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한국불교 장난해? 조계종 승려들의 밤샘 술판

담마다사 이병욱 2013. 12. 3. 10:05

 

한국불교 장난해? 조계종 승려들의 밤샘 술판

 

 

 

꼭꼭 숨겨져 있는 기사

 

충격적이고 놀아운 기사를 보았다. 어느 인터넷 카페에서 ‘조계종 주지급 승려들 연수원서 밤새 술판’이라는 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에 올려져 있는 기사를 스크랩 한 것이다. 올려진 글을 보니 사진과 함께 술판을 벌인 내용이 상세히 기록 되어 있다. 내용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조계종의 주지급 승려들이 일반인에게도 개방돼 있는 불교 연수원에서 밤새 ‘술판’을 벌였다.

 

승가대 동기들로 알려진 10여명의 승려들은 지난달 28일 밤 충남의 한 불교 연수원 레크리에이션룸에서 다음날 아침 7시께까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셨다. 조계종 총무원이 2009년 ‘불교식 수행’의 대중화를 목표로 설립한 이 연수원은 불교 관련 기관 외에도 정부·기업·학교 등 100여개 기관들이 연수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승려들의 노랫소리는 일반인 이용자들이 묵고 있는 인근 숙소에까지 들릴 정도로 컸다. 이 연수원에선 일반인 이용자들에게는 구내에서 술을 마시지 말 것을 권유하고 있다.

 

승려들이 술을 마신 레크리에이션룸은 30인석 규모로 노래방 시설이 갖춰져 있다. 술자리가 끝난 레크리에이션룸에는 승려들이 마시고 난 1박스 분량의 소주병과 3박스 분량의 맥주캔, 먹다 남은 문어 숙회와 과일·오징어포 따위의 안주가 남아 있었다. 불교에선 불교도이면 모두가 지켜야 하는 기본 생활 규범인 ‘오계’에서 ‘술을 마시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다.

 

승려들 중에는 3선의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도 있었다. 아산의 한 사찰 주지인 이 승려는 지난 10월 실시된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 재선에 나선 자승 스님 캠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 승려는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20년 만에 도반들이 모여 소식을 나누는 자리였다. 종단 소유 시설이라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계종의 한 승려는 “승려로서 말이 안 되는 행동을 했다. 특히 외부 사람들에게는 금주를 권하면서 자기들은 마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종단에서 철저히 진상을 조사한 뒤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의 관계자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 조계종 주지급 승려들 연수원서 밤새 술판, 한겨레신문 2013.12.02 20:08 수정 : 2013.12.02 21:51)

 

 

 

 

조계종의 주지급 승려 10여명이 지난달 28일 밤 10시께부터 다음날 아침 7시께까지

충남의 한 불교 연수원에서 밤새 술판을 벌이고 있다.

사진:

 

 

기사를 보니 12월 2일자이다. 한겨레신문에 들어가 보니 사회면의 종교섹션 메인 페이지에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조계종 주지급 승려들 연수원서 밤새 술판 라는 키워드로 검색해야만 기사를 볼 수 있다. 기사가 꼭꼭 숨겨져 있는 것이다.

 

발화하는 한겨레발 신문기사 

 

기사는 12월 2일 21시 51분에 등록 된 것으로 되어 있다. 현재 시간 12월 3일 08시30분에 아직까지 불교닷컴, 미디어붓다, 불교포커스, 불교저널, 법보신문, 불교신문 등 불교관련 신문사이트에서는 일체 보도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다음 뉴스를 보니 중앙일보에서 첫보도가 나왔다. 중앙일보 보도는 다음과 같다.

 

 

충남의 한 불교연수원에서 조계종 주지급 승려들이 밤새 술판을 벌여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오늘(3일) 한겨레 신문에 따르면, 지난 달 28일 밤 10여 명의 승려들이 연수원 내에서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이 연수원은 일반인에게도 개방된 곳인데요.

연수원 내에선 일반 이용자들에게 술을 마시지 말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술판이 끝난 자리에는 1박스 분량의 소주병과 3박스 분량의 빈 맥주캔이 남아 있었다는데요.

일반인들에게는 금주를 권하면서, 정작 승려들은 이렇게 규율을 어기다니 앞뒤가 좀 맞지 않네요.

온라인 중앙일보·JTBC

 

 

( 조계종 주지급 승려들, 연수원서 밤새 술판 벌여 파문,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3.12.03 08:15)

 

 

트위터에서도 승려 밤샘 술판이라는 용어가 들어가는 글이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한다. 한겨레발 신문기사가 이제 발화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메이저 신문에서 보도하고 여타 인터넷매체에서 뒤따르고 이어서 카페와 블로그, 게시판에서 회자 될 때 한국불교는 또 한 번 망신 당하게 될 것이다.

 

언행일치가 되어 있지 않은

 

기사의 요점은 이런 것이다. 술마시는 것을 계율로 금하고 있는 불교에서 스님들이 집단으로 그것도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술마신 장소가 연수원이라는 사실이다. 승려나 신도들의 교육기관으로 활용되는 연수원에서 어느 누구도 술을 못 사시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승려들이 이를 스스로 어겼다는 것이다. 이렇게 신도들에게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해 놓고 자신들은 술판을 벌인 것에 대하여 언행일치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을 지적한 것이다.

 

조계종 승려 밤샘 술판 사건은 교계에서 알려진 것이 아니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메이저 신문에서 먼저 알려졌다. 그것도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고 있는 중진스님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올려져 있다. 이 사진 한장으로 꼼짝 없이 술을 마셨음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죄송하다” 든가 “있어서는 안될 일” 등과 같은 말이 나왔을 것이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한겨레신문은 ‘특종’한 것이다. 반면 이런 사실을 숨기고자 하였던 승려들은 자신들의 추태가 만천하에 들통난 것이다. 그런데 이들 승려들만이 술을 마셨다고 볼 수 있을까?

 

스님들이 심심풀이로

 

지난해 한국불교는 승려도박으로 개망신을 당한바 있다. 처음에 억대도박판을 벌렸다 하여 국민들의 공분을 산바 있으나 이는 전달과정에서 부풀려 진 것이다. 설령 도박판이 억대가 아닌 수백만원대라 하더라도 승려들이 도박을 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국민의 분노를 수습한다는 측면에서 조계종 호법부장스님의 방송 인터뷰가 있었다. 그런데 스님은 어이없게도 치매 예방을 위하여 스님들이 심심풀이로 하는 것이다라는 취지로 말하였다. 이말은 기름에 물을 붙는 격이 되고 말았다. 일부 스님들이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스님들이 도박을 하는 것으로 오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승려도박사건으로 시쳇말로 쪽팔린바 있는 한국불교에서 이번에는 밤샘술판 사건이 보도 되었다.

 

밤샘도박과 밤샘술판, 어느 것이 더 비난받을까? 아마 대부분 밤샘도박이라 할 것이다. 출가하여 수행을 하는 스님에게 있어서는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술판은? 역시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불음주계라 하여 출가자자 재가자를 막론하고 지켜야 하는 규범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음주계를 지키지 않으면 지옥에 가는 것으로 경전에 묘사 되어 있다. 그런데 도박과 음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음주를 하게 되면 취하게 되어 일탈행위를 할 수 있으므로 손쉽게 도박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행에 전념해야할 스님들이 왜 음주를 하고 도박을 하는 것일까?

 

 

스님들이 왜 음주하고 도박할까?

 

한국스님들이 음주와 도박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여러 이유 중의 하나로서 수행방법에 문제를 들 수 있다. 비록 개인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한국불교의 깨달음지상주의에서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불교에서 스님들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수행한다. 그래서 일년에 두 차례씩 안거에 들어간다. 그러나 깨달음이라는 것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가 보다. 선방에서 5, 10, 20, 30, 심지어 평생 앉아서 화두를 들어도 깨달았다는 스님들이 매우 드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설령 그 깨달음이란 것도 맞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점검해 주는 스승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방에서 이뭤고?”라든가, “왜 무라 했을까?” 라든가,   왜 판치생모라 했을까?”라 하며 10, 20년 동안 앉아 있어도 한소식 듣지 못할 때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도 자포자기상태에 빠질지 모른다. 아무리 용맹정진해도 결과를 얻을 수 없을 때 절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술을 입에 대고 도박에 빠진다고 한다. 이는 들어서 말하는 것이다.

 

술을 입에 대면 반응은 즉각 올라 온다. ‘취기가 올라 오면서 감정상의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소주 몇 잔에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서 극적인 변화를 맞게 되는 것이다. 화투나 카드 놀이를 하면 승부가 금방 결정난다. 불과 몇 분도 안되어서 승패가 갈리는 것이다. 또 기계를 이용한 바카라 등과 같은 사행성 도박은 승부가 더 빠르다 불과 몇 초만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술과 도박은 반응이 빠르다. 입력한 만큼 즉각즉각 결과를 보여 준다. 바로 이런 점이 출가 수행자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이라 본다. 선방에서 10, 20년 앉아 있어도 깨닫지 못하는 현실에서 술이나 도박은 즉각적인 결과를 가져 오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은밀하게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닐까?

 

국민의 공분을 산 승려도박사건, 세간의 웃음거리로 전락한 승려밤샘술판 사건은 한국불교의 깨달음지상주의가 빚어낸 사생아와 같은 사건이라 보여진다. 그런 깨달음은 다름 아닌 내가 본래 부처이다, 내가 부처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깨달은 존재이다. 따라서 따로 깨달을 것이 없다. 다만 내가 깨달은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라는 신심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내가 본래불이라는 대신심을 바탕으로 오직 할 뿐!”하며 대분심을 내고, “오직 무를 뿐!”하며 대의심을 내는 것이다. 이렇게 용맹정진해도 본래 자신이 부처라는 것을 증명해 내지 못했을 때 깊은 회의감과 좌절이 결국 막행막식으로 이어져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뭇삶들의 삶은 고달프다

 

불교에서는 음주를 계율로서 금하고 있다. 그래서 불음주는 오계 중의 하나로서 불자라면 누구나 지켜야할 덕목이다. 그렇다고 하여 불음주계가 강제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지켜야할 도덕적인 규범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음주계는 강제하지 않기 때문에 지키기가 더 어렵다. 특히 재가불자가 그렇다.

 

현실에서 삶을 살아 가야 뭇삶들의 삶은 고달프다.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 갈 수 없기 때문에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일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심하게 스트레스도 받을 수도 있고 고된 노동이 될 수도 있다. 이럴 때 사람들은 술을 입에 대기도 한다. 또 비즈니스를 하기 위하여 사업상 어쩔 수 없이 마시는 경우도 있더. 또 고된 노동 끝에 음식으로서 마시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재가자에게 있어서 불음주계는 지키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들은 불음주계 하나만 빼놓고 모두 지킬 자신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출가한 스님들이 술을 마신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스님들은 산 높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의 정신을 흐리멍덩하게 만드는 술을 입에 대다니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스님들이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적인 갈등에 따른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고, 그렇다고 고된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술을 마시는 것을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술에 관대한 천주교

 

스님들은 술을 마셔서는 안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스님이 성직자라기 보다 수행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직자들은 술을 마셔도 되는 것 같다. 이웃 종교 천주교 신부들은 술을 마시기 때문이다. 언젠가 책을 보았는데 신부들이 술을 마시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놀란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보니 신부들은 술을 마셔도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의 그리스 정교회 순례기를 보면 수도사들이 포도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수도원에서 백골로 변색된 것은 화이트와인을 너무 마셔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였고, 붉은색 유골레드와인을 너무 마셔서 그렇게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또 천주교에서는 미사 도중에도 포도주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술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술에 관대한 종교가 천주교로 보인다. 같은 성직자 계열인 개신교의 경우 원칙적으로 술을 금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천주교나 개신교의 십계에는 금주에 대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불음주계는 오로지 불교에만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스님들에 기대가 크기 때문

 

언론에서 스님들이 술마시는 것에 대하여 왜 민감하게 반응할까? 다른 종교의 성직자들이 술판을 벌이는 것이 뉴스거리도 되지 않지만 스님들이 술판을 벌이면 뉴스가 되는 것일까? 이는 아직 까지 우리사회가 스님들에 기대가 크기 때문이라 본다.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수행자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암묵적 합의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스님들에 대하여 다른 성직자들 보다 더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 하는지 모르겠다. 이는 다름 아닌 성직자와 수행자의 차이라 본다.

 

수행자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천주교 신부나 교회 목사는 성직자이지만 불교의 스님은 수행자이다. 그래서 불자들과 국민들은 스님들이 성직자가 아닌 수행자의 길로 가기를 바랄 것이다. 승려도박사건이 일어나면 공분하는 것도, 승려밤생술판 사건이 일어나면 조롱하는 것도 수행자이기 때문이라 본다. 그렇다면 수행자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디가니까야 사만냐팔라경(수행자의 삶의 결실에 대한 경, D2)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부처님이 말씀 하셨다.

 

 

[세존]

“대왕이여, 예를 들어, 산꼭대기에 맑고 고요하고 청정한 호수가 있는데, 그 곳에 눈 있는 자가 언덕에 서서 조개류나 모래와 자갈이나 물고기의 무리가 움직이거나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와 같이 ‘이 호수는 맑고 고요하고 청정하다. 이곳에 조개류나 모래와 자갈이나 물고기의 무리가 움직이거나 서 있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수행승은 마음이 삼매에 들거나 청정해지고 고결해지고 티끌없이 오염을 여의어 유연해지고 적응성이 뛰어나 부동에 도달하여, 마음의 번뇌를 부숨에 대한 궁극의 앎으로 마음을 지향하게 하고 기울이게 하여,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그는 ‘이것이 번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그는 ‘이것이 번뇌의 발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그는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그는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을 때, 그는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대한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하고 존재에 대한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하고 무명에 대한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합니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궁극의 앎이 일어나며, 그는 ‘태어남은 부수어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을 다 해 마쳤고, 더 이상 윤회 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압니다.

 

대왕이여, 이것이 또 다른, 현세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수행자의 삶의 보다 뛰어나고 보다 탁월한 결실입니다.

 

대왕이여, 이것과는 다른, 현세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수행자의 삶의 보다 뛰어나고 보다 탁월한 결실은 없습니다.

 

(Sāmaññaphalasutta-수행자의 삶의 결실에 대한 경, 디가니까야 D2, 전재성님역)

 

 

사만냐팔라경에서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은 윤회의 종식이다. 수행자가 된 것은 청정범행을 닦아 괴로움을 소멸하여 궁극적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태어남은 부수어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을 다 해 마쳤고, 더 이상 윤회 하지 않는다.”라는 아라한 선언이 있어야 수행자의 삶이 결실을 맺는다는 것이다.

 

한국불교 장난해?

 

그럼에도 술판을 벌이고 도박을 하는 승려가 있다면 부처님 가르침을 거역하는 것이 될 것이다. 더구나 연수원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들은 밤새 술판을 벌였다면 대체 불자들은 누구를 믿고 따를 것인가. 대체 한국불교 스님들은 무엇하자는 것인가? 한국불교 장난해?

 

 

 

2013-12-0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