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소통보다 공감(共感)이다

담마다사 이병욱 2013. 8. 7. 17:07

 

소통보다 공감(共感)이다

 

 

 

점심을 먹을 때

 

점심을 먹을 때 가장 곤혹스럽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고민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식당 갔을 때이다.

 

혼자 일하다 보니 점심먹으로 갈 때 늘 혼자 다닌다. 이렇게 혼자 식사를 하다 보니 식당에 들어 가기가 난처 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점심시간에 혼자 테이블을 차지 하고 있으면 영업방해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가급적 일반식당은 가지 않는다. 그대신 큰 카페테리아를 이용한다. 한꺼번에 수 백명이 식사를 할 수 있는 대중식당을 말한다. 가격도 싸고 혼자 밥을 먹어도 부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자주 가는 편이다. 그러나 단점이 있다. 맛이 없다는 것이다. 수 백명 분의 음식을 하기 때문에 집에서 먹는 맛을 느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허다 하다.

 

최근 중국식당을 이용하고 있다. 배달전용의 작은 식당이 아니라 큰 식당이다. 주로 접대용으로 이용되는 고급중국 식당을 말한다. 평일 점심시간에 요일별로 추천메뉴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서 메뉴도 다양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자리가 넉넉하고 또한 맛도 있어서 최근 자주 이용하고 있다. 그 중에 백짬뽕이 있다. 일반 중국집에서 볼 수 있는 빨간 색깔의 자극성이 있는 짬뽕 아니라 문자 그대로 하얀 국물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육수에 해물이 들어가 있어서 시원하고 담백하다. 더구나 깊은 국물까지 있어서 국물을 남김 없이 다 먹을 정도로 맛이 괜찮다. 중국에서 먹어 본 국수맛과 비슷하다.

 

누구나 바쁘다. 그렇다고 하여 끼니를 거르지 않는다. 아무리 바빠도 끼니를 제 때에 먹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점휴업중인 블로그와 카페

 

인터넷에 글을 쓰는 이들이 있다.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글을 쓰는 네티즌 들을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다. 자신의 본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전업작가의 경우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매일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노동이라 볼 수 있지만 자신의 본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일종의 취미라 볼 수 있다 

 

글쓰는 것이 취미라 하여 남는 시간에 글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글을 쓰는 날 보다 쓰지 않는 날이 더 많을 것이다. 그 결과 개점휴업상태가 될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수 많은 블로그나 카페가 있지만 거의 대부분 볼 것이 없다.

 

글을 쓰는 사람중에는 스님도 있고 학자도 있다. 모두 불교라는 본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블로그나 카페를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다. 또 하나의 세상인 인터넷에서 소통하기 위함일 것이다그런데 올려져 있는 글을 보면 오래 전의 글이 대부분이다. 최근에 올려진 글을 보기 힘들다. 사실상 방치 된 것이나 다름 없다. 개점했으나 휴업인 상태와 같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그것은 인터넷에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하여 그다지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라 본다. 가장 큰 이유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바빠서 일 것이다. 또 인터넷에 글을 쓰는 것에 대하여 비중 있게 생각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인터넷에 글을 쓴 다는 것은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더구나 매일 글을 올린다는 것은 습관화 되지 않으면 쉽게 되지 않는다. 그런데 여러가지 이유 등으로 인하여 불교를 본업으로 하는 스님이나 학자의 사이트에 새로운 글이 올라 오지 않는 다면 어떻게 될까? 사이트를 찾는 불자들은 헛탕을 칠 것이다. 또 오늘은 올렸겠거니 하며 잔뜩 기대하고 찾아 가지만 '역시나'이다. 그러다 몇 달만에 새로운 글이 올라 오면 감동한다. 그래서 그 다음 날 또 찾게 된다. 그러나 글이 올라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클릭한다. 비록 헛탕 칠지라도 무언가 하나 건질 수 없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유명 스님들이나 학자의 집을 방문한다.

 

아무리 바빠도 글을 올린다

 

아무리 바빠도 글을 올린다. 지금 일이 겹치기로 있다고 하여 일먼저 하고 시간이 나면 글을 올리지는 않는다. 일과 글쓰기는 동등한 것이다.

 

글쓰기도 하나의 습관이다. 습관이 들면 어떻게 해서든지 글을 올리고야 만다.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면 된다. “시간이 없어서라고 말하는 것은 핑계에 가깝다. 아무리 바빠도 끼니를 거르지 않듯이 글쓰기 하는 것 역시 시간을 내면 할 수 있다. 시간이 없어서 정 쓸 것이 없으면 부처님 말씀 한 구절이라도 올려 놓으면 된다. 공감(共感)’하는 글을 쓰고자 함이다.

 

 

 

 

共感

 

 

 

인터넷공간은 현실공간이나 다름 없다. 누구나 들락날락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현실공간처럼 소통이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채팅이나 카톡 등의 수단이 있긴 하지만 이는 일대일에 한정된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장문의 글은 상호 소통하기가 쉽지 않다. 댓글이 달리지만 일일이 답을 해 주지 못하는 것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소통 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글쓰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공감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감하는 글을 쓰는 것이다.

 

왜 공감(共感)인가

 

누구나 바쁘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빠뜨리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끼니이다. 끼니때가 되면 아무리 바쁜 자일지라도 거르지 않는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글쓰기를 끼니와 같은 개념으로 본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글쓰기를 빼 먹을 수 없다. 끼니때가 되면 배가 고프듯이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글이 고프기 때문이다.

 

블로그나 카페를 만들어 개점 휴업상태로 만들어 놓은 스님들과 학자들은 지금이라도 글을 써야 한다. 매일 방문하는 사람을 위하여 글을 올려 놓아야 한다. 시간이 없으면 일주일에 하나라도 올려 놓아야 한다. 그래서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글을 올려 놓아야 한다. 그렇게 완성된 훌륭한 글을 접하였을 때 공감할 것이다.

 

시간이 허락 되지 않아 정 올릴 것이 없다면 게송이라도 하나 올려 놓으면 된다. 어느 것이라도 좋다.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은 어느 것 하나 공감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범부들이 올려 놓은 것 보다 존경받는 스님들이나 학자들이 올려 놓으면 더 공감할 것이다.

 

 

 

 [세존]

“위대한 선인께서 선포했듯,

나눔의 과보가

얼마나 큰 열매를 가져오는지

뭇삶들이 안다면,

 

인색의 더러움을 없애고,

청정한 마음으로 고귀한 님에게

알맞은 시간에 보시하리라.

거기에 주어진 것은 큰 열매가 있으리.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주고

받을 가치가 있는 님에게 보시하고

이 세상에 죽어서

시주들은 천상으로 간다.

 

그들은 천상에 가서

거기서 감관의 쾌락을 갖추고

인색을 벗어나

나눔의 과보를 즐긴다.”

 

(보시와 나눔의 경, 이띠웃다까 It26, 전재성님역)

 

 

 

2013-08-0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