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불교광장식 하나마나한 선거가 되었을 때, 민주주의의 위기와 불교의 위기

담마다사 이병욱 2013. 8. 14. 18:56

 

불교광장식 하나마나한 선거가 되었을 때, 민주주의의 위기와 불교의 위기

 

 

 

유리지갑을 털려다

 

중산층개념은 무엇일까? 학력, 주거지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소득수준으로 나누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면 정부가 생각하는 중산층 개념은 무엇일까?

 

최근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연소득 3,450만원 이상에 대하여 중산층으로 규정하였다. 그래서 이들 계층에 대하여 세수확대를 목표로 하여 증세를 시도 하였다. 그러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월급생활자들의 유리지갑을 털어 가려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우리사회의 중추라고 볼 수 있는 40-50세대들의 유리지갑을 털어 가려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였다.

 

어떤 이는 이렇게 텉어간 세금을 노인들의 복지비용으로 전용할 것이라 하였다. 이는 다름 아닌 표를 의식한 것이다. 노인들 대다수는 보수적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수에 기반을 둔 현 집권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 놓았다.

 

이렇게 이슈화 할 조짐을 보이자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철회 하였다. 그래서 연소득 3,450만에서 5,500만으로 상향 조정하였다. 그러나 상위 1프로에 대한 부자증세는 여전히 시행하고 있지 않다. 보수정당의 지원 세력인 극소수의 부자에 대한 증세는 시행하지 않은 채 여전히 월급 생활자의 유리지갑만을 털어 가려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하나마나한 선거가 되었을 때

 

지난 8 10일 토요일 처음으로 촛불집회에 나가 보았다. 벌써 여섯 번째로 열리고 있는 촛불문화제에 수 많은 시민들이 참석하였다. 주최측에 따르면 10만명이라 한다. 경찰측에서는 1만 6천명이라 한다. 그러나 매스컴에서는 5만명으로 보고 있다. 왜 그 많은 사람들이 그 더운 여름날씨에 몰려 들었을까?

 

 

 

 

 

 

 

 

공통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라 본다. 그것은 선거가 무용지물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하면 하나마나한 선거가 되어 버리고 선거에 의한 혁명은 영원히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가기관의 개입으로 인하여 하나마나한 선거가 되었을 때 이는 선거혁명도 이룩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도 종말을 고한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하지만 투표를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촛불을 든 것이다. 하나마한 선거는 또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이다.

 

 

불교판 하나마나한 선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는 직선제로 치러진다. 말이 직선제이지 사실상 간선제나 다름 없다. 선거인단에 의한 투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단체가 하나 생겨났다. ‘불교광장이라는 단체로서 오로지 선거를 앞두고 결성된 단체이다. 이미 해체 되었다고 선언된 여려 종책 모임이 모여 또 다른 단체를 만든 것이다. 그래서 선거 없이 총무원장을 추대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불교판 하나마나한 선거이다. 이런 행위에 대하여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다.

 

민중봉기가 일어날 것

 

미디어붓다에 따르면 불교사회정책연구소 법응스님은 불교광장 앞으로 보낸 공개질의서를 발송하였다. 그 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한국불교의 현실을 잘 나타내 준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 설명합니다.

 

현행 대통령 선거법(제도)을 무시하고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과 각 부처의 장관, 광역시장과 도지사들 그리고 여야의원 및 정치권 외곽중진들이 대통령선거를 하면 국론이 분열되고 각 당 공히 천문학적인 선거자금이 소요되니 대통령 추대위원회를 구성해서 대통령을 선출한다고 하면 민주주의의 역행이니, 헌법에 위배이니 하며 국민적 봉기가 발생 할 것입니다. 이 비유와 ‘불교광장’의 행보가 다를 바가 무엇인지?

 

이상 교구본사주지스님들과 공동대표 스님들께 질문을 한바, 앞서 당부드린 바와 같이 한 종도의 공개민원이라 여기시고 공개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법응스님, 법응스님 ‘본사주지-불교광장 공동대표들에 공개질의, 미디어붓다 2013-08-12)

 

 

법응스님은 불교광장의 초법적인 행태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다. 종헌종법에 따른 직접선거 절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여 추대로 총무원장을 옹립하겠다는 발상에 대하여 대통령 추대위원회를 구성해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식과 다를 바 없음을 강조하였다. 국민들이 직접선거로 선출하는 국민투표 방식을 배제하고 일부가 모여 대통령 추대위원회를 구성하여 대통령을 뽑았을 때 국민들이 이를 용납하겠느냐는 것이다. 아마도 민중봉기가 일어날 것이라 하였다.

 

 

 

불자봉기가 일어날 것

 

작년 대선 당시 국정원은 대선에 개입하였다. 이를 국정원 댓글사건이라 한다. 그렇다면 왜 이 사건이 문제 되는가? 이는 국기문란에 해당 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직접 투표로 뽑는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였다는 것은 투표하는 행위를 무용지물로 만들었고 하나마나한 선거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촛불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총무원장을 선출하는데 있어서 직접선거를 무력화 시키려는 시도가 일어 났을 때 불자들의 봉기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총무원장선거를 무력화 시키려는

 

미디어붓다에서 이례적으로 이학종기자가 컬럼을 썼다.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니 불교관련 인터넷 신문을 수 년간 보다 보니 매우 친숙한 기자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면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글로서 접한 사이일 뿐이다.

 

이학종 기자는 작심한 듯이 기사를 썼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총무원장선거를 무력화 시키려는 불교광장의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기자의 글에서 행간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불교광장 대변인 덕문 스님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매우 위험하다. “선거로 간다면 이 자리(불교광장 후보추대위를 지칭)는 의미가 없다”는 그의 발언은 ‘선거로 가지 않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공정선거를 공공연하게 방해하는 발언에 대해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해야할 총무원과 중앙선관위가 나서야할 사안으로 보인다. 선거로 가고 가지 않고는 불교광장의 권한이 아니다. 불교광장 대변인은 이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무슨 권한으로 종헌종법에 규정된 선거를 막겠다는 것인가.

 

( [이학종 칼럼] 화합 포장한 야합행위 중단해야, 미디어붓다 2013-08-12)

 

 

이학종 기자의 컬럼에서 주목한 것은 덕문스님이다. 불교광장 대변인으로 있는 덕문스님이 “선거로 간다면 이 자리(불교광장 후보추대위를 지칭)는 의미가 없다”는 발언을 하였는데, 이는 선거를 하지 않겠다는 발언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자승스님이 한 번 더 할 수도

 

한편 덕문스님은 불교포커스에서 인용된 기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고 한다.

 

 

12일 오후 1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나무 찻집에서 기자회견을 연 장명스님은 먼저 “이 자리는 불교광장이나 옛 무량회와는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마련한 자리”라고 전제하고 “불교광장 출범의 전제조건이 원장스님의 불출마라고 알고 있었으나 최근 덕문스님은 ‘백지상태’라고 말해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무량회가 불교광장으로 연대한 가장 중요한 명분이 원장스님의 불출마인 만큼 이 부분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 장명스님 "자승스님 불출마 명확히 밝혀야", 불교포커스 2013-08-12)

 

 

덕문스님과 불교광장 대변인을 맡고 있었던 장명스님이 대변인 소임을 탈퇴하면서 말한 기사에 대한 내용이다.

 

기사에 따르면 장명스님은 매우 중요한 말을 하였다. 그것은 현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거취에 대한 것이다. 자승 스님은 지난해 승려도박 사건이 일어났었을 때 몇 차례 차기 총무원장선거에 불참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덕문스님은 백지상태임을 강조하였다. 이말음 무슨뜻일까? 자승스님이 한 번 더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 불교사의 비극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

 

이런 발언에 대하여 이학종 기자는 컬럼에서 다음과 같이 기고하였다.

 

 

현 총무원장이 재임을 할 개연성이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다. 지난 해 도박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이미 여러 차례 차기 총무원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뜻을 밝힌 것으로 다수 불자들과 국민들은 이해하고 있다.

 

사실 사건의 파장으로 볼 때 당시에 퇴진해도 부족할 상황이었지만 책임을 지는 듯한 발언으로 자리를 보전한 것을 다수 불자와 국민들은 잊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다시 출마를 할 수도 있다는 말이 솔솔 새어나오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불교의 미래가 암담하게 다가온다. 현 총무원장의 재임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한국 불교사의 비극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 [이학종 칼럼] 화합 포장한 야합행위 중단해야, 미디어붓다 2013-08-12)

 

 

만일 자승스님이 약속을 깨고 다시 총무원장을 한 번 더 하고자 한다면 이는 한국불교역사의 비극으로 기록될 것이라한다. 지난 1994년과 같은 사태를 불러 올 것이라 한다. 각목과 폭력이 난무하고 전세계에 생중계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한국불교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렇다면 백지출마론을 말하며 사실상 자승스님을 또 다시 총무원장으로 옹립하려는 불교광장 대변인 덕문스님은 누구일까?

 

덕문스님은 누구일까?

 

미디어붓다나 불교포커스에서는 덕문스님이 단지 불교광장대변으로만 소개 되어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기사의 내용을 보면 왜 덕문스님이 후보백지화론을 주장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반면 성호 스님은 “승랍을 마음대로 조작하여 조계종의 최고 책임자가 된 것은 종단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참으로 크나 큰 불행이다”며 “더구나 총무원내에 속가 조카인 덕문 스님을 호법부장의 소임을 맡기는 것은 승려법 제51조 제2항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브레이크뉴스, 자승스님 승랍·학위 조작설 어디까지 진실인가? 2010/3/15)

 

 

작년 승려도박 사건이 일어 났을 때 억대도박설을 퍼뜨린 성호스님이 인터넷신문서 한 말이다. 기사에 따르면 덕문스님은 현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속가 조카이다. 자승스님과 덕문스님은 혈족 관계에 있는 것이다.

 

믿을 사람은 가족 밖에 없다는데

 

흔히 하는 말 중에 믿을 사람은 가족 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작은 회사에는 가족들이 많다. 직계가족이나 친인척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주로 돈을 관리하는 경리 파트인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어도 가족만은 믿기 때문이다.

 

가족회사는 일장일단이 있다. 그러나 단점이 더 많다. 친인척들이 포진한 회사에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올라가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재가 몰리지 않는다.

 

가족 회사치고 커 나가는 회사가 드믈다. 반면에 가족과 친인척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회사도 있다. 그래서 능력에 따라 대우해 준다. 그렇게 되면 인재가 몰려 든다. 벤처 기업에서 성장한 회사들 대부분이 이런 케이스이다. 이로 보았을 때 가족이나 친인척 등 혈연 또는 지연으로 뭉쳐 진 회사 치고 잘 되는 회사는 없다. 불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불교의 사당화

 

자승스님의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 불교광장이라 한다. 그런데 대변인이 덕문스님이다. 자승스님의 속가의 조카로 알려진 덕문스님이 불교광장의 입을 맡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마치 회사에서 가족과 친인척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가족회사를 보는 것 같다.

 

그런 덕문스님이 “선거로 간다면 이 자리(불교광장 후보추대위를 지칭)는 의미가 없다”라 하여 하나마나한 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다. 더구나 후보자에 대하여 백지에서 다시 시작 해야 한다라고 말하여 사실상 자승스님의 재임을 염두에 둔 말을 하였다.

 

이와 같은 발언을 한 덕문스님에 대하여 교계 어느 인터넷신문도 덕문스님이 자승스님의 속가 조카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알고도 모르는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진짜 몰라서 말하지 않는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한국불교가 사당화 되었다는 것이다. 도박, 은처, 룸살롱 출입, ,MB선거 운동 지원 등 숱한 의문과 의혹과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자승스님이 또 다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자리에 오른다면 한국불교는 어떻게 될까?

 

비구 아닌 자가 총무원장을 하면

 

법응스님은 어느 기고문에서 다음 총무원장스님은 비구스님이 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비구 아닌 자가 총무원장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 반승반승은 혐오의 대상이다. 그래서 계를 지키지 않는 반승반속에 대하여 청정도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1)오랫동안 처참한 곳의 고통을 받기 때문에 그와 접촉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2)자기에게 시물을 보시한 사람들에게 큰 결과를 생기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3)여러 해된 오물 구덩이처럼 청정해지기 어렵다.

(4)화장터에서 가져온 나무처럼 [승과 속의] 둘 모두로부터 제외된다.

(5)비구라고 주장하지만 비구가 아닌 것이 마치 소의 무리를 따르는 당나귀와 같다.

(6)마치 모든 사람들의 적인 것처럼 항상 동요한다.

(7)마치 죽은 시체와 함께 살 수 없는 것처럼 그와 함게 살 수 없다.

(8)비록 배움 등의 덕을 가졌더라도 동료 수행자들의 존경하는 바가 되지 않나니

마치 화장터의 불이 바라문들의 존경하는 바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9)수승한 법을 증득할 수 없나니 마치 장님이 색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10)정법에 대해 희망이 없나니 마치 천민의 아들이 왕위에 희망이 없는 것과 같다.

(11)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고통스럽다.

 

 

(청정도론 제1장 계, 151)

 

 

 2013-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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