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Only don’t know!(오직 모를 뿐)”, 2013년 부처님오신날의 화계사

담마다사 이병욱 2013. 5. 18. 12:11

 

“Only don’t  know(오직 모를 뿐) , only doing it(오직 할 뿐)”, 2013년 부처님오신날의 화계사

 

 

 

부처님오신날, 불자라면 누구나 되새겨 보는 날이다. 그래서 다니는 절이나 가까운 절을 찾는 것이 보통이다.

 

부처님오신날 오후 화계사를 찾았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화계사는 지난 2007년 부처님오신날 방문한 적이 있다.

 

2007년 부처님오신날에

 

2007년 당시 비오는날의 부처님오신날 삼각산 화계사(2007-05-24)’라는 제목으로 기록을 남겼다. 그때 당시 방송에서는 아침부터 강한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하루종일 쏟아지고 거기에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뇌전도 예상되니 외출할 때 각별히 조심하라라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있었다. 그래서 불교도들의 최대잔치인 부처님행사가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치루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그런 면으로 보면 기상청이 구라청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오전에 가는 빗줄기가 약간 있었을 뿐 이날 오후 2시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오후 늦게 폭우가 내려 일기예보가 100%맞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천주교의 부처님오심을 함께 기뻐합니다

 

화계사 가는 길에 눈여겨 본 것이 있다. 그것은 화계사와 인근 종교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화계사 사거리길에 있는 수유동성당에는부처님오심을 함께 기뻐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레카드가 걸려 있고, 한신대학교에는 부처님 오신날 함께 기뻐합니다라는 문구가 교정에 걸려 있다. ‘석가탄신일’이라는 말대신 ‘부처님오신날’이라는 불자들이 쓰는 문구가 걸린 것이 이채롭다.

 

 

 

 

 

 

 

 

 

 

 

 

오일장과 같은 분위기

 

화계사 사거리에서 화계사 일주문 사이에 있는 길은 노점으로 가득하다. 마치 잔칫날 같은 분위기이다. 부처님오신날과 관련 있는 듯이 보이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 임시로 장이 서는 것 같은 분위기이다. 각종 먹거리에서 부터, 농산물, 특산물, 의류에 이르기 까지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오일장 같은 분위기 이다. 아마도 부처님오신날이라 사람이 많이 몰릴 것을 예상하여 장이 선 것이라 볼 수 있다.

 

 

 

 

 

 

 

 

 

 

학교운동장이 주차장으로

 

화계사길로 수 많은 사람들이 올라 간다. 대부분 불자들이다. 점점 가까이 갈수록 일주문이 점차 다가 온다. 일주문 바로 옆에는 화계중학교가 있다. 그래서 화계중학교를 비롯하여 수유중학교와 초등학교 운동장이 이 날 하루 만큼은 주차장으로 변한다.

 

 

 

 

 

 

 

 

 

 

 

 

 

 

 

 

 

 

국제불교도기(The Buddhist flag)

 

일주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화계사 경내에 진입하게 된다. 불과 100여미터 되는 평탄한 길이다. 길 옆에는 국제불교도기(The Buddhist flag)가 내 걸려 있다.

 

 

 

 

 

오색으로 되어 있는 국제불교도기는 1880년 스리랑카의 불교를 되살리기 위하여  실바(Mr J.R. de Silva)와 올코트 대령(Colonel Henry S. Olcott)이 함께 디자인 해서 만든 근대의 창작물이라 한다. 그래서 전세계 어느 곳에서나 사원이 있는 곳에 국제불교도기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처님오신날과 같은 큰 행사에서 국제불교도기가 걸려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아직까지 불자들에게 불교도기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것 같다. 오색의 기가 달렸을 때 대체 이런 날 왠 깃발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만()자 대신 국제불교도기를 볼 수 있는 것이 이제 한국불교현실이다. 그렇다면 국제불교도기의 오색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The Buddhist flag

 

 

 

영문위키피디아와  붓다네트 사이트에 국제불교도기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다. 세로로 다섯 가지 색깔이 있는데, 좌로부터 청색(Blue)은 자비(Universal Compassion)를 상징하고, 황색은 중도(The Middle Path), 적색은 축복(Blessing), 백색은 청정과 해탈(Purity and Liberation), 주황색은 지혜(Wisdom)를 상징한다. 그리고 오른 편 끝에 다섯 가지 색이 조합 되어 있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보편적인 것임을 상징한다.

 

붓다네트에 따르면 국제불교도기는 처음에 ‘커널기(The colonel's flag, 대령기)’ 라 불리웠으나 후에 불교도들의 단결을 상징하는 깃발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특히 60개가 넘는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불교도기는 웨삭(Vesak, 부처님오신날)과 같은 불교도들의 행사나 축제가 있을 때 공식적으로 걸린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1950년 결성된 국제불교도연맹(WFB: World Fellowship of Buddhists, 세계불교도우의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주요사찰에서 행사가 있을 때 볼 수 있다.

 

무명가수의 혼신을 다한 열창

 

경내로 들어 가자 가장 너른 마당에서 산사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초청가수가 열창을 하고 있고 대형스크린이 설치 되어 있어서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산사음악회는 이름 있는 절, 규모가 있는 절, 신도가 많이 몰리는 절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오전에 법문을 듣고, 점심공양을 하고 난 다음 오후에 흥겨운 시간을 갖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그래서 조용한 산사가 이날 하루 만큼은 들썩들썩 하는 것이다. 무명가수의 혼신을 다한 열창에 흥이 났던지 일부 사람들은 무대 앞에서 몸을 흔들기도 한다.

 

 

 

 

 

 

 

 

 

 

 

 

 

 

 

 

 

 

북한산 정기 받아~”

 

회계사는 매우 익숙한 절이다. 많이 가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계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듣던 것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를 화계사가 있는 부근에서 다녔다. 화계사 바로 옆이 아니라 삼각산이라 불리우는 북한산이 보이는 곳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는 뜻이다. 서울이 급팽창할 때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신설 초등학교 중의 하나에 다닌 것이다.

 

북한산이 보이는 학교에서 공통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교가에 북한산 정기 받아~”라고 시작되는 문구이다. 부근의 중학교나 고등학교의 교가에 북한산 정기받지 않은 학교가 없을 정도로 교가에 북한산이 언급되어 있다. 그런 북한산 자락에 화계사가 있다. 그러나 그 때 당시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이름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화계사에 처음 간 것은 중학교때이다. 그 때 절이라는 곳을 처음 가 보았다. 아마 중학교 2학년 봄이라 생각된다. 4월 벚꽃이 필 무렵 전학년 그림그리기 대회를 화계사에서 하였기 때문이다. 

 

종립중학교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미술대회가 있었는데 종로5가 부근에 있다보니 주로 그 때 당시 비원이라 불리우는 창덕궁창경원이라 불리웠던 창경궁으로 갔었다. 그런데 2학년 봄의 경우 화계사로 간 것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절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절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 남는 것이 없다. 다시 찾은 화계사를 보니 대웅전과 오래된 전각이 아마 그때도 그 모습 그대로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지금 보는 콘크리트 골조의 웅장한 대적광전 건물은 물론 없었다.

 

다시 찾은 화계사

 

절에 가면 늘 관심을 갖고 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문화재이다. 화계사에도 문화재가 여럿있다. 대표적으로 대웅전을 들 수 있다. 1870년에 지어진 정면3칸 측면3칸 대웅전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65호로 되어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고, 협시불로서 문수와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다.

 

 

 

 

 

 

 

 

 

 

 

 

 

 

 

 

 

 

 

 

염불당과 주지실과 부엌을 겸한 대방(大房)

 

대웅전을 설명하는 글을 읽다가 발견한 것이 있다. 그것은 대방(大房)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한 문구를 보면 조선후기 서울 근교 사찰, 특히 왕실원찰에서는 대방을 갖추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는 염불당과 주지실, 부엌과 누마루를 결합한 건물인데, 화계사 대웅전 앞쪽에도 대방(大房)이 있다.”라고 되어 있다. 대웅전 바로 앞에 있는 T자형 큰 전각이 그것이다.

 

 

 

 

화계사 대방(大房)

대웅전 바로 앞에 있다.

 

 

 

대방은 크기가 상대적으로 넓고 큰 방이라는 뜻이다. 그런 대방이 있는 곳이 왕실사찰의 전형이라 한다. 서울근교에서 왕실사찰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서울 근교의 용주사, 수종사, 흥국사 등이 해당된다.

 

불교와 왕실사찰

 

그렇다면 왜 왕실사찰이 종종 보이는 것일까? 이는 왕실에서 특히 여인들이 불교를 신봉하였을 뜻한다.

 

 

 

 

남양주 수종사 정의옹주 부도탑

태종태후정의옹주의 부도탑으로서 1439년에 왕실의 명으로 건립되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왕이 바뀔 때 마다, 또는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여인들이 의지처로 삼고 있는 것이 절이었기 때문이라 본다. 권력의 지형이 바뀌면 왕비를 비롯하여 궁중에서 살던 여인들이 마땅히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절로 들어 가는 것이 동아시아국가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당나라 시절 당태종이 죽자 당태종을 따르던 여인들이 모두 절로 들어갔다. 그래서 절에서 일생을 마치는 것이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훗날 측천무후라 불리우던 당태종의 비가 그것이다. 측천무후는 당태종의 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태종의 아들인 고종의 눈에 들어 황후가 된 것이다. 이는 케이블TV에서 방영된 측천무후의 일대기 ‘일월능공(日月凌空)’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었다. 일본 시대드라마를 보면 에도시대 장군이 바뀌면 전장군의 정실과 측실이 모두 머리를 깍고 절에 들어가 일생을 보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이는 일본드라마 오오쿠()’에서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조선시대에서도 왕이 바뀌면 왕을 따르던 여인들이 더 이상 궁에 남아 있지 않고 절에서 일생을 보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서울 근교에 왕실원찰이 많이 생겨 난 것으로 본다. 심지어 경남 깊은 산중에 있는 청암사에서도 왕실 원찰을 볼 수 있다. 청암사 보광전 안내판에 따르면 “인현왕후가 조선 숙종 15년(1689)에 장희빈의 무고로 폐위되자 원당으로 겁립된 청암사 보광전이다”라고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주 청암사 보광전

 

 

 

화계사 대웅전 앞에 있는 대방은 조선후기 대원군 시절에 지어진 왕실원찰의 유형이라 한다. 대웅전은 따로 떨어져 있지만 요사체와 염불당, 부엌, 누마루가 함께 있는 구조이다. 그러다 보니 건물이 꽤 크다. 한 건물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로 왕실원찰이 되었을까? 안내판에 따르면 1866년부터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왕실의 시주로 시작 되었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워 서양의 오랑캐와 오랑캐 문화를 배척하는 정책을 폈지만 불교에 대하여 우호적 이었음을 알 수 있다.

 

회계사 대방(大房)

 

현재 화계사 대방은 종무소로도 사용되고 있다. 안을 들여다 보면 매우 너른 방이 보인다. 조선 후기 염불선이 크게 유행 하였을 때 염불당으로도 활용 되었을 것이다.

 

 

 

 

 

 

 

 

 

 

 

 

 

 

 

 

 

 

외국인스님들이 사는 곳 화계사 국제선원

 

화계사는 외국인스님들이 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 불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현각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종종 외국인 스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외국인 스님들이 머무는 곳은 따로 있다. 화계사 바로 옆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화계사 국제선원’건물이다. 이날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외국인들이 열심히 연꽃등을 만들고 있었다. 외국인 스님들은 한 켠에 모여서 유유자적하게 차를 즐기고 있었다.

 

 

 

 

 

 

 

 

 

 

숭산스님의 부도탑

 

화계사하면 숭산스님(1927-2004)을 빼 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해외포교의 개척자라 불리우는 숭산스님이 주석하고 입적하였던 곳이 화계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계사에서 2007년과 다른 것이 있었다. 2007년 당시 많은 사진을 남겼는데, 그때 당시와 비교해 보니 고봉선사의 부도탑위치에 변화가 있었다. 2007년 당시 에는 부도탑이 고봉스님의 것만 있었기 때문이다.

 

 

 

 

2007년 화계사 고봉선사 부도탑

 

 

 

2013년 고봉선사의 부도탑은 화계사 일주문 길 옆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리고 숭산스님의 부도탑과 함께 함께 모셔져 있었다. 그 사이에 새로 부도탑 묘역이 조성된 것이다.

 

 

 

 

 새로 조성된 부도탑

 

 

 

새로 조성된 구역에서 고봉스님의 부도탑은 옛날 그대로이다. 단지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그런데 새로 조성된 숭산스님의 부도탑이 눈에 띄였다.

 

 

 

 

숭산스님 부도탑

 

 

 

둥근 탑형식으로 된 부도탑에는 ‘숭산대종사(嵩山大宗師)’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는 숭산스님의 업적을 기리는 추모비가 새워져 있다.

 

 

 

 

 

 

“Only don’t  know (오직 모를 뿐)”“Only doing it (오직 할 뿐)”

 

추모비 상단에 世界一花라는 문구와 함께 영문으로 “Zen Master Seung Sahn a monument inscription 이르는 문구가 보인다. 또 영문 문구 바로 옆에 “Only don’t  know”“Only doing it”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는 오직 모를 뿐오직 할 뿐이라고 번역된다.

 

이 말뜻은 무엇일까? 검색해 보니 2012 BBS불교방송에서 숭산스님의 외국인 제자인 청안스님의 인터뷰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헝가리 원광사에서 주석하고 있는 청안스님은 숭산스님 가르침의 핵심은 어떤 것인지요? “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Well the key point of Zen master Seung Sahn's teaching was always just “탁“ just this point, which means: return to the mind which is before thinking. Return to don’t know. When this don’t know mind becomes clear, then you can see your situation clearly, your relationship to the situation and your function in the situation.... so this teaching is simple and clear. Not systematic, but there are very understandable and clear lines of cause and effect in it. He didn’t want to create a system. So, it was not too logical, but it is always easy understandable. it`s very intuitive. He also emphasized great courage, great question and great faith.

 

숭산스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항상 “탁” 바로 이것 이었습니다. 즉, 생각이전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뜻입니다. “오직 모를뿐“으로 돌아가라. 이것이 바로 첫 번째 핵심입니다. ”오직 모를뿐“이라는 이 마음이 점점 명확해지면, 여러분의 상황, 여러분의 상황과의 관계, 그리고, 상황 속에서의 작용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으며, 그래서 이 가르침은 간단하고도 명확합니다. 체계적이지는 않으나 매우 이해하기 쉬우며, 명확한 인과관계가 이 가르침에 있습니다. 숭산스님은 체계를 만들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논리적이지 않았고, 항상 이해하기 쉬운 것이었습니다. 매우 직관적이며, 스님께서는 또한 대 용기와, 대 의정, 대 신심을 강조하셨습니다.

 

(청안스님, BBS와 인터뷰-BBS뉴스와 사람들, 2012년6월2일 방송)

 

 

숭산스님이 말한 “오직 모를 뿐”은 간화선에 대한 것이다. 이는 선사들이 말하는 “알 수 없는 의심으로” 라는 말과 동의어로 본다. 화두를 참구하는데 있어서 이치로 따지거나 교리적으로 알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소소영영한 이 놈은 무엇인고?” 라든가, “왜 판치생모라 했을까?” “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은 무엇인고?”라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참구하다 보면 의정이 생겨서 대의단으로 발전하고 마침내 폭발하듯이 화두가 타파 되어 견성성불에 이를 것이라 한다.

 

따라서 “오직 모를 뿐”은 간화선의 삼요체중의 하나인 ‘대의심(大疑心)’을 키워 나가는 것을 말하고, “오직 할 뿐”은 행주좌와어묵동정으로 표현되어 용맹정진하는  ‘대분심(大憤心)’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간화선 삼요체인 대신심, 대분심, 대의심 이렇게 세 가지 중에 “Only don’t  know”는 ‘대의심’에, “Only doing it”은 ‘대분심’에 해당되는 것이다.

 

소원지를 작성하는 불자들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화창한 오월의 날씨에 열렸다. 지난 2007년 비가 오락가락 하여 행사를 망칠까 하는 염려와는 대조적으로 축복받은 날씨에 열린 것이다. 신록이 우거지고 하늘은 청명하고 햇살은 따가웠지만 공기만큼은 상큼한 날씨이었다.

 

 이날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화계사에도 수 많은 불자들의 참배가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원지와 축원문이 작성코너가 있었는데, 작성된 소원지는 별도로 마련된 띠줄에 걸어 놓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소망을 담은 촛불

 

그런가 하면 또 한켠에서는 촛불에 불을 밝히기도 하였다. 연꽃모양의 촛불에 불을 켜고 자신의 소망을 써 넣는 것을 말한다.

 

 

 

 

 

 

 

 

 

 

 

 

 

 

 

 

 

2013년 부처님오신날 화계사에서 불자들의 소박한 바램을 보았다.

 

 

 

 

 

 

 

 

 

 

 

 

 

 

 

 

2013-05-1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