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저~ 거시기, 거시기 말여~”담마(dhamma)와 법(法)

담마다사 이병욱 2012. 12. 29. 15:45

 

~ 거시기, 거시기 말여~”담마(dhamma)와 법()

 

 

 

 

의 용법

 

글을 쓰다가 막힐 때가 있다. 이럴 때 가장 손쉬운 해결방법은 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단어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지명이나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도 유효하다. 말을 하다 막힐 때도 마찬가지이다.

 

물건을 살 때 잘 모르면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래도 다 알아 듣는다. 하지만 그 물건이 없는 곳에서 이것그것에 이야기하면 알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의 사용법은 영어에서도 효과적이다. 물건을 지칭할 때 ‘this one”이라고 하는데, “이 것의 의미로서 일상적으로 늘 사용되는 말이다. 이렇듯 잘 모를 때 두리뭉실하게 넘어 가는 것이 의 용법이다. ‘거시기도 일종의 것의 용법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거시기

 

거시기의 사전적 의미는 이름이 바로 생각나지 않거나 직접 말하기 곤란한 사람을 대신하여 가리키는 말이라고 정의 되어 있다. 그런 말중의 하나로서 거시기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적당한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상태나 속성을 언급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말이라한다. 저 거시기라는 말이 있는데, 말을 하다가 다음 말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 내는 말이다. 그래서 특정지역에 가면 거시기 말여~ 이것 좀 거시기 해봐~”라고 말해도 다 뜻이 통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거시기가 만능으로 통하고 있듯이 의 용법 또한 만능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의 사전적 의미는 어미 ‘-은’, -는’, -을’ 뒤에 쓰여, 일정한 일이나 사건, 사실을 나타내는 말, ‘들것’의 방언이라고 설명된다. 중요한 것은 이라는 말이 사건이나 사실을 가리킨다는 말이다.

 

거시기 못지 않은

 

거시기가 일상에서 사용되듯이 불교용어중에서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있다. ‘()’이 그것이다. 법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규범을 뜻하지만 불교에서는 일반적으로 가르침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래서 한글삼귀의를 보면 불법승 삼보에 대하여 부처님, 가르침, 승가라 하여 법이 가르침으로 사용되는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법의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일상용어로도 사용되는 말중에 그런 법이 어디있냐?”라고 말할 때 법이 규범을 뜻하기도 하지만 원리원칙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냥 담마(dhamma)’

 

이렇게 다양한 법에 대하여 일아스님은 다음과 같이 정리 하였다.

 

 

담마의 원뜻은 '바른 의무'나 '덕성스러운 길'을 뜻한다.

부처님 이전부터 사용한 인도의 정신적 종교적인 용어이다.

담마는 인도철학을 통하여 우주의 진리나 최상의 실체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인도의 고유종교인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 시크교 등은 모두 '담마' 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담마의 넓은 의미로는 바른행동, 도덕적 행위, 도덕적 가르침, 우주적인 법칙, 교리, 상태, 도덕적 행위, 현상, 정의, 대상, 개념, 진리, 바른 길, 교훈, 성질, 조건, 요소, 본성 등 다양하다.

 

(일아스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

 

 

이와 같이 담마는 매우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고, 불교에서 뿐만 아니라 인도의 다른 종교전통에서도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담마에 대하여 한역인 ‘법()’으로 한정한다는 것은 담마의 뜻을 명쾌히 드러내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스님은 그냥 빠알리원어인 ‘담마(dhamma)’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한다.

 

담마의 의미 두 가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는 것이 담마이지만 마하시사야도의 법문집 주석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부처님의 가르침(Buddha-dhamma)으로서의 법

불·법·승 삼보(三寶)에 포함되는 법은 부처님의 가르침으로서의 법이다. 영어권에서는 이를 고유명사 취급을 해서 Dhamma로 표기한다.

 

(2) 존재일반(sabbe-dhamma)으로서의 법

영어권에서는 이를 일반명사 취급하여서 dhamma로 표기한다. 이 법은 정신과 물질의 모든 현상을 말하는데 궁극적 실재(勝義, paramattha)와 개념(施設, paññātti)으로 나뉘며 일반적으로 법은 이 궁극적 실재를 뜻한다.

 

( 궁극적 실재 <마하시사야도의 12연기> 25. 오문전향에 이어지는 의문(意門)인식과정 2번 주해)

 

 

담마에 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볼 때에는 대문자를 써서 ‘Dhamma’라 하고, 존재일반으로서 담마에 대해서는 소문자를 써서 ‘dhamma’라고 한다. 그러나  대문자와 소문자로 담마의 의미를 구분하는 것은 서양의 논리가 주입된 것이라 보여진다. 그렇다면 담마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진리인가 법인가

 

빠알리니까야에서 담마라는 용어는 무척 많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번역자들은 이를 어떻게 해석하였을까. 먼저 진리로서의 담마를 보면 다음과 같다.

 

 

 

 

             

빠알리 원문

Adhigato kho myāya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 paīto atakkāvacaro nipuo paṇḍitavedanīyo,

성전협회

(전재성박사)

[세존]

내가 깨달은 이 진리는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유의 영역을 초월하고, 극히 미묘하기 때문에 슬기로운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이다.

초불

(대림스님)

내가 증득한 이 은 심오하여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수승하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섰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영어번역

1) The Teaching I have realized is deep, difficult to see and understand, is peaceful, exalted, not logically attained, is subtle and it is for the wise to realize. (http://awake.kiev.ua/dhamma/tipitaka/ 사이트)



2)This Dhamma that I have attained is deep, hard to see, hard to realize, peaceful, refined, beyond the scope of conjecture, subtle, to-be-experienced by the wise. But this generation delights in attachment, is excited by attachment, enjoys attachment. (Thanissaro Bhikkhu)

 

(아야짜나경-Āyācanasutta-하느님의 청원에 대한 경- 청원경, 상윳따니까야 S6:1)

 

 

상윳따니까야와 맛지마니까야에 실려 있는 청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처님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증득하고 난 뒤에 대범천 사함빠띠가 부처님에게 담마를 설해 주기를 간청하는 내용이다.

 

경에서 부처님은 ‘dhamma’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박사는 담마에 대하여 진리라고 번역하였고, 초불에서는 전래된 한자어 그대로 이라고 번역하였다.

 

문맥에 따라 번역할 수밖에

 

이에 대한 번역자의 각주를 보면 다음과 같다.

 

 

번역자

각주 내용

성전협회

(전재성박사)

Dhamma : 법을 뜻한다. 이 법은 번역하기 힘든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어 역자는 문맥에 따라 진리’ ‘사실’ ‘그 밖에 가르침등으로 번역한다.

(전재성박사 , S6:1 각주)

초불

(대림스님)

내가 증득한 이 법(Adhigato kho myāya dhammo)이란 통찰한 사성제의 법(catu-sacca-dhammo)을 말한다.

 

 

 

전재성박사는 담마에 대하여 번역하기 힘든 용어라고 먼저 밝히고 있다. 다만 문맥에 따라 번역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담마에 대하여 진리’ ‘사실’ ‘그 밖에 가르침등으로 번역한다고 한다. 청원경에서는 진리로 번역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초불에서는 으로 번역하였다.

 

법이라는 말은 한역경전에서 오래 전부터 사용하던 말이고 매우 익숙한 말이다. 영역의 경우 두 가지 케이스가 있는데, TeachingDhamma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초불에서 ()’을 고수하는 이유

 

4부니까야 완역자인 전재성 박사가 담마에 대한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 하였듯이 다양한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초불의 경우 초지일관 이라는 번역어를 고수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지난 11월에 간행한 맛지마니까야 해제를 보면 용어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런데 100페이지가 넘는 해제글에서 용어에 대한 해설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청정도론의 해제에 실려 있는 주요단어 들의 한글번역을 참조하라고만 되어 있다.

 

2004년에 초판이 간행된 청정도론의 해제 글에 따르면 주요 술어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다. 그 중에 담마에 대한 해설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너무나 간단하다. 지혜와 관련된 여러 술어 들이 어근을 들어가며 상세하게 설명된 것과 비교하여 담마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이 매우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다.

 

 

불교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dhamma으로 한역 된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혹 드물게 문맥에 따라 현상 등으로 옮긴 경우가 있는데 이 대는 반드시 ‘()’이라 부기해 넣어서 그것이 담마(dhamma)의 역어임을 알 수 있게 했다. 

 

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내 안에서 파악하는가 하는 것은 불교의 근본이며 특히 법(dhamma)과 대면함(abhi)을 근본주제로 하는 아비담마의 생명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현상이니, ‘이니, ‘사물이니 하는 애매한 용어로 dhamma를 옮기는 것은 피하였다.

 

그리고 viparinnama-dhamma같은 경우에는변하기 마련인 것이라든지변하기 마련이며라는 등으로 옮기지 않고변하기 마련인 법이라고을 살려서 옮겼다. 경에서 부처님께서 dhamma라는 술어를 채용하셨을 때는 그런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초불 대림스님, 청정도론 해제)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빠알리니까야를 번역하기 전에 아비담마와 청정도론을 먼저 번역하였다. 그래서 청정도론 해제에 언급된 술어들은 향후 빠알리니까야 번역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근거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담마에 대한 것을 보면 dhamma으로 한역 된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라고 하였다. 또 법을 법이라하지 않고 반드시 한자어 ‘()’을 사용하여  ()’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은 모든 번역서에 일률적으로 적용될 것이라 한다. 그렇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처님이 말씀한 담마라는 말을 함부로 다른 뜻으로 바꾸어 번역할 수 없다는 말이고, 또하나는 법이라는 것이 아비담마의 법이기 때문이라 한다.

 

아비담마는 무엇인가

 

초불에서 말하는 아비담마란 무엇일까. 아비담마는 빠알리로  abhidhamma이다. 이는 아비와 담마의 합성어로서 풀이하면 법에 대하여라는 뜻이다. 아비가 접두어로서 대하여 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아비담마에 대하여 대법(對法)’이라고 번역하였다. ‘법에 대하여라는 뜻이다. 이런 아비담마는 어떤 성격일까.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은 듣는 사람의 근거에 맞게 설해진 방편설이다. 부처님께서는 재가자들과 같이 처음부터 법을 잘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보시(danā), 지계(sīla), 생천(sagga)을 설하셨고, 법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도 그 사람의 근기에 맞게 다양하게 법을 설하셨다. 이를 방편설(方便說), 또는 대기설법(pariyāya-desanā)이라 한다.

 

이에 비해 아비담마는 듣거나 배우는 사람의 성향이나 근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즉 아무런 방편을 쓰지 않고 설한 것으로서  비방편설 또는 비대기설법(nippariyāya-desanā)이라 한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보았을 때 아비담마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abhidhamma

 

 

 

초불의 번역원칙

 

초불에서 빠알리니까야 번역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주석서를 중시하고, 청정도론을 중시하고, 아비담마길라잡이를 중시하고, 술어를 한글화 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니까야 해제에 실려 있는 이런 원칙 중에 눈에 띄는 것은 아비담마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의 성향이나 근기를 전혀 고려 하지 않고 아무런 방편이나 대기설법 없이 설해진 아미담마 논장에 의존하여 번역에 임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아비담마를 중시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곧이 곧대로 번역하려다 보니 담마의 번역어가 법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담마라는 용어를 현상이니, ‘이니, ‘사물이니 하는 애매한 용어로 옮기지 않았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 번역하였는데 종래의 한문경전에서 사용하던 법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것도 한자어 ()’이 붙은 ()’이라는 말이라 한다.

 

하지만 초불의 이와 같은 번역의 원칙은 전재성박사의 번역과 정반대이다. 재성박사의 경우 담마에 대하여 문맥에 맞게 우리말로 표현 하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한역경전

 

전재성박사의  4 부니까야 해제글에 따르면 용어와 전문술어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그 중에 담마에 대한 것도 있다. 여러 술어 중에 가장 먼저 담마에 대하여 설명해 놓았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다양한 의미를 지닌 빠알리어를 거기에 일대일 대응되는 하나의 한글로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역에서는 가능했지만 초기의 한역경전들을 보면, 동일한 빠알리어 경전들도 다양하게 역자에 따라 달리 번역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한역에서는 모든 담마(dhamma)를 법()이라고 번역하는 등의 번역에서의 경직성이 강했다. 이러한 경직성은 한역장경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전재성박사, 각권 니까야 해제)

 

 

전재성박사는 담마의 한역어인 ()’이라는 용어의 경직성에 대하여 지적한다.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담마에 대하여 오로지 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한다.

 

민중어로 설법한 부처님

 

그래서 이어지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담마(dhamma: sk. Dharma)는 적어도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의미로 가장 많이 쓰이기는 하지만, 담마는 부처님에게서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무시이래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가르치는 진리, 선행, 해탈의 기본적인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담마가 단지 인간역사의 특수한 시기에 나타나는 종교적인 가르침을 넘어서는 시공간적으로 보편적인 원리인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실재, 진리, 정의가 하나로 통일되어 최종목표인 열반으로 이끄는 정신적이고 윤리적인 실재를 말한다.

 

그 정신적이고 윤리적인 실재 속에서 부처님은 과학적 인과관계를 배제하지는 않았고, 우주 자체를 전적으로 인간의 입김을 배제하는 무도덕적인 것으로 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현상을 의미하는 담마는 신비적인 것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 작용하는 우주 자체를 뜻한다.

 

(전재성박사, 각권 니까야 해제)

 

 

고대인도에 있어서 담마라는 말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만들어낸 신조어가 아니라고 한다. 고대인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말이라 한다.

 

담마는 부처님 당시 고대인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던 일상어라고 보여진다. 요즘말로 이것, 저것 할 때의 이라 볼 수 있고, 영어로 this one, that one 하였을 때 one이라고도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미즈노 고오겐의 빠알리어 문법책에 따르면 부처님은 부처님 당시에 민중어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마가다어라 불리우는 민중어는 지배층이 사용하는 언어와 달리 인위가 가해지지 않은 자연어, 속어로 되어 있다고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누구나 알아 들을 수 있는 민중어를 사용하여 설법하였다고 한다.

 

담마가 원리로 쓰인 경우

 

그렇다면 빠알리니까야에서 담마는 어떤 의미로 쓰였을까. 전재성박사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예를 들고 있다.

 

 

담마가 담마라자(法王 dhammaraja)가 될 경우에는 그 의미가 정의로운 왕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담마가 복수로 나올 경우에는 가르침이나 사실을 의미하는데, 사실에는 단지 물리적인 사실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사실까지 포함된다. 거기에는 십이연기의 고리, 다섯 가지 존재의 다발, 여섯 가지 감역, 깨달음으로 이끄는 다양한 수행방법도 포함된다. 그리고 두 경전(S12:33, S42:11)에서 발견되는 이미나 담메나(imina dhammena)’이러한 원리에 의해서라고 번역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경전(S7:9, S7:11)에서 발견되는 담마싸띠(dhammasati)원리가 있다면이리고 번역이 가능하다.

 

(전재성박사, 각권 니까야 해제)

 

 

담마라자(dhammaraja)의 경우 이는 담마(dhamma:)와 라자(raja:)의 합성어이다. 이를 한자식으로 번역하면 법왕(法王)’이 된다. 하지만 경에서 문맥으로 파악하면 정의로운 왕이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담마가 원리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 예에 대한 경은 다음과 같다.

 

 

Gāthābhigīta me abhojaneyya sampassata brāhmaa nesadhammo,
G
āthābhigīta panudanti buddhā dhamme sati brāhmaa vuttiresā.

 

[세존]

시를 읊은 대가로 주는 것을 향유하지 않으리.

바라문이여, 그것은 올바로 보는 님에게 옳지 않네.

시를 읊은 대가로 주는 것을 깨달은 님들은 물리치네.

바라문이여, 원리가 있는 한 그것이 진솔한 삶이네.

 

(순다리까경-Sundarikasutta-쑨다리까의 경, 상윳따니까야 S7:9, 전재성님역)

 

 

담마싸띠(dhammasati)에 대하여 원리가 있다면으로 번역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문맥에 따른 번역어라 볼 수 있다. 만일 담마싸띠(dhammasati)에 대하여 법에 대한 마음챙김이 있는 한이라고 번역한다면 의미도 알 수 없을뿐더러 경직된 번역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담마가 사실로 번역된 경우

 

이어지는 전재성박사의 해제글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복수의 담마는 현상이나 사실또는 원리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러나 빠띳짜쌈웃빤나담마(paticcasamuppanna dhamma: 緣生法 S12:20)는 연기법과 대칭되는 의미에서 조건적으로 발생된 법이라는 의미에서 연생의 법이라고 번역한다.

 

(전재성박사, 각권 니까야 해제)

 

 

전재성박사가 언급한 S12:20를 찾아 보았다. ‘조건의 경이다. 그런데 개정판을 보니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Paiccasamuppādañca vo bhikkhave, desissāmi1 paiccasamuppanne ca dhamme. Ta suātha, sādhuka manasikarotha, bhāsissāmī'ti.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에게 연기와 연생의 사실에 대하여 설하겠다. 그것을 듣고 잘 새기도록 해라. 내가 설하겠다.

 

(빳짜야경-Paccaya (paccayuppanna) sutta-조건의 경, 상윳따니까야 S12:20, 전재성님역)

 

 

해제에서는 paticcasamuppanna dhamma에 대하여 조건적으로 발생된 법으로 번역한다고 되어 있으나, 개정판에서는 연기와 연생의 사실로 되어 있다. 아마도 해제 글에서 이 부분이 업데이트 되지 않고 출판된 것으로 본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다음 개정판에서는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초판본에 그대들에게 연기와 연생의 법을 설하겠다라고 되어 있어서 이라는 한자식 용어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개정판에서는 연기와 연생의 사실로되어 있어서 사실로 바꾸었음을 알 수 있다. 담마라는 용어가 에서 사실로 바뀐 것이다. 이후 개정판을 보면 법이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문맥에 따라 여러가지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담마에 대하여 사실이라고 번역한 경을 많이 볼 수 있다.

 

왜 사실로 번역하였을까?

 

이어지는 해제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다섯가지 전재의 다발을 두고 로께 로까담마(loke lokadhamma: S22:94)라고 할 때 그것을 세상속의 세상의 사실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심리적 측면에서 해석될 때에는 담마는 상태라고 번역될 수 있다.

 

담마비짜야삼보장가(dhammavicayasambojjanga:擇法覺分)의 경우에는 담마(dhamma)를 생략하여 탐구의 깨달음의 고리라고 번역했다.

 

담마야따나(dhammayatana:法處)의 경우에는 마나야따나(manayatana)에 대응되는 말인데  정신의 감역에 대한 정신적 대상으로서의 사실을 의미하지만 역자는 사실의 감역으로 번역한다. 따라서 담바싸띠빳타나(dhammasatipatthana:法念處)도 사실에 대한 새김의 토대라고 번역했다.

 

여기서 필자가 사용한 사실이란 광의의 의미로 곧 유위법은 물론이고 정신의 대상으로서의 무위법인 열반까지 포함하는 전체를 지시한다. 비구 보디(cdb,1777)현상(phenomena)’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렇게 되면 불교를 단순히 현상론으로 해석할 소지가 많고 열반도 단지 현상으로 전락함으로 이 말은 되도록 피했다.

 

담마다뚜(dhammadhatu: 法界)도 역시사실의 세계라고 번역하고 거기에 대응하는 마노빈냐나다뚜(manoviññāadhātu)정신의식의 세계라고 번역했다.

 

(전재성박사, 각권 니까야 해제)

 

 

담마에 대하여 상태라고도 번역하였고, 어느 경우는 문맥상 생략한경우도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담마의 번역어에 있어서 사실이라고 번역한 것이 눈길을 끈다. 이에 대하여 전박사는 사실이라는 번역어가 유위법은 물론 무위법인 열반까지 모두 포함되는 말이라 한다.

 

사실을 관찰하며 vs 법을 관찰하며

 

 그런 용례를 마하사띠빳타나경(대념처경, D22)에서 볼 수 있다.

  

 

  

               

빠알리어

Kahiñca pan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성전협회

(전재성박사역)

수행승들이여, 그리고 사실에 대해 사실을 관찰하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초불연

(각묵스님역)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무는가?

영역

1) And how does a monk remain focused on mental qualities in & of themselves? (Thanissaro Bhikkhu)

2) And how, monks, does a monk live contemplating mental objects in mental objects? (Nyanasatta Thera)

 

(마하사띠빳타나경-Mahāsatipaṭṭhānasutta-새김의 토대의 큰 경-대념처경, 디가니까야 D22)

 

  

dhammānupassī 에 대하여 전재성박사는 사실을 관찰하는 것이라 하였고, 초불의 경우 법을 관찰하며[法隨觀]’라 하여 한자어 법수관을 곁들여 번역하였다.  이는 dhammānupassī는 담마()와 아누사띠(수념)의 복합어 개념으로 보기 때문이다.

 

초불에서는 초지일관 담마에 대하여 법이라는 용어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복합어에서도 역시 법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법을 관찰하며 라고 번역하였고, 그것도 부족하였는지 [法隨觀]’라는 한자어까지 추가하였다.

 

사실은

 

그러나 문맥을 통하여 이해하기를 권장하는 전재성박사의 경우 사실을 관찰하며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은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dhammesu dhammānupassī: 여기서 역자는 담마(dhamma)를 사실로 번역했다. 사실은 모든 사실이나 정신현상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사건이라고 번역하면 인과적인 현상을 반영한다는 데서 더 좋은 번역이 될 수도 있으나 너무 사회적인 특수성을 띠기 때문에 여기서는 사실로 번역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 cattari ariyasaccani)도 사실에 대한 관찰로 포함 된다.

 

(전재성박사,  D22 각주)

 

 

전재성박사의 사실에 대한 각주를 보면, 사실은 유위법과 무위법, 심지어 열반까지 포함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사실은 정신적 현상도 사실로 보기 때문에 사실은 모든 것을 포함된다고 한다. 여기에 사성제라고 예외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사념처에서 법념처에 해당되는  것들, 즉 오장애, 사성제 등 모든 법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로 본다면 법을 관찰하고 라는 말보다 사실을 관찰하고 라는 말이 더 와 닿을 수 있다. 법은 마치 이나 거시기같이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담마가 으로 번역된 경우

 

그런데 전재성박사의 해제글을 보면 담마가 이라고도 해석된다고 한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그리고 복합어의 뒷부분을 구성하는 담마는 문법적으로 독특한 성질을 지닌다. 예를 들어 카야담마(khayadhamma), 바야담마(vayadhamma),  니로다담마(nirodhadhamma)에서 담마는 단순히 이라고 하거나 해야만 하는 것이란 문법적 의미를 지니므로 그 것들은 파괴되고야 마는 것괴멸되는 것이고 소멸되고야마는 것이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닛짜담마(aniccadhamma, 둑카담마(dukkhadhamma), 아낫따담마(anattadhamma)무상한 것, 괴로운 것,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전재성박사, 각권 니까야 해제)

 

 

예를 들어 아닛짜담마(aniccadhamma)라고 하였을 경우 무상법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지만, 이경우 문맥상 무상한 것이라고 하여 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어보다 문맥을 보아야

 

전재성박사의 해제글에 따르면 빠알리니까야 속에 있는 담마라는 용어는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라 한다. 이는 단어 그 자체만으로 보기 보다 문맥으로 파악해야 옳다는 것이다.

 

만일 담마를 한자어 이라고 일률적으로 적용하였을 경우 매우 경직된 번역이 될 것이라 하였는데, 이는 융통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경의 전체적인 뜻을 잘 파악할 수 없는 것이라 한다. 따라서 문맥에 맞게 번역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부처님 당시의 환경과 현재 우리의 환경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 거시기, 거시기 말여~”

 

부처님 당시 인도의 경우 부처님이 민중어로 알아 듣기 쉽게 설법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때 당시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였던 담마라는 말을 이용하여 설법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어느 누구이든지, 어느 상황에서라도 담마가 들어 간 말을 다 이해하였을 것으로 본다. 담마라는 말을 부처님이 만들어낸 신조어가 아니고 일상어라면 누구나 알아 들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마치 특정 지역에서 ~거시기라든가 “~거시기 하다라든가, “거시기 말여~ 이것 좀 거시기 해봐~”라고 말해도 다 뜻이 통하고 알아 듣는 이치와 같다. 역사와 문화와 전통, 생활방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거시기라고 말해도 알아 듣는 것이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부처님 당시 일반민중들도 부처님이 ~담마또는 담마 말여~”라고 말해도 알아 들었을 것임에 틀림 없다. 이는 그 때 당시 사람들이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시대가 다르고 공간이 다르고, 더구나 역사와 문화와 전통이 다르면 알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 법(法), 법(法) 말여~”

 

부처님 당시 인도와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담마또는 담마 말여~”라고 말하면 이해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마라는 말을 부처님이 경전에서 사용하였다고 하여 담마의 한문번역어인 법()을 고수하고, 방편없이 설한 아비담마에 의존하여 번역하였다면 난해 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더구나 부처님 당시 인도와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라는 번역어를 고수한다면, 담마에 대하여 ~거시기라든가 “~거시기 하다라든가, “거시기 말여~ 이것 좀 거시기 해봐~”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법(法)또는 법(法) 말여~”라고 말하면 알아 듣기 힘들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와 전통에 맞는 언어로 바꾸어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렇게 본다면 이 시대의 언어를 사용하여 누구나 알기 쉽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는 번역서가 요청된다.

 

 

 

2012-12-2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