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어떻게 자만(mana)을 제거할 것인가? 초기불교의 훈습(熏習)이야기

담마다사 이병욱 2013. 7. 31. 20:12

 

 

어떻게 자만(mana)을 제거할 것인가? 초기불교의 훈습(熏習)이야기

 

 

 

 

대승기신론 만년필 사경

 

대승기신론을 사경한 적이 있다. 2005년을 전후하여 세 번 사경하였다. 사경한 이유는 대승불교의 교리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승기신론은 대승불교의 교학에 대한 논서로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경은 만년필로 하였다. 붓펜으로 할 수도 있었지만 만년필로 한 것은 펜에 대한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 처음 펜을 잡았을 때 기분을 느껴보기 위해서이었다. 또 펜을 사용하면 글씨가 잘 나오는 이유도 크게 작용하였다.

 

선물로 받아 놓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만년필이 있었다. 잉크를 새로 구입하여 넣었다. 그리고 이백자 원고지에 여백을 채워 갔다. 한글이 아닌 한문원전을 사경하였다. 아무래도 한문으로 하는 것이 사경하는 맛이 더 날것 같았기 때문이다.

 

훈습(熏習)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경 중에 ‘훈습(熏習)’이라는 말을 발견하였다. ‘냄새가 배인다’라는 뜻의 ‘훈()’이라는 말은 이미 스님들의 법문에서 들었고, 또 ‘명훈가피력’이라는 말이 있어서 훈자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사경을 하다 보니 대승기신론에 쓰여 있는 것을 보고 훈습이라는 말이 대승기신론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스님들의 법문에 자주 인용되는 훈습은 어떤 것일까? 대승기신론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熏習義者如世間衣服實無於香이나

若人以香而熏習故則有香氣하니

此亦如是하야 眞如淨法實無於染이나

但以無明而熏習故則有染相이요

無明染法實無淨業이나 但以眞如而熏習故則有淨用이니라

 

(대승기신론, 3 染淨相資)

 

 

대승기시론 제3염정상자(染淨相資)에 있는 내용이다. 이에 대한 해설을 보면 다음과 같다.

 

 

훈습이라는 것은 사람의 옷이 그 자체로서는 냄새가 없지만 사람이 그 냄새를 오랫동안 배게 하면 냄새를 가지게 되는 것과 같다. 우리 마음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우리 마음의 진여가 원래 물든 것이 아니지만 미혹무명이 계속적으로 영향을 주면 그 마음이 망념으로 물들게 된다. 반면에 미혹에 물든 마음이 깨끗하지 않더라도 진여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면 본래의 깨끗한 기능을 회복하게 된다.

(지명스님, [지명스님의 경전공부] 훈습(대승기신론 4) )

 

 

훈습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은 비유가 생선가게이야기이다. 생선가게 가면 비린내가 나는 이유는 냄새가 배었기 때문이라 한다. 또 꽃의 비유가 있다. 꽃 집에 가면 꽃의 향기가 몸에 밴다는 것이다. 경에서는 옷을 예로 들고 있다. 어떤 사람이 옷을 입고 있으면 그 사람의 냄새가 밴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후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훈습이다. 기신론에서 말하는 훈습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빠지는 것과 또 하나는 좋아 지는 것이다. 나빠지는 것은 미혹무명이 진여의 마음을 훈습하는 것이고, 좋아 지는 것은 진여가 미혹의 마음을 훈습하는 것이라 한다. 흔히 이를 생선가게의 비린내와 꽃가게의 꽃향기와 대비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여 생선가게를 비하는 것은 절대아니다. 하나의 예를 들었을 뿐이다.

 

오리지널은 초기경전에

 

상윳따니까야를 보다가 ‘훈습’이라는 말을 발견하였다. 훈습이라는 말이 대승기신론에서 비롯 된 것일 줄 알았는데 오리지널이 초기경전에 있는 것을 알았다. 상윳따니까야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케마까]

벗들이여, 예를 들어 더러워져 때가 묻은 옷이 있는데, 주인은 그것을 세탁업자에게 맡겼고, 세탁업자는 그것을 소금물이나 잿물이나 쇠똥에 고루 뒤섞어, 맑은 물에 세탁했다고 합시다.

 

아무리 그 옷이 청정하고 깨끗하더라도 아직 거기에는 남아 있는 소금물 냄새나 잿물냄새나 쇠똥냄새가 가신 것은 아닙니다. 세탁업자가 그것을 주인에게 주면, 주인은 그것을 향기가 밴 상자에 넣어 보관해서, 그는 거기에 배어있는 소금물냄새나 잿물냄새가 쇠똥냄새를 없애버립니다.

 

(Khemaka sutta-케마까의 경, 상윳따니까야 S22:89, 전재성님역)

 

 

 

laundry

 

 

 

냄새가 밴다는 훈습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무리 옷을 깨끗이 빨아도 비누 냄새 등이 남아 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그 냄새를 제거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에서는 향기가 밴 상자(gandhaparibhāvite karaṇḍake)’를 언급하였다. 향기가 밴 상자안에 세탁물을 넣으면 비누 냄새 등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향기가 밴 상자(gandhaparibhāvite karaṇḍake)

 

‘향기가 밴 상자(gandhaparibhāvite karaṇḍake)’는 무엇을 말할까? 이에 대한 각주를 보면 다음과 같다.

 

 

gandhaparibhāvite karaṇḍake  : Srp.II. 317에 따르면, ‘번뇌를 부순 자가 가진 계행의 향기와 비교된다. 배우지 못한 범부의 정신은 흙 묻은 옷과 같다. 세 가지 특징(삼법인)에 대한 명상은 그것을 씻는 세 가지 세척제와 같다.

 

돌아 오지 않는 님(불환자)의 정신은 이 세 가지 세척제로 세탁을 한 것과 같다. 거룩한 경지를 향하는 길의 지혜는 향기로운 냄새가 배어 있는 상자와 같다. 길을 통한 모든 번뇌의 파괴는 옷이 향기 상자에 넣어진 뒤에 세척제의 남은 냄새가 모두 제거 되는 것과 같다.

 

(gandhaparibhāvite karaṇḍake 각주, 전재성박사)

 

 

주석에 따르면 냄새가 배어 있는 옷은 배우지 못한 범부의 정신상태와 같은 것이라 한다. 탐욕, 성냄 등 온갖 오염원으로 가득찬 범부의 옷을 세탁하려면 불환자의 정신으로 세탁해야 함을 말한다. 불환자가 되면 다섯 가지 거친 결박은 제거 되기 때문이다. 특히 탐진치 삼독중에 탐욕과 성냄이 완전히 제거 된 상태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자만’ 등 다섯 가지 미세한 마음의 오염원이 그것이다. 이런 오염원은 아라한이 되어야 없어진다. 경에서 빨래를 마친 옷에서 나는 비누냄새 마저 없애기 위하여 향기가 배어 있는 상자 이야기릏 하였다. 향기가 배어 있는 상자에 빨래한 옷을 넣으면 비누 냄새도 잡을 수 있음을 말한다. 이때 향기가 배어 있는 상자가 아라한의 정신과 같은 것이다. 아라한이 되면 자만 등 미세한 오염원이 남김 없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비교해 보면

 

대승기신론과 상윳따니까야에 향기에 밴다는 이야기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승기시론에서는 훈습을 예로 들었고, 상윳따니까야에서는 향기상자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모두 냄새가 배이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설명하는 목적은 다르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승기신론

상윳따니까야(S22:89)

핵심어

훈습

(熏習)

향기가 밴 상자

(gandhaparibhāvite karaṇḍake)

비유문구

훈습이라는 것은 사람의 옷이 그 자체로서는 냄새가 없지만 사람이 그 냄새를 오랫동안 배게 하면 냄새를 가지게 되는 것과 같다.

아무리 그 옷이 청정하고 깨끗하더라도 아직 거기에는 남아 있는 소금물 냄새나 잿물냄새나 쇠똥냄새가 가신 것은 아닙니다.

오염원의 제거

1) 미혹무명이 계속적으로 영향을 주면 그 마음이 망념으로 물들게 됨.

2) 미혹에 물든 마음이 깨끗하지 않더라도 진여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면 본래의 깨끗한 기능을 회복하게 됨.

세탁물을 향기가 밴 상자에 넣으면 세척제의 남은 냄새가 모두 제거되는 것처럼 거룩한 경지를 향하는 길의 지혜는 향기로운 냄새가 배어 있는 상자와 같음.

 

 

 

이분법적 설명의 대승기신론

 

대승기신론의 경우 마음의 오염에 대하여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주로 나빠지는 쪽에 비중을 두어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지명 스님은 무명이 진여의 마음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망령된 마음이 생기고 그망심이 무명을 더욱 활발히 움직이도록 부추긴다.”라고 설명하였다. 반대로 좋아 지는 길에 대해서는 깨끗한 진여의 마음이 무명을 훈습하면 이미 있던 망심이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게 된다.”라고 설명하였다.

 

이처럼 대승기신론에서는 본래 마음은 청정한 것이나 무명, 망념으로 인하여 오염된 것을 훈습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본래 청정한 마음으로 되돌아 가기 위해서는 청정한 마음을 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본래 깨끗한 마음과 오염된 마음을 대비하여 훈습으로 설명하고 있다.

 

단계적 방법을 제시한 상윳따니까야

 

그러나 상윳따니까야에서는 이분법적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오염원을 제거 하는데 있어서 단계적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이 존재를 윤회하게 하는 열 가지 장애에 대한 것이다. 즉 1) 유신견(sakkāya-diṭṭhi), 2) 회의적 의심(vicikicchā), 3) 계금취(Sīlabbata-parāmāsa), 4) 감각적 욕망(탐욕, kāma-rāga), 5)  적의(성냄paigha), 6) 색계 집착(rūpa-rāga), 7) 무색계 집착(arūpa-rāga), 8) 자만 (māna),  9)  들뜸(uddhacca), 10)  무명(치심, avijjā) 이렇게 10가지이다. 이중 1번부터 5번 항까지를 오하분결이라 하여 거친마음의 결박이라 한다. 특히 4번째의 탐욕과 5번 째의 성냄은  아나함이 되어야 모두 소멸된다. 이를 세탁물로 비유한다면 소금물 냄새나 잿물냄새나 쇠똥냄새 같은 거친 냄새와 같다.

 

다음으로 6번부터 10번 까지 다섯 가지를 오상분결이라 하여 미세한 마음의 결박이라 한다. 특히 자만이나 들뜸의 경우 아라한이 되어야 없어지는 것이다. 이를 세탁물로 비유한 다면 비누냄새와 같은 미세한 냄새와 같다.

 

비누냄새와 향기박스

 

더러워진 옷을 깨끗이 하려면 여려 차례 빨아야 할 것이다. 그 때 마다 거친 때가 제거 될 것이다. 그럼에도 소금물 냄새나 잿물냄새나 쇠똥냄새는 여전히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빨고 또 빤다면 어느 정도 제거 될 지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비누 냄새는 남아 있을 것이다. 비누라는 세척제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그 냄새가 남아 있지 않을 수 없다.

 

비누냄새 마저 제거 하기 위하여 경에서는 향기가 밴 상자(gandhaparibhāvite karaṇḍake)’를 이야기하였다. 향기상자에 넣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향기가 옷에 배여 더 이상 비누 냄새가 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자만을 제거할 것인가?

 

그런데 경에서는 향기상자를 거론 한 것은 사실 자만을 제거하기 위해서 비유로 든 것이었다. 다섯 가지 미세한 낮은 결박(오상분결) 중에서도 자만(māna)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비누냄새와 향기상자를 예로 든 것이다. 그래서 경에 따르면 비누냄새가 자만과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자만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케마까]

벗이여, 이와 같이 어떠한 고귀한 제자가 다섯가지 하부의 결박을 끊었다고 하더라도 다섯가지 집착된 존재의 다발 가운데 미세하게 발견되는 ‘나’라는 자만, ‘나’라는 욕망, ‘나’라는 경향을 아직 끊지 못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다섯가지 집착된 존재의 다발 가운데 일어나는 생멸을 ‘물질은 이와 같고 물질의 발생은 이와 같고 물질의 소멸은 이와 같다. 느낌은 이와 같고 느낌의 발생은 이와 같고 느낌의 소멸은 이와 같다. 지각은 이와 같고 지각의 발생은 이와 같고 지각의 소멸은 이와 같다. 형성은 이와 같고 형성의 발생은 이와 같고 지각의 형성은 이와 같다. 의식은 이와 같고 의식의 발생은 이와 같고 의식의 형성은 이와 같다.’라고 관찰 해야 합니다.

 

(Khemaka sutta-케마까의 경, 상윳따니까야 S22:89, 전재성님역)

 

 

이는 자만의 소멸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다섯가지 집착된 존재의 다발(오온)’ 가운데 미세하게 발견되는 결박에 대하여 라는 자만('asmī'ti māno), ‘라는 욕망('asmī'ti chando), ‘라는 경향('asmī'ti anusayo) 으로 표현 하였다. 키워드는 자만(māna), 욕망(chanda), 경향(anusaya)이다. 이런 미세하고 섬세한 마음의 결박이 세탁물에서 나는 비누냄새와 같은 것이라 하였다.

 

비누냄새가 나는 것은 비누라는 세척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비누 냄새가 날 수 밖에 없다. 그 비누 냄새 마져 제거하는 것이 향기박스이다. 마찬가지로 돌아 오지 않는 자, 즉 불환자가 되기 까지 자만, 욕망, 경향(잠재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라한이 되려면 이 마져 내려 놓아야 한다. 마치 세탁물의 비누냄새를 향기박스로 제거 하듯이, 이들 미세한 마음의 결박을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나를 내려 놓는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라는 자만('asmī'ti māno), ‘라는 욕망('asmī'ti chando), ‘라는 경향('asmī'ti anusayo)을 내려 놓아야 한다고 하였다.

 

어떻게 내려 놓을 것인가?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오온의 발생과 소멸로 설명하고 있다. 나의 몸, 나의 마음이라 여겨지고 있는 물질, 느낌, 지각, 형성, 의식 이렇게 다섯 가지에 대하여 발생과 소멸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라는 자만('asmī'ti māno), ‘라는 욕망('asmī'ti chando), ‘라는 경향('asmī'ti anusayo)이 없어질 것이라 한다.

 

초기불교의 훈습이야기

 

이렇게 케마까 존자가 장로들에게 설명하자 경에 따르면 “이와 같이 법담이 오갈 때에 육십 명의 장로 수행승과 존자 케마까는 집착없이 번뇌에서 벗어나 마음에 의한 해탈을 이루었다.( S22:89)” 라고 설명 되어 있다. 서로 법담을 함으로 인하여 모두 아라한이 된 것이다. 이것이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훈습에 대한 이야기이다.

 

 

 

2013-07-3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