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시간은 지나도 글은 남는다, 누적조회수 4백만명을 맞이 하여

담마다사 이병욱 2014. 6. 9. 18:03

 

시간은 지나도 글은 남는다, 누적조회수 4백만명을 맞이 하여

 

 

 

폐사지를 보면서

 

사찰순례를 다니다 보면 거의 대부분 복원 또는 중창된 것이 많다. 그래서 백 년 이상 된 전각이 드믈다. 삼백년 이상된 전각은 더욱 더 드믈다. 이렇게 오래 된 전각이 드문 이유는 무엇일까? 거의 대부분 소실(燒失)되었기 때문이다. 불에 타버린 것이다. 불에 타기 쉬운 목재로 지어졌기 때문에 화마에 약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를 든다면 전란 때문이다. 수 많은 전란이 있었지만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가장 크다. 사찰의 역사를 설명하는 안내판을 보면 대부분 두 전란으로 인하여 소실 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사찰이 화마나 전란으로 인하여 소실 되면 어떻게 할까? 크게 두 가지 일 것이다. 하나는 복원불사를 하여 원래 모습대로 회복시켜 놓는 것이다. 또 하나는 복원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 되는 것이다. 대부분 복원되지 못하고 폐사지 형태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석탑이나 당간지주 또는 댓돌 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폐사지를 보면 제행이 무상함을 느낀다. 한때 부처님을 모신 여법한 가람이었을 텐데 흔적도 없이 사라져 주춧돌만 남은 것을 볼 때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무상하지 않는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건축불사에 올인 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여법한 가람을 가진 사찰이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만다고 생각하였을 때 부처님의 가르침 또한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것이다.

 

스님들을 위한 불사인가?

 

어느 절에 가든지 불사가 끊이지 않는다. 사찰순례를 다니다 보면 불사를 하지 않는 사찰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에서 찾아 오는 불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크고 작은 불사를 하고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기와불사이다.

 

기와 불사는 전각을 짓기 위한 매우 기초가 되는 불사이다. 보통 기와 한장에 만원하는데 기와 뒷면에 가족의 이름과 태어난 해, 그리고 소원을 적는다. 이외에도 동종불사, 석탑불사 심지어 해우소불사등 매우 다양한 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매년 불사를 하여 여러 해가 지나면 여법한 가람의 형태를 가지게 된다.

 

그 동한 한국불교에서는 끊임 없이 불사를 해 왔다. 앞으로도 끊임 없이 불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도시에서 좀처럼 절 구경하기가 힘들다. 절이 모두 산중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든 심산유곡에 절이 있다보니 큰 마음 먹지 않고는 좀처럼 가기 힘들다. 그런 절은 스님들의 수행공간이자 동시에 주거공간이기도 하다.

 

일부 원력을 가진 스님들은 불사를 열심히 하였다. 그런 노력에서인지 어디를 가든지 신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여법한 사찰건물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스님들의 역량에 따라 불사의 규모도 다르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혜국스님을 들 수 있다.

 

정각원 토요법회에서 혜국스님은 불사이야기를 하였다. 정각원 정도 되는 전각이 무려 18개나 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한사람의 원력에 따라 대궐 같은 불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불사가 도시가 아닌 산중에 집중 되어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결국 스님들을 위한 불사가 아닌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지역에 뿌리가 없다 보니

 

한국불교는 정치로 따지자면 전국구이다. 국회의원을 지역구와 전국구로 나눌 수 있는데, 한국불교에는 전국구만 있을 뿐 지역구는 없다. 지역에 기반을 둔 절이 없고, 전국의 불자들이 산사를 순례하는 형식으로 유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역에 뿌리가 없다 보니 전국의 신심있는 불자들의 쌈짓돈으로 유지 되는 기형적인 불교가 되었다.

 

스님들이 도시에 나오지 않는 한 한국불교의 희망은 없다. 산중에서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와 함께 신선처럼 사는 한 한국불교는 한세대만 지나면 소수종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도 내일도 한국불교의 스님들은 산중에서 세월아 네월아하는 것 같다.

 

스님들이 산속에서만 살다보니 도시는 온통 십자가천지가 되었다. 도시에서는 절 구경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사실상 불교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현실세계에서 불교는 없다.

 

왜 인터넷불사를 하지 않는가?

 

그런데 더욱 더 우려스러운 것은 사이버세상에서도 불교를 접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람 사는 곳에 절이 보이지 않듯이 인터넷에서도 역시 가르침을 접하기 힘들다. 스님들이 산중에다 불사를 열심히 하지만 도시에서는 불사를 하지 않듯이 인터넷불사 역시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상공간에서 스님들의 글을 보기가 매우 힘들다.

 

절은 현실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상공간에서도 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절이 반드시 현실공간에만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누구나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을 넘나드는 시대에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으면 절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로지 산중에다만 불사를 하는 한국불교 현실에서 인터넷공간에 절을 만드는 불사는 매우 소홀히 하고 있다.

 

한국불교에서 인터넷불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찰마다 홈페이지가 있기는 하지만 철지난 식품처럼 오래 된 글이 대부분이다. 업데이트도 이루어지지 않고 새글도 올라 오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교회와 매우 대조적이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신대승운동보다 신불교운동을, 동네에 사찰이 제로인 현실에서(2009-09-24)’“법구경 위젯을 만들어 주세요!”온오프라인의 불교 불모지대를 보며(2012-08-11)’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한국불교는 도시에서 절 구경하기 힘들지만 인터넷에서도 역시 볼만한 홈페이지 구경하기 힘들다. 이는 도시라는 현실세계에서도 불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인터넷이라는 가상세계에서도 불사가 이루어져 있지 않음을 말한다. 그래서 두 세계에서 모두 불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오로지 산중에만 불사가 집중되고 있다.

 

도시에 불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스님들과 종단의 직무유기라 본다. 또 사이버세상이라 볼 수 있는 인터넷공간에서 인터넷불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 역시 스님들과 종단의 직무유기라 본다. 마땅히 해야 할 일임에도 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비판도 감수 해야 할 것이다.

 

누적조회수를 보니 4백만명이

 

대부분 스님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사이버세상에 집을 짓고 산지 만9년이 되었다. 그리고 글을 쓴지 만8년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많은 이들이 찾는다. 주로 불자들이지만 인터넷에는 국경이 없으므로 불자아닌 사람도 많이 찾는 것 같다. 그 중에는 타종교인도 있을 것이다.

 

금일 블로그 누적조회수를 보니 4백만명이 넘었다. 이렇게 백만단위로 바뀔 때 마다 소감문을 적었다. 이전에 작성한 글을 근거로 하여 표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No

연월일

누적조회

   

1

2005-08-03

개설일

-

2

2006-11-13

10만명

블로그 조회수 10만회 돌파에 즈음하여

3

2009-01-23

100만명

블로그와 조회수, 뗄래야 없는 관계일까

4

2010-01-10

200만명

블로그 누적조회수 200만명 돌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하여

5

2012-05-26

300만명

오늘 내일도 뿐이다, 누적조회수 300만명을 맞이 하여

6

2014-06-09

400만명

 

 

 

표를 보니 삼백만명에서 사백만명이 되기 까지 만2년 걸렸음을 알 수 있다. 그 동안 단 한차례도 글이 메인뉴스에 실린 적이 없지만 2년 만에 백만조회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꾸준히 찾는 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 평균 1,433

 

누적조회수 사백만명에 이르기 까지 어떤 이들이 찾았을까? 아쉽게도 연도별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최근 통계리포트에 따르면 월별자료를 볼 수 있다. 방문자와 페이지 뷰 추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월별방문자와 페이지 뷰 추이

 

 

최근 1개월간 방문자는 43,000명에 달했다. 이를 30일로 나누면 하루 평균 1,433명이 방문하였다. 페이지뷰는 93,467명인데 방문자 보다 두 배 많다. 이는 방문자가 한번 방문하면 두 개의 글을 읽는다고 볼 수 있다. 또 그래프 추이를 보면 매달 5만명 가량 방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나라 불자 중에서 대부분 한 번쯤 다녀 갔으리라고 보여진다.

 

4050 37%

 

다음으로 방문자분포에 대한 것이다. 최근 1개월간 월별 분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최근 한달간 연령별분포 및 성별분포

 

 

 

방문자분포를 보면 1위가 50대로서 20%이다. 2위는 40대로서 17%이다. 이렇게 4050 37%를 차지 하여 가장 많이 찾는 세대임을 알 수 있다. 2030의 경우 합하여 16%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정도 수치가 나온 것에 대하여 미래 한국불교에 대하여 희망을 갖기에 충분하다. 절에 가면 젊은 사람을 볼 수 없고 나이 든 노보살만 앉아 있는 현실에서 이처럼 2030이 꾸준히 찾아 준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연령별 방문자 중에는 60대 이상이 7%에 달한다. 나이 드신 세대들이 꾸준히 찾아 준다는 것에 대하여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연륜도 많고 경험이 많은 분들 앞에서 잘난체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이다. 그래서 자기검열하며 더 잘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왜 여성방문자가 적을까?

 

다음으로 남녀성별분포도이다. 그림을 보면 남자와 여자의 비율이 매우 불균형이다. 남자방문자가 여자방문자 보다 거의 배에 달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아마 블로그주인장이 남성인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그 다음으로 딱딱한 교리위주이어서 일 것이다. 좀 더 부드럽고 재미난 글을 올려서 여성방문자비율을 끌어 올려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경전에 근거한 글을 써야 할 것이다.

 

한달간 게시글 베스트를 보니

 

올려진 글 중에 어떤 글을 관심을 보일까? 이에 대하여 최근 한달간 게시글 베스트통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최근 한달간 게시글 베스트

 

 

통계를 보면 1위가 고뇌의 강을 건너서 ‘진흙속의연꽃’으로(2012-09-14)’로서 1,211회에 달한다. 왜 이글이 수위를 달리고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검색으로 들어 오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 검색창에 진흙까지만 쳐도 빨간글씨로 진흙속의연꽃이 자동으로 뜬다. 클릭하면 필명과 관련된 페이지가 나오는데 가장 상단에 위치한 글이 바로 해당글이다. 그래서 항상조회수가 수위로 랭크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검색창 화면

 

 

 

 

 

검색과 관련된 페이지를 보니 악의적인 제목의 글도 보인다. 제목의 글만 본다면부정적 이미지를 줄 것임에 틀림 없다. 이처럼 제목부터 부정적이라면 내용은 근거 없는 비난과 비방으로 가득한 것이 특징이다. 광팬이 있으면 안티도 있는 것처럼 인터넷시대에 피할 수 없는 것이라 보여진다. 다만 근거 없이 악의적으로 비난하여 명예를 훼손하는 것에 대하여 대응할 것이다.

 

유입키워드를 보면

 

통계리포트를 보면 유입키워드가 있다. 검색창에 키워드만 넣으면 원하는 자료를 얻을 수 있는데 어떤 키워드로 들어 온 것일까? 최근 한달간 통계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최근 한달간 유입키워드

 

 

유입키워드 중에 필명인 진흙속의연꽃 2,322회로서 1위 임을 알 수 있다. 유입경로를 보면 다음 검색창을 들어 온 것이 2,017회 이고, 네이버 검색창을 들어 온 것이 1,086회이다. 인터넷에서는 국경이 없다고 하는데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방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블로그는 개방 되어 있지만

 

인터넷에는 국경이 없다. 그래서 누구나 접속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사이트에서는 접근이 금지 되는 경우도 있다. 카페의 경우 등급을 매겨 놓아 함부로 들어 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어느 카페의 경우 특정인에 대하여 접근 할 수 없게 조치를 취한 경우도 있다. 블로그 역시 접근이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차단 기능이 있어서 차등으로 적용하고 있고, 심지어 비공개로 운영하여 원천봉쇄하고 있는 곳도 있다. 인터넷에 국경이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운영하다 보면 피치 못하게 차단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찾아 오는 모든 이에게 블로그는 개방 되어 있다. 그래서 누구나 방문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차단 조치를 하여 놓았다. 그것은 스크랩금지와 댓글금지에 대한 것이다. 이렇게 조치를 한 것은 부정적 현상을 보았다. 올린 글을 무단으로 가져 가서 난도질하는 가 하면 악의적은 비난과 비방을 일삼기 때문이다. 그럴 때 마다 난자당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일체 퍼가지 못하도록 조치 하였다. 댓글을 금지한 이유는 긍정적인 것 보다 부정적인 것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올린 글에 대하여 항상 엇박자를 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마치 술취한 사람처럼 한 이야기 또 하는 식의 글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조치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근다든가 빈데 잡으려다 초가삼간태운다라는 말을 들을 지 모른다. 그럼에도 스크랩금지와 댓글금지 조치를 하는 것은 잃는 것 보다 얻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완전히 소통하는 것이 아니다. 메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 놓았기 때문이다.

 

이메일로 요청하면

 

문의 메일을 받는 것은 가뭄에 콩나듯  드믈다. 평소 그렇게 엇박자를 내던 이는 메일 한통 보내지 않는다. 틈만 나면 아랫배에 힘주고라는 말을 정형구처럼 사용하던 이 역시 메일 한 통 없다. 그러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메일도 받는다. 다음과 같은 글이다.

 

 

연꽃님! 안녕하세요! 평소 연꽃님의 글을 애독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한 때는 연꽃님의 글을 통째로 복사해서 회사로 들고 다니면서,  읽고 또 읽으면서 불교 공부 열심히 했었습니다.  요즈음은 그러지 못해 아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연꽃님의 그동안 힘드셨던 부분도 백 번 이해합니다.

 

그러나 연꽃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그 무엇에도 굴하지 마시고 꿋꿋하게 이겨 나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물론 이는 연꽃님의 글을 한 편이라도 더 읽고 싶은 저의 작은 욕심도 숨어 있다는 것 또한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건강관리 잘 하시면서 좋은 글 많이 많이 올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S법우님)

 

 

메일을 주신 법우님에 따르면 올린 글을 복사해서 읽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아쉬워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 스크랩금지를 하여 놓았기 때문에 옮겨 가는 것도 안되고 인쇄도 안되어 불편함을 끼쳐 드려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당 글을 이메일로 요청하면 보내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본 글을 찾기 쉽도록 날자별로 관리를 하고 있다.

 

시간은 덧없이 흘러갔지만

 

사이버세상에 집을 짓고 산지 만 9년이 되었다. 햇수로는 십년이다. 그 동안 직접 작성하여 올린 글이 2,620개에 달한다. 이를 책으로 펴낸 다면 수십권에 달할 것이다. 그러나 책으로 펴낼 일은 없을 것이다. 처음 글을 쓸 때는 당돌하게도 책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으나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매일 글을 올려서 많은 사람들이 본다면 책을 펴낸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일 글을 쓰고 더구나 하루 일과 중의 반을 할애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글쓰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생활이 되었다. 그 동안 작성한 글에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간은 덧없이 흘러갔지만 글로서 남았다.

 

 

 

 

2014-06-0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