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불교와 이슬람은 상극, 서역의 불교국가 카라코야 왕국(高昌國)

담마다사 이병욱 2013. 6. 11. 17:23

 

 

불교와 이슬람은 상극, 서역의 불교국가 카라코야 왕국(高昌國)

 

(실크로드 불교유적 성지순례 2, 우루무치 박물관, 2013-05-29)

 

 

 

 

우루무치 박물관으로

 

천산천지 관광을 끝내고 우루무치 시내로 향하였다. 우루무치 박물관으로 이동하기 위해서이다.

 

천산천지가 해발 1980미터로서 이천미터 가까이 되어 선선하였으나 우루무치 시내는30도가 넘었다. 그러나 그다지 덥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습도가 낮기 때문이다. 같은 더위라도 습도가 높으면 더 덥게 느껴진다. 그래서 무더위라 한다.

 

그러나 신장지역의 경우 건조한 곳이라서 아무리 날씨가 더워도 습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그늘에만 들어가면 그다지 더운지 모른다. 우루무치 박물관이 있는 시내 역시 그다지 덥지 않았다. 햇볕만 따가울 뿐 습도가 높아 불쾌지수가 높은 날씨는 아니었다. 하늘은 맑고 쾌청한 기분 좋은 날씨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박물관을 많이 보았다. 가는 지역마다 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우루무치, 돈황, 하미, 투루판 모두 박물관이 있다. 그래서 여행의 필수코스가 박물관이다. 이들 박물관 중에 우루무치 박물관이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우루무치가 신장위구르 자치주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이기 때문일 것이다.

 

입체지도

 

박물관에 들어 서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이 홀에 진열된 지형도이다. 중앙홀 가운데 신장지역의 지형이 입체로 전시 되어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전시물을 만들어 놓았을까? 그것은 유물을 보기 전에 지리적 조건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함을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장지역을 잘 모른다. 역사책에서 배운 상식적인 내용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단지 둘러 보는 것으로 그친다. 그러다 보니 100만원 짜리 여행이라면 백만원짜리 경험한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후기를 작성하면 그 가치는 높아진다. 백만원 짜리 여행이 이백만원, 삼백만원 짜리 여행이 되는 것이다.

 

우르무치 박물관에 중앙홀에 전시되어 있는 입체 지도는 매우 인상적이다. 산맥과 사막이 입체적으로 되어 있어서 한 눈에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특히 두개의 사막지역을 컬러로 표시 해 놓은 것이 눈길을 끌었다.

 

입체지도를 보면 두개의 사막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준가얼 분지를 뜻한다. 천산산맥을 중심으로 하여 북쪽에 있는 것이 준가얼 분지로서 초록색으로 표시 되어 있다. 초록색으로 표시 된 것은 초원지대를 말한다. 모래만 있는 순수한 사막이 아니라 반사막임을 뜻한다. 이렇게 초록색으로 표시된 것은 중국정부에서 녹화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이런 준가얼 분지는 고비사막의 일부로 본다.

 

천산산맥 남쪽에는 마치 계란 모양의 타림분지가 있다. 이것이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그래서 입체 지형도를 보면 노랑색으로 표시 되어 있다. 풀이 없는 불모지대로서 그야말로 모래만 있는 순수한 사막이다. 이렇게 신장지역은 천산산맥을 중심으로 하여 설명된다. 그렇다면 신장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신강(新疆)의 뜻은?

 

신장은 중국식 발음이다. 한자어로 신강(新疆)이라 한다. 이 지역에 대하여 고대중국에서는 서역이라 불렀다. 그런데 신강이라고 부른지는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청나라가 이지역을 지배하면서 새로운 영토라는 뜻으로 신강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신()’영토 강()’이 합쳐 져서 신강이 된 것이다. 그런데 ()’자에 대한 한자 풀이를 보면 기가 막히다.

 

앎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책을 통해서 아는 것도 있고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아는 것도 있다. 그러나 들어서 아는 것도 있다. 영토 강()에 대한 파자는 들어서 알게 된 것이다. 가이드가 설명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트를 해 두었다. 후기를 작성할 때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영토 강()자는 신장지역의 지형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강()자는 일종의 입체 지도와 같은 글자이다. 왜 그런가?

 

강자에서 오른 쪽을 보면 일()자 세 개 있고, 그 사이에 밭 전()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 가장 위 일자 아래에 밭전이 있고, 중간에 일자가 있고 그 아래에 밭전이 있고 마지막으로 일자가 가로 막고 있다. 이는 무엇을 뜻할까? 가장 위에 있는 일자는 알타이산맥을 뜻하고, 중간의 일자는 천산산맥을 뜻하고, 맨 아래 일자는 쿤룬산맥(곤륜산맥)’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산맥 가운데 밭전에 해당되는 것이 준가얼 분지타림 분지라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힌 파자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리고 강자의 좌측에 활 궁()자는 일곱개로 꺽어졌는데, 이는 국경이 일곱군데라는 의미라 한다. 이렇게 강자 하나에 신장 지역의 지형이 모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런 지형은 어떤 것일까? 위성사진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신장(新疆)지도

 

 

 

위성사진을 보면 중간에 만년설의 천산 산맥이 보인다. 우루무치는 천산산맥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우루무치 시내에서는 양 쪽으로 설산이 보인다. 그런 천산산맥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데 동서로 2,000km이고, 남북으로 400km이다. 그래서 타림분지와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쪽 경계를 이룬다.

 

실크로드는 천산산맥 아래에 있다. 이를 지도와 함께 보면 다음과 같다.

 

 

 

 

 

실크로드는 장안에서부터 로마에 이르는 먼 길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돈황에서부터 시작 된다. 그런데 실크로드는 돈황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 즉 천산산맥 남쪽 길의 북로와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길은 남로이다. 현장법사는 인도에 갈 때 북로를 이용하였고, 되돌아 올 때는 남로를 이용하였다. 이번 여행길은 실크로드 북로이다. 그래서 돈황, 하미, 투루판, 우루무치에 이르는 1,000키로미터이다.

 

위구르족과 카자흐족

 

신장에는 어떤 민족이 살고 있을까? 가이드는 버스 안에서 재미 있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위구르족과 카자흐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카자흐족이 나귀를 타고 가는데 위구르족이 친구야 어디 가니?”하며 물어 보았다고 한다. 그러자 카자흐족이 자신을 부르는 줄 알고 대답하였더니 위구루족은 아니, 너 말고 나귀한테 물어 보았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말 뜻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가이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으나 신장 지역에서 소수민족의 위치에 대한 것을 알려 준다고 볼 수 있다. 위구루족이나 카자흐족이 똑 같은 소수민족이지만 카자흐 족이 무시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신장지역에는 10여개의 민족이 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위구르족과 카자흐족의 인구가 가장 많다고 한다. 그런데 위구르족과 카자흐족은 생김새도 다르고 전통도 다르다는 것이다. 비록 두 민족이 이슬람을 신봉하고 있지만 사회적 지위는 위구르족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코란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위구르족은 아랍어로된 코란을 보지만, 카자흐족은 한자로 된 코란을 본다고 한다. 그리고 생활 방식도 다르다. 카자흐 족은 아직도 유목 생활을 하고 게르에서 생활을 한다.

 

카자흐족과 위구르족은 생김새도 다르다.  카자흐인들은 겉으로 보기에 몽골계통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 더구나 아직까지 유목생활을 하고 카자흐인들은 대부분이 중국어를 하지 못하고 카자흐어만 사용한다고 한다

 

 

 

 

우루무치 근교 남산 목장에서 본 카자흐인

 

 

 

위구르인들은 생김새가 중국인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이는 인종이 다르기 때문이다. 위구르인들은 투르크 계통이다. 그래서 이란사람들과 비슷하다. 때로 유럽인처럼 힌피부도 가지고 있다.

 

 

 

홍산공원에소 본 위구르인

 

 

신장의 주인은?

 

신장지역의 명칭은 신장위구르 자치주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위구르인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말한다. 인종구성비를 보면 알 수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신장의 민족구성(2000)은 다음과 같다.

 

 

No

  

  

비율(%)

1

위구르족

8,345,622

45.21

2

한족

7,489,919

40.58

3

카자흐족

1,245,023

6.74

4

후이족

839,837

4.55

5

키르키스족

158,775

0.86

6

몽골족

149,857

0.81

 

 

표를 보면 위구르족이 45%로서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어서 한족이 40%로서 2위이다. 카자흐족은 6%로서 3위이다. 이루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은 신장 지역은 위구르족이 다수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신장위구르 자치주라 했을 것이다.

 

신장에서 위구르족이 1위임에도 불구하고 위구르족의 생활은 한족 보다 훨씬 못한듯이 보인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는 것 같다. 인종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위구르인들은 위구르인들끼리 어울리는 것 같다.

 

위구르인들은 생김새로도 구분되지만 옷차림으로도 구분된다. 남자는 남자는 머리에 작은 모자를 쓰고, 여자는 스카프를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주식 낭을 굽고 있는 위구르인

 

 

 

바자르의 무장군인들

 

우루무치 시내는 겉으로 평온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자르가 있는 시내 중심가에는 무장군인들이 몰려 있다. 마치 스크럼을 짜듯이 동그렇게 등을 대고 7-8명이 있는데, 철모에 자동화기로 무장하고 있다. 그래서 사진을 찍으려 하면 마치 잡아 갈 듯이 손짓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 전투경찰의 모습이 떠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투경찰이 단지 곤봉만 가지고 경계를 서고 있으나 우루무치 시내 중심가에서는 완전 무장한 군인들이 서 있다.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위구르인들은 겁을 먹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는 그 어떤 불온한 움직임도 분쇄 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로 보인다.

 

오르콘 위구르제국(744-840)

 

신장지역의 주인은 위구르족이라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위구르족이 제국을 건설하던 적도 있었다. 744년 위구르족은 후돌궐을 멸망시키고 위구르제국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를 역사에서는 오르콘 위구르제국(744-840)이라 한다. 그래서 신장지역 뿐만 아니라 초원의 지배자가 되었다.

 

 

 

 

위구르 제국(744년~840년)

상단의 진노랑색 부분이 위구르 제국이다.

 

 

 

불교국가 카라코야 왕국(高昌國, 856-1209)

 

그 후 위구르 제국은 세 개로 나누어졌다. 그 중 하나가 현재 투루판 고창성을 근거지로 한 카라코야왕국(高昌國, 856-866 CE 사이 건국)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들은 인도유럽어족인 토착 토하라인들과 융합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몽골제국의 칭기즈칸에 복속 되기 이전 인 1209년까지 존속되었다.  이에 대하여 위키백과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서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중가리아 분지타림 분지에 살던 다른 투르크계 부족과 함께 카라코야 왕국(高昌國, 856-1209)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인도유럽어족인 토착 토하라인들과 융합되었다. 지배자의 호칭을 따서 이디쿠트(신성한 부, 영광)라고도 불렸던 이 나라는, 겨울의 수도인 투르판과 여름의 수도인 베쉬발릭(우루무치), 그리고 쿠물, 쿠차에 기반한 불교국가였다.

 

(위구르, 위키백과)

 

 

 

카라코야 왕국(高昌國, 856-1209)

좌측 상단의 노랑색 천산위구르라고 씌여진 부분이 고창국(카라코야)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위구르인들의 카라코야왕국(高昌國, 856~1209)불교를 신봉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반인들의 상식을 뒤집어 엎는다. 왜냐하면 751년 탈라스 전투에서 고선지 장군이 이슬람에 패하여 그 이후에 서역이 모두 이슬람화 된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산산맥 서쪽만 이슬람화 되었을 뿐 투루판-우루무치 일대의 서역은 이슬람화가 되지 않은 것이다.

 

투루판 일대가 이슬람화가 된 것은 몽고의 침략으로 카라코야왕국(高昌國)이 망하고 나서 부터이다. 탈라스 전투이후 무려 500년간 불교가 유지된 것이다. 이는 고창고성에서 감실에 남아 있는 불상의 흔적으로 알 수 있고, 화염산 천불동 계곡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고창성의 불상흔적

 

 

 

 

 

 

화염산 천불동 계곡의 불화

 

 

 

 

 

 

 

화염산

서유기의 무대로서 고창성에서 바라 본 것이다.

 

  

 

 

불교와 이슬람은 상극

 

그러나 13세기 투루판 지역이 이슬람화 되면서 불교도 완전히 사라졌다. 위구르인들은 자신의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불상을 모조리 파괴해 버린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불교와 이슬람은 상극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슬람이 들어 간 곳이면 어김없이 불교의 씨가 말라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태국, 미얀마 등 불교국가에서는 이슬람의 발흥에 매우 민감해 한다고 한다.

 

 

 

2013-06-1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