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인간의 타락과 계급발생의 원리, 아간냐경(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 D27)

담마다사 이병욱 2013. 1. 1. 18:40

 

인간의 타락과 계급발생의 원리, 아간냐경(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 D27)

 

 

 

아간냐경(Aggaññasutta, D27)에서

 

이 세상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나는 누구인가? 이와 같은 질문은 빠알리나까야에 따르면 부처님의 일차적인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쭐라말룽끼야뿟따경(M63)에서와 같이 세상은 영원한가?” 등과 같이 열 가지 형이상학적 질문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알리니까야에는 세상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 일부 보인다. 디가니까야에 실려 있는 아간냐경(Aggaññasutta, D27)이 대표적이다.

 

아간냐경에 대한 우리말 제목은 ‘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 또는 ‘세기경’이라 불리운다. 그렇다면 아간냐경에서 부처님은 무엇을 말씀 하시고자 한 것일까. 전재성박사의 해제에 따르면 “세계의 생성과 괴멸의 원리와 관련시켜 인간이 세상에 처음에 어떻게 태어나서 사회적으로 어떠한 조건 하에 계급이 생겨나게 되었는가를 설명했다.”라고 되어 있다. 부처님 당시 인도에서 사성계급이 생겨난 원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부득이 하게 세계의 기원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라 보여진다.

 

우주생성에 대하여 언급한 뜻은?

 

니까야에서 우주의 생성과 괴멸에 대한 것은 브라흐마잘라경(D1, 범망경)과 아간냐경(D27, 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에 언급되어 있다. 브라흐마잘라경에서는 62가지 사견 중에 영원주의 와 부분적 영원주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언급되었고, 아간냐경에서는 사성계급이 형성된 원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언급되었다. 따라서 부처님이 우주의 생성과 소멸 그 자체만을 설명하기 위하여 언급한 것은 아니다.

 

부처님 당시 영원주의자 또는 부분적 영원주의자는 브라만교이었다.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다”고 보는 것이 영원주의자들이고, “자아와 세계가 부분적으로 영원하고 부분적으로 영원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부분적 영원주의자들의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는 부처님의 연기법에 따르면 모두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삿된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부처님은 연기법으로 영원주의를 부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브라만교가 지배이데올로기로 만들어 놓은 사성계급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특히 사성계급이 형성된 원리를 밝혀 냄으로서 제도와 관습과 인습을 타파 하고자 하였다.

 

계급발생의 원리

 

아간냐경에 표현된 세계의 형성과 계급의 발생원리에 대한 것을 표로 만들어 보았다.

 

 

 

세계의 형성과 계급의 발생원리

No

 

   

   

1

맛있는 땅의 출현

Rasapahavipātubhāvo.

 

-암흑의 시대에 물의 존재 (Ekodakībhūta) 만 있었음.

-, 태양, 별자리, 별빛 도 나타나지 않았음.

-밤과 낮, 계절도 나타나지 않았음.

-남자와 여자도 나타나지 않았음.

-뭇삶은 단지 뭇삶이라고 여겨졌을 뿐이다.( Sattā sattātveva sakha gacchanti.)

암흑의 시대

-맛 있는 땅조각이 물위에 막을 형성하며 나타남

-땅은 정제된 버터와 같은 색깔 같은 것으로 야생꿀처럼 맛이 있었음.

땅의 출현

-“ 어참, 이것이야말로 무엇일까? (ambho kimevida bhavissatī)”라는 호기심(동요)가 발생.

-조각을 맛보면서 맛에 대한 갈애가 생겨남.

어참, 이것이야말로 무엇일까?”라고 동요와 갈애가 생겨남

2

달과 태양의 출현

Candimasuriyādipātubhāvo

 

-맛있는 땅조각을 먹자 스스로 빛나던 광명이 사라짐.

-그러자 달과 태양이 나타남.

-그러자 별자리와 별빛이 나타남.

-그러자 밤과 낮이 나타남.

-그러자 한달과 보름이 나타남.

-그러자 계절과 일년이 나타남.

-이 세상이 다시 생성됨(loko puna vivaṭṭo).

해와 달, 계절등 세상의 생성

-땅조각을 먹으면서 오랜세월을 보냄.

-그럴수록 몸은 거칠고 추해짐.

-잘생긴자와 못생긴자가 구별됨.

-잘생긴자의 오만이 나타나자 맛있는 땅이 사라짐.

잘생긴자와 못생긴자가 구별됨

-맛있는 땅이 사라지자 오 이 맛!, 오 이 맛!”하며 슬퍼함.

-지금도 사람들은 무엇인가 맛있는 것을 얻으면 오 이 맛!, 오 이 맛!”이라고 말함. 그러나 후대 사람은 이런 이야기의 의미를 알지 못함

오 이 맛!, 오 이 맛!”하며 슬퍼함.

3

균류의 출현

Bhūmipappaakapātubhāvo

-맛있는 땅조각이 사라지자 균류(pappaaka, 버섯)다 나타남.

-균류를 먹으면서 오랜 세월을 보냄.

균류(pappaaka, 버섯)가 나타남

-그럴수록 몸은 거칠어지고 못생기게 됨.

-잘생긴자들은 오만이 생겨남.

더욱 몸이 거칠어짐

4

바달라따초가 생김

Badālatāpātubhāvo.

 

-균류가 사라지자 바달라따초(badālatā, 맛있는 길상의 넝쿨)가 생겨남.

-그것을 먹거리로 삼고 오랜 세월을 보냄.

바달라따초(badālatā, 맛있는 길상의 넝쿨)가 생겨남.

-그럴수록 몸은 거칠어지고 아름답고 추한 것을 드러냄.

-잘생긴자들은 교만을 조건으로 자만과 오만이 생겨남.

미추가 드러남

-그러자 바달라따초가 사라짐.

-사라지자 , 우리는 어쩌란 말인가! , 참으로 망했다!”라고 슬퍼함.

-그러나 후대사람은 그 말의 의미를 모름

, 우리는 어쩌란 말인가! , 참으로 망했다!”라고 슬퍼함.

5

경작하지 않고도 여무는 쌀이 나타남

Akaṭṭhapākasālipātubhāvo

 

- 경작하지 않고도 여무는 쌀이 나타남.

-속겨도 왕겨도 없는 향기로운 쌀.

-저녁식사를 위하여 가져가면, 아침에 자라나 성장해 있음.

-버릴 것이라고는 없었음.

- 그것을 먹거리로 오랜세월을 보냄.

경작하지 않고도 여무는 쌀의 출현

6

남녀의 특징이 나타남

Ligapātubhāvo

-그 쌀을 먹을수록 몸은 더욱 거칠어지고 추한 것을 드러냄.

-여자에게 여자의 특징이, 남자에게 남자의 특징이 나타남.

여자와 남자의 특징이 나타남.

-여자는 남자에게 지나치게 몰두하게 됨.

-남자는 여자에게 지나치게 몰두 하게 됨.

-서로 몰두하면서 탐애가 생겨남.

-탐애가 생겨나며 몸이 달아 오름.

-몸이 달아 올라 성적교섭을 하게 됨.

성적교섭

-그 당시 성적교섭을 하면 짐승으로 취급하여 흙먼지와 재를 집어 던지는 풍습이 있었음.

-오늘날에도 신부를 데려 갈 때 흙먼지를 던짐.

-그러나 후대사람은 그 의미를 모름

신부를 데려 갈 때 흙먼지를 던지는 이유

7

성적교섭과 생활

Methunadhammasamācāro

-그 당시에 비법이었던 것이 지금은 정법이 됨.

-성적교섭을 하면 한 두달 마을에 들어 갈 수 없었음.

-그러나 비법에 지나치게 빠짐.

-그래서 비법을 가리기 위해 집을 지음.

성적교섭을 위해 집을 짓기 시작함

-한꺼번에 쌀을 수집하고 축적하기 시작함.

-그러자 속겨가 흰쌀을 둘러싸고, 왕겨가 흰쌀를 둘러싸게 됨.

-벼를 베면 다시 자라지 않게 됨.

쌀의 축적

8

쌀을 둘러싼 다툼

Sālivibhāgo

 

-벼들을 구분지어 경계를 설정함.

-빼앗아 먹는 자가 나타남.

-빼앗은 자를 비난하고 몽둥이질을 함

재산이 나타남

-그때부터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이 나타남.

- 비난이 나타남.

-거짓말이 나타남.

-처벌이 나타남.

도둑질, 거짓말이 생겨남

9

마하쌈마따 왕의 출현

Mahāsammatarājā.

 

-질서를 위해 사람을 선정함.

-출중하고 보기 좋고 능력있는 자에게 쌀을 주고 질서유지를 부탁함.

질서 유지자의 출현

-많은 사람들에게 뽑힌자이므로 마하쌈바타(Mahāsammata)라 함.

-다음으로 토지의 주인이라 하여 캇띠야(khattiya)라 함.

-다음으로 법으로 남을 다스린다하여 라자 (rājā')라 함.

(rājā')의 출현

-왕족집단은 우리와 같은 뭇삶으로부터 생겨난 것이지 다른 것에서 생겨난 것이 아님.

왕족은 뭇삶에서 생겨난 것

10

바라문집단의 기원

Brāhmaamaṇḍala

 

-‘악하고 불건전한 것을 없앤다고 하여 바라문('brāhmaā) 이라는 첫번째 칭호가 생겨남.

-처음 바라문은 숲속에 살며 명상하고 탁발에 의지함.

바라문('brāhmaā)의 유래

-명상을 한다고 하여 자야까(jhāyakā)라는 두번째 칭호가 생겨남.

자야까(jhāyaka)의 유래

-초막에서 명상을 감당할 수 없어 마을로 내오게 됨.

-마을에 내려와 책(삼 베다)을 만들며 지냄.

-더 이상 명상하지 않는다 하여 앗자야까(ajjhāyakā) 라는 세 번째 칭호가 생겨남.

앗자야까(ajjhāyakā)의 유래.

(앗자야까는 베다를 학습하는 자라는 의미)

-그 당시에 저열한 것으로 여겨지던 것이 지금의 최상으로 여겨짐.

-바라문의 기원은 우리와 같은 뭇삶들로부터 생겨난 것이지 다른 자들에게서 생겨난 것이 아님.

바라문은 뭇삶에서 생겨난 것

11

평민집단의 기원

Vessamaṇḍala.

 

-뭇삶들 가운데 결혼하여 여러가지 일에 종사 한다고 하여 벳싸(Vessa)라 함.

-평민의 기원은 우리와 같은 뭇삶들로부터 생겨난 것이지 다른 자들에게서 생겨난 것이 아님.

결혼하여 여러가지 일에 종사함.

12

노예집단의 기원

Suddamaṇḍala

 

- 뭇삶들 가운데 사냥을 하거나 잡일을 한다고 해서 쑷다(Sudda)라 함.

-노예의 기원은 우리와 같은 뭇삶들로부터 생겨난 것이지 다른 자들에게서 생겨난 것이 아님.

사냥을 하거나 잡일을 함.

13

수행자집단의 기원

 

- 왕족, 바라문, 평민, 노예 네 가지 집단에서 자신의 속성을 경멸하면서 수행자집단이 출현함.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함.

-수행자의 기원은 우리와 같은 뭇삶들로부터 생겨난 것이지 다른 자들에게서 생겨난 것이 아님.

자신의 속성을 경멸하면서 수행자집단이 생겨남

(아간냐경-Aggaññasutta-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 디가니까야 D27, 전재성님역)

 

 

 

세계형성과 계급발생의 원리는 13가지로 구분된다. 이중 세계생성과 관계 있는 것이 1번과 2번 두 가지라 볼 수 있고, 인간의 타락과 관계 된 것이 을 알게 되면서부터(2) 시작 된다. 그래서 그래서 쌀을 둘러싼 다툼이 일어나기 까지(8) 지속적으로 타락된다. 그 다음이 계급이 생겨나는 과정(9-13)이다. 이를 크게 우주생성기(1-2), 인간타락기(3-8), 계급발생기(9-13)로 구분지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본다면 부처님의 주요관심사는 계급발생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계급이 발생되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우주생성과 인간의 타락에 대한 이야기가 도입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생성과 인간의 타락이 주 관심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에서 우주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구약과 유사한 내용

 

우주생성기와 인간타락기를 보면 기독교 구약에서 보는 창조론과 원죄론 등과 유사한 점을 발견한다. 똑 같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약은 어떤 것일까.

 

구약은 유대교의 정경이다. 이를 유대교에서는 타나크(Tanak)’라 부른다. 영어로는 old testament 라 하여 옛약속이라는 뜻이다. 이는 기독교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따라서 유대교에서는 받아 들이지 않는다. 마치 테라와다 불교에서 히라야나(hirayana,소승)’라는 말을 받아 들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다면 구약의 역사는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기원전 1500-400년 사이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훨씬 나중으로 이해 한다. 모든 문서가 유대경전으로 인정된 것은 AD 90얌니야 회의로 추정된다.

 

구약이 이와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빠알리니까야의 역사는 얼마나 될까. 일반적으로 부처님이 열반에 들고 난 후 결집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장로비구들이 합송함으로서 인정된 것이다.

 

우주관은 어떻게 다른가

 

그렇다면 구약에 실려 있는 창세기와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관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이를 비교해 보았다.

 

 

 

디가니까야

  

우주의 발생

수행승들이여, 언제 어느 땐가 오랜 세월이 지나가면, 세계가 생성되는 때가 있다. 세계가 생성될 때에 텅빈 하느님의 궁전이 나타난다. 그 때 어떤 뭇삶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하여 빛이 흐르는 신들의 하느님 세계에서 죽어서 텅 빈 하느님의 궁전에 태어난다. 그는 거기서 마음으로 만들어진 존재로서 기쁨을 먹고 살고 스스로 빛나고 공중으로 날아다니고 영광스럽게 살면서 오랜 세월을 지낸다.

 

그는 그곳에서 오랜 세월 홀로 살았기 때문에 ‘오 다른 뭇삶들이 이곳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불만을 갖고 동요를 일으킨다. 그러자 다른 뭇삶들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하여 빛이 흐르는 하느님 세계에서 죽어서 그 뭇삶의 권속으로서의 하느님 궁전에 태어난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만들어진 존재로서 기쁨을 먹고 살고 스스로 빛나고 공중으로 날아다니고 영광스럽게 살면서 오랜 세월을 지낸다.

수행승들이여, 거기에 먼저 태어난 한 뭇삶이 있었는데, 그는 이와 같이 ‘나는 하느님, 위대한 하느님, 정복자, 정복되지 않는 자, 모든 것을 보는 자, 지배자, 주재자, 작자, 창조주, 최상자, 조물주, 전능자,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다. 이 뭇삶들은 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는 예전에 ‘다른 뭇삶이라도  이곳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바랬는데, 그러한 내 마음의 서원 때문에 이 뭇삶들이 여기에 태어났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수행승들이여, 나중에 태어난 한 뭇삶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와 같이 ‘이 존귀한 자는 하느님, 위대한 하느님, 정복자, 정복되지 않는 자, 모든 것을 보는 자, 지배자, 주재자, 작자, 창조주, 최상자, 조물주, 전능자,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다. 우리는 이 존귀한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우리는 여기 먼저 태어난 자를 보았고 우리는 나중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한다.

 

(브라흐마잘라경-Brahmajālasutta- 하느님의 그믈의 경, 디가니까야 D1, 전재성님역)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http://www.bbintl.org/bible/ko/koGen1.html)

 

  • 첫째날: 빛을 만드시고 낮과 밤을 제정하심.
  • 둘째날: 궁창(하늘)을 만드시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을 나누심.
  • 셋째날: 궁창 아래의 물을 모아 바다와 뭍()을 나누고 그 위에 각종 씨 맺는 채소와 과목을 만드심.
  • 넷째날: 궁창에 두 큰 광명을 만들어 큰 광명을 낮을 작은 광명은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별들을 만드심.
  • 다섯째날: 바다의 생물과 하늘의 새를 만드심.
  • 여섯째날: 땅의 짐승들과 사람을 만드심.

(http://ko.wikipedia.org/wiki/%EC%B0%BD%EC%84%B8%EA%B8%B0)

 

 

 

 

우주의 발생에 대한 것을 보면 불교와 기독교의 세계관이 확연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불교의 경우 브라흐마라 불리우는 하느님은 삼계를 윤회하는 무상한 연기적 존재이다. 그런 하느님은 “자아와 세계는 영원하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고 또 자신이 이 세상을 창조 하였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는 삿된 견해이고 착각이다. 하느님은 창조자도 아니고 영원한 존재도 아니기 때문이다. 윤회하며 살아 가는 우리와 똑 같은 범부중생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착각을 가지게 된 것은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자신의 전생을 잊어 버린 것이다. 수명과 공덕이 다하여 아래 세상(색계 초선천, 대범천)에 태어나다 보니 자신이 최초 이었고, 이후 나중에 태어난 자들이 자신을 하느님, 절대자, 창조자, 아버지 등으로 불러 주어서 자신이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인간의 타락과 관련하여

 

인간의 타락과 관련하여 바이블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디가니까야

  

인간의 타락

-그 쌀을 먹을수록 몸은 더욱 거칠어지고 추한 것을 드러냄.

-여자에게 여자의 특징이, 남자에게 남자의 특징이 나타남.

-여자는 남자에게 지나치게 몰두하게 됨.

-남자는 여자에게 지나치게 몰두 하게 됨.

-서로 몰두하면서 탐애가 생겨남.

-탐애가 생겨나며 몸이 달아 오름.

-몸이 달아 올라 성적교섭을 하게 됨.

-그 당시 성적교섭을 하면 짐승으로 취급하여 흙먼지와 재를 집어 던지는 풍습이 있었음.

-오늘날에도 신부를 데려 갈 때 흙먼지를 던짐.

-그러나 후대사람은 그 의미를 모름

-그 당시에 비법이었던 것이 지금은 정법이 됨.

-성적교섭을 하면 한 두달 마을에 들어 갈 수 없었음.

-그러나 비법에 지나치게 빠짐.

-그래서 비법을 가리기 위해 집을 지음.

(아간냐경(D27, 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

그러던 중, 여호와 하느님의 창조물 중 가장 간교한 뱀(사탄)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하였고, 하와는 이 유혹에 넘어가 하느님이 금지한 열매인 선과 악을 구별하게 하는 선악과를 먹게 되며, 곧이어 아담도 하와의 유혹에 넘어가 이 열매를 먹게 된다.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는 영원한 생명이 있었던 곳 에덴동산에서 차단되며 쫓겨나게 되어, 수고와 죽음의 짐을 지고 가게 되는 숙명을 전 인류에게 안기게 된 것이다.

(http://ko.wikipedia.org/wiki/%EC%B0%BD%EC%84%B8%EA%B8%B0)

 

 

 

 

 

 

The Garden of Eden

 

 

 

디가니까야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가 생겨나게 된 것이 에 대한 집착으로 보고 있다. 맛에 대한 집착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타락해 가는데, 마침내 남자와 여자의 특징이 생겨나는 것으로 본다.

 

맛에 대한 탐착은 바이블에서 뱀(사탄)이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하는 것과 유사하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하여 낙원에서 쫒겨 났고, 이후 수고와 짐을 지게 된 것으로 묘사 되고 있기 때문이다.

 

디가니까야에서는 맛에 대한 탐착이 심하면 심할수록 점점 거칠어져서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고, 사유재산이 생겨나고, 그에 따라 도둑질이 생겨나는 등 갈수록 타락한 것으로 묘사 되고 있다.

 

 최초에 기쁨을 먹고 살고 하늘을 날아 다니던 빛나던 존재가 맛을 알게 됨에 따라 갈수록 거칠어져서 마침내 남자나 여자의 특징이 나타나 성적교섭을 하게 되고, 이를 부끄럽게 여겨 집을 만들고, 사유재산을 갖게 되는 등의 과정이 니까야에 설명되어 있다.

 

부처님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부처님은 빠알리니까야에서 우주생성 원리 그 자체를 이야기 하지 않았다. 우주생성과 소멸 등에 관한 것은 부처님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우주생성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은 영원주의라는 삿된 견해를 부수기 위해서이었고, 사성계급에 따른 제도와 관습과 인습을 타파하기 위하여 도입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였을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바쎗타여, 왕족도 신체적으로 자제를 하고, 언어적으로 자제를 하고, 정신적으로 자제를 하고, 일곱 가지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원리를 닦으면, 현세에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

 

바쎗타여, 바라문도 신체적으로 자제를 하고, 언어적으로 자제를 하고, 정신적으로 자제를 하고, 일곱 가지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원리를 닦으면, 현세에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

 

바쎗타여, 평민도 신체적으로 자제를 하고, 언어적으로 자제를 하고, 정신적으로 자제를 하고, 일곱 가지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원리를 닦으면, 현세에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

 

바쎗타여, 노예도 신체적으로 자제를 하고, 언어적으로 자제를 하고, 정신적으로 자제를 하고, 일곱 가지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원리를 닦으면, 현세에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

 

(아간냐경-Aggaññasutta-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 디가니까야 D27,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어느 계급이라도 신구의 삼업을 자제하여 칠각지를 닦으면 누구나 이 몸과 마음이 살아 있을 때 열반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이는 모든 계급이 평등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경에서 계급의 발생원리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다.

 

바라문교에 비판적인 부처님

 

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바라문계급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다. 이는 경의 초입에서 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세존]

“바쎗타여, 그렇다면 어떻게 바라문들은 자신들의 특징적인 욕설을 담고 가득 채워서 비웃고 욕하는가?”

 

[바쎗타]

“세존이시여, 바라문들은 이와 같이 ‘바라문들이야말로 최상의 계급이고, 다른 계급은 저열하다. 바라문들이야말로 밝은 계급이고, 다른 계급은 어둡다. 바라문들이야말로 청정하고, 다른 계급은 그렇지 못하다. 바라문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적자이고, 그의 입에서 태어난 자이고, 하느님이 만든 자이고, 하느님의 상속자이다. 그런데 그대들은 최상의 계급을 버리고, 범천의 다리에서 생겨나 비천하고 검은 저열한 계급에서 까까머리 수행자가 되었다. 그대들이 최상의 계급을 버리고, 범천의 다리에서 생겨나 비천하고 검은 저열한 계급에서 까까머리 수행자가 된 것은 옳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바라문들은 자신들의 특징적인 욕설을 담고 가득 채워서 비웃고 욕합니다.

 

(아간냐경-Aggaññasutta-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 디가니까야 D27, 전재성님역)

 

 

부처님 당시 상가에는 계급의 구별이 없었다. 누구든지 상가에 들어가면 평등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라문에서는 이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였다. 자신들은 범천의 입에서 태어났고 태생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평등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바라문 아내에게도 월경, 임신, 출산, 수유가 존재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바라문의 여인들도 아들을 얻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를 생물학적 평등으로 보고 있다. 이는 바라문교의 정()-부정(不淨) 사상의 부당성을 지적한 것이다. 인간은 어느 계급이건 여인에게서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에 저열한 것으로 여겨 진 것이 지금은 최상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현재의 바라문 들은 타락하였다고 말한다. 예전의 바라문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전의 바라문 들은 초막에서 살며 탁발을 하며 명상수행을 하였으나, 지금의 바라문들은 마을로 내려와 베다를 만들고, 명상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들에게 “그 당시에 저열한 것으로 여겨진 것이 지금은 최상의 것으로 여겨진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바라문의 역할에 대하여 재해석 하였다. 예전의 바라문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바라문이라 하였고, 청정범행을 닦은 바라문은 아라한과도 같다고 하였다.

 

누가 최상자인가?

 

이와 같이 부처님은 경에서 우주론을 거론 한 것은 계급의 생성원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도입된 것이고,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누구나 현자가 될 수 있다는 평등사상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바쎗타여, 이 네 가지 계급 가운데 수행승으로서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짐을 내려 놓고 이상을 실현하고 존재의 결박을 끊고 올바른 궁극적 앎으로 해탈한 거룩한 님이 있다면, 그가 그들 가운데 최상자라고 불린다. 

 

(아간냐경-Aggaññasutta-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 디가니까야 D27, 전재성님역)

 

 

여기서 거룩한 님은 아라한을 말한다. 번뇌 다한 아라한이 되는데 있어서 계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민출신이든 노예출신이든 누구나 청정범행을 실현하면 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청정범행을 실현하면

 

그래서 부처님은 법구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Na jaāhi na gottena,             나 자따히 나 곳떼나

na jaccā hoti brāhmao,          나잣짜 호띠 브라흐마노
Yamhi saccañ-ca dhammo ca        얌히 삿짠짜 담모 짜

so sucī so va brāhmao.          소 수찌 소 와 브라흐마노

 

상투나 성씨나 태생에 의해서

바라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와 원리를 지닌 님,

그가 청정한 님, 그가 바로 바라문이다.

 

(법구경, Dhp393, 전재성님역)

 

 

Na cāha brāhmaa brūmi        나 짜항 브라흐마낭 브루미

yonija mattisambhava,         요니장 맡띠삼바왕
Bhov
ādī nāma so hoti              보와디 나마 소 호띠

sa ce hoti sakiñcano,             사 쩨 호띠 사낀짜노
Akiñcana
anādāna,             아낀짜낭 아나다낭

tam-aha brūmi brāhmaa.       따마항 브루미 브라흐마낭

 

모태에서 나와 태생이 그렇다고

나는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는다.

만약에 무엇인가 있다면,

그는 단지 ‘존자여’라고 말하는 자일뿐이다.

아무 것도 없고 집착이 없다면,

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법구경, Dhp396, 전재성님역)

 

 

 

 

2013-01-01

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