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대불사(大佛寺)에서 본 불상, 불교성지 교하고성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13. 8. 9. 16:02

 

 

대불사(大佛寺)에서 본 불상, 불교성지 교하고성에서

 

(실크로드 불교유적 성지순례 21, 교하고성, 2013-06-03)

 

 

 

6 3일은 여행 8일 째 되는 날이다. 여행도 막바지에 접어 들 때이다. 이날 첫 번째 일정은 교하고성(交河故城)’방문이다. 날씨가 덥기 때문에 오전에 먼저 교하고성을 보기로 한 것이다. 교하고성은 면적이 크고 걸어 다닐 일이 많기 때문에 뜨거운 오후보다 오전 일찍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가이드의 권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하고성은 어디쯤

 

교하고성은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위성지도로 보면 다음과 같다.

 

 

 

 

투루판시(A)-교하고성(B) 9.5Km

 

 

 

교하고성은 투루판 시내에서 서쪽방향으로 약 10키로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교하(交河)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두 개의 강이 교차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교하라 한다. 두개의 큰 하천 사이에 마치 섬 모양의 땅에 형성된 것이 교하고성이다.  

 

현지인들의 아침시장

 

날씨는 맑고 공기는 상쾌 하였다. 건조한 지대이기 때문에 습기가 없어서 덥기는 하지만 상큼한 날씨이다. 버스로 지나가는 길에 현지인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침에 장이 섰는지 농산물을 사고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소박한 분위기

 

교하고성은 시내에서 10키로 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보니 금방 도착하였다. 입구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노점이 형성되어 있다. 햇볕을 차단하기 위한 모자에서부터 현지인들이 입는 옷, 그리고 기념품 등 다양한 물품을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매우 소박한 분위기이다.

 

 

 

 

 

 

 

 

 

 

 

세계문화유산등재 성공 유치를 기원하며

 

입구에 들어가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현수막이다. 빨간 글씨로 대천사십천?보신유성공(大干四十千?保申遺成功)’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대천사십천?보신유성공(大干四十千?保申遺成功)’는 무슨 뜻일까?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세계문화유산 성공 유치를 기원하는 문구라 한다. 세계문화유산 등재하는데 있어서 앞으로 400일 남았는데, 그 기간 안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라 한다.

 

왜 번번히 떨어졌을까?

 

가이드설명에 따르면 여러 번 세계문화유산 등재신청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번번히 떨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이유는 보수작업을 너무 많이 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문화재는 원형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벽돌을 쌓는다든가 무너진 곳을 복원하는 등 원형을 변형되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기 힘들다고 한다.

 

먼저 본 고창고성 역시 보수의 흔적이 많았다. 특히 설법당이 그랬다. 현장스님이 설법 하였다는 설법당을 보면 한 눈에 보아도 인위적인 흔적을 가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로 그런 점이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면 어떤 점이 좋을까? 가장 큰 이점은 지역경제의 활성화이다. 등재되면 수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올 것이기 때문에 대대적인 개발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되면 일자리 창출도 되고 지역경제도 살아 날 것이기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지정에 목을 매달고 있는지 모른다.

 

만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된다면 고창고성, 베제클리크 천불동 등과 함께 묶여 등재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반적으로 이곳 저곳 산재해 있는 유적을 한데 묶어서 한꺼번에 지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항공모함 같은 교하고성

 

교하고성 입구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이 성터 조감도이다. 두 강이 교차 하는 곳에 마치 여의도와 같은 섬 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이 그림을 보고 잎파리모양 같다고 한다. 강 가운데 있기 때문에 마치 강물에 떠 있는 커다란 잎파리를 연상해서 일 것이다. 그런데 모습을 보니 항공모함처럼 보인다.

 

항공모함은 온갖 것들을 다 갖추고 있다. 다큐 프로를 보면 항공모함에는 약 5천명의 장병들이 생활한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비행기를 포함하여 수 천명의 사람들이 생활 할 수 있는 편의 시설은 다 갖추고 있다고 한다. 영화관, 맥도날드 햄버거 집 사람들에게 필요한 시설은 다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천명이 사는 삶의 공간이자 동시에 움직이는 섬과 같다.  

 

교하고성의 사진을 보니 마치 항공모함처럼 생겼다. 그런데 교하고성 역시 항공모함 처럼 모든 시설이 다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군사지역에서부터 수공예지역, 종교지역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더구나 당나라 시대에는 안서도호부가 있던 곳이다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잎파리 모양이 아니라 항공모함처럼 보인다.

 

 

 

 

 

 

 

난공불락의 천연요새

 

전략적 요충지에 세워진 교하고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왜 난공불락일까? 강이 성을 휘감아 돌고 있어서 성 주변에는 천연의 해자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터는 강에서 수십미터 높이에 있다. 그래서 천연의 요새이다. 더구나 주 출입문은 남쪽에만 있어서 남쪽만 지키면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런 교하고성은 한눈에 보아도 난공불락의 천연요새이다. 이를 위성사진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사진을 보면 북서에서 남동으로 사선을 그리듯이 형성되어 있다. 긴쪽의 길이가 약 3.5키로미터 정도 되고, 폭은 600미터 정도 된다. 실제로 강안을 보면 자연적으로 형성된 절벽이 수십미터에 달한다.

 

 

 

 

이와 같은 난공불락의 천연 요새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까?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18,000명이 살았다고 한다. 고창고성이 2만명이라 하였는데 거의 비슷한 규모라 볼 수 있다.

 

남쪽은 군사지역

 

교하고성은 남쪽문에서부터 관람이 시작 된다. 남쪽문은 두 개의 강이 다시 합류 되는 곳이 있다. 그리고 남쪽은 메인 출입구이다. 남쪽문에 들어서면 중앙대로가 보이는데 북쪽 까지 이어져 있다.

 

 

 

 

남쪽문 입구를 들어서면 볼 수 있는 것이 커다란 동굴처럼 보이는 유적이 보인다.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군사들이 머물던 곳이라 한다. 그래서 남쪽 구역은 주로 군대가 주둔하던 곳이다.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는데

 

길게 형성되어 있는 섬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뉜다. 메인 출입문이 있는 곳이 있는 남쪽 구역은 군사구역이고, 중간은 왕궁과 관청과 수공예 구역이고, 북쪽은 사원구역이라 한다.

 

 

 

 

 

13세기 몽고의 침략으로

 

교하고성은 흙으로 된 구조물만 보인다. 돌이나 나무 등이 일체 보이지 않는다. 사막지역이라 석재나 목재 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흙을 지푸라기 등과 섞어서 만든 흙벽돌로 건물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13세기 몽고의 침략으로 철저하게 파괴되어 사람들이 살지 않은 채 방치 되었다. 거의 8백년이 흐른 지금 파괴되어 흔적만 남아 있다. 그럼에도 평지에 있는 고창고성보다 상태가 양호 하다. 왕궁 터에 가면 아직도 흔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표면 아래에 있는 왕궁터

 

성의 중앙에 있는 왕궁터가 있다. 특이하게도 지표면 아래에 있다.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지표 위에 건물을 지은 것이 아니라 땅을 파고 집을 지었다고 한다. 이런 방식은 교하고성의 일반적인 건축방식이다. 그래서 왕궁터로 가려면 계단을 타고 밑으로 내려 가야 한다.

 

 

 

 

계단을 내려 가자 정방형의 너른 마당이 보인다. 땅을 파내려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사방이 모두 흙벽이다.

 

 

 

 

사방의 흙벽에는 통로가 뚫려져 있다. 특히 남쪽 면에는 동굴입구처럼 생긴 출입구가 있다. 그곳을 지나면 또 하나의 공간이 보인다.

 

 

 

 

 

 

성 내부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

 

이 공간은 무엇일까?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귀중품을 보관하던 창고라 한다. 그래서 특수하게 만들어진 이중으로 된 문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성 내부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라 한다.

 

 

 

 

 

왕궁터 사방에 벽에는 마치 동굴처럼 생긴 방이 많이 보인다. 땅을 파내려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동굴처럼 생긴 방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것이라 보여진다. 그런 방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 할 것임에 틀림 없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메마른 산

 

왕궁터를 나왔다. 다시 지표면에 올라서자 넓은 대지 위에 유적이 펼쳐져 있다. 저 멀리 산이 보인다. 그러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메마른 산이다.

 

 

 

 

 

 

 

 

 

 

 

 

 

 

 

200여명의 아기무덤터

 

가이드는 한 곳으로 안내 하였다. 섬의 중앙에 있는 왕궁-관청구역안에 있는 하나의 무덤이다. 200여명의 아기무덤터라 한다.

 

 

 

 

왜 이곳에 아기들 무덤이 있었을까?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전염병이 돌아서 라든가 아이가 환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집단 매장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몽고침략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카라코야고창국(또는 회골고창국, 천산위구르 고창국, 856-1209)이 몽고의 침략을 받아 망했는데, 그 때 200여명이 아기들이 집단 매장 되었다고 하는 가설이다. 그러나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고 한다.

 

 

 

 

땅을 파내려가 형성된 도로

 

교하고성은 남에서 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길 역시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그 중 섬 중앙의 동쪽의 관청 구역의 길이 있다. 이 길을 보면 땅을 파 내려가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 사는 곳이 지표면에서 땅을 파내려가 형성 되어 있듯이 주 도로 역시 땅을 파내고 만들었다. 좌우에 높다란 흙벽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물의 흔적

 

교하고성은 무척 크다. 긴 쪽의 길이가 3.5키로 미터에 달하고 폭도 600미터에 달하기 때문에 하나의 작은 도시라 볼 수 있다. 사람이 사는 도시이었기 때문에 우물도 있다. 그런 우물 흔적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두 막아 놓아 물을 볼 수 없었다. 동쪽 문 가까이에 있는 우물의 흔적을 보면 다음과 같다.

 

 

 

 

 

 

 

 

 

 

 

동문쪽을 보니

 

교하고성은 난공불락의 천연요새와 같다고 하였다. 동쪽 문이 있는 곳을 보니 실감난다. 문밖을 보니 낭떨어지이다. 하천에는 나무가 무성하여 물이 많지 않지만 옛날에는 강물이 휘감아 돌아 요새 역할을 했을 것이다.

 

 

 

 

 

 

 

 

 

 

 

 

 

 

 

 

 

 

 

 

 

 

 

 

불교사원 구역으로

 

섬의 중앙인 관청 구역을 빠져 나와 북쪽으로 향하자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북쪽에 위치한 불교사원 구역이다.

  

 

 

 

 

교하고성은 남쪽의 군사구역, 중앙의 왕궁-관청-수공예 구역, 북쪽의 불교사원 구역 이렇게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불교 사원구역에 대한 위성 사진을 보면 다음과 같다.

 

 

 

불교사원 구역

 

 

 

 

사진을 보면 모두 세 개의 사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북쪽에 50미터 가량 되는 정방형의 ‘동소불사(東小佛寺)’가 있다. 동쪽에 있는 작은 절이라는 뜻이다. 서쪽을 보면 약 30미터 정방형의 작은 사원이 있다. 이를 ‘서북소불사(西北小佛寺)’라 한다. 그리고 남쪽에 매우 큰 사원이 있다. 약 110미터 길이에 폭이 70미터에 달하는 직사각형 모양의 큰 절이다. 이를 ‘대불사(大佛寺)’라 한다.

 

교하고성의 하이라이트는

 

교하고성에는 동소불사(東小佛寺), 서북소불사(西北小佛寺, 대불사(大佛寺) 이렇게 세 개의 절터가 있다. 그런데 다른 유적과 비교하여 원형을 잘 유지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이 파괴 되긴 하였지만 형체를 알 수 있다. 이는 거의 허물어져 간신히 형체만 보여 주고 있는 다른 여타 유적과 다르다. 그래서 교하고성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세 개의 사원이라 볼 수 있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 뜻밖의 수확이라면 고창고성과 교하고성이다. 단지 옛날 성터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알고 보니 두 성 모두 ‘불교유적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이드가 안내 하는 최종 종착지가 모두 사원터 이었다. 

 

동소불사(東小佛寺)

 

동쪽길을 따라 가다 가장 먼저 본 것이 동소불사이다. 북쪽 너른 터에 자리 잡고 있다.

 

 

 

 

동소불사는 길이와 폭이 약 50미터 가량의 정방형이다. 그래서일까 들어가 보니 꽤 넓다. 중앙에는 마당이 있고 사방에 수 많은 방이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마치 50미터 길이의 큰 집을 보는 것 같다. 

 

 

 

 

 

 

 

 

 

 

 

 

 

서북소불사(西北小佛寺)

 

저 멀리 서북소불사가 보인다. 동서불사 보다는 작다. 그러나 인상적인 것은 탑이다. 그 탑에는 불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탑의 흔적만 보일 뿐 불상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서북소불사에 대한 푯말을 보았다. 4세기에서 5세기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0세기에 복원 되었다고 한다. 6세기부터9세기까지 국씨고창국과 당나라 지배 시절에 융성기를 맞았으라 본다. 그 후 위구르 제국의 시대를 거쳐 불교를 국교로 하는 카라코야 고창국(회골고창국, 856-1209) 시절에 복원 되었을 것이다.

 

 

 

 

 

모두 대불사(大佛寺)로 통하나?

 

교하고성의 하이라이트중의 하이라이트는 대불사(大佛寺)이다. 큰 가람이라는 뜻의 대불사는 고창고성에도 있다. 이런 영향이어서일까 우르무치 홍산공원 내에 있는 절 이름도 대불사이다. 서역에서는 절이름이 대불사로 통하는 것 같다. 마치 우리나라 절 이름 중에 반야사 백련사와 같은 명칭이 많듯이 이곳 서역에서는 절 이름은 모두 대불사 하나로 통용되는 것 같다.

 

 

 

우르무치 홍산공원 대불사

 

 

매우 큰 절 대불사(大佛寺)

 

대불사는 매우 큰 절이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110미터에 70미터 가량 된다. 더구나 외곽이 성채 처럼 되어 있다. 대불사 유적을 위성사진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대불사 위성사진

 

 

성채처럼 사방이 벽으로 쌓여 있고 중앙에 너른 마당이 있다. 그리고 사방 벽면에 수 많은 방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불사 중앙광장은 무척 넓다. 위성사진으로 보아도 한 쪽 길이가 100미터가 되니 작은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 만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무언가 흔적이 보인다. 대불사 경내에 어떤 상징물을 세워 놓았던 흔적이다. 아마도 사리탑이 있던 자리라 보여진다.

 

 

 

 

 

대불사 금당터

 

대불사 경내에 가장 중요한 장소가 있다. 그것은 북쪽에 위치한 오늘날의 금당터라 보여진다. 불상이 모셔져 있는 가장 중요한 장소로서 한국식으로 말하면 대웅전이 있던 곳이다.

 

금당터 안으로 들어 가 보았다. 파괴 되어 지붕이 보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지붕이 덮여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금당터 안에는 탑이 하나 서 있다. 탑돌이를 할 수 있도록 금당터 중앙에 위치해 있다. 

 

 

 

 

 

놀랍게도 불상의 흔적이!

 

일부 복원한 탑의 상층부에 감실이 있다. 놀랍게도 불상의 흔적을 발견하였다. 몽고의 침략으로 철저하게 파괴 되고, 이슬람화 되면서 파괴된 도시이지만 불상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감실에는 여러 개의 불상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부분 머리 부분이 파괴 되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몸체와 팔, 다리 부분은 남아 있어서 이것이 불상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머리 잘린 불상

 

관광객들은 주어진 시간에 내에 유적을 둘러 보고 만다. 불교유적지도 마찬가지이다. 불자가 아닌 사람들은 대충 보고 서둘러 빠져 나간다. 그러나  불자들은 다르다. 일종의 성지순례 개념으로 생각하여 가급적 오래 머물고 싶어 한다. 불상이라도 있으면 삼배를 하려 한다거나 간단한 불교의식을 행한다.

 

교하고성 대불사에는 불교의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금당에는 불탑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신심있는 불자들은 탑돌이를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불상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고창고성에서는 감실에 벽화 형식으로 어렴풋이 불상의 흔적을 볼 수 있었지만, 이곳 교하고성에서는 불상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만 두상이 파괴 되어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그나마 이정도만이라도 남아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 최대의 수확이라 본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교하고성은 단순한 성터가 아니다. 알고 보니 교하고성은 불교유적지이자 동시에 불교성지이었다는 사실이다.

 

 

 

교하고성 대불사 금당터 감실의 불상

 

 

 

 

대불사에서 시작된 중앙대로

 

교하고성 위성 사진을 보면 하나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대불사가 교하고성에서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루 미루어 알 수 있는 사실은 불교가 매우 융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마치 서울의 한 복판인 경복궁에 큰 사원이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대불사에서 시작 된 중앙대로가 남쪽 문까지 죽 이어져 있다.

 

 

 

 

중앙대로는 대불사에서부터 시작 된다. 마치 세종로가 시작되는 곳이 경복궁인 것처럼 교하고성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대불사가 있다. 

 

대불사 대탑

 

대불사 입구에 광장이 하나 있다. 매우 너른 광장이다. 행사를 하면 수천명 수용 가능하리라 본다. 그런데 광장 남쪽 면에서 하나의 커다란 탑의 흔적이 있다. 이를 대불사 대탑이다. 

 

 

 

 

 

 

 

 

 

 

대불사 대탑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아마도 사리가 있었을 것이다. 탑은 사리숭배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있었다면 불상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매우 커다란 불상이 있었을 것이라 보여 진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불자들은 순례를 자주 다닌다. 그래서 순례다니는 것이 중요한 신행활동의 일부가 되었다.

 

불자들이 순례를 가면 대게 세 곳의 절을 들른다. 이를 다른 말로 삼사(三寺)순례라 한다. 때로 이사(二寺)순례가 되기도 하지만 마음 먹고 떠난 순례에서 한 곳만 보기가 아쉬워서 일 것이다.

 

삼사순례를 다니다 보면 이렇게 생각 할 때가 있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다시 오지 못할 것 같아 참배 할 때 시퍼런 지폐를 불전함에 넣는 경우가 많다.

 

해외성지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보고 더 느끼고자 한다. 그런데 뜻 밖에도 단순한 유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성지로 바뀌었을 때 감격하게 된다. 고창고성과 교하고성이 그런 케이스에 해당된다.

 

 

 

 

스님의 대중공양

 

고창고성과 교하고성에 대한 여행사의 상품소개에 따르면 단지 고성을 둘러 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와서 보니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절터가 있고 불상의 흔적이 있었기 때문에 불자들에게는 성지로 보였다.  그래서일까 교하고성 투어가 끝난 다음에 함께 한 스님이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하였다.

 

대중공양이란 불교신자가 여러 승려에세 음식을 차려서 대접하는 일이라고 정의 되어 있다교하고성 투어가 끝난 후 스님이 대중들에게 공양한 것이다. 수 키로미터를 걸어서 다리가 피곤하기도 하고, 오전이라도 햇볕은 따가웠기 때문에 모두 지쳐 있었는데, 이런 26명의 대중들을 위하여 스님이 수박 두 통을 공양한 것이다. 그래서 교하고성 입구의 상점에서 수박파티가 벌어졌다.

 

대중들 중에 불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 여행사가 합쳐진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였다. 또 종교 또한 모두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스님의 공양으로 인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공양한 이유는 교하고성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불교성지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2013-08-0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