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법구경 위젯을 만들어 주세요!”온오프라인의 불교 불모지대를 보며

담마다사 이병욱 2012. 8. 11. 13:45

 

법구경 위젯을 만들어 주세요!”온오프라인의 불교 불모지대를 보며

 

 

 

 

노방전도하는 사람들

 

자주 다니는 하천 길이 있다. 생태하천으로 거듭 난 길에는 조깅코스가 있다.  그래서 수 많은 시민들이 밤낮 없이 걷기 또는 자전거타기를 즐긴다. 이렇게 사람들이 왕래가 많은 길에서 어느 초로의 부부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다름 아닌 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 노방전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수도권에서 거리나 전철역앞 등에서 전도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전도사들은 가정집이나 사무실에서도 볼 수 있는데, 주로 2 1조로 이루어져 있다. 잘 차려 입은 옷에 온화한 미소와 함께 전도하러 다니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대부분이다.  

 

바이블 문구가 쓰여 있는 액자

 

식당이나 가게에 들어 가면 종종 바이블 문구가 들어가 있는 액자를 볼 수 있다. 번영, 창성 등의 단어가 들어가 있는 문구를 골라 액자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놓고 있다. 이처럼 바이블 문구를 공개적으로 걸어 놓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림과 동시에 기독교인 손님을 단골로 만들겠다는 전략일 것이다.

 

제빵집에서 본 십자가

 

이렇게 도시의 가게나 식당 등에서 바이블 문구가 들어가 있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을 발견하였다. 어느 제빵집의 벽에 걸려져 있는 십자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가게나 식당에서 바이블문구를 종종 보긴 하였으나 이렇게 노골적으로 십자가를 걸어 놓은 제빵집은 처음 보았다. 기독교인이나 무종교인이라면 몰라도 아마도 불자들이라면 눈살을 찌뿌릴 지도 모른다. 가게나 식당, 제빵점도 공공장소와 다름 없는데 노골적으로 십자가를 걸어 놓았다는 것은 타종교인을 배려 하지 않은 일종의 무례함으로 보여 질 수 있기 떄문이다. 

 

이처럼 바이블 문구가 들어 있는 액자와 십자가를 수도권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만일 어느 가게에서 법구경 등과 같은 불경이 들어가 있는 문구를 걸어 놓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또 자그마한 불상이나 관세음보살상을 벽에 모셔 놓았다면 어떻게 될까.

 

아직까지 그런 가게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무어라 말 할 수 없지만 장사가 안될 것임에 틀림 없다. 그것은 수도권에서 불교세가 기독교에 비하여 현저하게 열세이고 또한 불교에 대한 전근대적 이미지 즉, 불교가 미신행위나 하고 우상이나 숭배하는 종교로 막연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세상은 온통 십자가 천지

 

이렇게  전국민의 절반 가량이 모여 산다는 서울과 수도권에서의 불교의 교세와 이미지는 형편없다. 그래서일까 사찰을 찾아 보기 어렵고 설령 있더라도 정법과 거리가 먼 것이 대부분이고 크기 또한 보잘 것 없다.

 

이에 반하여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교회와 성당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 일부는 그 규모가 매우 크고 우람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일요일 오전만 되면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 바이블을 보란 듯이 옆구리에 끼고 교회가는 모습이 하나의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식당에서 밥을 먹기 전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다. 이처럼 현실세계는 교회십자가 숫자가 말해 주듯이 온통 기독교천지가 된듯 하다. 

 

통계상 서울과 수도권의 종교비율은

 

그렇다면 서울과 수도권에서 종교 비율은 어떠할까. 지난 2005년 인구총조사 당시 매10년 마다 작성되는 전국민의 종교인구 조사에서 서울과 수도권의 종교비율을 보면 다음 표와 같다.

 

 

 

서울, 인천, 경기의 종단별 인구

 

 

서울

인천

경기

9,762,546

2,517,680

10,341,006

불교

1,642,667

(16.8%)

348,361

(13.8%)

1,741,401

(16.8%)

개신교

2,222,831

(22.7%)

563,433

(22.3%)

2,260,594

(21.8%)

천주교

1,382,264

(14.1%)

345,843

(13.7%)

1,286,104

(12.4%)

출처; 2009 문화관광부 한국의 종교현황(2005년 인구총조사 자료)

 

 

 

표를 보면 인천의 경우 불교가 천주교에 역전 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1위 개신교(22.3%)에 비하여 불교가 고작 13.8%로서 2위이지만 이는 13.7%의 천주교와 불과 0.1%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최근 20년간 천주교의 가파른 성장세에 따른다면 이미 역전이 일어났음에 틀림 없다.

 

또 표를 보면 전인구의 절반이 모여 산다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불교는 2등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것도 1위 개신교와는 크게 벌어져 있다. 문제는 천주교와의 격차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 10년 마다 치루어지는 다음 번 종교인구 조사가  2015년에 시행되는데, 그 때 한국불교는 서울과 수도권에 있어서 개신교와 천주교 다음으로 3등 종교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앞으로 3년 남았다.  

 

체감하는 종교비율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수치상으로는 어느 정도 교세를 확보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체감하는 불교는 다르다. 이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조사한 자료가 있다.

 

수도권 신도시 산본 이마트에서 마일리지 현황판을 보면 한국불교의 현실을 어느 정도 체감할 수 있다. 마일리지 현황판을 보니 대부분 교회이었다. 구체적으로 교회가 39(76%), 성당이 7(14%), 사찰이 5(10%) 이었다. 

 

경기도 지역의 종교인구 비율이 개신교가 21%이고, 불교가 16%이지만,  마일리지 현황판으로 체감 하는 수치는  개신교가 76%이고 불교는 고작 10%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대 개신교가 대략 1:8정도 된다.

 

그런데 이런 체감 지수는 거의 전국적이라는 사실이다.  전화번호를 검색해 주는 사이트인 114인터넷을 이용하여 사찰과 교회와 성당의 숫자를 비교하여 올린 글(부처님은 어디로 출가 하였을까, 삼보는 없고 이보(二寶) 있는 도시에서)이 있다.

 

글에서 표본도시라는 안양권 도시(안양, 군포, 의왕, 과천)시를 예로 들면, 안양권 인구 108만명에서 종교시설은 928개소이었다. 이중 사찰은 고작 81개로서 8.7%에 불과 하였다. 나머지 대부분이 교회인데 무려 797개로서 85%를 차지 하였다. 천주교 성당은 50개로 5.3%이었다. 이렇게 사찰대 교회는 1:8로서 앞서 언급한 이마트 마일리지 판의 비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네는 불교의 불모지대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람이 사는 곳에 절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안양권 81개의 사찰은 대부분 산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살고 있는 동네를 보면 알 수 있다.

 

행정구역상 동의 인구는 11.925명이다. 세대수는 4.066이다. 가구당 2.93명이다. 이를 놓고 교회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114인터넷사이트를 이용하여 검색하여 보니 교회가 무려 15개나 되었다.

 

그렇다면 사찰은 몇 개일까. 놀랍게도 단 한 곳도 없었다. 15개의 교회가 11,925 4.066세대를 놓고 지역민들을 위한 각종 봉사활동을 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경쟁에 불교는 전무하였다. 이것이 한국불교의 현실이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보았을 때 사람이 사는 곳에 불교는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산중에나 가야 불교를 볼 수 있을까 현실에서 불교를 접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이 사는 곳에서 불교는 불모지대나 다름 없다.

 

홈페이지로 본 교회와 사찰의 분위기

 

이렇게 통계수치상으로 보는 종교비율과 실제 종교시설의 비율이 다르고, 살고 있는 지역에서 체감하는 비율이 차이 나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이 이렇다면 사이버공간은 어떠할까.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이버 공간에서 비율 역시 1:8 내지 1:10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종교관련 블로그나 카페, 홈페이지 비율이 불교의 경우 1이라면 개신교의 경우 8내지 10이라는 것이다.

 

이중 홈페이지를 보면 교회와 사찰의 분위기가 다르다. 교회 홈페이지의 경우 새로운 글이 계속 올라와 생동하는 느낌을 주지만, 사찰의 경우 오래된 자료만 보여서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현실세계에서는 물론 가상세계에서 조차 불교는 개신교에 비하여 1:8 내지 1:10으로 열세이다. 그런데 최근 블로그 꾸미기를 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열세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위젯에 대한 것이다.

 

위젯(widget)이란 무엇인가

 

위젯이란 무엇인가. 위젯(widget)회원의 프로파일 페이지 안에서 구동하고 특히 소셜 네트워킹(social networking) 사이트에서 인기 있는, 인터넷 기반의 소비자 소프트웨어 형태라고 백과사전에 설명 되어 있다.

 

그래서 위젯에는 게임과 퀴즈, 사진 보정 툴 및 뉴스 단신 자막들이 포함 되고 있는데, 최근 음악 플레이어, 사진 뷰어, 날씨 예보, 퍼즐, 뉴스 헤드라인을 웹 페이지 등도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위젯의 인기가 높아지자 여러 회사들이 광고매체로 이용한다고 한다.

 

현재 몇 개의 위젯을 활용하고 있다. 모두 검색용이다. 특히 블로그 내의 글을 검색할 때 위젯의 위력을 실감한다. 올린 수 많은 글 중에 필요한 내용을 다시 보고자 할 때 키워드 몇 개만 집어 넣으면 블로그내 검색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위젯은 잘만 활용하면 블로그 꾸미기에 많은 도움을 주는데 최근 위젯검색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종교에 관한 위젯이다.

 

7개나 되는 개신교 위젯

 

현재 다음(Daum)에는 무려 1,417개의 위젯이 공급되고 있다. 이를 장르별로 보면 엔터테인먼트가 155, 생활이 213, 시계/달력/날씨에 대한 것이 82, 팬카페 응원에 대한 것이 392개 등이다. 이렇게 많은 위젯 중에 종교와 관련 된 것도 있다는 사실이다.

 

위젯뱅크 검색창을 이용하여 개신교 관련 위젯이 몇 개나 되는지 조사해 보았다. 먼저 교회키워드를 집어 넣으면 교회주소록, 성경사전 등6개가 뜬다.

 

 

 

성경을 키워드로 하면 오늘의 성경말씀이 뜬다. 이렇게 확인 된 것만 모두 7개이다.

 

그렇다면 불교는 어떨까. 불경을 키워드로 넣어도, 사찰이나 절 또는 부처님을 키워드로 넣어도 단 한 개도 뜨지 않는다. 스코어로 따진다면 0:7이다.

 

개신교 위젯을 보니

 

개신교 관련 7개의 위젯 중에 교회주소록이 있다. 등록된 교회가 33,921개이다. 서울을 보니 1,326개이고, 경기도는 1684개로 되어 있다. 그 중 경기도에 있는 한 교회로 들어가 보니 교회명과 목사이름, 교단, 주소, 전화가 뜬다. 홈페이지가 있는 경우 접속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와 같은 교회주소록 위젯은 누가 만들어 올려 놓았을까. 가연이라는 곳에서 제작한 것으로 되어 있다. 웹사이트를 들어 가 보니 한국컴퓨터선교회라고 되어 있다. 온라인선교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온라인상의 다음블로그, 다음카페, 티스토리, 네이버블로그에서 퍼 갈 수 있도록 해 놓았다. 2010 6월 등록 된 이래 모두 1,052회 퍼 간 것으로 되어 있다.

 

다음으로 오늘의 성경말씀위젯을 보았다. “지치고 힘든 나에게 보태줄 성경문구라고 표현되어 있다. 위젯 하단의 버튼을 누르면 바이블의 구절이 나타나는데, 그 중 하나의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위젯의 버튼을 누름에 따라 짤막한 바이블 문구가 연달아 나타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2009년에 등록 되었는데 이제까지 퍼 간 숫자는 20,812명으로 되어 있다.

 

전무한 불교 위젯

 

이와 같은 개신교의 위젯을 보고서 오프라인 물론 온라인 마저 철저하게 선교의 장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실세계에서 볼 수 있는 노방전도 뿐만 아니라 가상공간에서도 역시 선교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가상공간에조차 불교는 보이지 않았다.

 

현실세계에서도 무관심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불교종단과 승단이라면, 가상세계에서도 역시 무관심으로 일관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불교 위젯의 전무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죽을 각오로 ()’를 찾자고

 

붓다뉴스에 따르면 최근 중앙종회의장 보선스님은 국제선센터 일요 법회에서 다음과 같은 법문을 했다고 한다.

 

 

조계종은 선종(禪宗)입니다. 우리는 조계종 신도이기 때문에 참선을 통해 나를 찾아 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 물론 무엇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실천하는 것입니다. 죽을 각오로 실천해야 합니다. 세세생생의 업장은 쉽게 사라는 것이 아닙니다.

 

(중앙종회의장 보선스님,  죽을 각오로 본성찾는 공부하십시오”, 조계종 국제선센터 일요 법회- 중앙종회의장 보선 스님, 붓다뉴스 2012-08-08)

 

 

스님은 법문에서 죽을 각오로 공부하라고 하였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기 위하여 죽을 각오로 연습하고 본 게임에 임하듯이 우리 불자들도 죽을 각오를 하고 를 찾자고 하였다.

 

나를 찾는 동안 한국불교는

 

선종을 표방하고 있는 한국불교에서 현재 선방에서는 스님들이 하안거를 맞아 용맹정진하고 있다. 나를 찾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나를 찾기가 쉬운 것 같지 않다.

 

보선스님은 법문에서 나를 찾기 위한 수행의 과정은 온갖 번뇌 망상과 싸워야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나를 찾기 위한 수행은 매우 험난한 것인데, 그 기간이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10, 20, 30, 평생동안 선방에 앉아 있어도 나를 찾을 수 있을 지 장담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렇게 스님들이 10, 20, 30, 평생동안 나를 찾는 수행에 매진 하는 동안 한국불교는 어떻게 되었을까. 인구총조사 통계 수치로 보았을 때는 개신교와 엇비슷할지 모르지만 현실에서 체감하는 것은 영 딴판이다. 이는 모든 면에서 항상 1:8 내지 1: 10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개신교의 1/10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각 분야에 있어서 불교의 영향력은 개신교의 1/10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와 같은 1:10은 현실세계 뿐만 아니라 사이버세상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위젯의 경우 불교와 관련 된 것은 한 개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지혜와 진리의 말씀

 

부처님은 일생동안 팔만사천 법문을 하였다. 그런 기록이 고스란히 경전에 실려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부처님의 원음이라 불리우는 빠알리 니까야가 우리말로 완역 되었는데, 이는 보면 바이블과 비교 대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양이 많고 내용 또한 매우 풍부하다.

 

이렇게 인류의 보배와도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실세계 뿐만 아니라 사이버세상에서도 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죽을 각오로 나를 찾는 수행을 하듯이 목숨을 걸고 부처님의 원음을 알려야 할 것이다. 그래서 네티즌들을 위한 초기불교 경전 위젯을 만들었으면 한다. 우선적으로 법구경 위젯을 만들었으면 한다.

 

법구경은 종교와 믿음과 상관없이 삶의 이정표를 제시해 주는 교양서이다. 따라서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보아야 하는 진리의 말씀이다. 만약 법구경 위젯이 만들어진다면 많은 네티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 것임에 틀림 없다. 법구경 게송중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바르지 않게 백년을 사는 것보다

바르게 깨어있는 마음으로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낫다.(110)

 

 

선은 서둘러 행하고

악에서 마음을 멀리하라.

선을 행하는데 느슨할 때

그 마음은 벌써 악을 즐기고 있다.(116)

 

 

악을 저질렀다면

다시는 그것을 되풀이하지 말라.

악의 누적은 괴로움을 가져 올 뿐이니

악 속에서 즐거워하지 말라.(117)

 

 

선행을 하였다면 계속해서 그렇게 하라.

선을 하겠다는 열망을 일으키라.

행복은 선의 누적의 결과이다.(118)

 

 

먼저 바른 행동으로 자신을 세운 후 다른 사람을 가르치라.

이런 지혜로운 이는 비난으로 괴로워하지 않는다.(158)

 

 

자기 자신은 진정 자기의 주인이다.

어떤 주인이 따로 있겠는가.

자기 자신을 잘 다루는 사람은

얻기 어려운 의지처를 얻는다.(160)

 

 

금화가 소나기처럼 쏟아져도

인간의 욕망은 만족시킬 수 없다.

감각적 쾌락은 짧은 달콤함에 많은 고통이 따른다.(186)

 

(일아스님 역)

 

 

보시중에 최상의 보시가 법보시라 하였다. 스님들이 선방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나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생에 대한 자비심이 있다면 법구경의 한 게송이라도 들려 주는 것이 커다란 공덕을 쌓는 일이 될 것이다.

 

“법구경 위젯을 만들어 주세요!”

 

현재 동네에서 절 구경할 수가 없다. 교회는 넘쳐나지만 절이 보이지 않아 동네는 불교의 불모지대나 다름 없다. 그런 불모지대가 동네 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도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위젯을 들 수 있다.

 

종단에서 중생에 대한 자비심이 있다면 위젯하나 정도 만드는 것쯤이야 아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불교의 불모지대를 하나 씩 제거 해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죽을 각오로 나를 찾는 일 보다 더 급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외치고 싶다.

 

 

법구경 위젯을 만들어 주세요!”

 

 

 

2012-08-1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