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말 없는 다수의 바램이 있는데, 인터넷의 금도와 법도

담마다사 이병욱 2014. 4. 5. 10:40

 

말 없는 다수의 바램이 있는데, 인터넷의 금도와 법도

 

 

 

현실세계의 축소판

 

인터넷은 열린 공간이다. 2000년 이후 본격적으로 인터넷시대가 시작된 이후 이제 가상공간은 생활 그 자체가 되었다. 또한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이 인터넷시대와 함께 가능해졌다. 대표적으로 글쓰기를 들 수 있다. 누구나 블로그나 카페를 만들어 글을 쓸 수 있고, 대부분 매체에서는 게시판형식으로 소통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이처럼 좋은 취지의 소통수단에도 불구하고 폐해가 없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으로 악플을 들 수 있다. 욕설과 인신공격과 음해 등 현실세계에서나 볼 수 있었던 현상이 실제로 가상공간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 보여진다. 하루에도 수 없이 가상공간을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의 성향이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공간의 현실세계의 축소판이나 다름 없다.

 

공감하기 때문에

 

2005년에 블로그를 만들어 이제 햇수로 10년이 되었다. 인터넷에 글을 쓴 것은 2006년 부터이므로 햇수로 9년이 되었다. 그 동안 수 많은 글을 올렸다. 그 동안 올린 글을 보니 7,138개이다. 직접 작성한 글은 2,555개이다. 특히 직접 쓴 글은 거의 매일 한편씩 쓰다시피 한 것이다.

 

이렇게 9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블로그에 글쓰는 것을 취미로 하여 지내 왔다. 그러다보니 찾아 주시는 분들도 많이 생겨났다. 현재 누적조회수는 391만명에 달한다. 올린 글이 뉴스로 채택 되어 대문에 실린적도 있으나 현재는 꾸준히 찾아 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 불자일 것으로 판단되지만 인터넷에는 국경이 없으므로 그 중에는 무종교인도 있을 수 있고 타종교인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어린 아이도 있을 수 있고 고령의 노인도 있을 수 있다.

 

이처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인터넷이다. 블로그나 카페가 공개 되어 있다면 역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이처럼 모든 정보가 오픈 되어 있고 더구나 공유할 수 있는 곳이 인터넷이다. 그 중에서도 블로그나 카페의 경우 성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서로 공감하고 소통한다.

 

블로그는 개인적 공간

 

인터넷 공간에는 수 많은 블로그와 카페, 게시판이 있다. 대부분 취향에 따라 선택한다. 그 기준은 공감이라 본다. 공감하기 때문에 소통하는 것이다. 만약 공감하지 않는다면 찾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소통수단에 있어서 약간씩 차이가 있다.

 

공감과 소통수단으로서 블로그와 카페가 동일하긴 하지만 카페가 좀더 열린 공간이라 볼 수 있다. 본문에 글을 올리는 것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쌍방향 소통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토론이 매우 활발하다. 그러나 블로그의 경우 개인적 공간이라 볼 수 있다. 오로지 개인만이 글을 쓰기 때문에 개인의 생각이 반영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개인블로그라는 명칭으로도 불린다. 이렇게 개인적 성향이 강한 블로그는 폐쇄적 성격이다.

 

 

 

 

 

인터넷의 역기능

 

개인블로그가 폐쇄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소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댓글이나 방명록 등의 공간을 활용하여 공감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인공간이 다름 없는 블로그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마치 남의 집에 들어와서 난동을 피우는 것처럼 서로 치고 받고 다투는 모습을 보았을 때 예의가 아닐 것이다.

 

 견해가 다르다고 하여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다든가 욕설을 한다든가 중상모략을 하여 마음의 상처를 주었을 때 이는 인터넷의 역기능이라 보여진다. 더구나 불교인들이 팔정도의 정어정사유에 어긋나는 행위를 서슴없이 하였을 때 더 이상 불자라 볼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 창피한 행위라 본다.

 

불행하게도 최근 1년간 이곳 블로그 댓글 공간에서는 정도에 어긋나는 구업이 종종 일어 났다. 특히 본문 글을 왜곡하거나 악의적으로 비방하기도 하는 것을 수도 없이 목격하였다. 그러나 이제 한계에 이른 것 같다.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될 때가 된 것이다.

 

금도를 벗어났다

 

정치인들이 종종 하는 말 중에 금도가 있다. “집권당으로서 금도를 지키려 노력했다라는 말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래서 금도를 지켜라라거나 금도를 벗어났다라는 말을 한다. 이렇게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금도라는 말은 어떤 한계나 금지선을 넘지 말라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도에 대한 국어사전을 보면 전혀 그런 뜻은 보이지 않는다. 비슷한 말로 襟度(금도)’가 있긴 하지만 이는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금도라는 말은 금지할 금()’자와법도 도()’로 이루어진금도(禁度)’라 여겨진다. 그래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지 말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라 본다.

 

무사도를 어기면 할복한다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금도라는 말을 다른 말로 바꾼다면 법도(法道)’가 될 것이다. 법도 법률을 지켜야 할 도리라고 설명된다. 그런데 법도라는 말이 사용된 예를 하나 보았다. 일본 NHK대하 드라마 신선조(2004)에서 법도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신선조(新選組)는 도쿠가와 막부 말기 낭사조직이다. 떠돌이 사무라이들로 이루어진 이 조직은 처음에는 몇 명 되지 않았다. 검술을 가르치는 시위관관장인 20대 후반의 곤도 이사미와 그를 따르는 몇 명의 관원으로 출발하였으나 쿄오토 치안을 맡게 됨에 따라 대원이 늘어 갔다.

 

그런데 무사들이 늘어 갈수록 엄격한 규율이 필요하게 되었다. 도중에 탈주하는 자가 생기는 가 하면 무사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등 문제가 수시로 발견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규율을 정하고 결속을 다지기 위한 법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매우 가혹하다. 5개로 이루어진 항목 중에 1조가 무사도를 어기면 할복한다라는 내용이다. 몰래 탈주 해서 잡혀도 할복이다. 할복에 대하여 일본에서는 셋뿌꾸(切腹)’라 한다. 드라마에서는 이런 할복 장면을 여러 차례 보여준다.

 

특히 신선조가 간부가 도주하다 잡혔는데 할복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의식에 따라 배를 가르는 순간 뒤에서 목을 쳐주는 가이샤꾸장면이다. 이렇게 법도를 만들어 운영하자 신선조는 철의 결속이 이루어지고 막부말기 최강의 무사조직이 된다.

 

비구계는 왜 생겨났을까?

 

어떤 조직이든지 처음에는 규율이 없다. 그러나 사람이 늘어 날수록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에 따라 법이 만들어진다. 그것이 법도라 볼 수 있다. 불교도 마찬가지라 본다. 부처님이 처음으로 법을 펼치실 규율이나 형식 같은 것이 없었다.

 

초전법륜이 이루지고 난 다음 다섯 명의 수행자가 비구계를 받기를 원하자 부처님은 “오너라 비구여! (Ehi Bhikkhu!)” “법은 잘 설해졌다. 와서 괴로움을 완전히 끝내기 위해 계율 집중, 지혜의 출세간의 수행을 닦도록 하여라.”라고  말씀을 하셨다. 이것이 구족계이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구족계 받는 것이 복잡해졌다. 정식비구가 되려면 삼사칠증(三師七證)’이라 하여 3명의 스승과 7명의 증인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계를 주는 계화상, 청결을 증명하는 갈마사, 의식을 가르쳐 주는 교수사를 말하고 칠증은 입회인을 말한다. 이렇게 열 명의 입회인 있어야 구족계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형식이 생겨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상가에 들어 왔기 때문이다. 잘 배운 양갓집 자제도 있는 가 하면 이발사 출신도 있고 마부 출신도 있어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다양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생활 하다 보니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 때마다 법을 만든 것이 계율이다. 그래서 수 백가지에 달하는 규율이 생겨났다.

 

비구계를 보면 대부분 음행에 대한 것이다. 그 중에서는 사바라이죄가 있다. 사람을 죽이는 것 , 도둑질 하는 것 , 음란한 짓을 하는 것 , 깨닫지 못하고서 깨달았다고 거짓말 하는 것 이렇게 네 가지를 말한다. 이런 사바이죄를 어기면 승단추방이라는 중벌이 내려진다. 사회로 말하면 사형과 같은 것이고 무사조직이라면 할복과 같은 것이다. 이처럼 계율을 지킬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서약하는 것이 구족계를 받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인터넷공간에서의 금도와 법도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느 곳이든지 규율이 있다. 어느 조직, 어느 단체이든이 지켜야할 법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가정에서 조차 법이 있어다. 자녀들에게 몇 시까지는 들어 와야 된다는 것 등이다. 이렇게 크고 작은 조직에서 지켜야 할 법이 금도이고 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공간에서도 역시 금도와 법도가 없지 않을 수 없다. 카페나 게시판을 보면 회원 준수사항이라는 것이 보인다. 불교를 대표하는 어느 카페의 회원준수사항을 보면 다음과 같다.

 

 

회원님 준수 사항

 

삭제되는 글 또는 강등대상 (정도에 따라  활동정지 또는 글쓰기 정지될 수 있습니다)

 

<화합을 깨뜨리는 글><불교경전과 부처님, 보살님을 폄훼, 능멸, 비방, 모독. 부정하는 글><반 불교적인 글>

 

<상대에게 상처주는 글><명예훼손, 개인정보, 인권침해의 글><감정적인 논쟁이나 물의를 유발할 소지가 있는 글>

 

<혐오, 폭력, 공포, 음란 글><예의에 벗어난 글><장난 글무성의한 글><중복되는 글>< 게시 글><악성소스  >

 

<운영진에게 무례한 글. 청탁 글 게시><아이디 비공개나 개인정보 불성실자의 글><금전요구 채팅과 게시글><지역갈등 조장><저작권법, 초상권에 저촉되는 게시글><회원님들의 삭제요청을 받은 글><가입질문 불성실자-거주지/성별/나이><강등 후 재가입등으로

 

맑고 밝음중에 회원님들간에 서로를  배려하며 부처님의 귀한 가르침을 알리며  배우고자 하는 사부대중 회원님들의 뜻과 그에 부응하고자 하는 카페의 정서와 취지에 반하는 게시물이나 게시글, 답글댓글은 삭제 또는 보관되며 게시자는 정도에 따라  활동정지 또는 글쓰기 정지될 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amtb/5tH2/16 )

 

 

내용을 보면 화합을 깨뜨리는 글, 상처를 주는 글, 명예훼손 등의 글이다. 이런 규정은 어느 인터넷카페나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다. 특히 불교카페의 경우 더욱 더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불법승삼보에 의지하고 오계를 준수하는 불자들에게 있어서 막말이나 욕설, 인신공격 등 스스로 구업을 짓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욕설, 인신공격, 근거 없는 소문을 사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글은

 

인터넷공간에서 규제사항은 게시판에서도 볼 수 있다. 불교관련 사이트에서 댓글을 달 때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공지사항] <불교닷컴> 기사의 댓글로 인한 고소고발이 남발하고 있습니다. 욕설, 인신공격, 근거 없는 소문을 사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글은 게시자의 동의 없이 관리자가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불교닷컴 기사의견쓰기)

 

 

불교닷컴의 기사의견 쓰기란 을 보면 욕설, 인신공격, 근거 없는 소문을 사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글을 금하고 있다. 이런 글이 발견될 때에는 게시자의 동의없이 곧바로 삭제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불교신문에서도 욕설 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모든 매체에서 욕설, 인신공격, 음해성 글은 예고 없이 삭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블로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욕설이나 비방으로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글, 본문을 왜곡하여 음해하고나 중상모략하는 글, 경전의 내용을 왜곡하거나 가르침을 훼손하는 글, 화합을 저해하는 글 등은 삭제 대상에 해당 될 것이다.

 

그러나 개인블로그는 카페나 신문사이트와 달리 개인공간이다. 그래서 댓글을 허용할 수도 있고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도록 기능이 되어 있다. 또 본문 글에 대하여 오른쪽 마우스 버튼 금지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기능도 되어 있다. 이런 점은 블로그가 개인이 운영하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본다.

 

서로 배우고 아끼고 격려해 주어서

 

현재 블로그가 햇수로 10년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글쓰기를 하면서 수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였다. 그래서 방문하는 사람중에는 최고 10년지기가 있는가 하면 글을 남겨 주시는 법우님 상당수가 4-5년 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일이년도 아니고 오륙년 동안 글을 보신 법우님들은 글과 함께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 배우고 아끼고 격려해 주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래서 종종 격려의 글을 받는다. 최근 어느 법우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댓글을 받았다.

 

 

"지금 현재를 알아차려라", 늘 마음에 새겨야 할 진리입니다.
이렇게 새기지 않으면, 감각기관이 늘 어지러워지면서, 번뇌가 스물스물 마음에서 일어나죠.
수행을 조금씩 하면, 할수록 마음이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 지 놀라울 지경입니다 .
그리고, 변화가 너무 심하여, 종 잡을 수도 없죠.

하지만, 호흡을 지켜 보든지, 몸의 어떤 불편한 곳에 마음을 붙이든지,     마음을 몸에 붙을 수 있으면, 마음이 안정을 찾는
느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 위빠사나을 깊숙히 배우지 못했지만, 조금이나마, 그 수행을 테라와다 스님에게서 배울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특히, 아상과 자존심이 높아 스스로 괴로움이 많았던 저에게, 수행으로 인하여, 조금씩 마음의 평정을 가질 수 있어, 화나 신경질이 많이 줄어든 걸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자애심도 조금씩 이나마 늘어나고, 보시도 인색한 마음없이 하게 되구요. 그리고, 그걸 가까운 사람에게 권하게 되더군요.

이런 변화의 길을 알려주신 연꽃님에게 늘 감사드립니다. __()__
초기불교에 새겨진, 부처님의 바른 가리침이 널리널리 퍼지기를 기원합니다..__()__

 

(B법우님, http://blog.daum.net/bolee591/16155886 )

 

 

이런 글을 받을 때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이 든다. 단지 경전을 근거로 하여 인터넷에 글을 쓴 것일 뿐인데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표현하는 님들은 매우 드믈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 보기만 할 뿐 글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종종 이런 글을 받으면 이름도 얼굴도 알 수 없는 수 많은 님들이 항상 지켜 보고 있음을 느낀다.

 

말 없는 다수의 바램이 있는데

 

말 없는 다수의 바램이 있다. 대부분 하는 말들이 댓글에서 욕설이나 인신공격, 음해, 가르침 왜곡 등을 막아 달라는 것이다. 댓글을 보면 불선심이 생겨나서 보기 싫다고 한다. 그러나 댓글이 써 있어서 보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한다. 이렇게 말 없는 다수의 사람들은 넷상에서 인신공격, 욕설, 근거없는 음해 등을 싫어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댓글문제는  좀처럼 가라 앉지 않는다. 오히려 가면 갈수록 심화 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내용도 불선(不善)’한 것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댓글을 폐쇄 하려 한다. 기간은 잠정적이고 일시적이다. 댓글을 접찰 할 수 있는 기능이 보완 될 때 까지이다.

 

댓글을 폐쇄를 요청하는 님들은 악의에 가득찬 댓글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보고 싶지 않은 권리도 있기 때문에 댓글을 접은 채로해 달라고 한다. 그러나 미디어 다음에는 그런 기능이 없다. 문의해 보니 요청하면 접기기능을 넣겠다고 하였다. 지난 10년간 블로그의 진화과정을 지켜 보아 왔기에 가능한 것이라 보여진다.

 

댓글접기 기능이 생겨 날 때 까지 새로 올린 글 이후에서 부터는 댓글을 폐쇄한다. 물론 일시적이고 잠정적이다. 본문글을 왜곡하고 악의에 찬 비방을 막고자 하는 목적이 가장 크다. 이점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메일을 활용하는 것이다. 다음에 로그인하면 자동으로 생성되는 메일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메일로 문의한 것에 대하여 소통하는 것이다. 그런 메일 주소는 프로필란에 메일을 적어 놓았다.

 

우측마우스버튼 금지

 

또 한가지 조치한 것이 우측마우스버튼 금지이다. 이는 글을 함부로 퍼 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런 조치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반대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글을 퍼가서 악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조치 역시 일시적이고 잠정적이다.

 

이렇게 우측마우스버튼을 금지한 것은 마성스님의 예를 따른 것이기도 하다. 스님은 미디어다음에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퍼가지 못하도록 조치하였다. 이유는 글이 왜곡된다는 것이다. 마음대로 퍼가서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는 예를 보았다고 하였다.

 

또 한가지는 수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올려진 글은 종종 수정할 수 있는데 한번 퍼간 글은 추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류가 있는 채로 인터넷 바다에 떠다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구업을 짓게 되는데 오른쪽 마우스를 금지해 놓으면 그럴 염려가 없을 것이라 한다.

 

마성스님의 블로그를 방문해 보면 스크랩이 금지 되어 있다. 필요하면 와서 보면 된다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필요하면 와서 보면 된다. 다만 자료가 필요한 님은 메일로 발송할 수 있다. 인사말과 함께 자신을 밝히고 사정을 이야기하면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메일로 소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블로그도 변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이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그 사실 자체는 결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블로그도 변한다. 지난 10년간 진화해 왔듯이 또 다른 변화를 추구한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지만 댓글과 스크랩을 금지하여 놓았다. 그렇다고 하여 영원한 것은 아니다. 제행무상의 법칙에 따라 또 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쓰기는 계속 된다. 지난 10년간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내일도 계속 쓸 뿐이다. 다만 자기 검열해 가면서 경전에 근거하여 항상 겸손한 자세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014-04-0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