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알고 또한 보아서, 대장장이 쭌다경(Cunda sutta, Sn1.1.5)

담마다사 이병욱 2012. 2. 6. 23:01

 

 

알고 또한 보아서, 대장장이 쭌다경(Cunda sutta, Sn1.1.5)

 

 

쭌다

[ Cunda sutta ](*1)

 

 

주해(*1)

이 경에 나오는 싯구들은 대반 열반경에서 일부가 발견되며, 따라서 그것과 병행하는 범본이나 서장본에서도 발견된다. 그리고 유부본과 유행경에서도 전해진다.

 

세존께서 말라국을 유행하다가 많은 수행승들과 함께 빠바로 들어갔다. 거기서 대장장이 아들 쭌다의 암바바나(망고 숲)에 계셨다. 세존께서는 오전 중에 발우를 들고 가사를 수하고는 수행승들과 함께 쭌다의 집을 방문했다.

 

쭌다는 수행승들에게 공양을 올릴 때에 황금의 그릇에 담아 올렸다. 부처님은 돌로 만든 발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황금 발우를 받지 않았다. 한 악한 수행승이 이 그릇을 훔쳐서 자신의 주머니에 넣기도 했다.

 

쭌다는 그것을 알았지만 승단에 대한 존경 때문에 못 본척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계율을 준수하지 않는 자도 수행자인가’ 라는 의문을 갖고 나중에 저녁 무렵 그는 부처님을 방문하여 질문하자 그 때에 이 경전이 설해졌다.

 

쭌다는 빠바시에 살던 대장장이였다. 세존은 꾸시나가라로 완전한 열반에 들기 위해 가시던 중에 쭌다의 망고 숲에 이르렀다. 쭌다는 세존을 찾아 뵙고 부처님과 수행승들에게 다음날 음식을 대접했다. 음식은 맛있는 밥과 그리고 쑤카라맛다바라는 것이었다.

 

부처님은 이 음식을 자신만이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고 나머지는 땅 속에 묻어버리라고 했다. 이것이 부처님의 최후의 만찬이 되었다. 부처님은 이 음식을 들고 설사에 시달렸다.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에 드시기 전에 아난다에게 쭌다를 방문해서 그가 후회할 비난의 말을 하지 말고 반대로 세존에게 공양을 올린 그 공덕은 다른 사람에게 올린 것보다 수승하다는 가르침을 주도록 부탁했다.

 

 

1.

[대장장이 아들 쭌다]

“지혜로 충만한 성자, 깨달은 님,

진리의 주인이신 님, 갈애를(*1) 여윈님, 인간 가운데 최상의 님,

뛰어난 길들이는 님께(*2) 저는 물어 보겠습니다.

참으로 세상에는 어떠한 수행자들이 있습니까? 일러 주십시오.”

 

 

주해(*1)

갈애

- 갈애는 무명과 더불어 인과연쇄에서 가장 중요한 동인으로 꼽힌다. ‘세계는 갈애에 의해서 이끌어진다’ 갈애는 여섯가지로 설명된다.

 

‘수행승들이여,

갈애란 무엇인가? 이들 가운데 수행승들이여, 여섯 갈애의 무리가 있다.

 

1) 형상에 대한 갈애.

2) 소리에 대한 갈애.

3) 향기에 대한 갈애.

4) 맛에 대한 갈애.

5) 감촉에 대한 갈애.

6) 사물에 대한 갈애

 

가 있으니 그것을 수행승들이여, 갈애라고 부른다.

 

한편 이 갈애를 여섯 가지가 아닌 세 가지의 복합 인과관계의 조건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1)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

2) 존재에 대한 갈애.

3) 비존재에 대한 갈애.

 

이 세 가지 갈애의 복합적인 인과관계로 보아 갈애는 그 토대가 되는 쾌. 불쾌의 느낌()로써 설명되어야 한다. 불쾌를 회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갈애의 역동적인 본질이다.

 

이것이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이며, 쾌락의 존재가 무상의 속성에 의해 불쾌의 존재로 변화되었을 때 불쾌의 존재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비존재에 대한 갈애의 보다 본질적인 의미이다. 쾌락의 유지와 불쾌에서 벗어남은 각각 영원주의와 허무주의의 심리적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붓다고싸는 이러한 세가지 갈애에 대하여 존재에 대한 갈애를 영원주의. 비존재에 대한 갈애를 허무주의와 관련시켜서 설명하고 있다.

 

주해(*2)

뛰어난 길 들이는 님

- 그밖에 부처님을 존칭해서 부르는 많은 이름들이 있다. 싸끼야족의 성자(석가모니). 싸끼야족의 사자. 올바로 잘 가신님(善逝). 스승. 승리자(勝者). 세상의 수호자. 전지자. 진리의 제왕(法王).

이렇게 오신 님(如來). 거룩하신 님(阿羅漢). 올바로 깨달으신 님(正等覺者).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明行足). 세상을 이해하는 님(世間解).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신 님(無上師). 사람을 길 들이시는 님(調御丈夫). 신들과 인간의 스승(天人師). 부처님(). 세존.

이들 가운데 후자의 열 가지를 여래십호(如來十號)라고 부른다.

 

 

2.

[세존]

“쭌다여, 네 수행자가 있고, 다섯 째는 없소.

그 물음에 그대에게 눈앞에서 답하오.

길을 아는자(*1)

길을 가리키는자,

길 위에 사는 자,

그리고 길을 더럽히는 자가 있소.”

 

3,

[대장장이 아들 쭌다]

“깨달은 님은 누구를 두고 길을 아는 자라 하십니까?

어떻게 견줄 수 없는 스승이 됩니까?

묻건대, 길 위에 사는 것에 대해 설해 주십시오.

길을 더럽히는 자에 대해서도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주해(*1)

‘길을 통해 모든 번뇌를 정복한 자’를 말한다.

 

 

4.

[세존]

“의혹을 건너고 화살을 떠나, 열반을(*1) 즐기며,

탐욕을 버리고, 신들을 비롯한 세계를 안내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길을 아는 자라고 깨달은 님은 말한다.”

 

 

주해(*1)

열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수행승들이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열반의 세계가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유여의열반(有餘涅槃)의 세계와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세계가 있다.

 

수행승들이여,

무엇이 유여의열반의 세계인가? 수행승들이여, 여기에 한 아라한인 수행승이 번뇌를 파괴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최고의 이상을 실현하고 존재의 속박을 끊었으며 궁극적인 지혜에 의해서 해탈했다.

 

그러나 그에게 다섯가지 감관은 남아 있으며 그것에서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쾌. 불쾌를 경험하고 즐거움과 괴로움을 느낀다. 그에게는 탐욕이 소멸되고 진에가 소멸되고 무지가 소멸되었는데 이것이 수행승들이여, 유여의열반의 세계라고 불린다.

 

수행승들이여,

무엇이 무여의열반의 세계인가? 수행승들이여, 여기에 한 아라한인 수행승이 번뇌를 파괴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최고의 이상을 실현하고 존재의 속박을 끊었으며 궁극적인 지혜에 의해서 해탈했다.

 

여기서 수행승들이여 그에게는 모든 느껴진 것은 향유되지 않는 것으로 냉정해질 것이다. 이것이 수행승들이여, 무여의열반의 세계라고 불리운다.

 

그러나 숫타니파타에서는 이 두 가지 열반의 구별이 없다. 이것은 숫타니파타가 다른 경전보다 고층일 가능성을 나타내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열반은 모든 장애와 속박을 끊어 궁극적인 지혜를 체득한 것이다.

 

 

5.

여기 위없는 것을 위없는 것으로 알고,

이 자리에서 가르침을 설하고 분별하고,

의혹을 버리고 동요하지 않는 해탈자라면,

수행자들 가운데 두 번째, 길을 가리키는 자라 부른다.

 

6.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자제하고(*1)

허물없는 길을 따르며 잘 설해진 가르침의 길위에 산다면,

수행자들 가운데 세 번째, 길위에 사는 자라 부른다.

 

 

주해(*1)

자제

- 수행승들이여, 자제하는 것이란 어떠한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기분 좋고 즐겁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주고 유혹적인, 시각에 의해 알려지는 형상들이 있다.

 

만약에 수행승이 그것들을 즐거워하지 않고 찬양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다면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은 ‘나는 선한 법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참으로 세존은 이것을 불퇴전이라고 부른다’ 라고 알아야 한다.

 

청각에 의해 알려지는 소리들, 후각에 의해 알려지는 냄새들, 미각에 의해 알려지는 맛들, 촉각에 의해 알려지는 감촉들, 정신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들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7.

“맹세한 계율을 잘 지키는 체하지만,

무모하고, 가문을 더럽히며, 오만하고,

거짓이 있으며, 자제함이 없고, 말 많고,

위선적인 사람을 가리켜 길을 더럽히는 자라고 한다.

 

8.

이러한 것들을 꿰뚫어 배운 바가 많고,

지혜로운 재가의 고귀한 제자라면,

그들이 모두 똑같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알고 또한 보아서(*1),

자신의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어떻게 그가 더럽혀진 자와 더럽혀지지 않은 자,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않은 자를 똑같이 볼 수 있을 것인가.”

 

 

주해(*1)

'알고 또한 보아서'

-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알지 못하고 보지못하는 자가 아니라, 알고 또한 보는 자에게 번뇌가 소멸한다는 사실에 관해 말한다.

 

언제나 ‘알고 또한 본다’는 것이 문제이지, 믿는다는 것은 별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붓다의 가르침은 언제나 ‘와서 보라’이지 ‘와서 믿으라’가 아니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에 관하여 경전의 어느 곳에서든지 언급되고 있는 말이 있다.

 

부처님은 ‘더러움 없고 깨끗한 진리의 눈[法眼]을 떴다.'나는 이것이 최후의 삶이며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다라고 흔들림 없이 마음에 의한 해탈을 이루어 앎과 봄을 성취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앎과 봄은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다. 봉사가 붉은 신호등 앞에서는 서고 푸른 신호등 앞에서는 가야한다는 앎은 갖고 있어도 실제 신호등 앞에서는 봄이 없으면 그의 앎은 소용이 없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신호등 앞에서 붉은 신호등이나 푸른 신호등을 볼 수 있어도 붉은 신호등 앞에서 서야하고 푸른 신호등 앞에서 갈 수 있다는 앎이 없으면 그의 봄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쭌다의 경이 끝났다.]

 

(쭌다경-Cundasutta, 숫따니빠따 Sn1.1.5,전재성박사역)

 

   쭌다경(Sn1.1.5).docx  쭌다경(Sn1.1.5).pdf

 

 

 

 

 

리수

 

 

 

 

쭌다(Cunda)이야기

 

초기경을 읽다 보면 중복된 이야기가 많다. 특히 사람이름의 경우가 그렇다. 그런 것중의 하나가 쭌다(Cunda)’이다.

 

초기경을 검색한 결과 쭌다라는 이름이 나오는 곳은 숫따니빠따, 상윳따니까야, 맛지마니까야, 디가니까야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상윳따니까야와 맛지마니까야에 실려있는 쭌다라는 이름은 마하쭌다(Mahacunda)’로서 사리뿟따 존자의 동생으로 되어 있다

 

대장장이 쭌다에 대한 이야기는 숫따니빠따와 디가니까야에 등장한다. 숫따니빠따에 등장하는 쭌다는 부처님과의 대화에 대한 것이고, 디가니까야 마하빠리닙빠나경(대반열반경)에 등장하는 쭌다는 마지막 공양에 대한 이야기이다.

 

열반이란

 

이렇게 서로 다른 내용이지만 이 들 두 경에 공통으로 들어가 있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열반이다. 

 

열반에 대한 이야기로서 숫따니빠따에 실려 있는 게송은 다음과 같다.

 

 

Yo tiṇṇakatha katho visallo        요 띤나까탕 까토 위살로
Nibbānābhirato anānugiddho,         
닙바나비라또 아나누깃도
Lokassa sadevakassa nto             
로깟사 사데와깟산또

 

 “의혹을 건너고 화살을 떠나, 열반을 즐기며,

탐욕을 버리고, 신들을 비롯한 세계를 안내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길을 아는 자라고 깨달은 님은 말한다.

 

 “With doubts dispelled,

arrow pulled out and greed dispelled is attached to extinction,

He is a leader to the world together with the gods.

Enlightened ones say such are winners of the path.

 

 

부처님이 네 가지 수행자에 대하여 말씀 하신 것 중에 가장 먼저 나온 이야기가 위 게송에서 처럼 길을 아는 자에 대한 것이다. 이 길을 아는 자가 열반을 즐긴다고 하였는데, 이는 아라한을 말한다.

 

그렇다면 마하빠리닙바나에서 쭌다와 관련된 이야기 중 열반은 어떻게 묘사 되었을까. 각묵스님의  번역을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Dadato puñña pavaḍḍhati,        다다또 뿐냥 빠왓다띠

sayamato vera na cīyati;        상야마또 웨랑 나 찌야띠

kusalo ca jahāti pāpaka,          꾸살로 짜 자하띠 빠빠깡

rāgadosamohakkhayā sanibbuto”ti.   라가도사모학카야 사닙부또 띠

 

베풂에 의해서 공덕은 증가하고

제어에 의해서 증오는 쌓이지 않는다.

지혜로운 자는 사악함을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려서 열반을 얻는다.

 

Who gives, his virtues shall increase;

Who is self-curbed, no hatred bears;

Whoso is skilled in virtue, evil shuns,

And by the rooting out of lust and hate

And all delusion, comes to be at peace.

 

(마하빠리닙바나경-Mahāparinibbana Sutta,대반열반경, 디가니까야 D16-4.43, 각묵스님역, 영문: Sister Vajira & Francis Story)

 

마하빠리닙바나경( 대반열반경- D16).pdf

마하빠리닙바나경(대반열반경)전문.docx

 

 

대장장이 쭌다가 부처님에게 공양을 하였는데, 탈이 나서 결국 마지막 공양이 되고 말았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아난존자를 불러 쭌다에게 자책감을 없애 주어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그에 대한 감흥어로 읊은 것이 이 게송이다. 

 

이 게송에서 부처님은 열반이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씀 하였다. 그런 열반은 숫따니빠따의 주석에 따르면 모든 장애와 속박을 끊어 궁극적인 지혜를 체득한 것’이라 한다. 

 

 

 

 

2012-02-06

진흙속의연꽃

쭌다경(Sn1.1.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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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빠리닙바나경( 대반열반경- D1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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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빠리닙바나경(대반열반경)전문.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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