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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내지말고 보시하라고 했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14. 3. 1. 23:21

 

티내지말고 보시하라고 했는데

 

 

 

불교중앙박물관 가는 길에

 

3월 1일이다. 아직까지 추위는 여전하지만 마음만은 이미 봄이다. 더구나 개학일이 다가 옴에 따라 진짜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항상 3월 1일이 새해 같은 느낌이 든다.

 

오랜 만에 조계사로 향하였다. 불교중앙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는 특별전을  보기 위해서이다. 삼국유사 저자인 일연스님이 머물렀다는 인각사에서 출토된 국보급 유물이다.

 

전철과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종각역에 도착하였다. 이번 조계사에 갈 때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걸인에게 빵과 음료를 사다 주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방문을 통하여 꼭 해 보고 싶었다.

 

종각역 지하 로비에서

 

조계사 가는 길에 보면 걸인들이 유독 많다. 아마 종교시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하철 계단에서부터 조계사에 이르는 조계사에는 항상 걸인들을 볼 수 있는데 대부분 지나친다. 그래서 돈통을 놓고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이 아닌 빵과 음료를 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계획이 바뀌었다. 전문으로 구걸하는 사람이 아닌 노숙인 처럼 보이는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종각역 지하에 대형서점이 있다. 그 앞에는 매우 넓직한 로비가 있어서 사람들이 앉아서 쉬기도 한다. 그런데 마치 걸인처럼 보이는 사람 둘이 앉아 있다. 그러나 걸인 같아 보이지 않았다. 돈통도 보이지 않고 구걸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하로비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은 걸인 같기도 하지만 걸인도 아니다. 그렇다면 노숙인일까? 그런 것 같지 않다. 바퀴가 달린 여행용 가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옆에는 종이박스로 된 짐도 있었다. 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일까?

 

한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또 한사람은 무릎에 고개를 묻고 있다. 잠을 자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치 도를 닦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계속 앉아 있다. 갈곳이 없어서 하염없이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앉아 있는 두 사람은 외국사람 같기도 하다.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왔다가 뭐가 잘 못되어 갈 곳이 없어서 앉아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나중에 말을 걸어 보니 한국말을 알아 듣는다. 그런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사람 인 것 같지만 또 한편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중국에서 온 중국동포 같기도 하다.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갈곳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표정을 보니 수심이 가득하다

 

구걸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본래 계획은 조계사길에서 돈통을 앞에 놓고 구걸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빵을 사주려 하였다. 그러다 계획을 바꾸었다. 전문구걸인은 돈통을 놓고 구걸하기 때문에 당장 사는데 문제가 없으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햄버거를 두 개 사서

 

그런데 지하철 역 로비에서 본 사람들은 갈곳도 없고 연고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더구나 돈통 같은 것도 없고 구걸을 하지도 않고 마치 도 닦듯이 마냥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전문구걸인 보다 더 안되어 보였다. 더구나 표정이 너무 어두워 보여 거의 삶의 의욕을 상실한 듯해 보인다. 이왕 빵을 줄 것이라면 이런 사람들에게 빵을 주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햄버거를 두 개 샀다. 그리고 뜨거운 캔커피 두 개를 샀다. 그리고 준비된 봉지에 햄버거와 캔커피를 넣었다.

 

 

 

 

 

빵과 음료를 노숙인처럼 보이는 두 사람에게 주었다. 처음에는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으나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더 이상 긴 이야기 하지 않고 합장히며 빠져 나왔다.

 

거리에 나가서 도와 주는 것이 더

 

이렇게 빵과 음료를 주기로 마음 먹게 된 것은 몇 일 전 댓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다른 사이트에서 퍼온 글이 있는데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차라리 그 시간에 거리의 걸인이나 도와 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라는 취지의 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말로만 자비를 말하며 실천이 따르지 않음을 꼬집어 이야기 한 것이다.

 

글로서 소통하는 것도 보시를 하는 것이고 자비의 실천이다. 보시라는 것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이여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재능이 있다면 무상으로 재능을 보여 주는 것도 일종의 보시이고 정 줄 것이 없으면 부드러운 미소 한 번 지어 주는 것도 보시이다. 그럼에도 하루 종일 글쓰는 것에 대하여 시비를 걸며 그 시간에 차라리 거리에 나가서 걸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더 낫다는 취지로 말하였을 때 언젠가 한 번 실천해 보리라 마음 먹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계사 가는 길에 처음으로 해 본 것이다.

 

걸인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사람들은 걸인을 만날 때 몇 가지 반응이 있다. 가장 일반적인 반응은 무시하며 지나치는 것이다. 돈통을 놓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걸인을 모르는 척 하고 지나치는 것이다. 또 한 부류는 돈을 주고 가는 것이다. 대부분 동전 몇 개이다. 돈통에는 종종 지폐도 보인다.

 

알고 지내는 법우님에 따르면 걸인에게 절대 돈을 주지 말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돈을 주어 보았자 걸인에게 돌아 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배후가 있기 때문에 배후에서 다 가져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걸인을 볼 때 돈으로 주지 않고 반드시 김밥이나 빵을 준비해서 준다고 하였다. 걸인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먹을 것이라 하였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언젠가 실천해 보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티내지말고 보시하라고 했는데

 

금강경에 “무주상보시 기복덕 불가사량 (無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이라는 말이 있다. “상에 머물지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생각으로 헤아릴수 없을 것 이다”라는 말이다. 상에 머물지 않는다는 무주상(無住相)은 어떤 뜻일까? 쉽게 말해서 ‘티내지 말라’는 것이다. 보시를 해도 티내지 않고 하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처자식 부양하는 것 자체에 대하여 큰 보시라고 한다. 또 나라에 세금 내는 것도 일종의 보시라고 한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의무사항에 해당된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세금 내는 것은 국민의 사대 의무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식에게 맛있는 빵을 사 주었다. 이것에 대하여 일기장에 나는 오늘 참 착한 일 하였다라고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녀에 대한 사랑은 주고 받는 사랑이 아니라 오로지 주기만 하는 사랑이기 때문에 티를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식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입을 것을 사주는 행위에 대하여 큰 공덕을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무주상이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타인에게 보시할 때도 티내지 않고 보시하라고 하였다. 그래야 그 복덕에 대한 과보가 헤아릴 수 많을 것이라 하였다.

 

노숙인 처럼 보이는 두 사람에게 빵을 사주었다고 넷상에 올리는 행위는 분명 티내는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무주상보시가 될 수 없다. 바이블에도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듯이 누군가에 알리는 행위는 분명 티내는 것에 해당 된다. 그럼에도 이렇게 티를 내는 것은 이런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보시하는 삶을 살았을 때

 

초기경전에는 수 없이 보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자애, 연민 등 사무량심과 함께 불자라면 누구나 실천해야 하는 덕목이다. 상윳따니까야에서 보시하는 삶, 실천하는 삶에 대한 게송이 있다. 나무심기경에서 하늘사람이 “어떠한 사람들에게 밤낮으로 공덕이 항상 늘어납니까”라고 부처님께 물어 본다. 이어서 “진리에 의지하고 계행을 갖추어 어떤 사람이 하늘나라로 갑니까?”라고 물어 본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답하신다.

 

 

[세존]

“동산과 숲에 나무를 심고

다리를 놓아 사람들을 건네주며

우물을 파 목마른 이를 적셔주고

우물가에 정자를 세우는 사람이 있네.

 

그들에게 밤으로나 낮으로나

공덕이 항상 늘어난다.

진리에 의지하고 계행을 갖추는

그러한 사람들이 하늘나라로 간다네.

 

(나무심기의 경, 상윳따니까야 S1:47, 전재성님역)

 

 

[세존]

“원림을 가꾸면서 숲을 가꾸고

다리를 만들어서 건네주는 자

물 마시는 곳 짓고 우물 파는 자

지낼 거처 장만하여 보시하는 자

 

이들에게 공덕은 낮이나 밤이나

항상 두루 증장하여 즐어들지 않나니

이들이 법에 안주하고 계를 곧게 구족하여

그 목숨 다한 뒤에 천상에 가노라.”

 

(숲 가꾸기 경, 상윳따니까야 S1:47, 각묵스님역)

 

 

Those who set up a park or a grove,

The people who construct a bridge,

A place to drink and a well,

Those who give a residence

 

“For them merit always increases,

Both by day and by night

Those are the people going to heaven,

Established in Dhamma, endowed with virtue.

 

( Planters of Groves,CDB  S1:47, 빅쿠 보디역)

 

 

성전협의 번역서에는 각주가 보이지 않는다. 초불연의 각주를 보면 숲, 다리, 우물, 거처에 대한 보시는 승가에 하는 것이라고 짤막하게 설명 되어 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재가자가 출가자에게 머물 수 있도록 거처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커다란 공덕을 짓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보시를 하긴 하된 반드시 계행이 따라야 함을 말한다. 재가자의 경우 오계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또 하나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사성제를 뜻한다. 이렇게 계행을 지키고 진리를 추구하며 보시하는 삶을 살았을 때 천상에 태어나게 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2014-03-0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