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경망스런 것, 자신의 지배하에 두어야
제멋대로의 마음
법구경 찟따왁가는 마음에 대한 품이다. 마음에 대하여 열 한 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마음은 어떤 것일까? 한마디로 통제 되지도 않고 제멋대로의 마음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음은 내 것이 아님에 분명하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까? 먼저 첫번째 게송이다.
Phandanaṃ capalaṃ cittaṃ 판다낭 짜발랑 찟땅
durakkhaṃ dunnivārayaṃ, 두락캉 둔니와라양
Ujuṃ karoti medhāvī 우중 까로띠 메다위
usukāro va tejanaṃ. 우수까로 와 떼자낭.
(Cittavaggo, Dhp33)
흔들리고 동요하고 지키기 어렵고
제어하기 어려운 마음을
지혜로운 사람은 바로 잡는다.
마치 활제조공이 화살을 바로 잡듯.
(Dhp33, 전재성님역)
心は動揺し、ざわめき、
護り難く、制し難い。
英知ある人はこれを直くする
弓師が矢の弦を直くするように。
(Dhp33, 中村元역)
마음은 들떠 흔들리기 쉽고
지키기 어렵고 억제하기 어렵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 갖기를
활 만드는 사람이 화살을 곧게 하듯 한다.
(Dhp33, 법정스님역)
心多爲輕躁 심다위경조
難持難調護 난지난조호
智者能自正 지자능자정
如匠익箭直 여장익전직
(Dhp33, 한역)
마음은 들떠 흔들리기 쉽고
지키기 어렵고 보호하기 어렵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스려 바르게 한다,
마치 화살 만드는 사람이 굽은 화살을 곧게 펴듯이.
(Dhp33, 거해스님역)
Quivering, wavering,
hard to guard,
to hold in check:
the mind.
The sage makes it straight —
like a fletcher,
the shaft of an arrow.
(Dhp33, Thanissaro Bhikkhu역)
마음의 품 첫 번째 게송이다. 마음에 대하여 흔들리고, 동요하고, 지키기 어렵고, 제어하기 어렵다고 네 가지 요인을 말하고 있다.
왜 윈냐나(識)인가?
여기서 마음이라 번역한 빠알리는 ‘찟따(citta: 心)’이다. 그러나 주석에 따르면 ‘윈냐나’라 한다. 왜 윈냐나(識)인가? 다음과 같이 설명 되어 있다.
cittaṃ : DhpA.I.288, Dag.95.13, Sds.II.415-455에 따르면, 여기서 마음은 의식(viññāṇa)이다. 마음은 세계[무색계], 토대(시각, 청각등), 대상(형상, 소리등), 자세(행주좌와)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589번 각주, 전재성님)
게송에서 찟따(citta, 心)이라 하였지만 이는 사실상 식(識)과 같은 것이라 한다. 식은 윈냐나를 말한다. 오온에서 색수상행식 할 때의 그 ‘식’을 말한다. 이 윈냐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의식’이라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마음을 나타내는 세 가지 술어 즉, 찟따(心), 마노(意), 윈냐나(識)에 대하여 구분없이 마음이라 부른다. 이렇게 본다면 게송에서 찟따라 한 것은 ‘마음일반’을 일컫는 말이다.
마음의 특징 네 가지
게송에서는 마음의 특징에 대하여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각주를 참고하여 표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No |
마음의 특징 |
설 명 |
1 |
phandanaṃ 들뜨고 |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사실과 같은 대상과 관련하여 흔들린다. (DhpA.I.288) |
2 |
capalaṃ 흔들리고 |
한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동네아이처럼 한 주제에 머물지 못하고 마음은 동요한다. (DhpA.I.288) |
3 |
durakkhaṃ 지키기 어렵고 |
곡물이 굵을 때 마구 먹어치우는 산만한 황소처럼, 하나의 유익한 대상에 집중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DhpA.I.288) |
4 |
dunnivārayaṃ 억제하기 어렵고 |
1)동일하지 않은 대상을 향해 움직일 때에 그것을 멈추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DhpA.I.288) 2)남자에 대해서 여자, 여자에 대해서 남자를 의미한다.( Dag.95.13) |
표에서 가장 먼저 ‘들뜸’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다.이는 여섯 가지 외부대상과 접촉하였을 때이다. 이때 마음이 일어난다. 흔히 내부의 여섯 감각기관이 외부의 여섯 대상과 접촉이 발생하였을 때 마음이 일어나는 것으로 본디. 이렇게 본다면 마음은 대상이 있어야 일어나는 것임에 틀림없다.
화살제조공의 비유
들뜨고, 흔들리고, 지키기 어렵고, 억제하기 어려운 것이 마음이라 하였다. 그러나 현자들은 이런 마음을 다스릴 줄 안다. 게송에서는 화살제조공의 예를 들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usukāro va tejanaṃ : DhpA.I.288에 따르면, 화살제조공은 숲에서 나뭇가지를 가져와서 껍질을 벗기고, 그것에 쌀죽을 바르고 화로 속에서 가열하고 뾰족한 막대기 위에 그것을 박고 똑바로 펴서 ‘머리카락을 쏘아 맞출 수 있도록 조절한다.’ 이렇게 해서 화살제조공은 왕들과 대신들 앞에서 자신의 기술을 시연하여 명성을 얻는다.
동일한 방식으로 총명하고 지적인 현자는 동요하고 움직이는 본성을 가진 마음을 다룬다. 그는 숲속에서의 두타행으로 거친 번뇌를 제거한다. 그것이 껍질을 벗기는 것이다. 그것에 믿음의 기름을 바른다. 정신-신체적인 노력으로 그것을 가열하고 그것을 멈춤[지:사마타]과 통찰[혜:위빠사나]의 뾰족한 막대기 위에 박는다.
(591번 각주, 전재성님)
화살을 만드는 과정과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이 대비 되어 있다. 공통적으로 거친 것에서부터 예리한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 각주에 따르면 두타행으로 거친번뇌를 제거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거친번뇌는 ‘의-식-주’에 대한 것이다. 분소의를 입고 탁발음식만 수용하고 공동묘지에서 자는 등 열 세가지 두타행으로 무소유의 삶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런 바탕에서 멈춤과 통찰수행으로 제멋대로의 마음을 바로 잡는다고 하였다.
“마음은 경망스런 것이니..”
게송에 따르면 범부에게 있어서 마음은 통제불능이다. 이렇게 본다면 내 마음이라 할 수 없다. 통제가 되지 않는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제 멋대로인 마음에 대하여 법구경인연담에서 부처님은 “마음은 경망스런 것이니 그것을 자신의 지배아래 두어야 한다.(Dhp33 인연담)”라고 말씀 하셨다. 이는 메기야가 세 번씩이나 부처님 말씀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한 것에 대한 경고의 메세지이다.
인연담에서는 수행승 메기야가 등장한다. 그런데 인연담에 등장하는 메기야 이야기는 앙굿따라니까야 ‘메기야의 경(A9.3)’을 근거로 한다. 공통점은 메기야가 ‘불건전한 사유’를 한 것이다.
부처님이 “기다려라”라는 말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한 메기야에게 세 가지 불건전한 생각이 떠 올랐다. 그것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메인 사유, 분노에 대한 사유, 폭력에 대한 사유이다. 이런 세 가지 사유는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떠 오른 것이다.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메기야가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에 지배당하는 것에 대하여 한탄한다. 이에 부처님이 가르침을 주시는데 법구경인연담과 메기야경이 다르다. 법구경인연담에서는 “마음은 경망스런 것이니 그것을 자신의 지배아래 두어야 한다”라고 말씀 하시면서 “흔들리고 동요하고 지키기 어렵고 제어하기 어려운 마음을 지혜로운 사람은 바로 잡는다. 마치 활제조공이 화살을 바로 잡듯.(Dhp33) 물고기가 물인 집에서 나와 물에 던져진 것과 같이, 이 마음은 펄떡이고 있다. 악마의 영토는 벗어나야 하리.(Dhp34)”라고 가르친다.
마음을 다스리는 아홉 가지 원리
그러나 메기야의 경에서는 다르다. 부처님은 “메기야여, 아직 익지 않은 마음에의한 해탈을 익게 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원리가 도움이 된다.(A9.3)”라며 다섯가지 원리와 네 가지원리를 추가로 말씀 하신다. 모두 아홉 가지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선한 벗과 사귄다
2. 학습계율을 수용하여 배운다.
3. 버리고 없애는 대화를 한다.
4. 열심히 정진한다.
5. 지혜를 갖춘다.
6. 부정(不淨)을 닦아야 한다.
7. 자애를 닦아야 한다.
8. 호흡새김을 닦아야 한다.
9. 무상에 대한 자각을 닦아야 한다.
통제 되지 않는 마음을 제어 하기 위하여 1번부터 5번까지 닦아야 하고, 이런 바탕에하에서 6번부터 9번까지 더 닦아야 한다고 부처님이 말씀 하셨다.
법구경인연담을 보면
Dhp33번과 34번의 공통인연담을 보면 경전을 근거로 하고 있다. 법구경 인연담을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은데 어떤 경우에는 허구적 내용도 있고 단지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식의 인연담도 보인다. 그럼에도 종종 초기경전을 근거로 한 인연담도 보인다. 메기야의 경(A9.3)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완전히 적용되지는 않았다. 경의 도입부만 적용 되었을 뿐 결론부에는 게송이 언급되어 있고 말미에는 “많은 사람들은 흐름에 든 경지를 성취했다.”라는 정형구가 붙어 있다.
2014-07-31
진흙속의연꽃
'담마의 거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인간세상이 천상보다 공덕행과 수행에 적합한가? (0) | 2014.08.08 |
---|---|
불교는 축복의 종교 (0) | 2014.08.07 |
고디까, 왁깔리, 찬나, 세 빅쿠는 왜 자살하였나? (0) | 2014.07.29 |
“열반이 그의 눈앞에”퇴전과 불퇴전을 거듭하다 보면 (0) | 2014.07.22 |
“존재에서 나는 두려움을 보노라”행위의 두려움 윤회의 두려움 (0) | 2014.07.19 |