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이 번 생에서 갚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 같아” 수행포교의 가능성을 보여 준 마가스님

담마다사 이병욱 2012. 10. 30. 13:56

 

 

이 번 생에서 갚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 같아수행포교의 가능성을 보여 준 마가스님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

 

일요일 오후 동네 주변 도로 주변에서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을 보았다. 하나 또는 둘, 또는 아이들과 함께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휴지나 담배꽁초, 낙엽 등을 준비된 쓰레기 봉투에 주어 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모두 파란 어깨띠를 두르고 있다.

 

 

 

 

 

 

 

 

 

대체 이들은 무엇하는 사람들일까. 파란 어깨띠를 자세히 보니 성당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동네성당의 이름이 적혀 있는 파란 어깨띠를 두르고 마트 앞에서 열심히 쓰레기를 줍고 있다.

 

이는 전에 없던 일이다. 종종 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과일이나 과자, 사탕 등을 나누어 주면서 전단지를 주는 경우는 많았으나 이처럼 지역사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모습을 처음 본다.

 

교회에서 주민총회가

 

서울과 수도권은 유일신교의 아성이나 다름 없다. 어디를 가나 거대한 성당과 구멍가게보다 더 많은 크고 작은 교회를 보게 된다. 그러다보니 이들 교회를 중심으로 한 지역공동체가 형성된 듯 하다.

 

어느 동네의 경우 낡고 오래 된 건물이 많아 재개발지역으로 고시 되었다. 고시 되면 추진하는 측과 반대측의 의견이 갈린다. 그럴경우 주민총회 형식으로 모임이 열리는데 그런 모임 장소는 어디일까. 다음과 같은 플레카드가 잘 말해 준다.

 

 

 

 

 

 

 

 

 

교회에서 주민총회가 열리는 것이다. 동네에 수 많은 교회가 있지만 규모가 가장 큰 교회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가 열리는 것이다. 이처럼 교회에서는 주민총회 뿐만 아니라 국민투표가 실시 될 때 투표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런 교회는 지역에서 어떤 성격일까.

 

교회공동체

 

동네에서 교회는 지역공동체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어린이 유아방부터 시작하여 청소년 공부방, 노인들에게 무료급식과 무료 이발 봉사 등 지역주민을 위하여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 해 놓고 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한 교회공동체가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빵집의 십자가

 

이러다 보니 지역의 식당이나 가게 등에서 십자가를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어느 빵집의 경우 입구에 보란 듯이 십자가를 걸어 놓고 있다.

 

 

 

 

십자가에 예수가 걸려 있는 것을 보니 천주교를 믿는 빵집임에 틀림 없다.

 

식당에서도

 

예수가 있는 십자가를 일반 식당에서도 보았다.

 

 

 

 

음식을 파는 지극히 평범한 식당이다. 십자가 형상을 보아 천주교을 믿는 식당임에 분명하다.

 

서울과 수도권의 가게에서 바이블 구절이 적혀 있는 액자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처럼 노골적으로 십자가를 걸어 놓고 영업을 하는 빵집이나 식당을 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주문에 단청하였다고

 

이와 같이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유일신교가 당연히 받아 들여 지는 듯 하다. 그러나 불교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몇 해전 재개발된 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동시에 아파트 정문 바로 옆에 절이 하나 생겨 났다. 재개발 당시 주택형으로 된 자그마한 절이 끝까지 버티고 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는데, 그래서일까 건설사에서 정문입구 요지에 절을 새로 신축할 수 있도록 배려 한 것 같이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일주문 건립에서 발생하였다. 입주가 다 끝나고 모든 것이 정상화 되었을 때 절에서는 일주문을 만들었는데, 아파트 입주민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한마디로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아파트 입구에 울긋불긋 단청한 일주문이 있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종 각종 플레카드가 난무 하였다.

 

 

 

 

한마디로 알박기를 하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울굿불긋 단청까지 하여 아파트 이미지를 떨어 뜨렸기 때문에 아파트 가격이 내려갈 소지가 있어서 일주문 건립 취소는 물론 절을 이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사정이 있은 후 일주문 단청문제는 정상화 되었다. 더 이상 플레카드도 나 붙지 않았고 단청된 모습의 일주문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절에서 지역사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모습을 겉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어느 절과 마찬가지로 각종 기도회와 천도재를 알리는 플레카드가 붙어 있을 뿐이었다.

 

불교는 안되고 유일신교는 되는 것

 

이렇게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일주문에 단청하는 것 까지 문제삼을 정도로 불교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다. 만일 절 입구에 관세음보살그림이나 불상이라도 모셔 놓았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미신행위와 우상숭배를 한다고 하여 철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할 것임에 틀림 없다. 그렇다면 유일신교는 어떠할까.

 

서울과 수도권에서 보이는 것이 십자가이다. 성당의 경우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는 예수상도 볼 수 있다. 구멍가게 보다 더 많다는 교회를 보면 십자가와 함께 예수그림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커다란 유리창문에 모자이크 식의 그림이 있는가 하면 벽면 전체를 예수그림으로 표현 한 곳도 있다.

 

 

 

 

이와 같이 예수상 또는 예수그림과 함께 바이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우상숭배라 하여 지적하지 않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유일신교가 34-37%로서 3명 중 1명이 유일신교도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불교의 경우 고작 13-16%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일주문에 단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관세음보살상이나 불상을 밖에 안치 한다는 것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꿈도 꾸지 못하게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도시에서, 사람사는 곳에서 사찰이 적을 뿐만 아니라 있다고 하여도 지역사회를 위하여 봉사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반하여 성당이나 교회의 경우 선교목적일지라도 지역사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고 실제로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차이로 인하여 성당이나 교회의 예수상은 허용이 되고 불상은 내비쳐 보지 못하는 것이라 보여진다. 그렇다면 불교에서는 사람 사는 곳에서 어떻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여야 할까.

 

이 번 생에서 갚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 같아

 

미디어붓다에서 제공하는 동국대정각원 토요법회를 보았다. 마가스님의 자비명상에 대한 법문 (2012년 9월 8 정각원 토요법회) 이다. 법문에서 마가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버지를 죽이고자 했던 나쁜 놈을 그래도 절에서 받아 줘 가지고 여지껏 30년 동안 수행을 할 수 있게 해준 부처님, 또 더 소중한 것은 여러분들이 천원, 이천원 모아 주신 것, 그 복전함에 넣는 그 돈들이 스님들 의식주를 하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잖아요.

 

제가 집에서 돈 가지고 오지 않았어요. 다 여러분들이 천원, 이천원 모아 주신 그것으로 이렇게 옷도 해 입고, 수행도 하고, 그 인연이 너무 고마운 거예요. 그래서 이번 생에 이 고마운 것을 갚지 않으면 다음 생에 지옥에 갈 것 같에. 얻어 먹고만 살았으니까.

 

그래서 우리 불자들에게 뭔가 주어야 되겠다 싶어가지고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단지 목탁만 치는 것이 아니고 정말 우리 가슴속에 들어 있는 응어리를 풀어내는 작업을 해야 되겠다싶어 가지고 자비명상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요, 그게 가장 뜨고 있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됐어요.

 

(마가스님, 2012년 9월 8일 정각원 토요법회)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한 때 자살까지 시도하였던 마가스님이 불교와의 인연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세월을 생각해 보니 얻어 먹고만 산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번 생에서 갚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 같아 자비명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한다.

 

마가스님의 자비명상 프로그램

 

마가스님의 자비명상은 불교방송에서도 들을 수 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07 30분부터 30분간 방송되는데, 초기불교의 자애수행과 연민수행을 합하여 놓은 것과 유사한 형태이다. 이와 같은 스님의 자비명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유명하다. 불교관련 인터넷신문에 난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마가스님이 진행하는 중앙대 교양학부 선택과목 ‘내마음 바로보기’(3학점)에 대한 학생들의 참여열기가 매우 뜨겁다. 이 과목은 자비명상 전문가 마가스님이 8년 동안 꾸준히 진행해오면서 중앙대 최고의 인기강좌로 자리매김했다. 학교와 사찰을 오가며 수업하는 이색수업으로 수많은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취재하고 있는 수업이기도 하다.

 

마가스님의 명상수업은 10주 출강과 2박3일 템플스테이를 거치면서 ‘자기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임을 깨우쳐가는 수업이다. 그동안 이 수업을 거쳐 간 학생은 5,000명이 넘는다. 수업내용은 ‘지금 이순간 내마음은?’ ‘마음의 노예? 주인?’  ‘일체 유심조’ ‘부모은중경’‘  ‘수처작주 입처개진’ 등이다. 불교적 내용이지만 스님 특유의 교수법으로 알기쉽게 학생들의 수준에 맞춰서 진행한다.

 

(중앙대, 마가스님 강좌 인기 ‘불티’, ‘내마음 바로보기’ 720명으로 확대, 미디어붓다 2010-03-11)

 

 

스님은 2003내마음 바로보기라는 강의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5,000명이 넘는 학생들을 지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최우수 강사로 뽑히기도 하였는데, ‘내마음 바로보기강좌는 최고의 인기강좌라고 한다.

 

이와 같은 스님의 강좌는 다름 아닌 수행에 대한 것이다. 학생들에게 수행지도를 하고 이를 템플스테이와 접목시켜 불교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었는데, 이는 수행을 통한 포교활동이라 볼 수 있다. 수행포교를 말한다.

 

세상과 소통을 거부한 결과

 

도시에서, 사람사는 곳에서 불교가 자취를 감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지역주민과 소통에 실패 하였기 때문이다. 아니 불통하였다고 볼 수 있다. 더 가혹하게 말하면 스님들이 세상과 소통을 거부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한국불교는 산중불교, 스님불교가 되었다. 그렇다면 보통불자의 눈에 비친 불교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선방불교와 단물불교라 보여 진다.

 

선방불교

 

불교방송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인천에서 포교 활동을 하고 있는 어느 스님은 하다 안되면 선방에 들어가면 되요라고 말하였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선방에 들어 간다는 말이 좋은 뜻은 아닌 것 같다. 도시에서 포교 활동을 하다가 재정문제, 인간관계 등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쉽게 걸망을 꾸리는 것에 대한 비판이라 보여 진다. 갈곳은 선방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선방은 스님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것 같다. 어느 토론회에서 한문학당, 템플스테이 등으로 성공적으로 주지직을 수행하고 있는 M K스님은 때로 선방에 들어가서 공부나 하고 싶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고 보면 선방이라는 곳이 스님들이 가장 큰 안식처이자 피난처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방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높다. 어느 토론회에서 K스님은 하안거 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하였다. 그 대신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호스피스 봉사 같은 것이다.

 

단물불교

 

다음으로 단물불교가 있다. 이는 도시에 있는 사찰이나 일반사찰을 말한다. 왜 단물불교인가. 지난 2011조계종 자정과 쇄신 결사 추진본부(본부장 도법스님)’에서 주최한 특강이 있었다. 인터넷신문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전한다.

 

 

“한국불교는 종교로서 해야 할 작업인 세상을 인도하는 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거나 능력이 안 돼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한국불교는 종교 본연의 일은 뒷전이고 세상에 붙어 세상에서 떨어지는 단물을 빨아먹고 부산물을 챙기는데 더 바쁜 형국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 불교포커스 2011-10-04, 밖은 21세기, 안은 19세기)

 

 

특강에서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는 한국의 사찰에 대하여 불자들로부터 단물만 빨아 먹는다고 혹평을 하였다. 49재나 천도재 같은 것이다. 불자들을 제도하기 보다 죽은 자를 위한 불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대부분의 절에서 볼 수 있는 것이고 이미 일상화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본다면 스님들은 산중에서 선방에 머물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부를 하고 있고, 신도들이 왕래 하는 절에서는 신도들을 대상으로 마치 단물만 빨아 먹는 듯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분위기의 불교가 선방불교, 단물불교라는 것이다.

 

백전백패하는 이유

 

선방불교, 단물불교로는 유일신교와 대적할 수 없다. 특히 도시에서, 사람사는 곳에서 열심히 기도하세요라거나 천도재 등으로 단물을 빨아 먹으려 한다면 백전백패이다. 아무리 관세음보살이 영험하기로서니 천지를 창조하였다고 믿는 창조주에 대한 기복신앙을 이겨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시에서, 사람사는 곳에서 불교가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수행불교로 향하는 것이다. 수행불교야말로 가장 불교다운 불교이고, 유일신교에서 따라 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수행불교의 모범을 보여 주고 있는 분이 마가스님이라 보여진다.

 

수행포교의 가능성을 보여 준 마가스님

 

마가스님은 도시에서, 특히 학교에서 젊은층에게 포교의 가능성을 높여 주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수행포교에 대한 것이다. 그렇게 된 원동력은 시은(施恩)에 대한 갚음이라 보여 진다. 동국대 정각원 토요법회에서 마가스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합송케 함으로써 법문을 마쳤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 같은 나의 참마음 일세.

 

 

 

2012-10-3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