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큰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성자의 삶, 날라까경( Sn3.11)

담마다사 이병욱 2012. 8. 27. 14:40

 

큰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성자의 삶, 날라까경( Sn3.11)

 

 

 

날라까경

(Nālakasutta- To Nalaka, 숫따니빠따 Sn3.11, 전재성님역)

 

 

 

날라까의 경

[Nalaka sutta] (*1)

 

 

주해(*1)

 

이 경은 아쇼카왕의 캘컷따 바이랏뜨 비문에 언급된 ‘성자의 삶의 경’이다.

 

과거불인 빠두뭇따라 부처님의 제자가 성자의 삶을 실천하는 것을 보고 한 남자가 자신도 그것을 실천하고 싶어 했다.

 

그는 십만 겁 동안 바라밀을 닦아서 아씨따 선인의 조카인 날라까라는 고행자로 태어났다.

 

그러나 이 경안에서는 아씨따 선인이 부처님을 살아서 볼 수 없을 것을 알고 자신의 조카인 날라까에게 즉시 출가하여 유행자가 되어 나중에 부처님을 뵐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날라까는 엄청난 부를 버리고 출가하여 히말라야에서 보냈다.

부처님께서 출현하여 초전법륜을 굴린 지 7일만에 그가 부처님을 찾아뵙고 날라까의 실천으로 알려진 ‘성자의 삶의 실천’에 대하여 부처님께 질문하면서 성립한 것이 이 경이다.

날라까는 이 가르침을 듣고 다시 히말라야로 들어가 아라한의 경지를 성취했다. 다른 빠알리 문헌인 ‘마하바스투’나 ‘자따까’에도 등장하는 경이다.

 

 

1.

따(*1) 선인은

한낮의 휴식하는 장소에서 깨끗한 옷을 입은 도리천의 신들이(*2)

윗옷을 들고 기뻐하고 환희 하면서

공손히 제석천을 극구 찬탄하는 것을 보았다.

 

2.

기쁨에 넘쳐있는 신들을 보고 선인은 존경을 표하면서 물었다.

 

[아씨따]

“왜 신들은 기쁨에 넘쳐 있습니까?

무슨 이유로 윗옷을 들고 흔들고 있는 것입니까?

 

 

주해(*1) Asita :

아씨따라는 선인은 원래 고따마의 할아버지이자 쑷도다나의 아버지인 씨하하누의 사제였다. 따라서 그는 쑷도다나의 선생이었다가 나중에 제사장이 되었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씨하하누 왕을 찾아뵙고 문안을 드렸다.

왕이 서거하자 아씨따는 세상을 버리고 왕의 유원에서 살았다. 그는 여러 가지 신통력을 구사해서 천상세계에서 노닐기도 했는데 어느 날 도리천에서 신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씻다르타 고타마가 부처님이 되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이경이 시작되고 여기에 등장하는 날라까는 아씨따 선인의 누이동생의 아들이었다. 아씨따는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깐하 데발라 등으로 불리었다.

 

주해(*2)

‘서른셋의 무리’라는 말인데 서른셋 하늘나라(33) 즉 도리천의 무리라는 말이다. 참고로 고대 인도의 베다 성전에서도 일반적으로 모든 신들의 숫자를 서른셋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3.

만일 아수라들과의 싸움에서 신들이 이기고 아수라가 졌다 할지라도 몸의 털을 곤두설 수는 없을 터인데, 어떤 희귀한 일을 보고 그처럼 기뻐하는 것입니까?

 

4.

그들은 소리치고 노래하며 악기를 연주하고 손뼉을 치면서 춤을 춥니다. 나는 수미산(*1) 꼭대기에 살고 있는 그대들에게 묻습니다. 존자들이여, 제 의혹을 어서 풀어주십시오.

 

5.

[하늘사람]

“비할 데 없이 묘한 보배인 저 보살은 세상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인간세계에, 싸끼야 족 마을 룸비니(*2) 동산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족해하고 기쁨에 넘쳐있는 것입니다.

 

6.

모든 뭇삶(*3) 가운데 가장 위없는 님, 가장 높으신 님, 인간 가운데 우두머리, 모든 생류 가운데 위없는 님께서 뭇 짐승들의 왕인 용맹스런 사자가 포효를 하듯, ‘선인’이라 불리는 숲에서 수레바퀴를 굴릴 것입니다.

 

 

주해(*1)

한역에서 수미산이라고 하며 세계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산으로 그 위에 신들이 산다는 신화가 인도의 서사시에 등장한다.

 

주해(*2)

룸비니를 말하며 까빌라밧투와 데바다하 사이에 놓인 공원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난 곳이다. 네팔 국경지대에 있으며 부처님의 탄생지임을 알리는 아쇼카왕의 비문이 있다.

 

주해(*3)

‘신들과 인간들’을 말한다.

 

 

7.

그는 그 말을 듣자 서둘러 하강했다.

그리고 쑷도다나 왕의 궁전을 방문해서 자리에 앉아서 싸끼야 족 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씨따]

“왕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저도 뵙고 싶습니다.

 

8.

그리하여 싸끼야 족들은 훌륭한 금세공사가 만든 화로에서 정련된 빛나는 황금처럼, 영광으로 반짝이며 찬연하게 빛나는 왕자아이를 선인에게 보였다.

 

9.

그는 불꽃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천체의 왕자처럼 밝으며,

구름한점 없는 가을의 태양처럼 밝은 왕자를 보자

환희가 솟아나 커다란 기쁨을 얻었다.

 

10.

 하늘의 신들은 수많은 뼈대가 있고,

천 개의 테가 달린 양산을(*1) 공중에 펼쳤다.

또 황금자루가 달린 총채를 위 아래로 흔들었다.

총채나 양산을 손에 쥔 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주해(*1)

한역에서는 산개(傘蓋)라고 한다.

하늘의 흰색 양산으로 왕의 권위를 나타낸다.

 

 

11.

깐하 씨리(*1)라는 상투를 튼 선인은

머리위에 흰 양산을 가리고 빨간 모포에 싸여 있는

황금 패물 같은 그 님을 보고 기뻐서 가슴에 안았다.

 

12.

지혜에 능통한 그가 싸끼야 족의 황소를 안고 인상을 살피더니

‘이 분은 위없는 님, 인간 중에서 가장 뛰어났습니다!’라고 환성을 질렀다.

 

13.

그리고 그는 자기가 멀지 않은 죽음을 생각하고,

거침없이 눈물을 흘렸다. 선인이 우는 것을 보고 싸끼야 족들은 물었다.

 

[싸끼야 족]

“우리 왕자에게 무슨 위험이라도 닥칩니까?

 

 

주해(*1)

아씨따는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깐하 씨리 등으로 불리었다.

 

 

14.

싸끼야 족들이 걱정하는 것을 보고 선인은 말했다.

 

[아씨따]

“왕자에게서 어떤 불길한 징표를 본 것도 아니고,

왕자에게 위험이 닥치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결코 열등한 자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15.

이 왕자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

가장 으뜸가는 청정을(*1) 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고

많은 사람을 연민하여

진리의 바퀴를 굴릴 것입니다.

그의 청정한 행은 널리 펼쳐질 것입니다.

 

16.

이 세상에 내 목숨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2) 내게는 죽음이 찾아 올 것입니다.

견줄 데 없는 힘을 지닌 님의 가르침을 듣지 못하리니,

너무나 불행하여 나는 슬퍼하는 것입니다.

 

 

주해(*1) 열반(닙바나. nibbana)을 말한다.

주해(*2) 그가 깨닫기 전을 말한다.

 

 

17.

싸끼야 족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고,

그 청정한 수행자는 궁중을 떠나갔다.

그는 자기 조카를 불러

견줄 데 없는 힘을 지닌 님의 가르침을 따르게 하였다.

 

18.

[아씨따]

“만일 네가 나중에 다른 사람이 ‘세존’이라는 말과

'올바로 깨달음을 얻어 진리의 길을(*1) 간다’고 말하는 것을 듣거든,

그때 그곳으로 가서 그에게 가르침을 묻고

그 세존의 밑에서 청정한 삶을 닦아라.”

 

19.

그러한 유익한 생각을 지니고,

미래에 최상의 청정한 삶을 보는 자의 가르침을 받아,

날라까는 온갖 공덕을 쌓으며

승리자를 기다리면서 감각 능력을 수호하며 살아갔다.

 

 

주해(*1)

 최상의 가르침인 열반의 길을 말한다.

 

 

20.

 최상의 승리자가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린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 가서 선인가운데 으뜸가는 선인을 보고 기뻐하며,

아씨따라고 불리는 선인의 말이 실제로 이루어지자,

뛰어난 지혜(*1), 최상의 해탈에 대해 물었다.

 

21. [날라까]

“아씨따가 알려 준 말을 잘 듣고 찾아왔습니다.

고따마시여, 모든 현상의 피안에 도달하신 바로 당신께 묻겠습니다.

 

22.

저는 집 없는 삶을 찾아 탁발의 삶을 추구하오니,

성자시여, 성자들의 최상의 삶에 대하여 제가 여쭈오니 말씀해 주십시오.

 

23.

[세존]

“그대에게 성자들의 삶에 대해 알려주리라.

그것은 성취하기 어렵고 도달하기 힘들다.

이제 그대에게 그것을 알려줄 것이니,

그것을 굳건히 하여(*2) 단단하게(*3) 지키라.

 

 

주해(*1) 최상의 지혜, 길에 대한 지혜를 말한다.

주해(*2) ‘정진을 지지(支持)하여 자신을 지지하라’는 뜻이다.

주해(*3) ‘게으르지 말고 정진을 확고히 하라’는 뜻이다.

 

 

24.

마을에서 욕을 먹든지 절을 받든지

한결같은 태도로(*1) 대하여라.

정신의 혼란을 수습하여(*2)

고요히 하고, 교만을 떨쳐버리고,(*3)

유행하라.

 

25.

가령 숲 속에 있더라도(*4)

불의 화염 같은 높고 낮은 것들이 나타난다.

아낙네는(*5) 해탈 자를 유혹한다.

아낙네로 하여금 유혹하도록 하지 말라.

 

26.

성적 교섭에서 떠나

온갖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든 생명 있는 것에 대해 적대하지 말고,

애착하지도 말라.

 

27.

내가 그런 것처럼 그들도 그렇고,

그들이 그런 것처럼 나도 그렇다.

자신과 비교하여 그들을 죽여서도

죽이게 해서도 안 된다.

 

 

주해(*1)

‘마을과 연결된 번뇌를 없애기 위한’이다.

 

주해(*2)

 욕을 얻어먹었을 때 정신의 혼란을 수습하는 것을 말한다.

 

주해(*3)

‘절을 받았을 때에 생겨나는 교만을 떨쳐버리는 것’을 말한다.

 

주해(*4)

‘숲에서 묶이는 번뇌를 버리는 것’을 다루고 있다.

 

주해(*5)

‘숲 속에 놀러오거나 땔감을 구하러 온 여인’을 말한다.

 

 

28.

일반 사람들이 집착하는

욕망과 탐욕을 떠나(*1)

눈을 갖춘 님이 된다면,

바른 길을 갈 수 있고,

이 지옥을 벗어(*2)날 수 있다.

 

29.

 배를 가득 채우지 않아 음식을 절제하고,

욕심을 적게 하고(*3) 탐내지 말라.

욕망이 없어져 버리면,

욕망이 없는 것이 소멸이니라.

 

30. 성자의 삶을 사는 자는 탁발을 하고 나서,

나무 아래로 가까이 가서 자리를 잡고,

숲 속의 빈터에 머무는 것이 좋다.

 

 

주해(*1)

‘의복과 다른 필수품에 대한 욕망과 탐욕에 일반인들이 집착하므로 그 양자를 떠나는 것’을 말한다.

 

주해(*2)

‘필수품에 대한 갈애를 벗어나라’는 뜻이다.

 

주해(*3)

‘필수품, 두타행, 학습, 지식’과 관련하여 욕심이 적은 것을 말한다.

 

 

31.

성실하게 선정에 전념하고,

숲 속에서 즐기며,

스스로 만족해하며,

나무 아래서 선정을 닦아라.

 

32.

밤이 지나 새벽이 밝아오면,

마을 어귀로 가는 것이 좋다.

그러나 마을에서의 초대나

가져온 것에 너무 반겨서도 안(*1) 된다.

 

33.

성자의 삶을 사는 자는

마을에 이르러 가정집에서

조급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2)

음식을 얻고자 하는 이야기를 끊고,

암시적인 말을 꺼내지 않아야한다.

 

34. 얻은 것이 있다면 좋고,

그러나 얻지 못한 것도 잘 된 것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나무로 되돌아오는 것처럼(*3)

그와 같아야 한다.

 

 

주해(*1)

‘집집마다 차례로 탁발하는 것’에 충실해야한다.

 

주해(*2)

‘순리에 맞지 않게 가정과 관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주해(*3)

‘열매를 발견하던 발견하지 않던 나무로 되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35.

손에 발우를 들고 돌아다닐 때,

사람들은 그를 두고 벙어리는 아니지만 벙어리같이 생각한다.

시물이 적다고 꾸짖지 말고, 시주를 경멸하지도 말아야 한다.

 

36.

수행자로서 높고 낮은 여러 가지 길에(*1) 대해서 나는 말했다.

거듭 피안에 이르지 못하지만 생각건대 단번에 이르지도 못한다.

 

37.

윤회의 흐름을 끊은 수행승 그에게는 집착이 없으니,

선하고 악한 모든 일을 버렸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것이다.

 

 

주해(*1)

‘빠르게 곧바로 아는’즐거운 길과 ‘늦게 곧바로 아는’ 괴로운 길을 말한다. 전자는 아라한의 길이고, 후자는 나머지 흐름에 든 님의 길(예류도), 한번 돌아오는 님의 길(일래도), 돌아오지 않는 님의 길(불환도)을 말한다.

 

 

38.

그대에게 해탈의 길에 대하여 말하리라.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면도날처럼 하여라.(*1)

그리고 나서 배에 집중하여 자신을 다스려야한다.

 

39.

마음이 침체되어서는 안 되고,

많은 것을 생각해서도 안 된다.

비린내가 없이(*2) 집착이 없이(*3)

청정한 삶을 궁극으로 삼아라.

 

40.

홀로 앉아(*4) 명상을 닦고

수행자로서의 수행을(*5) 배우라.

홀로 있는데서 기쁨을 찾아라.

홀로 있는 것이(*6) 해탈의 길이라 불린다.

 

 

주해(*1)

선정에 들 때에 대단히 중요한 실천적 방법이지만, 유감스럽게도 Prj II 498에서는 ‘꿀을 바른 삭발도를 혀에 대면 혀가 잘라질 수 있으므로, 여법하게 얻은 생활필수품을 수용하여 번뇌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된다. 그리고 혀를 입천장에 붙이는 것은 갈애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주해(*2)

‘번뇌가 없이’의 뜻이다.

 

주해(*3) ‘갈애와 견해에 집착하지 않고’의 뜻이다.

 

주해(*4)

‘모든 걷고 서고 앉고 눕는 것’을 대표하여 말한 것이다.

 

주해(*5)

 ‘마음이 멀리 떠나 홀로 있는 삶’을 말한다.

 

주해(*6)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홀로 있는 것이 성자의 삶이라고 한다.

 

 

41.

그렇게 하면 시방을 비추리라.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선정에 든 현자들의 친찬의 소리를 들으면,

나의 제자는 더욱 겸손과 믿음을 일으켜야 한다.

 

42.

여울들이나 골짜기들과

흐르는 강에 대하여 알아야 하리라.

작은 여울들은 소리를 내며 흐르지만,

큰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43.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아주 조용하다.

어리석은 자는 반쯤 물을 채운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님은 가득 찬 연못과 같다.

 

44.

수행자가 많은 말을 한다면,

그것은 상대적인 것으로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1)

그는 자각적으로 가르침을 설하며,

자각적으로 많이 말하는 것이다.

 

45. 그리고 자각적으로 자제해서

자각적으로 많이 말하지 않는다면(*2)

그는 성자의 삶을 누릴만하며,

그는 성자로서 성자의 삶을 성취한 것이다.

 

 

주해(*1)

수행자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이익을 갖추고 법을 갖추고 유익함을 갖춘 것이다.

 

주해(*2)

‘말해진 것이 뭇 삶의 이익과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알아서 결코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날라까경(Sn3.11).docx

 

 

 

 

 

 

부처님과 날라까와의 대화에 대한 경이다. 모두 45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 전반부는 아시따선인과 관련된 이야기이고, 후반부는 날라까의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성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을 요약하면

 

경에서 부처님은 성자들의 삶이라는 것이 성취하기도 어렵고 도달하기도 힘들다고 먼저 말하였다. 그래서 마음 단단히 먹고 잘 들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부처님은 왜 그런 말을 하였을까. 이에 대하여 표로 정리해 보았다.

 

 

 

내용 1

내용2

성자들의 삶

성취하기 어렵고 도달하기 힘들다

그것을 굳건히 하여 단단하게 지키라.

 

 

마을에서 욕을 먹든지 절을 받든지 한결같은 태도로 대하여라.

정신의 혼란을 수습하여

고요히 하고, 교만을 떨쳐버리고, 유행하라.

 

숲 속에 있더라도 불의 화염 같은 높고 낮은 것들이 나타난다

아낙네로 하여금 유혹하도록 하지 말라.

 

성적 교섭에서 떠나

온갖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모든 생명 있는 것에 대해 적대하지 말고, 애착하지도 말라.

 

 

배를 가득 채우지 않아 음식을 절제하고,욕심을 적게 하고 탐내지 말라.

욕망이 없어져 버리면,

욕망이 없는 것이 소멸이니라.

 

 

탁발을 하고 나서 나무 아래로 가까이 가서 자리를 잡고

숲 속의 빈터에 머무는 것이 좋다

 

 

선정에 전념하고 스스로 만족해하며 나무 아래서 선정을 닦아라

 

성자의 삶을 사는 자

 

마을에 이르러 가정집에서

조급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음식을 얻고자 하는 이야기를 끊고,

암시적인 말을 꺼내지 않아야한다.

 

얻은 것이 있다면 좋고,

그러나 얻지 못한 것도 잘 된 것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나무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그와 같아야 한다.

 

손에 발우를 들고 돌아다닐 때 사람들은 그를 두고 벙어리는 아니지만 벙어리같이 생각한다.

시물이 적다고 꾸짖지 말고, 시주를 경멸하지도 말아야 한다.

해탈의 길에 대하여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면도날처럼 하여라

배에 집중하여 자신을 다스려야한다

 

마음이 침체되어서는 안 되고,

많은 것을 생각해서도 안 된다

비린내가 없이  집착이 없이

청정한 삶을 궁극으로 삼아라.

 

홀로 앉아 명상을 닦고

수행자로서의 수행을 배우라.

 

홀로 있는데서 기쁨을 찾아라.

홀로 있는 것이 해탈의 길이라 불린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선정에 든 현자들의 친찬의 소리를 들으면

나의 제자는 더욱 겸손과 믿음을 일으켜야 한다.

 

지혜로운 님

여울들이나 골짜기들과

흐르는 강에 대하여 알아야 하리라.

작은 여울들은 소리를 내며 흐르지만,

큰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아주 조용하다.

 

어리석은 자는 반쯤 물을 채운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님은 가득 찬 연못과 같다.

성자의 삶을 성취

수행자가 많은 말을 한다면,

그것은 상대적인 것으로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자각적으로 가르침을 설하며,

자각적으로 많이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각적으로 자제해서

자각적으로 많이 말하지 않는다면 그는 성자의 삶을 누릴만하며, 그는 성자로서 성자의 삶을 성취한 것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날라까에게 성자의 삶에 대하여 말씀 해 주셨는데, 경에서 거듭 피안에 이르지 못하지만 생각건대 단번에 이르지도 못한다.”라고 하였다. 이 말뜻은 무엇일까.

 

돈오점수를 주장한 부처님

 

맛지마니까야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최상의 지혜가 단번에 성취된다고 설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그와 반대로 오로지 점차적으로 배우고 점차적으로 닦고

점차적으로 발전한 다음에 지혜의 성취가 이루어진다.

 

(끼따기리경-Kīāgiri sutta -Advice given at Kitagiri -끼따기리 설법의 경, 맛지마니까야 M70, 전재성님역)

 

 

끼따기리경(끼따기리 설법의 경-M70).docx

 

 

 

 

부처님은 최상의 지혜가 단번에 성취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점차적으로 배우고 닦아 감에 따라 단계적으로 성취 된 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12단계 가르침

 

이와 같은 가르침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돈오돈수와 다른 것이다. 선종에서는 화두수행만 하면 단번에 깨우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씀 하셨을까.

 

 

수행승들이여,

1) 여기 어떤이가 (스승에게) 믿음이 생기면, 그는 가까이 간다.

2) 가까이 가서 스승을 공경한다.

3) 스승을 공경할 때에 스승에게 귀를 기울인다.

4) 귀를 기울일 때에 그에게서 가르침을 듣는다.

5) 가르침을 들을 때에 그것을 기억한다.

6) 기억할 때에 가르침의 의미를 규명한다.

7) 의미를 규명할 때에 가르침을 성찰하여 수용한다.

8) 가르침을 성찰하여 수용할 때에 의욕이 생겨난다.

9) 의욕이 생겨날 때에 의지를 굳힌다.

10) 의지를 굳힐 때에 그것을 깊이 새긴다.

11) 깊이 새길 때에 정진한다.

12) 정진할 때에 몸으로 최상의 진리를 성취하고 지혜로써 꿰뚫어 본다.

 

(끼따기리경-Kīāgiri sutta -Advice given at Kitagiri -끼따기리 설법의 경, 맛지마니까야 M70,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최상의 진리를 성취하는 것에 대하여 우선 믿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스승에 대한 믿음이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스승이 미덥지 않으면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믿음부터 시작하여 가르침을 듣고, 기억하고, 의미를 규명하고, 성찰하고 수용함에 따라 의욕이 생겨서 더욱 더 정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12단계를 거치면 지혜가 생겨 마침내 최상의 진리를 성취하게 된다는 단계적 가르침을 설하고 있다.

 

세상에는 일곱 종류의 참사람이 있다

 

이와 같이 12단계의 점차적인 성취와 함께 깨달음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는 일곱 종류의 참사람이 있다.

일곱 종류란 어떠한 것인가?

‘양변으로 해탈한 자,

지혜로 해탈한 자,

몸으로 깨달은 자,

견해를 성취한 자,

믿음에 의해 해탈한 자,

가르침에 따르는 자,

믿음에 따르는 자’이다.

 

(끼따기리경-Kīāgiri sutta -Advice given at Kitagiri -끼따기리 설법의 경, 맛지마니까야 M70, 전재성님역)

 

 

이와 같은 일곱종류의 참사람에 대하여 표로 만들어 보았다.

 

 

No

일곱종류 참사람

 

   

  

1

양변으로 해탈한 자

(ubhatobhāgavimutto)

형상을 뛰어넘고 물질에서 벗어나 해탈을 몸으로 체험하고 지혜로써 보아 모든 번뇌를 부순자

 

아라한

(무학)

2

지혜로 해탈한 자

(paññāvimutto)

형상을 뛰어넘고 물질에서 벗어나 해탈을 몸으로 체험하지 않았으나 지혜로써 보아 모든 번뇌를 부순자

위빠사나로 거룩한 경지에 도달한자 또는 네 가지 선정중의 하나나 다른 것에서 나와 거룩한 경지에 도달한자

3

몸으로 깨달은 자

(kāyasakkhī)

형상을 뛰어넘고 물질에서 벗어나 해탈을 자신의 몸으로 체험하고 지혜로써 보아 번뇌의 일부를 부순자

 

성인 3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4

견해를 성취한 자

(diṭṭhappatto)

형상을 뛰어넘고 물질에서 벗어나 고요한 해탈을 자신의 몸으로 체험하지 못하였으나 지혜로써 보아 번뇌의 일부를 부순자

-위빠사나만을 닦았음

-법에 대한 이해가 좋음

5

믿음에 의해 해탈한 자

(saddhāvimutto)

형상을 뛰어넘고 물질에서 벗어나 해탈을 자신의 몸으로 체험하지 못하였으나 지혜로써 보아 번뇌의 일부를 부순자

-위빠사나만을 닦았음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확고

6

가르침에 따르는 자

(saddhāvimutto)

형상을 뛰어넘고 물질에서 벗어나 고요한 해탈을 자신의 몸으로 체험하지 못하였고 또한 지혜로써 보아 번뇌의 일부를 아직 부수지 못한 자

 

여래가 선언한 가르침을 어느정도(mattaso)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또 나아가서 믿음의 능력, 정진의 능력, 새김의 능력, 집중의 능력, 지혜의 능력과 같은 법들을 갖춘자

범부

7

믿음에 따르는 자

dhammānusārī

형상을 뛰어넘고 물질에서 벗어나 고요한 해탈을 자신의 몸으로 체험하지 못하였고 또한 지혜로써 보아 모든 번뇌를 아직 부수지 못 자

여래에 대한 믿음이 있는 만큼 그리고 사랑이 있는 만큼 또한 나아가서 믿음의 능력, 정진의 능력, 새김의 능력, 집중의 능력, 지혜의 능력과 같은 법들을 갖춘자

 

 

이렇게 범부에서부터 성인3(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와 아라한의 단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부터 출발하여 차례로 단계를 밟아 깨달아 가는 과정에 대하여 부처님은 점차적으로 배우고 점차적으로 닦고 점차적으로 발전한 다음에 지혜의 성취가 이루어진다.”라고 하셨다.  이렇게 보았을 때 부처님은 돈오점수의 가르침이라 볼 수 있다.

 

회의론자들은

 

예로부터 ‘빈수레가 요란하다’고 하였다. 그런 속담에 대한 적절한 게송이 아마도 ‘여울물에 대한 비유’ 일 것이다.

 

경에서 “작은 여울들은 소리를 내며 흐르지만, 큰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아주 조용하다.”라고 설명 하였다. 마치 빈수레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매일 현실세계와 사이버 세상을 넘나 들며 살아 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인터넷공간은 또 하나의 현실이다. 특히 인터넷토론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담마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빈수레의 비유가 실감 난다. 주로 회의론자들에게서 볼 수 있다.

 

회의론자들의 특징은 경전을 믿지 못한다. 상당수의 경전이 왜곡 되거나 조작 되었다고 본다. 또 경전의 문자나 문구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경을 왜곡하기 일쑤이다.

 

이렇게 회의론자들은 익명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면서 거친 말을 뱉어 내는데, 그런 말들을 보면 “사람이 태어날 때 참으로 입에 도끼가 생겨나네 (S6.1.10)”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틀림 없음을 확인 시켜 준다.

 

이처럼 입에 도끼 한자루 씩 가지고 다니면서 구업을 짓고 다니는 회의론자들은 요란한 빈수레와도 같다. 그런 회의론자들과 토론은 어떤 것일까.  

 

한편의 코메디를 보고

 

어느 인터넷토론사이트에서 본 장면이다. 회의론자와 반대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경을 하나 올려 놓았다. 이에 대하여 회의론자는 격렬한 어조로 비판하였다. 경에 있는 문자나 문구에 집착하면 안된다느니, 경이 후대에 조작 되었다는 등 회의론자 특유의 도끼를 들었다.

 

그러나 그 경은 회의론자가 자신의 견해에 대한 근거로 삼기 위하여 자신이 인용한 경이었다. 그런데 반대편에 선 자가 그 경을 인용하자 그 경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이 인용한 사실을 잊어 버린 것이다.

 

왜 이와 같은 코메디가 일어 났을까. 이는 기본적으로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경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부처님의 담마에 대하여 의심하는 자들을 회의론자들이라 한다.

 

믿음은 진리를 설한 부처님에 대한 신뢰를 뜻한다. 또 믿음은 해탈에 이르는 첫 번째 과정으로서 스승에 대한 믿음을 뜻한다. 그래서 믿음을 공덕의 어머니. 지혜의 어머니라 한다.

 

하지만 회의론자들에게 있어서 믿음은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을려고 하듯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인식한계를 넘어 서는 것에 대하여 믿지 못한다.

 

이래도 저래도 비난 받는다

 

이런 회의론자들로부터 댓글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 말도 안되는 궤변으로서 개인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는 주장을 한다. 그러면서 답글을 강요하거나 답글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럴때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답글을 해도 비난 받고, 답글을 하지 않아도 비난 받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법구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아뚤라여, 이것은 오래된 것이니

지금 단지 오늘의 일이 아니다.

침묵한다고 비난하고

말을 많이 한다고 비난하고

알맞게 말한다고 비난하니

세상에서 비난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법구경, Dhp227)

 

 

비난하기 좋아 하는 자들의 특징에 대한 것이다. 말을 안해도 비난받고, 말을 너무 많이 해도 비난 받고, 더구나 말을 알맞게 해도 비난 받는 다는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비난 받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 세상에 비난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하였다.

 

큰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이렇게 회의론자들과 궤변론자들은 항상 시끄럽다. 마치 빈깡통에 돌맹이 하나 있는 것처럼, 빈수레가 굴러 가는 것처럼, 작은 여울물이 소리를 내며 흐르는 것처럼 요란 하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은 경에서와 같이 흐르는 강과 같고 가득 찬 연못과 같다고 부처님은 말씀 하였다. 경에서 회의론자와 성자에 대한 두  가지 비유를 다시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Saantā yanti kussobbhā   사난따 얀띠 꿋솝바

tuahi yāti mahodayi.     뚜나히 야띠 마호다위

 

작은 여울들은 소리를 내며 흐르지만,

큰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Small streams go making much noise,

great expances of water go silently.

 

 

 

Aḍḍhakumbhupamo bālo      앗다꿈부빠모 발로

rahado purova paṇḍito     라하도 뿌로와 빤디또

 

어리석은 자는 반쯤 물을 채운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님은 가득 찬 연못과 같다.

 

The fool is like a half full pot,

the wise are as though deeply filled..

 

 

 

2012-08-27

진흙속의연꽃

 

날라까경(Sn3.11).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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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따기리경(끼따기리 설법의 경-M70).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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