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동불서기(東佛西基)현상과 존재감 없는 한국불교

담마다사 이병욱 2014. 7. 26. 14:26

 

 

동불서기(東佛西基)현상과 존재감 없는 한국불교

 

 

 

한겨레신문에 흥미로운 기사가 떴다. 종교인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갖는 한국의 종교지형에 대한 것이다. 신문사이트에 따르면 기사제목은 한국 종교동불서기’…부천 소사구 100m마다 교회이다. 기사제목이 암시 하듯이 한국의 종교지형은 동쪽은 불교, 서쪽은 기독교라는 의미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풍경은

 

기사에서 가장 첫 머리에 어느 외국인의 소감이 나온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도시의 밤하늘을 보면서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풍경은 도시 야경 속 빛나는 십자가예요. 교회가 정말 많죠. 올 때마다 십자가가 더 늘어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말은 종종 듣는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호텔방에서 도시를 바라 보았을 때 누구나 똑 같은 소리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인으로서 십자가를 바라 보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특히 고교시절 소위 미션스쿨에서 3년동안 강제로 예배와 찬송을 겪어야 했던 트라우마가 있어서 도시의 밤하늘을 장식하는 십자가를 본다는 것은 불편하다. 그럼에도 십자가는 줄어 들지 않고 계속 늘어 나는 것 같다. 대형교회의 큰 십자가부터 구멍가게처럼 작은 교회의 십자가에 이르기 까지 십자가 네온사인을 바라 보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십자가 없는 나라도 있을까?

 

눈만 뜨면 보이는 것이 십자가이다. 도시이건 농촌이건 어디를 가나 우뚝 솟아 있는 십자가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십자가를 보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도 생각해 본다. 한편 십자가 없는 나라도 있을까?’라고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정말 십자가가 없는 나라가 있었다.

 

지난 2006년 잠시 남의 회사일을 도와 줄 때 중국 동관시로 비즈니스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홍콩 바로 위에 심천이 있고, 심천 바로 위에 동관이 있는데, 동관은 전형적인 공업도시이다. 전세계에서 투자가 이루어져 다국적 기업들이 싼 인건비에 매력을 느껴 현지공장을 지어 놓은 곳이다. 일행이 간 곳은 대만기업에서 투자한 현지공장이다.

 

동관현지에서 약 2주간 머물면서 유심히 관찰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십자가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도시에는 십자가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건물에 십자가는 커녕 교회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절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크고 작은 공장뿐인 공업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밤하늘에 보는 십자가

 

십자가행렬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현상이라 보여진다.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나라처럼 교회 십자가가 난립 되어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밤하늘에 보는 십자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십자가의 불빛은 컬러풀하다. 예전에는 붉은 빛 일색이었으나 요즘은 백색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 대세인 LED전광판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십자가 불빛이 외국인들에게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 같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공동묘지를 생각나게 한다. 도시전체가 거대한 공동묘지처럼 죽은 자를 위한 공간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도시의 십자가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교회마다 경쟁이 붙여 십자가를 더 높이, 더 밝게 하려 하지만 교회와 무관한 사람들이 보았을 때는 사실상 흉물이나 다름 없다.

 

구멍가게 보다 많은 교회

 

도시의 십자가는 구멍가게 보다 많다고 한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교회간격에 대한 자료가 실려 있다. 서울의 경우 145미터에 교회가 하나 씩 있다고 한다. 특히 가장 밀집된 지역의 경우 100미터 마다 교회가 하나씩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구멍가게 보다 더 많은 것이 교회라는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절은 어떨까?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417미터 마다 하나씩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최하는 전북으로서 2166미터에 하나씩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마치 밤하늘의 십자가를 보는 듯

 

도시에서는 이삼백미터에 하나씩 교회가 있다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 특히 수도권이 그렇다. 그런데 한겨레신문에서는 의미 있는 지도를 보여 주었다. 그것은 구글지도에 교회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알 수 있다. 그래서 검색하여 보았더니 서울과 인천, 그리고 수도권 도시의 교회가 마치 밤하늘의 십자가를 보는 듯이 나타났다.

 

 

 

 

 

서울과 인천 그리고 수도권의 교회 분포도

 

 

 

안양권 130만명 교회분포도

 

이번에는 사는 지역을 찾아 보았다. 안양과 군포와 의왕, 그리고 과천시는 같은 생활권이다. 이를 안양권이라 하는데 인구가 130만명에 이른다. 안양권에서 교회 분포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안양권 교회분포도

 

 

을 키워드로 검색하여 보니

 

불교의 경우는 어떨까? 키워를 로 하여 검색한 결과 다음과 같은 그림을 얻을 수 있었다.

 

 

 

 

안양권 절분포도

 

 

지도에 붉은 반점이 꽤 보인다. 그런데 사람이 밀집해서 사는 곳 보다 도시의 변두리나 산간지역에 분포도가 높다. 하지만 사람 사는 지역에서는 좀처럼 절을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붉은 반점이 도심에도 종종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 절이라 볼 수 있을까? 실제로 붉은 점을 클릭해 보면 절과 무관한 것도 많다.예를 들어 만물상같은 것이다. 여법한 가람을 갖춘 절은 드믈다는 것이다.

 

평촌신도시의 교회와 절의 분포도

 

도심에서 여법한 사격을 갖춘 사찰을 보기 힘들다. 이런 현상은 신도시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평촌신도시에서 교회와 절의 분포도를 비교 해 보면 다음과 같다.

 

 

 

평촌신도시 교회분포도

 

 

 

평촌신도시 절분포도

 

 

지도를 보면 신도시에서 절은 단 네 곳에 지나지 않는다. 클릭해 보면 보리정사, 선불교평촌도원, 일붕사, 보림사 이다. 이 중에 보림사정도가 사격을 갖추었다. 이는 이 절에 다니는 법우님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법우님에 따르면 보림사는 통도사분원이라 한다. 신도시가 처음 생겼을 때 포교목적으로 지은 절인 것이다. 이렇게 절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는 무수히 많다. 이것이 한국에서 종교지형의 특징이다.

 

동서로 뚜렷하게 갈리는 종교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종교지형은 동서로 뚜렷하게 갈린다. 동쪽에는 불교가 우세하고, 서쪽에는 기독교가 압도한다. 이에 대한 지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종교지도(한겨레신문)

 

 

이 지도는 불교단체 1곳당 기독교단체수를 비교한 것이다. 서쪽에 짙은 청색이 교회가 많은 곳이다. 1곳당 교회가 무려 50곳에 달하는 지역이다. 반면 경상도 지역을 보면 주황색으로 표시 되어 있는데 절과 교회 숫자가 엇비슷한 지역이다. 이렇게 종교시설로 동서로 구분 된 것을 볼 수 있다.

 

컬러풀한 복음화지도

 

그러나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복음화지도일 것이다. 기독교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하여 복음화 된 정도를 나타낸 지도이다. 이에 대하여 백령도는 기독교천국 그런데 제주도는, 복음화지도로 보는 종교지형(2010-02-02)’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복음화지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복음화지도

                                              

 

 

지도를 보면 파란 색이 가장 강한 지역은 30%이상 복음화 된 지역이라 한다. 지도상 신안군(35.1%), 익산(34%), 군산(32%), 김제(30%), 과천(32%), 강남구 서초구(30%), 인천과 강화 30%이다. 앞서 언급된 백령도는 인천소속으로서 전국최고의 복음화 지역이라 볼 수 있다.

 

지도에서 파랑색에서 시작하여 연두색을 거쳐 노랑색으로 갈수록 복음화율은 점점 더 낮아 진다. 노랑을 지나 붉은색 계통으로 가게 되면 더욱 더 낮아 지게 되는데 기독교입장에서 보았을 때 복음화율이 가장 낮은 지역이다. 경상남도 9%, 제주도 8%이다. 진한 빨강색의 경우 복음화율이 9%미만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경남 합천이 5.1%로서 전국 최저라는 것이다.

 

왜 동서로 갈리게 되었을까?

 

이렇게 보았을 때 서쪽은 기독교가 강세이고, 동쪽은 불교가 강세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동서로 갈리게 되었을까?  한겨레신문 기사에 따르면 한국의 동불서기(東佛西基)’ 현상에 대하여 오래 전부터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아직까지 이렇다할 원인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다만 두 가지 현상이 작용하였을 것으로 본다. 먼저 선교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초창기 기독교가 전파되던 개화기 때 선교사들은 지역별로 구획을 나눠 포교하는 ‘선교지 분할 정책’을 폈다. 이 과정에서 평안도, 경기도, 전라도 지역에서 포교했던 교단이 선교에 성공했고 그 영향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란 설명이다. 김종서 서울대 교수(종교학)는 “초기 선교사들이 들어와 선교할 때 지역을 분할했는데 그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 종교 ‘동불서기’…부천 소사구 100m마다 교회, 한겨레신문 2014-07-25)

 

 

동불서기 첫 번째 요인으로 기독교의 선교정책을 들고 있다. 선교사들이 구역을 나누어 전도활동을 하였는데 서울과 경기도, 평안도, 전라도 지역에서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조선말 개화기에 주로 서쪽 항구를 통하여 문물을 받아 들였고, 또한 서쪽의 경우 평야지대가 많아 전도활동하기에 좋았다는 견해도 있다.

 

유교 전통을 지키려는 의지의 차이가

 

두 번째 이유로 유교문화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하여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한편, 지역마다 유교 전통을 지키려는 의지의 차이가 종교 분포에 영향을 줬다는 해석도 있다. 유교 문화가 강한 지역일수록 오랜 전통을 가진 불교를, 유교 문화가 약한 지역일수록 새로 유입된 종교인 기독교를 수용했다는 설명이다.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한국은 유교 사회였다. 유교는 유교가 한반도에 들어오기 전부터 일반화됐던 불교에 대해선 관용적이었지만, 조선 후기 유입된 외래 종교인 기독교에 대해선 비관용적이었다. 유교의 영향이 약한 지역을 중심으로 기독교가 세력을 확장했는데 그 지역이 수도권과 전라도였다는 것이다.

 

(한국 종교 ‘동불서기’…부천 소사구 100m마다 교회, 한겨레신문 2014-07-25)

 

 

두 번째 이유는 유교와 전통문화에 대한 것이다. 유교세가 강한 곳이 대체적으로 전통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를 수용하기 힘들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전통문화가 살아 있고 유지전승되어 온 영남지방에서는 불교세가 강하고, 반면 유교적 전통문화가 약한 지역인 호남지역에서는 쉽게 기독화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동불서기현상에 대하여 선교정책과 유교전통 두 가지를 들었다. 두 가지 사항이 일리가 있지만 그러나 동불서기 현상은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 등 수 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어서 나타난 것이라 한다. 그래서일까 아직까지 이렇다 할 뚜렷한 원인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정치지형과 종교지형의 불일치

 

그런데 기사에서 의문을 제기한 것이 있다. 그것은 동불서기현상과 정치성향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서울대 윤원철교수는 “한반도의 종교 분포에서 동서 구도가 나타난 역사·문화적 배경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현재 종교의 동서 구도는 정치 성향의 동서 구도와도 흡사하게 나타나는데 둘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현재 한국의 정치지형과 종교지형이 불일치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한국에서는 보수기득권층의 경우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영향력이 강하지만, 이들 기득권층의 정치적 기반은 영남지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남지방의 경우 불교세가 강하다는 것이다. 대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와 같은 불일치는 진보진영에서도 나타난다. 진보진영의 경우 정치적 기반은 주로 서쪽지역이다. 그 중에서도 호남지역이다. 서쪽 지역은 종교지도에서 보듯이 기독교세가 매우 강한 지역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보수기득권층은 기독교세가 강하는 사실이다. 이것 또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존재감 없는 한국불교

 

한국에서는 정치지형과 종교지형이 맞지 않는다. 그 중간에 불교가 있다. 불교가 정치적으로는 보수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곳에 강세이지만, 지역을 떠나면 기독교세 위주로 되어 있다. 지역적으로는 분명히 보수기득권층에 속해 있지만 실제로는 속해있지 않은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그것은 한국불교가 존재감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불교는 투명인간이나 다름 없다. 소설가 성석제의  투명인간이라는 작품이 있듯이 한국불교가 투명인간이 된 것은 한마디로 존재감이 없기 때문이다. 불교가 영남에 지역적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보수기득권층에 속해야 하지만, 종교적으로 보았을 때는 기독교가 보수기득권층을 대표한다. 그렇다고 하여 불교가 진보진영을 대표할까? 그것도 아니다. 지역적으로는 보수기득권 영역에 속하지만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는 대표성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불교는 존재감이 없는 투명인간과 같다는 것이다.

 

지역을 뿌리로 하지 않는 한

 

한국불교가 왜 투명인간이 되었을까? 그것은 지역적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지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산중불교이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이 그렇다. 그래서 인구의 절반이 몰려 사는 서울과 수도권에 3등종교로 전락될 위기에 처해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지역을 뿌리로 하지 않은 종교치고 살아 남은 종교가 없다고 하는데 존재감 없는 한국불교가 바로 그 꼴 난 것 같다.

 

 

 

201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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