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번뇌와 108느낌은 어떻게 다른가
이고득락(離苦得樂)
행복을 다른 말로 하면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광고멘트에서도 “지금 이 순간을 즐겨요!”라는 말이 있듯이 행복은 즐기는 것과 동의라 볼 수 있다. 이는 대승불교에서 불교의 목적에 대하여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고 보는 것과도 같다.
이고득락에서 ‘락’자는 ‘즐길 樂(락)’자로서 빠알리로 수카(sukha)에 해당된다. 수카는 ‘pleasant(유쾌한), happy(행복한); happiness(행복), pleasure(즐김)’ 의 뜻이 있기 때문에, 수카는 ‘행복’이라는 뜻 외에도 ‘즐긴다’라는 뜻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고득락이라고 함은 지금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에 즐기라는 말은 없다. 세간에서 말하는 즐거움은 괴로운 것과 같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즐거움 그 자체는 영원한 것이 아니어서 오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즐거운 것은 괴로운 것이다
즐거움 즐거운 조건이 발생하여 일시적으로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조건이 소멸되면 즐거움은 사라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즐거움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즐거움이 소멸 되었을 때 괴로운 느낌을 받는다. 이처럼 즐거움은 오래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즐거움을 괴로움의 범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일체의 형성된 것은 괴롭다(Sabbe saṅkhārā dukkhā, Dhp278)” 라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Rūpā saddā rasā gandhā
phassā dhammā ca keval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ca
yāvatatthīti vuccati.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사실의 모든 것들
원하는 것, 사랑스런 것, 마음에 드는 것,
존재라고 하는 모든 것.
Sadevakassa lokassa ete
vo sukhasammatā
Yattha ceto nirujjhanti
taṃ tesaṃ dukkhasammataṃ
그것들은 하늘사람과 인간의 세상에서
즐거운 것이라 여겨지지만
그들이 소멸될 때가 되면
그들은 그것들을 괴로운 것이라 여기네.
(Pathamaruparamasutta-형상의 즐거움에 대한 경, 상윳따니까야 S35:136,전재성님역)
범부들은 눈, 귀, 코 등 여섯 가지 감각으로 인지된 것에 대하여 마음에 들면 ‘즐거운 것으로 간주(sukhasammatā)’한다. 하지만 즐거움(sukha)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즐거움이 소멸 될 때 허탈해 하며 괴로워 한다. 이것이 배우지 못한 범부들의 일상인 것이다.
서로 반대로 가는 세간법과 출세간법
그렇다면 잘 배운 부처님의 제자들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할까? 이어지는 게송을 보면 다음과 같다.
Yaṃ pare sukhato āhu
tadariyā āhu dukkhato
Yaṃ pare dukkhato āhu
tadariyā sukhato vidū.
다른 사람들이 즐겁다고 하는 것
고귀한 님은 괴롭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이 괴롭다고 말하는 것,
고귀한 님은 즐겁다고 하네.
(Pathamaruparamasutta-형상의 즐거움에 대한 경, 상윳따니까야 S35:136,전재성님역)
잘 배운 고귀한 제자들은 사실을 대함에 있어서 범부와 다르다. 눈, 귀, 코등 여섯가지 감각으로 인지된 사실에 대하여 반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부들이 즐겁다고 말하는 것에 대하여 괴롭다고 말한다. 반대로 범부들이 괴롭다고 말하는 것은 즐거운 것이라 하였다. 왜 그럴까?
서른여섯 가지 느낌이 있는데
이 세상은 두 가지 세상이 있다. 하나는 세간이고 또 하나는 출세간이다. 세간에는 세간의 법이 있고, 출세간에는 출세간의 법이 있다. 그런데 두 법을 보면 정반대이다. 세간에서는 상, 락, 아를 말하지만, 출세간에서는 무상, 고, 무아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세간법은 세간법과 반대로 간다. 그래서 출세간법에 대하여 흐름을 거슬러 올라 간다고 하여 ‘역류도( 逆流道 , Pati sotagami)’라 한다.
출세간의 법은 역류도이다. 이는 초기경전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Katamā ca bhikkhave aṭṭhārasa vedanā: cha somanassupavicārā cha domanassupavicārā cha upekkhūpavicārā, imā vuccanti bhikkhave aṭṭhārasa vedanā. Katamā ca bhikkhave chattiṃsa-. Vedanā: cha gehasitāni somanassāni cha nekkhammasitāni somanassāni cha gehasitāni domanassāni cha nekkhammasitāni domanassāni cha gehasitā upekkho cha nekkhammasitā
[세존]
수행승들이여, 서른여섯 가지 느낌이라 무엇인가? 여섯 가지 재가의 만족, 여섯 가지 출가의 만족, 여섯 가지 재가의 불만, 여섯 가지 출가의 불만, 여섯 가지 재가의 평정, 여섯 가지 출가의 평정이다. 수행승들이여, 서른여섯 가지 느낌이란 이런 것이다.
(Aṭṭhasatapariyāyasutta- 백여덟 가지에 관한 법문의 경, 상윳따니까야 S36.22,전재성님역)
흔히 108가지 번뇌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108가지 번뇌를 억누르기 위하여 108배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 108번뇌는 어떤 것일까?
일반적으로 108번뇌에 대한 설명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과 관련 되어 있다. 눈, 귀, 코 등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형상, 소리, 냄새 등 여섯 가지 감각대상을 만났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안이비설신의’가 ‘색성향미촉법’을 만났을 때 36가지 번뇌가 발생하고, 이를 과거와 현재와 미래 이렇게 세 개를 곱하면 108번뇌가 된다고 한다. 이것이 대승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108번뇌이다. 그런데 빠알리니까야에 108번뇌의 원형에 해당되는 가르침이 있다.
그러나 빠알리니까야에서는 108가지 번뇌가 아니라 108(aṭṭhasata) 느낌(vedanā)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왜 108가지 느낌인가? 그것은 경에 표현된 것처럼 재가와 출가로 나누어 구분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108느낌이 만들어지는가?
36가지 느낌에 대하여 경과 각주를 참고 하여 표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36가지 느낌
느낌 |
설 명 |
비고 |
여섯 가지 재가의 만족 |
여섯 가지 감각대상에 대한 애착에서 생겨남 |
6 |
여섯 가지 출가의 만족 |
무상하고 괴롭고 실체가 없다는 인식에 따라 그것에 대한 여윔에서 생겨남 |
6 |
여섯 가지 재가의 불만 |
애착하는 대상이 무상하고 괴롭고 실체가 없음이 밝혀 짐에 따라 발생함 |
6 |
여섯 가지 출가의 불만 |
위없는 해탈을 갈망함으로써 생겨남 |
6 |
여섯 가지 재가의 평정 |
감각대상의 재난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뛰어 넘지 못하는 평정 |
6 |
여섯 가지 출가의 평정 |
감각대상이 무상하고 괴롭고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아는 데서 오는 평정 |
6 |
합계 |
36 |
이렇게 36가지 느낌이 있다. 이런 느낌에 대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곱하면 모두 108가지 느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108가지 느낌이 된다.
느낌의 종류
느낌과 관련하여 경에서는 체계적으로 분류해 놓았다. 36가지 느낌 이전에 대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이 표로 만들 수 있다.
느낌의 종류
구 분 |
내 용 |
비고 |
두 가지의 느낌 dve vedanā |
육체적인 느낌, 정신적인 느낌 (Kāyikā, cetasikā) |
2 |
세 가지의 느낌 tisso vedanā |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 (sukhā, dukkhā, adukkhamasukhā) |
3 |
다섯 가지의 느낌 pañca vedanā |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만족한 느낌, 불만의 느낌, 평정한 느낌 (sukhindriya, dukkhindriya, somanassindriya, omanassindriya, upekkhindriya) |
5 |
여섯 가지의 느낌 cha vedanā |
시각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 청각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 후각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 미각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 촉각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 정신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 (cakkhusamphassajā vedanā, sotasamphassajā vedanā, ghānasamphassajā vedanā, jivhāsamphassajā vedanā, kāyasamphassajā vedanā, manosamphassajā vedanā) |
6 |
열여덟 가지의 느낌 aṭṭhārasa |
여섯 가지 만족을 경험하는 느낌, 여섯 가지 불만을 경험하는 느낌, 여섯 가지 평정을 경험하는 느낌 (cha somanassupavicārā ,cha domanassupavicārā, cha upekkhūpavicārā) |
18 |
이와 같은 분류 방식에 대하여 부처님은 경에서 ‘방편(vuccanti)’이라 하였다. 그래서 “나는 방편으로 세 가지의 느낌에 관해 설했다.( imā vuccanti bhikkhave tisso vedanā)”라고 말씀 하셨다.
느낌을 총망라하면
이와 같이 두 가지, 세 가지, 다섯 가지, 여섯 가지, 열여덟 가지 느낌으로 분류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분류와 함께 앞서 언급된 36가지 느낌과 108가지 느낌 모두를 합하여 하나의 표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총망라된 느낌
구 분 |
내 용 |
비고 |
두 가지의 느낌 dve vedanā |
육체적인 느낌, 정신적인 느낌 (Kāyikā, cetasikā) |
2 |
세 가지의 느낌 tisso vedanā |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 (sukhā, dukkhā, adukkhamasukhā) |
3 |
다섯 가지의 느낌 pañca vedanā |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만족한 느낌, 불만의 느낌, 평정한 느낌 (sukhindriya, dukkhindriya, somanassindriya, omanassindriya, upekkhindriya) |
5 |
여섯 가지의 느낌 cha vedanā |
시각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 청각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 후각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 미각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 촉각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 정신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
(cakkhusamphassajā vedanā, sotasamphassajā vedanā, ghānasamphassajā vedanā, jivhāsamphassajā vedanā, kāyasamphassajā vedanā, manosamphassajā vedanā) |
6 |
열여덟 가지의 느낌 aṭṭhārasa |
여섯 가지 만족을 경험하는 느낌, 여섯 가지 불만을 경험하는 느낌, 여섯 가지 평정을 경험하는 느낌 (cha somanassupavicārā ,cha domanassupavicārā, cha upekkhūpavicārā) |
18 |
서른여섯 가지의 느낌 chattiṃsa Vedanā |
여섯 가지 재가의 만족 여섯 가지 출가의 만족 여섯 가지 재가의 불만 여섯 가지 출가의 불만 여섯 가지 재가의 평정 여섯 가지 출가의 평정 (cha gehasitāni somanassāni, cha nekkhammasitāni somanassāni, cha gehasitāni domanassāni, cha nekkhammasitāni domanassāni, cha gehasitā upekkho, cha nekkhammasitā upekkhā) |
36 |
백여덟 가지의 느낌 aṭṭhasata vedanā |
서른여섯 가지 과거의 느낌, 서른여섯 가지 현재의 느낌, 서른여섯 가지 미래의 느낌, (atītā chattiṃsa vedanā, anāgatā chattiṃsa vedanā, paccuppannā chattiṃsa vedanā) |
108 |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일곱 가지 방식으로 느낌을 정리할 수 있다.
수행처에서 느낌을 강조하는 이유
초기불교에서는 느낌이 중요하다. 왜 중요한가? 그것은 윤회하는 삶과 해탈로 가는 삶의 갈림길에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십이연기에서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며”라고 되어 있는데, 이때 느낌을 알아차리느냐 알아차리지 못하느냐에 따라 윤회의 길로 가느냐 해탈의 길로 가느냐가 결정된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처에서는 느낌단계에서 알아차리라고 한다.
만일 느낌에서 알아 차리지 못하여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로 발전되면 ‘루비콘강’ 건넌 것으로 보고 있다. 갈애가 생기면 집착이 되어 업을 짓는 것이 되기 때문에 유전문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느낌단계에서 알아차리면 더 이상 없을 짓지 않아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가 소멸하고”가 되어 환멸문으로 들어 간다. 그래서 수행처에서는 느낌을 강조한다.
수행처에서 하는 늘 하는 말은 ‘알아차림’이다. 그래서 수행이 알아차림으로 시작해서 알아차림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알아차림은 다름 아닌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런 느낌에 대한 것이 ‘백여덟 가지에 관한 법문의 경(S36.22)’에서 체계적으로 정리 되어 있다. 그래서 표로 만들어 보았다.
여섯 가지 재가의 만족
표에서 ‘서른여섯 가지의 느낌’에 대한 것이 있다. 재가와 출가로 구분하여 설명하여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맛지마니까야에 있다. 맛지마니까야 ‘여섯 감역에 대한 분석의 경(M137)’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설명 되어 있다. 먼저 ‘여섯 가지 재가의 만족’에 대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재가의 생활에 기초한 여섯 가지 쾌락이란 무엇인가?
1) 시각에 의해서 인식되는 형상들 가운데 원하는 것이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아름답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탐욕을 야기하는 것이고 세속적인 것과 관련된 것이 있는데, 그것들 가운데 획득된 것을 획득된 것으로 여기거나, 지나가고 사라지고 변해 버리기 이전에 획득된 것으로 회상할 때에 쾌락이 생겨난다. 이와 같은 쾌락이 있는데 이것을 재가의 생활에 기초한 쾌락이라고 부른다.
(Saḷāyatanavibhaṅga sutta- 여섯 감역에 대한 분석의 경, 맛지마니까야 M137, 전재성님역)
아름다운 경치를 보았을 때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회상하는 즐거움도 있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처럼 눈으로 형상을 즐기는 것에 대하여 ‘세속적’이라 하였다. 그래서 시각, 청각 등 여섯 가지 감각능력으로 즐기는 자들에 대하여 ‘여섯 가지 재가의 만족(cha gehasitāni somanassāni)’이라 하였다.
여섯 가지 출가의 만족
그렇다면 출가의 생활에 기초한 여섯 가지 즐거움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 되어 있다.
그런데 출가의 생활에 기초한 여섯 가지 쾌락이란 무엇인가?
1) 형상들이 무상하고 변화하고 사라지고 소멸하는 것을 알고 나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형상들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이라고, 이와 같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보면 쾌락이 생겨난다. 이와 같은 쾌락이 있는데 이것을 출가의 생활에 기초한 쾌락이라고 부른다.
(Saḷāyatanavibhaṅga sutta- 여섯 감역에 대한 분석의 경, 맛지마니까야 M137, 전재성님역)
출가자에게도 감각적 쾌락이 있다. 그것은 범부들이 느끼는 감각적 쾌락과 다른 것이다. 범부들은 형상을 즐기고, 더구나 회상을 하며 즐기지만,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은 현상에 대하여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주석에 따르면, 출가자의 쾌락은 예리하고 밝은 통찰의 지혜로 조건지어진 것들을 부술 때에 일어나는 기쁨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여섯 가지 출가의 만족(cha nekkhammasitāni somanassāni)’이라 한다.
여섯 가지 재가의 불만
느낌에는 즐거운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괴로운 느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괴로운 느낌은 어떻게 발생되는 것일까? 세간의 괴로운 느낌은 다음과 같은 연유로 일어난다.
그런데 재가의 생활에 기초한 여섯 가지 불쾌란 무엇인가?
1) 시각에 의해서 인식되는 형상들 가운데 원하는 것이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아름답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탐욕을 야기하는 것이고 세속적인 것과 관련된 것이 있는데, 그것들 가운데 획득되지 못한 것을 획득 되지 못한 것으로 여기거나, 지나가고 사라지고 변해 버리기 이전에 획득되지 못한 것으로 회상할 때에 불쾌가 생겨난다. 이와 같은 불쾌가 있는데 이것을 재가의 생활에 기초한 불쾌라 부른다.
(Saḷāyatanavibhaṅga sutta- 여섯 감역에 대한 분석의 경, 맛지마니까야 M137, 전재성님역)
세간에서 일어나는 불쾌는 세간에서 일어나는 쾌락과 정반대이다. 지금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데 그 즐거움이 오래 계속 되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 불쾌를 느낀다. 이는 다름 아닌 괴로움이다. 이것을 ‘여섯 가지 재가의 불만(cha gehasitāni domanassāni)’이라 한다.
여섯 가지 출가의 불만
하지만 출세간에서는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출가자가 느끼는 불쾌란 어떤 것일까? 다음과 같이 부처님이 말씀 하셨다.
그런데 출가의 생활에 기초한 여섯 가지 불쾌란 무엇인가?
1) 형상들이 무상하고 변화하고 사라지고 소멸하는 것을 알고 나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형상들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이라고 이와 같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보고 ‘고귀한 분들이 성취한 세계가 있는데, 나는 그 세계를 언제 성취할 것인가?’라고 위없는 해탈을 갈망한다. 위없는 해탈을 향한 갈망을 일으키면, 그 갈망을 조건으로 불쾌가 생겨난다. 이와 같은 불쾌가 있는데 이것을 출가의 생활에 기초한 불쾌라고 부른다.
(Saḷāyatanavibhaṅga sutta- 여섯 감역에 대한 분석의 경, 맛지마니까야 M137, 전재성님역)
출세간에서도 불쾌를 느낀다. 그러나 세간에서 느끼는 불쾌와 정반대이다. 출세간에서 느끼는 불쾌는 해탈을 갈망함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나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에 대한 분심이라 볼 수 있다.
간화선에서 대분심은 수행의 원동력이다. 내가 곧 부처라는 사실을 굳게 믿은 자가 해야 할일은 자신이 부처인 것을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대분심을 내어 용맹정진한다. 마치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만나면 단칼에 베어 버릴 듯한 대분심을 말한다 . 또 중생놀음을 하고 있는 어리석음에 대한 분심을 내야 공부가 잘 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빠알리 니까에서도 불쾌가 일어나는 것은 아직 해탈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탈하고자 하는 갈망이 일어났을 때 불쾌가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여섯 가지 출가의 불만(cha nekkhammasitāni domanassāni)’이라 한다.
여섯 가지 재가의 평정
초기불교를 접하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 중의 하나가 ‘우뻭카 (upekkhā)’이다. 이를 평정, 평등, 평온 등으로 번역한다. 번역어만 보면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보이나 쓰임새에 따라 ‘부정적’일수도 있다. 그런 예를 보여 주는 것이 ‘여섯 가지 재가의 평정’에 표현 되어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Tattha katamā cha gehasitā upekkhā: cakkhunā rūpaṃ disvā upapajjati upekkhā bālassa mūḷhassa puthujjanassa anodhijinassa avipākajinassa anādīnavadassāvino assutavato puthujjanassa. Yā evarūpā upekkhā, rūpaṃ sā nātivattati. Tasmā sā upekkhā gehasitāni vuccati.
그런데 재가의 생활에 기초한 여섯 가지 평정이란 무엇인가?
1) 시각에 의해서 인식되는 형상을 보고 형상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영향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 위험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고 미혹한 사람들, 그 배우지 못한 일반 사람들에게 평정이 일어난다. 이와 같은 평정은 그 형상을 뛰어넘지 못하므로 재가 생활에 기초한 평정이라고 부른다.
(Saḷāyatanavibhaṅga sutta- 여섯 감역에 대한 분석의 경, 맛지마니까야 M137, 전재성님역)
전재성님은 우뻭카에 대하여 ‘평정’으로 번역하였다. 그런 평정은 평온하고 평화롭고 한가해 보인다. 느낌으로 말하면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것이다.
평정은 언제 깨질지 모른다. 조건에 따라 언제든지 느낌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부들에게 생겨난 평온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시적인 것이다. 그래서 경에서는 “어리석고 미혹한 사람들, 그 배우지 못한 일반 사람들에게 평정이 일어난다.”라고 하였다. 왜 그럴까? 그것은 잠재성향때문이다. 각주에 따르면, 형상에 대한 한계나 그 영향을 극복하지 못한 자들은 과거나 현재의 행위의 과보가 완전히 펼쳐지는 것을 극복하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본다. 이는 언제든지 평온이 깨질 수 있음을 말한다.
길거리를 지날 때 고기 굽는 냄새를 맡으면 평정이 깨진다. 또 지나가는 여인으로 인하여 마음이 흔들렸다면 평정이 깨진다. 이는 감각적 욕망에 대하여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향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감각적 욕망으로 인한 재난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다.
이처럼 범부들에게 일어나는 평온은 불안정한 것이다. 조건에 따라 언제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평정에 대하여 ‘여섯 가지 재가의 평정(cha gehasitā upekkha)’이라 하였다.
여섯 가지 출가의 평정
재가자의 평정은 마치 호수면과 같다. 언제 흐트러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평정이다. 그러나 출세간의 평정은 정반대이다. 출세간의 평정에 대하여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 되어 있다.
그런데 출가의 생활에 기초한 여섯 가지 평정이란 무엇인가?
1) 형상들이 무상하고 변화하고 사라지고 소멸하는 것을 알고 나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형상들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이라고 이와 같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보면 평정이 생겨난다. 이와 같은 평정이 있는데, 이것을 출가의 생활에 기초한 평정이라고 부른다.
(Saḷāyatanavibhaṅga sutta- 여섯 감역에 대한 분석의 경, 맛지마니까야 M137, 전재성님역)
평정도 평정나름이다. 출세간의 평정과 세간의 평정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머리가 희다고 해서 모두 장로가 아니듯이(Dhp260)’범부와 현자들의 평정은 다른 것이다. 어리석은 자가 일시적으로 갖는 불안정한 평정이 세간의 평정이라면, 현명한 자의 갖는 평정은 흔들림이 없다. 그래서 고기 냄새가 나도, 아름다운 여인이 지나가도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눈과 귀 등 여섯 가지 감각 대상에 대하여 무상하고 변화하고 사라지고 소멸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흔들림 없고 안정된 평정에 대하여 ‘여섯 가지 출가의 평정(cha nekkhammasitā upekkhā)’이라 하였다.
대승 108참회문을 보면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108번뇌와 관련하여 108배가 유행하고 있다. 108가지 번뇌에서 해방되고자 108배라 하였으나 108배를 하면서 다짐하는 108참회문을 보면 108번뇌와 다르다. 108참회문중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지극한 마음으로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2.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법에 귀의합니다.
3. 지극한 마음으로 승가에 귀의합니다.
4.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죄를 참회합니다.
5. 참나를 망각한 채 살아 온 죄를 참회합니다.
(108 참회문)
108참회문은 불법승 삼보에 대한 귀의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곧바로 참나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라고 표현된 문구가 나온다. 이는 나를 찾는 수행에 대한 것이다. 그 나는 참나를 말한다. 참나는 진여, 불성, 본래불과 동의어이다. 그래서 다섯 번째 참회문을 보면 “참나를 망각한 채 살아 온 죄를 참회합니다.”라고 되어 있다. 108번뇌로 표현된 본래취지와 다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108참회문에 맞추어 불자들은 108배를 하고 있다.
여덟 가지 게송
대승불교에108번뇌가 있다면 초기불교에는 108느낌이 있다. 둘 다 육근과 육경의 접촉으로 의한 것이다. 또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삼세에 걸쳐 발생된 점도 동일하다. 그러나 구성방법은 다르다. 대승의 108번뇌는 모두 세간적인 것에 대한 것이지만, 초기불교의 108느낌은 세간적인과 출세간적인 것으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기불교의 108느낌으로 108참회문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 게송이 108참회문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1.
Chaḷeva phassāyatanāni bhikkhavo
Asaṃvuto yattha dukkhaṃ nigacchati,
Tesañca ye saṃvaraṇaṃ avedisuṃ
Saddhādutiyā viharantānavassutā.
수행승들이여, 여섯 접촉영역을
잘 제어하지 못하면, 괴로움을 겪는다.
그것들을 제어함을 배운 자들은
믿음을 벗으로 삼아 번뇌 없이 지내리.
2.
Disvāna rūpāni manoramāni
Athopi disvā amanoramāni
Manorame rāgapathaṃ vinodaye
Na cappiyaṃ meti manaṃ padosaye
사랑스런 형상을 보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형상을 보고 나서,
사랑에 대한 탐욕의 길을 제거하고,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다고 정신을 오염시키지 말라.
3.
Saddañca sutavā dubhayaṃ piyāppiyaṃ
Piyampi sadde na samucchito siyā
Athoppiye-2 dosagataṃ vinodaye
Na cappiyaṃ meti manaṃ padosaye
또한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두 소리를 듣고
사랑스런 소리에 미혹되지 말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에 분노의 길을 제거하라.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다고 정신을 오염시키지 말라.
4.
Gandhañca ghātvā surabhiṃ manoramaṃ
Athopi ghātvā asuciṃ akantiyaṃ
Akantiyasmiṃ paṭighaṃ vinodaye
Chandānunīto naca kantiye siyā
향기롭고 매력적인 냄새를 맡거나
더럽고 불쾌한 것을 냄새 맡으면,
불쾌한 것에는 분노를 자제하고
매력적인 것의 욕망에 이끌리지 말라.
5.
Rasañca bhotvā sāditañca sāduṃ
Athopi bhotvāna asādumekadā
Sāduṃ rasaṃ nājjhosāya bhuñje
Virodhamāsādusu nopadaṃsaye
미식가가 감미로운 맛을 즐기거나
한때 감미롭지 않은 것을 즐기면,
감미로운 것을 탐욕스럽게 맛보지 말고
감미롭지 않은 것에 혐오를 보이지 말라.
6.
Phassena phuṭṭho na sukhena majje
Dukkhena phuṭṭhopi na sampavedhe
Phassadvayaṃ sukhadukkhe upekkhe
Anānuruddho aviruddhakenaci
즐거운 감촉에 접촉해도 취하지 않고
괴로운 것에 접촉해도 흔들리지 않으면
두가지 즐겁고 괴로운 감촉에서 평정하니
어떠한 유혹과 혐오를 떠났네.
7.
Papañcasaññā itarītarā narā
Papañcayantā upayanti saññino
Manomayaṃ gehasitañca sabbaṃ
Panujja nekkhammasitaṃ irīyati
희론에 묶인 이러저러한 사람들은
희론을 향해가지만 그것을 지각하면
정신이 만든 세속에 의존하는 것을 끊어 버리고
여읨에 의존하는 것을 지향한다네.
8.
Evaṃ mano chassu yadā subhāvito
Phuṭṭhassa cittaṃ na vikampate kvaci
Te rāgadose-8 abhibhuyya bhikkhavo
Bhavātha-9 jātimaraṇassa pāragāti.
이처럼 정신이 여섯 감역에 잘 수련되면
접촉하더라도 어디서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리.
수행승들이여, 그들 탐욕과 성냄을 극복하여
생사의 피안에 도달한 자가 되어야 하리.
(Chaphassāyatanasutta-여섯 접촉의 감역에 대한 경, 상윳따니까야 S35:94,전재성님역)
2013-10-08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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