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위경(僞經, Apocrypha)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1. 11. 14. 15:59

 

 

위경(僞經, Apocrypha)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불교TV사이트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발견하였다. 어떻게 하면 기도를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내용인데, 천수경의 예를 들어 설명한 강의이었다. 그런 천수경은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고 우리나나에서 만들어진 경전인줄 알았는데 강사스님이 소개한 프리젠테이션 자료에 따르면 근거가 되는 경전이 있었다.

 

그 경전 이름은 간단히 대비심다라니경이라 하고, 길게 말하면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경이라 한다. 그런데 이 경에 대한 고려대장경의 목록을 보니 경의 이름 앞에 불설이 붙여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佛說千手千眼觀世音菩薩廣大圓滿無 大悲心陀羅尼經)’이라는 매우 긴 이름을 가진 경임을 알 수 있었다.

 

 

 

 

 

 

 

 

사진 :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고려대장경

 

 

 

고려대장경 사이트에 소개된 대비심다라니경에 대한 소개를 보면, 이 경은 당나라시대  가범달마(伽梵達摩) 650년에서 660년사이에 번역한 것으로 되어 있다.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의 다라니를 설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이 경전은 모든 경전이 그렇듯이 여시아문으로 부터 시작된다.  서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내가 듣사오니, 한 때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타낙가산 관세음보살 궁전에 보배로 장엄된 도량 가운데 계시사 보배사자 자리에 앉으셨다. 그 자리는 순전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잡마니(雜摩尼:여러가지 구슬)보배로 장엄되었고 백가지 보배 당번(幢幡)으로 두루 진열되었다.
이때에 세존께서 저 사자자리 위에서 장차 총지(總持)다라니를 연설하고자 하는 까닭에 무량 무수한 큰 보살과 함께 계셨으니 그 이름은 총지왕보살, 보왕보살, 화엄보살, 대장엄보살, 보장보살, 덕장보살, 금강장보살, 허공장보살, 미륵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 등 이와 같은 큰 보살은 다 관정대법왕자(灌頂大法王子)라 또 무량무수한 대성문승(大聲聞僧)과 함께 계셨으니 다 큰 아라한이라 위계십지(위계십지:아라한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인 우루빈나 가섭이 상수(上首:한 단체의 대표자)가 되었으며, 또 무량한 범마라천과 함께 계셨으니 선탁범마가 상수가 되었으며, 또 욕계 모든 천자(天子)와 함께 계셨으니 구파가 천자가 상수가 되었으며, 또 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과 함께 계셨으니 제두뇌타가 상수가 되었으며, 또 무량한 천용(天龍) 야차(夜叉) 건달바(乾 婆) 아수라(阿修羅) 가루라(迦樓羅) 긴나라(緊那羅) 마후라가(摩喉羅伽) 인비인(人非人) 등과 함께 계셨으니 천덕대용왕(天德大龍王)이 상수가 되었으며, 또 무량한 요계 모든 천여(天女)와 함께 계셨으니 동목천여가 상수가 되었으며 또 무량한 허공신(虛空神) 강신(江神) 해신(海神) 천원신(泉源神) 하소신(河沼神) 약초신(藥草神) 수림신(樹林神) 사택신(舍宅神) 수신(水神) 화신(火神) 지신(地神) 풍신(風神) 토신(土神) 산신(山神) 석신(石神) 궁전 등신(宮殿,等神)과 함께 이 법회에 모였다.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佛說千手千眼觀世音菩薩廣大圓滿無 大悲心陀羅尼經)

 

 

이 경의 서문을 보면 부처님이 설하신것으로 되어 있다. 부처님이 설하신 내용을 아난다 존자가 전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초기경전에서 볼 수 없는 내용인  관세음보살등 각종 보살이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에 대한 산스크트어 원전은 아직 보지 못하였다. 범어 원전이 없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만들어진 경을 보통 위경(僞經)’이라 한다.

 

버스웰교수의 강의에서 

 

어는 교수는 대승경전을 2000년 동안 만들지 못한 것을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하고 참회해야 한다고 말 하였다. 이 말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대승경전은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는 뜻과 같다. 그런 대승경전은 보통 불설(佛說)’로 불리운다.

 

위경은 깨달은 자의 입장에서 찬술된 경전이다. 그래서 경의 이름 앞에 불설이 붙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런 위경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불교TV사이트에서 버스웰 교수의 강의(원효의 화쟁사상, 아시아에서 한국불교의 세계화 제16, 17) 를 참고 하였다.

 

사람이 만든 경전

 

위경(僞經, Apocrypha,  Indigenous sutras)은 문자 그대로 풀면 사람이 만든 경전이다. ‘가짜로 만들어진 경전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직접 담은 것이 아닌, 후대에 부처님의 말씀이라 칭하면서 만들어진 경이라는 뜻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인도로 부터 들어온 불교전통을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민중들의 관심과 이익에 맞도록 재해석하고 창조하는 작업을 많이 해 왔다. 그럼으로써 동아시아에는 인도불교에 기원을 두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특별한 종파가 많이 탄생하였다. 화엄종파가 대표적인 예이다.

 

인도문헌이 동아시아적으로 응용된 다른 예는 새로운 경전의 제작이다. 서구에서는 이를 위경이라 한다. 위경은 인도불교가 동아시아에서 어떻게 독특하게 적용되었나를 담고 있다.

 

대승불교의 경전은 모두 위경

 

위경은 동아시아 전역에서 만들어진다. 대다수의 불교경전이 사실 엄밀히 따지면 위경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어느 것이 부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는 증거는 많지 않다.

 

서구에서는 주류불교,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소승불교라고 하는데, 이 전통에서 내려오는 경전(빠알리삼장)이 있다. 이 전통이 실제 인도의 주류불교이었다. 이 경전들은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수 세기가 지나서 기록된 것이다. 그래서 기원지에서 나온 경전이라고 하더라도 부처님이 직접쓰신 것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라 한다.

 

대승불교 경전은 역사적으로 부처님 열반후 5~600년 이상 세월이 흐른 뒤에 제작된 것이라는 역사적, 문헌적 증거가 많이 있다. 따라서 대승불교의 경전은 모두 위경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진경일 수도 있고 위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원효에게 중요했던, 그리고 위경의 문제와 관련이 깊은 경전이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Vajrasamadhi sutra)’이다. 이 경에 대해서 말하기 앞서 먼저 위경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기독교에서 위경의 의미는

 

위경이라는 단어가 불교에 적용하는데 있어서 적합한 것인지에 대해 아직도 논란이 많다고 한다. 위경은 영어로 ‘Apocrypha’라 하는데, 이는 그리스어로 숨겨진혹은 비밀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위경은 처음에는 비밀로 숨겨져 있다가 나중에 드러나서 특정종교의 일부로 흡수된 글을 뜻한다.

 

기독교의 바이블에는 구약과 신약이 있고 나중에 바이블에 나타나는 글들이 있다. 이를 통칭하여 위경, 경외 바이블이라고 한다. 위경은 바이블은 아니지만, 바이블에서 인정받은 글들의 모음이라는 뜻이다. 유태교와 기독교 전통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위경의 긍정적 측면

 

위경이 무엇인지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한 가지 관점은 긍정하고 칭찬하는 측면(Laudatory signification)이다.

 

위경이 처음부터 바이블과 함께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가 이 글들이 너무나 심오하고 신성하여 대중에게 그대로 공개될 수 없기에 비밀스럽게 밀교적인 방법으로 전해졌다고 보는 견해이다.

 

구약바이블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바이블 못지않은 심오한 뜻이 담겼고, 너무나 심오해서 바이블의 다른 부분과 함께 공개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위경을 긍정적으로 보고 칭찬하는 관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바이블 그 자체 보다 더 심오해서 위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위경의 부정적 측면

 

한편, 위경을 부정적으로도 보는데, 이는 훈계하고 경계하는 관점(admonitory sense)이라고 보면 된다. , 대중에게 전달할 만한 내용이 아니고, 그 내용이 의심스럽고, 부차적이기 때문에 공개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위경이 바이블과 별개로 모아져 구분된 것은 그 내용이 수상쩍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단으로 보는 견해

 

세 번째로 오늘날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관점인데, 위경을 진실하지 않은 이단(false heretical)’으로 보는 것이다. 중국의 위경이라는 말은 이 의미에 가깝다. 위경은 지어낸, 구성된 경전이라는 뜻이다.

 

위경에 대한 유태교와 기독교의 입장은

 

유태-기독교적 맥락에서 위경의 뜻은 명백하다. 성스러우나 어떤 이유로든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글이다. 너무 심오하여 이해가 불가능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비 입회자에 의해 곡해의 요지가 커서 그랬던지, 내용이 이교도적이거나 의심스러워서 유통이 안되었던 간에 주류인 바이블과 따로 분리되어 전해 내려오게 된다.

 

유태-기독교적 맥락에서는 쉬운 문제이다. 이미 신의 진실한 말씀이라고 공인받은 구체적인 책인 바이블이 있기 때문이다. 바이블이 있고, 그 외 나머지는 긍정적인 관점이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모두 따로 분리하여 위경, 경외 바이블이라고 부르고 있다. 따라서 유대-기독교 전통에서는 이를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보느냐의 문제만 남는다.

 

일반적으로 유태교 전통에서는 위경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진실한 신의 말씀이지만 너무 심오하여 공개되지 않는 것이다. 반면, 기독교 전통에서는 이단이고 성서적이 아닌 것으로, 이교도적인 것으로 받아 들인다.

 

바이블과 불경은 어떻게 다른가

 

그런데 문제는 이 개념을 불교에 적용할 때 생긴다. 바이블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는 성전이 불교에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대장경이나 삼장이라고 하는 불교의 주류경전이 있기는 하나 이것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열려있는 목록(open canon)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반하여 바이블은 딱 하나의 책이다. 바이블은 바이블인 것이다. 앞으로 더 추가 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바이블은 공인된 신의 말씀 그 자체라 본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밖의 것은 모두 위경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불교는 이와 다르다. 대장경은 불법(佛法)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책들이다. 부처님은 신이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재발견 된 것으로 까마득한 과거에서 전해져 와서 앞으로 먼 미래에도 여전히 영험할 그런 가르침이다. , 부처님은 이 진리를 재발견한 여러 영적인 존재 중 하나로, 이를 세상에 재차 알리고 가르쳐주신 분이다.

 

불설(佛說, buddhavacana)이란

 

불교는 부처라는 한 사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부처가 세상에 보여준 영원하고 근본적인 진리에 대한 종교이다. 다시 말해서 불교는 부처가 아니라 부처가 재발견한 가르침, 담마(다르마), 즉 불법에 대한 종교이다. 부처는 그 불법을 드러나게 한 존재인 것이다.

 

불교는 유일신의 말씀만 진실이고 나머지는 다 진실이 아니라고 하는 유태-기독교 전통과는 달리, 부처님의 말씀은 부처가 불법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한 진리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불법을 이해한 이들은 모두 부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부처의 말씀, 불설(佛說, word of the Buddha, buddhavacana)’이라고 한다. 따라서 지혜가 생겨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면, 불법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법을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부처님이 이야기하신 것이 불법이기에 그 사람도 부처님의 말을 전할 수 있게 된다.

 

많은 불교경전들이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을 잇는 공식을 제시한다. “누구든 연기를 이해한 사람은 불법을 이해한 것이다.” 라든가 불법을 이해한 사람은 부처를 본 것이다.” 와 같은 말은 연기를 잘 알면 불법을 이해한 것이고, 부처를 대표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빠알리 니까야의 경우

 

주류경전인 아함경(아가마)’이나 빠알리 니까야를 보면 모두 초기 경전을 모아 놓은 경전집이다. 이 경전집에 포함된 많은 경전이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 부처님의 수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 게송을 읊으시고 저녁에 들어가시면 그 뜻을 이해 못한 스님들이 선배 스님들께 여쭙고, 그러면 선배스님들이 후배들에게 게송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식이다.

 

대장경의 경우

 

대장경 안에 경장으로 분류가 되어 있지만 사실 이는 모두 부처님의 글이 아니다. 모두 제자들에 의한 글이다. 그러나 진경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는 이 제자들이 모두 깨달음을 얻었고, 불교전반에 걸쳐 모두 적용되는 핵심 가르침을 이해했기 때문에 부처님을 대신해서 불법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신이 직접 이야기한 가르침만이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대-기독교 전통과 다른 것이다. 신의 목소리가 아니면 다 외경으로 분류되지만 불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이는 누구나 불법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본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불교에서 장경은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부처님이 생전에 가르친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모은 결집을 통해 전해오게 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후, “부처님이 돌아가셨네. 이제 우리 맘대로 해도 되겠구나!”이 같은 말을 하는 비구들이 있었다. 그래서 종단의 어른 즉, 장로비구들이 다 같이 모여서 부처님이 남기신 다양한 가르침 중에서 어떤 것을 경전으로 넣을지 어떤 것은 뺄지에 대하여 결정하기로 한다. 그래서 부처님의 제자들 중 아라한과를 이룬 분들 중심으로 결집을 한다.

 

부처님의 제자 중 전직 이발사이었던 우빨리가 율장, 승단의 계율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을 읊고, 부처님을 평생 시중들었던 부처님의 사촌 아난다는 경장을 읊는다. 장로들은 이를 듣고 이 두 사람이 말한 내용이 진실로 부처님의 말씀임을 확인하고 장경의 일부로 선포한다. 그런데 이런 암송을 글로 옮긴 것은 아니었다.

 

인도에서는 최근까지도 구전의 전통이 매우 강했다. 기록되기 보다는 기억해서 암송함으로서 구전으로 세대간에 전수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우빨리가 승단의 계율에 대한 율장을 읊고, 아난다가 부처님의 설법을 옮긴 경장을 읊는 것은 머리로 외워서 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 내용이 궁극적으로 글로 옮겨진후 그것을 읽다보면, 가끔 그 문체가 지루하고 일정한 틀이 반복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류경전은 구전(口傳)이었다

 

암송할 때 기억이 쉽도록 하기 위한 장치들이 있게 하다 보니 경전은 대게 유사한 패턴으로 시작된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 언제, 어느 곳, 어디 절에 계셨는데 그 곳에 몇 명의 스님들과 대중들이 있었고, 누군가 질문하여 그의 가르침이 시작되어 이 경을 설하게 되었다라는 식이다.

 

경전은 이런 공식을 통해 구전되었고, 암송이 쉽도록 하다 보니 반복적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니까야나 아함경같은 주류경전을 보면 매우 반복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런 식이다. 부처님이 말한다. 사람은 오온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온이 무엇인가? 오온 중 첫 번째는 무엇이고, 오온 중 두 번째는 무엇이고, 오온 중 세 번째는 무엇이다...등 이렇게 계속 반복된다. 이는 모두 쉽게 외우도록 돕기 위해서이었다. 이처럼 원래 모든 경전은 구전을 통해 내려왔다.

 

대승경전은 글로서

 

하지만 불교가 동아시아로 유입될 때쯤 즉, 인도에서 불교가 시작된 후 500~600년 정도 지난후에 구전으로 전해진 가르침을 글로 적기 시작한다. 말과 글, 두 가지 방식으로 모두 전승되었는데 대승경전은 처음부터 말보다는 글로서 전승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른 초기경전에 비해서 반복정도가 덜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승경전은 초기불교의 아함경보다 그 분량이 훨씬 방대하여 구전이 어려웠을 것이다. 아함경에 포함된 경전중에서 가장 긴 경이 대승경전의 금강경보다 짧기 때문이라 한다. 금강경은 대승반야부 경전중 그렇게 긴 경전이 아니어서 짧은 축에 들어간다고 한다. 대승경전들은 대부분 내용이 엄청 길고 방대하다. 그래서 글로 전승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인들은 인도에 비해 글을 훨씬 높게 평가 하였다. 반면에 인도는 구전을 더 높게 평가하였다. 중국은 글을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인도는 구전, 중국은 글

 

초기인도에서 모든 종교적 가르침은 구전으로 전해졌는데, 이는 모든 가르침은 천계의 예언자들에 의해 듣고 전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도 아리안 전통의 핵심인 베다는 오늘날까지도 구전으로 전해 온다. 모든 인도 전통종교는 구전으로 전해져 왔다.

 

그에 반해,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정교한 문자체계가 발달하였고, 글이 말보다 훨씬 더 높이 평가 되었다. 그래서 글이 가르침을 구현하는데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된 것이다.

 

불교경전 목록을 만든 이유

 

동아시아에서는 구전이나 글을 통해 외부로부터 들어온 가르침을 어떤 것이 진실된 글이고 어떤 것이 아닌지를 분류하고 판단하는 기준을 마련하게 된다. 중국은 또한 참고문헌을 자세히 기록하는 전통이 있어 문헌을 정리하는데 익숙하였기 때문에 어떤 글들을 진경으로 넣고 뺄지 분류하는 작업을 하였고, 종종 그 결정을 국가에서 하였다. 이런 경우 정치적 견해가 포함될 수 밖에 없다. 국가가 진경여부를 결정하는 최종 결정권자 이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이 작업 덕에 불교경전의 목록이 형성되기 시작 하였다. 목록안에는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 진위여부가 의심스러운 글, 확실한 위경, 특정장소에서만 유통되고 다른 곳에서는 전해지지 않는 글등, 다양한 분류를 정해 상세히 정리하였다.

 

중국에서 경전목록이 가장 처음 만들어진 것은 4세기경인 370년쯤인데,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지 200~300년 밖에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이 목록에는 중국의 한 지역에서만 유통되는 경들을 따로 모이 만든 별도의 목록이 포함되어 있다. 특정지역 바깥으로 전파되지 못한 경전이니 그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위경이라 단정지어 빼버리지 않고, 따로 분류해 두었다.

 

산스크리트어 원전이 있을 때

 

동아시아인들은 전수되는 경전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늘 노력했고, 이를 위해 문헌이 진경인지, 아닌지 여부를 가려내고자 하였다. 불교처럼 외래종교의 경우 특히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의심을 사서 전부 가짜, 중국 것이 아닌 외국에서 들어온 수상한 것, 부처님의 진실한 말이 아닌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은 일찍부터 진경과 위경, 진위여부가 의심스러운 경을 조심스럽게 분류하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그러면 진경의 판단 기준을 어떻게 잡았을까?

 

불교처럼 동아시아 토착전통이 아닌 밖에서 들어온 종교에 있어 첫 번째로 그 기준은 해당 경전이 인도나 중앙아시아에 기원을 둔 원전이 있나 여부이다. 원전이라 함은 구전된 내용이나 글로 적힌 것을 모두 의미한다. 산스크리트어나 프라크리트어로 된 원존이 있으면 그 글은 의심의 여지없이 진경으로 인정된다. 외국에서 온 것이다. 이런 것들은 쉽다. 산스크리트어 원전이 있으면 바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전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

 

위경 구분 방법

 

번역을 보고 사용된 언어나 문체가 진경이라고 인정한 것들과 비슷한지, 아닌지를 보고 결정하였다. 이러한 글과 진경이라고 인정한 것들을 나란히 두고, 어떻게 문장들이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어떤 문체로 쓰여졌는지를 세심하게 비교하여 진위 여부를 결정하였다. 예를 들어 어느 장경목록 작성자는 진경은 글이 일관성이 있고 내용이 심오하고 광범위하나, 위경이 의심되는 경전의 언어와 구조는 뜻이 얕으며 겉으로만 그럴싸하다고 했다.

 

진경은 심오한 부처님의 말씀이다. 뜻이 얕고 피상적이면 과연 진경인가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그것만으로 반드시 위경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지만 목록 작성자가 그런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번역된 글에서 인도에는 없는 동아시아 특유의 요소가 발견된다면 역시 의심을 받게 된다. 예를 든다면, 동아시아의 음양 우주론이 나오면 이것이 과연 인도원전을 번역한 것이 맞나 의심을 사게 된다.

 

토착신이나 신령에 대해서 가르치면 역시 의심을 산다. 민속의식 혹은 전통을 언급된다면, 그것도 역시 인도원전을 번역한 것이 아닌, 동아시아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적 요소의 개입에 따라

 

정치적 요소가 개입하여 경을 분류하는 엄격한 기준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중국 황제의 조정이 궁극적으로 어떤 문헌이 진경인지에 대해 최종 결정권을 가지면서, 중국의 정치체제를 규정하는 유교 전통의 틀 내에서 이를 결정하였다. 엄중하게 선별된 장경목록은 질서있는 사회와 효율적인 정부의 기반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결국 경의 분류에서 불가피하게 진경여부에 대한 정치적인 입장이 반영이 되었다. 이런 예가 여럿 있다고 한다. 진경이라고 분류되었던 경이 시대가 바뀌면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위경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삼계교(三階敎)의 경우

 

예를 들어 중국에 삼계교(三階敎)’라는 종파가 있었다. 세 개의 단계로 이루어진 종교라는 뜻이다. 당나라시대 종파이다. 진경이라고 인정받은 번역된 경전을 기초로 한 불교 종파이다. 초기에 작성된 목록에서 모두 진경이라고 인정받은 책들이다. 문제는 3단계이었다.

 

여기서 3단계는 불교의 몰락과 붕괴의 과정을 일컫는다. 이에 따르면, 불교는 정법시대로 출발한다. 진정한 불법이 들어와서 모든 이가 수행을 성실히 할 것이다. 정법시대는 외형적인 형상만 남아있는 상법시대로 옮아 간다. 겉으로는 사람들이 수행도 형식을 지켜지지만 수행이 별로 성과가 없게 된다. 그러다가 불법이 기울어지는 시기인 말세가 온다. 말법시대이다. 불교가 너무 타락하여 불가피하게 완전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시대이다.

 

삼계교의 경전은 불교가 말법시대에 도달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정통교리와 정통종파는 타락하여 제 기능을 못할 뿐 더러, 이 같은 말법시대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관은 정부도 함께 타락시킨다고 하였다. 그래서 말세에는 정치와 종교 둘 다 심각하게 타락하여 신뢰를 잃을 것이라 하였다.

 

타락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황실에서 당연히 유쾌해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이상 백성에게 도움이 안된다고 하니, 황실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중국황실에서는  이 종파를 공식적으로 금하여 멸종시켜 버렸다. 그러는 과정에서 삼계교의 소의 경전들을 모두 거짓과 위선의 경전으로 분류시켰다. 그래서 한 때 진경으로 분류되었던 경전이 그 후 황실에 의해 위경으로 분류되었다.

 

도교나 유교의 주기적 불교비판으로 인하여

 

이러한 사실은 동아시아에서 꽤 자주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또한 불교의 라이벌 종교이었던 도교나 유교가 주기적으로 불교를 비판하여, 이들 사이에 종교적 격론이 이루어지곤 하였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당시 당나라 불교신자들은 진경으로 판단하였던 경들이 진경으로 끝까지 남을 수 있도록 하는데 힘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목록편찬자들은 경이 누가, 언제, 어디서 번역이 되었는지 알 수 없을 때 꽤 긴장을 하게 되었다. 많은 경전들에 이런 정보가 있었다.

 

구마라집, 현장법사 등이 장안에 세운 대규모 역경원의 번역들은 이 경은 현장법사의 그 팀이 몇 년에 어디서 번역하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경전들이 언제 번역되었는지가 분명하고 따라서 산스크리트어 원전이 있었고, 누가, 어디서, 언제 중국어로 번역되었는지도 분명하다. 이런 경전들은 전혀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렇게 근거가 분명하게 붙어있지 않은 다른 수 많은 경전들이 있다는 것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번역하였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도움도 안 되게 무명(無名,anonym)’,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역자라고 적은 것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전들이 편찬자들에게는 고심거리이었다.

 

무명(無名,anonym)작가의 경우

 

번역자가 알려져 않는 경전들은 위경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 쉬웠고, 실제로 타종교에 의해 가짜라고 공격당했다고 한다.그들은 수 많은 경전들이 종교의 창시자가 썼는지 여부조차 증명할 수 없는데 불교가 과연 신뢰할 만한 종교인가하고 공격하였다고 한다.

 

이런 종교적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목록편찬자들은 글의 문체, 단어, 내용을 보고, 누가 번역했는지를 짐작하여 무명의 글들을 한꺼번에 제목을 바꾸어버렸다고 한다. 예를 들어 무명 번역자의 글이 있는데, 구마라집의 글과 비슷하면 번역자로 구마라집, 도안 같은면 도안의 이름을 써 넣는 형식으로 하였다는 것이다.

 

수 백권의 경전들이 구마라집의 번역자로 표기 되었지만, 구마라집은 그 경전들에 대한 번역은 고사하고 경전들을 보지도 못 하였을 것이라 한다. 이는 후대의 목록 작성자들이 한 일이다. 특히 중국의 한 목록 편찬자는 도교가 이런 경전의 신뢰성에 문제를 들어 불교를 강력하고 공개적으로 공격하던 시기에 역자명이 없는 모든 경전에 역자들을 모두 채워 넣음으로서 이를 하였다고 한다.

 

일단 구마라집에 의한 번역이라고 역자의 이름이 목록에 등재되자 후세의 목록편찬자들은 이를 계속해서 따랐다. 일단 번역자 이름이 주어지자 이것이 후대에 반복되면서 굳어지게 된다.

 

무명의 역자들에 의해 번역된 많은 경전들이 사실 인도에서 중국으로 들여와 중국어로 번역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동아시아에서 만들어진 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진경으로 인정받게 되는데 초기 목록 편찬자들에 의해 역자명이 주어짐으로서 가능해진 것이라 한다.

 

위경을 창작할 경우

 

동아시아의 중국, 한국, 일본인 모두는 마음에 크게 와 닿는 책이 있으면 그것들을 널리 퍼뜨리는 방법의 하나로 타종교인이 보더라도 진경처럼 보이는 형태로 재구성하였다. , 많은 경전들이 사실은 진경을 모델로 하여 중국어로, 한국어로 새롭게 쓰여진 것이라 한다. 새로 쓴 글이 진경으로 받아들여지게끔 하는 여러 방법이 있었다.

 

반복문을 넣는다

 

첫 번째로 글의 문체를 진경과 동일하게 가지고 가는 것이다. 불교경전은 원래 구전으로 전승되었기 때문에 그 형식이 매우 반복적이다. 이런 반복은 암기를 쉽게 하기 위한 장치이다. 새로 경전을 쓴다고 하면 굳이 반복적일 필요는 없지만, 반복이라는 장치를 사용하면 구전된 진경이 번역된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자주 사용된 방법이다.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다. 번역문 혹은 새 글들은 이런 패턴을 따랐다.

 

음사한 용어를 사용한다

 

인도로부터 온 경전은 물론 산스크리트어로 쓰여 있고, 전문적인 용어가 많았는데, 용어가 너무 신성하거나 한 단어가 여러 뜻을 갖는 다의어 등 번역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번역 대신 음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번역과 음사는 서로 다른 별개의 방식이다. 영어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보디의 경우, 이제는 영어단어로 영어사전에 올라가 있지만, 영어가 아니라 산스크리트어에서 나왔다. ‘bodhi’라고 로마자로 전사하거나 아니면 번역하여 깨달음(enlightment)이라고 한다. 같은 뜻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보리()’은 같은 뜻이다. 각각 번역과 음사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너무 중요하여 번역되지 않는 단어들이 많았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그 예이다. 중국어로 길게 적혀있는데, 중요하다 여겨져 음사된 것이다.

 

삼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삼마디에서 나온 것이다. 역시 번역이 아닌 전사이다. 동아시아에서 새롭게 글을 쓸 때, 토착 언어 대신 이런 용어들을 음사하여 씀으로서 진경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또한 인도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들도 많이 사용하였다.

 

인도인 군중을 등장시킨다

 

경전들은 인도에서 왔고, 원래 인도의 특정장소에서 인도어로 인도인을 상대로 설해졌을 것이다. 진경은 예를 들면 영축산에서 부처님이 계실 때등으로 시작한다. 그 자리에는 여러 보살들이 있었는데 관세음보살, 보현보살, 사리자 같은 아라한 있었다등이다.

 

인도전통에서 잘 알려진 인물들이다. 따라서 중국에서 새로운 경전을 쓸 때도 인도인들을 군중으로 등장시킨다. 중국인들을 넣는 것이 아니라 인도인을 넣는 것이다. , 진경이 번역된 것이라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새 경전 집필자는 되도록 진경과 구분이 되지 않도록 쓰는 것이다. 자칫 속임수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부처님께 영광을

 

인도의 현자나 부처님의 글로 헌정하는 것은 글의 명성과 위상을 높이는 당시 보편적인 문학적 장치이었다. 부처님의 이름을 사칭하는 속임수라기 보다 우리가 존경하는 종교적 인물에 대한 찬사와 영광을 담아내는 형식으로 본다는 것이다.

 

대승불교 전반에 걸쳐 유사점을 찾을 수 있는데, 경전의 문헌학적 분석이나 역사적 증거로 볼 때 대부분의 대승경전들은 부처님 사후 몇 백년, 심지어 천년이 지나 쓰여 졌다.

 

이들은 모두 부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고 인도의 특정장소와 특정 인도 인물들을 상대로 옛 경전의 언어와 문체로 쓰여 졌다. 대승전통에서는 이러한 장치를 이용하여 부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다.

 

불교도입 초기부터 위경을

 

동아시아에서도 위경을 이야기할 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한편으로 위경은 확실히 허위의 위경이다. 진실이 아닌 것이다. 중국의 용어 위경의 원래 의미이다. 사람이 만든 것, 가짜란 뜻이다.

 

다른 한편으로 인도나 중앙아시아 경전의 모델을 따랐지만, 동아시아 문화속에서 새롭게 탄생한 다양한 종류의 글을 뜻하는 것이다. 인도를 생각나게 하는 여러 보조 장치들은 글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역할을 하는 것이고, 이런 종류의 글들은 불교가 동아시아에 전파된 아주 초기부터 쓰여 졌다고 한다.

 

나중에 등장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불교 태동기부터 있어온 것이다. 이는 불교를 대중화하기 위한 시도의 일부로서 번역된 경전보다 중국인들에세 더욱 친근한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인들의 기호에 맞도록

 

번역된 인도경전을 보면 특히 초기경전은 구전된 것이다. 번역된 것을 보면 지루하고 읽기가 힘들다. 곧 재미가 없어진다. 흥미를 잃는 중국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인도 경전들이 번역되었어도 중국인들에게 낯설었을 것이다. 번역문의 질도 중국 원어민 글보다 떨어졌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 서구어로 번역된 불교 서적에서 똑 같은 현상이 목격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영어로 된 번역이 전혀 말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든지,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모를 때가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번역이 잘 안된 것이다. 당시 중국에서도 조악한 번역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잘된 번역도 중국인들에게 어떤 의미에서 여전히 낯설었고 원어민이 쓴 글처럼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통찰을 대중에게 널리 퍼뜨리고 보다 쉽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 새로운 글이 쓰여 졌을 것이다.

 

토착불교의 정당화를 위하여

 

이런 글들이 쓰여 진 또 다른 이유는 동아시아인들이 인도에서 전파된 경전을 보았을 때, 그 경전에 무언가 빠진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인들에게 중요한 것이 빠진 것이다. 이런 경전들은 동아시아인들의 고유한 종교적 관심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자신들의 종교적 동기, 관심, 선호를 진경이란 형식으로 표현하여 다른 불교도에게도 인정받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에서는 불교와 관련된 구세주 신앙을 믿는 집단이 여럿 있었다. 이런 종파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정당화할 경전이 없었다. 이를 위해 새로운 경전을 쓰기도 하였다. 동아시아에서 발흥한 이 새로운 신앙이 사실은 정통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원효스님의 경우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논서의 문체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원효도 이중 하나이다. 이런 논서들은 위경임을 알면서도, 그 출처가 수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경전을 인용한다. 이 경전들이 번역된 인도경전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런 경전들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서를 쓸 때 자주 인용한다. 이런 논서들이 위경인줄 알면서도 인용한 것은 논서의 저자들이 보는 인도경전에 있는 문제들 때문이다. , 이런 위경들은 번역된 인도경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동아시아인들의 마음에 와 닿은 것이다.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원효의 저작 중 약 15개 정도는 위경에 대한 논서라고 한다.

 

이는 보편적 현상이었다고 한다. 많은 유명한 논서들이 위경이라고 알려진 경전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저자들 중에는 장경 목록 편찬자도 있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자신들이 위경으로 분류를 해 놓고도 사용한 것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경전들을 사용한 것이다. 금강삼매경에서도 유사한 문제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의 경우

 

금강삼매경은 680년쯤 한국에서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법화경을 모델로 하고 있어 그 구조가 법화경과 거의 똑 같다고 본다. 부처님이 깊은 삼매에 드신것으로 시작하고, 삼매에서 나오신 후 이경전에 대해 설법이 시작된다. 법화경에서 직접 구조를 따 온 것이다.

 

설법은 인도에서 이루어졌고, 관중은 인도의 보살과 이라한, 가루다, 마후라가 등과 같은 인도의 신들이며, 인도풍의 용어를 쓰는 등 진경으로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금강삼매경이 언급된 장경 목록이 있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주 초기의 목록으로 4세기 도안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 가는 것이다.

 

도안은 금강삼매경을 그의 장경 목록에서 중국의 한 지역에서만 유통된 경이라고 분류하였다. 문제는 금강삼매경이 이 지역 외부로는 유통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금강삼매경이 도안에게 알려진 경전으로 장경 목록에 올라가 있지만, 이 경전은 특정 지역 바깥으로는 전혀 유통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금강삼매경이라고 제목을 골랐을까?

 

어쩌면 이미 장경 목록에 금강삼매경의 제목이 올라있고,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새로 쓰인 경전으로 바꿔치기 하기 쉬웠을 것으로 본다. 이는 상당히 지능적 방법이라 본다.

 

금강삼매경은 누가 썼을까

 

금강삼매경에 대해 다른 흥미로운 점은 이 경운 여래장계열 경전이라는 것이다. 이경의 핵심으로 본다. 하지만 이 경전에는 새로운 선불교 전통의 초기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은 중국어로 찬(chan)이고, 일본어로 젠(zen)이라 한다. 선은 중국과 한국에서 막 태동하고 있었다. 한국에 선을 처음 소개한 스님은 법랑이라고 한다.

 

법랑스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실존인물인지 조차 알 수 없다고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법랑이 신라에서 중국으로 가서 중국의 동산법문의 스승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도신과 흥인을 말한다.

 

여기서 이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법랑이 초기 선불교 스승들 문하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신라로 돌아왔는데, 그가 한반도에 선불교를 성공적으로 전파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하지만 법랑과 같은 사람이 금강삼매경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그와 유사한 사람이 썼을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이 경전에서는 여래장사상의 틀안에 선을 융합하려는 초기의 시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는 원효와 같은 신라의 일급논서 저술가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원효를 타겟으로 쓰여진 경전

 

이 경전은 원효같은 사람을 타겟으로 쓰여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책을 보고 이 경전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주석을 써서 이 경전이 주류 불교 경전에 포함되도록 할 수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실제 금강삼매경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렇다.

 

중국문헌에 금강삼매경은 중국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용왕에게 직접 받은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나라로 가던 신라 사절이 황해를 건너던 중 용궁으로 불려가 허벅지에 이 경전을 꿰메 넣고 다시 신라로 돌아가 대안 성자에게 흩어진 순서를 바로 잡게하여 이를 원효에게 전하여 여기에 주석을 달게 하라는 명을 듣는다. 전부 용왕이 직접 명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 경전이 원효를 위해 쓰여 졌을 수도 있다고 암시한다. 이것이 사실일 수 있다. 실존인물인지는 모르나 법랑 같은 사람이 있고, 이런 사람이 금강삼매경 같은 글을 썼을 수 있다. 이 모든 증거는 이 경전이 한국에서 쓰여 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국에서 만든 최초의 위경

 

중국에는 이와 유사한 문헌이 전혀 없다. 실제로 이 경이 중국에 처음 알려졌을 때, 원효가 쓴 경론과 관련해서 알려진 것이다. 원효는  생의 말기에 이 경에 대한 논소를 썼고, 당시 원효는 아시아 전역에 잘 알려진 저명한 학자이었기 때문에 그의 글은 즉시 중국으로 전파되었다.

 

중국인들은 금강삼매경에 대한 논소를 먼저 읽고, “, 우리는 이런 경전이 없는데 이건 무슨 경이지?”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경전 목록을 찾아보니 금강삼매경이 도안의 장경 목록에 올라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 이 경전은 중국에서 오래전 소실되었지만 한국에 남아 있어서 원효가 경론을 썼구나.”라고 했을 것이다. 원효가 저명한 학자이니까 이 경전은 진경이겠구나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목록에 진경으로 올라 인도 경전의 번역으로 인정받는다. 특정지역에 한정된 문헌이 진경으로 장경에 등재된 것이다. 많은 위경들이 이런 식으로 장경에 포함되게 된 것이다.

 

 

금강삼매경-전문.hwp 

금강삼매경론.pdf

 

 

 

친설(親說) 불설(佛說)

 

전세계의 어느 종교이든지 종교를 창시한 교주는 글을 남기지 않는다. 부처님도 마찬가지 이었다. 다만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이 결집하여 이를 구전하였고 후에 문자로서 기록을 남긴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부처님의 친설(親說)’이라 하는데, 서양에서는 주류(Main stream)불교라 부르고, 아시아에서는 소승불교라고 불리우는 테라와다불교 전통의 빠알리 경전이 그것이다.

 

이와 비교하여 부처님 사후 5-600백년이 지난 시점에 성립된 대승불교는 처음 부터 로서 전승되었다. 이를 불설(佛說)’이라 하는데,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한 사람은 누구나 불법(佛法)’을 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글로서 표현한 것도 불설로 보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의 이름을 사칭한 속임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찬사와 영광을 담아내는 형식으로서 부처님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정(獻呈)’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 수 많은 경전이 찬술되었고, 이런 전통은 중국에서도 양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금강삼매경도 있다.

 

천년후 대장경 목록은

 

대승불교에서 새로운 대승경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21세기를 사는 오늘날에도 대승경전은 찬술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천년전 만들어진 대장경의 목록에 등재된 경 이외의 경은 아직까지 출현하고 있지 않다. 이런 점 때문일까 어느 불교학 교수는 대장경이후에 새로운 대승경전이 찬술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부끄럽게 생각하고 참회해야 한다라고 말을 하였다. 이는  대승불교가 시대와 문화, 역사의 변천에 따라 가고 있지 못함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경이 찬술되다 보니 앞으로 천년후의 대장경 모습도 많이 변질되어 있을 것이라 예측된다. 그런 이유로서 현재의 고려대장경에서 외도문헌인 상키야학파의 문헌도 보이고, 일본의 신수대장경에서는 심지어 기독교의 일파인 네스토리우스파의 문헌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고려대장경의 한글화 작업에 작업에 참여 하였던 책임자는 미래의 대장경 안에는 기독교의 신약성서라든지, 이슬람의 코란 등은 물론이고, 종교 간의 대화나 논전에 대한 기억들이 포함될 것이 틀림없다(대장경에 성경이 포함돼 있다면)고 하였는데, 이는 불교가 부처님의 근본가르침과 멀어졌을 때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2011-11-14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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