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탁발정신의 실종

담마다사 이병욱 2012. 5. 8. 11:37

 

탁발정신의 실종

 

 

 

 

크리스천친구의 스님상()’

 

일로 인하여 사회에서 만난 크리스천친구가 있다. 가끔 만나면 항상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그렇듯이 그 친구 역시 불교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 도시에 십자가만 보일 뿐 절이 없다시피 한 현실에서 그가 아는 불교에 대한 것은 피상적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스님들의 행태에 대한 것이다.

 

그 친구는 하나의 스님상()’을 가지고 있었다. 스님들은 모두 타락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스님들이 술집을 출입하고 심지어 나이트 클럽에도 다닌다는 식의 이야기이었다. 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여 물어 보았더니 교회 목사들이 그런 식으로 신도들에게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자신도 목사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을 뿐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고 말 하였다.

 

스님들의 도박

 

최근 불교닷컴에 기사가 하나 떳다. 내용중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백양사의 지근 거리인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의 한 호텔 스위트룸에 초저녁부터 모인 스님들은 49재를 여법하게 봉행하려는 의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손에는 하트, 다이아몬드, 클로버, 스페이드가 새겨진 카드를 들고 일부는 입에 담배를 물었다. 만원권부터 오만권들을 배팅하며 카드놀이에 열중한 스님들은 날이 새는 줄 몰랐다.

 

9 10분께 룸서비스를 청했는지 술과 안주도 배달됐다. 카드놀이 삼매경(?)에 빠진 스님들의 스위트룸을 술 심부름을 하던 재가자가 멀뚱멀뚱 바라보며 술과 안주를 전해주곤 빠져나갔다.

 

밤이 깊을수록 하나 둘 게임에 동참, 10 40분께는 모두 8명으로 늘었다. 한 명의 스님을 제외하곤 손에 카드를 들었다. 한 판이 끝날 때마다 승자는 의기양양하게 지폐들을 쓸어 자기 무릎아래로 옮겼다.

날을 넘겨 24일 오전8시가 훌쩍 넘어서야 노름을 마친 스님들은 하나 둘 호텔방을 빠져 나갔다.

 

이날 호텔방에서 노름을 한 스님들은 종회의원전 종헌기구의 위원, 말사주지 등으로 알려져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방장 49잿날 노름으로 밤샘한 후학들, 불교닷컴 2012-05-04)

 

 

 

백양사 방장 수산스님의 49재를 봉행하기 위하여 경향각지에서 모인 스님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기사가 실리고 나자 100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댓글을 읽어 보면 거의  증오에 가깝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비방, 비아냥이 주류를 이룬다. 스님들이 낯을 들고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난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체적으로 내용이 밝혀지기 까지 몰래카메라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 본다. 누군가 몰래 카메라를 설치 해 놓고 스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조리 촬영해 놓았기 때문에 꼼짝 없이 걸린 것이다.

 

야반도주하듯이

 

이번 사건의 영향이어서일까 미디어붓다에서는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한다.

 

 

조계사 주지 토진 스님이 5 5일 최근 불거진 승려 도박 의혹에 대해 책임을 지고 주지직에서 사퇴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계사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를 통해 “5 5일 새벽 토진 스님이 방사에서 짐을 정리해 떠나셨다"고 확인했다.

 

토진 스님은 前 고불총림 방장 지종대종사 49재 전날 일부 스님들과 함께 호텔에서 도박을 벌인 의혹을 사고 있었다. 토진 스님은 백양사 문중이다.

 

(조계사 주지 5 새벽 떠나, 도박 연루 의혹…, 미디어붓다 2012-05-07)

 

 

 

 

 

 

사진: 미디어붓다 기사제보

 

 

 

조계사 주지 스님도 이번 사건에 연루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급작스럽게 짐을 싸서 방을 떠났다고 전한다.

 

한국불교의 심장부라고 볼 수 있는 조계사의 주지 스님이 도박사건에 연루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조계사에는 총무원과 함께 있고 자성과 쇄신결사 본부 주관으로 스님과 신도들의 1000일 기도가 매일 이루어지고 있고, 조계사 경내에 기도가 끊이지 않고 있는 마당에 주지스님이 도박에 연루 되어 마치 야반도주하듯이 줄행랑 친 것이 더욱 더 충격적이다.

 

이와 같은 일부스님들의 행태를 접하면서 크리스천친구가 말한 스님상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 스님들의 타락상을 보았기 때문에 입소문을 타고 목사의 귀에 들어가 신도들에게 스님들은 모두 타락한 존재로서 말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스님들의 도를 넘는 탈선행위는 이제 공공연하게 회자 될 정도가 되었다. 그런 내용을 담은 책이 있다. 종교전문기자로서 활약한 바 있는 김나미 작가는 지난해 펴낸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 하였다.

 

 

조계종 소속의 선방수좌승려들, 개신교의 기장 목사들, 그리고 현재 중생제도에 힘쓰는 승려나 목자 같은 목사를 제외한 성직자는 크게 세 부류류 나뉜다. 하는 일 없이 등 따습고 배부르게 즐기기만 하는 무위도식형,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아상충만형, 권위를 몸에 두른 권위지향형이다. 무위도식형은 직무태만에 해당하기 쉽고, 아상충만형과 권위지향형은 직권남용의 범주에 들어 갈 확률이 크다.

 

(김나미 기자, 신앙지옥 불신천국-렛잇비)

 

 

김나미 기자는 우선 모든 승려들이 다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하였다. 불교의 경우 선방에서 수행하는 스님과 일선에서 포교활동하는 스님은 제외 한다고 하였다. 그 외 일부 스님들의 행태에 대하여 무위도식하고, 아상충만하고, 권위지향적이라고 비판한다.

 

무위도식형 스님

 

이 세가지 행태중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을 듯한 무위도식형에 대한 기자의 글을 써 보면 다음과 같다.

 

 

무위도식형은 직무태만의 전형적인 경우이다. 이 유형은 이 세상 온갖 좋다는 것 다 누리고 산다. 유서 깊은 사찰은 신선이나 살 것 같은 수려한 산을 배경으로 구름이 발아래 오는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사찰에 사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 좋은 곳엔 다 사찰이 있다는 말처럼 공기 맑고 경치 좋은 곳에 살며 돈 걱정 없이 편하게 산다.

 

청산별곡의 살어리 살으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달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를 몸으로 보여 주는 것처럼, 보통사람들은 창살 달린 시멘트집에 사는 데, 한옥집에 몸에 좋은 것 다 먹고 좋은 옷에 좋은 음식에 온갖 호사를 누리며 세월아 네월아 하며 잘 산다.

 

이런 승려들은 대체로 소위 잘 나가는 주지스님을 은사로 둔 경우가 많고, 고정된 단골 고객이 있어 대체로 일정금액의 수입이 매달 들어와 지갑이 두둑하다. 할 일은 월급 주고 고용한 사람에게 맡기고 여기 저기 좋은 곳으로 놀러 다니기 바쁘다.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무척 자유로워 이런 부류일수록 무엇이든 몸에 좋다는 최고를 찾고 철마다 즐길 것 다 즐기고, 다도와 같은 고급 취미도 하나쯤 갖고 있다.

 

이런 무위도식형은 불로소득의 호의호식하며 여가 활동에 열중한다. 종일 하는 것 없이 따뜻한 밥만 먹고 최고의 수제차만 마신다. 가끔 입맛 없다, 식욕 없다며 밥투정하다가도 외출이라도 하면 신나서 나간다. 돈 잘 주고 잘 쓰는 신도 만나 고급 가사 장삼 걸치고 맛난 것만 찾아 다닌다.

 

무위도식형에는 식도락가 승려가 많다. 앉은 지리에서 불고기 8인분을 먹는 배불뚝이 비만형 승려도 보았다. 봄이 오면 봄나물에 꽃구경, 여름에는 삼계탕에 휴가, 가을에 송이 먹고 낙엽구경, 겨울되면 몸에 좋다는 온갖 몸보신용 보약을 섭렵한다.

 

동네 작은 사찰의 공양주 보살은 아침마다 스님 드실 해장국을 끓여 바쳐야 한다. 매일 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절에서 마시고 놀고 밖에 나가 놀며 마시는 술 때문이다.

 

작년에 미국 다니며 골프를 즐기더니 이젠 실력이 싱글이 되었다는 한 스님의 이야기가 주변에서 회자 되고 있다. 알 사람은 알 만한 승려가 주인공이다.

 

(김나미 기자, 신앙지옥 불신천국-렛잇비)

 

 

 

김나미 기자는 종교전문기자이다. 책의 서문을 보면 1990년부터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종교관련 글을 쓰기 시작 하였고,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각종 종교에 대한 현장 칼럼을 쓰기 시작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종교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기자가 밝힌 일부 무위도식형 스님들의 행태를 보면 이번 도박사건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이유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좋다?

 

무위도식형의 스님들을 보면 호의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마셔서는 안될 술과 먹어서는 안될 고기를 가까이 하여서 공양주보살은 아침에 해장국 끓여 주기에 바쁘다는 것이 매우 실감난다.

 

이처럼 할일 없이 먹는 것을 즐기고  술과 고기가 일상화 되다보니 골프 등의 여가와 사행성 도박으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종종 매스컴에서 스님들이 외제차를 몰고 내기 골프를 한다든가, 외국에 나가서 카지노를 했다는 것이 모두 무위도식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무위도식형은 왜 승려가 되었을까. 이어지는 글에서 김기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2004년쯤 한국에 와서 출가한 외국인 승려를 인터뷰 한 적이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출가하니 뭐가 가장 좋던가요하고 물었더니 이러저리 하는 말의 결론은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좋다는 것이었다.

 

종일 참선만 하면 돈 걱정없이 살 수 있으니 출가를 잘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너무 솔직한 대답에 놀랐지만 나는 그와의 인터뷰를 세상에 내 보내지 않았다.

 

나는 이런 유형을 무임승차했다고 표현한다. 사석에서 출가한 이유를 물으면 직업으로 택했다든가 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지만 아마도 승려의 절반은 그런 마음으로 출가했을지도 모르겠다.

 

(김나미 기자, 신앙지옥 불신천국-렛잇비)

 

 

김기자는 외국승려의 이야기를 빌어 출가이유에 대하여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눈푸른 외국인 스님들중에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서 출가하였다고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서 우리나라 스님들 역시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무위도식형은 대체로 무식하다

 

김기자의 말대로 우리나라 스님들의 절반 정도가 단지 자기 한몸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출가하였다면 이는 무능력자들의 집합소나 다름 없다. 가다 가다 갈데 없어 스님이 되었다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흔히 스님에 대하여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고 삼귀의에서와 같이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불자들은 합장공경하는데, 단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스님이 되었다면 세상에 사는 범부 보다 못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출가동기가 불분명한자들이 스님이 되었을 때 그 폐해는 어떨까. 김나미기자의 이어지는 글은 다음과 같다.

 

 

무위도식형은 대체로 무식하다. 자신도 수행하지 않지만 신도들의 수행이나 경전공부, 교육은 뒷전이다. 경전공부든 참선이든 명상이든 자기를 살피는 수행을 하지 않으니 법문이 늘 똑 같은 공염불이다.

 

이런 승려가 하는 한 달 두 번의 주로 불공과 관련된 것으로, 염불과 108배를 많이 하라고 가르치거나 자기가 새롭게 발명해낸 불공의 명목으로 불상 팔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승려의 밑에는 그 일을 조직적으로 기획, 담당하는 하수인도 있다. 이런 유형은 부적도 팔고 점을 치기도 한다.

 

(김나미 기자, 신앙지옥 불신천국-렛잇비)

 

 

단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한 자들은 대체로 무위도식형이 되기 쉬운데, 그런 자들은 또한 무식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승려가 되긴 되었지만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도들에게 시키는 것이 염불이나 108배라 한다.

 

머리에 든 것이 없으니 법문을 할 수 없고, 먹고 살아야 되니 기복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때만 되면 각종 부적을 팔거나, 한 번 외운 다라니로 각종 재를 지내주는 등 기복에만 매달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불교의 현실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불자들에게

 

최근 일련의 사건을 보면 한국불교에 적신호가 왔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도 가장 무소유와 청정으로 대표되는 승가에서 일어나고 있다. 최근 불교관련 인터넷매체에 보도된 굵직한 사건들이 모두 승가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종회의원 폭력사건, 독신비구의 결혼사건, 공금횡령사건, 이번에 터진 도박사건 등 차마 승가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나리라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이다. 그것도 언론에 공표 되어 알고 있는 사건들이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사건이 이정도라면 은폐된 사건은 더 많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승가에서 승려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불자들에게 되돌아 온다. 불자들이 사는 세상은 스님들이 사는 절집이 아니라 이웃종교인과 늘 부대끼며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사건이 연일 신문과 방송에 보도 된다면 어떻게 될까. 불자들은 자신이 불자라고 떳떳히 말할 수 없고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

 

스님들의 비리는 고발되어야

 

이런 측면으로 본다면 승가의 스님들의 비리는 고발되어야 한다. 그래서 법응스님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종단이 원칙이 무너지고 쇄신이 사라지니 감동을 줄 수 없다. 정책과 비전이 없으니 희망이 없다. 조계종 안에서 보고 느끼면 충분히 알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종단 교역직들이 모여 앉으면 종단 혁신을 이야기해야 하는 시점임에도, 권력의 향배나 논한다니 어찌할 것인가.

솔직히 조계종의 계파가 사회의 ‘일진’과 다를 바가 없다. 계파가 종단 전체를 쥐락펴락하고 계파에 속하지 않으면 왕따 당하는 현실이니 종단 계파 즉 ‘일진’이라 해도 무방하다.

총무원 집행부가 종단의 병폐를 정확히 진단하고 치유를 외면한다면 이교도의 훼불보다도 더한 훼불을 자행함을 자각하자. 자성과 쇄신을 외면한 조계종 집행부로 인해 승려들이 스스로의 제도(
濟度)로부터 멀어지고 일생을 허비하니 불행한 일이다.

종단을 책임진 중진의 교역직들이 조금만 정직하게 노력해서 종단과 대중을 잘 이끈다면 조계종이야 말로 세상을 구하는 대보살이 가능하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사부대중은 이제라도 조계종과 1만2천명의 승려를 관리하는 그 중심관리체계의 인사들에 대한 냉철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부대중은 종단 교역직들에 대해 의심하고 그들을 분석해서 조치를 취할 의무와 책임 또한 있다. 이를 무시하거나 게을리한다면 그야말로 스스로 ‘로보토미’를 자청함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법응 스님, “사부대중은 정치승려를 의심하자!”)

 

 

법응스님은 글의 제목에 대하여 사부대중은 정치승려를 의심하자!”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사부대중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말한다. 즉 전불자들이 일부 정치승려의 행태에 대하여 감시를 철저하게 하자는 말이다. 이는 정치승려에 대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출가목적이 불분명한 무위도식형 승려들 모두가 해당되기 때문이다.

 

범부 보다 못하고 시정잡배와 다름없는

 

사부대중 특히 재가불자들은 출가자들의 일탈행위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지 고발해야 한다. 사진, 동영상, 글로서 인터넷에 알려 문제를 일으키는 승려가 승가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감시해야 한다. 단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승려가 된 무능력자들은 퇴출되어야 한다. 한 번 문제 일으킨 자들이 또 일으키기 때문에 그들을 고발해야 한다.

 

이번 도박사건도 곪아 터진 사건이라 볼 수 있다. 우연하게 발생한 사건이 아닌 것이다.

 

술과 담배, 도박은 세속에 사는 범부들도 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형제와 인연을 끊고 출가한 스님들이 도박판을 벌이고 술과 담배를 하였다는 것은 충격 그 자체이다. 그것도 은사스님의 49재를 앞두고 벌어졌다 하니 더욱더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이번 도박판에 연루된 스님들은 세속의 범부 보다 못하고 시정잡배와 다름없다. 그런 자들 중의 하나가 조계사 주지스님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야반도주하듯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사고를 쳐도 징계는 미미하다는 것이다. 결혼한 증명서까지 제출하여도 승적 뿐만 아니라 교역직도 유지되고, 폭력을 휘둘러도 종회의원직이 유지 된다.  공금횡령을 해도 마찬가지이다. 사회법으로 따진다면 모두 교도소행이고 사회적으로 매장되지만 승가 사회에서 만큼은 아무리 잘못을 해도 용서 된다. 고작 직위가 박탈되는 정도일 뿐 승적은 유지 되는 것이다.

 

주지불교, 재산관리인불교

 

한번 승려이면 어지간해서 승복을 벗는 일이 없다. , 담배, 도박, 은처를 하였어도 참회 한 번 하고 나면 그만이다. 이렇게 승복을 벗지 못하는 것은 그만한 이점이 있어서 일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한국불교의 자기정체성 제고라는 작자 미상의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사실상의 승가의 재가화

 

<<한국불교의 자기정체성 제고>>를 위한 첫 단추이자 그 변화의 중심적 과제는 과연 무엇일까?? 먼저 그 답을 내리고 시작하자..

 

오늘날 그것은 <승과 속을 제대로 분별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승과 속>이란 무엇인가??

 

(승가)의 핵심은 곧 <출가비구의 역사적/현재적 전통>을 의미한다.. 또한 속(재가)의 핵심은 당근 <재가신도가 주축이 된 민주화된 오늘날의 재가불교운동>이 된다..

 

그러면 도대체 왜 이 자명한 명제를 새삼 거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가?? ?? 그 이유는 불을 보듯 명약하다.. 곧 소위 <<반승반속>>(사실상의 승가의 재가화/세속화!)이란 작금의 현실이 모든 것을 뒤죽박죽,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쳐박고 있기 때문이다..

 

반승반속의 현실

 

<반승반속의 현실>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단적으로 소위 각 종단의 총무원장/종회의원 <금권선거> 등에서 여실히 보여지는 바, 오늘날 한국불교의 저 면면한 <치부>(부끄러움/참괴심)를 부단히 양산하고 있는 <<주지불교/재산관리인의 불교>>를 말한다..

 

지난시절 소위 해방공간의 정화운동에서 내걸린 <비구/대처 운운>의 깃발은 종내 <명색의 변경>에 불과했다.. <금강경>은 누누이 말하지 않던가?? 명색 따위로는 결코 법의 실상을 볼 수 없노라고..

 

비구승가가 전혀 비구승가 답지 않고, 실제 승속이 서로 뒤엉켜버려 <출가비구라는 수행자의 성인지향의 그 성스러운 삶>은 오늘날 오직 <세속화된 범부의 경제적 치부의 삶>으로만 나날이 전락해가고 있다..

 

너나 나나 다 똑같은 재가자일 뿐인데!!

 

그런즉 대처승(재가승가?)이라는 <모순어법>조차 <공공연한> 시절이 되었다.. 남방은 다만 <환계/재출가>의 자유(7번 운운/실제 자유)로 대체할 따름이다..

 

곧 이 대처승(이는 결코 카마쿠라 시대부터 내려온 일본불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미 중국/한국/티벳 등에서도 그 유구한 <역사적> 사실은 존재한다..)이란 결국 광의의 동아시아불교전통의 전근대적 <국가주의 불교전통>이 배태한 <재가불교의 변형형식>이 아니던가??

 

처자식(그것이 소위 <은처 또는 사실상의 동거>라면 합법적 결혼제도보다도 더욱 더 큰 위선적인 <훼승가>의 문제다..)을 거느리고 산다면, <아무리 삭발을 하고 승복을 걸쳐 입는다>고 해도, 그것은 곧 본질적으로 다만 <재가인의 삶>과 동일하다..

 

그러고서 그 어느 승가가 감히 <<재가인의 귀의>>를 받을 수 있겠는가?? 너나 나나 다 똑같은 재가자일 뿐인데!!

 

그러니 홍 모처럼(불교신문!) 인간(범부!)은 다 평등하니, 소위 중의 특권(고작 어간출입?)을 폐지하자고 개거품을 무는 게 아닌가?? 그러나 불성은 평등해도, 그 업은 <차별상>을 띤다!! 모르는가??

 

출가주의 전통을 폐기해도 좋을까?

 

물론 재가인으로서 보살의 삶(중생구제), 성문의 삶(교학/학문), 연각의 삶(선정수행 등) 등을 살 수 없다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불교사는 이미 이 모든 것이 출/재가의 형식을 뛰어넘은 <대승의 원융 회귀적 정신>(특히 법화/화엄 등) 속에 이미 하나(불이)로 포섭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소위 <<출가주의 전통>>은 오늘날 과감히 폐기처분되어도 좋을 무엇인가?? 결코 아니다..

 

?? <진정한> 출가주의야말로 <탐진치로 대표되는 인간의 감각적 욕망에 종속된 노예의 삶>을 벗어난, <번뇌의 상속이라는 윤회의 삶>을 단멸한, 바로 <성인(성불)을 지향하는 수행자의 삶의 오롯한 표상(그래서 출가는 곧 <출세간>인 것이다)이자 정법(성인의 삶)의 구현>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다만 오랜 불교사에 있어서 <출세간을 성취한> 소위 거사/부인들(우바새/우바이)은 모두 단지 모습만이 재가자이되, 이미 출가자와 같은 성스러운 삶을 구현하고 있기에 그들은 <귀의>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런즉 실질적인 <출세간의 성스러움>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출가>라는 제도형식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미 <재가화>된 소위 <대처종단>을 굳이 제외한다면, 소위 <명목상의 비구종단들>(대표; 조계종 등)은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만 한다..

 

그러고서 소위 종무(법의 실천)니 수행(법의 체득)이니 교육(법의 전수)이니 포교(법의 전달)니 호계(법의 수호)니 등을 비로소 운위할 수 있다.. 아니던가??

 

재산관리인으로서의 주지들

 

아무튼 <비구승가가 비구답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승가 본연의 양상과 정법을 파괴하고 있는 바의, <재산관리인으로서의 주지들(혹은 재단이사장 등)의 불교= 즉 사유화된 사찰경제>라는 오늘날의 친일(사찰령) 이래의 <해묵은 과제의 미청산>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소위 비구종단들에서조차 소위 비구들이 오직 <경제적으로 치부하기> 위한 <본사/수말사 주지 자리> 하나 꿰차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작금의 <한국불교(물론 어디 이게 불교만이랴??

 

소위 <개독교>라는 비난을 받는 소위 <대처 목사 기독교>도 역시 마찬가지다)의 천민자본주의적 실상>(정작 불교 또한 소위 뻘짓만 일삼는 <뻘교>가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은 이미 <목불인견>이다..

 

타락한 일부 권승들의 금권정치

 

그렇다면 도대체 이 친일불교의 잔재인 <미청산 과제의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소위 <묵은 도둑을 새 도둑으로> 갈아치우는 과거 <정화운동/종단개혁> 운운의 <행동주의의 오류>라는 이권분규의 구태(차마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타락한 일부 권승들에 의한 금권정치..)를 반복해야 하는가??

 

소위 총무원장을 선거로 갈아치우고, 세속화된 종법(특히 선거제도의 도입 등)으로 소위 잘나가는 수말사 주지들이 여야 파당정치(소위 종책모임?)를 벌이는 종회의원급 주지들만 뽑아 놓으면, 그 일(곧 여법승가의 구현/주지불교의 청산=<사유화>된 사찰경제의 청산)이 해결될 일이던가??

 

소위 각종 종교 <>들 하시는 분들!! 당신들 모두 <돈많은> 주지님들 아니신가?? 아무리 <>(정법!)보다 <>(돈벌어 도대체 무엇에 쓰시는가?)이 더 높은 세상이래도 넘 하지 않은가?? 돈도 안 벌리고 지위도 힘들기만 하다면 다들 지발로 세간으로 도로 나가실 분들이다..

 

(한알의 불씨, 한국불교의 자기정체성 제고)

 

  한국불교의_자기정체성_제고.docx  한국불교의_자기정체성_제고.pdf

 

 

 

이 글은 한알의 불씨라는 필명을 가진 사람이 불교관련 인터넷신문 댓글에 올린 것을 스크랩 한 것이다.

 

소위 술, 담배, 노름 등 무위도식등으로 보내는 정치승들에 대한 것이다. 이들을 지칭하여 주지불교또는 재산관리인불교라고 하였다. 이번 도박 사건으로 문제를 일으킨 스님8명이 모두 종회의원이거나 말사 주지들이기 때문에 이 글의 내용과 거의 들어 맞는다.

 

돈줄을 빼앗아야

 

이와 같은 재산관리인으로서의 반승반속의 스님들은 이권이 없다면 굳이 사찰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한다. 돈이 벌리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이지 돈이 되지 않는다면 절에 남아 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문제를 일으키는 스님들을 퇴출시킬 수 있을까. 이어지는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암튼 돌아가서 그럼 저 <주지불교>를 어떻게 <<해체>>해야 하는가?? 소위 범부불교의 희안한 <순결주의적 독선>도 안되고, 명색만을 바꾸는 <행동주의적 오류>도 안된다면, 도대체 어찌 해야하는가??

 

일단은 명목상이라도 <비구승가의 자정노력>이 필요하다.. 단 아무래도 금권을 쥔 주지들 <스스로> 자정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럼에도 주지 중 누군가는 먼저 시도라도 한번 해보라!!

 

암튼 부단히 <계몽>하는 수밖에 없다만.. 그래도 비구승가경제의 <주지 사유화>를 막을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승가의 재산을 그 문화재는 국가관리로!! 그 보시금의 관리는 <시주한 재가자들의 손>!! 곧 이미 <카톨릭(천주교)의 롤모델>도 있으므로..

 

(한알의 불씨, 한국불교의 자기정체성 제고)

 

 

 

가장 좋은 방법은 금권을 빼앗는 것이라 한다. 돈줄을 빼앗았을 때 승복을 입고 절에 남아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문화재를 국가에서 관리하고 보시금 관리를 시주한 재가자들의 손에 맡기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지는 더 이상 입장료를 챙기지 못할 것이고, 또한 시주돈 관리할 권한도 없기 때문에 떠날 사람은 다 떠난 다는 이야기이다.

 

재가자의 적극적 비난과 승가에 대한 경제적 압박

 

재산관리인불교, 주지불교를 해체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개 해야 할까. 이어지는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칼자루>>는 재가자가 쥐고 있다..

 

역시 제 스스로 머리를 안 깍는다면, <주지불교 해체>를 위한 <재가자의 적극적 비난과 승가에 대한 경제적 압박>이 필요하다..

 

<사찰재산의 공개>에서부터 <사찰운영의 각종 비사유화>에 이르기까지 그 <<핵심>>을 요구하라!! 그렇다고 엉뚱하게 일부 주지들과 결탁하여 정치적인 이권에 눈 먼 일부 사악한 재가자들의 교활한 선동에는 결코 속지 말라!!

 

절대로 <<선거>> 따위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오히려 승가의 세속화/재가화만 가속시킬 뿐이다..

 

물론 이미 <사유화된 기득권을 향유하는 소수 금권력을 쥔 일부 주지들의 완강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칼자루>>는 재가자가 쥐고 있다..

 

모든 경제적 보시는 <재가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므로.. 운영규모가 큰 절의 주지일수록 <경제적 압박>은 더 견디기 힘들다..

 

모조록 간단하다.. <불량품>은 구매하지 말라!! 그게 소위 <시장 원리> 아니던가?? 소위 종교장사 안되어 파산하면, 다시 재가자로 다들 돌아갈 일이다..

 

비구승가가 엄격해지면 결국 절집에 남아 있을 주지들 별로 없다!!

 

(한알의 불씨, 한국불교의 자기정체성 제고)

 

 

 

현재 불교관련 매스컴에서는 스님들의 폭력사태, 결혼한 스님, 공금횡령, 도박 사건등이 연이어 보도 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스님들은 대부분 주지님들이다.

 

한국불교에서 주지스님은 재산관리인이라고 볼 수 있다. 돈줄을 쥐고 있기 때문에 각종 이권을 챙길 수 있다. 그런데 주지스님으로부터 돈줄을 빼앗아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이제까지 폭력사태, 결혼한 스님, 공금횡령, 도박 사건 등 문제를 일으켰던 스님들은 나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나가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절에 남아 보았자 아무런 이득이 없는데 누가 힘들게 수행하며 공부하며 남아 있겠느냐는 것이다.

 

탁발정신의 실종

 

절에는 남아 있을 사람만 남아 있어야 한다. 한국불교에서 출가자의 숫자와 출가자의 감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숫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더 좋을 수 있다.

 

먹고 사는 문제로 스님이 된 자들, 각종 이권 때문에 남아 있는 자들은 모두 퇴출 대상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스님들의 숫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스님들의 권위는 더욱 더 높아 질 것이다.

 

오늘날 승가사회가 이렇게 타락하고 욕을 먹는 것은 한마디로 탁발정신의 실종이라 볼 수 있다. 부모형제와 인연을 끊고 모든 것을 버려야겠다고 다짐하고 심지어 버려야 겠다는 그 마음도 버리고 출가한 스님들이 무엇이 아쉬워 범부 보다 못한 행위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초기경에서 부처님은 탁발하면서 수행승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이 탁발이라는 것은 삶의 끝이다. 이 세상에서 '그대는 바루를 들고 유행한다' 는 것은 저주이다.

 

수행승들이여,

 훌륭한 아들들은 '결코 왕이 강요한다고 그런 것이 아니고 강도가 강요한다고 그런 것이 아니다. 빚을 졌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두려움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나는 태어남, 늙음,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에 떨어졌다. 괴로움에 떨어져 괴로움에 둘러싸여 있다. 적어도 괴로움의 다발들이 종식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라는 타당하고 합목적적인 이유가 있어 그러한 삶을 영위한다.

 

(돌야경-Piṇḍolya sutta- one Going For Alms Food-걸식경, 상윳따니까야 S21.2.3.8, 전재성님역)

 

  삔돌야경(걸식경-S21.2.3.8).docx  삔돌야경(걸식경-S21.2.3.8).pdf

 

 

 

부처님은 초기경에서 탁발하는 것에 대하여 삶의 끝이라 하였다. 그리고 바루를 들고 돌아 다니는 것은 저주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걸식하는 것에 대하여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빚쟁이 한테 쫒겨서 바루를 들고 걸식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먹고 사는 것 때문에 바루를 든 것이 아니라 하였다.

 

윤회의 종식을 위하여

 

그렇다면 무었 때문에 걸식하는 것일까. 그것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러므로 잘 배운 거룩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물질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며, 감수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며, 지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며, 형성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며, 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나서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해탈하면 '나는 해탈했다' 는 지혜가 생겨나서 '다시 태어남은 파괴되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은 다 마치고 다시는 윤회하는 일이 없다' 고 그는 분명히 안다."

 

(삔돌야경-Piṇḍolya sutta- one Going For Alms Food-걸식경, 상윳따니까야 S21.2.3.8, 전재성님역)

 

 

 

수행승들이 바루를 들고 걸식을 하는 이유는 해탈과 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다른 말로 윤회를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에서는 윤회의 종식을 위해서 출가한 것이 아니라 세세생생 윤회하기 위해서 출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 좋은 예가 스님들의 폭력, 은처, 공금횡령, 도박 사건 등 일 것이다.

 

눈물나는 부처님의 말씀

 

주지불교와 재산관리인 불교를 해체하기 위하여 문화재를 국가에서 관리하여 사찰 입장료를 폐지하고 시주돈은 시주한 재가자들이 관리하였을 때 폭력, 은처, 공금횡령, 도박 사건 등에 연루된 스님들은 자발적으로 나갈 것이다.

 

그 이전에 한국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부터 되새겨 보아야 한다. 그것은 탁발정신이다. 탁발정신이 실종 되었을 때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말씀은 눈물나게 만든다.

 

 

antamida bhikkhave,          안따미당 빅카웨

jīvikāna yadida piṇḍolya.   지위까낭 야디당 삔돌양

Abhisāpoya                     아비사뽀양

 lokasmi piṇḍolo               로까스밍 삔돌로

 vicarasi pattapāīti          위짜라시 빳따빠니띠

 

수행승들이여,

이 탁발이라는 것은 삶의 끝이다.

이 세상에서

'그대는 바루를 들고 유행한다'

는 것은 저주이다.”

 

“Monks,

the livelihood by seeking alms food

is one extremity.

It's a curse

to wander for alms food

with bowl in hands.”

 

 

 

 

2012-05-08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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