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전체상도 부분상도 취하지 않는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승리의 경 위자야경(Sn1.11)

담마다사 이병욱 2012. 2. 29. 11:13

 

 

전체상도 부분상도 취하지 않는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승리의 경 위자야경(Sn1.11)

 

 

 

위자야경

(Vijaya sutta-승리의 경, Sn1.11)

 

 

승리의 경.

[Vijaya sutta](*1)

 

주해(*1)

여기서 승리란 감각적 욕망에 대한 승리라는 뜻이다. 이 경의 다른 이름은 ‘몸에 대한 욕망을 떠나는 경’이라고 불린다. 이경이 설해진 동기는 두 가지가 있다.

 

1)

세존께서 까삘라밧투에 도착해서 싸끼야족들을 교화하고 난다 등을 출가시키고, 약혼한 부인들을 출가시키기 위해, 난다 장로의 자매인 케마까싹까왕의 딸인 난다, 아비루빠난다, 자나빠다깔리야니난다의 세 난다를 출가 시켰다.

 

그런데 세존께서 사왓티에 계실 때에 였다. 자매들은 자신들의 아름다움에 빠져 ‘세존께서는 아름다움을 헐뜯고 비난하고 여러 법문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위험을 가르치고 있다’고 세존께 접근하려고 하지 않고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비루빠난다의 결혼식 날에 남편인 싸끼야꾸마라가 죽었다. 부모는 그녀를 내키지않지만 출가시켰다. 자나빠다깔리야니난다도 존자 난다가 아라한의 지위를 성취하자 모든 친지들이 출가한 것을 알고, 친지가 없는 재가의 생활에 낙이 없어 신심은 없지만 출가 했던 것이다.

 

그후 세존께서는 그녀들의 지혜가 성숙한 것을 알고는 먼저 나타난 아비루빠난다에게 나타나 신통으로 해골들의 도시를 만들어 보여주었다. 그녀들은 이로서 차례로 아라한의 지위에 뜻을 세웠다.

 

그리고 어느날 사왓티의 주민들이 향과 꽃을 가지고 제따바나로 가서 비구니들과 함께 부처님의 법문을 들었다. 법문이 끝날 즈음에 부처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도시로 돌아갔고, 비구니들은 법문을 듣고 비구니 처소로 갔다.

 

이 때 사람들과 비구니들은 세존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말했다. 부처님은 색신의 표준, 음성의 표준, 겸허의 표준, 심성의 표준의 모든 관점에서 아름답다고 말했다.

 

자나빠다깔리야니난다는 비구니의 처소로 가서 여러 가지 관점에서 그들에게 들은 부처님의 아름다움에 관해 말했다. 그것을 듣고 비구니들은 세존을 찾았다.

 

부처님은 그녀들이 오는 것을 알고, 가시는 가시로, 쐐기는 쐐기로 뽑는 사람 처럼, 아름다움을 매혹적인 아름다움으로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신통력으로 십오륙세의 미인을 나투어 보였다. 난다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자신의 아름다움을 버리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다.

 

그러자 부처님은 차차 그녀가 나이가 들고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마침내는 죽어서 부패된 시체의 모습으로 나투었다. 그리고 병들고 부정하고 부패한 육신에 대해 노래한 게송을 읊자 난다는 진리의 흐름에 들게 되었다.

 

그후 세존께서는 더 높은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 공()에 수반하는 통찰의 명상수행 (vipassanakammattana)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이 경을 설했다.

 

 

2)

세존께서 라자가하에 계실 때에 쌀라바띠라고 하는 유녀의 딸이자 명의(名醫) 지바까의 여동생 씨리마가 자신의 어머니인 쌀라바띠가 죽자, 역시 유녀가 되었다.

 

‘분노는 분노하지 않음으로 이겨낸다’라는 게송에 대한 인연담에 따르면, 대부호 뿐나까의 딸인 웃따라가 부처님에게 공양하기 위해 남편을 보살필 것을 유녀인 씨리마에게 돈을 주고 맡겼으나, 씨리마는 자신이 고용된 자라는 사실을 잊고, 남편이 진짜 아내인 웃따라가 공양올릴 준비에 분주한 모습을 보면서 웃는 것을 보고는 질투심을 일으켜 그녀에게 끓는 기름가마를 부었다.

 

그러나 웃따라는 그것을 알고도 한량없는 자애의 마음을 일으켰기 때문에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고, 하인들이 그녀를 두들겨 팼지만 모두 용서했다. 감동한 씨리마는 그녀의 스승인 부처님께 용서를 구하고 세존으로부터 용서받는 법문을 듣고는 진리의 흐름에 든 이가 되었고, 여덟 명의 수행승에게 정기적인 공양을 올리게 되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지자 한 비구가 정기적인 공양을 받고자 찾아왔으나, 씨리마가 병들어 누워서 하인들이 수행승들을 음식을 대접하면, 그 자리에 씨리마가 나타났다. 그 비구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여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고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날 씨리마는 죽었다. 씨리마는 죽어서 야마천궁의 쑤야마의 비로 환생했다.

 

세존께서는 그녀의 시체를 화장을 금했고, 왕은 새 무덤에 그 시체를 방치했다. 세존께서는 그 수행승을 데리고 그곳에 도착했다. 시민들과 왕도 함께 있었다. 사람들은 ‘예전에 씨리마를 보기 위해 팔천 금 이상을 주었으나 오늘은 그녀를 몇 푼을 주고도 보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 때에 세존은 수행승들에게 ‘아름다운 영상을 보라’ 라는 시의 서두를 언급하며 이 경을 설한 것이다.

 

 

1. [세존]

“걷거나 또는 서거나 혹은 앉거나 눕거나 몸을 구부리거나 혹은 편다.

이것이 몸의 동작이다.

 

2. 몸은 뼈와 힘줄로 엮어있고, 내피(內皮)와 살로 덧붙여지고,

피부로 덮여져 있어,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는다.

 

3. 그것은 내장과 위, 간장의 덩어리, 방광,

심장, 폐장, 신장, 비장으로 가득 차 있다.

 

4. 그리고 콧물, 점액, , 지방,

, 관절액, 담즙, 임파액으로 가득 차 있다.

 

5. 또한 그 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더러운 것이 나온다.

눈에서는 눈곱, 귀에서는 귀지가 나온다.

 

6. 코에서는 콧물이 나오고,

입에서는 한꺼번에 담즙이나 가래를 토해내고,

몸에서는 땀과 때를 배설한다.

 

7. 또 그 머리에는 빈곳이 있고 뇌수로 차 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무명에(*1) 이끌려서

그러한 몸을 아름다운 것으로(*2) 안다.

 

8. 또 죽어서 몸이 쓰러졌을 때에는 부어서 검푸르게 되고,

무덤에 버려져(*3) 친척도 그것을 돌보지 않는다.

 

9. 개들이나 여우들, 늑대들, 벌레들이 파먹고,

까마귀나 독수리나 다른 생물이 있어 삼킨다.

 

 

주해(*1)

무명

 - 초기 불교에서 어리석음은 곧 무명(無明)을 말한다.

그것은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모르는 것을 의미한다.

 

"수행승들이여,

무엇을 무명이라고 하는가?

 

수행승 들이여 괴로움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괴로움의 생성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것을,

수행승들이여, 무명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 대해서 무지(無知)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조차 모른다.

그래서 그의 무지는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무지에 대한 무지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무지에 대한 무지는, 무지에 대한 무지에 대한 무지이다.

이러한 중층적인 무지의 구조 때문에 무명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주해(*2)

아름다운 것으로

 - 아름답고, 깨끗하고, 즐겁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해(*3)

무덤에 버려져

- 무덤에 버려진 시체에 대한 관찰은 부정관의 대상으로 골상, 충담상, 청어상, 농란상, 천공상, 팽창상이 있다. 골상은 해골과 뼈로 구성된 시체에 대한 지각, 충담상은 벌레들이 모여 우글거리는 시체에 대한 지각, 청어상은 푸르게 멍든 어혈을 지닌 시체에 대한 지각, 농란상은 고름이 가득찬 시체에 대한 지각, 천공상은 부패해서 갈라진 시체에 대한 지각, 팽창상은 부푼 시체에 대한 지각을 말한다.

 

 

10.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1) 수행승,

깨달은 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분명히 이해한다.

왜냐 하면 그는 있는 그대로(*2) 보기 때문이다.

 

11. 이것이 있는 것처럼 저것도 있고,

저것이 있는 것처럼 이것도 있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몸에 대한 욕망에서 떠나야(*3) 한다.

 

12, 이 세상에서 욕망과 탐욕을 떠난

그 지혜로운 수행승만이 불사와 적멸(*4),

곧 사멸을 뛰어넘는 열반의 경지에 도달한다.

 

 

주해(*1)

지혜로운

- ‘세가지 두루 앎을 통해(三遍知) 완전히 아는 것을 말한다.

 

1)알려진 것에 대한 두루 앎.(知遍知)

2)윤회의 바다에서 건넘에 관한 두루 앎.(度遍知)

3)번뇌의 끊음에 관한 두루 앎.(斷遍知)이 있다.

 

주해(*2)

있는 그대로

- 저것이 있는 것처럼 이것도 있고, 이것이 있는 것처럼 저것도 있다는 다음 시의 구절을 말한다.

 

주해(*3)

몸에 대한 욕망에서 떠나야

- 욕망이 있음으로 더러운 몸이 아름답게 보이니, 이것이 욕망이고, 저것은 아름다움이다.

 

주해(*4)

불사와 적멸

- 불사와 적멸은 모두 열반의 다른 이름이다.

 

 

13. 인간의 이 몸뚱이는 부정하고(*1) 악취를 풍기며,

가꾸어지더라도 온갖 오물이 가득 차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14. 이런 몸뚱이를 가지고 있으면서,

생각하건대 거만하거나 남을 업신여긴다면,

통찰이 없는 것이(*2)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주해(*1)

부정하고

- 일반적으로 니까야에서는 이 신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신체는 32가지의 부정물(不淨物)로 가득 차 있는 푸대자루와 같으며, 하나하나씩 그 내용물을 열거하여 분석적으로 그 부정(不淨)함을 관찰한다.

 

1) 피부까지의 다섯종류 : 머리카락, 몸털, 손톱, 이빨, 피부.

2) 신장까지의 다섯종류 : , 근육, , 골수, 신장.

3) 폐까지의 다섯종류 : 심장, 간장, 늑막, 비장, .

4) 뇌수까지의 다섯종류 : 창자, 장간막, 위장, 배설물, 뇌수.

5) 지방까지의 여섯종류 : 담즙, 가래, 고름, , , 지방.

6) 오줌까지의 여섯종류 : 눈물 임파액, , 점액, 관절액, 오줌.

 

주해(*2)

통찰이 없는 것

- 네 가지의 거룩한 진리를 볼 수 없는 것을 말한다.

 

 

- 승리의 경이 끝났다. -

 

 

 

(위자야경-Vijaya sutta-승리의 경, 숫따니빠따 Sn1.11, 전재성님역)

 

  위자야경(승리의 경-Sn1.11).docx  위자야경(승리의 경-Sn1.11).pdf

 

 

부처님의 여덟가지 승리

 

빠알리어 자야(jaya)승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자야망갈라가타(Jayamangala-gatha)에서 자야 역시 승리라는 뜻인데,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승리와 행운의 게송이라는 뜻이다. 이를 한역으로 吉祥(길상승리게)’라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승리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자야망갈라가타에서 여덟가지 부처님의 승리에 대한 것으로 잘 묘사 되어 있다. 그것은 악마 마라(Mara), 야차 알라와까(Alavaka), 미친 코끼리 날라기리(Nalagiri), 살인마 앙굴리말라(Angulimala), 거짓임신녀 찐짜 마나위까(Cinca Manavika), 브라흐민 삿짜까(Saccaka), 용왕 난도빠난다(Nandopananda), 범천 브라흐마 바까(Brahma Baka)에 대한 부처님의 승리이다.

 

그렇다면 여덟가지 케이스에 있어서 부처님은 어떤 방식으로 승리를 거두었을까. 이에 대하여 표를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자야망갈라가타에서 부처님의 여덟 가지 승리

게송

 

승리방법

1

악마

마라(Mara)

Dānādi dhamma vidhinā

다나디 담마 위디나

자비로운 가르침으로

2

야차

알라와까(Alavaka)

Khantī sudanta vidhinā

칸띠 수단따 위디나

인내와 자제로

3

미친 코끼리 날라기리(Nalagiri)

Mettambuseka vidhinā

멧땀부세까 위디나

자비의 세례로써

4

살인마 앙굴리말라(Angulimala)

Iddhībhi sakhata mano

이디비 상카따 마노

신통력으로

5

거짓임신녀

찐짜(Cinca)

Santena  soma vidhinā

산떼나 소마위디나

고요함과 부드러움으로

6

브라흐민

삿짜까(Saccaka)

Paññāpa dīpajalito

빤냐빠디 빠 잘리또

지혜의 불 밝혀

7

용왕 난도빠난다(Nandopananda)

Iddhūpadesa vidhinā

이두빠데사 위디나

신통력 보이시어

8

브라흐마

바까(Brahma Baka)

Ñāāgadena vidhinā

냐냐가데나 위디나

지혜의 의약으로

 

 

 

이렇게 부처님은 가르침으로, 자비로, 인내와 자제, 지혜로서 때로는 신통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킨 것이다. 그 어디에도 폭력적인 승리는 보이지 않는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승리

 

숫따니빠따에도 승리의 노래가 있다. 위자야경(Vijaya sutta)이다. 그런데 이 경에서 승리라는 의미는 자기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그것은 감각적 욕망에 대한 승리이다.  

 

젊고 아름답고 탄력있는 몸매의 소유자일지라도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온 갖 혐오스런 물질로 가득차 있다. 창자, 고름, 피 같은 32가지 부정물(不淨物)에 대한 것이다.

 

또 경에서는 시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죽어서 쓰러졌을 때 몸이 부어서 검푸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10가지 부정상(不淨想)에 대한 것이다. 이중 시체의 썩은 모습을 대상으로 10가지 부정상은 40가지 사마타 명상주제에 속한다.

 

40가지 사마타 명상주제

 

초기불교의 40가지 사마타 명상주제를 보면 다음과 같다.

 

 

 

40가지 사마타 명상주제

 

  

 

표를 보면 부정상에 대한 것은 시체에 대한 부었음, 검푸른 등을 주제로 명상하는 것인데 선의 경지로 보았을 때 초선까지 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다.

 

 

꺽고 싶은 욕망

 

아름다운 꽃이 있으면 누구나 좋아 한다. 그래서 보고 또 보고그것도 모자라 혼자 보고자 꺽기 까지 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아름다운 여인이 있으면 관심을 보이고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욕심이 발동한다. 그래서 아무리 소심한자라도 여인 앞에서는 용감해지고 삼각관계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이렇게 좋아하는 대상이 있으면 내것으로 취하고 싶고 꺽어 버리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마음이다. 그럼 꺽임에 수행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아낙네는 해탈 자를 유혹한다

 

부처님은 여인을 조심하라고 하였다. 특히 수행의 정도가 높을수록 더욱 더 조심하라고 하였다. 이런 당부의 말씀은 초기경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여인과 관련하여 숫따니빠따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Anagāriyupetassa bhikkhacariya jigisato1,
Muni pabr
ūhi me puṭṭho moneyya uttama pada.

 

가령 숲 속에 있더라도

불의 화염 같은 높고 낮은 것들이 나타난다.

아낙네는 해탈 자를 유혹한다.

아낙네로 하여금 유혹하도록 하지 말라.

 

 The mind reaches highs and lows like flames in the forest

Women seduce sages, do not be seduced by them.

 

(숫따니빠따 Sn3.11, 703번 게송)

 

 

사람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숲속에서 거주할지라도 아낙네는 수행자를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의 아낙내는 전재성님의 주석에 따르면 숲속에 놀로 오거나 땔감을 구하러 온 여인이라고 하였다. 특히 여인은 도력이 높은 수행자를 유혹하여 꺽어 버릴 수 있는데, 황진이와 지족선사의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 될 것이다.

 

도고마성(道高魔盛)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는 말이 있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그 만큼 마장도 많아져 수행자를 방해한다는 말이다. 그런 것중에 여인의 유혹은 결정적이다.

 

상윳따니까야 마음챙김에 머물지 않고, 감각기관을 절제하지 않을 때, 그는 거기서 가볍게 옷을 걸친 여인을 보게 되면 욕정의 마음이 그를 공격하기 시작한다(s19.10)”라는 말이 있듯이 알아차림을 놓쳤을 때 여인의 유혹에 대한 감각적 욕망은 발생한다.

 

여인의 하얀 이빨을 보고

 

그러나 부정상 수행으로 이를 슬기롭게 극복한 예도 있다. 청정도론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장로는 쩨띠야(Cetiya) 산으로부터 출발하여 아누라다뿌라(Anuradhapura)로 탁발을 가고 있었다. 어떤 집안의 며느리가 자기 남편과 말다툼을 한 뒤 천녀(天女)처럼 단장을 하고 꾸민 뒤 그 시간에 아누라다뿌라에서 나와 친정집에 가더 도중 길에서 장로를 보고 음란한 마음이 생겨 활짝 웃었다.

 

장로는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쳐다보다가 그녀의 이빨에서 부정상(不淨想, asubha-saññā)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녀의 이빨을 보고 이전의 상()을 기억했나니

그 자리에서 서서 장로는 아라한이 되었다. “

 

잠시 후, 그녀를 뒤따라오던 남편도 장로를 보고 ‘존자시여, 혹시 어떤 여인을 못 보셨습니까?’ 라고 여쭈었다. 장로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곳을 지나간 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겠노라

단지 뼈 무더기가 이 신작로를 지나가는 것만 보았도다.”

 

 (청정도론, 1장 계 54)

 

 

 

 

 

Forest bhikkhu

 

 

부부싸움 끝에 집을 나선 어느 여인이 마치 천녀처럼 꽃단장을 하고 어디론가 가는 중이었다. 이 때 탁발을 하기 위하여 길을 나선 장로비구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자 우리말 속담에 홧김에 서방질 한다고 여인은 장로비구를 꼬셔 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장로비구를 보고 하얀 이빨을 내 보이면서 씨익웃는 것이었다.

 

만일 장로비구 생각과 말과 행동을 절제하지 않고, 마음챙김에 머물지 않고, 감각기관을 절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여인의 유혹에 넘어 갔을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장로비구는 여인의 하얀 이빨을 보고 그 즉시 깨달았다. 그리고 아라한이 된 것이다. 왜 그랬을 까. 그것은 장로비구가 부정상을 닦았기 때문이다. 

 

시체에 대한 10가지 부정상(不淨想)

 

그런 부정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청정도론에 실려 있는 부정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로 요약하였다.

 

  

시체에 대한 10가지 부정상(不淨想)

No

  

     

1

부푼 것

바람에 의해 풀무가 팽창하듯이 생명이 끝난 후부터 서서히 팽창하고 부푼 것

2

검푸른 것

검푸르게 변하여 퇴색되어 가는 것

3

문드러진 것

끊어져 나간 곳에 고름과 함께 흘러내리는 것

4

끊어진 것

두 동강으로 끊어지면서 벌어져 있는 것

5

뜬어 먹힌 것

개와 자칼등에 의해 여기저기 여러가지로 뜯어 먹힌 것

6

흩어져 있는 것

여기에 손이 있고, 저기에 발이 있고, 저 너머에 머리가 있는 것

7

난도질 당하여 뿔뿔이 흩어진 것

까마귀의 발자취의 형태처럼 사지가 칼로 난도질 되어 뿔뿔이 흩어진 것

8

피가 흐르는 것

피가 묻어 있고, 피를 뿌리고, 여기저기서 피가 흘러 내리는 것

9

벌레가 버글 거리는 것

구더기들이 버글 거리는 것

10

해골이 된 것

뼈다귀를 말하며 혐오스럽고 넌더리가 나는 것

(출처; 청정도론, 6장 부정의 명상주제)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썩기 시작한다. 그래서 24시간이 경과하면 살이 썩어 문드러지고, 26시간이 경고하면 구더기가 생기기 시작한다고 한다. 이렇게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썩어문드러진 시체를 보고 명상을 하는 것이 열 가지 부정상 수행이다. 그런데 이중 열번째 해골이 된 것이 쩨띠야산에서 장로비구가 여인의 하얀이빨을 본 것과 관련 되어 있다. 

 

부정상 수행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해골이 된 것은 뼈다귀를 말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이라도 죽은 여인의 뼈다귀를 보면 혐오스럽고 넌더리가 나게 마련이다. 해골이 된 몸의 뼈를 보고 장로비구는 부정상 수행을 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해골이 된 것에 대한 부정상 수행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일까. 청정도론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해골이 된 것은 “그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로 얽히어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방법으로 여러 형태로 설하셨다.

 

그러므로 앞서 설한 방법대로 그것이 버려진 곳에 가서 주위의 돌 등에 대해 그것의 표상도 함께 만들고 대상과 연관지어 ‘이것은 해골이다.’라고 본성의 상태에 따라 주시하고 색깔 등을 통해 열한 가지 방법으로 표상을 파악해야 한다.

 

색깔에 따라 희다고 볼 때 그 표상은 [본성의 상태에 따라]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흰 까시나와 혼합되어버린다. 그러므로 ‘해골’이라고 혐오스런 것으로 쳐다보아야 한다.

 

(청정도론, 6장 부정의 명상주제 78)

 

 

묘지등에 버려진 해골을 보고 이에 대한 표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뼈 무더기를 보면 자연스럽게 해골이 떠 올려지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장로비구는 뼈를 보면서 부정상 수행을 닦았기 때문에 여인의 하얀 이빨을 보자 이전에 닦은 상을 기억해 내고 그 여인이 뼈다귀가 이어져 있는 해골로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뒤쫒아 온 남편이 어느 여인이 이 길로 갔는지 물어보자 장로비구는 단지 뼈 무더기가 이 신작로를 지나가는 것만 보았도다.”라고 답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행일까

 

위자야경은 감각적 욕망에 대한 승리의 경이다. 감각적 욕망에 대하여 승리하기 위하여 부처님은 32가지 부정물과 10가지 부정상을 닦아야 할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런 수행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시체를 보면서 표상을 떠 올려 선의 경지에 오르는 10가지 부정상 수행이 그렇다. 그렇다면 감각적 욕망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없을까. 이에 대하여 네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인을 볼 때

 

첫 번째 방법은 여인을 볼 때 가족처럼 생각하라는 것이다. 즉 연상의 여인은 어머니로, 중년의 여인은 누이로, 젊은 여인은 딸로 보라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여성이 남성을 볼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래도 감각적 욕망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

 

나를 낳아 준 어머니로

 

두 번째 방법은 시작이 알려지지 않은 윤회를 반조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청정도론에서 자애수행을 인용한 것이다. 자애수행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전생에 나의 어머니가 되어서 나는 열 달 동안 그녀의 모태에서 지냈으며, 태어난 뒤 오줌, 똥, 침, 코 등을 마치 전단향처럼 역겨워 않고 치워주고 가슴에 안고 놀아주었으며 등에 업어서 키워주었을 것이다.”

 

(청정도론, 9장 거룩한 마음가짐 36)

 

 

전생에 누구나 한 번쯤 나를 낳아 준 어머니이었을 것이라 한다. 그래서 여인을 볼 때 나를 낳아 준 어머니로 보는 것이다. 이는 대상이 전생에 아버지 이었을 수도 있고, 딸 이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감각적 욕망이 생긴다면 또 어떻게 해야 할까.

 

저기 오온이 걸어간다

 

세 번째 방법은 대상을 오온으로 보는 것이다. 여인이 아닌 다섯가지 무더기로 보는 것이다. 대상을 정신-물질의 다섯가지 조합으로 본다면 그런 다섯가지 무더기에 대하여 감각적 욕망이 일어 날 수 있을까. 그래서 아름다운 여인이 걸어가면 저기 오온이 걸어간다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도 감각적 욕망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전체상도 취하지 않고 부분상도 취하지 않는다

 

네 번째 방법은 감각기관을 잘 지키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강조하던 사항으로서 눈으로 볼 때, 귀로 들을 때, 코로 냄새 맡을 때, 혀로 맛을 볼 때, 몸으로 접촉이 일어 날 때, 마음에서 생각이 일어 날 때 감각의 문을 잘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전체상도 취하지 않고 부분상도 취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눈으로 형상을 보게 되면 저 것이 여자라든가 남자라든가 하는 ‘전체적인 표상’을 취하게 된다. 그래서 여자를 볼 경우 아름답다든가 매력적이다라는 ‘개념’이 달라 붙는다. 이것이 전체상(全體相)’이다.

 

다음으로 보게 되는 것이 부분적으로 보게 된다. ‘코가 높다든가 눈이 크다든가 가슴이 크다든가 등이다. 이것이 부분상(部分相)’이다. 다른 말로 세상(細相)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대상에 대하여 부분상을 취하면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에 번뇌가 발생한다. 따라서 전체상도 취하지 말고 부분상도 취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감각의 문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보아야 하는데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알아차림이다.

 

그런면으로 보았을 때 불교수행은 알아차림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팔만사천가지 법문을 단 한 단어로 줄였을 때 알아차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2012-02-29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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