조론을 비판하면 열린진리관의 정신에 어긋나게 될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연기법에 따르면 창조론으로 대표되는 유일신교의 교리는 상견, 영속론, 불멸론과 같은 삿된 견해에 해당하지만, 8.23선언의 열린진리관에 따르면 절대 비판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상대방의 종교를 이해하고 품을 수 있어야 하고 심지어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종교평화선언이라는 거창한 명분 앞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는 것도 이제 눈치보이게 되었다. 더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면 충실할 수록 기독교 근본주의자처럼 싸움하기 좋아하는 불교근본주의자로 내 몰리는 것이다.

 

있지도 않은 전법의 목적을 가정해 놓고

 

종교평화선언의 명분에 걸리는 것은 모조리 비판대상이다. 전법의 원칙도 마찬가지이다. 종교평화선언을 한 마당에 타종교인을 전법한다는 것은 범죄행위와도 같다. 그래서 전법은 다른 종교인을 개종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전법은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을 실현하는데 그 궁극적 목적이 있다라는 명분을 들고 나왔는데, 이에 대하여 전법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하자 조성택 교수는 다음과 같이 내친다.

 

 

“전법은 다른 종교인을 개종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을 실현하는데 그 궁극적 목적이 있다. 나의 종교를 선전하기 위해 타종교를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와의 공존을 지향하고 다른 종교인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법이어야 할 것이다.

 

(조성택교수, 기독교 비판하면서 닮아가자는 건가, 법보신문 2011-09-15)

 

 

전법은 다른 종교인을 개종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보기에는 매우 그럴듯하고 선언문의 명분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문장은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토론에 참여 하였던 이학종 기자는 이 주장은 있지도 않은 전제를 해놓고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간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세상에 상대를 비방해서 개종시키려는 것이 전법의 목적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이처럼 있지도 않은 사실을 전제하여 무리한 주장을 하는 것은 모두 8.23선언의 명분 때문이다. 이와 같은 허구적 전법의 목적으로 인하여 타종교를 비방하거나, 다른 종교와의 공존을 거부하고, 다른 종교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불자들은 졸지에 배타주의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패배주의자라는 딱지를 하나 더 붙여주고

 

이처럼 있지도 않은 전법의 목적을 가정해 놓고 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 하는 불자들에게 근본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여 주면서 다시 한 번 다음과 같이 내치고 있다.

 

 

기독교가 그러니 우리 또한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야 말로 패배주의자의 넋두리일 것이다. 민족불교를 얘기하고 한반도에서 17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불교가 먼저 올바른 포교의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 왜 문제인지 궁금하다. 이 또한싸우면서 닮아가는또 다른 모습일까 걱정스럽다.

 

(조성택교수, 기독교 비판하면서 닮아가자는 건가, 법보신문 2011-09-15)

 

 

열린진리관이나 전법의 원칙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는 불자들에게 불교근본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여 주는 것도 부족해서일까 이제 아예 패배주의자라는 딱지를 하나 더 붙여 준다. 그러면서 기독교근본주의자들의 전투적 이미지를 상기시면서 싸우면서 닮아가는듯한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거짓말 대행진

 

한 가지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 열 가지 거짓말을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한 두 가지 거짓말만 준비하였을 때 금새 들통이 나고 말것이기 때문이다.

 

면접에서 가훈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없으면 없다고 하는 것이 정답이다. 하지만 좀 더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하여 가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있다라고 말하였을 때, 면접관은 가훈의 내용이 무엇입니까식으로 연속하여 질문할 것이다. 이럴 때 가훈이 있다고 거짓말 한 사람은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하여 한 번 더 거짓말을 할 것이다. 그런데 면접관이 누가 만들었습니까라고 질문하였다면 어떻게 될까. 이번에도 역시 머리를 굴려 누가 만들었다고 적당히 둘러 댈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면접관이 그 가훈이 나오게 된 유래와 배경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거기에서 부터 말문이 막혀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면접관이 거듭질문하였을 때 거짓말을 하면 얼마 못가 들통나게 되어 있다.

 

회사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거짓말을 하는 직원을 원치않을 것이다. 면접에서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하여 거짓말로 일관한 후 입사하게 되었을 때 조직과 회사에 어떤 피해를 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면접에서 모르면 모른다고 답하는 것이 정답이다.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은 정직한 사람을 바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8.23 아쇼카선언의 내용을 보면 종교평화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린진리관전법의 원칙을 보면 타협양보로 일관하고 있고, 심지어 부처님의 가르침에 반하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하여 거짓해명을 하거나 있지도 않은 전제를 가정해 놓고 논리를 펴고 있다. 더구나 이를 지적하는 사람들에 대하여불교근본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는가 하면 그것도 모자라 패배주의자라고 비아냥대고 있다.

 

한 번 거짓말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고 나면 그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런 거짓말 대행진을 이번 8.23 아쇼카선언과 그에 따른 해명에서 보는것 같다.

 

 

 

 

2011-10-01

진흙속의연꽃

 

 

 

 

이학종 칼럼- ‘아쇼카 선언 토론회’ 참석.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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