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노끈을 삼킨 나무, 생명현상과 네겐트로피(Negentropy)

담마다사 이병욱 2012. 10. 22. 18:07

 

노끈을 삼킨 나무, 생명현상과 네겐트로피(Negentropy)

 

 

 

장한가(長恨歌)에서

 

장한가(長恨歌)연리지라는 말이 나온다. 장한가는 당나라 시절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인데, 연리지에 대한 대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上天願作比翼鳥      상천원작비익조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연리지

 

하늘에선 날개를 짝지어 날아가는 비익조가 되게 해주소서

땅에선 두 뿌리 한 나무로 엉긴 연리지가 되자고 언약했지요

 

(백거이, 장한가)

 

 

뿌리가 다른 두 개의 나무가 가지가 엉켜 하나의 몸체처럼 보이는 것을 연리지(連理枝)’라고 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영원히 변치 않는 뜨거운 사랑을 맹세할 때 쓰는말이다. 또 연리지와 함께 사용되는 말이 비익조(比翼鳥)이다.

 

장한가에 따르면 비익조는 날개를 짝지어 날아 가는 새로 묘사 되어 있다. 새는 두 개의 날개로 되어 있는데, 한쪽 날개는 수컷의 날개이고 또 한쪽의 날개는 암컷의 날개로 되어 있는 새를 말한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암수가 각각 눈 하나와 날개 하나씩만 가지고 있어서 두마리가 한몸이 되어야만 날아 갈 수 있는 새를 말한다.

 

이렇게 장한가에서 연리지와 비익조를 언급한 것은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고,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어영원한 사랑을 하자고 다짐하기 위해서이다.

 

연리지처럼 보이는 온은사의 느티나무

 

종종 연리지에 대한 사진을 볼 수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서로 붙어 있는 나무를 사진을 볼 수 있다. 사진을 보면 합성이 아닌 것이 분명한데 서로 붙어 있는 것을 보면 매우 신기해 보인다.

 

 

 

 

 

온은사의 느티나무

 

 

과천 온은사(穩穩舍)’에 가면 연리지처럼 보이는 오래된 나무가 있다. 온은사는 절이 아니라 객사인데, 정조가 생부인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 하러 갈 때 머물던 곳이라 한다

 

 

 

 

 

 

수령이 수 백년 된 듯한 느티나무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나무가 붙은 것처럼 보인다. 가까이 가보면 한 뿌리임을 알 수 있다. 단지 중간이 붙어 있어서 연리지처럼 보이는 것이다.

 

대흥사의 사랑나무

 

그런데 서로 다른 나무가 밑둥에서 붙은 것처럼 보이는 나무를 보았다. 해남 대흥사에 있는 느티나무가 그것이다.

 

 

 

 

대흥사의 사랑나무

 

 

 

사진을 보면 서로 다른 나무가 밑둥과 뿌리 부분이 엉켜 있음을 알 수 있다. 설명에 따르면 좌측의 나무가 암나무이고 우측에 있는 나무가 수나무라 한다. 이렇게 암수나무가 엉켜 있다고 해서 사랑나무라 부른다고 한다.

 

바위를 먹는 나무

 

사찰순례를 다니다 보면 오래된 나무를 많이 보게 된다. 주로 느티나무로서 수령이 수백년 됨직하다. 사찰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어 보이는 나무를 보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런 나무 중의 하나가 바위를 먹는 나무 일 것이다.

 

사찰순례중에 바위를 먹는 나무를 많이 보았다. 바위 옆에서 나무가 자라면서 바위를 삼켜 버리는 것이다. 강화 정수사 입구 길에 있는 다음과 같은 나무가 대표적이다.

 

 

 

 

 

 

 

 

 

 

강화 정수사 입구길에서

 

 

 

마치 바위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월의 힘과 무게가 느껴진다.

 

엽기적인 나무

 

이렇게 바위를 먹고 있는 듯한 나무를 천년고찰에서 볼 수 있는데, 하동 대원사 입구에 있는 나무를 보면 신기하다 못해 엽기적으로 보인다.

 

 

 

 

하동 대원사 입구길에서

 

 

 

커다란 나무 밑둥이 마치 바위를 싸 듯이 있고 바위 위에 나무가 서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형상이 되기 까지 백년이상 걸렸을 것으로 보여진다.

 

담을 먹고 있는 나무

 

이와 같이 나무가 바위를 먹은 듯이 보이는 모습은 외국의 사찰에서도 볼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캄보디아 앙코르왓트 사원에서 사원을 감싸고 있는 나무가 유명하지만 스리랑카에서도 볼 수 있다. 아깍까소(Akakkaso)비구가 스리랑카 사원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수백년 되는 나무가  사원의 담장을 삼키고 있는 장면이다.

 

 

 

 

사진 : 아깍까소(Akakkaso)비구의 포토스트림에서

 

 

 

나무와 바위가 만났을 때

 

나무와 바위는 어떤 관계일까. 바위와 나무가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대부분 나무가 바위를 삼키는 형태로 발전한다. 바위는 고정 되어 있고 나무는 성장해 나가기 때문이다.

 

바위 바로 옆에 나무가 있다면 바위를 싸고 먹어버리는 형태로 되기 때문에 결국 바위가 깨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바위가 너무 클 경우 좀 다르다. 안양 염불암 가는 길에 보는 바위와 나무가 그렇다.

 

 

 

 

안양 염불암 입구길에서

 

 

 

사진을 보면 바위인지 나무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바위나 나무나 색깔이 비슷하고 형태도 유사하다. 마치 까멜레온이 주변 환경에 따라 색깔를 바꾸는 것처럼 바위인지 나무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세히 전체상을 취하면 확연히 구분된다.

 

 

 

 

 

 

 

 

 

 

안양 염불암 입구길에서

 

 

 

이렇게 천년고찰이 있는 산사 주변에서 바위를 먹고 있는 듯한 나무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런 나무들을 볼 때 마다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뭐든지 먹어 치우는 듯한 나무를 도심에서도 발견하였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

 

집과 일터를 오가다 보면 항상 같은 길로 다니게 된다. 최근 수년동안 늘 같은 길을 다니면서 주변 환경이 갑자기 바뀌었음을 느꼈다. 올드타운(old town)이라 불리우는 구시가지의 어느 동네가 어느 날 갑자기 텅비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앞만 보고 다니던 길이 있는데 어느 날 고개를 돌려 보니 동네가 텅텅 비어 있었다. 동네가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하나 둘씩 이사갔고 어느 시점에 이르렀을 때 텅빈 동네가 된 것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다음과 같은 사진이 잘 말해 준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는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하다. 특히 밤이 되면 불빛하나 없어서 그야말로 유령의 도시같다. 그런 가운데 무심하게 꽃은 피고 진다. 모두 떠난 마당에 꽃이 피고 과일이 익어 간다.

 

 

 

 

 

 

 

 

 

무심하게 꽃은 피고 지고

 

 

이와 같이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는 마치 폐허 같다. 더구나 비바람이 부는 날의 경우 을씨년 스럽기까지 하다. 더 을씨년 스럽게 하는 것은 나부끼는 플레카드이다.

 

 

 

 

개발반대 플레카드

 

 

 

개발을 반대하는 플레카드이다. 동네 이곳 저곳에 나부끼는 플레카드의 문구를 보면 섬뜩하다. “단결하자” “박살내자등 과격한 문구가 폐허화 된 동네의 현주소를 보여 주는 듯 하다.

 

 

노끈을 심킨 나무

 

이렇게 폐허의 거리를 지나가다 어느 빈 아파트 앞 은행나무에 눈길이 멎었다. 그것은 평소에 보지 못하였던 희안한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날 눈길을 머무리게 한 것은 나무에 달려 있는 노끈때문이었다.

 

 

 

 

노끈을 씹은 나무

 

 

 

 

나무에 노끈이 달려 있다. 자세히 보니 나무가 노끈을 먹은 듯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 구멍을 뚫어 밀어 넣은 것도 아니다. 아마도 나무가 자라면서 노끈을 삼켜 버린 듯하다. . 나무의 가지가 두개로 갈라지기 전 노끈이 있었는데 세월과 함께 노끈을 삼켜 버린 것이다. 이를 더 자세하게 근접촬영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아무리 보아도 인위적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가 시작 될 때 은행나무가 심어졋다면 아마도 30년 이상 된 듯이 보인다. 수십년에 걸쳐 나무가 자라면서 노끈을 삼킨 것이다.

 

 

 

 

앞면

 

 

 

 

뒷면

 

 

 

노끈과 같이 화학적으로 만든 물질은 좀처럼 썩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바위나 쇠붙이와 달리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노끈을 보면 마치 새것처럼 전혀 변화가 없다. 바로 지금 사용해도 전혀 문제 없을 듯 하다. 그런데 나무에 씹힌 노끈을 보면 세월의 무게와 무상함을 느끼게 해준다.

 

 

 

노끈이 앞뒤로 관통하고 있다.

 

 

 

생명과 네겐트로피(Negentropy)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제행무상이라 한다. 어느 것 하나 고정됨 없이 영원불멸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변화에 있어서 두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생명이 있는 것과 또 하나는 생명이 없는 것이다.

 

신도시를 보면 대부분 아파트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두가지 차이를 목격하게 된다. 아파트단지는 갈수록 낡아져 가는데, 이와 반대로 조경수들은 갈수록 우거져 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파트단지가 나무로 뒤덮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는 왜그럴까. 다름이 아니라 생명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 볼 수 있다.

 

생명이 없는 아파트는 갈수록 낡아져 간다. 이는  엔트로피(Entropy)’가 증대하였기 때문이다. 잉크방울을 비이커에 넣으면 잉크가 골고루 퍼지듯이, 향수 뚜껑을 열어 놓으면 향수가 모두 증발 되듯이, 질서에서 무질서로 변화 되는 것이다. 반면 아파트 단지가 갈수록 우거져 가는 것은 나무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는 한 질서에서 무질서로 변질 되는 것을 막는다. 이런 현상을 네겐트로피(Negentropy)’라 한다. 네겐트로피는 엔트로피와 정반대 되는 개념이다.

 

사람이 죽으면

 

아파트가 세월에 따라 낡아져 가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한 서서히 낡아져 간다. 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았을 때 어떻게 될까. 한마디로 급격하게 나빠져 간다. 재개발구역에서 보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좋은 예이다. 마찬가지로 나무가 지금은 무성하지만 죽게 되면 어떻게 될까. 역시 급격하게 분해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생명이 끊어진 몸의 경우 24시간이 경과하면 썩어 문드러지고, 36시간이 지나면 구더기가 생긴다고 한다. 이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급격하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부정상 (不淨相, asubha nimittassa)수행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17.

또한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은 묘지에 던져져 하루나 이틀이나 사흘이나 나흘이 지나 부풀어오르고 푸르게 멍들고 고름이 흘러나오는 시체를 보듯이, 이 몸을 이와 같이 ‘이 몸도 이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은 존재가 되고 이와 같은 운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라고 비교한다.

 

(사띠빳타나경-Satipaṭṭhānasutta-새김의 토대에 대한 경-염처경, 맛지마니까야 M10, 전재성님역)

 

  사띠빳타나경(새김의 토대애 대한 경-염처경-M10).docx

 

 

 

부정상 (不淨相, asubha nimittassa)수행에 대한 것이다. 사띠빳따나경에 따르면 부정상 수행의 대상이 되는 시체는

 

1)하루나 이틀이나 사흘이나 나흘이 지나 부풀어오르고 푸르게 멍들고 고름이 흘러나오는 시체

 

2)까마귀에 먹히고 매에게 먹히고 독수리에 먹히고 개에게 먹히고 승냥이에게 먹히고 여러 가지 벌레에게 먹히는 시체, 살점이 있고 피가 스며든 힘줄로 연결된 해골, 살점이 없고 피가 스며든 힘줄로 연결된 해골, 살점도 피도 없이 힘줄로 연결된 해골, 연결이 풀려 사방팔방으로, 곧 어떤 곳에는 손뼈, 어떤 곳에는 발뼈, 어떤 곳에는 정강이뼈, 어떤 곳에는 넓적다리뼈, 어떤 곳에는 골반뼈, 어떤 곳에는 척추뼈, 어떤 곳에는 갈비뼈, 어떤 곳에는 가슴뼈, 어떤 곳에는 팔뼈, 어떤 곳에는 어깨뼈, 어떤 곳에는 목뼈, 어떤 곳에는 턱뼈, 어떤 곳에는 이빨뼈, 어떤 곳에는 두개골뼈가 흩어진 해골로 이루어진 시체

 

3)조개빛처럼 흰뼈, 일년 이상 쌓인 뼈, 썩어 가루가 된 뼈로 이루어진 시체

 

이렇게 세부분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부푼 것, 검푸른 것, 문드러진 것, 끊어진 것, 뜯어 먹힌 것,흩어져 있는 것, 난도질당하여 뿔뿔히 흩어진 것, 피가 흐르는 것, 벌레가 버글거리는 것, 해골이 된 것 이렇게 10가지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 열가지 죽은 자를 대상으로 부정관수행을 할 수 있다고 자세하게 설명 되어 있다.

 

부정상수행을 하는 이유

 

이와 같은 부정상수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몸의 안팍을 관찰하고 몸의 생성과 소멸을 관찰함으로서 세상의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따라서 부정상 수행을 함으로서 감각적 욕망과 쾌락을 포기 할 수 있는데, 더러운 것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는 전도된 인식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질서에서 질서로

 

생명이 있는 것은 늘 무질서에서 질서로 향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생명이 있는 나무가 생명이 없는 바위나 담장 심지어 사원을 삼키는 것도 생명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노끈까지 씹어 버린 나무도 본 것이다. 그렇게 되기 까지는 수십년에서 수백년간 걸렸을 것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모두 엔트로피와 반대 되는 네겐트로피 때문이다.

 

 

 

2012-10-22

진흙속의연꽃

 

사띠빳타나경(새김의 토대애 대한 경-염처경-M10).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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