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2013조계사 국화축제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고 , 또 내일이 어제 같은
매일 똑 같은 패턴의 생활의 반복이다. 그러다 보니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고 , 또 내일이 어제 같은’ 날들의 연속이다. 사실 ‘내일이 어제 같다’는 어법에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큰 변화가 없는 삶의 패턴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이 표현은 일본 NHK대하드라마 ‘평청성(平淸盛)’에서 인용한 것이다.
일본 헤이안시대 두 무신 가문인 ‘타이라(平)’가문과 헤이시(源氏)가문이 주도권을 놓고 격돌한다. 그결과 헤이시가문은 몰락한다. 그래서 헤이시 가문은 멸족하게 되는데 그 중 나이 어린 소년 한명만 살려 두게 된다. 이 살려둔 소년이 화근이 되었다. 그가 훗날 일본 최초 무사정권인 가마쿠라(鎌倉)막부를 연 미나모토 요리토모이다. 그래서일까 옛날에는 역모를 도모하면 삼족이 아니라 구족을 멸했나 보다. 살아 남은 소년은 헤이시 가문의 적자인 미나모토 요리토모이다. 불과 14세에 교토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이즈반도 가마쿠라에 유배 되어 거의 20년간 보냈다.
드라마에서 보는 유배지에서 생활은 단순한 것이었다. 밥먹고 공부하고 수련하는 등 단순한 일상의 반복이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는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입을 빌어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고 , 또 내일이 어제 같은 날들이다.”라는 표현을 하였다.
이렇게 변화가 없는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미나모토 요리토모에게 마침내 기회가 왔다. 20년만인 34세에 거병을 하며 가문을 멸망시킨 타이라가문을 축출하고 일본 최초 무사정권인 ‘가마쿠라 막부’를 연것이다. 똑 같은 시기에 고려시대에서도 무인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나 100여년만에 문을 닫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에서의 무인정권은 가마쿠라막부를 시작으로 무로마치막부, 그리고 1867년 메이지 유신으로 도쿠가와 막부가 멸망할 때까지 거의 700년간 지속되었다.
그날이 그날 같은 똑 같은 생활의 패턴에서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떠나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멀리 떠나는 것이 큰 변화를 준다. 그러나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까운 곳을 찾는다. 주말을 맞이하여 조계사를 찾았다. 이유는 국회전시가 있기 때문이다.
조계사에서 국화전시회가 열리고
조계사에 국화꽃 전시가 있다는 것은 작년에 알았다. 우연하게 조계종 총무원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마침 조계사에서 국화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를 ‘조계사와 함평의 아름다운 인연, 조계사는 지금 국화축제중’라는 제목으로 기록을 남겼다. 이렇게 매년 이맘때쯤이면 조계사에서 국화꽃 축제가 열리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올해도 기대를 가지고 찾아 갔다.
일부로 찾아 간 날 날씨는 매우 쌀쌀하였다. 올 가을 들어 가장 낮은 날씨라 한다. 강원도 산간지방에는 영하라 하니 서울에서도 옷을 두껍게 입지 않으면 추위를 탈정도로 쌀쌀하다. 그런 가운데 국화를 보니 ‘꽃 본듯이 반긴다’는 말이 있듯이 갑자기 환해 진다.
일주문 앞에는 용미리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이 나란히 서 있다.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포즈가 매우 우애가 깊어 보인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작년에 보았던 콘셉의 커다란 국화나무가 보인다. 이렇게 입구에서부터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다.
입구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동자승캐릭터가 국화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한눈을 감고 찡긋이 미소띄으며 합장하는 캐릭터가 반겨 주고 있다.
걸그룹이 같은 동작으로 댄스를 하듯이
일주문 입구를 들어 서면 갖가지 종류의 국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치 걸그룹이 같은 동작으로 댄스를 하듯이 대게 같은 종류의 꽃들을 집단으로 모아 놓은 것이 특징이다.
꽃은 피어야 아름답다
조계사 국화꽃은 활짝 핀 것도 있고 이제 피어나려는 것도 있다. 그리고 아직 피지 않은 채 몽울만 진 것도 있다. 그러나 꽃은 피어야 아름답다. 활짝 피었을 때 우주가 열리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국화꽃을 보면 항상 기억나는 시가 있다. 그것은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이다. 이 시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국어 교과서에 실려서 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 보다 이 시를 해설한 국어선생님의 영향이 크다. 고교시절 담임이었던 국어선생님은 서정주 시인의 자제분과 친구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려서 서정주시인을 보게 되었는데 두루마리 한복을 입은 모습이 마치 도인처럼 보였다고 말하였다. 그래서일까 선생님은 ‘국화 옆에서’를 해설할 때 특히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재미있게 해설하였다.
국어선생님의 해설중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그것은 ‘누님 같이 생긴 꽃’이다. 시에서는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으로 표현 되어 있다. 누님이 없었기에 누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거울 앞에 선 누님이라는 표현이 그렇게 마음에 와 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서정주의 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인상적이고 늘 새기는 것이 바로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거울 앞에서 선 누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온갖 풍상을 겪은 쭈굴쭈굴한 얼굴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추한 얼굴은 아닐 것이다. 젊은 시절 갖은 고통을 겪었지만 거울 앞에 섰다는 것은 역경을 이겨 내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누님은 자신있게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보았을 것이다.
천둥, 비바람, 찬서리를 겪어 낸 누님의 한평생과 같은 꽃이 국화이다. 그래서 쌀쌀한 가을에 보는 국화가 마치 동짓달 꽃 본듯이 반가운 것이다.
2013년 조계사 국화축제 대표작품 ‘우담화’
국화전시회를 보면 일상의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이제까지 보지 못하였던 기발한 것을 접하기 때문이다. 국화전시회도 그렇다. 단지 국화가 피어 있는 화분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화분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것이 조계사 대웅전 바로 옆에 설치 되어 있는 거대한 조형물이다.
국화꽃으로 이루어져 있는 조형물을 보면 마치 촉수가 여러 개 있는 ‘우주의 괴물’같아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나무를 형상화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중앙에 커다란 나무 기둥이 있고 주변에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내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처음 보았을 때 커다란 ‘거미’를 보는 듯 하였다.
이 작품 이름은 무엇일까? 한켠에 ‘우담화’라고 작품이름이 써 있다. 아마도 이 우담화가 2013년 조계사 국화축제를 대표하는 작품일 것이다.
아기코끼리와 어른코끼리
작년과 마찬가지로 동물을 형상화 한 작품도 보인다. 코끼리가 주 대상이다. 그래서 아기코끼리와 어른 코끼리 두 마리가 보이는데 작년 같지 않게 그다지 스포트 라이트를 많이 받지 않은 것 같다.
“시월국화는 시월에 핀다더라”
조계사에서는 매년 10월에 국화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 축제의 정식명칭은 무엇일까? 플레카드를 보면 ‘2013국향대전’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조계종 총무원에서 교육부장을 지낸 법인스님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나는 작명을 아주 잘한다. 아이가 자라 부귀와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이름을 잘 짓는 것이 아니라 행사나 전시회, 강좌에서 사람의 호기심을 끄는 그런 이름을 좀 짓는다. 내가 사는 절 대흥사의 템플스테이는 ‘새벽 숲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천연의 자연에서 인간의 원초적 정신을 깨어나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다.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의 음악회는 ‘달이랑 별이랑 사람이랑’이라 지었다. 자연과 음악과 사람이 어울리는 풍경을 담아내려 한 것이다. 조계사의 국화향기 나눔전은 ‘시월국화는 시월에 핀다더라’이다. 이는 어느 선시에서 빌려 온 것이다. 이 이름의 뜻은 애써 설명하지 않겠다.
(법인스님, 청소부와 클린 디자이너, 휴심정 2013-10-19)
글에 따르면 법인스님은 작명을 잘한다고 하였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가급적 우리말을 이용하여 쉽게 풀어 쓰는데 일가견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조계사의 국화꽃 축제에 대하여 ‘시월국화는 시월에 핀다더라’라고 했다고 한다. 참으로 멋있고 운치있는 표현이다. 그런데 어느 선시에서 빌려 왔다고 하였다. 그 선시는 어떤 것일까? 검색을 해 보았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산 머리에 걸린 달은 운문의 떡이요(山頭月掛雲門餠)
문 밖에 흐르는 물은 조주의 茶로다(門外水流趙主茶)
이 중 어느 것이 진짜 삼매더냐(箇中何者眞三昧)
구월 국화는 구월에 핀다더라(九月菊花九月開)
(茶禪一味, 경봉스님)
검색해 보니 경봉스님의 법어에 있는 내용이다. 첫 구절을 보면 운문의 떡이라 하였는데, 이는 운문선사에게 법을 청하면 “떡이나 먹게”라고 하였다고 한다. 둘째 구절의 조주스님 역시 법문을 청하면 법문을 해 주지 않고 “차나 마시게”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떡을 먹는 것이 삼매인지 차를 마시는 것이 삼매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구절에서는 ‘구월국화구월개(九月菊花九月開)’라 하였다. 구월에 피는 국화는 구월국화라는 말이다.
구월에 국화가 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진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다. ‘도(道)’라는 것이 다른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떡이나 먹고 차한잔 하는 것이 도라는 것이다.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 현상을 바라 보았을 때 거기에 진리가 있다는 말이다.
법인스님이 작명한 ‘시월국화는 시월에 핀다더라’는 경봉스님의 ‘구월국화구월개(九月菊花九月開)’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딱딱하게 국화전시회라는 말 대신 ‘시월국화는 시월에 핀다더라’라는 말이 더 서정적으로 다가온다.
조계사 뒷편으로 가보니
조계사 뒷편으로 가 보았다. 조계종 총무원청사가 있는 네모난 모양의 4층 빌딩이 눈에 들어 온다. 지하에는 불교박물관이 있다. 그러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국화꽃으로 만발한 조계사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온다. 특히 외국인들이 눈에 많이 띈다. 그 중에는 관광온 사람들도 있지만 전통문화 체험을 위한 템플스테이 하는 외국인들도 보인다.
외국인들에게 보여 줄만한 것은 무엇일까? 국화꽃잔치도 좋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를 보여 주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박물관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1번지에서 박물관은 폐쇄 되어 있다.
조계사 바로 옆에는 ‘우정공원’이 있다. 조계사를 찾으면 누구나 들러 보는 곳이다. 그러나 분위기는 다르다. 마치 일반공원처럼 보인다. 더구나 술병이 놓여 있다. 노숙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대낮부터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국화꽃 축제에서 또 다른 이면을 보게 된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꽃을 피워냈을 때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고 , 또 내일이 어제 같은 동일한 삶의 패턴의 연속이다. 이런 때 시월에 피는 국화를 본다. 시월에도 이렇게 아름답고 화려하게 꽃을 피워낸 국화를 보면 봄에 앞다투어 피는 꽃들과 다르다.
따스한 봄에 피는 꽃들은 생명으로 넘쳐 나지만 깊은 맛은 없다. 그런 봄꽃은 마치 추리닝만 걸쳐도 몸매가 나고 화장을 하지 않아도 빛나는 청춘과도 같다. 그러나 가을 찬바람에 피는 꽃은 산전수전 다 겪고 모진 인생의 풍파를 건너온 누님 같은 꽃이다. 비록 쭈글쭈글 하고 탄력 없는 얼굴이지만 거울 속에 비친 누님은 자신의 할 바를 다한 완성자의 모습이다. 이렇게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꽃이 가을에 피는 국화이다. 그런 꽃들로 장엄된 축제를 올해도 조계사에서 보았다.
들에 핀 꽃은 한송이 꽃을 피워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마치 부르르 떨듯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꽃을 피워냈을 때 우주가 열린다. 그런 꽃들로 장엄된 세계를 보고 있다.
2013-10-27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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