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재가자의 행복 네 가지, 이나경(빚 경)과 아나나경(빚 없음 경)

담마다사 이병욱 2012. 2. 14. 11:11

 

재가자의 행복 네 가지, 이나경(빚 경)과 아나나경(빚 없음 경)

 

 

 

 

돈에 대한 집착

 

수 많은 거래가 있어도 결재가 이루어지면 깨끗이 잊어 버린다. 하지만 받을 돈을 못 받게 되었을 때 언제까지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받아 내려고 한다.

 

돈을 못 받았을 때 두고 두고 가슴에 남는다. 그래서 문득 문득 떠오르는데 그 때마다 불쾌한 기분을 가진다, 그럴 경우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한 마디 내 뱉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이처럼 돈에 대한 집착은 무섭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따르면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원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어 버릴 수 있지만, 내 돈 떼어 먹고 달아난 사람은 평생 잊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해관계에 민감한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리이다.

 

빚 지고 살 수 없어

 

빚지고 살 수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빚을 갚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빚을 갚지 못하면 빚 독촉에 시달린다. 그래서 한시 바삐 빚이라는 족쇄에서 해방되고자 한다.

 

이처럼 빚은 삶을 옥 조아 매어 인간성을 말살시키는데, 부처님은 빚에 대하여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초기경전에서 빚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였다.

 

 

“비구들이여,

가난하고 무일푼이고 궁핍한 사람이 자신을 성가시게 따라붙더라도 지불하지 못하여 포박을 당하면, 그것도 세상에서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자에게 괴로운 것인가?

 

 (이나경-Iasutta - Debts- 빚 경, 앙굿따라니까야 A6.1.5.3, 대림스님역)

 

  이나경(빚경-A6.1.5.3).docx 이나경(빚경-A6.1.5.3).pdf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사는 것과 빚지고 사는 것에 대하여 괴로움이라 하였다. 특히 가난한 자가 감각적욕망을 즐기기 위하여 빚을 내는 것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그런 감각적 욕망은 어떤 것일까.

 

오욕락을 위하여

 

일반적으로 감각적욕망은 오감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눈으로 형상을 즐기고, 귀로 소리를 즐기는 등 다섯가지 감각기관으로 다섯가지 감각대상을 즐기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감각적욕망을 확대 해석하면 오욕락이 된다. 그런 오욕락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식욕, 성욕, 안락욕이 있고 사회적 욕구인 재물욕과 명예욕이 있다. 이런 욕구를 위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빚 내는가

 

하지만 이런 감각적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없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빚을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가난하고 무일푼이고 궁핍한 사람은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양심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수치심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정진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통찰지가 없기 때문에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른다.

이것이 그가 빚을 내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이나경-Iasutta - Debts- 빚 경, 앙굿따라니까야 A6.1.5.3, 대림스님역)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자가 이자를 지불할 능력도 없으면서 단지 감각적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빚을 내는 행위에 대하여 다섯가지가 없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 다섯가지는 믿음, 양심, 수치심, 정진, 통찰지를 말한다.

 

부처님 가르침에 대하여 의심하거나 믿음이 없는 자들은 양심도 없고 수치심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 자들에게 지혜가 있을 리 없다. 그러다 보니 늘 몸과 입과 마음으로 죄업만 짓게 된다는 것이다.

 

빚 없는 삶

 

그래서 부처님은 게송으로서 빚 없는 삶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가난한 것과 빚내는 것은 세상에서 괴로움이라 말하네.

가난한 자는 빚을 내어 즐기지만 고통 받으며

그리고는 성가시게 그를 따라붙고 포박하리.

 

이렇게 포박을 당하는 것은

쾌락을 얻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괴로움이라네.

 

그와 같이 성스러운 율에서 믿음이 없고

양심 없고 수치심 없고 악한 업을 결정짓는 자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한 뒤

‘나를 알아보지 못하기를.’하고 바라누나.

 

그는 몸과 말과 마음이 흔들리고

여기저기서 거듭하여 악한 업을 증장시키나니

자신의 나쁜 행위를 알면서

악업을 짓는 슬기롭지 못한 그는

가난하여 빚을 내어 즐기지만 고통을 받으며

마음속의 괴로움이 그를 성가시게 따라붙고

마을에서나 숲에서나 회한이 따르네.

 

자신의 나쁜 행위를 아는

악업 짓는 슬기롭지 못한 자

그는 어떤 모태에 들거나 혹은 지옥에 묶이지만

지자는 이러한 속박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네.

 

법답게 얻은 재물을 베푸는 마음은 깨끗하나니

재가에 사는 신심있는 자는 둘 다에서 승리를 얻나니

금생의 이익을 위하고 내생의 행복을 위함이라.

이와 같이 재가자들의 보시는 공덕을 증장시키누나.

 

그와 같이 성스러운 율에서 믿음이 확립되고

양심 있고 수치심 있고 통찰지가 있고

계로써 잘 단속하는 이러한 사람은

성스러운 율에서 행복하게 사는 자라 부르리.

 

그는 출세간적인 행복을 얻고 평온에 확고하며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린 뒤 항상 정진을 시작하고

선()에 들어서 일념이 되고 현명하고 마음챙기나니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알아서 모든 족쇄를 멸하며

모든 곳에서 취착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이 해탈하네.

 

이렇게 바르게 해탈한 여여한 자에게

‘나의 해탈은 부동이다.’라는

존재의 족쇄를 멸하는 그런 지혜가 있다면

그것은 최상의 지혜요, 위없는 행복이니

슬픔 없고 열정 없고 안은하고 빚 없는 최상이라네.”

 

(이나경-Iasutta - Debts- 빚 경, 앙굿따라니까야 A6.1.5.3, 대림스님역)

 

 

부처님은 게송에서 단지 감각적욕망을 충족하기 위하여 삶을 사는 것은 이자를 지불할 능력도 없는 가난한 자가 빚을 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 결과 몸과 입과 마음으로 업을 짓게 되어 늘 후회속에서 살다가 결국 악처에 태어나게 될 것이라 하였다.

 

금생의 이익과 내생의 행복을 위하여

 

그렇다면 어떤 삶이 바람직할까. 게송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Dhammaladdhehi bhogehi dada citta pasādaya
Ubhayattha ka
aggāho saddhassa gharamesino.
Di
ṭṭhadhammahitatthāya samparāya sukhāya ca
Evameta
gahaṭṭhāna cāgo puñña pavaḍḍhati.

 

담마랏데히 보게히 다당 찟땅 빠사다양

우바얏타 까딱가호 삿닷사 가라메시노

딧타담마히땃타야 삼빠라야 수카야 짜

에와메탕 가핫타낭 짜고 뿐냥 빠왓다띠

 

법답게 얻은 재물을 베푸는 마음은 깨끗하나니

재가에 사는 신심있는 자는 둘 다에서 승리를 얻나니

금생의 이익을 위하고 내생의 행복을 위함이라.

이와 같이 재가자들의 보시는 공덕을 증장시키누나.

 

They give out of their righteously earned wealth and are pleased
Both throws of those householders with faith are lucky.
Here and now and here after
The benevolence of those householders develop merit.

 

 

 

재가자(householder)가 법답게 얻은 재물은 깨끗하다고 하였다. 그런 신심있는 불자가 보시하는 삶을 살았을 때 공덕(puñña, benevolence)을 쌓게 되는데, 그럴 경우 지금 여기(Diṭṭhadhamma, here and now)에서 행복하게 살 것은 물론이고 내생에서도 행복할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금생(here and now)과 내생(here after)에서 모두 승리를 거둘 것이라 하였다.

 

팔의 힘으로 모았고 , 땀으로 획득했으며

 

그렇다면 재가자는 재물에 대하여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 초기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장자여,

그러면 어떤 것이 재물을 누리는 행복인가?

 

장자여,

여기 선남자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답고 법에 따라서 얻은 재물로

재물을 누리고 공덕을 짓는다.

 

그는

 

‘나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답고 법에 따라서 얻은 재물로

재물을 누리고 공덕을 짓는다.’

 

라고 행복을 얻고 기쁨을 얻는다.

 

장자여,

이를 일러 재물을 누리는 행복이라 한다.”

 

(아나나경-Aanasutta - Not indebted-빚 없음 경, 앙굿따라니까야-A4.2.2.2, 대림스님역)

 

  아나나경(빚 없음 경-A4.2.2.2).docx  아나나경(빚 없음 경-A4.2.2.2).pdf

 

 

 

 

 

 

 

부처님은 초기경에서 재가자의 재물을 누리는 행복에 대하여 설 하셨다. 재물은 멀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법답게 얻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힘들여, 땀흘려 가며 이룬 재물은 법다운 것이라 하였다. 이는 부동산투기나 주식투기 등 불로소득으로 인하여 얻는 재물은 아니다.

 

10억을 목표로 하는 삶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에 대하여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노후를 대비하여 재산을 축적하려 한다. 10억은 있어야 안심하고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등의 말이 나오는 것도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불법과 탈법도 서슴치 않는다.

 

이렇게 10억을 목표로 하는 삶에서 불로소득을 노린 아파트투기나 주식투기등에 빚을 내는 것은 보통이다. 그래서 가계 빚이 급증하게 되었는데 지난해 대출로 인한 가계 빚은 6천만원대라 한다. 이런 빚으로 인하여 이자로 지불되는 돈은 매월60만원 정도라 한다. 이런 이유로 생계에 곤란을 받는 하우스푸어(house poor)가 급증하고 있다는데, 이는 노후불안으로 인한 일확천금과 불로소득을 노리는 사회풍조에 기인한 탓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은 보험개념이고, 공무원연금은 보상개념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노후를 대비하기 위한 것은 공무원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공직사회에서 노후는 자신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직에 있을 때 미리 자신들의 노후를 대비해 놓는 것이다. 그것은 연금으로 나타난다.

 

공무원들은 연금을 일반인 보다 훨씬 더 많이 받는다.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보다 약 2.5배가 많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라디오에서 연금담당자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말을 하였다.

 

 

국민연금은 보험개념이고, 공무원연금은 보상개념입니다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보다 2.5배 높은 이유에 대하여, 국민연금은 보험개념이고 공무원연금은 보상개념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 있어서 보상개념일까.

 

연금담당자의 설명에 따르면 첫째는 경찰과 군인들과 같이 위험한 직종에 근무하고 국가공무원으로서 봉사 한 것에 대한 보상이고, 두번째는 투잡(two job)’과 같은 부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연금으로 보상 해 준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해서 적게 내고 많이 타가는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직에 있을 때는 물론 퇴직해서도 죽을 때까지 노후가 보장되어 있는데, 더구나 본인이 죽었을 때 마치 유산을 상속하는 것처럼 유족이 연금을 계승할 수 있도록 유족연금제도까지 마련해 놓아 충격을 주고 있다.

 

이렇게 공무원들은 노후가 자신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미리 노후대책까지 제도적으로 세워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이래 누구하나 이에 대한 이의 제기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도적질과 다름 없는 것

 

재산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그것은 법답게 얻은 것이야 한다. 불법과 탈법으로 얻은 재물은 도적질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설령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아 늙어 죽을 때까지 안락하게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해도 그것이  국민들의 형평성과 비교하여 크게 어긋난 다면 이는 도적질 하는 것과 다름없다. 최근 그리스의 재정위기 사태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재가자의 행복

 

부처님은 정당하게 번 돈에 대하여 문제삼지 않았다.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땀흘려 번돈에 대하여 오히려 칭찬하였다. 이렇게 법답게 얻은 재물을 갖는 것은 ‘행복’임에 틀림 없다. 그래서 재가자의 행복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였다.

 

 

“장자여,

재가자는 가끔씩 혹은 기회가 주어지면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바,

그 재가자가 얻어야 할 네 가지 행복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소유하는 행복,

재물을 누리는 행복,

빚 없는 행복,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이다.”

 

(아나나경-Aanasutta - Not indebted-빚 없음 경, 앙굿따라니까야-A4.2.2.2, 대림스님역)

 

 

이렇게 부처님은 소유하는 것, 재물을 늘리는 것을 행복이라 하였다. 그러나 빚을 내서 늘리는 것은 경계하였다. 그래서 빚이 없는 것도 행복이라 하였다. 그런데 더욱 더 행복한 것은 비난 받을 일이 없이 재산을 늘렸을 때라 하였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 등으로 인한 불로소득과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아 끼리 끼리 해 먹는 다면 이는 비난받는 것이고 동시에 빚 지는행위임에 틀림 없다.

 

 

 

2012-02-14

진흙속의연꽃

이나경(빚경-A6.1.5.3).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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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나경(빚 없음 경-A4.2.2.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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