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승리는 원한을 낳고,법구경판 행복경 수카왁가(Sukhavagga)2

담마다사 이병욱 2013. 2. 25. 17:03

 

승리는 원한을 낳고,법구경판 행복경 수카왁가(Sukhavagga)2

 

  

승리는 원한을 낳고

 

Jaya vera pasavati   자양 웨랑 빠사와띠

dukkha seti parājito   둑캉 세띠 빠라지또

Upasanto sukha seti    우빠산또 수깡 세띠

hitvā jayaparājaya     히트와 자야빠라자양

 

승리는 원한을 낳고

패한 자는 고통속에 잠든다.

적멸에 든 님은

승리와 패배를 버리고 행복하게 잠든다.

(Dhp201, 전재성님역)

 

 

법구경 201번 게송은 수카왁가(안락의 품)에서 다섯번째 게송이다. 이 게송을 이용하여 몇 차례글을 쓴 바 있다. 그 때 K스님의 번역을 사용하였다. 영역과 함께 보면 다음과 같다.

 

 

승리자는 원수를 얻고

패배자는 고통 속에 살아간다.

승리도 패배도 모두 버리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라.

(Dhp201, K 스님역)

 

 

Victory begets enmity;

the defeated dwell in pain.

Happily the peaceful live,

discarding both victory and defeat.

(Dhp201)

 

 

201번 게송은 원한이 원한을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하는 가르침이다. 싸움이나 전쟁을 하면 한편은 이기고 다른 한편은 질수밖에 없다. 이때 이긴자와 진자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게송에서 ‘승리는 원한을 낳는다(Jaya vera pasavati)’ 라고 하였다. 다른 자를 정복한 자는 정복된 자로부터 원한을 산다라는 말이다. 마음으로부터 승복을 하지 않는 것이다. 비로 패배 하였지만 복수의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그래서 ‘패한자는 고통속에 잠든다(dukkha seti parājito)’ 라고 하였다. 여기서 잠든다라는 말이 세띠(seti)이다. 이에 대하여 영역에서는 dwell이라 하였다. ‘살다’라는 뜻이다. K스님역을 보면 영역에서의 dwell과 같이 ‘살아간다’라고 번역하였다.

 

빠세나디왕과 아자따삿뚜왕

 

패배에 대한 수치심과 분노는 고통스러운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패배한 자는 ‘나는 언젠가 적을 패배시킬 것인가?’라고 고통스러워 하기 때문에  ‘패한 자는 고통속에 잠든다’ 라고 한 것이다. 이를 ‘와신상담 (臥薪嘗膽)’ 이라 볼 수 있다. 원수를 갚으려 하거나 실패한 일을 다시 이루고자 굳은 결심을 하고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한다. 더구나 자신 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패하였을 때 더욱 더 치욕적이다.

 

이 게송과 관련 된 이야기가 상윳따니까야에 있다.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와 그의 조카인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와의 전쟁이야기이다.

 

 

한때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가 네 종류의 군대를 무장시켜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을 공격하기 위해서 까씨국으로 쳐들어왔다.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가 네 종류의 군대를 무장시켜 까씨로 쳐들어온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네 종류의 군대를 무장시켜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를 까시국에서 맞이했다.

 

그리하여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와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이 싸웠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잣타쌋뚜가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을 이겼다. 싸움에 패한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자신의 수도인 싸밧티로 돌아왔다.

 

그때 많은 수행승들이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탁발을 하기 위해 싸밧티로 들어갔다. 싸밧티에서 탁발을 하고 식사를 마친 뒤 발우를 물리고 나서 세존께서 계신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올리고 한쪽으로 물러앉았다. 한쪽으로 물러앉아서 그 수행승들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수행승]

“세존이시여,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잣타쌋뚜가 네 종류의 군대를 무장시켜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을 공격하기 위해서 까씨국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세존이시여,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가 네 종류의 군대를 무장시켜 까씨국으로 쳐들어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네 종류의 군대를 무장시켜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잣타쌋뚜를 까시국에서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세존이시여,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잣타쌋뚜와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이 싸웠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가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에게 이겼습니다. 세존이시여, 싸움에 패한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자신의 수도인 싸밧티로 돌아왔습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잣타쌋뚜는 나쁜 친구, 나쁜 동료, 나쁜 동료를 도반을 갖고 있다. 수행승들이여, 거기에 비해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도반을 갖고 있다. 그러나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오늘 패자로서 괴로워 하며 잠을 못 이룰 것이다.”

 

[세존]

“승리는 원망을 낳고

패한 자는 잠을 못이루네.

이기고 지는 것을 버리면

마음 편히 잠을 이루네.”

 

(빠타마상가마경-Pahamasagāmasutta-전쟁의 경1, 상윳따니까야 S3:14(2-4),전재성님역)

 

 

부처님 당시 고대 인도에는 16대국이 있었다. 그 중에 마가다국과 꼬살라국이 가장 강대하였다. 그런데 경에 따르면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가 네 종류의 군대를 무장시켜 까시국으로 쳐들어가는 장면이 묘사 되어 있다. 여기서 네 종류의 군대란 코끼리 부대, 기마부대, 전차부대, 보병부대를 말한다.

 

이렇게 네 종류의 막강한 전력으로 쳐들어간 곳이 까시국인데, 까시국은 꼬살라의 속국이다. 마가다의 아자따삿뚜왕이 꼬살라의 빠세나디왕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그런데 아자따삿뚜는 빠세나디왕의 조카라는 사실이다.

 

빠세나디왕은 조카와의 세 번에 걸친 싸움에서 패하게 된다. 인연담에 따르면, 세 번째 패하게 되었을 때 이 유치한 애송이를 굴복시키지 못하다니, 더 오래 살아서 무슨 소용인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식음을 전폐하고 침대에 누운 것이다.

 

이소식을 듣고 부처님은 승리는 원한을 낳고 패한 자는 고통속에 잠든다. 적멸에 든 님은 승리와 패배를 버리고 행복하게 잠든다.”라고 게송을 읊었다.

 

그런데 법구경과 상윳따니까야에 있는 게송에 대한 번역이 약간 다르다. 그러나 빠알리 원문은 똑 같다. 다른 부분은 Upasanto에 대한 것이다. 법구경에서는 ‘적멸에 든 님이라 하였으나, 상윳따니까야에서는 마음편히로 되어 있다. 이는 문맥에 따라 달리 해석한 것으로 보여진다.

 

츄신구라(忠臣藏)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패배하였을 때 복수 하려 든다. 반드시 설욕하여 패배시키려 하는 것이다. 와신상담의 고사처럼 보복과 복수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스라엘과 주변나라들과의 전쟁이 좋은 예이다.

 

당대에서 복수가 되지 않으면 후대로 넘어갈지 모른다. 그래서 대를 이어 복수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 원수처럼 지내게 된다. 이런 복수의 악순환을 끊어 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

 

복수의 악순환고리를 끊어 버리는 하나의 예가 있다. 일본 토쿠가와 막부시대의 츄신구라(忠臣藏)이다.

 

츄신구라(忠臣藏)는 일본 도쿠가와 막부시절 5대 쇼군인 ‘토쿠가와 츠나요시(德川綱吉, 1646~1709)시절에 발생된 사건이다. 그런 츠나요시는 어떤 인물일까.

 

츠나요시가 집권하고 있던 시절은 평화의 시대이었다. 전국시대가 끝나고 100년 후의 일본의 경우 평화의 시대이었다. 그런 시대에 쇼군이 된 츠나요시는 유학에 정통하고 유교의 덕목을 정치에 반영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여 그의 치세기간동안 동물살상금지령을 내렸다.

 

개장군(이누쿠보, 犬公方)라고도 불린 츠나요시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후세 사가들은 색욕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은 무능한 쇼군으로 보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이와 정 반대로 도쿠가와 시대의 중흥의 기초를 이룬 매우 유능한 쇼군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츠나요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생명존중사상이다그의 치세기간중에 동물살상금지령이라는 전무후무한 포고령이 나온 것이다. 지나가는 개한마리만 죽여도 처벌 받던 시대에 추신구라 사건이 일어 난다.

 

츄신구라사건은 1701과 1703년에 일어났는데, 47명의 사무라이들이 억울하게 죽은 자신의 주군을 위하여 ‘복수’극을 펼친 사건이다. 원수를 갚기 위하여 무려 2년간이나 치밀하게 준비하여 마침내 상대방을 완벽하게 제거함으로서 복수를 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츠나요시는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거사한 47명의 사무라이들에 대한 처벌이 문제가 되었다. 길가의 버려진 개도 살육하면 처벌 받는다는 ‘동물살상금지령’을 만들어 놓은 5대 쇼군 츠나요시는 고민에 빠진다.

 

츠나요시가 고민한 것은 복수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의 관습에 따르면 주군을 위하여 보복이나 복수 하는 것은 주군에 대한 아름다운 충절로서 무사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중의 하나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다른 보복을 불러 일으키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한 측에서는 또 다른 복수를 하려 할 것이다. 이는 보복과 복수의 악순환을 의미한다. 이에 대하여 츠나요시는 어떤 결단을 내렸을까.

 

개와 같은 동물을 포함하여 사람까지 생명이 있는 것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던 츠나요시는 47명 전원에게 할복을 명하였다. 생명을 중시한 츠나요시가 할복을 명한 것은 한마디로 또 다른 보복을 막기 위한 조치이었다. 보복의 악순환에 대한 고리를 끊기 위한 극단의 조치이었던 것이다.

 

주군에 대한 복수 금지가 법으로 만들어 불법화 된 것은 메이지 신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이와 같은 추신구라는 일본 가부키극의 고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忠臣藏

    

 

불교가 평화의 종교인 이유

 

보복에 보복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싸움이다. 그런 싸움은 개인적인 싸움도 있고, 가문의 싸움도 있고, 국가간의 전쟁도 있다. 공통적으로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원한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수의 칼날을 갈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원한과 보복에 따른 싸움이 끊일 날이 없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기고 지는 것을 버리면 마음 편히 잠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승리한 자는 패배한 자로부터 원한을 살 것이기 때문에 복수가 두려워 잠못 이루고, 패배한 자는 언젠가 적을 패배시킬 것인가라고 생각 하기 때문에 역시 잠못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우거나 이기려고 하지 않은 것이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길이라 하였다. 그런 자들이 행복하게 잠들것이라 하였다. 이렇게 불교에서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싸움 그 자체를 싫어 하는 평화의 종교임을 알 수 있다.

 

 

 

2013-02-2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