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존재들 가운데 어떠한 실체도 발견하지 못한다” 우담바라 핀 청계사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12. 4. 9. 16:02

 

 

존재들 가운데 어떠한 실체도 발견하지 못한다우담바라 핀 청계사에서

 

 

 

4월도 초순을 지나 중순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지만 여전히 날씨는 쌀쌀하다. 그러나 오는 봄은 막지 못하는 것 같다. 이미 오래 전에 피었어야 할 개나리가 만개 하고 있고, 목련은 꽃잎이 벌어지고 있다. 벗꽃나무에는 꽃망울이 맺쳐 있어 몇 일만 지나면 세상은 드라마틱하게반전할 것이다.

 

청계사 가는 길

 

기온이 급상승한 일요일 청계사를 찾았다. 가까이 있어서 십수년전부터 즐겨 찾는 곳이다. 청계사로 가는 길은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비포장 도로에다 소 등을 키우는 주변의 농가가 있어서 도심속의 농촌모습을 만끽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에 엄청난 변화를 보이고 있다. 큰 도로에서 시작 되는 절의 입구에 해당되는 도로주변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섬에 따라 이제 더 이상 농촌의 낭만적인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대신 모든 절로 가는 모든 도로가 포장됨에 따라 승용차로 편하게 절의 턱밑까지 접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청계사는 외형상 많은 변화를 보였다.

 

청계사에 대규모 중창불사가 있었다. 극락보전 등 오래된 전각 3채가 문화재로 등록되어 고풍을 간직하고 있지만, 2000년을 전후하여 큰 불사가 이루어짐에 따라 새로운 전각들이 들어서서 오늘날 가람으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경허선사 등 5명의 대선사 부도비가 조성되어서 성역화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그런 원동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우담바라 핀 청계사

 

청계사 입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커다란 자연석 위에 붉은 글씨로 새겨진 우담바라 핀 청계사이다. 청계사의 정체성을 나타내주는 하나의 상징어라고 볼 수 있다.

 

 

 

 

 

 

 

 

 

 

매번 청계사에 올 때 마다 마주치는 것은 우담바라 핀 청계사라는 문구이다. 그래서 종종 자세히 살펴 본다. 바위의 뒷면에는 우담바라와 관련된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바위를 바라보고 우측으로 돌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위 우측에 다음과 같은 시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삼 천년만에 한번 울어

피어나는 꽃이로다.

아니 아니 해마다 내 눈으로 네 눈으로

피어나는 꽃이로다.

어찌 옛 인도 우담바라만 이리오

우리 들의 밀물 보다 너울지는 꽃이로다.

 

-고은-

 

 

 

 

 

 

 

 

 

고은시인의 우담바라꽃에 대한 시이다. 이 시에 대한 유래가 궁금하였다. 그래서 시문구를 통째로 키워드로 하여 검색한 결과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성타 스님(불국사 주지·사진)은 지난 11 7일 청계사에서 열린 우담바라 만개 기념 108일 무차정진 대법회에서어떠한 현상을 당하든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는 요지의 법문을 했다.

청계사와 불국사 신도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1000여 사부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봉행된 이날 대법회에서 성타 스님은청계사에 핀 우담바라 꽃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기쁨과 환희심의 정도가 정해지는 것이며 우담바라 만개를 계기로 마침 무차대법회가 열리고 있으니 여러 불자님들은 이 기회에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기도와 공양을 통해 바른 불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스님은 또 청계사 우담바라 꽃을 전국의 불자들이 직접 친견하고 신심증장과 정진의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고은 시인은 이날 오전 성타 스님에게 청계사 우담바라를 주제로 한 시를 지어 보냈다.


민족시인 고은

3
천년만에 한번 울어
피어나는 꽃이로다.
아니
아니
해마다
내눈으로
네눈으로
피어나는 꽃이로다
어찌 옛 인도 우담바라만 이리오
우리들의 밀물보다
너울지는 꽃이로다

 

(국사 주지 성타스님 청계사 법문, 법보신문 2004 8 10)

 

 

2004년도 법보신문 기사에 따르면 청계사의 우담바라 만개 무차대회에서 천여명에 달하는 사부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고은시인이 쓴 우담바라와 관련된 시를 보내 왔다고 한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바위에 새겨진 시인의 시는 청계사에 핀 우담바라꽃에 대한 찬탄의 시라고 볼 수 있다.

 

부처님의 감응이 우담바라로 나투신 것인가

 

바위 뒷면으로 돌아가 보았다. 뒷면 바위에는 청계사불사연기문이 국한문 혼용으로 빼곡히 기록 되어 있다. 청계사와 우담바라꽃에 대한 불사이야기이다. 바위에 새겨진 내용을 옮겨 보았다.

 

 

법계제법이 성주괴공을 거듭하니 만사무상이라.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무수한 풍상을 거치며 지금에 이르니 흥망성쇠가 몇번 이었던가. 종상대화상이 청계사 주지로 월임하여 부처님의 교화를 도우며 수행정진하던 차에 절의 쇠락함을 안타깝게 여겨 지성한 원력으로 각종 불사를 발원함에 부처님의 감응이 우담바라로 나투신 것인가.

 

2544 10 17일 관세음보살님 용안에 우담바라가 상서로운 빛을 발하시니 사부대중이 용약환희하여 108일 무차철야정진대법회를 봉행하고 21분의 고승대덕이 사자후를 하시니 전국의 불자들이 운집하여 장사진을 이루고 불퇴전의 신심을 얻게 되도다.

 

이에 주지스님과 대중스님 및 15개 신행단체회장외 많은 신도들이 철야정진기원법회를 병행하며 일심으로 연을 모아 경진년 사찰주변석축과 중정보장등을 완공하니 실로 수행도량으로서의 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 청계사 사부대중은 수행정진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니 복과 지혜가 가히 항사에 견줄만함이로다. 이에 불사의 전말을 기록함에 무상의 종지에 위배될까 망설임이 있었느나 후세에 교훈이 되고자 간략히 서술하여 남기노라.

 

불기 2546년 임오 성하 기록 비구 종천근서

 

 

대중질

 

 

증명

총무원장 정대 대화상

 

증명

법주사 회주 혜정대화상

 

청계사

주지 종상대화상

부주지 성행화상

기획 신행화상

노전 정타화상

부전 무아화상

 

(바위에 새겨진 청계사불사연기문)

 

 

 

 

 

 

 

 

 

시작은 종상스님으로 시작 되었다. 종상스님이 청계사 주지로 발령받고 와 보니 가람이 쇠락하여 중창불사의 필요성을 느끼던 차에 극락보전의 관세음보살상의 안면에 핀 우담바라 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삼천년만에 한 번 핀다는 전설속의 꽃 우담바라가 그것도 관세음보살의 용안에 피었다는 것에 대하여 매우 상서스러운 현상으로 본 것이다. 이때가 불기 2544년이라 한다. 서기로 2000년이다.

 

이때부터 철야정진 기도회와 무차대회를 열었는데 전국에서 신심있는 불자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고 한다.

 

방송에서는 풀잠자리알일 뿐이라고

 

이런 현상에 대하여 그 때 당시 TV등 매스컴에서 대서특필 된 바 있다. 그리고 논란이 분분하였다. 진짜 우담바라 꽃인지에 대하여 심층취재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우담바라가 아니라 풀잠자리알일 뿐이라고 보도 하였다.

 

 

 

 

 

 

우담바라 우담바라 송이가 피어있는 대세지보살상 

 (오마이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사는 계속 이루어졌다. 우담바라 꽃이 발견되고 난 2년 후인 2002년에 우담바라 핀 청계사라는 문구가 써진 바위돌을 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주지스님의 원력과 때 마침 우담바라 꽃이 피어 청계사는 몰라 보게 달라졌다. 새로운 전각들이 새워지고 중앙마당은 모두 매끈한 대리석으로 교체되어 상시기도처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경허, 만공, 보월, 금오, 월산 스님등 근현대를 대표하는 5인의 부도탑이 조성되었고 주변을 성역화 한 것이다.

 

우담바라 꽃은 없다

 

우담바라꽃은 실재하는 것일까. 우담바라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사실 알고 보면 풀잠자리알에 불과하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우담바라꽃이 피었다고 하여 뉴스로 전하는데 불자들이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우담바라와 관련된 글을 검색하여 보았다. 가장 먼저 후박나무님의 글을 들 수 있다. 후박나무님은 카페에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 내었다.

 

 

1996년에 그리고 2000년도에도 저 잠자리 알이 불상에 붙어 있는 걸 가지고 우담바라라고 선전하며 우담바라법회를 했던 사찰들이 있었습니다. 작년에도 우담바라 꽃이 피었다고 현수막을 걸어놓고 선전하는 사찰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우담바라 친견법회를 계획하고 있는 사찰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설령 '한국불교대사전'의 설명이 잘못되어 그런 미혹한 행위를 했다 하더라도, 이제는 잠자리 알을 가지고 '우담바라 친견 법회'를 하는 사찰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 

 

(후박나무님, 우담바라 꽃은 없다)

 

 

후박나무님은 우담바라는 없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가장 먼저 경전적 근거를 들고 있다.

 

대승경전에서 전하는 우둠바라 (Udumbara)

 

우담바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우둠바라 (Udumbara) 이다. 인도에서 유래된 말로서 한자어로 우담바라라고 음역한 것이다. 그런 우담바라는 매우 휘귀한 꽃으로 알려져 있다. 대승경전에서 전하는 우담바라에 대한 것은 다음과 같다.

 

 

“선남자여, 마음대로 물으라. 지금이 물을 때니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하나하나 설명해 주겠다. 그 까닭을 말하면 부처님을 만나기 어려움이 우담바라꽃과 같고, 법도 그러하여 듣기 어려우며, 12부 경전에서 방등경이 더욱 어려우니, 그러므로 전일한 마음으로 들어야 하느니라.

 

(대반열반경)

 

 

"왜냐하면 여래의 출현은 우담바라꽃처럼 드물며, 대해를 표류하는 나무 구멍에 가끔 떠오르는 거북의 머리가 쏙 들어가는 경우처럼 드문 일이기 때문이옵니다."

(법화경)

 

 

“너희들은 마땅히 생각하라. 여래가 때때로 세상에 나오는 것은 마치 우담발라꽃이 가끔 한번씩 피는 것과 같다.

 

(장아함경

 

 

대승경전인 대반열반경과 법화경에 따르면 부처님의 출현에 대하여 우담바라꽃을 보는 것과 같이 휘유한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부처님 법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산스크리트어로 된 초기경전을 한역한 장아함경에서도 부처님의 출현에 대하여 우담바라 꽃이 가끔 피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둠바라(Udumbara)와 무화과나무

 

이처럼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이 우담바라인 것이다. 그런데 가끔 필때가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담바라꽃이 동아시아 불자들이 생각하는 상상속의 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의 우담바라는 늘상 보는 것이라 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무화과나무를 뜻한다. 그래서 산스크리트어 우둠바라 (Udumbara)는 정식 학명이 Ficus Glomerata the glomerous fig-tree 라는 인도 등 남방에 실제로 존재하는 무화과 나무라는 것이다.

 

 

 

 

 

 

 

 

나무(Ficus racemosa)

 

 

 

이처럼 무화과나무의 일종인 우둠바라는 꽃을 피우지 않고 곧바로 열매가 열리는 나무이기에 꽃이 피는 일이 없는데, 이상기후나 그 밖의 다른 이유로 인하여 가끔 꽃이 피는 때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둠바라꽃이 피었을 때 매우 희귀하고 희유한 일로 여기는 것이다.

 

이처럼 꽃이 피지 않는 나무에서 꽃이 핀 현상을 보고 경전에서 전륜성왕이나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투는 일대사건으로 묘사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불교에서 우담바라꽃이 왜 상서로운 꽃으로 알려지게 되었을까. 그것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한다.

 

우담바라가 전설의 꽃이 된 사연

 

우담바라비유가 실려 있는 경전이 중국에 전래 되었을 때 중국인들은 인도의 우둠바라에 대하여 잘 몰랐다. 그러다보니 신비의 꽃으로 여기게 되었고, 더구나 법화경을 주석한 천태지의대사는 공중에 피는 상서로운 꽃...삼천년만에 한번 피며, 그 때는 전륜왕이나 부처님이 나투신다”라고 주석하였다. 이것이 우담바라가 삼천년에 한 번 피는 꽃으로 전설화되고 신비화 되는 단초를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공중에서 삼천년에 한번 피는 전설적인 꽃으로 둔갑한 우담바라에 대하여 사람들은 보기를 원하였다. 특히 법화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인 일본에서 우담바라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일어났는데, 우연히 불상에 나타난 자그마한 꽃을 보고 누군가 우담바라가 피었다고 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와전 된 것이다. 풀잠자리가 알을 낳아 부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1946년판 일본 불교사전에 따르면 우담바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고 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일본)에서는 풀에 청령(잠자리)의 난자()가 붙은 것"을 우담바라꽃이라고 생각하고 길조라 여겨왔는데 이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신에 불과하다

 

(우담바라, 1946년판 일본 망월불교대사전(望月佛敎大辭典)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불상 등에 핀다는 우담바라가 풀잠자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전을 통하여 알렸고, 이에 현혹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왜 우담바라꽃 열풍이 불었을까.

 

배끼려면 제대로 배껴야 한다

 

이미 오래전에 결론난 우담바라꽃에 대한 논란이 한국에서 열풍으로 이어진 것은 한국불교학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다. 그것은 다름아닌 한국불교대사전에 대한 것이다. 한국불교대사전에서 우담바라에 대하여 “청령(잠자리)의 난자()가 붙은 것을 우담발화라고 함”이라고 단순하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단지 풀잠자리알이 부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을 우담바라라고 굳게 믿게 된 것은 한국불교대사전의 영향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대체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런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TV를 처음으로 생산하던 시절 이야기이다. 그 때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전자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이웃나라 일본에서 기술을 들여와야 했다. 그런 기술중의 하나가 고주파 부품이다. 그래서 일본 도면을 ‘엎어 놓고’ 배껴 생산하곤 하였다. 그런데 원리를 모르고 데드카피만 하다보니 문제가 발생하였다. 똑같이 배꼈음에도 불구하고 성능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중에 조사해보니 철판에 구멍이 하나 뚫려져 있지 않았음을 발견하였다. 배낀 기술자가 도대체 왜 그 부위에 구멍을 냈는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어서 없어도 되는 것인줄 알고 무시한 것이다. 그런데 그 구멍을 뚫어주니 성능이 제대로 나왔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배낄려면 제대로 배껴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단지 풀잠자리알에 불과한 것을 우담바라꽃이라고 착각하지 않기를 바라는 내용이 분명이 1946년판 일본불교사전에 실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풀에 청령(잠자리)의 난자()가 붙은 것"을 우담바라꽃이라고 생각하고 길조라 여겨왔음”이라고 만 설명하고, 그 뒤에 붙는 진짜 중요한 내용인 “이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신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생략한 것이다. 이를 두고 배끼려면 제대로 배껴야 한다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초기경전에서 본 우담바라

 

우담바라꽃이라고 불리우는 것은 우담바라가 아니라 풀잠자리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그런 우담바라는 초기경전에 따르면 하나의 비유로 사용된 인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무화과 나무의 일종이라 한다.

 

꽃이 피지 않는 나무인 무화과에서 꽃이 피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것으로서 좀처럼 보기 힘든 현상이기 때문에 초기경전에서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는데, 대승경전 뿐만 아니라 초기경전에서도 우담바라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초기경전에서 우담바라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을까. 검색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앗싸타, 니그로다, 벨라카, 우둠바라와 같은 유액나무들의 어린 부드러운 나무가 있다고 하자. 사람이 그것을 날카로운 도끼로 곳곳을 자른다면 흰 액체가 나오겠는가?

 

(키라룩코빠마경- Khīrarukkhopamasutta-유액나무와 함께경, 상윳따니까야 S13. 1. 18. 4, 전재성님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싸끼야 족이 사는 씰라바띠에 계셨다.

그때 많은 수행승들이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악마 빠삐만이 한 성직자의 모습으로 몸을 나타내어 큰 상투를 틀고 산양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늙어서 서까래처럼 된 등을 구부리고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우담바라 나무로 된 지팡이를 들고 수행승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수행승들에게 이야기했다.

 

(삼바훌라경-Sambahulasutta -많음경, 상윳따니까야 S4.4.3.1, 전재성님역)

 

 

수행승들이여, 씨앗은 아주 작지만 몸집이 커다란 어떠한 큰 나무들이 모든 나무를 덮치면 모든 나무들은 덮쳐져서 파손되어 무너져버리는가? 예를 들어 앗싸타수, 니그로다수, 필락카수, 우둠바라수, 갓차까수, 까삣타까수가 있다. 수행승들이여, 씨앗은 아주 작지만 몸집이 커다란 이러한 큰 나무들이 모든 나무를 덮치면 모든 나무들은 덮쳐져서 파손되어 무너져버린다.

 

(룩카경-rukkha sutta- 나무경, 상윳따니까야  S46, 전재성님역)

 

 

호랑이가 다니던 길에 사는 자여, 만일 선남자가 수입은 적은데 호화로운 생계를 꾸려간다면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사람은 무화과를 먹듯이 재물을 낭비하는구나.’라고 말한다.

 

(디가자누 경, 앙굿따라니까야-A8:54, 대림스님역)

 

 

초기경에서 우둠바라 또는 무화과 등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무화과 나무에서 꽃을 찾아도 얻지 못하듯

 

그런데 대승불교 경전에서 보는 것과 같은 비슷한 내용의 경이 있다. 가장 고층의 경전이라 불리우는 숫따니빠따에 우담바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Yo nājjhagamā bhavesu sāra vicīna pupphamīva3 udumbaresu,
So bhikkhu jah
āti orapāra urago jiṇṇamiva taca purāa.

 

무화과 나무에서 꽃을 찾아도 얻지 못하듯, 존재들 가운데 어떠한 실체도 발견하지 못하는 수행승은,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는 것처럼,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If someone does not see any essence in being, seeing it as a search for wood-apple flowers,
He gives up this and the other world, like the snake that discards the decayed skin.

 

(우라가경-Uraga Sutta-The Snake, 숫따니빠따 Sn1.1, 전재성님역)

 

 

숫따니빠따 뱀의 경에 실려 있는 5번째 게송이다. 이 게송에서 부처님은 존재들 가운데 어떤 실체도 발견할 수 없음에 대하여 무화과 나무의 꽃을 들어 비유하였다. 이때 무화과 나무는 빠알리어로 우둠바레수(udumbaresu)’로 되어 있다.

 

무화과의 꽃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숫따니빠따에서 비유된 무화과나무 즉, 우담바라는 법화경 등과 같은 대승경전에서 비유한 것과 내용이 다르다.

 

대승경전에서는 부처가 출현하는 것을 우담바라 꽃이 피는 것처럼 희유한 일이라고 설명하였지만, 초기경전에서는 우담바라꽃은 아예 존재하지 않은 것라 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5번 게송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고 한다.

 

 

이 시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한 때에 세존께서 싸밧띠에 계셨는데, 마침 그때에 어떤 한 바라문이 자신의 딸의 결혼을 앞에 두고어떤 천민도 지금까지 사용한 적이 없는 꽃으로 딸을 장식하여 시집을 보내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싸밧띠 시의 안팎에서 그러한 꽃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성품이 못된 바라문 자제들을 모아놓고는 그러한 꽃이 있는 장소를 물었다. 그들은 바라문에게무화과의 꽃은 지금까지 이 세상의 누구도 사용하지 않은 꽃이니 그 꽃으로 장식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바라문은 다음날 아침 식후에 아찌라바띠 강변의 무화과 숲으로 가서 꽃을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대낮이 지나 다음 강변으로 가보았다.

 

 꽃을 찾다가 지친 바라문은 거기서 명상수행을 하는 수행승을 만났는데 그는 바라문에게무화과의 꽃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허황된 말이니 자신을 피곤하게 하지 말라고 알려준다.

 

세존께서는 수행승의 의도를 알아채고 사념과 자만에 빠진 자를 위해 빛을 놓아 이 시들을 읊었다.

 

출처 : 나’ 찾으라는 종정의 법문

 

 

 

이터넷 토론카페에서 퍼 온 것이다. 숫따니빠따 우라가경의 5번 게송에 대한 설명에서 무화과 꽃이라는 것은 이세상에 없다고 하였다. 이 말뜻은 허황된 말에 끌려 달리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존재들 가운데 어떠한 실체도 있을 수 없다(not see any essence in being )”는 것이다.

 

이런 말은 부처님 당시 정통브라만교에서 말하는 개별적 실체가 있다는 아뜨만 사상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뜨만의 근원이자 존재 그 자체이고. 또 진리 그 자체라 불리우는 브라만 또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실체가 없음에 대하여 부처님은 무화과 꽃을 예를 들어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존재들 가운데 어떠한 실체도 발견할 수 없다!

 

이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된 것이 있다. 청정도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이와 같이 그들의 본성에 따라 정신물질을 구분한 뒤 중생이나 인간 등 세간에 통용되는 명칭(lokɑ-sɑmɑnna)을 완전히 제거하고, 중생이라는 미혹을 넘어서고, 미혹이 없는 경지에 마음을 안 주하기 위하여 여러 경을 통해서 ‘이것은 단순히 정신물질일 뿐이다. 중생도 없고 인간도 없다’라고 이 뜻을 대조하여 구분한다.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부품들이 모였을 때

수레라는 단어가 있듯이

무더기들이 있을 때

중생이라는 일상적인 말이 있다“

 

다시 설하셨다.

 

“도반이여,

목재와 덩굴과 진흙과 짚으로 공간을 에워쌀 때

집이라는 명칭이 있습니다.

그와 같이 뼈와 힘줄과 살과 피부로 공간을 에워쌀 때

몸뚱이(rupɑ,물질)라는 명칭이 있습니다.

 

다시 설하셨다.


“오직 괴로움이 생기고

괴로움이 머물고 사라질 뿐

괴로움과 다른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괴로움과 다른 것이 가라앉는 것도 아니다“

 

(청정도론, 18장 견청정, 25-27)

 

 

부품 들이 모여 수레라는 명칭이 있고, 재료들이 모여 이라는 이름이 있듯이 오온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 라는 것이다. 그런데 수레, , 나라는 것은 단지 이름과 명칭으로만 불리울 뿐이지 실체가 없는 것이라 한다. 단지 인습적으로 불리우는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체가 있다면 분해 하였을 때 수레를 이루고 있는 부품, 집을 이루고 있는 재료, 나를 이루고 있는 몸과 마음 등 오온이라 한다. 이런 것들이 실체가 있을 뿐이지 수레, , 나 등이라고 불리우는 것은 개념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실체가 없고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 하였다.

 

 

이와 같이 수백의 경지들에서 오직 정신물질을 설하셨을 뿐 중생을 설한 것도 아니고 인간을 설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굴대와 바퀴와 차체와 수레의 채 등의 부품들이 일정한 형태로 조립 되었을 때 수레라는 인습적인 표현이 있지만 궁극적인 뜻에서 각각의 부품들을 면밀히 조사하면 수레라는 것은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목재 등 집을 구성하는 부분들이 일정한 형태로 공간을 에워싸고 있을 때 집이라는 통상적인 표현이 있지만 궁극적인 뜻(pɑrɑmɑ-tthɑ)에서 집은 없다.

 

손가락과 엄지손가락 등이 일정한 형태로 있을 때 주먹이라는 종상적인 표현이 있고, 류트의 판과 현 등에서 류트라는 통상적인 표현이 있고, 코끼리와 말 등에서 군대라는, 성벽과 집과 성문 등에서 도시라는, 줄기와 가지와 잎 등이 일정한 형태로 유지되었을 때 나무라는 통상적인 표현이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나’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들이 있을 때 중생이나 인간이라는 통상적인 표현이 있을 뿐, 궁극적인 뜻에서 하나하나 세밀히 조사하면 ‘내가 있다’라든가 혹은 ‘나’라고 거머쥐는 토대가 되는 중생이란 것은 없다. 궁극적인 뜻에서 볼 때 오직 정신물질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보는 자는 봄(dɑssɑnɑ)을 있는 그대로 봄(yɑthabhutɑ-dɑssɑnɑ)이라 한다.

 

(청정도론, 18장 견청정, 28)

 

 

부처님이 말씀 하시고자 한 것은 있는 그대로 볼 것(yɑthabhutɑ-dɑssɑnɑ)’을 주문하였다. 이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개념화 하지 말라는 것이다.

 

개념화 된 것은 실체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이름과 명칭으로만 존재하는 개념을 찾으려는 노력에 대하여 숫따니빠따에서 무화과 나무(우둠바라) 를 들어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것은 무화과나무에서 꽃을 찾을 수 없듯이 존재들 가운데 어떠한 실체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불교학자들과 스님들의 고증을 거친후..”

 

청계사에서 우담바라에 대한 이야기는 바위에만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니다. 두 군데에 더 새겨져 있는데, 중앙정원에 있는 비천상공덕비문과 경허선사 등 5명의 근현대 선사들의 부도탑이 있는 곳에 세워진 사적비이다.

 

 

 

5대선사 부도탑

좌측 부터 월산선사, 금오선사, 보월선사, 만공선사, 경허선사  부도탑이다.

 

 

 

우담바라로 인하여 청계사는 몰라 보게 달라졌다. 그 중의 하나가 경허선사 등의 부도가 있는 곳인데,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여 성역화 되었다. 성역화 된 사적지에 비문이 하나 있다. 이 비문에도 역시 우담바라에 대한 이야기가 돌에 새겨져 있다. 내용중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2000년 금오대선사의 손상좌인 종상스님이 주지소임을 맡고 가람의 제불사를 진행하던 중 10 16일 이()시 기도를 올리던 대원각보살 이경순이 관음전의 관세음보살님의 상호에 피어난 21송이 우담바라를 관찰하였다.

 

이에 불교학자들과 스님들의 고증을 거친후 사부대중의 뜻을 받들어 2000 10 17일 우담바라개화 108일 무차정진대회를 봉행하니 이땅에 고승대덕들을 모셔 법문을 듣고 낮밤없는 목탁과 염불소리 도량을 장엄하고 법화의 향기세상에 두루하였다.

 

법회에 참석하고자 전국각지에서 남녀노소구별없이 청계사로 모여드니 법에 목마른자에게 해갈의 단비를 뿌려줌이었다.

 

(청계산 청계사 사적비에서)

 

 

 

 

 

청계사 사적비

근현대 5대선사 부도탑 앞에 있다.

 

 

 

 

내용을 보면 바위에 새겨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누가 몇날 몇시에 몇 개를 발견했는지에 대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기술해 놓았다. 또 우담바라가 맞는 것인지에 대하여 불교학자들과 스님들의 자문을 받았다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검증과정을 거쳐 철야정진기도와 무차법회가 열리게 되었는데, 이 소문을 듣고 전국각지에서 불자들이 몰려 들어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불사가 이루지고 성역화가 되어 대가람으로서 면모를 보인 청계사는 안양, 군포, 의왕, 과천 등 안양권 불자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특히 부처님오신날에 보는 청계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후세에 교훈이 되고자?

 

이런 전설아닌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청계사에서 더 이상 우담바라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다만 바위와 비석에 그 내용이 매우 상세하게 기록 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바위에 새겨져 있는 글귀 중에 무상의 종지에 위배될까 망설임이 있었느나 후세에 교훈이 되고자 간략히 서술하여 남기노라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앞으로 100년 후가 되면 그때 까지 살아 있을 사람은 거의 없다. 가람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사람들은 모두 바뀌어 있을 것이다. 또 앞으로 천년후가 흐르면 어떻게 될까. 목조로 된 사찰이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또 자연현상 등으로 인하여 어떻게 변해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돌에 새겨진 것은 천년, 만년을 간다. 종이, CD등 이제까지 수 많은 저장 매체가 나타나고 사라졌지만 수 천년을 지탱해 왔던 것은 돌에 새겨진 것들 이었다.

 

마찬가지로 지금으로부터 100, 500, 천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 남아 있는 것은 돌에 새겨진 이야기들 일 것이다. 청계사의 바위와 비석에 새겨진 전설 같은 우담바라 이야기 역시 오래도록 살아 남을 것이다. 그때를 위해서일까 비문에는 후세에 교훈이 되고자 간략히 서술하여 남기노라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런 우담바라에 대한 이야기는 불과 몇 년만에 교훈아닌 교훈이 된 듯하다. 그것은 초기불교의 영향이 매우 크다. 초기불교에서는 우담바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여 놓았기 때문이다.

 

 

 Yo nājjhagamā bhavesu sāra,        요 낫자가마 바웨수 사랑

vicina pupphamiva                   위찌낭 뿝파미와

[pupphamiva (bahūsu)] udumbaresu;     뿝파미와 바후수 우담바레수

So bhikkhu jahāti orapāra,           소 빅쿠 자하띠 오라빠랑

urago jiṇṇamivattaca purāa.      우라고 진나미왓따짱 뿌라낭

 

 

무화과 나무(우담바라)에서 꽃을 찾아도 얻지 못하듯,

존재들 가운데 어떠한 실체도 발견하지 못하는 수행승은,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는 것처럼,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숫따니빠따 Sn1.1)

 

초기경에서 부처님은 우담바라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 우담바라가 대승경전에서는 어쩌다 한 번 피는 희유한 꽃으로 바뀌고, 중국에서는 삼천년만에 한 번피는 꽃으로 또 바뀌었다. 그런데 2600년이 흐른 21세기 우리나라에서 우담바라는 이곳 저곳에서 피는 꽃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런 극적인 변화 못지 않게 바뀐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존재의 실체에 대한 것이다. 2600년전 부처님은 브라만교의 아뜨만 사상을 비판 하면서 변치 않는 고정된 실체를 부정하였지만, 21세기 한국불교에서 우담바라꽃의 실체를 인정하였듯이 존재의 실체 또한 인정하였다. 작은 나(i)가 큰 나(I,大我)를  찾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선사들의 법문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법문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참나, 본마음, 진여, 불성 같은 것이다.

 

드라마틱한 반전

 

언제나 그렇듯이 계절은 변화무쌍하다. 4월 초순을 넘어 중순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지만 아직 봄 같지 않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쌀쌀한 날씨 탓이어서인지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 힘들다. 그러나 앞으로 이삼주만 지나면 세상은 드라마틱하게 반전할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무상한 세상에서 돌덩이에 전설 아닌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 전설이 기정 사실화 된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로 전달이 되지 않아서 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드라마틱한 계절의 변화못지 않게 불교계의 역시 그 이상의 극적인 반전을 보이고 있는 듯 하다.

 

 

2012-04-0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