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간화선으로 견성성불했다고? 조사불교의 한계
식자우환(識字憂患)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 했던가, 아는 것이 탈이다. 불교에 대하여 좀 아는 사람이 보았을 때 선사들의 법문에 자꾸 허점이 보이는 것이다. 차라리 모르면 그러려니 하고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부처님의 일생을 조금이라도 아는 불자라면 도저히 묵과 할 수 없는 법문이 많다. 현 조계종 종정으로 있는 진제선사의 법문도 그렇다.
부처님이 견성성불했다고?
불교신문 사이트에서 제공되는 기사에 따르면, 진제종정스님은 조계사에서 열린 간화선 대법회의 입제 법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전한다.
진제 스님은 간화선은 붓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수행법이며, 이 수행법이 오직 한국불교에서만 재현되고 있다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24일 간화선대법회서 입제법문, 불교닷컴 2013-04-24)
간화선 대중화와 수좌 복지를 위한 ‘간화선대법회’가 4월 24일부터 5월 2일까지 열리는데, 4월 24일 입제법회에서 진제종정스님이 한 말이라 한다.
스님의 말에 따르면 부처님을 깨달음으로 이끈 수행법이 ‘간화선’이라 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견성성불’이라 하였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불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스님의 법문만을 믿고 따르는 불자라면 그대로 받아 들일 것이다. 대게 교리에 대하여 모르고 무지한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견성성불론은 ‘부처님의 일생’만 읽어 보아도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스님이 이야기하면 불자들은 햇갈린다. 스님을 승보로 생각하여 스님을 믿는 불자들은 스님이 하는 말이라면 모두 진실로 받아 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을 아는 불자들이 보았을 때 혼란을 부추기는 말로 받아 들인다.
남진제 북송담
거의 매일 불교방송을 듣는다. 주로 아침시간이다. 또 글을 쓰다보면 불교TV사이트에 접속하여 스님들의 법문을 듣는다. 그런데 법문은 스님들이나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 같다. 백퍼센트 스님이 법사이고 스님의 법문만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스님들이 법문중에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정형구가 “배고프면 먹을 줄 알고~”로 시작 되는 법문이다. 이를 편의상 ‘배고프면 법문’으로 칭하였다. 이런 정형구가 나오면 예외 없이 “이 몽뚱이 끌고 다니는 소소영영한 이놈이 무엇인고?”라는 문구이다. ‘이뭐꼬’ 화두이다. 또는 “어째서 무자로 했는고?”라는 무자 화두가 있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꼬?”라고 하는 판치생모 화두도 있다.
이들 화두를 참구 하는데 있어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알 수 없는 의심’이다. 이치를 따지거나 책을 보거나 머리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방송 불교강좌 시간에 송담선사는 “아~알 쑤 없는 의심으로~”라고 의성어로 말한다. 그런 송담스님의 법문은 현재 2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것도 1990년대 녹음된 녹음 테이프를 틀어 주고 있다.
송담선사의 법문은 정형화 되어 있다. 사찰의 신도를 대상으로 한 법문이다 보니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하는 식이다. 그래서 법문을 들어 보면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알 수 있다. 마치 녹음기를 틀어 놓듯이 하던 이야기를 반복하는데, 그 때 마다 하는 이야기는 간화선이 최상승법이고, 간화선으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고,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견성성불이라 하였다. 진제스님의 법문과 똑 같은 내용이다. 그래서 ‘남진제 북송담’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삼처전심(三處傳心)
또 한가지 진제스님이 법회에서 언급한 것이 삼처전심 (三處傳心) 이다. 삼처전심이란 불교의 조사선(祖師禪)이 교외별전(敎外別傳)되었다는 근거가 되는 설(說)을 말한다.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이련하반곽시쌍부(泥連河畔槨示雙趺) 이렇게 세 가지를 말한다.
종정스님은 부처님이 삼처전심을 통해 최상승의 진리의 세계를 열어 보이셨고, 이러한 견성법으로 법을 전하신 이라고 강조 하였다고 한다.
대체 어디까지 진실일까?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갈 수 있지만 ‘부처님의 일생’을 알고 있는 불자라면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빠알리 니까야가 우리말로 번역되어 유통 되고 있는 마당에 마치 설화 같은 이야기가 먹혀 들어 갈까?
삼처전심 중에 ‘곽시쌍부’가 있다. 이는 ‘대열반경’ 다비품(茶毘品)에 근거한 것으로, 부처님이 열반에 들어 입관된 뒤 멀리서 온 가섭존자가 이를 슬퍼하며 울자 석가가 두발을 관 밖으로 내놓으며 광명을 놓았다는 것이다. 선종에서는 이들 삼처전심을 교외별전의 유일한 근거라 하여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오로지 한역 아함경만 유통 된다면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있다. 그러나 아함경 보다 먼저 성립되었고 부처님 열반 당시부터 구전 되어 온 빠알리 니까야와 비교하면 잘못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것일까?
부처님이 두 발을 내미셨다?
곽시쌍부와 관련된 구절에 대하여 한역 아함경과 빠알리 니까야 번역 본을 비교 해 보면 다음과 같다.
구 분 |
열반경 곽시쌍부 관련 내용 |
비 고 |
한역 아함경 (대반열반경) |
대가섭은 향더미로 향해 걸어갔다. 바로 그때 부처님께서 겹곽 속에서 두 발을 내미셨는데, 발에 이상한 빛이 있었다. |
(부처님이)두 발을 내미셨다. |
빠일리 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경, D16) |
그 후 존자 마하깟싸빠가 꾸씨나라 시의 마꾸따반다나라는 말라족의 탑묘에 세존의 화장용 장작더미가 있는 곳으로 찾아 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한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합장하여 세 번 화장용 장작더미를 오른 쪽으로 돌아, 하단부를 열고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렸다. |
(마하깟사빠가)두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렸다 |
두 경전을 비교해 보면 정반대의 내용임을 알 수 있다. 한역아함경에서는 부처님이 두 발을 내민 것으로 되어 있고, 빠알리 니까야에서는 깟사빠존자가 두 발에 예배를 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처님의 원음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유통되고 있는 시대에 진제종정스님은 마치 설화 같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
웃자고 하는 소리인가
진제선사의 법문을 들어 보면 중국 조사스님들이 설한 이야기 위주임을 알 수 있다. 간화선, 견성성불, 삼처전심 등 선가에서 회자 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정보통신과 인터넷이 발달된 글로벌시대에 옛날 방식대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에 대하여 불자네티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기사의 에 대한 댓글중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1)사기의 종말
아래에 올린 글들을 보니 별로 그릇된 말이 없는 것 같네. 이제 먹물옷 입고 사기칠 수 있는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 가는구나.
무슨 수좌복지사업이라고 했나요. 전국에 그 많은 절들은 어찌하고 또 수좌들의 노후복지를 염려하나벼. 이것 참, 말세는 말센가 벼.
三處傳心이라고 했나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져. 그러면 경전은 다 헛소리인가 벼.
(수좌친구)
2) 사실에 입각한 법문을 해야.....
염화시중등의...
삼처전심은 중국에서 당나라 때에 선종의 선승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종파주의적 입장에서..자기들의 우수성을 자랑하여 화엄종등 타종파를 압도하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조작한 것이다.
이처럼...
사실이 아니 것을 마치 사실인양 호언하는 것도 일종의 망언이다.
대중을 오도하는 것이다.
그것이...종정의 위치에서 서슴없이 나오는데에 한국불교의 근본적 문제가 있다.
(서광)
3) 가끔은
한국불교의 큰스님들이라고 하는 분들.. 부처님 생애라도 제대로 알고 있는지. 팔상성도 그림만 가지고 배우시지는 않았는지 의심이 갑니다. 부처님 생애만 깊이 공부해도 법문하시는 내용들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듭니다.
(가끔은)
4) 완전히 웃찻사이구먼
진제 스님은
“산승이 도를 이루고 나서 살펴보니 부처님의 최고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간화선 수행법이 아니고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부처님 세존은 도를 이루고 나서 8정도를 가르쳤다지 아마...
부처님제자 진제가 부처님보다 더 훌륭한것처럼 지 멋대로 가르키고 있으니
이건 완전 막장 드라마지
...웃찻사인가?
코메디하는데 따라 웃고 있어야겠지..만약 욕하면 웃자고 한 소리인데 죽자고 달려든,.
(웃찻사)
5) 좀 제대로 웃깁시다
간화선이 곧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수행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웃기는 겁니다.
그리고 자신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고요.
요즘은 이래저래 개그가 대세인 시대가 되었군요.
(개그시대)
(출처: “선방 관법 수행 유감…새 정부 믿어라”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24일 간화선대법회서 입제법문
“간화선으로 평화 얻어야…세계화 주력, 인류행복에 기여”, 불교닷컴 2013-04-24)
익명을 전제로 한 댓글이어서 거친 표현이 많지만 거의 대부분 비판적이다. 비판 받는 이유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불자들이 알고 있는 것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차라리 불교에 대하여 모르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갈 수 있지만 부처님 일생정도는 알기에 ‘웃자고 하는 소리’라든가 ‘개그’로 보는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도 한국불교를 대표 하는 종정스님이 법문한 내용에 대하여 비아냥거리고 심지어 ‘사기’라 표현하는 것일까? 대체 선이 무엇이길래.
부처님을 초조(初祖)로 하여
선의 가르침은 독특하다. 그 구조나 정체성이 전통적인 불경에 의지하기 보다 부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인도 조사들을 거쳐 오늘날까지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져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적인 전달을 매우 중요시 한다. 그 중요한 연결고리가 보리달마, 흔히 달마대사라 한다.
동아시아에서 선은 보리달마로부터 시작 되었다. 선종에 따르면 보리달마는 인도의 마지막 조사라 한다. 6세기경 중국으로 건너와 선을 창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그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이심전심, 마음에서 마음으로 부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이 전승되어 왔다고 한다. 그래서 6조인 혜능선사까지 이어져 오다 다양한 종파로 나뉘게 된다.
그런데 임제법맥을 잇고 있는 한국불교에서 진제선사는 79대 법손이라 한다. 왜 79조가 되었을까? 이는 중국 11세기 송나라 시대 도원이 지은 경덕전등록 (景德傳燈錄) 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처님을 시조로 하여 2조 대가섭, 3조 아난 등 인도조사 28조가 있다. 그런데 보리달마가 인도로부터 중국으로 법맥을 전수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보리달마가 29조가 된다. 그리고 중국선종의 6조 혜능은 33조가 된다.
이렇게 사자상승으로 전승된 법맥은 태고보우선사에 의하여 우리나라로 건너 오게 된다. 그런데 태고보우선사가 57조라 한다. 이후 서산대사가 63조이고, 근세에 이르러 75조를 경허선사라 하고 76조를 혜월명월, 77조를 운봉성수, 78조를 향곡혜림이라 한다. 진제선사는 향곡선사로부터 법을 전수 받았기 때문에 79조가 되는 것이다.
79대 법손 진제선사
이렇게 부처님을 시조로 하여 진제선사에 이르기 까지 79대에 걸쳐서 이심전심, 마음에서 마음으로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이 전승되어 왔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진제종정스님은 이날 입제법회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였다고 한다.
진제 스님은 “산승이 도를 이루고 나서 살펴보니 부처님의 최고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간화선 수행법이 아니고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며 “불가에는 기도, 염불, 주력, 위파사나 관법수행 등 여러 수행법이 있지만 다들 근기에 따른 방편의 수행일 뿐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전하여 내려온 최상의 수행법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고 법문했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24일 간화선대법회서 입제법문, 불교닷컴 2013-04-24)
진제선사는 부처님이 깨달은 최고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였다. 그런 깨달은 오로지 간화선으로만 가능하고 위빠사나 등 다른 수행방법은 방편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진제선사는 부처님이 깨달은 최고의 진리가 다름 아닌 견성성불이라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자신이 부처님의 법손임을 말한다. 부처님으로부터 시작 하여 가섭에게 전승된 최고의 진리가 삼처전심형식으로 자신에 이르기 까지 전승되었음을 말한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이 깨달은 바를 이야기 하였다. 이런 내용이 한글판 위키피디아에 실려 있다.
구구는 팔십일(9X9=81), 육육은 삼십육(6X6=36)
78대 조사라 불리우는 향곡선사로부터 깨달음에 대한 인가이야기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인가와 전법
그 후 스님의 세수 33세이던 1967년, 하안거 해제 법회시에 묘관음사 법당에서 향곡 선사와 법거량(法擧揚)이 있었다. 향곡 선사가 상당(上堂)하여 묵좌(黙坐)하고 있는데, 진제스님이 나와 물었다.
"불조(佛祖)께서 아신 곳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불조께서 아시지 못한 곳을 스님께서 일러 주십시오."
"구구는 팔십일이니라."
이에 스님이,
"그것은 불조(佛祖)께서 다 아신 곳입니다." 하니, 향곡 선사는
"육육은 삼십육이니라." 라고 하였다.
이에 스님이 예배드리고 물러가자, 향곡 선사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내려와서 조실방(祖室房)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스님이 조실방을 찾아가 예를 올리고 다시 묻기를,
"불안(佛眼)과 혜안(慧眼)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안목(眼目)입니까?" 하니, 향곡 선사가 말했다.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師姑元來女人做〉"
그러자 스님이,
"오늘에야 비로소 큰스님을 친견하였습니다." 하니, 향곡 선사가 물었다.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느냐?"
"관(關)."
그러자 향곡 선사는, "옳고, 옳다." 하였다.
진제스님은 여기에서 향곡 선사로부터 임제정맥(臨濟正脈)의 법등(法燈)으로 부촉(付囑)받고 전법게(傳法偈)를 수(受)했다.[2]
付眞際法遠丈室(부진제법원장실) 진제 법원 장실에 부치노라
佛祖大活句(불조대활구) 부처님과 조사의 산 진리는
無傳亦無受(무전역무수) 전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라
今付活句時(금부활구시) 지금 그대에게 활구법을 부촉하노니
收放任自在(수방임자재) 거두거나 놓거나 그대 뜻에 맡기노라.
(진제선사, 한글 위키백과)
진제선사가 스승인 향곡선사로부터 인가를 받는 장면이다. 구구는 팔십일(9X9=81), 육육은 삼십육(6X6=36)은 구구단이다. 이런 구구단이 선문답으로 등장하고 있다. 보통사람들이 들어서는 알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 ‘사고원래여인고(師姑元來女人做,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라는 말 한마디를 듣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향곡 선사로부터 임제정맥(臨濟正脈)의 법등(法燈)을 이어 받는 전법게를 받았다고 한다.
깨달음 인증서, 전법게(傳法偈)
향곡선사가 78조이니 임제선사는 79조가 되는 것이다. 향곡선사가 내린 전법게를 보면 “부처님과 조사의 산 진리는 전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라”라 하였고, 이어서 “지금 그대에게 활구법을 부촉하노니”라 하여 부처님으로 시작 된 법이 전승되었음을 선언 한 것이다.
이렇게 문자로 기록된 증서에 대하여 진제선사는 “이게 있어야 많은 사람의 (잘 들리지 않음)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깨달았다는 인증을 확인서입니다. 이게 있어서 인자 진짜 선지식이고 바른 지도를 할 수 있습니다. (<특집>조계종 13대 종정 진제 법원 대종사에게 듣는다, 불교TV-2012-03-09)”라고 하였다. 일종의 ‘깨달음 인증서’를 스승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3조 승찬대사는 가공인물이다!
진제선사는 스스로 깨달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스승인 향곡선사로부터 깨달음에 대하여 인가 받았다고 하였다. 그래서 시조인 부처님으로부터 인도와 중국의 역대 조사를 거쳐 우리나라 조사에 이르기 까지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이 지금까지 면면히 전승되어 왔음을 강조 하고 있다. 그런 부처님의 진실한 깨달음은 다름 아닌 견성성불이라 한다. 또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수행방법이 간화선이라 한다. 그래서 간화선이야말로 가장 수승한 수행법이고 최상승법이라 한다.
그러나 불교 TV에서 본 로버트 버스웰 교수의 강의에 따르면 조사간의 승계는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중국 6조, 즉 달마-혜가-승찬-도신-홍인-혜능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에서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버스웰 교수의 동영상 강의를 캡쳐 하였다. 6조와 관련된 승찬대사이야기이다.
(버스웰특강, 승찬대사관련 부문, 동국대)
캡쳐된 동영상 강의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조사간 승계의 사실관계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사실 엄밀히 따져 실제가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법맥이 사실이라면 도신과 홍인은 6대조를 통해 달마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혜능이지요. 육조입니다.
문제는 달마대사와 그의 후계자이자 첫 번째 중국조사인 2대 혜가가 후대의 동산법문의 도신, 홍인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초기 선종사에 있어 별개의 갈래입니다. 나중에 선불교는 여기에 3대조를 끼워 넣습니다. 이름은 별로 중요치 않지만 승찬대사입니다.
승찬이 실제 존재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이 두 갈래를 연결하기 위해 조사목록에 끼워진 이름일 뿐입니다.
(버스웰특강<원효의 화쟁사상, 아시아에서 한국불교의 세계화>, 제17회 원효의 화쟁사상, 아시아에서 한국불교의 세계화 17, 27분40초에서~30분까지, 불교TV 2011-09-21)
참으로 놀라운 내용이다.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상식을 뒤집어 엎고 있다. 일반적으로 불자들이 알고 있는 상식은 보리달마(초조)로부터 시작하여 혜가(2조), 승찬(3조), 도신(4조), 홍인(5조), 혜능(6조)으로 이어지는 선종의 법맥에 대하여 역사적 사실로 믿었다. 그런데 버스웰 교수의 강의에 따르면 3조 승찬은 ‘가공인물’이라는 것이다. 단지 동산법문의 대표되는 도신과 홍인을 보리달마와 혜가와 연결시켜 주기 위한 연결고리로 승찬이라는 3조를 만들어 조사목록에 슬쩍 끼워 넣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보통불자가 한다면 틀림없이 승가모독이라 할 것이다. 더구나 근거도 없이 말하였을 경우 믿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석학이 이야기 하였다면 말이 달라진다. 학자의 권위가 있기 때문에 받아 들여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영상을 캡쳐 하여 올리게 된 것이다.
승찬대사는 가공인물일까?
그렇다면 정말로 승찬은 가공인물일까? 승찬을 키워드로 하여 검색을 하여 보았다. 다음과 같은 설우스님의 글을 발견하였다.
승찬 스님에 관한 자료는 많지 않다. 하북성 출신이라는 것 외에 속성과 출생연도는 현재까지 미상이며, 행적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나병을 앓다가 2조 혜가 스님을 찾아왔고, 그 자리에서 크게 깨달은 뒤 이곳 천주산에서 수행을 하며 법을 펴다가 열반에 들었다는 기록, 그리고 중도의 법을 설한 <신심명>을 저술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승찬 스님이 실존인물인가에 대한 논란도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승찬 스님이 실존인물임은 분명하다.
( 【선원장, 선의 원류를 찾다】 3조 승찬대사 : 천주산 삼조사, 설우스님, 부다피아 )
부다피아에 실린 설우스님의 글이다. 중국 선의 원류 순례에서 3조 승찬대사가 주석한 천주산 삼조사에서 느낀 소감문이다. 글에서 설우스님은 승찬대사가 실존인물인 아닌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신심명이라는 선어록을 남긴 것 외에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존인물이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학자들은 승찬에 대하여 실존인물이 아니라 조사목록을 만들기 위해서 끼워 넣은 가공인물이라 한다. 2조 혜가(487~593)와 4조 도신(580~651)사이의 간격은 길다. 각격도 길 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 서로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보를 만들기 위하여 그 사이에 3조 승찬을 만들어 끼워 넣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계보를 중요시하는 선종
그렇다면 선종에서는 왜 이토록 계보를 중요시하였을까. 이에 대한 또 하나의 논문이 있다. 심재룡 교수가 작성한 논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전통적으로 선불교는 깨달음을 얻은 스승과 제자간의 共生的인 관계를 중요시해 왔다. 그러한 관계는 스승의 의발이 그의 제자에게로 전달되는 과정을 통해 상징적으로 그려진다.
중국 선불교에 조사들의 전기를 연구한 이들은 석가모니와 그의 제자인 마하가섭 이후로 이어진 인도의 28대 법계를 이른바 '이심전심의 역사'인 '전법기'로 조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보리달마와 혜가를 거쳐 6조 혜능에 이르기까지의 계보는 11세기에 와서야 완성된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이천 오백년 동안의 복잡한 불교의 역사 속에서 그들, 즉 선종의 독자성을 근거짓기 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 선종의 선사들도 전법관계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현대 한국불교 頓漸論의 비판적 小考, 심재룡 서울대 교수)
심재룡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조사계보를 만든 것은 선종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중국에서 발생된 선종이 시조를 석가모니 부처님에 둔 것은 선종의 정통성과 독자성을 근거 짓기 위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작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인지가 발달되고 정보가 오픈되고 공유화 됨에 따라 날조된 것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심재룡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철은 태고로부터 자신에게로 이어지는 한국 선불교사에 완벽한 이심전심의 역사를 자신만만하게 주장했다.”라고 비판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조작이라고 알고 있는데도 선사들은 삼처전심과 같이 이심전심으로 법이 자신에게 전승되어 왔다고 강변한다는 것이다.
“한국불교 큰일 났습니다”
조계종 종정자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자리이다. 그런 자리에 있는 진제스님이 부처님이 깨달은 것이 견성성불이고, 간화선 수행으로 깨달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간화선 만이 최상승법이고 위빠사나 등 나머지 수행법은 모두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거의 대부분 선사들이 이런 식으로 법문한다.
선사들이 이와 같은 말을 할 때 마다 부처님의 일생에 대하여 한 번이라도 읽어 보았는지 의문이다. 또 초전법륜경에 대하여 아는지 궁금하다. 만일 알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였다면 모순이다. 그리고 위선과 거짓이 된다. 만일 모르고 그런 말을 하였다면 한국불교 망신이다.
모든 정보가 오픈되고 공유되는 인터넷시대이다. 그리고 교통의 발달에 따른 글로벌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불자들은 물론 알만큼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중에서먼 사는 선사들의 법문을 듣다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 뿐이다. 그런 법문을 듣고 감명을 하기는커녕 ‘우스개’ 또는 ‘개그’로 받아 들이는 것이 현실이다. 법문을 하면 할수록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것이다.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따르지 않을 때 불법은 쇠퇴한다고 하였다. 엉뚱한 소리처럼 들리는 산승의 법문에 한국불교의 위기를 느낀다. 진제종정스님의 법문을 들으니 어느 스님의 말대로 “한국불교 큰일 났습니다”라는 말이 떠올려 진다.
2013-04-25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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