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공제일 수보리와 평화제일 수부띠, 부처님 십대 제자와 초기불교 팔십대 제자
무쟁삼매 수보리
우리나라 불자들이 애송하는 경전이 금강경이다. 반야심경과 천수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애송하는 경전으로서 조계종의 소의경전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 종단에서 믿고 의지 하는 경전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불교교양대학에서는 금강경 강좌가 필수이고 불교TV사이트에는 수 많은 금강경 강좌 법문이 있다.
금강경에 무쟁삼매(得無諍三昧)라는 말이 있다. 무쟁 삼매란 우리들 마음 속에 일어나는 온갖 번뇌와 투쟁, 갈등, 욕망이 일체 사라진 것을 뜻한다. 금강경에서 무쟁삼매에 대한 구절을 보면 “불설아득무쟁삼매인중최위제일(佛說 我得無諍三昧人中 最爲第一)”이라는 문구가 있다. “부처님께서 나에게 다툼 없는 삼매를 얻은 사람 가운데서 제일이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나’는 수보리존자를 말한다. 그렇다면 수보리 존자는 어떻게 하여 ‘무쟁삼매제일’이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을까?
대승불교 10대 제자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 존자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수보리’라는 이름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그래서일까 불자들에게는 수보리라는 이름이 매우 친숙하다. 그런 수보리는 대승불교에 따르면 10대 제자중의 하나이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10대 제자는 다음과 같다.
① 사리불(舍利弗 Śāriputra):
경전에서 흔히 부처의 설법 상대로서 '사리자'(舍利子)로 호칭되며 별명은 지혜제일이다. 갖가지 지식에 해박하고 통찰력도 빼어나서 제자들 가운데 으뜸으로 간주된다.
② 목건련(目建連 Maudgalyayāna):
'목련'이라고도 불리며 같은 이름의 다른 인물과 구분하기 위해 흔히 대목건련이라 불린다. 신통력이 뛰어났다 하여 얻은 별명이 신족(神足) 제일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귀로부터 심한 고통을 받고 있음을 신통한 눈으로 보고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공양을 드려 구출했다는 설화로 유명하다.
③ 가섭(迦葉 Kāśyapa):
대가섭·마하가섭이라 불러 다른 인물과 구분한다. 욕심이 적고 족한 줄을 알아 항상 규율을 엄격히 지켰다 하여 행법(行法) 제일 또는 두타(頭陀) 제일이라 했다.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라는 일화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며 첫번째 결집(結集)을 주도했다. 불립문자 의 전통을 세운 선종에서는 조사의 계보를 인도로부터 따질 때 그를 초대 조사로 간주한다.
④ 수보리(須菩提 Subhūti):
공(空)의 뜻을 가장 잘 이해했다 하여 해공(解空)제일이라 했다. 대승불교의 반야경에서는 항상 그가 공의 지혜인 반야바라밀을 설한 것으로 되어 있다.
⑤ 부루나(富樓那 Pūrna):
교화하는 일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하여 설법제일이라 했다.
⑥ 가전연(迦旃延 Kātyāyana):
마하가전연이라고도 불린다. 교의에 대해 논하는 데 가장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하여 논의제일이라 했다.
⑦ 아나율(阿那律 Aniruddha):
심원한 통찰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하여 천안(天眼)제일이라 했다.
⑧ 우바리(優波離 Upāli):
이발사라는 비천한 신분 출신이며, 교단의 규율에 정통하고 계율을 지키는 데 엄격했다 하여 지율(持律)제일이라 했다. 첫번째 결집에서 계율에 관한 모든 사항을 암송하여 후대의 율장을 성립시켰다.
⑨ 라훌라(羅睺羅 Rāhula):
석가모니의 아들로서 출가의 장애가 되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교단 최초의 사미라고 하며, 자기가 지켜야 할 것을 은밀히 잘 실행했다 하여 밀행(密行) 제일이라 했다.
⑩ 아난(阿難 Ānanda):
석가모니의 사촌 형제이며 '아난다'로 알려져 있다. 석가모니가 입멸할 때까지 25년 동안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시중 들고 가장 많은 말씀을 직접 들었으므로 다문(多聞)제일이라 했다. 첫번째 결집에서 석가모니가 직접 설한 가르침을 모두 암송해냄으로써 후대의 경장(經藏)을 성립시켰다.
(10대제자 [十大弟子], 다음 백과시전)
십대제자 중에 불자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은 사리뿟따(사리불), 목갈라나(목건련), 마하깟사빠(마하가섭), 아난다(아난) 정도이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부처님의 상수 제자로 잘 알려져 있고, 마하깟사빠는 두타행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난다는 ‘여시아문’으로 유명하다.
니까야 송출과 관련된 제자들
테라와다불교에서는 10대 제자라는 말이 보이지 않는다. 또 빠알리니까야에서도 10대 제자라는 명칭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제자이름이 있다. 사리뿟따, 목갈라나, 마하깟사빠, 아난다, 아누룻다 같은 제자이다. 이렇게 5명이 유명한데 이는 경전의 송출과도 관계가 있다.
디가니까야 제일결집 인연담(Smv.3-17)에 따르면 4부 니까야 송출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 다음에는 빠띠까의 품을 결집하여, 34경으로 장식된[Smv.15] 64송출분 분량의 송출분을 결집하여 ‘디가니까야’라고 하고, 존자 아난다에게 ‘벗이여, 이것을 그대에게 의지하는 자들에게 전하시오.’라고 부촉했다.
그 다음에 80송출분 분량의 ‘맛지마니까야’를 결집한 뒤에 가르침의 장군인 싸리뿟따에게 의지 하는 자들에게 ‘벗들이여, 이것을 그대들이 돌보시오.’라고 부촉했다.
그 다음에 100송출 분량의 ‘쌍윳따니까야’를 결집한 뒤에 장로 마하깟싸빠에게 ‘존자여, 이것을 그대에게 의지하는 자들에게 전하시오.’라고 부촉했다.
그 다음에 120송출분 분량의 ‘앙굿따라니까야’를 결집한 뒤에 장로 아누룻다에게 ‘존자여, 이것을 그대에게 의지하는 자들에게 전하시오.’라고 부촉했다.
(디가니까야 해제, 전재성박사)
디가니까야 해제글에 따르면 4부 니까야 송출과정이 설명 되어 있다. 부처님 열반후 500명의 아라한이 칠엽굴에 모여 경전을 합송한 결과 4 부 니까야가 완성되었는데 4명의 책임자가 할당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송출된 것이 디가니까야이다. 그래서 4부 니까야는 송출된 순서로 항상 디가니까야, 맛지마니까야, 상윳따니까야, 앙굿따라니까야 순으로 불리운다. 그러나 성립연대는 일반적으로 상윳따니까야가 가장 고층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이 4부 니까야 송출과 관련하여 아난다, 아난다(디가니까야), 사리뿟따(맛지마니까야), 마하깟사빠(상윳따니까야), 아누룻다(앙굿따라니까야) 이렇게 네 명의 제자이름은 잘 알려져 있다.
사부대중 모두가 부처님의 제자
이 밖에도 계율 송출과 관련된 우빨리 존자, 그리고 사리뿟따와 함께 상수제자인 목갈라나 존자도 잘 알려져 있다. 이외 수 많은 부처님의 제자가 빠알리니까야에 등장한다.
그러나 대승에서와 같이 10 대 제자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앙굿따라니까야에 ‘제일’이라는 명칭이 붙은 부처님의 제자 80명이 실려 있다. 이를 굳이 이름 붙인 다면 부처님 80대 제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80명의 제자 가운데 빅쿠(비구) 뿐만 아니라 빅쿠니(비구니)도 있고 재가자인 우빠사까(청신사)와 우빠시까(청신녀)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은 비구만이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라 사부대중 모두가 부처님의 제자임을 알 수 있다.
왜 제일이라 하였는가?
앙굿따라니까야에 실려 있는 제일자가 들어 가는 부처님의 제자 리스트가 있다. 80명에 달하는 제자리스트를 보면 하나의 정형구로 되어 있다. 첫 번째 제자로 등장하는 안냐꼰단냐의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Etadaggaṃ bhikkhave
mama sāvakānaṃ bhikkhūnaṃ
rattaññūnaṃ yadidaṃ aññākoṇḍañño,
[세존]
“수행승들이여,
나의 제자 수행승 가운데 앙냐 꼰당냐는
세월을 아는 님 가운데 제일이다.”
(Etadaggavagga-제일의 품, 꼰당냐의 경 A1:196(14-1), 전재성님역)
80명의 제자 중에 콘단냐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부처님의 처음 설법을 듣고 ‘진리의 눈(Dhammacakka, 法眼)’이 열린 첫 제자이어서 일 것이다.
경에서 ‘제일(agga)’라는 말이 있다. 왜 ‘제일’ 또는 ‘으뜸’이라는 명칭을 붙여 주었을까? 주석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설명 되어 있다.
Agga: Mrp.I. 125에 따르면, 네 가지 이유에서 최상이다.
1) 특수한 동기에서
2) 출생에 의해서(전생의 서원이나 맹세와 관련된 것)
3) 해당 분야에서 오랜 수행으로
4) 탁월한 능력이나 성품에 의해서
최상인 것을 말한다.
(Agga 각주, 전재성박사)
악가(제일)이라는 명칭을 붙여 준 것은 동기, 출생, 수행, 능력 등 특출난 점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부처님의 80대 으뜸 제자들
앙굿따라니까야 에따닥가왁가(Etadaggavagga-제일의 품)를 근거로 하여 80명의 으뜸 제자들의 특징을 표로 만들었다.
부처님의 80대 제자
No |
이 름 |
특 징 |
비 고 |
1 |
안냐꼰단냐 aññākoṇḍañña |
세월을 아는 님 가운데 제일 rattaññūnaṃ |
빅쿠(비구)
|
2 |
사리뿟따 sāriputta |
위대한 지혜를 지닌 님 가운데 제일 mahāpaññānaṃ |
빅쿠(비구) (대승:智慧第一) |
3 |
마하목갈라나 mahāmoggallāna |
신통을 지닌 님 가운데 제일 iddhimantānaṃ |
빅쿠(비구) (대승:神通第一) |
4 |
마하깟사빠 mahākassapa |
두타를 설하는 님 가운데 제일 dhutavādānaṃ |
빅쿠(비구) (대승:頭陀第一) |
5 |
아누룻다 anuruddha |
하늘 눈을 가진 님 가운데 제일 dibbacakkhukānaṃ |
빅쿠(비구) (대승:天眼第一) |
6 |
밧디야 깔리고다야뿟따 Bhaddiya kāḷigodhāya puttoa |
높은 가문 출신 가운데 제일 uccākulikānaṃ |
빅쿠(비구) |
7 |
라꾼다까 밧디야 lakuṇaṭakabhaddiya |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님 가운데 최고 mañjussarānaṃ |
빅쿠(비구) |
8 |
삔돌라 바라드자와 piṇḍolabhāradvāja |
사자후를 지닌 님 가운데 제일 sīhanādīkānaṃ |
빅쿠(비구) |
9 |
뿐나 만따니뿟따 puṇṇa mantāṇiputta |
가르침을 설하는 님 가운데 제일 dhammakathikānaṃ |
빅쿠(비구) (대승:說法第一) |
10 |
마하 깟짜나 mahākaccāna |
간략하게 설해진 것의 의미를 상세히 설명하는 님 가운데 제일 saṃkhittena bhāsitassa vitthārena atthaṃ vibhajantānaṃ |
빅쿠(비구) (대승:論議第一) |
11 |
쭐라 빤타까1 cullapanthaka |
정신으로 이루어진 몸을 만들어내는 자 가운데 제일 cetovivaṭṭakusalānaṃ |
빅쿠(비구) |
12 |
쭐라 빤타까2 cullapanthaka |
마음의 전환에 유능한 자 가운데 제일 cetovivaṭṭakusalānaṃ |
빅쿠(비구) |
13 |
마하 빤타까 mahāpanthaka |
지각의 전환에 유능한 자 가운데 제일 saññāvivaṭṭakusalānaṃ |
빅쿠(비구) |
14 |
수부띠1 subhūti |
평화롭게 사는 님 가운데 제일 araṇavihārīnaṃ |
빅쿠(비구) (대승:解空第一) |
15 |
수부띠2 subhūti |
보시 받을 가치가 있는 님 가운데 제일 dakkhiṇeyyānaṃ |
빅쿠(비구) (대승:解空第一) |
16 |
레바따 카다라바니야 revata khadiravaniya |
āraññakānaṃ 숲속에서 지내는 님 가운데 제일 |
빅쿠(비구)쿠 |
17 |
캉카레바따 kaṅkhārevata |
선정에 드는 님 가운데 제일 jhāyīnaṃ |
빅쿠(비구) |
18 |
소나 꼴리위사 soṇa koḷivīsa |
열심히 노력하는 님 가운데 제일 kalyāṇavākkaraṇānaṃ |
빅쿠(비구) |
19 |
소나 꾸띠깐나 Soṇa Kuṭikaṇṇa
|
분명한 언표를 하는 님 가운데 제일 kalyāṇavākkaraṇānaṃ |
빅쿠(비구) |
20 |
시왈리 sīvalī |
보시를 받는 님 가운데 제일 lābhīnaṃ |
빅쿠(비구) |
21 |
왁깔리 vakkalī |
믿음이 돈독한 님 가운데 제일 saddhādhimuttānaṃ |
빅쿠(비구) |
22 |
라훌라 rāhula |
배우기를 열망하는 님 가운데 제일 sikkhākāmānaṃ |
빅쿠(비구) (대승:密行 第一) |
23 |
랏타빨라 raṭṭhapāla |
믿음으로 출가한 님 가운데 제일 saddhāpabbajitānaṃ |
빅쿠(비구) |
24 |
꾼다다나 kuṇḍadhāna |
먼저 산가지를 받는 님 가운데 제일 paṭhamaṃ salākaṃ gaṇhantānaṃ |
빅쿠(비구) |
25 |
왕기사 vaṅgīsa |
변재가 있는 님 가운데 제일 paṭibhānavantānaṃ |
빅쿠(비구) |
26 |
우빠세나 왕간따뿟따 upasena vaṅgantaputta |
단정한 님 가운데 제일 samantapāsādikānaṃ |
빅쿠(비구) |
27 |
답바 말라뿟따 dabba mallaputta |
처소를 배정하는 님 가운데 제일 senāsanapaññāpakānaṃ |
빅쿠(비구) |
28 |
삘린다 왓차 piḷindivaccha |
신들이 좋아 하고 사랑하는 님 가운데 제일 devatānaṃ piyamanāpānaṃ |
빅쿠(비구) |
29 |
바이야 다룻찌리야 bāhiya dārucīriya |
재빨리 곧바로 아는 님 가운데 제일 khippābhiññānaṃ |
빅쿠(비구) |
30 |
꾸마라깟사빠 kumārakassapa |
재기에 넘친 설교님 가운데 제일 cittakathikānaṃ |
빅쿠(비구) |
31 |
마하꼿티따 mahākoṭṭhita |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님 가운데 제일 paṭisambhidāppattānaṃ |
빅쿠(비구) |
32 |
아난다1 ānanda |
많이 배운 님 가운데 제일 bahussutānaṃ |
빅쿠(비구) (대승:多聞第一) |
33 |
아난다2 ānanda |
새김을 확립한 님 가운데 제일 satimantānaṃ |
빅쿠(비구) (대승:多聞第一) |
34 |
아난다3 ānanda |
행동거취가 분명한 님 가운데 제일 gatimantānaṃ |
빅쿠(비구) (대승:多聞第一) |
35 |
아난다4 ānanda |
의지가 확고한 님 가운데 제일 dhitimantānaṃ |
빅쿠(비구) (대승:多聞第一) |
36 |
아난다5 ānanda |
시중드는 님 가운데 제일 upaṭṭhākānaṃ |
빅쿠(비구) (대승:多聞第一) |
37 |
우르웰라 깟사빠 uruvelakassapa |
대중을 거느린 님 가운데 제일 mahāparisānaṃ |
빅쿠(비구) |
38 |
깔루다이 kāludāyi |
가족을 기쁘게 하는 님 가운데 제일 kulappasādakānaṃ |
빅쿠(비구) |
39 |
박꿀라 Bakkula |
잘 병들지 않는 님 가운데 제일 appābādhānaṃ |
빅쿠(비구) |
40 |
소비따 sobhita |
전생의 삶을 기억하는 님 가운데 제일 pubbe nivāsaṃ anussarantānaṃ |
빅쿠(비구) |
41 |
우빨리 upāli |
계율을 지키는 님 가운데 제일 vinayadharānaṃ |
빅쿠(비구) (대승:持律第一) |
42 |
난다까 nandaka |
수행녀들에게 충고 하는 님 가운데 제일 bhikkhunovādakānaṃ |
빅쿠(비구) |
43 |
난다 nanda |
감관을 수호 하는 님 가운데 제일 Indriyesu guttadvārānaṃ |
빅쿠(비구) |
44 |
마하깝삐나 mahākappina |
수행승들에게 충고 하는 님 가운데 제일 bhikkhuovādakānaṃ |
빅쿠(비구) |
45 |
사가따 sāgata |
불의 세계에 대한 명상에 유능한 님 가운데 제일 tejodhātu kusalānaṃ |
빅쿠(비구) |
46 |
라다 rādha |
변재가 있는 님 가운데 제일 paṭibhāneyyakānaṃ |
빅쿠(비구) |
47 |
모가라자 mogharājā |
거친 옷을 걸치는 님 가운데 제일 lūkhacīvaradharānaṃ |
빅쿠(비구) |
48 |
마하빠자빠띠고따미 mahāpajāpatīgotamī |
세월을 아는 님 가운데 제일 rattaññūnaṃ |
빅쿠니(비구니) |
49 |
케마 khemā |
위대한 지혜를 지닌 님 가운데 제일 mahā paññānaṃ |
빅쿠니(비구니) |
50 |
웁빨라반나 uppalavaṇṇā |
신통을 지닌 님 가운데 제일 iddhimantīnaṃ |
빅쿠니(비구니) |
51 |
Paṭācārā 빠따짜라 |
계율을 지키는 님 가운데 제일 vinayadharānaṃ |
빅쿠니(비구니) |
52 |
담마딘나 dhammadinnā |
가르침을 설하는 님 가운데 제일 dhammakathikānaṃ |
빅쿠니(비구니) |
53 |
난다 nandā |
선정에 드는 님 가운데 제일 jhāyīnaṃ |
빅쿠니(비구니) |
54 |
소나 soṇā |
열심히 노력하는 님 가운데 제일 āraddhaviriyānaṃ |
빅쿠니(비구니) |
55 |
사꿀라 sakulā |
하늘눈을 가진 님 가운데 제일 dibbacakkhukānaṃ |
빅쿠니(비구니) |
56 |
밧다꾼달라께사 bhaddākuṇaḍalakesā |
곧바로 아는 님 가운데 제일 khippābhiññānaṃ |
빅쿠니(비구니) |
57 |
밧다까삘라니 bhaddākāpilāni |
전생의 삶을 기억하는 님 가운데 제일 pubbenivāsaṃ anussarantīnaṃ |
빅쿠니(비구니) |
58 |
밧다깟짜나 bhaddakaccānā |
위대한 곧바른 앎에 도달한 님 가운데 제일 mahābhiññappattānaṃ |
빅쿠니(비구니) |
59 |
끼사고따미 kisāgotamī |
거친 옷을 입는 님 가운데 제일 lūkhacīvaradharānaṃ |
빅쿠니(비구니) |
60 |
시갈라마따띠 sigālamātāti |
믿음으로 해탈한 님 가운데 제일 saddhādhimuttānaṃ |
빅쿠니(비구니) |
61 |
따뿟사발리까 tapussabhallikā |
먼저 귀의한 님 가운데 제일 paṭhamaṃ saraṇaṃ gacchantānaṃ |
빅쿠니(비구니) |
62 |
수닷따 아나타삔디까 Sudatta anāthapiṇḍika |
보시하는 님 가운데 제일 dāyakānaṃ |
우빠사까(청신사) |
63 |
찟따 맛치까산디까 Citta macchikāsaṇḍik a |
가르침을 설하는 님 가운데 제일 dhammakathikānaṃ |
우빠사까(청신사) |
64 |
핫타까 알라와까 Hatthaka ālavaka |
네 가지 섭수의 기초로 대중을 돕는 님 가운데 제일 catūhi saṅgahavatthūhi parisaṃ saṃgaṇhantānaṃ |
우빠사까(청신사) |
65 |
마하나마 삭까 mahānāmo sakka |
뛰어난 것을 보시를 하는 님 가운데 제일 paṇītadāyakānaṃ |
우빠사까(청신사) |
66 |
욱가 웨살리까 Uggoa vesālika |
즐거운 보시를 하는 님 가운데 제일 manāpadāyakānaṃ |
우빠사까(청신사) |
67 |
욱가따 uggata |
참모임에 시중 드는 님 가운데 제일 saṃghupaṭṭhākānaṃ |
우빠사까(청신사) |
68 |
수라 암밧타 sūra ambaṭṭha |
흔들리지 않는 청정한 믿음을 내는 님 가운데 제일 aveccappasannānaṃ |
우빠사까(청신사) |
69 |
지와까 꼬마라밧짜 jīvaka komārabhacca |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님 가운데 제일 puggalappasannānaṃ |
우빠사까(청신사) |
70 |
나꿀라삐따 nakulapitā |
친절하게 말하는 님 가운데 제일 vissāsakānaṃ |
우빠사까(청신사) |
71 |
수자따 sujātā |
먼저 귀의한 님 가운데 제일 paṭhamaṃ saraṇaṃ gacchantīnaṃ |
우빠시까(청신녀) |
72 |
위사카 미가라마따 visākhā migāramātā |
보시하는 님 가운데 제일 dāyikānaṃ |
우빠시까(청신녀) |
73 |
쿳줏따라 khujjuttarā |
많이 배운 님 가운데 제일 bahussutānaṃ |
우빠시까(청신녀) |
74 |
사마와띠 sāmāvatī |
자애를 닦는 님 가운데 제일 mettāvihārīnaṃ |
우빠시까(청신녀) |
75 |
웃따라 난다마따 uttarā nandamātā |
선정을 닦는 님 가운데 제일 jhāyīnaṃ |
우빠시까(청신녀) |
76 |
숩빠와사 꼴리야디따 suppavāsā koliyadhītā |
뛰어난 것을 보시하는 님 가운데 제일 paṇītadāyikānaṃ |
우빠시까(청신녀) |
77 |
숩삐야 suppiyā |
환자를 돌보는 님 가운데 제일 gilānupaṭṭhākīnaṃ |
우빠시까(청신녀) |
78 |
까띠야니 kātiyānī |
청정한 믿음을 지닌 님 가운데 제일 aveccappasannānaṃ |
우빠시까(청신녀) |
79 |
나꿀라마따 nakulamātā |
친근하게 대하는 님 가운데 제일 vissāsikānaṃ |
우빠시까(청신녀) |
80 |
깔리 kāḷī |
소문을 듣고도 청정한 믿음을 내는 님 가운데 제일 anussavappasannānaṃ |
우빠시까(청신녀) |
(출처: 앙굿따라니까야 1:196~1:275, 전재성님역)
리스트를 보면 14번째와 15번째가 수부티(subhūti)에 대한 것이다. 금강경에 등장하는 ‘수보리존자’이다. 그런데 특징을 보면 ‘평화롭게 사는 (araṇavihārīnaṃ)님 가운데 제일’ 과 ‘보시 받을 가치가 있는(dakkhiṇeyyānaṃ) 님 가운데 제일’이라고 표기 되어 있다.
대승의 수보리(須菩提)
이와 같은 용어는 대승에서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고 한 것과 다르다. 대승에서 말하는 해공제일이라는 설명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5. 수보리(Subhuti)
解空第一. 須淨提, 須扶提라고도 하며 善, 善實 등으로 번역한다. 사위국 바라문족 출신 이다. 수보리 존자는 지혜가 총명하여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에는 성품이 악하여 모든 것에 성을 잘 냈다고 한다. 수보리는 부모친족이 자신을 싫어하 자 집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갔고 여기서 선인을 만나 부처님께 인도되어 불법에 귀의 했 다. 동 제자품에는 " 항상 空定을 즐기고 空의 이치를 분별하는 것은 수보리 비구가 제일 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공사상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반야부 경전에는 항상 수보 리가 등장한다.
사이트에 실려 있는 설명문에 따르면 수보리는 공의 이치를 분별하여 설명하는 것으로 제일이라 한다. 그래서 반야부경전에서 공사상과 관련하여 등장하는 인물이 수보리라 한다.
빠알리니까야의 수부띠(Subhūti)
하지만 빠알리니까야에 따르면 수부띠(수보리)가 등장하는 경이 두 개 보인다. 하나는 맛지마니까야의 ‘평화에 대한 분석의 경(M139)’과 앙굿따라니까야의 ‘수부띠의 경(A11:42)’가 그것이다.
‘평화에 대한 분석의 경(M139)’에 등장하는 수부띠는 경의 말미에 이름만 나온다. 부처님이 수행승들에게 여러 가지 ‘평화의 분석(Araṇavibhaṅga)’에 대하여 설하고 난 다음 경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Subhūti ca pana bhikkhave,
kulaputto araṇapaṭipadaṃ paṭipannoti
[세존]
“수행승들이여,
훌륭한 가문의 아들 쑤부띠야말로
평화의 길에 들어선 자이다.
(Araṇavibhaṅga sutta-평화에 대한 분석의 경, 맛지마니까야 M139)
이 한 마디가 수보리에 대하여 말한 것의 전부이다. 그런데 이 구절과 관련된 이야기가 금강경에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世尊, 佛說我得無諍三昧人中 最爲第一 是第一離欲阿羅漢.
세존, 불설아득무쟁삼매인중 최위제일 시제일이욕아라한.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다툼이 없는 삼매를 얻은 사람 가운데서 제일 으뜸이라’ 말씀하셨으나 이는 욕심을 여윈 첫째가는 아라한이란 말씀입니다.
(금강경, 제9분, 一相無相分 일상무상분)
금강경에서 수보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지칭하여 “다툼이 없는 삼매를 얻은 사람 가운데서 제일 으뜸이라”라고 말한다. 자화자찬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말의 근원은 빠알리니까야에 있다. 맛지마니까야에서 부처님이 “훌륭한 가문의 아들 쑤부띠야말로 평화의 길에 들어선 자이다.”라고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금강경의 ‘무쟁삼매’라는 말의 원조가 빠알리니까야에서 ‘아란나빠띠빠다(araṇapaṭipada)’이다. araṇapa가 평화를 뜻하고, paṭipada가 길을 뜻하므로 ‘아란나빠띠빠다(araṇapaṭipada)’는 ‘평화의 길’이다. 따라서 서로 ‘다투지 않는다’는 뜻의 ‘무쟁(無諍)’와 같은 말이다. 그러나 무쟁삼매할 때의 ‘삼매’에 대한 어원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앙굿따라니까야에서 ‘평화롭게 산다’라는 뜻의 ‘아라나위하라낭(araṇavihārīnaṃ)’이 보인다.
니까야에서는 수부띠에 대하여 ‘평화롭게 사는 님 가운데 제일(araṇavihārīnaṃ yadidaṃ subhūti, A1:196)’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다. 대승에서 말하는 해공제일 수보리와는 전혀 다르다.
수부띠의 경(A11:42)에서
빠알리니까야에서 수부띠에게 붙여준 두 번째 호칭이 ‘보시 받을 가치가 있는 님 가운데 제일’이라는 말이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앙굿따라니까야에서 볼 수 있다.
앙굿따라니까야 ‘수부띠의 경(A11:42)’에서는 부처님과 수부띠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빠알리 니까야에서는 유일하게 수부띠와 관련된 경으로서 수부띠가 등장한다. 그러나 금강경에서의 부처님과 수보리와의 대화의 내용과 다르다.
금강경에서 수보리 역할은 부처님의 대승사상을 드러내 보이기 위하여 등장하였다. 그러나 빠알리니까야에서는 부처님과 믿음(삿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새내기 수행승 삿다(saddha)를 매개로 하여 부처님과 믿음(삿다)에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먼저 수부띠가 다음과 같이 부처님에게 말한다.
[쑤부띠]
“세상에 존경받는 님이여,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이여, 바로 지금입니다. 세존께서는 믿음 있는 자의 믿음의 특징에 대하여 말씀 하실 때 입니다. 그러면 저는 이 수행승이 믿음 있는 자의 믿음의 특징들과 일치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Subhūti sutta-쑤부띠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11:24, 전재성님역)
수부띠는 부처님에게 믿음이 있는 자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 달라고 한다. 이런 형식의 이야기가 마치 금강경에서 수보리가 “희유하시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펴 주시고 모든 보살들에게 잘 당부하시옵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이는 깨달은 마음을 어떻게 머물며 번뇌의 마음을 어떻게 항복받아야 하겠나이까. (希有世尊. 如來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世尊, 善男子 善女人 發阿耨多羅三邈三菩提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라고 법을 청하는 것과 유사하다. 다만 니까야에서는 ‘믿음(saddha)’에 대한 것이지만 금강경에서는 ‘보리심’에 대한 것이 서로 다르다.
계율을 강조하시는 부처님
수부띠의 믿음에 대한 설명요청을 받자 부처님은 가장 먼저 다음과 같은 사항을 말씀 하신다.
[세존]
“쑤부띠여, 세상에 수행승이 계행을 지키고, 의무계율을 수호하고, 올바른 행위의 경계를 갖추고, 사소한 잘못에서도 두려움을 보고, 지켜야 할 학습계율을 수용하여 배운다. 쑤부띠여, 수행승이 계행을 지키고, 의무계율을 수호하고, 올바른 행위의 경계를 갖추고, 사소한 잘못에서도 두려움을 보고, 지켜야 할 학습계율을 수용하여 배운다면, 쑤부띠여, 그것도 믿음 있는 자의 믿음의 특징이다.”
(Subhūti sutta-쑤부띠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11:24,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믿음 있는 자의 특징으로서 가장 먼저 계율준수를 말씀 하셨다. 이는 대승경전에서 좀처럼 볼 수 가르침이다. 이렇게 계율이야기부터 먼저 한 다음 이어서 가르침을 자주 배우고 기억해서 언어로 숙달하고 정신으로 관찰하고 견해로 꿰뚫는 것도 믿음 있는 자의 특징이라 하였다.
믿음 있는 자의 특징을 보면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 하신 믿음 있는 자의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지켜야 할 학습계율을 수용하며 배운다.
2) 정신으로 관찰하고 견해로 꿰뚫는다.
3) 선한 친구와 선한 동료와 사귄다.
4) 인내를 지니고 가르침을 공경하여 받든다.
5) 올바른 수단을 강구하여 행하고 처리 할 수 있도록 전념을 다한다.
6) 가르침에 대한 것과 계율에 대한 것에 크게 기뻐한다.
7) 착하고 건전한 것들에 멍에를 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한다.
8) 네 가지 선정에 든다.
9) 전생의 여러가지 삶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상세히 기억한다.
10) 업보에 따른 뭇삶들에 관하여 분명히 안다.
11) 현세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 성취한다.
(출처: 수부띠의 경, A11:24)
이와 같이 부처님은 수부띠에게 11가지 믿음 있는 자의 특징에 대하여 말씀 하셨다.
소승을 규탄하는 내용으로 일관한 유마경
주석에 따르면 수부띠는 법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차별이나 한계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평화로운 삶을 사는 최상의 님(araṇavihārīnaṃ)’이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보시 할 만한 가치 있는 사람들 가운데 최상의 님(dakkhiṇeyyānaṃ)’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이처럼 수부띠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평화로운 삶을 사는 최상의 님(araṇavihārīnaṃ)’과 ‘보시 할 만한 가치 있는 사람들 가운데 최상의 님(dakkhiṇeyyānaṃ)’라는 칭호를 부처님으로부터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승운동이 일어 났을 때 여지 없이 깨진다. 그것은 유마경에서 볼 수 있다.
유마경은 특이한 경전이다. 내용 가운데 소승불교의 교리를 비하하고 대승불교의 우월성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분명하기 떄문이다. 그래서 이 경을 만들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용하기 보다 대부분 소승을 규탄하는 내용을 일관한다. 그런 면에 있어서 다분히 처음부터 의도가 개입되어 단단한 구도하에 만들어 졌다고 본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수보리에 대한 것이다.
빠알리니까야에서 ‘평화로운 삶을 사는 최상의 님(araṇavihārīnaṃ)’으로 불리우는 수부띠는 유마경에서 어떻게 묘사 되어 있을까?
유마거사 집으로 탁발 하러 갔다가
유마경에서 수부띠는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언젠가 유마거사 집으로 탁발 하러 갔다가 유마거사에게 혼쭐이 났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사는 님 가운데 제일’ 그리고 ‘보시 받을 가치가 있는 님 가운데 제일’이라는 부처님의 제자 수부띠에 대하여 유마경에서 다음과 같이 취급당하고 있다.
‘대덕 수보리시여, 만약 그대가 음식의 평등성에 의해 일체 존재의 평등성을 알고 일체 존재의 평등성에 의해 부처님 본연의 평등성까지 깨달을 수 있다면 부디 이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대덕 수보리시여, 만약 그대가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을 쳐부수지도 않고 동시에 그들과 함께 있지도 않다면, 또한 개아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쳐부수지 않은 채 동시에 모두가 똑같이 나아가는 참된 도[一行道]를 향하고 있다면, 또한 무지와 존재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지 않은 그대로 지혜와 해탈을 낳을 수 있다면 부디 이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무간업죄(無間業罪)의 평등성이 그대의 해탈과 평등함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대 자신이 해탈해 있지도 않고 동시에 속박되어 있지도 않다면, 또한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를 이해한다고도 말하지 않고 동시에 이해 못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면 부디 이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과보에 따라 성자가 되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범부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범부의 법을 거스르는 것도 아니라면, 또한 성자도 아니고 성자가 아닌 것도 아니며 또한 모든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법이라는 생각마저 모두 떨쳐버렸다면 대덕 수보리시여, 부디 이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또한 만약 스승이신 부처님을 찾아뵙지 않고 법문도 듣지 않으며 승단에도 참여치 않으면서, 저 육사외도(六師外道)를 스승으로 삼아 그들을 따라 출가하여 그들이 가는 곳이면 그대도 어디든지 따라가리라고 한다면 부디 이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유마경, 수보리의 공양)
부처님의 제자로서 아라한인 수부띠가 탁발하러 갔다가 유마거사로부터 들은 말이다. 거의 ‘모욕’에 가까운 말이다. 소승법을 따른다하여 성문승을 비하하는 말로 가득하다.
사성제를 포기 하라고
니까야에서 수부띠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했다. 그리고 자애명상을 닦아 아라한이 되었다. 그래서 평화로운 삶을 살아 가는데 있어서 제일이라 불리웠다. 수부띠의 가르침에 한계가 없고 차별이 없이 자비명상을 닦았으므로 그가 탁발할 때 그에게 주어지는 보시는 최상의 공덕을 낳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게 붙여준 호칭이 ‘보시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 가운데 제일(dakkhiṇeyyānaṃ)’이다.
하지만 유마경에서 이런 제일의 호칭은 전혀 통하지 않고 있다. 소승법을 따른다 하여 조건부 공양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를 이해한다고도 말하지 않고 동시에 이해 못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면 부디 이 공양을 받아주십시오.”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사성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공양을 하겠다는 말이다. 소승법인 사성제에 얽매이지 말라는 충고이다.
문전박대를 당한 수부띠
이와 같은 유마거사의 말에 수부띠는 거의 넋이 나간 듯 하다. 그런 수부띠에게 다음과 같은 결정타를 날린다.
그대는 온갖 악견(惡見)에 빠져 있으며 양 극단과 중도의 바른 인식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대는 여덟 가지 불행한 운명[八難]을 타고 났으며 행복으로 나아가는 도리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대는 번뇌 덩어리이며 청정함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격정을 여의고 나면 그때 비로소 대덕도 격정을 여의겠지요. 그대의 보시는 청정하지 않으니 대덕이시여, 그대에게 보시하는 사람 역시 악도에 빠지겠지요.
(유마경, 수보리의 공양)
유마거사는 아라한인 수부띠에게 중도조차 이해 하지 못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소승법에 빠져 있으면 8난에 닥칠것이라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번뇌 다한 아라한에게 번뇌 덩어리라고 하는가 하면 청정하지도 않은 존재라고 내치고 있다. 그러면서 ‘보시 받을 가치가 있는 님 가운데 제일’이라는 호칭의 수부띠에게 “그대에게 보시하는 사람 역시 악도에 빠지겠지요”라고 말한다.
유마거사의 이야기를 보면 거의 저주에 가깝다. 소승법을 믿는 다고 하여 사성제 등 부처님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번뇌 다한 아라한에게 보시 하는 것에 대하여 삼악도에 떨어질 것이라고 저주의 말을 퍼 붓고 있다.
결국 수부띠는 유마거사 집에서 얻어 먹지도 못하고 쫒겨 나오다 시피 나왔다. 유마거사의 호통에 너무 얼이 빠졌는지 생명과도 같은 발우도 챙기지 못한채 황망히 집을 나온 것이다. 한마디로 문전박대를 당한 것이다. 소승법을 따른다는 이유 한 가지 때문이다.
수부띠는 해공제일이 아니라 평화제일
빠알리니까야에 따르면 수부띠는 대승에서 말하는 해공제일이라는 말과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수부띠가 유명해진 것은 금강경 때문이다. 금강경에서 부처님과의 대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금강경은 반야부 경전으로서 공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공사상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평화롭게 사는 님 가운데 제일’과 ‘보시 받을 가치가 있는 님 가운데 제일’이라는 호칭의 수부띠가 반야부 경전의 출현과 함께 ‘해공제일 수보리’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빠알리니까야에 따르면 수부띠는 해공제일이 아니라 ‘평화제일’이다. 그것은 맛지마니까야에서 수부띠에 대하여 부처님이 “수행승들이여, 훌륭한 가문의 아들 쑤부띠야말로 평화의 길에 들어선 자이다. (Subhūti ca pana bhikkhave, kulaputto araṇapaṭipadaṃ paṭipannoti., M139)”라고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부띠는 해공제일 수보리가 아니라 평화제일 수부띠로 불려야 하지 않을까?
2013-07-25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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