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열 비구니의 승리게송(빅쿠니상윳따S5.1)

담마다사 이병욱 2012. 2. 22. 22:51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열 비구니의 승리게송(빅쿠니상윳따S5.1)

 

 

 

 

해제글에서

 

상윳따니까야에 빅쿠니상윳따(Bhikkhūnīsayutta)’가 있다. 이를 수행녀 상윳따라고도 한다. 이에 대한 해제글을 보면 다음과 같가.

 

 

5쌍윳따 수행녀 쌍윳따 출가한 수많은 수행녀들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을 그린 것으로, 그 갈등은 악마 빠삐만과의 대화로써 등장한다.

 

예를 들어 여자로서 성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비구니를 조롱하는 악마 빠삐만에게 쏘마라는 수행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법을 보는 자에게 지혜가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나는 남자다, 또는 여자다,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이다라고 말해야 한다면 그는 악마일 뿐이리.”

 

이런 대화를 읽다보면 어느 수녀와 마이스터 에카르트의 대화를 상기시킨다. 에카르트는 자신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 없었던 한 수녀를 극구 칭찬한 적이 있었다.

 

그밖에 여성의 출가정신과 세속적인 아름다움, 모성애 등과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전재성박사, 우리말 상윳따니까야)

 

  쌍윳따니까야관련자료(종합판)1[1].hwp

 

 

수행녀 상윳따에는 모두 10명의 비구니가 등장한다. 마라 빠삐만과의 대화형식으로 되어 있다.

 

감각적 쾌락은 창의 쐐기와 같고

 

가장 먼저 등장하는 알라위까 비구니에 대한 경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알라위까경

( Āavikāsutta- Bhikkhuni Ālavikā, S5.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그때 수행녀 알라비까가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탁발을 하기 위해 싸밧티로 들어갔다. 싸밧티에서 탁발을 하고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발우를 물리고 나서 홀로 있기 위해 안다 숲으로 갔다.

 

그때 악마 빠삐만이 수행녀 알라비까에게 몸의 털이 곤두서는 두려운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홀로 있는 것을 방해하려고 수행녀 알라비까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수행녀 알라비까에게 시로써 이야기했다.

 

[빠삐만]

 "세상에 출리(出離)란 없으니 멀리 떠나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감각적 쾌락을 즐겨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아야 하네."

 

그때 수행녀 알라비까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인가 사람이 아닌가, 누가 이 시를 읊조리는가?'

 

또한 수행녀 알라비까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는 나에게 몸의 털이 곤두서는 두려운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홀로 있는 것을 방해하려고 시를 읊조리는 악마 빠삐만이다.'

 

그때 수행녀 알라비까는 '이는 악마 빠삐만이다'라고 알아채고 악마 빠삐만에게 시로써 대답했다.

 

[알라비까]

 "세상에는 출리가 있으니 나는 지혜로써 잘 파악하고 있네.

게으름의 벗, 빠삐만이여 너는 그러한 발자취를 알지 못하네.

감각적 쾌락은 창의 쐐기와 같고 모든 구성요소는 형틀과 같네.

그대가 감각적 쾌락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에게는 즐거움이 아니네."

 

그때 악마 빠삐만은 '수행녀 알라비까는 나에 대해 알고 있다'라고 알아채고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바로 그곳에서 사라졌다.

 

 

.

- 알라비까 :

알라비(alavi)는 자따까 등에 자주 언급되는 인도의 도시 이름이다.

붓다고사에 의하면, 알라비까라는 수행녀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이름은 쎌라

였다. 오늘날에도 스리랑카에서는 태어난 곳의 이름을 따라 법명을 주는 습관이 있다.

 

- 출리 : 붓다고사는 출리를 열반(nibbanam)으로 해석했다.

 

 

(알라위까경-Āavikāsutta- Bhikkhuni Ālavikā, 상윳따니까야 S5.1.1,전재성님역)

 

알라위까경(S5.1.1).docx 알라위까경(S5.1.1).pdf

 

 

경을 보면 비구니와 마라와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사왓띠로 탁발을 나온 비구니가 공양을  마친후 숲에 들어가 나무 밑에 앉아 있을 때 마라가 나타난다.  여기서 마라는 수행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이때 비구니는 수행을 방해하기 위한 마라임을 알아채고 마라의 질문에 게송으로 답변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마라빠삐만

 

초기경에서 등장하는 마라는 주로 빠삐만이다. 초기경에서 빠삐만의 역할은 모든 경우에 있어서 부처님을 유혹하는 반대편에 서 있다. 빅쿠니상윳따에 등장하는 빠삐만 역시 수행을 방해하는 역할로서 반대편에 서 있다.

 

그런데 초기경전에 등장하는 마라는 다른 종교의 악마와 달리 대조적인 견해를 드러내서 깨달음의 길을 분명히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빅쿠니 상윳따에서도 마라의 견해와 수행녀의 답변은 극명하게 다른 것인데, 결국 마라의 패배로 귀결된다.

 

그 때 마라는 수행녀는 나에 대해 알고 있다라고 알아채면서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바로 그곳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수행자가 자기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열비구니의 승리게송

 

이렇게 마라와의 싸움에서 이긴 수행녀들의 이야기에 대한 것이 열가지가 있다마라에 대한 승리의 게송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빅쿠니 알라위까(Bhikkhuni Ālavikā)

 

Atthi nissaraa loke paññāya me suphassita,

Pamattabandhu pāpima na tva jānāsi ta pada.

Sattisulūpamā kāmā khandhāsa adhikuṭṭanā,

Ya tva kāmarati brūsi arati mayha2 sā ahūti.

 

 세상에는 출리가 있으니 나는 지혜로써 잘 파악하고 있네.

게으름의 벗, 빠삐만이여 너는 그러한 발자취를 알지 못하네.

감각적 쾌락은 창의 쐐기와 같고 모든 구성요소는 형틀과 같네.

그대가 감각적 쾌락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에게는 즐거움이 아니네.”

 

“There is a refuge in the world, I have realized it wisely.
Relation of negligence, you do not know that!
Sensuality is like the blade of a sword,
The masses are like the executing block,
You talk of sensual passion, I have become passionless.

 

 

- 알라비까 :

알라비(alavi)는 자따까 등에 자주 언급되는 인도의 도시 이름이다.

붓다고사에 의하면, 알라비까라는 수행녀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이름은 쎌라

였다. 오늘날에도 스리랑카에서는 태어난 곳의 이름을 따라 법명을 주는 습관이 있다.

 

 

2. 빅쿠니 소마(Bhikkhuni Soma)

 

Itthibhāvo ki kayirā cittamhi susamāhite,

äāamhi vattamānamhi sammā dhamma vipassato.

Yassa nūna siyā eva itthāha5 purisoti vā,

Kiñci vā pana aññasmi ta māro vattumarahatīti.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법을 보는 자에게

지혜가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나는 남자다 나는 여자다

그렇지 않으면 도데체 무엇이다라고 말해야 한다면 그는 악마일 뿐이리.”

 

“When the mind is established, being a woman does not matter
I have knowledge and reflect the Teaching rightfully.
If that was not so, whether to woman or man
Whatever was mine is suitable to be in the power of Māra.”

 

 

- 쏘마 :

마가다 국의 빔비사라 왕의 제사장의 딸이라 한다.

 

 

 

3. 빅쿠니 고따미(Bikkhuni Kisa Gotami)

 

Accanta mataputtā'mhi3 purisā etadantikā,

Na socāmi na rodāmi na ta bhāyāmi āvuso.

Sabbattha vihatā4 nandi tamokkhandho padālito,

Jetvāna maccuno5 sena viharāmi anāsavāti.

 

 언제나 자식을 잃은 어머니도 아니고 남자도 이미 지난 일이네.

나는 슬퍼하지 않고 울지 않으니 벗이여,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네.

모든 쾌락은 부서졌고 어두운 구성요소는 파괴되었네.

죽음의 군대에서 승리하여 번뇌 없이 나는 살아가네.”

 

“I have perpetually lost my sons and also my men
Friend, I do not grieve or cry, am not afraid of those losses.
I have destroyed all interests and the mass of ignorance is split
Victorious over the array of Death, I live without desires.”

 

 

- 고따미 :

그녀는 부유한 집에 시집을 가서 아들을 낳고 귀여움을 독차지했는데,그 아들이 일찍 죽자 비탄에 잠겨 죽은 아기를 업고 되살리기 위해 약을 구하려 다녔으나 사람들이 비웃을 뿐이었다.

어떤 슬기로운 자가 그녀를 부처님께 인도했다.부처님께서는 사람이 죽지 않은 집에서 겨자씨를 구해오면 살려주겠다고 말한다. 고따미는 나중에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는 죽은 아이를 내려놓고 출가하였다.

 

그녀는 곧 진리의 흐름에 들었으며 부처님이 그녀 앞에 눈부신 광채로 나타나자 아라한이 되었다. '끼싸' 는 가냘팠던 그녀의 몸매를 뜻한다. 그녀는 수행녀 가운데 가장존경을 받았다.

 

 

4. 빅쿠니 위자야(Bhikkhuni Vijayā)

 

Rūpā saddā rasā gandhā phoṭṭhabbā ca manoramā,

Niyyātayāmi tuyheva4 māra nāha tenatthikā5.

Iminā pūtikāyena bhindanena pabhagunā,

Aṭṭīyāmi6 harāyāmi kāmatahā samūhatā,

Ye ca rūpūpagā sattā ye ca āruppahāyino7,

Yā ca santā samāpatti sabbattha vihato tamoti.

 

마음을 즐겁게 하는 색깔과 소리와 맛과 향기와 접촉을

나는 그대에게 넘겨주니 악마여, 그것은 내게 필요하지 않네.

이 취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부패하는 몸에 대하여

나는 곤혼하여 참괴하니 애욕의 갈애는 내게서 근절되었네.

형상의 세계에 들어선 뭇삶들과 무형상의 세계에서 지내는 자들

선정의 성취마저 고요해지면 모든 곳에서 어둠은 사라지네.”

 

“Pleasing forms, sounds, tastes scents and touches,
Māra, I turn them back to you, I do not value them
I am disgusted and loath this putrid, breaking, brittle, body
Those beings pursuing matter and the beings desiring immaterial states
And the beings in attainments, all these dark states I have destroyed.”

 

 

5. 빅쿠니 웁빨라완나(Bhikkhuni Uppalavaṇṇa)

 

Sata sahassānapi dhuttakāna idhāgatā tādisikā1 bhaveyyu,
Loma
na iñjāmi na santasāmi na māra bhāyāmi tamekikāpi.
Esā antaradhāyāmi kucchi
vā pavisāmi te,
Pakhumantarikāyampi ti
ṭṭhanti ma na dakkhasi.
Cittasmi vasībhūtāmhi iddhipādā subhāvitā,
Sabbabandhanamuttāmhi na ta
bhāyāmi āvusoti.

 

백 명, 천 명의 그대와 같은 악한이 여기에 와 있더라도

터럭만큼도 동요가 없어 두려워하지 않네.

악마여, 나는 홀로지만 그대를 무서워하지 않네.”

 

내가 여기서 사라져서 그대의 자궁으로 들어가거나

또한 그대의 미간에 서면 그대는 나를 볼 수가 없네.(마라)”

 

나는 마음의 자재함을 얻어 신통력의 기초를 잘 닦았네.

모든 속박에서 해탈하여 벗이여, 나는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네."

 

“Hundreds and thousands of rascals like you may come here!
I would not be frightened, even a hair would not rise!
Although alone, I am not frightened. Here I disappear and enter even your belly.
I will enter even your body and you will not see me.
I have control of my mind, and have developed the four ways of making determinations.
Friend, I do not fear you, am free from all bonds.”

 

 

- 우빨라반나 :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수행녀. 수행녀 중 신통력 제일이다.

 

 

 

6. 빅쿠니 짤라(Bhikkhuni Cala)

 

Jātassa maraa hoti jāto dukkhāni phussati4,
Bandha
vadha pariklesa tasmā jāti na rocaye.
Buddho dhammamadesesi jātiyā samatikkama
,
Sabbadukkhappahā
āya yo ma5 sacce nivesayi.
ye ca rūpūpagā sattā ye ca āruppa
hāyino,
Nirodha
appajānantā āgantāro punabbhavanti.

 

 태어나면 죽음이 있게 되며 감옥에 갇히고 살해당하는 환난의

괴로움들을 태어나서 경험하니 나는 태어남을 기뻐하지 않네.

태어남에서 뛰어넘는 가르침을 부처님께서 설하셨으니

모든 괴로움을 버리게 하시고 나를 진실에 들게 하셨네.

형상의 세계에 사는 뭇삶들도 형상이 없는 세계에 사는 자들도

괴로움의 소멸을 알지 못하여 다시 태어남으로 복귀하는 것이네.”

 

“To the born there is death. Unpleasantness touches the born,
In the form of bindings, killings and misery, therefore I disapprove birth.
The Enlightened one, teaches to put an end to birth,
To dispel all unpleasantness, I'm established in that truth.
Beings, pursuing matter and those wishing immaterial states,
Not understanding cessation, come back to be born.”

 

 

- 짤라 :

짤라는 사리불의 여동생으로 알려져 있다.

 

 

 

7. 빅쿠니 우빠짤라(Bhikkhuni Upācala)

 

Tāvatisā ca yāmā ca tusitā cāpi devatā,
Nimmā
aratino devā ye devā vasavattino,
Kāmabandhanabaddhā1 te enti māravasa
puna.
Sabbo ādipito2 loko sabbo loko padhūpito,
Sabbo pajjalito loko sabbo loko pakampito,
Akampita
ajalita3 aputhujjanasevita,
Agati yattha mārassa tattha me nirato manoti.

 

 도리천이나 야마천 또는 도솔천의 신들

또는 화락천의 신들 또는 타화자재천의 신들.

그들은 애욕의 줄에 묶여 다시 악마의 영토로 들어가네.

세상은 모두 불이 붙었고 세상은 온통 연기에 휩싸였네.

세상은 모두 불길을 토하고 세상은 온통 뒤흔들리네.

뒤흔들리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곳 범상한 사람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

악마가 도달하지 못하는 곳 그곳에서 내 마음이 즐거우리.”

 

“The company of gods, of the thirty-three, of the under world, of happiness,
Of those attached to creating and those under the control of others
Are bound by the bond of sensuality and come back to be controlled by Māra
All forefathers of the world, all establishers, all illuminators
All those who caused distress in the world and those who did not cause distress,
Did not change and all ordinary folk
Come back to the domains of death, I am not interested in it.”

 

 

8. 빅쿠니 시수빠짤라(Bhikkhuni Sīsūpacālā)

 

Ito bahiddhā pāsaṇḍā diṭṭhīsu pasīdanti te,
Na tesa
dhamma rocemi na te dhammassa kovidā.
Atthi sakyakule jāto buddho appa
ipuggalo,
Sabbābhibhū māranudo sabbatthamaparājito,
Sabbattha mutto asito1 sabba
passati cakkhumā.
Sabbakammakkhaya2ppatto vimutto upadisa
khaye,
So mayha
bhagavā satthā tassa rocemi sāsananti.

 

외도(外道)인 이교도들은 잘못된 견해를 믿으니

나는 그들의 법을 기뻐하지 않네. 그들은 법을 잘 모르네.

여기 싹가 족의 집에 태어난 이 깨달은 이, 견줄 데 없는 이

모든 것 극복하고 악마를 제거하고 모든 것에 정복되지 않으며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집착이 없는 이 눈 있는 자로서 모든 것을 보네.

모든 업력의 멸진에 이르러 집착이 파괴되어 해탈했으니

세상의 존경받는 분이 나의 스승이네. 나는 그의 가르침을 기뻐한다네.”

 

“There are those who are pleased with other heresy and views.
I am not pleased or clever in them.
There is an enlightened, incomparable man, born to the Sakya clan
He has conquered all, expelled death, has become victorious in all good.
Released from all good, does not cling. That wise one knows everything.
He has come to the end of all action, is released, destroying substratum.
He is my blessed Teacher and I am pleased with his dispensation.”

 

 

9. 빅쿠니 셀라(Bhikkhuni Sela)

 

Ito bahiddhā pāsaṇḍā diṭṭhīsu pasīdanti te,
Na tesa
dhamma rocemi na te dhammassa kovidā.
Atthi sakyakule jāto buddho appa
ipuggalo,
Sabbābhibhū māranudo sabbatthamaparājito,
Sabbattha mutto asito1 sabba
passati cakkhumā.
Sabbakammakkhaya2ppatto vimutto upadisa
khaye,
So mayha
bhagavā satthā tassa rocemi sāsananti.

 

이 환영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며 이 재난은 타인이 만든 것도 아니니

원인을 연유로 생겨났다가 원인이 멸하면 사라져버리네.

마치 어떤 씨앗이 밭에 뿌려져 흙의 자양분을 연유로 하고

습기를 조건으로 하여 그 두가지로 성장하듯이.

이와 같이 존재의 다발과 구성요소 또는 이들 감각영역들은

원인을 연유하여 생겨났다가 원인이 소멸하면 사라져버리네.”

 

“This form is not made by me, nor is the misfortune done by another,
On account of causes come together, when the causes vanish will cease
As though a certain seed placed in the field would grow,
Coming to contact with earth and dampness,
In the same manner on account of the masses, elements
And the thirty-six spheres it arose and when the causes vanish, it will cease.”

 

 

10. 빅쿠니 와지라(Bhikkhuni Vajira)

 

Kinnu sattoti paccesi māradiṭṭhigatannu te,
Suddhasa
khārapuñjoya nayidha sattūpalabbhati.
Yath
ā hi agasambhārā hoti saddo rato iti,
Eva
khandhesu santesu hoti sattoti sammuti3.
Dukkhameva hi sambhoti dukkha
tiṭṭhati veti ca,
N
āññatra dukkhā sambhoti nāññatra dukkhā nirujjhatīti.

 

그대는 왜 뭇삶이라고 집착하는가? 악마여, 그것은 그대의 사견일 뿐.

단순한 행위()의 집적인데 여기서 뭇삶을 찾지 못하네.

 

마치 모든 부속이 모여서 수레라는 명칭이 있듯이.

이와 같이 존재의 다발에 의해 뭇삶이란 거짓이름이 있다네.

 

괴로움만이 생겨나고 괴로움만이 머물다가 사라진다.

괴로움밖에 생겨나지 않으며 괴로움밖에 사라지지 않는다.”

 

“Māra, you are with a view, what do you take for granted as a being?
Here you do not gain a self, it's completely a mass of determinations
Just as all parts put together is called a chariot.
Even so when the masses are present, it is accepted as a being.
The produced unpleasantness stays and fades
Nothing other than unpleasantness is produced and ceases”

 

(빅쿠니상윳따S5.1, 전재성님역)

 

  빅쿠니상윳따(S5.1).docx  빅쿠니상윳따(S5.1).pdf

 

 

현전승가와 사방승가

 

일반적으로 승가라고 하면 비구와 비구니 승가를 말한다. 이런 승가는 현전승가사방승가로 나눌 수 있는데, 현전승가는 시간-공간적으로 제한된 사방승가의 지역승가공동체를 말하고, 사방승가는 시간적으로 삼세에 걸쳐 확대되고 공간적으로는 우주적으로 확대되는 보편적승가를 지칭한다.

 

이런 승가에 재가자는 포함 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비구와 비구니가 재가자로부터 사대필수품 등 물질적 보시에 의존해야 하므로, 재가자 없이 비구와 비구니만의 승가이념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부대중 (cattāri-parisadāni)

 

넓은 의미의 승가로서 사부대중 (cattāri-parisadāni)’ 이라는 말도 쓰이고 있다. 이때 사부대중은 모든 불제자를 총칭하는 말이다.

 

사부는 출가와 재가, 남자와 여자에 따른 구분이다. 출가자의 경우 비구(比丘, bhikkhu)와 비구니(比丘尼, bhikkhuni)로 구분되고, 재가자의 경우 우바새(優婆塞, upãsaka)와 우바이(優婆夷, upāsika)로 구분된다.

 

이 때 우바새와 우바이는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은 사람을 말하며, 출가자를 받들고, 생활필수품을 보시하고, 그 지도를 받아 재가생활을 영위하면서 동시에 수행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한편 비구와 비구니는 출가한 남성 수행자와 여성수행자를 말하는데, 공히 구족계 (具足戒,upasampadā)를 받는다.

 

계맥이 단절된 비구니 승가

 

이렇게 승가와 사부대중은 부처님당시부터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재 테라와다불교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비구니 승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삭발, 염의하고 8계만을 평생지키는 일종의 정학녀만이 존재할 뿐이라 한다. 이런 정학녀를 미얀마에서는 틸라신 (Thilashin)’이라고 한다. 

 

원래 부처님 당시에 비구니 승가가 있었지만, 오래전에 전란과 기근 등으로 테라와다불교의 종가집이라 볼 수 있는 스리랑카에서 비구니 계맥이 단절 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테라와다불교 국가에서는 비구니 승가는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비구니 승가의 복원 움직임

 

그런데 2009년 비구니 승가의 복원 움직임이 있었다. 불교포커스에 실린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 9 22일 호주의 퍼스(Perth)에서 이뤄진 네 명의비구니 수계는 이 사찰이 소속된 태국 승단(Wat Pah Pong Sangha))에서 엄중 경고를 받아 왔었고, 그 경고를 무시한 대가로 태국의 승단에서는 이수계를 주도한 아잔 브라흐마왐소(Ajahn Brahmavamso) 스님을 제명하였던 것이다. (이번수계에 대해 구미 출신 스님들은 대개찬성의 뜻을 밝히고 있지만, 남아시아의 테라와다 중심부에서는전통을 내세우며 대체로반대하는 분위기이다.)

 

 

 

 

▲2009년  9월 22일 구족계를 받은 네 명의 비구니

 

 

 

▲ 비구니 수계를 주도하여 태국 승단에서 제명된 아잔 브라흐마왐소 스님  

 

 

(전통(傳統)인가, 구습(舊習)인가? - 테라와다 불교의 비구니수계와 조계종의 비구니 인사를 보며, 불교포커스 2009 12 09)

 

전통(傳統)인가 구습(舊習)인가-테라와다불.docx 전통(傳統)인가 구습(舊習)인가-테라와다불.pdf

 

 

비구니 승가의 계맥이 끊어진 테라와다 불교국가에서 비구니승가 복원움직임이 일어 났다는 것이다. 서양출신 비구니 스님들에 대한 구족계를 테라와다 불교 국가가 아닌 호주에서 준 것이다. 이를 주도한 이는 호주 출신 아잔 브라흐망소비구인데, 현재 태국 승단에서 제명된 상태라고 한다.

 

대애도비구니경의 팔경계

 

이러면으로 보았을 때 테라와다 불교 국가에서는 아직까지 철저하게 비구위주의 승가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비구니 승가는 존속하고 있다. 하지만 그 활동은 제한적이다. 거의 모든 것이 비구승 위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승경전의 대애도비구니경(大愛道比丘尼經)를 보면 알 수 있다.

 

대애도비구니경에 따르면 팔경계라 하여 비구와 비구니의 차별을 두고 있다. 이는 모든 것이 민주화된 시대에 있어서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이다.

 

최상의 법을 보는 자에게

 

그러나 초기불교경전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남녀 성차별은 보이지 않는다. 누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면 궁극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있다. 초기경에서 마라가두 손가락만큼의 지혜를 지닌 여자로서는 그것을 얻을 수가 없네라며 비아냥대자, 소마비구니는  다음과 같이 답한 것이다.

 

 

Itthibhāvo ki kayirā cittamhi susamāhite,

äāamhi vattamānamhi sammā dhamma vipassato.

Yassa nūna siyā eva itthāha5 purisoti vā,

Kiñci vā pana aññasmi ta māro vattumarahatīti.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법을 보는 자에게

지혜가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나는 남자다 나는 여자다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이다라고 말해야 한다면 그는 악마일 뿐이리.”

 

 

최상의 가르침을 배우는 부처님의 제자들에 남녀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 남녀 차별을 하여 여자는 도를 이루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는 다름아닌 마구니와 같다고 보는 것이다.

 

재가자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깨달음을 이루는데 있어서 비구와 비구니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또 출가자와 재가자의 차이도 있을 수 없다. 단지 출가자가 도를 이루기 위한 더 좋은 조건을 갖추었을 뿐이다. 그렇게 본다면 위 게송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바꾸어 볼 수도 있다.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법을 보는 자에게

지혜가 나타난다면 재가자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나는 출가자다 나는 재가자다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이다라고 말해야 한다면 그는 악마일 뿐이리.”

 

 

 

 

2012-02-2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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