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노래하는 마루, 대정봉환의 무대 니조성

담마다사 이병욱 2012. 6. 25. 12:43

 

노래하는 마루, 대정봉환의 무대 니조성

 

                                                                                  

(6)일본성지순례 2일차(2012-06-06): 니조성

 

 

 

일본에 빼앗긴 것 네 가지

 

일본성지순례중 가이드가 들려 준 말 중에 우리가 일본에 빼앗긴 것 네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동방예의지국, 장인정신, 도자기, 기록문화라고 한다.

 

옛날에는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렀는데, 현재 전세계적으로 일본이 가장 예의바른 나라로 불리워지고 있기 때문에 그 타이틀을 빼앗긴 것으로 본다. 장인정신이나 도자기 역시 마찬가지라 한다. 또 하나 빼앗긴 것이 기록문화라고 한다. 그런 기록문화의 대표적 예를 버스기사로부터 보았다.

 

순례팀 10명과 가이드 1명 이렇게 11명이 이동하는데 사용되는 교통수단은 마이크로버스이다. 일반버스와 비교하여 절반 정도 되는 사이즈이다. 새것이 아닌 중고버스라 볼 수 있는데, 운전하는 기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사는 운행이 끝날 때 마다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었다. 다름 아닌 운행일지 이었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이동할 때 마다 시간과 이동장소와 주행거리를 빠짐없이 기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곳을 다녀 왔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으면 운전기사의 운행일지만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버스운전시기사도 열심히 기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기록문화는 일상화 된 것이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좀처럼 기록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기록문화

 

원래 우리민족이 기록을 잘 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으나 근대이후 기록을 잘 하지 않는 이유는 일제지배를 받고 동족간의 총부리를 겨누는 참혹한 전쟁, 그리고 바삐 살아가는 생활습관으로 인하여 사라진 것으로 본다. 진짜 그럴까. 김호성교수의 인터넷동영상 강의(2012년 02월 04 정각원 토요법회)를 들어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김호성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기록문화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왕조 실록처럼 왕조에서 관리하는 기록물이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기록하는 습관과 보존하는 문화가 원래부터 매우 약했다고 한다.

 

설령 기록한 문헌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전쟁등으로 소실되어 알 수 없는데, 그런 기록물을 오히려 이웃나라 일본에서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예로서 원효스님의 저술을 들 수 있다.

 

생전에 원효스님은 수 많은 책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전해 내려오는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 소실 되었는데, 그런 이유 중의 하나로서 원효스님이 차지 하는 위치가 한국불교에서 예로부터 비주류에 속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원효스님이 각광을 받은 것은 지난 60년대 이기영 박사등의 연구 성과로 보고 있다.

 

이처럼 많은 저술을 한 원효스님의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지만 이웃나라 일본에서 볼 수 있는데,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일본율종의 교과서라 불리우는 보살계지법요기라 한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보았을 때 일본의 기록정신은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하나의 문화이었음을 알 수 있다.

 

힘이 곧 정의인 시대

 

기요미즈데라(청수사)를 참관한 순례팀은 니조성으로 이동하였다. 같은 쿄토시내에 있어서 불과 2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 니조성은 쿄토 이조(二條)거리에 있다고 해서 니죠성(二條城)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다.

 

이번 일본성지순례에서 모두 절만 참관한 것은 아니다. 성이나 화산, 온천 등 역사와 문화탐방도 겸하였는데, 니조성의 역사탐방의 첫번째 케이스에 속한다.

 

니조성은 쇼군이 거처 하던 곳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도쿠가와 가문의 쿄토 거성인 것이다. 에도(도쿄)에 쇼군거성이 있었지만 수도에도 쇼군이 머무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일종의 특별 거처라 볼 수 있다. 그런 니조성은 외관상 보기에도 우리나라 성과 달라 보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산성임에 비하여 일본의 다이묘들이 거처 하는 성의 경우 해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니조성을 처음 본 순간 강렬하게 다가 온 것은 역시 해자이었다.

 

 

 

 

 

 

 

 

 

 

 

해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성주위를 파서 물로 채워 놓은 연못을 말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일본의 무인시대의 영향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헤이안 시대 이후 근대화가 시작 되기 전 까지 약 700년간 무인시대이었다. ‘힘이 곧 정의라 불리우는 시대를 말한다. 그런 무인시대의 절정은 전국시대이다.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소위 전국 3걸이라 불리우는 무장들이 활약하던 시대를 말한다. 니조성 역시 그와 같은 전국시대의 산물이다.

 

이렇게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파 놓은 해자와 함께 또 하나 우리와 생소한 것이 육중한 철문이다.

 

 

 

 

 

 

 

 

 

 

 

 

 

 

 

 

 

한 눈에 보기에도 매우 견고하게 생겼다. 철문을 걸어 잠그면 난공불락의 요새라 불리울만 하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이 일본성의 해자와 정문이다.

 

일본식 건물 니노마루

 

성문을 지나자 곧바로 니노마루가 보였다. 현재 니조성에서 중심건물이고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니노마루는 일본식 건물의 전형을 보여 주는 것 같다. 기와집으로 되어 있으나 우리나라 궁궐에서 보는 것과 많이 다른 모습이다. 독특한 일본식 건물로서 니노마루에 들어 서면 마치 한 건물처럼 보인다. 커다란 한 건물에 복도가 미로처럼 나 있는 형식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위키 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니노마루 어전의 현관에 해당되는 '구루마요세' '도오자무라이', '시키다이', '오히로마', '소테쓰노마', '구로쇼인', '시로쇼인'으로 불리는 6개동 건물이 줄지어 있으며 복도로 연결되어 하나의 건물처럼 보인다다고 설명되어 있다. 지그재그식 복도에 총30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용된 다다미만 800장이라 한다. 

 

 

 

 

 

 

 

 

 

 

 

 

 

 

 

 

 

 

 

 

 

 

 

 

 

 

니노마루 안으로 들어 가 보았다. 순로를 따라 볼 수 있는 니노마루는 사진촬영이 금지 되어 있다. 곳곳마다 관리 하는 사람이 서 있는데 모두 유니폼을 입은 여성들이다.

 

모두 한 공간에 있는 듯이 보이는 니노마루에는 각종 용도의 방이 있는데, 그 중 쇼군이 거처 하는 방도 있다. 마치 드라마 오오쿠를 연상시키는 듯한 여자들의 거처도 보인다. 드라마 오오쿠는 에도성 내부에서 여자들만 기거하는 공간을 말한다.

 

 

 

 

 

 

 

 

 

 

 

 

 

 

 

 

대정봉환(大政奉還)의 무대

 

사진 촬영이 금지된 니노마루에서 여러 개의 방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인상깊게 본 것은 막말 대정봉환(大政奉還)이 열렸던 큰방이다. 방안에는 인형이 놓여 있는데,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쇼군과 그 아래 다이묘들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다.

 

그 인형들을 보자 긴장감이 넘쳐 흘렀다. 특히 다이묘 인형들의 눈매를 보면 일촉즉발의 사건이 일어 날 듯이 기세가 넘쳐나 보인다. 유튜브로 검색한 동영상에서 캡처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역사에 있어서 니조성은 대정봉환의 무대이다. 대정봉환이란 1867년 도쿠가와 막부가 천왕에게 정권을 반납한 사건을 말한다. 일본역사에 있어서 헤이안 시대 이후 약 700년간의 걸친 무인정치가 종말을 고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런 의식을 니조성에서 거행하였는데, 이런 사건을 두고 니조성에 대하여 두 가지 시각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도쿠가와 막부가 시작된 곳도 니조성이고, 문을 닫은 곳도 니조성이기 때문이다.

 

 

니조성은 전국시대의 종지부를 찍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에 의하여 축조된 성이다. 하지만 마지막 쇼군이라 불리우는 15대 도쿠가와 요시노부(川慶, 1837-1913)가 시대의 흐름에 떠 밀려 모든 권력을 천왕에게 바침으로서 도쿠가와 막부의 종지부를 찍은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대정봉환장면

료마전 47(NHK, 2010)

 

 

 

그런 방은 마치 우리나라 창덕궁에서 마지막 어전 회의가 열려 한일합방을 결의 한 비운의 장소인 대조전을 연상케 한다.

 

 

 

 

창덕궁 대조전

이곳에서 1910년 한일합방이 결의 되었다.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복도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이렇게 도쿠가와 막부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곳이 니조성이다. 그런 니조성의 니조마루의 미로 같은 복도를 걷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판대기로 된 복도를 걸을 때 마다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일부로 그런 소리가 나게 만든 것이라 한다. 가이드는 꾀꼬리 소리 같은 것이라고 표현 하였는데, 그들은 왜 그런 삐걱 소리를 나게 만들었을까.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어느 블로거가 올려 놓은 글에 삐걱소리에 대하여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나무복도를 걸을 때 마다 소리가 나게 하였는데, 이를 일본어로 우구이수바리(꾀꼬리마루)라 하였다. 그렇다면 그 원리는 어떤 것일까. 블로거는 친절하게도 사진까지 제공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구이수바리(꾀꼬리마루)

니조마루 어전의 우구이수바리(꾀꼬리마루)를 그 밑에서 찍은 사진.

통행자가 지나가면서 중압이 가해지면 상하가 움직이게 만들어 마루가 움직이면서

마루소리와 못 소리가 마치 꾀꼬리 소리처럼 나는 것이다.

 

출처: 어느 블로거의 포스팅에서

 

 

 

 

이와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꾀꼬리 마루에 대하여 자료를 더 조사 해 보니 영어로 나이팅게일마루(Nightingale Floor)라 하였다. 사진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나이팅게일마루(Nightingale Floor)

Nightingale floor, Uguisubari ( )

 

 

 

 

노래하는 마루, 휘파람새소리 마루는 어떤 것일까

 

꾀꼬리마루 또는 나이팅게일마루 마루라 불리우는 우구이수바리 ()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일본어판 위키피디아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鶯張(うぐいすばり)とは、侵入らせるためにった廊下のこと。このくとがきしみ、るようになっている。

 

日本建築物られる、によりきしみにつくられた仕組みを鶯張りとい、外部侵入者探知けられたとされている。またのみにらず建築物構造による音響られていたとされる。鳴子められる砂利玉砂利等も、簡易ながら同等られる建造物としてげられる。 鶯張りの成立自然作はあるが、その技術われ今日では同等製作しいとわれている。

 

1987神奈川県大和市料亭番外新館建設菊池建設株式施工)で、「昭和のうぐいすり」として再現された。現在では、「和店 菊池安治作品集3」(扶桑社)で、その姿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

 

重量がかかればどのいてもるようにってある日常用途としては制限く、その部外者でないいてるように、廊下通過するはある一定のリズムをめられていた場合もあった。

 

英語ではナイチンゲルフロア (nightingale floor) 、シンギングフロア (singing floor) などの名前す。

 

京都府知恩院のものが有名である。

 

 

우구이수바리라는 것은 적의 침입을 알려주기 위하여 만들어진 복도이다. 그 위를 걸으면 마루가 삐걱거리며 소리가 나오도록 되어 있다.

 

일본의 고래의 건축물에서 보여진다. 사람이 마루판 위를 걸을 때 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모양으로 만들어진 구조를 ‘휘파람새(鶯張り)’라 부르고, 외부침입자의 위험탐지을 위하여 설치되어 있다.  또 마루의 소리만으로 한하지 않고 울타리 또는 담 등의 건축물의 구조에 따른 음향도 생각하여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외도 새를 쫒는 설렁(鳴子)’이나 정원에 깔린 자갈, 밤자갈(玉砂利) 등도 간이로 동급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건조물이라고 일컬어 진다. 휘파람새소리의 성립의 경위에 대하여 인위적  또는 자연작위라는 해설도 있지만 그 기술을 잃어 버린 오늘날 동급의 마루를 제작하는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여지고 있다.

 

1987년 나라현현대화시의 요정번외신관건설(국지건설주식회시공)에서 소화의 우구이수바리 로서 재현되었다. 현재는 ‘화점 국지안치의 작품집3’에서 그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중량이 가해지면 어느 곳을 걸어도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일상의 용도로서 제한이 많고, 그 때문에 타인이라고 판단되는 외부자로부터 안전을 지켜 주는 시스템이라 볼 수 있다.

 

영어로 나이팅게일플로(nightingale floor), 싱잉플로(singing floor, 노래하는 마루)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진다.

 

쿄토의 지인원(知恩院)과 니조성()의 것이 유명하다.

 

(鶯張)

 

 

 

나무복도를 걸을 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게 하는 건축기술은 일본에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건물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라 한다. 이렇게 소리가 나게 하는 이유는 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지 하기 위한 것이라 하는데 오늘날 CCTV와 같은 것이라 보여진다.

 

마루를 밟을 때 마다 나는 소리에 대하여 일본에서는 우구이수바리(うぐいすばり, 鶯張)라 하는데, 이를 우리말로 표현하면 휘파람새소리또는 꾀꼬리소리라 한다. 영어로 나이팅게일플로(nightingale floor)’라하지만 노래하는 마루라는 뜻의 ‘singing floor’가 더 와닿는다.

 

그렇다면 휘파람새소리 또는 꾀꼬리 소리는 어떤 것일까. 유튜브 동영상 사이트에서 확보한 영상을 보면 다음과 같은 소리이다.

 

 

 

노래하는 마루(singing floor)

우구이수바리(鶯張, 휘파람새소리 마루)

Nightingale floor, Uguisubari ( )

 

 

 

모모야마 양식 니노마루 정원

 

니조성은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대정봉환이 열렸던 니노마루가 국보로 지정 되어 있고, 22개동의 건물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 니조성에서 일본식 정원이 인상적 이었다. 일본정원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위키백과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니노마루 어전 정원

 

다른 이름은 하치진노니와(八陣)이다. 고보리 마사가즈의 대표작으로 거론된다. 모모야마 양식의 지천회유식 정원이다.

 

연못에는 3개의 섬이 있다. 연못의 중앙에서 조금 북쪽으로는 가장 큰 섬인 호라이 섬()이 있다. 그 북쪽에는 가메시마 섬, 남쪽에는 쓰루시마 섬이 있다. 가메시마 섬은 거북 형상이며, 쓰루시마 섬은 두루미의 형상을 한 돌로 조성하였다.

 

연못의 북서쪽에는 2단의 폭포가 있으며, 연못의 남쪽에 넓게 퍼진 잔디는 1624년 고미즈노 천황의 외출을 즈음하여 지어진 교코 어전이 있던 장소이다. 교코 어전인 남쪽에서 보는 정원이 제1정면이며, 제2정면은 동쪽인 오히로마 측, 제3정면은 북쪽인 구로쇼인이다. 이렇게 3정면식 설계이다.

 

 

니노마루 정원은 일본의 모모야마 양식이라 한다. 이 정원은 1953년 특별경승지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2012-06-2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