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십악참회게(十惡懺悔偈)의 원형, 라따나경(보배경)8

담마다사 이병욱 2013. 3. 23. 23:32

 

 

십악참회게(十惡懺悔偈)의 원형, 라따나경(보배경)8

 

 

 

라따나경(Sn2.1)에서 게송 6번부터 11번 까지 내리 여섯 게송은 성스런 상가(聖僧伽, Sangha)에 대하여 찬탄하는 내용이다. 이전 4번과 5번 게송 두 개는 가르침(Dhamma)에 대한 찬탄이고, 3번 게송은 부처님(Buddha)에 대한 찬탄이다.

 

성스런 상가에 찬탄은 14번 게송에서 한 번 더 나온다. 모두 궁극적인 경지, 즉 열반을 성취한 성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라따나경 게송11

빠알리

Kiñcāpi so kamma karoti pāpaka
Kāyena vācā uda cetasā vā
Abhabbo so tassa pa
icchādāya
Abhabbatā di
ṭṭhapadassa vuttā,
Idampi sa
ghe ratana paīta
Etena saccena suvatthi hotu.

 

낀짜-삐 소 깜망 까로띠 빠-빠깡

-예나 와-- 우다 쩨따사- -

아밥바 소 땃사 빠띳차--

아밥바따- 딧타빠닷사 웃따-

이담삐 상게 라따낭 빠니-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

전재성님역

신체와 언어와 정신으로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어도,

그것을 감추지 못하니,

궁극적인 길을 본 사람은 그것을 감출 수 없습니다.

참모임 안에야말로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 지이다.

법정스님역

또 그가 몸과 말과 생각으로 조그만한 나쁜 짓을 했다면, 그는 그것을 감추지 못한다. 궁극의 경지를 본 사람은 감출 수가 없다. 이 뛰어난 보배는 모임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中村元

またかれが身体によって、ことばによって、またはこころので、たといかなりともをなすならば、かれはそれをすことができない。す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を、究極境地きたもうた。このすぐれたが〈つどい〉のうちにする。このによってせであれ。

영역

Whatever demerit done bodily, verbally or mentally, it is not possible to cover it up

That inability is because of the right view. 1

This too is precious in the jewel of the Community, by this truth may there be mental happiness.

 

 

Kiñcāpi: 설사 ~이더라도

so : [(nom. sin. of ta), m.] he. : [sa (ta) の m. sg. nom.] は, が.

kamma: (wholesome or unwholesome) action; s. kamma. : [nt.] deed; action; job; work.

karoti : [kar + o] does; acts; makes; builds.

pāpaka : [adj.] wicked; sinful; (in cpds.): leading to. :a., pāpikā f. [pāpa-ka] き, の.

Kāya: 몸, 신체

vācā 'speech'. on right sp., s. magga (3), sacca (IV.3). - Low talk, s. tiracchāna-kathā. :f. [Sk. vāk (vāc), vākya] , . –ānurakkhin

uda : [ind.] or. :① indecl. [Sk. uta] は, ~ vā はまた. cf. udāhu

cetasā : [ceto の instr. = cittena] によりて.

vā , (particle of disjunction), or; either- or. :adv. conj. [〃] または,

Abhabba: 불가능한, Abhabbatā:불가능

tassa :, tassā, ta (so, tad, sā) の dat. gen. ,人稱代名詞第三人稱指示代名詞)ta(he / it/ she;that遠稱陰性f.單數s.與格

paicchāda ,[fr. pai+chad] 1. covering, clothes, clothing Pv.II,116 (=vattha PvA.76). -- 2. deceiving, hiding; concealment, deception Sn.232. (Page 394) :m. [pai-chāda] , , 詐欺; 衣服, 被服.

diṭṭha: [pp. of passati] seen; found; understood. (nt.), vision.

pada: [nt.] foot; foot-step; a word; position; place; reason; cause; a line of stanza; the final rest. 경지

vutta : [pp. of vadati] spoken; said; told.

 

 

 

 

 

신구의 삼업

 

게송 11번은 신구의 삼업에 대한 것이다. 게송에서는 Kāyena(신체), vācā(언어), cetasā(마음)로 표현 되었다.

 

신구의 삼업은 불교에서 가장 강조되는 사항이다. 그래서 천수경에서도 ‘아석소조제악업 개유무시탐진치 종신구의지소생 일체아금개참회(我昔所造諸惡業 皆由無始貪瞋癡 從身口意之所生 一切我今皆懺悔)’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악업들은 신구의 삼업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신구의 삼업에 대해서 천수경에서는 십악참회로 구체화 되어 있다. 그런데 십악참회의 원형이 빠알리 니까야에 있다는 사실이다. 맛지마 니까야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바라문장자들]

“세존이신 고따마여, 어떠한 원인 어떠한 조건으로 어떠한 뭇 삶들이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납니까? 세존이신 고따마여, 어떠한 원인 어떠한 조건으로 어떠한 뭇 삶들이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납니까?”

 

(살레이야까경-Sāleyyakasutta-쌀라 마을 장자의 경, 맛지마니까야 M41, 전재성님역)

 

 

맛지마니까야 살레이야까경(M41)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각주에 따르면 한역에는 유사한 경이 없다고 한다. 오로지 빠알리 니까야에만 있는 경이다.

 

부처님이 꼬살라국을 유행하면서 살라(sālā)라는 바라문 마을에 도착하여 장자들과 대화를 나눈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장자들이 부처님의 명성을 듣고 궁금하게 생각하였던 것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 있다. 죽은 다음에 악처 또는 선처에 태어나는 것은 어떤 조건때문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르고 바른 길이 아닌 것을 실천한다면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이라 한다. 반면 가르침을 따르고 바른 길을 실천하면 죽어서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날 것이라 한다.

 

십악참회게의 원형

 

열 가지 악행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존]

“장자들이여, 신체적으로 세 가지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라 잘못된 길을 실천하는 것이 있으며, 언어적으로네 가지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라 잘못된 길을 실천하는 것이 있으며, 정신적으로 세 가지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라 잘못된 길을 실천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체적으로 잘못된 길 3)

 

장자들이여, 어떠한 것들이 신체적으로 세 가지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라 잘못된 길을 실천하는 것입니까?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은,

 

1) 살아있는 생명을 죽입니다. 그는 잔인하여 손에 피를 묻히고 살육에 전념하고 뭇삶에 대하여 자비심이 없습니다.

 

2) 주지 않는 것을 빼앗습니다. 그는 마을이나 숲에 있는 다른 사람의 부와 재산을 주지 않은 것임에도 남몰래 훔칩니다.

 

3)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합니다. 어머니의 보호를 받고 있고, 아버지의 보호를 받고 있고,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있고, 형제의 보호를 받고 있고, 자매의 보호를 받고 있고, 친족의 보호를 받고 있고, 이미 혼인했거나, 주인이 있거나, 법의 보호를 받거나, 심지어 약혼의 표시로 꽃다발을 쓴 여인과 관계합니다.

 

장자들이여, 이것들이 신체적으로 세 가지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라 잘못된 길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언어적으로 잘못된 길 4)

 

장자들이여, 어떠한 것들이 언어적으로 네 가지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라 잘못된 길을 실천하는 것입니까? 장자들이여,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은,

 

1) 거짓말을 말합니다. 법정에 불려가거나 모임에 나아가거나 친지 가운데 있거나 조합에 참여하거나 왕족 가운데 있거나 증인으로서 질문을 받아, ‘오, 이 사람아, 그대가 아는 것을 말하라.’라고 하면, 그는 모르면서도 ‘나는 안다.’고 대답하고, 알면서도 ‘나는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보지 못하면서도 ‘나는 본다.’고 말하며, 보면서도 ‘나는 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그는 자신을 위하여, 혹은 타인을 위하여, 혹은 뭔가 이득을 위하여 고의로 거짓말을 합니다.

 

2) 이간질을 합니다. 여기서 들어서 저기에 말하여 이들을 파괴하고, 혹은 저기서 들어서 여기에 말하여 저들을 파괴하며, 화합을 파괴하고, 사이를 갈라놓는 것을 돕고, 분열을 좋아하고, 분열을 기뻐하고, 분열을 일으키는 말을 합니다.

 

3) 욕지거리를 합니다. 거칠고 난폭한 말로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고, 다른 사람을 분노하게 하며, 스스로 분노하여, 삼매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와 같은 말을 행합니다.

 

4) 꾸며대는 말을 합니다. 때맞추어 말하지 않고, 사실을 말하지 않고, 의미를 말하지 않고, 가르침을 말하지 않고, 계율을 말하지 않고, 때 아닌 때에 근거가 없고, 이치에 맞지 않고, 무절제하고, 유익하지 않은 말을 합니다.

 

장자들이여, 이것들이 언어적으로 네 가지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라 잘못된 길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잘못된 길 3)

 

장자들이여, 어떠한 것들이 정신적으로 세 가지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라 잘못된 길을 실천하는 것입니까? 장자들이여,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은,

 

1) 탐욕스럽습니다. 그는 ‘아, 다른 사람의 것이라도 나의 것이면 정말 좋겠다.’라고 다른 사람의 부와 재산을 탐합니다.

 

2) 분노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이 뭇 삶들은 살해되고 피살되고 도살되고 파멸되어 존재하지 않길 바란다.’고 해칠 의도를 갖습니다.

 

3)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보시도 없다. 제사도 없다. 공양도 없다. 선악의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흘연히 태어나는 뭇삶도 없다. 세상에는 바르게 유행하고 올바로 실천하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을 곧바로 알고 깨달아 가르치는 수행자나 성직자도 없다.’라고 전도된 견해를 갖습니다.

 

장자들이여, 이것들이 정신적으로 세 가지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라 잘못된 길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장자들이여, 이와 같이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르고 바른 길이 아닌 것을 실천하는 것을 원인으로 어떤 뭇 삶들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납니다.

 

(살레이야까경-Sāleyyakasutta-쌀라 마을 장자의 경, 맛지마니까야 M41, 전재성님역)

 

 

경에서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은 악업에 대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십악참회게에서 치암중죄금일참회라 하여 어리석음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경에서는 어리석음이라는 것이 잘못된 견해(邪見)’인 것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유물론적 허무주의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으나 부처님 당시 영원주의, 운명론 등 육사외도 사상 모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악업을 지으면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납니다.”라고 말씀 하신다.

 

자기자신만은 속일 수 없다

 

라따나경 11번 게송에서는 “신체와 언어와 정신으로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어도,

그것을 감추지 못하나니라고 하였다. 이는 자기자신만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완전범죄를 저질렀더라도 그일이 생각나는 한 결코 감출 수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궁극적 경지를 본 성자들은 그것을 감출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무슨 말일까?

 

그것을 감출 수 없습니다.”와 관련된 빠알리는 아밥바 소 땃사 빠띳차다야(Abhabbo so tassa paicchādāya)’이다. 아밥바(Abhabba)불가능한이라는 뜻이고, 빠띳차다(paicchāda)숨기는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숨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궁극의 경지를 본사람을 말한다. 이에 대한 빠알리어가 아밥바따 딧타빠닷사 웃따(Abhabbatā diṭṭhapadassa vuttā)’이다. 여기서 딧따(diṭṭha)는 과거분사형으로 (seen)’ 또는 이해된(understood)’으로 번역된다. 웃따(vutta)말하여진(spoken)’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궁극적 경지, 열반을 체험한 성자들에게 신구의 삼업이 말하여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삐야닷시 테라의 영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since it has been proclaimed that such concealing is impossible for one who has seen the Path (of Nibbana). (그러한 숨김은 열반의 길을 보았던 자에게 불가능하다라고 선언 되었으므로)

(Piyadassi Thera)

 

 

삐야닷시 테라는 궁국의 경지에 대하여 열반이라 하였고, 이에 대한 각주를 보면 ‘He is a sotapanna, stream-enterer, one who has attained the first stage of sanctity’라고 되어 있어서 성자의 흐름에 든 수다원(sotapanna)’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성자가 된 수다원에게 신체와 언어와 정신으로 지은 악행(pāpa)이 결코 일어 날 수 없음을 말한다. 또한 악행 뿐만 아니라 선행도 일어 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자의 흐름에 들었다는 것은 유신견이 타파 되었기 때문이다.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作用心, kiriya citta)

 

성자가 되는 첫 번째 조건이 유신견이 타파 되는 것이라 한다. 존재(오온)에 실체가 있다 잘못된 견해가 소멸된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성자들에게는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作用心, kiriya citta)이 있게 된다. 따라서 내 몸, 나의 마음, 나의 것이라는 마음이 일어 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좋은 일 했다라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보살펴 주면서 오늘 나는 착한 일 했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 같다. 행위를 하긴 하되 업을 짓지  않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악업도 짓지 않고, 선업도 짓지 않는 것이다.

 

신구의 삼업에 따른 십악행이나 십선행은 뭇삶(중생)에 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경에서 십악행을 하면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라고 하였고, 반면 십선행을 하면 죽어서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2013-03-2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