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스님의 폭행, 출가이유가 궁금하다

담마다사 이병욱 2013. 3. 24. 10:06

 

 

스님의 폭행, 출가이유가 궁금하다

 

 

 

 

재가자를 향한 무자비한 폭행

 

또 한번 불교망신사건이 일어났다. 메이저신문인 동아일보에서 연합뉴스기사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보도 하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조계종 승려 도박사건'에 연루된 승려가 해당 사건을 보도한 불교계 언론사 대표를 폭행했다는 고발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3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해 조계종 승려들을 도박 혐의로 고발한 성호 스님은 도박사건을 보도한 한 불교계 인터넷매체 대표 A씨를 폭행해 중상을 입힌 혐의(살인미수)로 서울시내 대형 사찰 전 부주지 B 승려를 서울 종로경찰서에 고발했다.

B 승려는 지난 18일 오후 6시 50분께 종로구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A씨와 마주치자 A씨를 때려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폭행당한 A씨는 치아 4개를 다쳐 뽑는 등 중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B 승려는 지난해 도박사건이 폭로되자 해당 사찰 부주지에서 물러나고 조계종에서 징계를 받았다.

A씨는 B 승려의 처벌을 원하고 있으며 고발 건과 별개로 직접 B 승려를 고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 ‘도박사건’ 승려, 불교매체 대표 폭행혐의로 고발당해, 동아닷컴, 2013-03-23)

 

 

또 다시 스님의 폭행사건이 일어 난 것이다. 이번에는 민간인에 대한 폭행이다. 그것도 불교계 언론사 대표에게 가해진 무자비한 폭행이다. 이 폭행으로 인하여 이빨이 흔들리고 병원에 실려 가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불교계 내부에서 벌어진 사건을 외부에 알려 메이져 신문에서 보도 하도록 만든 이가 지난해 도박사건을 폭로한 성호스님(멸빈됨)이라는 사실이다. 억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억대도박이라 하여 국민적 분노를 사게 만든 장본이다.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에 고발하여 전국민이 알게 만든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이는 조계종이라는 단체의 성립과 관계가 있다. 멀게는 정화운동 당시부터 시작 되어 가깝게는 현 조계종 집행부의 수장에 이르기 까지 계율이 무너졌기 때문으로 본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담마(, dhamma)이 있고 율(, vinaya)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승가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한 이유는 조계종 수장에 기인하는 문제가 크다. 윗물이 맑지 않으니 아랫물이 맑을 리 없는 것이다.

 

33대 조계종 집행부의 수장은 자승스님이다. 이제 임기를 약 8개월 남겨 두고 있다. 자승스님의 재임기간 동안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큰 사건은 승려도박사건이다. 그리고 이번에 일어난 스님의 재가폭행 사건 역시 메가톤 급이다. 앞으로 또 어떤 대형사건이 터질지 모른다. 그렇다면 자승스님의 임기 중에 왜 이와 같은 대형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일까? 이는 출발부터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출발부터 잘못된 종단 집행부

 

자승스님은 추대된 것이나 다름없다. 정상적인 선거절차를 밟지 않고 야합에 의하여 추대된 것이다. 추대 되었다고 해서 역대 고승들처럼 불자와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스님이 아니다. 선출 당시부터 은처의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9년 33대 총무원장 선출을 앞두고 발표된 교단자정센터의 성명서(獨身 아니면 후보에서 물러나라”)에 잘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이 후보단계에서부터 은처의혹이 제기 되었지만 총무원장이 되는데 있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소위 조계종 내의 정당과 같은 종책모임에서 합의추대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4자 연대라 한다. 중앙종회의 네 개의 종책모임인 화엄회, 보림회, 무차회, 무량회가 합종연횡하여 자승스님을 밀어 주기로 한 것이다.

 

4자 연대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보았을 때 야합이라 한다. 왜 야합인가. 이는 33대 집행부가 구성되고 나서 이들 종책모임의 리더들이 보직을 나누어 가졌기 때문이다. 화엄회의 자승스님이 총무원장, 보림회의 영담스님이 총무부장, 무차회의 원담스님이 기획실장, 무량회의 혜경스님이 사회부장을 맡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왜 4자 연대를 통한 야합을 해야만 했을까. 이는 4자 연대를 주도한 영담스님에게서 알 수 있다.

 

최고의 정치승

 

영담스님은 불교계에서 실세스님으로 통한다. 부천 석왕사 주지로서 불교방송이사장을 15년 째 맡고 있고 동국대 이사도 겸하고 있다. 쌍계사 회주인 고산스님의 상좌이기도 한 영담스님은 스스로 최고의 정치승이라 하였다.

 

지난 2007 MBC시사 프로에서 영담스님의 목따는이야기를 기억한다. 불교정치도 정치이기 때문에 정적을 가차 없이 제거 해야 한다는 뜻에서 목따는 이야기가 나왔다.

 

불교계에서 실세 이었던 영담스님이 법장스님(31대)과 지관스님(32대) 체제하에서 야당생활을 해야만 했다. 선거에서 이변이 번번히 일어 났기 때문이다. 자신이 미는 후보가 번번히 고배를 마신 것이다. 그래서일까 33대 집행부에서만큼은 확실히 이기기 위한 방편으로서 화엄회 리더인 자승스님을 옹립하는 4자 연대를 출범시킨 것이다. 그 결과 90% 이상의 지지를 받아 총무원장이 선출 되어 자신은 수석부장으로서 2인자가 되었다.   법장스님과 지관스님하의  수 년에 걸친 야당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러나 영담스님이 주도한 4자 연대는 선거를 무력화 시켰다. 하나마나한 총무원장 선거로 전락한 것이다. 그래서 은처의혹을 받는 총무원장이 탄생되었고, 도박사건이 터지고, 총무원장이 과거에 룸살롱 출입한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기도 하였다. 그결과 불교계는 부패한 집단, 타락한 집단으로 국민들에게 깊이 각인 되었다. 이 모두가 야합에 따른 비정상적인 선거절차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본다.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 역시 혼탁해진 것이다.

 

스님의 자리가 아무리 걸림이 없는 삶을 사는 자리라 하지만…”

 

아랫물에 해당되는 도박승이 재가불자를 폭행하였다. 이에 사부대중연대회의에서는 성명을 발표 하였는데, 의연스님의 자진 속퇴를 촉구하는 성명이라 한다. 여기서 속퇴(俗退)’란 승복을 벗고 세속으로 돌아 가는 것을 말한다. 더 이상 승복 입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명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사부대중은 어느 스님의 말을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스님의 자리가 아무리 걸림이 없는 삶을 사는 자리라 하지만 막행막식을 해도 되는 것인가? 인천(人天)의 사표(師表)로서 큰 뜻을 세우고 출가를 했으면, 그 자리에 맞는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부대중연대회의의 성명서 , 폭행하는 범계 승려–사부대중은 이상 용납할 없다!, 미디어붓다, 2013-03-22)

 

 

 

사진 : 미디어붓다

 

 

 

범계행위를 저지른 스님에 대하여 더 이상 인천의 스승으로 모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 속퇴하고, 최고책임자인 자승총무원장스님의 공개사과와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실현 되지 않을 경우 보시거부, 삼배거부 등 승풍진작을 위한 대대적인 제2의 정화운동을 펼칠 것을 천명한다고 하였다. 전에 볼 수 없었던 대단히 강경한 성명서이다.

 

걸림없이 살 줄 알라

 

성명서에서 스님의 자리가 아무리 걸림이 없는 삶을 사는 자리라는 말이 눈에 띈다. 걸림 없이 사는 사람들이 스님인 모양이다. ‘걸림없이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걸림없이 사는 것에 대한 유명한 게송이 있다. 잡보장경에 걸림없이 살 줄 알라라는 다음과 같은 게송이다.

 

 

걸림 없이 살 줄 알라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자기가 아는 대로 진실만을 말하며,
주고받는 말마다 악을 막아,
듣는 이에게 편안함과 기쁨을 주어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제 몸 위해 턱 없이 악행하지 말고,
핑계대어 정법을 어기지 말며,
지나치게 인색하지 말고,
성 내거나 질투하지 말라.

이기심을 채우고자 정의를 등지지 말고,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라.

이익을 위해 남을 모함하지 말라.

객기 부려 만용하지 말고,
허약하여 비겁하지 말며,
지혜롭게 중도의 길을 가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모습이니,
사나우면 남들이 꺼려하고,
나약하면 남이 업신 여기나니,
사나움과 나약함을 버려 중도를 지켜라.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님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임금처럼 위엄을 갖추고,
구름처럼 한가로워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
사자처럼 두려워 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라.

때와 처지를 살필 줄 알고,
부귀와 쇠망이 교차함을 알라.
이것이 지혜로운 불자의 삶이니라.

 

(잡보장경)

 

 

불자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감동적인 게송이다. 도를 이루어 깨달은 자의 호연지기와 무애행에 대한 찬탄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 어디에도 막행막식 하며 살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계율을 지켜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걸림없는 삶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박승, 폭행승은 자신의 성질대로 사는 것이 걸림없는 삶인 것처럼 보여 진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삶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 같은 삶이다. 도박승, 폭행승에게 있어서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삶, 막행막식이 걸림 없는 삶처럼 보인다.

 

어떻게 해서 스님이 되었을까?

 

도박승, 폭행승, 은처승 등 문제있는 스님들은 어떻게 해서 스님이 되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부모형제와 인연을 끊고 세상과 인연을 끊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출가자에게서 국민의 도덕적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행위를 보면 출가자의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출가하여 가사장삼을 걸치면 인천의 스승이 된다고 하는데, 스승은 커녕 범죄자와 다름 없는 행위를 보면 승가사회가 고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상처 받은 사람들

 

불교방송이나 불교TV에서 스님들의 출가동기에 대하여 종종 듣는다. 아마도 불자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관심사일 것이다. 그런 출가동기는 천차만별이다. 사람 얼굴 다르듯이 출가동기 모두 다르다. 그러나 공통적인 사항이 있다고 한다. 출가동기를 연구하는 어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출가자들 대부분이 상처 받은 사람들이라 한다. 세상에서 상처 받아 출가자가 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깊은 산중에 홀로 사는 스님들이 많은 것 같다.

 

양가의 자제들(kulaputta)

 

그러나 빠알리 니까야에 따르면 이와 다르다. 다음과 같은 정형구가 이를 잘 말해 준다.

 

 

그는 오래지 않아, 그러기 위해 양가의 자제들이 당연히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듯이, 그 위없는 청정한 삶을 바로 현세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 그는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을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곧바로 알았다.(S6:3)

 

 

부처님 당시 출가한 이유는 분명하다. 괴로움을 종식하고 윤회를 끝내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였다고 하는데, 경을 보면 양가의 자제들이라는 말이 나온다. 양가의 자제라는 빠알리어가 꿀라뿟따(kulaputta)인데 이는 좋은 가문의 젊은이(young man of a good family)’라는 뜻이다. 물론 부처님의 교단에 사성계급의 구분 없이 평등하였지만, 경에서는 잘 교육받은 양가집 자제들이 출가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본래 출가의 목적을 달성한 것에 대하여 아라한 선언으로 표현하고 있다.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것이 어떨까?”

 

이와 같이 부처님의 제자들의 출가 목적은 윤회의 종식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랏타빨라경(M82)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경에 따르면 랏타빨라는 훌륭한 가문의 아들(Kulaputta)이다. 어느 날 부처님이 꾸루 족의 도시 툴라꼿티따에서 설법을 하였는데, 이를 지켜 본 랏타빨라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랏타빨라]

세존께서 가르치신 가르침을 알면 알수록, 재가에 살면서 궁극적으로 원만하고 궁극적으로 청정하고 소라껍질처럼 잘 연마된 청정한 삶을 살기가 쉽지 않다. , 나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것이 어떨까?

 

(랏타빨라경-Raṭṭhapālasutta, 맛지마니까야 M82, 전재성님역)

 

 

부처님의 궁극적 가르침인 해탈과 열반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재가의 삶이 쉽지 않기 때문에 랏타빨라는 출가를 결심한다. 그러나 부모님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세 번이나 이야기해도 허락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아들 랏타빨라야

 

그럴 때 마다 부모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랏타빨라의 부모]

“사랑하는 아들 랏타빨라야, 너는 우리에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너는 안락하게 살고 안락하게 성장했다. 너는 어떠한 괴로움도 모른다. , 사랑하는 아들 랏타빨라여, 먹고 마시고 놀고 감각적인 쾌락을 향수하고 공덕을 쌓으며 즐겨라. 우리는 네가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네가 죽었다고 해도 우리는 너 없이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물며 살아있는 네가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것을 허락하겠는가?

 

(랏타빨라경-Raṭṭhapālasutta, 맛지마니까야 M82, 전재성님역)

 

 

어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랏타빨라의 부모 역시 랏타빨라가 세상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공덕을 많이 지어 천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조건부 출가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랏타빨라는 출가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자 부모는 친구를 통하여 설득한다. 그래도 안되자 랏타빨라 부모는 조건부 출가를 허용한다. 친구가 부모에게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것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그에게 달리 길이 있겠습니까? 그는 반드시 여기로 돌아올 것입니다.”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랏타빨라의 출가이유

 

가장 부유한 장자의 아들이자 훌륭한 가문의 아들인 랏타빨라는 마침내 출가를 하게 되었다. 그런 랏타빨라의 출가에 대한 게송이 있다.

 

 

내가 세상에 부유한 사람들을 보건대

어리석어 재산을 얻어도 보시하지 않으니

탐욕스러워 재물을 쌓아두고

점점 더 감각적 쾌락을 열망합니다.

 

왕은 폭력으로 땅을 정복하고

바다에 이르기까지 전국토를 다스리며,

바다의 이쪽에 만족하지 않고

바다의 저쪽마저도 갖길 원합니다.

 

왕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갈애를 떨치지 못하고 죽음을 맞아

불완전한 채로 몸을 버리니.

세상의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친지들은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고

‘오! 나의 사랑하는 자는 죽었다.’라고 울부짖지만

수의로 그를 감싸서 운반하고는

장작더미를 모아 그곳에서 불태웁니다.

 

재산은 버려지고, 한 벌 수의만 입혀지고

불 꼬챙이에 찔리며 불태워지니

죽어 가는 자에게는 친족도

벗들도 친구들도 피난처가 되지 않습니다.

 

상속자가 그 재산을 가지고 가고

사람은 그 행위를 따라서 저 세상으로 가니

죽은 자에게 재산이 따라다니지 않으니

처자도 재산도 땅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돈으로 장수를 얻지 못하고

또한 재산으로 노쇠를 면할 수 없네.

인생은 짧고 무상하고

변화하는 것이라고 현자는 말합니다.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죽음과 만나고

현명한 자나 어리석은 자도 그렇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 어리석음에 얻어맞아 누웠으나

현명한 자는 죽음과 만나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재산보다 탁월하고

지혜로 궁극적인 목표를 이룹니다.

생에서 생으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자는 악행을 저지릅니다.

 

모태에 들어 저 세상으로 가니

다른 곳에서 다른 곳으로 윤회합니다.

적은 지혜로써 그것을 신뢰하는 자

모태에 들어 저 세상으로 갑니다.

 

마치 도둑이 강도에 사로잡혀

악한 행위에 괴로워하듯이

사람들은 죽은 후에 다음 세상에서

악한 행위로 괴로워합니다.

 

감미롭고 즐거운 다양한 감각적 쾌락이

여러 가지 형색으로 마음을 교란시키니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묶임에서 위험을 보고

왕이여, 나는 출가를 택했습니다.

 

마치 과일이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청년이건 노인이건, 몸이 부수어지면 떨어지니

왕이여, 이것을 보고 출가했습니다.

진실한 수행자의 길이 보다 탁월합니다.

 

(랏타빨라경-Raṭṭhapālasutta, 맛지마니까야 M82, 전재성님역)

 

 

이것이 유명한 출가에 대한 게송이다. 이 랏타빨라의 출가게송에 영향을 받아서 지금까지 수 많은 사람들이 출가하였다고 한다. 과연 우리나라 스님들도 랏타빨라와 같은 출가이유를 가지고 출가하였을까?

 

 

 

2013-03-2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