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유학과 박사학위
석사와 박사의 차이는
회사에서 직원을 뽑을 때 기술계통의 경우 석사나 박사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경우 대우 해준다. 공부한 기간만큼 경력을 인정해 주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석사와 박사의 차이는 매우 크다. 박사의 경우 학업 성취 과정이 석사와 비교도 안될 만큼 깊고도 높기 때문에, 박사타이틀을 가진 사람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친척중에 박사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다. 외국에서 공부하여 취득한 것이다. 현재 모 대학 교수로 있는데, 젊은 시절 과정이 매우 험난하였다. 국내에서 석사과정을 취득한 상태에서 5년을 목표로 박사취득을 위한 유학을 갔었다. 그러나 기간내에 되지 않았다. 6년, 7년, 8년이 되어도 소식은 없었다. 마침내 10년만에 박사학위를 받아 귀국하게 되었다.
이렇게 외국 유학을 하여 박사를 취득하는 경우 보통 10년 내외가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불교계에서 외국유학을 가서 10년 이상 공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학위취득을 하지 못하고 돌아 오는 경우가 있다. 특히 스님들이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대림스님과 각묵스님의 학력
초기불교를 접하면서 초기불전연구원의 성과를 매우 높게 평가 한다. 특히 각묵스님의 경우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초기불교를 소개하고 전파 하는데 열정을 쏟고 있다. 빠알리니까야를 번역하고 강연하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면 산중에서 은둔 생활하는 듯이 보이는 스님들과 확실히 차별화 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런데 스님의 학력을 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출가자의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학력을 거론 하는 것은 의미 없는 행위에 지나지 않지만 인도유학 십년 성과를 보면 박사학위 타이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초기불전 연구원의 두 축중의 하나인 대림스님과 비교된다. 참고로 아비담마길라잡이에 소개 되어 있는 두 분 스님에 대한 프로필을 보면 다음과 같다.
대림 스님
1962년 생으로 경남함안 생, 1983년 세등선원 수인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사미니계 수지. 1988년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봉녕사 승가대학 졸. 인도 뿌나 대학교(Pune University)산스끄리뜨어과에서 석사학위 취득. 2001년 ‘빠라맛따만주사의 혜품연구’로 철학박사 학위 취득. 3년간 미얀마에서 아비담마 수학. 현재 초기불전연구원 원장소임을 맡아 삼장 번역불사에 몰두하고 있음.
역서로 염수경(상응부 느낌상응, 1996),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2003, 개정판 2005), 앙굿따라니까야(전6권)이 있음.
각묵 스님
1957년생 밀양생. 부산고등학교 졸. 부산대학교 수학교육과 재학 중 출가하여 1979년 화엄사 도광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 1982년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수지. 7년간 제방선원에서 안거 후 인도로 유학. 10여년간 산스끄리뜨, 빠알리, 쁘라끄리뜨 수학, 인도 뿌나 대학교(Pune University) 산스끄리뜨과 석사과정과 박사과정 수료. 현재 실상사 화엄학림 교수 및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역-저서로 금강경 역해(2001, 4쵀 2006),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2003, 개정판 3쇄 2008), 디가니까야 (전 3권, 2006),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2007)외 다수의 논문과 글이 있음.
(아비담마 길라잡이)
이것이 2008년 6쇄 인쇄 아비담마 길라잡이에 소개된 두 분 스님의 프로필이다. 그런데 두 분 스님이 똑 같이 인도 뿌네 대학교(http://unipune.ac.in/)에 유학을 하였는데, 대림스님은 석사와 박사학위를 모두 취득하였으나, 각묵스님은 단지 석사와 박사 과정에 대한 수학한 것으로만 되어 있다.
Main building, University of Pune
재연스님의 동국대 정각원 토요법회 법문
일반적으로 사회 통념상 학위 취득과 수학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회사에서 직원을 뽑을 때 석사과정이나 박사과정 등 수료한 자에 대해서는 학력을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반드시 석사나 박사 학위가 있어야 학문적 성과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각묵스님의 학력에 대한 것을 보면 공통적으로 학위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대학교 다니던 도중에 출가 하였으므로 학사 학위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치더라도, 강원에 대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출가한 후 곧바로 선방으로 갔기 때문에 강원을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인도로 유학을 간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인도 유학 10년간 석사와 박사과정을 수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학위 타이틀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미디어붓다 사이트에서 재연스님의 법문을 듣고 어느 정도 내용 파악을 할 수 있었다. 재연스님이 동국대 정각원 토요법회에서 한 이야기를 보면 다음과 같다.
“저만 학위가 없어요. 잘못알고 소개할 때 박사라고 하는데 사실 박사아니거든요. 제가 뿌나에 제일 먼저 갔어요. 사실 제일 먼저 간게 아니고 여기 앉아 계신 이지수교수님 있죠? 이지수 교수님이 거기 계셨고 전 그때 이지수 교수님에게 이야기해서 뭣좀 보내 달라고 했더니 입학원서를 보내 줬더라구요.
뭐 선방에 놀다가 그렇게 하다가 갔는데, 그래서 제가 갔을 때는 이지수교수님이 돌아 왔고 그러다 보니까 한국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몇 년을 저 혼자 살았는데 기숙사에서 살면서 보니까 아무도 없고 한국말 할 기회도 없고 하니까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따 누가 우리말 한 사람이 와 갖고 저녁내 쓸데 없는 소리 밤새워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간절히 그 생각이 낳는데, 나중에 삼년이 지나니까 그때쯤 내가 막 부추기고 꼬드기고 해서 스님들이 하나씩 불어나가지고 나중에는 거의 스므명 정도 같이 살게 됐어요.
지금 그 스님들 모두다 중요한 일들 하고 계시죠. 그 스님들 다 박사학위를 했는데 저하고 우리 빠알리 니까야 번역 가장 많이 하시는 각묵스님이라고 있어요. 각묵스님하고 둘만 박사학위 논문을 안썼어요.
제가 싫더라구요. ‘아이 중이 비구면 됐지 그것 따로 피에치디(Phd.)붙이면 무엇하냐’ 싶기도 해서 ‘난 안해’ 그랬더니 우리 각묵스님이 괜히 자기도 ‘나도 안할래요’ 그러더라구요.(청중들 웃음) 그래서 끝끝내 안했는데, 아무튼 저랑 실상사 같이 살았어요. 지금도 실상사에 살고 계십니다. 저는 선운사로 도망 나왔고..”
(재연스님, 2012년 4월 7일 정각원 토요법회 , 일시 : 2012년 04월 07일 토요일 주제 : 초기불교의 깨달음 법사 : 재연스님 촬영, 편집 : 동국대학교 교육방송국(DUBS))
재연스님은 한국스님으로는 최초로 인도 뿌나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1985년부터 1998년까지 13년간이라 한다.
그런데 재연스님은 박사학위가 없다고 하였다. 박사학위를 따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아이 중이 비구면 됐지 그것 따로 피에치디(Phd.)붙이면 무엇하냐”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지 않게 되었다는 취지로 말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런 재연스님의 말에 각묵스님도 동조하여 논문을 쓰지 않은 것으로 발언하였다는 것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인터넷과 정보통신시대에 모든 정보가 오픈 되고 공유화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동국대 정각원 토요법회에서 재연스님의 법문한 내용을 보면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10년 넘게 외국 유학을 가서 공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성과가 없었고, 그 이유가 본인이 하기 싫어서 하지 않은 것으로 비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출가자들은 세상과 부모형제와 인연을 끊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 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마치 은둔생활 하듯이 세상과 소통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한편 매우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특별히 오래 머무는 곳이 없이 이곳 저곳으로 떠 돌아 다니기 때문이다. 안거철이 되면 운수납자라 불리우는 스님들이 방부를 트는 것도 자유롭게 돌아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걸망을 꾸린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어떤 이는 ‘내키는대로’ 하는 행위라 하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스님들의 허물
흔히 듣는 이야기 중에 스님들의 허물은 가급적 들추어 내지 않아야 된다고 말한다. 스님들이 계행을 지키지 않아 불자들이 보기에 눈쌀을 찌뿌려도 그것을 들추어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불자들이 지적 하지 않아도 스스로 곧바로 참회하고 초심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박사학위 타이틀에 대한 의문을 들추어 내는 것도 일종의 스님들 허물 보기일 것이다. 또 그것이 커다란 ‘구업’을 짓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유학을 갔다면 그에 대한 성과는 내야 된다고 본다. 10년간 공부를 하였으면 논문을 써서 학업에 대한 성과를 보여 주는 것이 시주자에 대한 보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기 싫어 하지 않은 것으로 비추어진다면 이는 마음‘내키는 대로’ 사고 방식이 아닐까.
2013-01-14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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