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스님들은 팔자 좋은 인생, 지역에 뿌리가 없는 한국불교

담마다사 이병욱 2014. 5. 20. 16:55

 

스님들은 팔자 좋은 인생, 지역에 뿌리가 없는 한국불교

 

 

 

우리 출가수행자들은 의식주에 대한 걱정이 없습니다

 

한겨레신문의 휴심정에 실려 있는 법인스님의 글을 읽었다. ‘느끼며, 행복하게라는 글이다. 짤막한 글이지만 글을 읽는 내내 불편하였다. 그것은 너무나 유유자적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별유천지(別有天地)에서 도인처럼 살아 가는 모습이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시기와 질투가 일고 또 한편으로는 참담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스님의 올려 놓은 글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 출가수행자들은 의식주에 대한 걱정이 없습니다. 산자수려한 곳에 있는 절과 작은 암자가 평생 저희의 거처이고 수행처이니 주거환경은 지구별에서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도 자유롭습니다. 그러니 늘 생존경쟁에 시달리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돈과 재물에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것은 그야말로 ‘분수’ 밖의 일이며 예의와 염치가 없는 짓이지요.

 

(법인스님, 암자일기,  느끼며, 행복하게, 휴심정 2014-05-19)

 

 

 

 

 

소년시절 출가 하였다는 법인스님의 글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출가 하였는데 청소년시절이라 하지 않고 소년시절 출가라 한 것이다. 이처럼 어려서 출가한 스님의 글을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출가수행자라 보여진다. 부모형제와 인연을 끊고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속에서 여유롭게 살아 가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글에서는 나아가 세상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그들에게 위안을 주고 지혜와 기쁨을 나눌 수 있는 보람도, 넉넉함 위에 넉넉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 하여 결코 세상과 완전히 단절하며 사는 것이 아님을 표현하고 있다.

 

별들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글에서 법인스님이 사는 곳은 해남 일지암이다. 대흥사 말사이다. 일지암 생활에 대하여 스님은 다음과 같이 써 놓았다.

 

 

땅끝 마을 두륜산 대흥사 일지암 암자에서 나는 새벽에 일어나 잠자리에 드는 한밤중까지 가공되지 않은 자연과 함께 합니다. 아침 예불은 마당을 돌며 목탁을 치며 삼라만상을 깨우는 일로 시작합니다. 청아하게 울리는 목탁소리를 들으며 간간히 눈을 들어 새벽하늘을 봅니다. 순수 천연의 어둠 속에서 또렷또렷 빛나는 별들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합니다. 예불을 마치고 산책하는 길에서 코와 피부에 스며드는 청신한 기운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호흡하는 일이 참으로 즐겁습니다.

 

(법인스님, 암자일기,  느끼며, 행복하게, 휴심정 2014-05-19)

 

 

스님은 일지암에서의 일상에 대하여 짤막하게 소개 하고 있다. 특히 일지암 주변의 풍광에 대하여 가공되지 않은 자연이라 하였다. 또한 어둠에 대하여 천연의 어둠이라 하였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해서 금방 쏟아 질 것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때묻지 않은 환경에서 사는 기쁨과 행복에 대하여 만족하고 있다. 그런 일지암은 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절일까?

 

일지암의 장쾌한 풍광에 대하여

 

일지암에 가본 적이 있다. 지난 2009 6월 순례법회 갔었을 때이다. 그 때 당시 12일 일정으로 하여 전세버스를 대절 하여 갔다. 같은 기수의 불교교양대학 법우들과 함께 갔었다. 그 때  당시 오사순례를 하였다. 영광의 불갑사와 마라난타사, 그리고 해남의 미황사 대흥사, 그리고 강진의 백련사를 갔었다. 잠은 미황사에서 잤다.

 

일지암은 대흥사의 암자이다. 그런 일지암은 대흥사에서 산길로 약 30여분 올라 가면 나온다. 그 때 당시 일지암을 방문한 것에 대하여 부처님 도량에 노닐면서, 대흥사 일지암에서 초의선사의 흔적(2009-06-03)’라는 제목으로 기록을 남긴 바 있다.

 

2000년도 당시 일지암에 갔었을 때 풍광이 너무 좋아서 이를 카메라에 여러 장 담았다. 그리고 장쾌한 풍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일지암 올라 가는 길은 꽤 가파랐다. 경사가 있는 길임에도 불구 하고 자동차가 올라 갈 수 있도록 길이 닦여져 있다.

 

산 중턱에 있는 일지암에서 보는 전망은 장쾌 하다. 사방이 온통 초록일색인 산으로 둘러 쌓여 있고 한쪽이 터져 있는데 그 사이로 다도해상이 아스라히 보였다. 그 옛날 초의선사도 이런 장쾌하고 멋진 경치를 이곳 일지암에서 매일 보았을 것이다.

 

(진흙속의연꽃, 부처님 도량에 노닐면서, 대흥사 일지암에서 초의선사의 흔적(2009-06-03)

 

 

 

일지암 대웅전

 

 

 

 

 

일지암에서 보는 풍광

 

 

 

높은 곳에 있는 일지암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발아래 세상이 있는 것 같았다. 저 골짜기 아래에 큰 절인 대흥사가 보이고, 시선을 돌리면 서해 바다가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았다.

 

일지암은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서 문명과 차단된 듯 하였다. 스님이 표현한 대로 밤이 되면 총총히 빛나는 별이 쏟아 질 것처럼 세상과 차단 되어 있는 곳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사는 스님은 매우 행복하다고 하였다.

 

탐욕은 저절로 내려놓게 된다고

 

그래서 이어지는 글에서 스님은 주자의 시 한편을 소개 하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감상을 적어 놓았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일 수 있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온갖 이해와 경쟁으로 인한 시비와 갈등으로 지치고 편안한 날이 드문 요즘 사람들에게 자연에서의 삶은 환상일 것입니다. 팔자 좋은 인생이라고 비웃고 질타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법인스님, 암자일기,  느끼며, 행복하게, 휴심정 2014-05-19)

 

 

스님이 소개한 주자의 시는 다음과 같다.

 

 

신창임영개(晨窓林影開) 새벽 산창에 숲 그림자 드리우고
야침산천향(
夜枕山川響)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드니 계곡 물소리 듣는구나
은거부하구(
隱居不何求) 이렇게 고요히 깃들어 사니 다시 무엇을 구하겠는가
무언도심장(
無言道心長) 그저 말없는 가운데 도는 더욱 깊어지누나

 

 

세상을 등지고 심산유곡에서 도인처럼 살아 가는 삶에 대한 시이다. 이처럼 산중에서 살아 갈 때 어떤 이점이 있을까? 이에 대하여 스님은 이전 글에서 금강산에서 살면 애써 수도하지 않아도 탐욕은 저절로 내려놓게 된다라는 말을 하였다. 경치 좋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면 자연스럽게 탐욕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스님의 탐욕론은 한편으로 보면 맞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보면 맞지 않기도 하다. 산중에 살면 세상과 부딪칠 일이 없기 때문에 탐욕이 생기지 않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세상속에 들어가면 탐역이 다시 일어날 것이다. 탐욕이라는 잠재성향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은근히 시기와 질투가 일어나는데

 

산에서 사는 것에 대하여 현대인들은 하나의 환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결코 현실을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형제와 인연을 끊고 세상을 등진 출가자들은 가능하다. 그래서 법인스님도 일지암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의 즐거움에 대하여 노래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신선 같은 삶에 대하여 부러워 한다. 그런 삶이 세상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일까 스님은 글에서 팔자 좋은 인생이라고 비웃고 질타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렇게 스님은 솔직히 표현 하였다.

 

스님의 삶을 보면 한편으로 부럽고, 또 한편으로 시기와 질투가 난다. 그래서일까 스님은 이어지는 글에서 또 이웃의 슬픔과 고통에 절로 내 가슴에 아픔이 느껴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라 하여 결코 세상의 일에 대하여 모른채 하지 않을 것임을 간접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 가는 세상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스님의 일상이 부럽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은근히 시기와 질투가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스님들이 심산유곡에서 마치 신선처럼 살아 간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도시에는 불교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골짜기에 암자를 볼 수 있어도 사람이 몰려 사는 도시에는 눈을 씻고 보아도 절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사방에 십자가로 넘쳐난다. 이것이 한국불교의 현실이다.

 

일요일 교인들로 넘쳐 나는 교회

 

사는 지역에는 크고 작은 교회가 수 도 없이 많다. 또한 동마다 커다란 성당이 있어서 도시전체가 사실상 기독교도시와 다를 바 없다. 설령 절이 눈에 띄긴 하지만 절인지 점집인지 구별이 갈 수 없을 정도이고, 규모 또한 초라해서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이다. 이에 반하여 교회나 성당은 우람하고 거대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 한다.

 

 

 

 

 

큰 교회의 경우 일요일 오전만 되면 교인들로 넘쳐 난다. 주차요원이 교통정리를 하고 셔틀버스가 도로 양 옆으로 수 없이 깔려 있다. 그리고 교인들은 마치 예식장 가듯이 가장 잘 차려 입고 예배 보러 나온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에 거리를 걷다 보면 교인들과 교인 아닌 사람들로 뚜렷하게 구분 된다. 대체로 교인들은 정장에 최고로 잘 차려 입고 교회로 향하지만, 교인이 아닌 자들은 자유복장 내지 등산복차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도시는 이미 교회와 성당이 정복한 상태이다. 그 어디에도 불교는 끼지 못한다.

 

그 많은 스님들은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람이 사는 도시에 불교는 더 이상 없다. 그럼에도 불자가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중에 불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22.8%로서 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에서 체감하는 종교비율은 불교가 기독교와 비교하여 십분의 일도 되지 않는 것 같다. 그 많은 스님들은 대체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스님들을 도시에서 보기 힘들다. 간혹 회색승복을 입은 스님들을 보긴 하지만 초라하기 그지 없다. 위의도 없어 보이고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이다. 더구나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며 탁발행각을 벌이는 스님들을 보면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이것이 한국불교의 현실이다. 이렇게 도시가 텅텅 비어 있는데도 스님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스님들이 자비롭다면

 

부처님오신날 불자들은 절로 향한다. 비록 일년에 한번 있는 연중행사일지라도 절로 향하는 것은 아직까지 정서적으로나마 불자들이 꽤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 부처님오신날 절로 향하는 노보살을 보았다.

 

노보살은 나이가 너무 들어서인지 거동이 불편해 보인다. 옆에서 딸로 보이는 이가 부축하고 있다. 그래서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이런 장면을 보고서 힘겹게 산길을 올라가는 노보살, 선승과 자비심(2012-05-29)’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글의 요지는 이렇다.

 

 

나이 드신 노보살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산에 오르는 것에 대하여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거동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하다면 산에 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되었다. 아무리 신심있는 불자라도 불편한 몸으로 험한 산길을 홀로 오르내릴 수 없다. 그래서 나이 들어 몸이 말을 듣지 않았을 때 절에 가는 것은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들자 산중에 사는 스님들의 ‘자비’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험한 산길을 스스로 찾아 올라와야 부처님을 뵈올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은 스님위주의 불교로서 중생을 고려하지 않은 발상으로 보인다. 이는 다른 말로 스님들이 ‘자비심’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스님들이 중생에 대한 자비심이 있다면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하지 않게 만들었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저잣거리에 절이 있다면 굳이 먼 산에 있는 절을 찾지 않을 것이다. 바로 집 부근에 절이 있다면 몸이 불편해도 얼마든지 부처님을 뵈로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흙속의연꽃, 힘겹게 산길을 올라가는 노보살, 선승과 자비심(2012-05-29))

 

 

 

 

 

 

산길을 힘겹게 올라가는 노보살을 보고서 한국불교의 스님들의 자비심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것이다. 만일 도시에 절이 있다면 다리 아픈 노보살이 힘겹게 올라가도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에 앉아 있는 이유

 

스님들은 과연 얼마나 자비심이 있을까? 불교에 대하여 자비의 종교라 하고, 또 종단에 대하여 자비문중이라 하지만 스님들의 행태를 보면 결코 자비로워 보이지 않는다.

 

정말 중생에 대한 자비심이 있다면 산중에서 신선처럼 살 것이 아니라 저자거리로 내려와야 할 것이다. 스님들은 산 좋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신선처럼 살면서 중생들에게는 찾아 오라 하지 않고 중생들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불교는 교회하고 정 반대이다. 교회에서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지만 한국불교에서는 찾아 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이 들어 관절염 걸린 노보살들이 말년에 교회에 가서 앉아 있게 되었다는 말을 듣나 보다.

 

지역에 단단히 뿌리 내린 교회공동체

 

대부분 스님들이 심산유곡에서 신선처럼 살아 간다. 그러는 동안 도시는 공동화 되고 무주공산이 된다. 그 자리를 교회와 성당이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지역에 단단히 뿌리 내린 교회와 성당에서는 그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교회에서는 지역 주민을 위하여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청소년공부방을 만들고, 65세 이상 노인들을 위한 노인대학을 운영한다. 그리고 각종 강습회를 열고 바자회를 열어 지역주민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지역에서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주민들의 토론할 때 교회를 장소로 활용하기도 하는 등 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지역사회가 돌아 가는 것이다.

 

 

 

 

 

이렇게 교회와 성당이 지역에 단단하게 뿌리박고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불교는 눈을 씻고 찾아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거리에도 절이 있기 때문이다.

 

법현스님의 열린선원

 

저자거리에도 절이 있긴 있다. 그러나 가뭄에 콩나듯 어쩌다 하나 정도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절 중에 하나가 법현스님의 열린선원이다. 미디어붓다에 실린 법현스님에 대한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 2005, 50여년 된 낡은 전통시장 건물 2층 일부를 세내어 ‘열린선원’이라는 이름의 수행, 전법도량을 내었을 때 많은 이들은 기대보다는 걱정을 앞세웠다. 강남의 번듯한 건물에 깃발을 꽂아도 될까 말까인데 뭐가 모자라서 이런 곳에 터를 잡느냐는 것, 조계종 승려도 어려운 저자거리 포교를 태고종 승려가 해낼 수 있겠느냐는 것,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에 낡은 건물에 주차장도 없고, 허름한 창고같은 곳에 부처님을 모셨으니 절 분위기도 나지 않는다는 것 등 주위의 걱정은 차라리 당연한 것이었다.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미디어붓다 2014-04-26)

 

 

기사를 보면 상식을 깨고 있다. 일반적으로 스님들은 심산유곡에서 신선처럼 살아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법현스님은 정반대로 도시로 들어 간 것이다. 그것도 시장속으로 들어 간 것이다.

 

흔히 시장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물건파는 소리와 흥정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한 이미지이다. 이런 시장 분위기는 활력이 넘친다. 그래서 우울해 질 때면 시장에 가보라 하는 것이다. 시장에 가면 삶의 활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법현스님은 시장 한 복판에 절을 내었다. 기사에 따르면 스님 특유의 부지런함과 명석한 판단에 난공불락 같았던 난관들을 하나씩 극복해 나갔다고 하였다. 그래서 절을 낸지 8년 동안 18번 째 교육생을 배출해 내고, 각종문화행사와 사회활동을 벌였다고 하였다. 그 결과 지역을 중심으로 한 단단한 지역불자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두 부류의 스님들이 있는데

 

두 부류의 스님들이 있다. 한 부류는 심산유곡에서 신선처럼 유유자적 하게 사는 스님들이다. 또 한 부류는 지역에 뿌리를 두고 지역불자공동체를 이루어낸 스님들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후자는 극히 드믈다. 거의 대부분 스님들이 산 높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신선처럼 살아 가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도무지 세상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산중에 사는 것이 편해서일까 아니면 세상이 무서워서 일까? 분명한 사실은 도시에서 절을 보기 힘들도 스님고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스님들은 왜 세상에 나오려 하지 않을까?

 

스님들은 왜 세상에 나오려 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가장큰 이유는 아마도 세상을 등졌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불교에서 출가라는 것이 세상을 등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스님들이 세상에 나올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설령 스님들이 큰 뜻을 품고 세상밖으로 나온다고 해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서 부딪치는 일에 대하여 견디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산중과 달리 세상은 무척 복잡하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관계나 재무문제 등으로 상처를 받았을 때 견디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는 날 갑자기 말 없이 사라진다고 한다. 걸망 하나 메고 미련없이 떠나 버리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역에 불교가 뿌리내리기 힘든 것이다.

 

또하나 스님들이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소위 삼무현상 때문일 것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국불교에서 스님이 되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는 일 없이 먹기만 하고, 아무 공부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큰스님이 말씀 하시길 한국불교에서 무위, 무위도식, 무식으로 대표 되는 삼무현상이 한국불교의 가장 큰 병폐라 하였다.

 

스님들은 팔자 좋은 인생

 

현재 한국불교는 지역에 뿌리가 없다. 따라서 지역에 불자공동체가 존재 하지 않는다. 절에 가려면 깊은 산중으로 스스로 찾아 가야 한다. 더구나 나이 들어 관절염을 앓고 있다면 아픈다리를 끌고 가파른 산길을 걸어 올라 가야 할 것이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스님들은 그다지 자비롭다고 볼 수 없다.

 

스님들이 정말 자비가 있다면 지역에 뿌리를 내려 지역공동체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스님들은 그런 의지도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또한 현대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한 역량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지역에 뿌리가 없는 종교의 미래는 어둡다. 그러나 지역에 뿌리를 단단히 내린 종교의 미래는 밝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불교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국불교의 스님들은 오늘도 내일도 산 좋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신선처럼 살아 간다. 이렇게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스님들을 보면 참으로 팔자 좋은 인생이라 보여진다.

 

 

 

2014-05-2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