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두번째 화살은 맞지 않는다, 배우지 못한 범부와 잘 배운 고귀한 제자

담마다사 이병욱 2012. 9. 21. 17:50

 

 

두번째 화살은 맞지 않는다, 배우지 못한 범부와 잘 배운 고귀한 제자

 

 

 

용맹정진의 경.

[Utthanasutta] (*1)

 

 

주해(*1)

이 경은 새내기 수행승들에 관계된 것이다. 부처님이 한 때에 사왓티 시의 제따바나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수행승의 무리에 둘러싸여 사왓티 시로 들어가 탁발을 하였다. 그리고 서쪽 문으로 도시를 빠져나가 미가라마뚜 강당에 도착해서 대낮을 보냈다. 이렇게 해서 세존께서는 밤에 제따바나에서 보내고 낮에는 미가라마뚜 강당에서 지내고, 밤에 미가라마뚜 강당에서 지내고 나서 낮에는 제따바나에서 보냈다. 그 이유는 두 가문을 섭수하고 위대한 보시의 공덕을 선양하기 위해서였다.

 

미가라마뚜 강당의 아래에는 5층의 백 개의 내실을 가진 누각이 있었고 오백명의 수행승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세존께서 누각의 아래층에 계실 때에는 수행승들은 세존을 존경하여 그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세존께서는 누각의 가장 위층의 내실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 이하 아래층에 있는 오백 개의 내실에 500명의 수행승들이 들어갔다.

 

그런데 모두 새내기 수행승들이라 가르침과 계율을 잘 모르고 산만하고 교만하고 감관은 제어되지 않았다. 그들은 낮에는 잠을 자고 저녁에는 일어나 넓은 장소에 모여서 먹은 음식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등 세속적인 화제를 떠올리며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부처님은 목갈라나를 불러 신통력으로 그들을 놀래주도록 명했다. 목갈라나는 자신의 신통력으로 물에 대한 두루채움의 수행을 실천하여 전체 건물을 물 위에 떠있는 배처럼 앞뒤로 흔들어댔다. 그러자 수행승들은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각자의 옷가지 등을 버리고 사방의 문으로 빠져나갔다.

부처님은 자신을 나투어 수행승들을 향실 쪽의 다른 문으로 모이게 했다. 부처님이 나타나자 그들은 부처님께 절을 했다. 그들이 미가라마뚜 강당이 흔들린다고 말하자, 부처님은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고 이 경을 수행승들에게 설했다.

 

 

1.

[세존]

“일어나서 앉아라.(*1) 잠을 자서 너희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는가.

화살에 맞아(*2) 고통 받고 괴로워하는 자에게 잠이 도대체 웬 말인가.

 

2.

일어나서 앉아라. 평안을 얻기 위해 철저히 배우라.

그대들이 방일하여 그 힘에 굴복한 것을 죽음의 왕이 알고 현혹하지 못하게 하라.

 

3.

거기에 신들과 인간들이 기대고 바라는 그 애착에서 벗어나라(*3).

찰나를 그냥 보내지 말라. 순간을 헛되이 보내면, 지옥에 떨어져서 슬퍼하기 때문이다.

 

4.

방일하는 것이야 말로 언제나 티끌이다.

티끌은 방일하는 것 때문에(*4) 생긴다.

방일하지 않고(*5) 명지로써(*6) 자기에게 박힌 화살을 뽑아라.

 

 

주해(*1)

게으름에서 일어나서 전념하고 정진하고 나태하지 말라는 뜻이다.

 

주해(*2)

 다섯 가지의 화살에 맞는 것을 말한다.

탐욕의 화살, 성냄의 화살, 어리석음의 화살, 자만의 화살, 사견의 화살.

 

주해(*3)

 애착은 존재의 향수에 대한 갈애를 말한다.

 

주해(*4)

방일에 영향을 받아 연속적으로 생겨나는 방일을 말한다.

 

주해(*5)

 새김이 부재하지 않은 것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불방일을 말한다.

 

주해(*6)

 번뇌가 부셔졌다는 앎을 조건으로 한 지혜를 말한다.

 

 

- 용맹정진의 경이 끝났다 -

 

 

웃타나경

(Uṭṭhānasutta- To Arouse Effort- 용맹정진의 경, 숫따니빠따 Sn2.10, 전재성님역)

 

 

  웃타나경(용맹정진의 경-Sn2.10).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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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윳따니까야에도 비슷한 내용이

 

초기경을 보면 비슷한 내용이 많이 있다. 숫따니빠따에 실려 있는 웃따나경 역시 마찬가지이다. 상윳따니까야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경이 있기 때문이다.

 

 

[하늘사람]

"수행승이여,

일어나라. 왜 누워 있는가? 잠잔들 무슨 소용이 그대에게 있는가?

독화살을 맞아 상처받은 자 병든 자에게 잠이란 무슨 소용인가?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게 한 그 신념

그 믿음을 키워야지 잠에 사로잡히면 안되네."

 

[수행승]

"우둔한 사람은 감각적 쾌락에 속박되지만 감각적 쾌락은 무상하고 부서지기 쉽네.

 

모든 속박에서 해탈하여 집착이 없는 출가자를 그것이 어떻게 괴롭힐 것인가?

욕망과 탐욕을 없애고 어둠을 뛰어넘어

그 지혜가 맑아진 출가자를 그것이 어떻게 괴롭힐 것인가?

 

밝음으로 어둠을 부수고 모든 번뇌를 두루 부수어서

슬퍼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 출가자를 그것이 어떻게 괴롭힐 것인가?

 

정진을 일으켜 스스로 노력하고 항상 견고하게 힘쓰며

열반을 바라고 있는 출가자를 그것이 어떻게 괴롭힐 것인가?"

 

(우빳타나경-Upaṭṭhānasutta- 도와주기, 상윳따니까야 S9. 1.2, 전재성님역)

 

  우빳타나경(도와주기-S9.1.2).docx

 

 

 

상윳따니까야에서는 하늘사람(데와따)이 화자로 되어 있다. 그리고 독화살을 맞아 상처받은 자 병든 자로 묘사 되어 있다. 이점은 숫따니빠따에서 화살을 맞아 고통받고 괴로워 하는 자와 매우 유사하다. 이렇게 초기경은 비슷한 내용이 종횡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즐거운 느낌은 괴롭다고 보아야 하며

 

숫따니빠따나 상윳따니까야에서 말하고 하는 내용은 열심히 정진하라는 내용이다. 그것도 찰나 찰나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진하라는 것일까. 경에서는 우리들이 이미 화살을 맞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 화살은 주석에 따르면 그것은 탐욕의 화살, 성냄의 화살, 어리석음의 화살, 자만의 화살, 사견의 화살, 이렇게 다섯가지 화살이라 한다. 그렇다면 화살을 맞지 않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먼저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즐거운 감수는 괴롭다고 보아야 하며,

괴로운 감수는 화살이라고 보아야 하며,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감수는 무상하다고 보아야 한다.”

 

(다탑바경-Daṭṭhabbasutta - 여김으로, 상윳따니까야 S36.6, 전재성님역)

 

  다탑바경(여김으로-S35.2.1.5).docx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발생하는데 크게 세가지 느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보아야 몸이 파괴된 후에도 윤회를 받지 않을 것이라 한다.

 

배우지 못한 범부는

 

그런데 범부들은 이와 같이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괴로운 감수와 접촉하면 우울해하고 피로해하며 슬퍼하고 통곡하며 미혹에 빠진다. 그는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두가지 종류의 고통을 느낀다.

 

(살라경-Sallasutta- 화살로서, 상윳따니까야 S36.6, 전재성님역)

 

  살라경(화살로서-S35.2.16).docx

 

 

 

괴로운 느낌은 화살이라고 하였다. 누구나 화살을 맞으면 괴로움을 받듯이 배우지 못한 범부나 수행자나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육체적 고통을 느끼는 것에 대하여 첫번째 화살을 맞았다고 한다. 이런 첫번째 화살은 아라한이라도 피해 갈 수 없다. 아라한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문제는 두번째 화살이다.

 

아파 죽겠네!”

 

첫번째 화살을 맞는 범부는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 친다. 그래서 경에 따르면 괴로운 감수와 접촉하면 우울해하고 피로해하며 슬퍼하고 통곡하며 미혹에 빠진다.”라고 하였다. 육체적으로 아파!”에 대하여 아파 죽겠네!”하며 육체적 고통으로 벗어나려 하기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범부들은 육체적 고통에 이어 정신적 고통이라는 두 번째 화살을 맞는다는 것이다.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하지만 경에 따르면 두 번째 화살에 맞지 않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수행승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괴로운 감수와 접촉해도 우울해하지 않고 피로해하지 않으며 슬퍼하지 않고 통곡하지 않으며 미혹에 빠지지 않는다.

(살라경-Sallasutta- 화살로서, 상윳따니까야 S36.6, 전재성님역)

 

 

이것이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괴로운 느낌이 와도 아파 죽겠네!”와 같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아프네!”하며 육체적 고통으로 끝내는 것을 말한다.

 

네 방의 화살

 

이렇게 범부들은 첫번째 화살에 이어 두번째 화살을 맞는 것이 보통이라 한다. 그런데 몇 방 더 맞는다고 한다. 지난 2010년 불교방송 불교강좌시간에 묘원법사의 강의 (2010 622일자)에 따르면 범부들은 총 네 방의 화살을 맞는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네 방의 화살 

단계

종류

구분

내용

화살

화살을 맞지 않은 상태

맨느낌

육식(六識)

감각기관을 통해서 의식되는 것이 모두 느낌을 통해서 마음이 알게 됨

화살을 맞지 않은 상태

제1의 화살

(육체적 화살)

 

육체적 느낌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덤덤한 느낌,

-맨 느낌에 감정이 개입되어서 스스로가 일으킨 것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느끼면 화살을 한 번 맞는 것

-선업과 불선업으로 반응한 것

-/불호가 있어 갈애가 일어남

 아파!”

좋아!”

제2의 화살

(정신적 화살)

 

정신적 느낌

정신적 즐거움, 정신적 괴로움

-느낌은 그냥 있지 않고 항상 끊임없이 변함

-좋고 싫고의 격렬한 행위로 변화

-비탄에 빠져 슬피 울거나 자살을 하거나 또는 환희에 겨운 몸짓

- 극단으로 치닫게 되어 제어가 안됨

아파 죽겠네!”

좋아 죽겠네!”

제3의 화살

(욕망의 화살)

 

욕망의 느낌

고통이 멈추기를 바라는 느낌

-갈애가 집착으로 발전한 상태

-상처가 깊어지고 고통도 깊어지고 그만큼 과보도 커짐

 아프지 않았으면!”

계속 좋았으면!” 

제4의 화살

(무지의 화살)

 

무지

알아차림이 없음

-무지하기 때문에 화살을 피하는 방법을 모름

-화살을 맞는 것이 일상의 삶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음

 

화살을 맞지 않음

알아차림

느낌을 무상, , 무아로 알아차림

-느낌이 갈애로 발전되지 않도록 함

-고통이 일어나면 단지 아프네라고 알아차림

-즐거움이 일어나면 단지 좋네라고 알아차림

아프네

좋네

 

 

 

 

 

 

 

 

 

 

 

 

 

 

 

 

 

 

 

 

 

 

 

 

 

 

 

 

 

 

 

 

 

 

 

 

 

 

 

 

 

1의 화살은 육체적 고통(아파!)에 대한 것이고, 2화살은 정신적 고통(아파 죽겠네!)이고, 3의 화살은 느낌에서 갈애로 발전한 것으로 욕망의 화살을 맞았다고 하고, 4의 화살은 자신이 화살을 맞은지도 모르고 살기 때문에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없어서 무지의 화살을 맞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본다면 범부들은 매일 매순간 무수한 화살을 맞고 산다고 볼 수 있다.

 

두번째 화살은 맞지 않는다

 

이와 같이 범부들이 매일 매순간 무수한 화살을 맞고 사는 것과 비교하여 잘 배운 부처님의 제자들은 경에 따르면 그는 신체적이지만 정신적이지 않은 단 한가지 종류의 고통을 느낀다.”라고 하였다. 이는 오로지 첫 번째 화살 이외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두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씀 하셨다.

 

 

Na vedana vediyati sapaññaño

Sukhampi dukkhampī bahussutopi

Ayañca dhīrassa puthujjanena

Mahā viseso kusalassa hoti.

 

지혜로운 잘 배운 제자는

즐겁거나 괴로운 감수를 느끼지 않으니

이것이 현명한 자와 범부 사이에

크나큰 차이점이네.

 

 

Sakhātadhammassa bahussutassa

Sampassato lokamima parañca

Iṭṭhassa dhammā na mathenti citta

Aniṭṭhato no paighātameti.

 

진리를 추구하여 많이 배운 자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바로 보아

욕망하는 것으로 마음을 혼란시키지 않고

원치 않는 것에도 분노하지 않네.

 

 

Tassānurodhā athavā virodhā

Vidhūpitā atthagatā na santi

Padañca ñatvā viraja asoka

Sammā pajānāti bhavassa pāraguti.

 

그에게는 환영이나 혐오가

흩어지고 사라져 존재하지 않네.

존재의 피안에 도달한 자

티끌 없고 슬픔 없음을 알아 바로 열반을 깨닫네.

 

(살라경-Sallasutta- 화살로서, 상윳따니까야 S36.6, 전재성님역)

 

 

 

2012-09-21

진흙속의연꽃

 

다탑바경(여김으로-S35.2.1.5).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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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빳타나경(도와주기-S9.1.2).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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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경(화살로서-S35.2.16).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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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타나경(용맹정진의 경-Sn2.10).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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