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수다원에게 남아 있는 번뇌는? 라따나경(보배경)6

담마다사 이병욱 2013. 3. 10. 13:17

 

수다원에게 남아 있는 번뇌는? 라따나경(보배경)6

 

 

 

성스런 진리를 본 사람은, 라따나경(보배경, Sn2.1) 게송8

 

라따나경(보배경, Sn2.1)에서 게송8은 성스런 진리를 본 사람에 대하여 노래 하고 있다.

 

 

 

라따나경 게송8

빠알리

Yathindakhīlo pahavisito siyā
Catubbhi v
ātehi asampakampiyo,
Tath
ūpama sappurisa vadāmi
Yo ariyasaccāni avecca passati,
Idampi sa
ghe ratana paīta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야틴다키-로 빠타윙시또 시야-

짜뚭비 와-떼히 아삼빠깜삐요

따투-빠망 삽뿌리상 와다-

요 아리야삿짜-니 아웻짜 빳사띠

이담삐 상게 라따낭 빠니-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

전재성님역

마치 단단한 기둥이 땅위에 서 있으면

사방에서 부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성스런 진리를 분명히 보는 참사람은 이와 같다고 나는 말하니, 참모임 안에야말로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 지이다.

법정스님역

마치 성문 밖에 선 기둥이 땅속에 박혀 있으면,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모든 성스러운 진리를 관찰하는 착한 사람은 이와 같은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이 뛰어난 보배는 모임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中村元

城門まれていると、四方からのにもがないように、なるして立派は、これに(たと)えられるべきである、とわれはう。このれたは〈つどい〉のうちにある。このによってせであれ

영역

Just as a well established iron post would not move with the winds from the four directions

Great human beings who have seen the Noble Truths perfectly, are comparable to that,

This is precious in the jewel of the Community, by this truth may there be mental happiness.

 

 

yatha: ~와 같이, ~처럼

indakhīla: [m.] a door-step; threshold; a strong post before a city gate. 【 門前梯級門檻在城門前的壯柱(p62)

pathavī : [f.] the earth.

sita: [adj.] 1. white; 2. depending on; attached. (nt.), a smile.

siyā :→ atthi. : [Sk. syād] atthi の opt. あるであろう, あれかし, atthi: (as + a + ti), 存在。(p11)

vāta: 바람

asampakampiya : [adj.] not to be shaken.

Tathā: 그와 같이, 이렇게 Tathāgata:이렇게 오신님, 여래

sappurisa: [m.] a righteous man. m. [sat-purisa] 善人, 善士, 正士

vāda: [m.] theory; saying; creed controversy.

avecca : [adv.] certainly; definitely; absolutely; perfectly; having known.

passati : [dis + a; dis is changed to pas.] sees; finds; understands.

 

 

 

 

 

 

사성제외에 다른 진리가 있을 수 없다!

 

게송에서 성스런 진리를 보는 사람이 참사람이라 하였다. 여기서 성스런 진리(ariyasaccā)사성제를 말한다. 불교에서 진리라고 할 때 이는 사성제이다. 사성제외에 다른 진리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 진리에 대하여 성스런 진리라 한다. 성스런 진리를 깨달아야 성스런 자, 즉 성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성자를 다른 말로 참사람이라 하였다.

 

참사람으로 번역된 삽뿌리사(sappurisa)’는 고귀한 제자들이 모두 포함되며, 네 쌍으로 여덟이 되는 참사람의 무리(四雙八輩, cattari purisayugani attha purisapuggla)를 지칭한다. 삽뿌리사에 대하여 나까무라 하지메는 立派라 하였다.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를 중역한 법정스님은 착한 사람이라고 번역하였다. 중요한 것은 삽뿌리사라고 불리워지는 사람이 성스런 진리를 본 자들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도와 과를 이루신 성자를 말한다.

 

인다킬라(indakhīla)

 

제자들을 깨달음에 이르게 한 성스런 진리는 마치 땅속에 단단히 고정된 기둥과도 같다고 하였다. 이때 말하는 기둥은 성문 앞에 있는 것을 말한다. 이를 인다킬라(indakhīla)’라 하는데, 고대 인도에서 성문을 닫을 때 문을 고정하기 위하여 문앞에 땅속으로 박은 말뚝이라 한다. 이런 기둥은 원시 인도유럽어족의 풍습이라 한다.

 

 

 

 

 

 

이렇게 땅속에 단단히 고정된 기둥은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깨달은 성스런 진리를 흔들림 없는 성문 앞 기둥으로 묘사 하였다. 그런 진리를 깨달은 참사람 역시 흔들림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게으름을 피워도, 라따나경(보배경, Sn2.1) 게송9

 

라따나경(보배경, Sn2.1)에서 게송9는 수다원이 된 자에 대하여 노래 하고 있다.

 

 

 

 

라따나경 게송9

빠알리

Ye ariyasaccāni vibhāvayanti
Gambhīrapaññena sudesitāni
Kiñcāpi te honti bhusappamattā
Na te bhava
aṭṭhama ādiyanti,
Idampi sa
ghe ratana paīta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예 아리야삿짜-니 위바-와얀띠

감비-라빤녜나 수데시따-

낀짜-삐 떼 혼띠 부삽빠맛따

나 떼 바왕 앗타망 아-디얀띠

이담삐 상게 라따낭 빠니-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

전재성님역

심오한 지혜를 지닌 님께서 잘 설하신,

성스런 진리를 분명히 아는 사람들은

아무리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여덟 번째의 윤회를 받지 않습니다.

참모임 안에야말로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법정스님역

깊은 지혜를 가진 사람(부처님)이 말씀하신 모든 거룩한 진리를 똑똑히 아는 사람들은, 아무리 커다란 잘못에 빠지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여덟번째 생존을 받지는 않는다. 이 뛰어난 보배는 모임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中村元

智慧ある(ブッダ)がみごとにきたもうたなるをはっきりとは、たといいになおざりにることがあっても、第八生存けることはない。このれたは〈つどい〉のうちにある。このによってせであれ。

영역

They that develop the noble truths, preached with deep wisdom, Even if they live negligently, would not have an eighth birth. This is precious in the jewel of the Community, by this truth may there be mental happiness.

 

 

Vibhāvayati: 顯耀 (:나타날 현, 耀: 빛날 요) KhA.187.Vibhāvayantīti paññā-obhāsena saccappaicchādaka kilesandhakāra vidhamitvā attano pakāsāni pākaāni karonti.(顯耀以智慧之光破壞實的隱藏染之暗後自己的光顯耀出來)

Vibhāvaniya : adj.[ vibhāvana] 설명하는, 확인 할 수 있는, 분명히 아는

Gambhīra: 깊은, 심오한  

Gambhīra-pañña:  지혜가 깊은 자

sudesita : [adj.] well preached. :a. [su-desita] よくかれた, の.

Kiñcāpi:  ind. [=kiñci api] 설사~이더라도, kiñcana 무엇인가의 , 사소한 것

honta : [pr.p. of hoti] existing.

hoti : [hū + a] to be; exists.

bhusa : [nt.] chaff; husks (of corn). (adj.), much; abundant. M.왕겨, adj.많이 굉장히

appamatta : [adj.] (a + pamatta:) vigilant (방심않는); careful; alert. (appa + matta:) slight(사소한); insignificant(하찮은). :a. ① [appa-matta] 少量. ② [a-pamatta] 不放逸.

pamatta : [pp. of pamajjati] become intoxicated; was clearless, slothful or negligent; neglected; (n.) a negligent person.

pamajjati : [pa + mad + ya] becomes intoxicated; is clearless, slothful or negligent; neglects.

bhava: [m.] the state of existence.

aṭṭhama : [adj.] the eighth.

ādiya : [abs. of ādiyati] having taken.

ādiyati : [a + dā + i + ya] takes up; grasps. (This is a passive base, but has active meaning).

 

 

 

 

 

수다원이 된다는 것은

 

불교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면 그만일까. 현세에서 잘 먹고 잘 살다 죽으면 그만일까? 현세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일까? 오로지 현세만을 생각한다면, 오로지 지금 여기에서 즐거움만 추구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과 거리가 멀다.

 

 빠알리 니까야에서는 수 도 없이 괴로움의 소멸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는 윤회의 종식과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윤회의 고통에서 해방되고자 불교를 믿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괴로움의 종식과 윤회의 고통에서 해방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게송에서는 성자의 흐름에 드는 것이라 하였다. , 수다원이 되면 여덟 번째 생은 받지 않을 것이라 한다. 수다원이 되면 최대 일곱생이내에 윤회가 끝날 것이라 한다.

 

수다원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사성제를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수다원이 된다는 것을 견도(見道)라 한다. 수다원이 되었다는 것은 열반이라는 궁극의 경지의 맛을 본 것을 말한다고 한다. 수다원이 체험한 열반이나 아라한이 체험한 열반은 같은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다만 수다원과 아라한의 차이는 남아 있는 번뇌이다. 아라한의 경우 모든 번뇌가 소멸되어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는 무학도(無學道) 단계이지만, 수다원의 경우 아직 남아 있는 번뇌가 있기 때문에 수도(修道)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 수도 과정이 사다함과 아나함이라 한다.

 

커다란 잘못과 부사빠맛따(bhusappamattā)

 

이와 같이 소멸해야 할 번뇌가 아직 남아 있는 수다원에게 있어서 삶의 과정에 있어서 잘 못이 없을 수 없다. 더구나 앞으로 최대 일곱생이 남아 있으니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 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성자의 흐름에 들었다는 것은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완전한 열반이 보장 되어 있다. 그래서 게송에서 아무리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여덟 번째의 윤회를 받지 않습니다라고 표현 되어 있다. 그런데 번역에서  커다란 잘못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대부분의 번뇌가 제거 되고 아직 남아 있는 번뇌가 있는 수다원에게 있어서 커다란 잘못이란 어떤 의미일까?

 

커다란 잘못에 해당되는 빠알리어는 부사빠맛따(bhusappamattā)’이다. 이는 부사(bhusa)와 아빠맛따(apamattā)의 복합어임을 알 수 있다. 빠알리 사전에 따르면, 부사(bhusa)많은(much)’것이라는 뜻이고, 아빠맛따(apamattā)방심않는(vigilant)’ 또는 사소한(slight)’, ‘하찮은(insignificant)’이라는 뜻이다.그래서부사빠맛따(bhusappamattā)’에 대하여 많은 방심또는 많은 사소한 일’, ‘많은 하찮은 것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번뇌가 아직 남아 있는 수다원에게 있어서 잘 못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전재성 박사의 번역을 보면 커다란 잘못이라 하였다. 그리고 나까무라 하지메의 번역을 보면 いになおざりにること(크게 소홀하여 걸리는 것)’이라 하였다. 이를 중역한 법정스님은 커다란 잘못에 빠지는 일이라 하였다. 커다란 잘 못이라 하여 살인을 저지른다든가, 도둑질을 한다든가, 거짓말을 한다든가, 성폭행을 한다든가, 알코올중독이 되는 것을 말할까?

 

빠알리 니까야에 따르면 성자의 흐름에 들었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번뇌는 소멸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남아 있는 번뇌 보다 소멸된 번뇌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큰 대지와 손톱 끝의 흙먼지

 

어느 정도일까? 빠알리 니까야에 다음과 같이 표현 되어 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큰 대지와 내가 손톱 끝에 집어든 이 흙먼지와 어느 쪽이 더 큰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이 큰 대지가 훨씬 크고 세존께서 손톱 끝에 집어든 흙먼지는 아주 작습니다. 세존께서 손톱 끝에 집어든 흙먼지를 큰 대지와 비교한다면 백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천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며 또한 그 십만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올바른 견해를 갖추고 진리에 대한 올바른 꿰뚫음에 도달한 고귀한 제자들에게는 이미 파괴되어 끝나 버린 괴로움이 더 많고 남아 있는 괴로움은 아주 적다. 많이 잡아 일곱 번을 더 환생한다 할지라도,  아직 남아 있는 괴로움을 이미 파괴되어 끝나 버린 괴로움과 비교하면 백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천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며 또한 그 십만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나까시카경-Nakhasikhāsutta-손톱 끝의 경, 상윳따니까야 S13:1(1-1),전재성님역)

 

 

나까시카경에 따르면 성자의 흐름에 든 자, 즉 수다원에게 있어서 남아 있는 번뇌는 매우 미미한 것이라 한다. 이를 손톱 끝에 있는 흙먼지로 비유하였다. 그리고 이미 제거된 번뇌는 커다란 대지와 같이 많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수다원에게 남아 있는 번뇌는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수다원에게 남아 있는 번뇌는?

 

수다원에게 비록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대표되는 번뇌가 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살인을 저지르거나, 물건을 훔지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성폭행을 하는 등의 중죄를 저질로 악처에 떨어질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일곱생 이내에 완전한 열반이 보장된 자에게 악처에 떨어질 큰 잘못을 한다는 것은 논리상 맞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다원에게 있어서 커다란 잘못이라는 것은 아주 사소하고 하 찮은 것을 말한다. 그래서 빠알리어 부사빠맛따(bhusappamattā)’커다란 잘못이 아니라 사소하고 하찮은 잘못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영역에서는 이에 대하여 negligently라 하였다. ‘방일하여도라는  뜻이다. 그래서 낀짜삐 떼 혼띠 부삽빠맛따(Kiñcāpi te honti bhusappamattā)’에 대하여 아무리 방일하여도라고 번역될 수 있다.

 

게송에 따르면 성자에 흐름에 든 이는 아무리 게으름을 피워도 일곱생이내에는 완전한 열반이 보장 되어 있다. 그런 방일이나 게으름은 보통사람들과 비교 되지 않은 번뇌로서 손톱 끝의 흙먼지 만큼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은 보잘 것 없는 번뇌, 작은 번뇌라는 뜻이다.

 

 

 

2013-03-1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