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도림스님의 사자후와 독특한 법화경 게송노래

담마다사 이병욱 2012. 4. 22. 12:11

 

도림스님의 사자후와 독특한 법화경 게송노래

 

 

 

 

이런 말을 재가불자가 하였다면

 

 

성불, 성불이 무어냐. 하늘이 열린 소식은 소식인데, 없는 것이 벗겨지는 것이 아니에요. 인간 못되게 살면서 앉아서 화두 잡아서 성불한다고. , 천마디 만마디여.

 

부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일이 없어. 없는 것을 있게 한 적이 없어. 오직 부처님은 인연과 인연의 만남이여. 불교의 교리는 부처님의 사상은 인연이여. 참다운 인연에 참다운 결과가 오는 거여. 참다운 수행에 참다운 성불이 오는 거여.”

 

 

이말은 누가 했을까. “인간못되게 굴면서 화두 잡는다”든가, “부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적이 없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의 사상은 ‘인연’이라고 힘주어 강조하였다.

 

만일 이런 말을 재가불자가 하였다면 삼보 중의 하나인 승가를 비방하였다고 하여 비판 받을 것임에 틀림 없다. 그런데 이런 말을 매번 듣다 시피 하고 있다. BBS불교방송에서 이른 아침에 방송하는 경전공부 시간에서이다.

 

도태됩니다. 두고 보세요.”

 

최근 불교방송 경전공부시간은 도림스님이 맡고 있다. 법화정사에서 법문한 내용을 방송으로 내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도림스님의 법문은 법화경에 대한 것이다.

 

스님은 법화경 제10 법사품을 법문하면서 정법을 따르지 않고 있는 한국불교의 현실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 하였다. 특히 천도재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이어지는 법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수행이라는 것이 뭐냐. 앉아서 기도하고 참선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여. 참말로 민중속에 들어가서 군중속에 들어가서 그분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이여.

 

불교복지가 너무 없어. 양로원이 너무 없어. 고아원이 너무 없어. 병원이 너무 없어. 왜 안하느냔 이말이여.  왜? 교육하지 않고 인간의 모든 인격형성이 중고등학교에서 만들어진대요?

 

부처님의 대지대비한 마음, 큰사랑을 중고등학교를 만들어 가지고 정말로 참다운 인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만들어 내야 겟다고 하는 그런 희망이 없는 불교, 이 대한민국에서 도태됩니다. 두고 보세요.”

 

(도림스님, 불교방송 경전공부, 림스님의 법화경강좌 2012-04-19일자)

 

 

도림스님은 한국불교의 수행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이는 화두 참구만 하는 간화선을 말한다앉아서 참선만 할 것이 아니라 일년에 한 철이라도 민중들 속에 들어가 그들과 고락을 함께 할 것을 강조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현재와 같이 민중들을 왜면한다면 한국불교는 반드시 도태 될 것이라 한다. 이에 대하여 두고 보세요라고 하며 강조하였다.

 

제발 좀 돈 있는 사람들 엉뚱한 데 쓰지 말고

 

그렇다면 한국불교가 중흥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스님은 학교를 많이 만들자고 주장한다. 특히 중고등학교를 말한다. 이는 청소년시기에 인격이 형성되기 때문에 청소년 포교를 특히 강조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님은 그 방법까지 이야기 한다.

 

 

“제발 좀 돈 있는 사람들 엉뚱한 데 쓰지 말고 부처님의 이름으로 중고등학교 하나 세우세요. 그러니까 스님한테 맡기지 말고 뜻 있는 법화행자들이 열명, 스무명, 백명만 모이면 중고등학교 세웁니다. 백명만 모이면 양로원 짓습니다.”

 

(도림스님, 불교방송 경전공부, 림스님의 법화경강좌 2012-04-19일자)

 

 

중고등학교를 만드는데 있어서 스님한테 맡기지 말라고 한다. 스님들은 돈이 없기 때문에 열심히 기도하고 법문만 하면 된다고 한다.

 

그대신 학교나 양로원, 고아원 짓는 일에 대하여 재가불자들이 나서 줄 것을 강조한다. 돈은 재가자에게 있기 때문에 재가자들이 열명, 스무명, 백명이 돈을 모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구 본사 마다 중고등학교를 하나씩 만들고, 도마다 대학 하나씩 만들어도 한국 불교는 몰라 보게 변할 것이라는 말이다.

 

칠칠의 사십구재를 일곱번씩이나

 

이런 일을 출가자와 재가자가 주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불교에서는 엉뚱한 일을 하고 있다고 질타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부처님이 팔만대장경에 절마다 아무때나 칠칠의 사십구재를 세번 내지 일곱번씩 하라도 부처님 팔만대장경에 한번도 안했어. 스님들이 나쁜 것이 아니여. 그게 좋다고 쫒아가는 신도들이 나쁜거여. 불나비가 촛불을 따라가서 타 죽는 것을 보고 아이고 불쌍하구나 여러분 다 그런 생각했을 거여.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법이 아닌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거기에 돈 싸 짊어지고 쫒아 가지고 하는 똑 같은 불나비여.  지옥가는 길이여 지옥가는 길.”

 

(도림스님, 불교방송 경전공부, 림스님의 법화경강좌 2012-04-19일자)

 

 

이른바 천도재에 대한 비판이다. 천도재를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다. 우란분절날 한 번 하는 것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십구재를 일곱번씩이나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법보종찰 해인사에서도

 

이런 현상은 실제로 한국불교에서 만연되어 있다. 어느 절이건 천도재를 하지 않는 곳이 없고 그것도 여러 번 하는 것이다.

 

불교방송을 듣고 있으면 천도재에 대한  광고를 종종 들을 수 있는다. 스님이 지적한대로 여러 번 천도재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중에 법보종찰이라는 해인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해인사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았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팝업 광고 페이지가 뜨는데, 거기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한국 최고의 수행도량이며 팔만대장경을 모시고 있는 법보종찰 해인사에서는 신도님들의 원력과 성원에 힘입어 윤3월을 맞이 생전예수재와 함께 제5차 화엄천도법회(2012년 4월 16일~2015년 2월 9일)를 봉행 합니다.

 

21번의 49재와 21번의 큰스님 법문

5번의 생전예수재봉행

부처님께서 21일 동안 설한

80장의 화엄경변상도 사불

1~6재시 해인사 스님들의 “문수의 5분 법문”시행

 

(해인사, 해인사 홈페이지 제5차 화엄21천도법회)

 

 

해인사 제5차 화엄21회 천도법회동영상

http://www.tagstory.com/video/100429527

 

 

 

 

 

 

 

해인사의 경우 49재를 21번이나 해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기간도 길어 거의 3년가까이 된다.

 

이렇게 죽은자를 위해서 기도와 법문을 해 주는 것이 한국불교의 현실인데, 그것도 부처님의 말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법보종찰 해인사에서 앞장선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이런 천도재의 유행에 대하여 도림스님은 스님들의 잘못 보다 신도들의 잘못이 더 크다고 말한다. 부처님은 천도재를 하라고 한번도 말한 바 없는데, 신도들이 돈을 싸짊어지고 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애야, 제발 좀 가만 있는 나를 괴롭히지 마라

 

이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에 반하는 행위를 한다면 모두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 한다. 스님은 왜 그렇게 말하였을까. 스님은 이어지는 법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어가고 가난에 울고 병들어서 병원에 못가가지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은데, 목돈 들고 가가지고 그게 불교라고..

 

조상님들이 보면 참 통한의 눈물을 흘려. 조상님들이 보면 ‘애야 나 천당에 와 있고 극락에 와 있다. 제발 좀 가만 있는 나를 괴롭히지 마라’는 이야기여 지금.

 

법화행자들만큼이라도 눈이 떠야 되. 살아있는 내 이웃한테 법을 주자. 살아 있는 내 이웃한테 라면 하나라도 사 줄수 있는 보탬을 주자. 변해야 되.

 

제발 좀 돈 있는 사람들 엉뚱한 데 쓰지 말고 부처님의 이름으로 중고등학교 하나 세우세요.”

 

(도림스님, 불교방송 경전공부, 림스님의 법화경강좌 2012-04-19일자)

 

 

지금 밖에서는 가난에 찌들여 고통받는 사람도 많고 병이 들어 병원에 갈 처지도 못되는 사람들도 많은데, 조상 좋은 곳 보낸다고 목돈 들여 천도재를 지낸다고 해도 조상들이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차라리 그돈을 모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양로원이나 고아원, 또는 자라나는 세대를 위한 중고등학교라도 하나 짓는 것이 훨씬 수승하다는 사자후를 발하고 있다.

 

법화경은 매우 독특한 경전

 

도림스님이 방송에서 법문하고 있는 법화경은 매우 독특한 경전이다. 대승경전 중에서도 특히 독특한 것이 유신론적이고 타력적인 내용 때문이다.

 

법화경에서 보는 부처님은 보통 부처님하고 다르다. 빠알리 니까야에서 보는 부처님은 현실에 바탕을 둔 인간적이 면모를 보여 주고 있지만, 법화경의 부처님은 초월적이고 신격화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유신론적이고 타력적인 요소가 여타 대승경전 보다 매우 강하게 표현 되어 있는 것이다.

 

숫따니빠따와 법화경의 비교

 

이런 법화경에 대하여 최기경전인 숫따니빠따와 비교해 놓은 논문이 있다. 불교평론에 실린 박경준 교수의 빠알리어 경전과 대승경전의 사상적 차이-《숫따니빠따》와 《법화경》을 중심으로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표를 만들어 보았다.

 

 

숫따니빠따와 법화경의 비교

 

숫따니빠따

법화경

경전원어

Sutta-nipāta

Saddharmapuņarikasūtra

개요

-가장 오래된 경전의 하나

-‘구전(口傳)’에 의해 전승

-단순하고 소박한 형식

-독립된 경전으로 전해지다가 어느 땐가 하나의 경으로 합히여짐

-《의석(義釋, Niddesa)》이라고 하는 오래된 주석서가 있는데, 이것은 제1장 제3경과 제4장 및 제5장의 내용에 대한 어구(語句)의 주해

-현존하는 것은 3

-천태(天台) 대사 지의()가 지은 법화삼대부(法華三大部)

권위 있는 주석서

-1 서품의 일부, 2 방편품과 제3 비유품이 먼저 성립되고, 다음으로 제11 견보탑품의 전반부와 제13 권지품의 일부가 추가된 후, 다시 제15 종지용출품, 16 여래수량품과 제21 여래신력품이 성립되어 8품이 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제17 분별공덕품 및 제20 상불경보살품이 첨가된 총 10품으로 이루어진 경전이 되었을 것

구성 및 형식

육성취와 삼분의 형식을 갖춘 경전들보다 갖추지 못한 경전들이 더 많음

육성취의 내용은 물론 삼분의 형식도 확실하게 갖추고 있음

내용

대부분 현실에 바탕한 것

비사실적 또는 초현실적인 부분이 많고 문학적 내지 희곡적인 성격도 강함

불타관

-석가세존의 모습은 한마디로 인간으로서의 붓다

-스승으로서 붓다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붓다

-구제자로서의 붓다

사상적 특징

-소박하고 원시적인 형태의 경전으로서 석가세존의 육성의 가르침을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음

-테라와다불교의 사상적 원형이 담겨 있는 경전

-법수화 또는 조직화되지 않은 교리

-금욕적 출가수행의 독려

-자비사상

-초기 및 부파불교 사상은 물론 대승의 공 사상 등 다양한 사상이 포괄되어 있음.

-제법실상(諸法實相)(부처님이 성취한 가장 희유하고 난해한 진리)

-회삼귀일(會三歸一)사상(삼승은 방편, 일승은 진실)

-수기(授記) 사상(일불승에 대한 믿음고취

경전상 차이

-빠알리어 경전은 대체적으로 부처님을 생신불(生身佛), 즉 부모로부터 태어난 역사적 인간으로 바라보는 입장

-자재신(自在神)을 인정하지 않음.

대승경전은 일반적으로 법신·보신·화신의 삼신불(三身佛)을 설하면서도 법신(法身)을 중시하는 경향

출재가

출가 지향적인 성격이 강함

출가와 재가를 크게 문제시하지 않는 경향

마쓰다니 후미오의 구분

-상구보리(上求菩提)라는 의미에서 개인의 도()

-()을 논함에 있어 분석적 방법을 중시

-의식의 측면을 강조

-아라한지향적

-이성(理性)을 중시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는 의미에서 대중의 도

-직관적 방법을 중시

-무의식의 측면을 강조

-보살지향적

-감성(感性)을 중시

테라와다와 대승의 열반

회신멸지(灰身滅智)’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을 궁극적 이상으로 삼는 경향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을 최고선으로 함

 

출처 :박경준교수의 빠알리어 경전과 대승경전의 사상적 차이-《숫따니빠따》와 《법화경》을 중심으로’,불교평론 44 2010-09-06)

 

 

 

표를 보면 숫따니빠따와 법화경은 여로 모로 차이가 많다. 이는 현재의 테라와다불교전통과 대승불교전통과의 차이에 대한 축소판처럼 보인다.

 

법화경 부처님의 놀라운 선언

 

숫따니빠따에서 보는 부처님은 우리와 똑 같은 인간적인 부처님의 모습이지만, 법화경에서 보는 부처님의 모습은 다르다. 가장 다른 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하지만 《법화경》에서는 이러한 인간 붓다의 정체성에 대한 놀라운 비밀이 폭로된다. 석가세존은 보드가야에서 처음 붓다가 된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겁 전에 깨달음을 성취한[구원실성] 본래부처[본불], 다시 말해 구원본불(久遠本佛)이라는 것이다. 석가모니불은 중생들에게 불지견(佛知見)을 개(((()하기 위한 근본원(根本願)을 가지고 태자의 몸으로 화현하였고, 열반에 들지도 않았지만 일부러 열반의 모습을 보여 준 것이며, 여래의 수명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법화경》 제16 여래수량품에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설해져 있다.

 

 

너희들은 여래의 비밀과 신통력에 대하여 자세히 들으라. 일체 세간의 하늘과 인간 그리고 아수라들은 모두 석가모니불은 석씨 왕성을 나와 가야성 가까운 도량에 앉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선남자들아, 내가 성불한 지는 한량없고 가없는 백천 만억 나유타 겁이니라 ……(중략)……

 

그로부터 나는 항상 이 사바세계에 있으면서 설법하여 교화했고, 또 다른 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 국토에서 중생을 인도하여 이익되게 하느니라……(중략)…… 이와 같이 내가 성불한 지는 참으로 오랜 옛날부터였으며 수명이 한량없는 아승지겁이므로 이 세상에 항상 머물러 멸하는 법이 없느니라……(중략)……

 

나는 그대들에게 내가 곧 멸도(滅度)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참 멸도가 아니며, 여래는 이런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느니라.”

 

 

여래수량품의 비유에 의하면, 여래의 수명은 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보다 훨씬 더 많다. 오백진점겁이란, 어떤 사람이 오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의 삼천대천 세계를 부수어 가는 티끌로 만들고, 그 티끌을 동방으로 오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의 국토를 지날 때마다 하나씩 떨어뜨리는데, 이렇게 해서 그 티끌이 다 없어질 때까지 지나온 국토는 물론 티끌을 떨어뜨리지 않은 국토까지 모두 합하여 다시 가늘게 부수어 티끌을 만든다고 가정할 때, 그 모든 티끌 수만큼의 겁에 해당된다.

 

(박경준교수,  빠알리어 경전과 대승경전의 사상적 차이-《숫따니빠따》와 《법화경》을 중심으로’,불교평론 44 2010-09-06)

 

 

박경준교수는 불교평론에서 법화경의 부처님에 대하여 법화경에 실려 있는 내용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다. 법화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놀라운 선언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부처님은 이미 오래 전에 성불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땅에 부처님이 출현하신 이유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이라 한다. 그런 부처님의 수명은 무량하기 때문에 부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고 한다.

 

열반에 든 것도 열반에 들지도 않았지만 일부러 열반의 모습을 보여 준 것에 지나지 않으며 여래의 수명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법화경에서 밝힌 부처님의 놀라운 모습이다. 이런 부처님에 대한 묘사는 다른 대승경전에서 보이지 않고 오직 법화경에서만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이 초월적이고 신격화된 부처님의 모습은 초기경전과 매우 대조 되고 있다.

 

무시무시한 게송

 

법화경은 후대에 성립된 경전이다.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나면서 대승불교의 보살사상 등을 구현하기 위하여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육성취와 삼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삼분은 서분, 정종분, 유통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이중 유통분은 경전의 이익과 공덕, 홍포와 선양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유통분 중에 소승비하에 대한 내용이 적지 않다. 이는 법화경이 성립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라 보여진다. 그중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믿지 않는 어떤 사람 이 경전을 훼방하면

   일체의 세간에서 부처 종자 끊임이니

   혹은 얼굴 찌푸리며 의혹을 품으르니

   너는 잘 들어라. 이런 사람 죄보를.

 

   부처가 세상에 있거나 멸도한 후에라도

   이런 경전 비방하고 경전 읽고 쓰는 이를

   경멸하고 미워하며 원한까지 품게 되면

   이 사람이 받을 죄보 네가 이제 들으리라.

   그 사람은 죽은 뒤에 아비지옥 들어가서

   1겁을 다 채우고 그리고 다시 나서

   이렇게 나고 죽고 수 없는 겁 지내리라.

   지옥에서 다시 나와 축생으로 태어나서

 

   승냥이나 개의무리 그 형상이 수척하고

   못 생기고 더러워 살 닿는 것 싫어하며

   사람으로 태어나도 미움 받고 천대 받아

   언제든지 배가 고파 앙상하게 말라붙고

   살아서는 죽을 고생 죽어서는 자갈 무덤

   부처 종자 끊은 고로 이런 죄보 받느니라.

 

   만일 또 낙타로나 당나귀로 태어나면

   무거운 짐 항상 싣고 채찍을 맞으면서

   여물만 생각할 뿐 다른 것은 모르나니

   이 경전 비방하면 이런 죄보 받느니라.

 

   만일 승냥이로 태어나면 온몸엔 옴과 버짐

   한 눈까지 멀어서 마을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모여들어 때리고 집어던져

   모든 고통 다 받다가 잘못하면 죽게 되고

   만일 죽게 되면 구렁이 몸 다시 받아

   징그럽게 큰 길이가 5백 유순이나 뻗어나고

   귀 먹고 발이 없어 구물구물 기어가면

   온갖 작은 벌레 비늘 밑을 빨아먹어

   밤낮으로 받는 고통 쉴 사이가 없나니

   이 경전 비방하면 이런 죄보 받느니라.

 

   어쩌다가 사람되면 모든 감관 암둔하며

   난쟁이, 곰배팔이, 절름발이

   장님, 귀머거리, 곱사등이 되어

   그 사람 말하는 것 듣는 사람 믿지 않고

   입에서는 추한 냄새 귀신들이 따라붙고

   빈궁하고 천박하여 사람들의 부림 받고

   병이 많고 수척하여 의지할 데 전연 없고

   다른 사람 친하려도 붙여 주는 사람 없고

 

   어떤 소득 있더라도 금방 다시 잃어지며

   만일 의사 되어 병 치료를 한다 해도

   오히려 병만 더해 혹은 실수로 죽게 되며

   자신이 병날 때에는 구원해 줄 사람 없고

   좋은 약을 먹더라도 병세 더욱 악화되며

 

   다른 사람 반역죄나 강도질과 절도죄에

   이유 없이 말려들어 애매하게 벌 받으니

   이러한 죄인들은 영영 부처님 못 보며

   성인 중의 왕이신 부처님 교화해도

 

   이러한 죄인들은 항상 환난 있는 곳에 나며

   미치거나 귀가 멀어 법을 듣지 못하며

   강가의 모래처럼 무수한 오랜 세월

   태어나도 불구되어 귀 먹고 말 못하리.

   지옥에 살기를 꽃피는 동산에서 노니는 듯 하고

   악도를 드나들기 자기 집 안방처럼

   낙타, 나귀, 개, 돼지 그런 것으로 태어남도

   이 경전 비방한 탓, 죄 값이 이러하노라.

 

(법화경 제2권 비유품)

 

 

이 게송은 법화경 제2권 비유품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게송을 보면 무시무시한 내용이 매우 많다. 마치 저주를 하는 것 같은 내용이다. 그렇다면 어떤 자들이 이와 같은 내용대로 저주를 받는 것일까.

 

대승불교의 오역죄

 

대승불교에 따르면 오역죄라는 것이 있다. 초기불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오역죄는 어떤 것일까.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역 (五逆)

오역죄오무간업이라고도 함. 이에 삼업통상오역(또는 소승오역)대승별도오역동류오역 · 제파오역 등이 있었으나 보통 오역이라 하면 ① 출불신혈 ② 살부 ③ 살모 ④ 살아라한 ⑤ 파화합중을 일컬음. 이 다섯 가지의 죄악을 범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함.

 

소승 5역죄:
① 어머니를 살해하는것

② 아버지를 살해하는것

③ 아라한을 죽이는것

④ 악심을 품고 부처님의 몸에서 피가나게 하는것

⑤ 승가의 화합을 깨뜨리는것

 

대승5역죄 :
① 탑사를 파괴하여 경전과 불상을 불태우고 삼보의 물건을 빼앗고 혹 은 그와 같은 짓을 사람에게 시키고 기뻐하는것.

② 성문. 연각의 소승불법과 대승의 법을 비방하는것.

③ 출가자가 불법을 닦는 것을 방해하고 혹은 그를 죽이는것

④ 소승의 오역죄중 한가지 죄를 범하는것,

⑤ 모든 업보는 없다고 생각하여 열가지 악한 일을 행하고 후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또 사람에게 그런 것을 가르치는 것,

 

 

대승불교에서 오역죄는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소승오역죄이고, 또 하나는 대승오역죄이다. 이중 대승오역죄를 보면 대승법을 비방하면 오역죄에 해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오역죄를 지으면 가장 무거운 형벌에 처해진다고 한다. 그것은 지옥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무간지옥으로서 나올 기약이 없는 한량없는 세월동안 고통을 당할 것이라 한다.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용

 

그런데 이와 같은 오역죄에 대한 내용이 법화경에 실려 있다는 사실이다. 법화경 비유품에 실려 있는 비유품을 보면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용이 가득하다. 법화경을 믿지 않는 사람이 법화경을 비방하였을 때 또는 법화경을 읽고 사경하는 자를 경멸한다거나 미워해도 벌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 벌도 보통 벌이 아니다. 아비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세월동안 나고 죽는 가혹한 벌이다. 설령 지옥을 벗어 났다고 할지라도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축생으로 태어나 고통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여 인간으로 난다고 해도 정상이 아니라고 한다. 난쟁이, 절름발이 등 장애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법화경에 대한 비난의 과보가 너무나 가혹하다.

 

법화경은 시대의 산물

 

법화경은 시대의 산물이다. 대승불교가 흥기할 때 기존 부파불교와의 갈등이 고스란히 경전에 반영된 것이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게송이 나오게 된 배경은 그때 당시 대승불교의 세가 강하지 못하고 소수이었음을 말한다.

 

소수가 다수를 제압하기 위하여 헛점을 파고들듯이, 그때 당시 대승불교에서는 공의 논리로 최대부파를 형성하고 있었던 설일체유부의 실유법에 대하여 법유라 하여 공격하였다.  그 과정에서 독자적인 경전을 편찬하게 되었고, 소승에 대한 대승의 우위를 설명하는 문구가 많이 삽입된 것이라 보여진다.

 

하지만 대승을 옹호하기 위하여 소승에 대한 비하와 저주에 가까운 비난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반발감만 일으킬 뿐이다. 만일 법화경에 대한 수정이 이루어진다면 위 게송에 대한 부분은 삭제해야 마땅할 것이다.

 

독특한 도림스님의 게송노래

 

방송에서 법화경을 매일 듣다시피 하고 있다. 그것은 불교방송이 오직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이고, 또하나는 법문을 하는 법사의 법문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비록 법화경에 소승에 대한 비하와 저주성에 가까운 게송이 있다고 할지라도, 또 유신론적이고 타력적인 요소가 산재해 있을지라도 이를 커버하고도 남는 것이 법사의 법문이다.

 

법사의 법문을 들으면 법화경 자체의 문구에 대한 이야기보다 한국불교의 현실에 대한 내용과 불자들의 자세에 대한 교훈적인 내용이 더 많다. 또 구수한 목소리와 남을 배려 하는 듯한 인간적인 면모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한사람의 능력있는 법사의 영향력이 포교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런 도림스님의 게송노래는 독특하다.

  

 

도림스님의 법화경 게송노래

 

 

 

 

 

 

 

 

2012-04-2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