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외부세계는 엄연히 실재 하며 객관적인 사실로 존재 한다

담마다사 이병욱 2014. 2. 16. 12:13

 

 

외부세계는 엄연히 실재 하며 객관적인 사실로 존재 한다

 

 

 

죽어서 돌아온 사람이 없기에

 

지옥은 있을까? 아무도 죽어서 살아 온 사람이 없기에 사후의 세계에서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천상은 있을까? 역시 죽어서 돌아온 사람이 없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종교장사’가 된다고 한다. 아무도 죽어서 돌아온 사람이 없기에 사후세계에 대하여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지옥도 천국도 없다고 한다. 단지 마음속에 있다고 하며 마음쓰기에 따라 지금 겪고 삶자체가 지옥도 될 수 있고 천상도 될 수 있다고 한다. 반은 맞다고 본다. 현세의 삶에서 순간윤회로 보았을 때 적용 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생윤회로 보았을 때 지옥과 천상 등 흔히 말하는 육도윤회는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옥과 천상의 세계는 관념의 세계가 아닌 실재(實在)여야 윤회에 합치되는데, 실재한다는 사실을 어찌 입증해야 하나요?(SB스님)”라고 회의 한다면, 마치 죽어서 돌아서 온 사람이 없기에 육도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는 다름 아닌 업과 윤회를 부정하는 단멸론적 견해이다.

 

현세행복론자들은

 

지옥, 천상 등 육도는 있을까? 이에 대하여 불자라면 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현세에서 행복제일을 추구하는 현세행복론자들은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살면 됐지라고 하면서  죽음이후에 일어날 일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이런 시각은 죽으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보는 단멸론적 시각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육도는 분명히 존재한다.

 

육도가 존재한다는 것은 가장 먼저 부처님의 말씀으로 알 수 있다. 초기경전 도처에는 지옥, 천상 등에 대한 묘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매우 구체적인 묘사이다.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의 경(M129)에서 지옥에 대한 묘사를 보면 “수행승들이여, 그 다음에 지옥의 옥졸들은 그를 뜨겁고 불타고 시뻘겋게 달궈진 커다란 숯불 산에서 오르내리게 한다. 그때에 그는 괴롭고 아프고 격렬한 고통을 느낀다. 그렇지만 그에게 악업이 다하지 않는 한, 그는 죽지도 못한다. (M129)”라고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지옥묘사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어낸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마치 문학작품 처럼 허구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에 대한 근거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단지 개인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냥 저처럼 판단을 유보하세요

 

이렇게 경전에 쓰여 있는 말에 대하여 회의 하는 불자들이 있다. 이에 대하여 어느 법우님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 주셨다.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의식수준에 도달하신 분이
부처님이라고 인정하는 불자라면

적어도 부처님이     나 자신의 인식수준을 뛰어 넘는 말씀을 하셨다고 해서
굳이 애써가며, 신화를 차용했다느니, 후대에 전승이 잘못됬다느니, 방편이라느니
둘러댈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그대로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맞죠

요새 현대과학은
마음과 우주와의 관계에 너무 관심이 많은 거 같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이 우주를 팽창시킨다는

판타지보다도 더 판타지 같은 말들을 하고 있으니깐요
이러한 판타지가
노벨상 수상자들끼리 공유하는 세계관이라는 건데.........

소위 이른바 '합리적'이라고 자부하시는 분들은
이러한 판타지를 접하셨을때,         합리적이고, 수학적인 방법으로..
노벨상 수상자의 논리를 깨지 못하실꺼면
그냥 저처럼 판단을 유보하세요.........

 

(S법우님, http://blog.daum.net/bolee591/16155835)

 

 

S법우님은 근거를 대지 못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판단을 유보 하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자신의 인식과 한계를 넘어 서는 것에 대하여 부정하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님을 말한다. 그렇다면 지옥은 실재할까?

 

논장의 위치는?

 

빠알리 삼장이 있다. 이는 율장경장논장을 합하여 지칭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빠알리 삼장에서 논장의 위치는 어떠할까? 논장은 율장이나 경장과 동급으로 본다. 왜 그럴까? 그것은 부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을 체계적으로 정리 해 놓은 것이 논장이다.

 

경장이 교과서같다면 논장은 마치 참고서와 같다. 철저하게 경장을 근거로 하여 작성된 것이 논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장은 사실상 부처님 말씀이나 다름 없다.

 

외부세계는 엄연히 실재 하며 객관적인 사실로 존재 한다

 

논장중에 아비담마가 있다. 부처님 말씀에 대하여 방편없이 있는 그대로 법에 대하여(abhi-dhamma)’ 설명 된 것이 아비담마논장이다. 이 아비담마 논장에 육도에 대한 설명이 있다.

 

아비담마타상가하를 우리 말로 편역하여 놓은 것이 초불연에서 발행된 아비담마길라잡이이다.  대림스님과 각묵스님이 공저한 이 책에서 불교의 우주관에 대한 설명이 있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존재들이 거주 하는 세계가 있다고 한다. 지옥, 축생 등과 같은 육도와 삼계를 말한다. 그런데 아누룻다와 같은 주석가들에 따르면 이런 세계는 우리 내부의 마음에 있는 여러 현상이 밖으로 반영된 것이라 한다. 이는 무슨 뜻일까?  이에 대한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아비담마에 의하면 이 외부의 세계라는 것은 다름이 아닌 우리 마음에 있는 미세한 여러 계층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서 기재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비담마가 철학적 이상주의자들이 주장하듯 마음이 만들어낸 환영이나 비실재로 외부세계를 이해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아비담마에 의하면 외부세계는 엄연히 실재 하며 객관적인 사실로 존재 한다. 그러나 외부세계란 항상 마음에 의해서 이해 되는 세계이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여러 유형의 마음들이 외부로 부터 자신에게 나타나는 대상의 성질을 결정 한다. 그래서 마음이 없으면 외부세계는 아무 의미가 없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5 2, 대림-각묵스님역)

 

 

 

 

COSMOS

 

 

아비담마논장에 따르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인간계와 축생계 뿐만 아니라 지옥이나 천상 등 보이지 않는 세계도 존재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런 세계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였다. 그렇다고 일체유심조처럼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마음이 있어야 존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세계에서든지 마음이 있어야 세상도 있음을 말한다. 그런 외부세계에 대하여  외부세계는 엄연히 실재 하며 객관적인 사실로 존재 한다.”라고 천명한 것이다.

 

자신이 태어나기에 적합한 업을 지었기 때문에

 

마음과 세계는 상호 의존적이어서 따로 분리 할 수 없다. 그래서 중생들이 거주 하는 세계는 중층구조로 형성되어 있음을 말한다. 이는 여래 십력 중에 종종계지력으로 설명될 수 있다. 경에 따르면 종종계지력은 많은 세계로 구성된 다양한 세계의 세계에 관해 분명히 안다.(M12)”라고 되어 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지옥이나 천상 등 외부세계가 실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뭇삶들은 어떻게 해서 외부 세계에 태어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아비담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래서 어떤 중생이 왜 특정한 세계에 태어났는가 하는 것은 그가 전생에 그 세계에 태어나기에 적합한 업, 다시 말하면 마음의 의도적인 힘을 산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5 2, 대림-각묵스님역)

 

 

지옥이나 천상 등 육도, 그리고 삼계에 태어나는 요인은 전적으로 때문이라 하였다. 이는 자신이 태어나기에 적합한 업을 지었기 때문이다. 이런 업은 운명론적이고 숙명론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의도하여 지은 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옥에 태어난 자는 지옥에 태어나기에 적합한 업을 지었기 때문이고, 천상에 태어난 자는 역시 천상에 태어나기에 적합한 업을 지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업과 업의 과보의 바탕에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마음()과 업은 상호의존적이고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층구조로 된 세상에 중생들이 태어나는 것으로 본다. 결론적으로 아비담마에서는 중생들이 사는 모든 세상은 중생들의 정신적인 행위가 형성하고 만들어 내고 지탱한다.”라고 하였다.

 

마음이 있어야 세상이 존재한다

 

육도와 삼계는 중층구조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세계 중에 한 곳에 태어나는 것이 뭇삶들의 삶의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세계는 반드시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하였다. 마음이 있어야 세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은 행위를 유발하기 때문에 신구의 삼업의 결과 지은 업에 적합한 세계에 태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여래십력에 따르면 업이숙지력이라 하여 과거, 미래, 현재의 업보에 관해 조건과 원인을 살펴 여실히 그 과보를 분명히 안다.(M12)”라 하였다. 이는 마음이 일으킨 의도적 행위라 볼 수 있는 신구의 삼업에 대한 과보의 결과에 따라 세계가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또 부처님은 편취행지력이라 하여 모든 운명으로 인도하는 길에 관해 분명히 안다.(M12)”라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운명이란 업에 따른 과보를 받는 것을 말한다. 지옥, 축생 등 육도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경에서는 “이러한 다섯 갈래의 운명이 있다. 다섯 갈래란 어떠한 것인가? 지옥, 축생, 아귀, 인간, 천상이다. (M12)”라 하였다.

 

지옥에 태어나는 조건을 보면

 

그렇다면 자신이 지은 업에 적합한 세계에 어떻게 태어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맛지마니까야 사자후에 대한 큰 경(M12)’를 보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먼저 지옥에 태어나는 조건에 대한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사리뿟따여, 여기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나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나,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을 관찰한다.

 

예를 들어 사리뿟따여, 사람 키 남짓한 크기로, 불꽃이나 연기가 없이 작열하는 숯불의 구덩이가 있는데 여기에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기진맥진하고 목이 타고 갈증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오로지 한 길을 따라 이 숯불 구덩이를 바라보며 왔다고 하면, 그것을 보고 눈 있는 자는 그에 대해 이와 같이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는 숯불 구덩이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나중에 그 사람이 그 불구덩이에 빠져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안다.

 

나중에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그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나,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것을 볼 것이다.

 

(Mahāsīhanādasutta- 사자후에 대한 큰 경, 맛지마니까야 M12, 전재성님역)

 

 

문단은 편의상 나눈 것이다. 경에서 부처님은 나의 마음을 미루어 그의 마음을 파악하여라 하였다. 이는 타심통(他心通, paracitta-vijāhana)’ 을 말한다. 그래서 현재의 모습을 보고서 미래의 운명을 알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지금 누군가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 행위에 대한 과보로서 미래가 어떻게 전개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누군가 도둑질을 하였는데 잡히면 교도소에 갈 것을 아는 것처럼, 지옥에 떨어질 자 역시 지옥에 갈 의도적 행위를 하였기 때문으로 본다. 그래서 경에서는 숯불의 구덩이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누군가 오로지 한 길을 따라불이 활활 타는 숯불 구덩이만 바라 보며 살아 왔다면 그 길로 갈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숯불 구덩이는 악행을 말한다.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악행만 일삼는 자는 그 악행을 저지른 과보에 적합한 세계에 태어 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예를 들어 도둑질 한길로 평생을 살아 온 자가 있다면 그는 몰래몰래하는 습성이 있어서 그에 적합한 세상에 태어날 것이다. 또 살생을 밥먹듯이 하는 자는 오로지 그 한길로 걸어 갔다면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실천하고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길을 걸었으므로, 그는 숯불 구덩이에 떨어질 것이다.(M12)”라고 설명될 수 있다. 그 숯불 구덩이는 다름 아닌 지옥이다.

 

이렇게 지옥에 떨어지는 자는 지옥에 떨어질 만한 과보를 지었기 때문에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아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보았다고 하였다. 이는 여래십력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뭇 삶들을 관찰한다.M12”로서 사생지력을 말하는데 이는 다름 아닌 천안통이다. 뭇삶들의 업과 그에 대한 과보에 대하여 아는 능력을 말한다.

 

다섯 갈래의 운명에 대하여

 

부처님이 말씀 하신 다섯 갈래의 운명에 대하여 표로 정리하여 보았다.

 

 

No

구 분

비유(M12)

 

1

지옥

사람 키 남짓한 크기로, 불꽃이나 연기가 없이 작열하는 숯불의 구덩이가 있는데 여기에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기진맥진하고 목이 타고 갈증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오로지 한 길을 따라 이 숯불 구덩이를 바라보며 왔다고 하면,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곳

(숯불 구덩이)

2

축생

사람 키 남짓한 크기로, 똥으로 가득 찬 똥구덩이가 있는데 여기에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기진맥진하고 목이 타고 갈증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오로지 한 길을 따라 이 똥구덩이를 바라보며 왔다고 하면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곳

(똥구덩이)

3

아귀

평탄하지 못한 땅위에 생겨나 엷은 잎사귀들의 얼룩덜룩한 그늘을 가진 나무가 있는데, 여기에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기진맥진하고 목이 타고 갈증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오로지 한 길을 따라 그 나무를 바라보며 왔다고 하면,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경험을 하는 곳

(얼룩덜룩한 그늘을 가진 나무)

4

인간

평탄한 땅위에 생겨나 많은 잎사귀들의 짙은 그늘을 가진 나무가 있는데, 여기에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기진맥진하고 목이 타고 갈증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오로지 한 길을 따라 그 나무를 바라보며 왔다고 하면,

즐거움이 많은 경험을 하는 곳(끄샤뜨리아의 입장에서)

 

(짙은 그늘을 가진 나무)

5

천상

안팎이 잘 칠해지고 바람이 차단되고 빗장으로 채워지고 창문이 닫힌 이층누각에 안락의자, 긴 털의 흑모 양탄자, 긴 털의 백모 양탄자, 꽃무늬 양탄자, 까달리 사슴가죽으로 만든 최상의 모포, 차양, 붉은 빛 머리베개와 발베개가 있는데, 여기에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기진맥진하고 목이 타고 갈증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오로지 한 길을 따라 그 누각을 바라보며 왔다고 하면,

오로지 즐거운 경험을 하는

 

(이층누각의 안락한 곳)

 

 

경에서는 다섯 가지 운명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다. 이는 육도윤회에서 아수라가 빠진 것이다. 후기불교에서는 아수라가 추가 되어 육도윤회한다고 하였다.

 

오로지 한 길을 따라

 

경에서 오로지 한 길을 따라라는 말이 있다. 이는 ekayanenamagganena 의 번역어이다.  초불연에서는 외길를 따라라고 번역하였다. MDB에서는 ‘a path going in one way only’라 옮겼다. ‘한길또는 외길로 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생계를 위하여 직업을 갖는다. 그런데 직업이 바로 업이라는 것이다. 이때 직업은 오로지 한길로 가는 것을 말한다. 농부라면 농사짓는 업을 짓는 것이고, 어부라면 물고기 잡는 것을 업으로 한다. 가수라면 평생동안 노래를 부를 것이고 화가라면 평생 그림만 그릴 것이다. 또 평생 매춘부로 살았다면 어떻게 될까? 임종순간 마지막 죽음의식이 일어 날 때 신체의 특징부위를 대상으로 하여 재생연결식이 일어날 지 모른다.

 

그런데 경에 따르면 외길로 가다 보면 그 외길에 적합한 세상에 태어난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일생 동안 범죄만 저지른 자는 마치 숯불구덩이만 바로 보고 사는 것 같아서 죽어서도 역시 숯불구덩이와 같은 곳에 태어날 것이라 하였다. 또 평생동안 먹고 싸는 일만 하며 어리석게 산 자는 똥구덩이만 바라 보고 사는 것 같다고 하였는데,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똥구덩이가 익숙하여 똥구덩이와 같은 세계에 태어남을 말한다. 그래서 구더기에게 아무리 깨끗한 방에 원앙금침을 깔아 주어도 이를 마다 하고 기어이 똥통으로 가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외길로 가다보면 그것이 직업이 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업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그 업에 대한 과보로서 다음 생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업을 쌓으라고 한다. 선업 보다 더 좋은 것은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paccaya pariggha ñāna)를 얻어 이 생에서 작은 수다원(cula sotapanna)’이라도 된다면 다음 생을 위한 발판이라도 마련해 놓은 것으로 본다.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나려면

 

경에서는 다섯 갈래의 운명, 즉 지옥, 축생, 아귀, 인간, 천상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경에서 언급된 천상은 이층누각의 안락함에 대하여 표현 되어 있으므로 욕계천상에 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색계와 무색계에 태어나는 존재는 어떻게 그런 세계에 태어난 것일까?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 되어 있다.

 

 

선을 놓치지 않은 [범부]가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리라’면서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기를 원하거나, 원하지 않더라도 선으로부터 물러나지 않으면, 그때 본삼매의 수행은 존재의 특별함을 가져오기 때문에 존재의 특별함의 이익을 얻는다.

 

(청정도론 11장 삼매 123, 대림스님역)

 

 

누군가 색계에 태어나는 것을 바란다면 색계에 태어 나리라라고 외길을 걸으면서 선정삼매를 닦으면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 인식하는 것은 괴로움만  유발할 뿐이다라 하여 인식을 혐오하는 수행을 하였다면 그는 무상유정천에 태어 날 것이다. 그곳에서는 삶과 죽음을 거꾸로 산다고 한다. 그래서 마치 청동상이나 목각인형처럼 정신기능이 없이 오로지 몸만 있는 곳이다. 또 어떤이는 육체를 혐오 하여 오로지 정신기능만 있는 곳에 태어나리라고 외길수행을 한다면 무색계에 태어날 것이다.

 

만일 누군가 원하는 대학을 목표로 “나는 OO대학에 들어 가리라라고 외길을 걸으면, 그 행위에 대한 과보로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 나는 경찰공무원이 되리라 라고 외길을 걸으면, 그 행위에 대한 과보로서 경찰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가수, 화가, 건축가 등 여러 가지 직업은 자신의 행위(업)에 대한 과보로 주어진다. 도둑, 사기꾼, 강도가 되는 것 역시 자신이 지은 행위의 결과이다. 이렇게 외길로 가면 그 외길에 적합한 직업을 갖게 되고 또 그 업에 적합한 세상에 태어나는 것으로 본다.

 

심심해 심심해

 

유튜브에서 간증동영상을 보았다. 강남에서 마담을 하였다는 여인의 간증에 따르면 룸살롱을 출입하는 부자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은 심심해 심심해라는 말이라 한다. 그래서 돈 많은 부자들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심심하다는 말이라 한다.

 

즐길거리를 찾아 다니는 사람들은 즐길거리가 없을 때 무료함과 권태로움을 참지 못한다. 지금 여기에서 천상과 같은 복을 누리고 있는 물질적으로 부자인 자들은 늘 즐길거리를 찾는다. 그래서 몇 시간 걸려 차로 달려 맛집을 찾아 가고, 최고의 미녀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을 낙으로 여긴다. 이렇게 지금 여기에서 천상락을 누리는 자들이 죽어서 가장 수승하다는 범천에 태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최근 김진태교수가 지은 천당과 지옥은 번지수가 없다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천국을 탐하는 자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 천국은 탐착의 대상이 아니며, 탐착은 그대로 지옥이다. 오염된 자가 있는 곳은 곧바로 그대로가 오염된 세계이기 때문에 천국일 수가 없다. 이 세계는 육도(六道)의 각 세계가 단층적으로 분할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세간의 육도와 함께 출세간의 세계까지도 중첩되어 있는 중층적(重層的)인 세계이다. 마찬가지로 각 세계의 각 개체속에도 다른 세계들이 잠재되어 있다.

 

욕심이 많은 자를 그가 생각하는 천국 같은 세계에 보내 놓더라도, 그런 자는 그곳 생활에 익숙해지게 되면 이제 그곳이 권태로워지고 괴롭게 되면서 지옥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천국 같은 세계가 권태로워지고 괴롭게 되면서 지옥으로 변하지 않게 하려면, 그 자신이 스스로 욕심이나 증오심을 제어할 수 있어서 항상 마음이 맑고 밝고 따뜻하고 고요해질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김진태교수, 천당과 지옥은 번지수가 없다 66-67쪽)

 

 

글에서 말하는 천국은 욕계천상이 아니라 범천이라 본다. 부처님이 재해석한 초기경전에서 범천은 색계와 무색계를 아우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범천은  욕망이 없는 세계이다. 그래서 남녀 구분이 있을 수 없다. 범천의 세계는 중성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심심해를 연발하며 마치 욕계천상과 같은 천상락을 누리고 사는 자가 범천이 좋다 하여 범천에 태어 났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책에서는 견딜 수 없을 것이라 하였다. 욕심이 있는 자에게 범천은 도무지 심심해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 하였다.

 

김진태 교수의 글에 따르면 중층적 세계라는 말이 나온다. 책에서는 중층에 대하여  中層이라 하였으나 이는 오타로 본다. 문맥상 重層이 맞다고 본다. 그래서 중층적(重層的)’으로 바꾸었다. 중층적 세계라는 것은 육도와 삼계를 말한다. 이는 ‘많은 세계로 구성된 다양한 세계의 세계에 관해 분명히 안다. (M12)’라 설명된 ‘종종계지력’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김진태 교수에 따르면 이런 중층의 세계는 육도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 마음에서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각 세계의 각 개체속에도 다른 세계들이 잠재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윤회라는 것이 일생윤회도 있지만 순간윤회도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중층으로 된 외부세계는 엄연히 실재 하며 객관적인 사실로 존재하며, 동시에 각 개체의 마음 속에도 이와 유사한 세계가 있음을 말한다.

 

업은 밭이고 의식은 종자이고 갈애는 수분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시시각각 변한다. 이렇게 변덕이 죽 끓듯이 하다 보니 웃고, 울고, 성내고, 욕심 부린다. 그래서 한 순간에도 지옥과 천상을 경험한다. 이는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의도적 행위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과보로서 지금 여기에서 지옥과 천상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행위에 적합한 세계에 태어난다. 마음과 업에 따라 존재가 태어날 곳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Iti kho ānanda, kamma khetta, viññāa bīja, tahā sineho. Avijjānīvaraāna sattāna tahāsayojanāna hīnāya dhātuyā viññāa patiṭṭhita. Eva āyati2 punabbhavābhinibbatti hoti.

 

 

[세존]

“아난다여, 그래서 업은 밭이고 의식은 종자이고 갈애는 수분이다. 무명의 장애가 있고 갈애의 결박이 있는 뭇삶에게는 하층의 세계에 의식이 확립된다. 이와 같이 해서 재생존재로 태어나게 된다. (A3.76, 존재의 경, 전재성님역)

 

 

“아난다여, 이처럼 업은 들판이고 알음알이는 씨앗이고 갈애는 수분이다. 중생들은 무명의 장애로 덮이고 갈애의 족쇄에 계박되어 중간의 [색]계에 알음알이를 확립한다. 이와 같이 내생에 다시 존재[再有]하게 된다. 아난다여, 이런 것이 존재이다.” (A3.76, 존재 경, 대림스님역)

 

 

 

아난다가 “세존이시여, ‘존재, 존재’라고 하는데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존재가 됩니까?”라는 물음에 답하신 것이다. 경에서 부처님은 “감각적 쾌락의 세계라는 결과를 낳는 업이 없이 감각적 쾌락의 존재가 시설될 수 있는가?”라고 묻고 답한 것이다.

 

지옥에 태어날 업을 지은 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과보로서 지옥에 태어날 조건을 갖추었음을 말한다. 그래서 경에서는 “업은 밭이고 의식은 종자이고 갈애는 수분이다. (kamma khetta, viññāa bīja, tahā sineho, A3.76)”라 하였다. 이는 업(kamma), 의식(viññāa), 갈애 (tahā) 이렇게 삼박자를 갖추었을 때 존재로서 태어나 육도윤회함을 말한다.

 

이렇게 자신이 지은 과보에 따라 지금 여기에서 육도를 경험할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중층구주로 된 육도 중의 하나에 태어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인간과 축생이 존재하듯이 지옥이나 천상등 육도와 삼계는 엄연히 실재 하며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정하는 자가 있다면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2014-02-16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